<미술감상에 관해서-1>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현실 생활에서 보고자 하는 것을 그림 속에서도 보기를 원한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선택이다. 우리는 모두 자연의 아름다움을 좋아하고 그 아름다움을 작품 속에 간직해 준 미술가들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런 미술가들 자신도 우리들의 이런 취향을 타박하지 않을 것이다. 플랑드르의 위대한 화가인 루벤스가 그의 어린 아들을(도판1) 그렸을 때 그는 분명 아들의 귀여운 얼굴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그는 우리들이 그의 아들을 귀엽게 보아주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주제에 관해서 이런 편견을 갖는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매력이 덜한 주제를 다룬 그림을 거부하게 만든다.
<도판1> 루벤스 : 아들 니콜라스의 초상
독일의 유명한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도 루벤스가 자기의 포동포동한 아들에게 가졌던 것만큼의 애착과 사랑을 가지고 그의 어머니(도판2)를 그렸을 게 틀림없다. 고생에 찌들린 늙은 어머니를 진실되게 그린 이 습작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시선을 피하고 싶은 충동을 줄 만큼 충격적이다. 그러나 뒤러의 이 그림은 위대한 진실성을 담고 있는 명작이기 때문에 우리가 처음에 느낀 반감을 극복하기만 한다면 충분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도판2> 뒤러 : 어머니의 초상
우리는 한 작품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은 그 소재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된다. 스페인 화가 무리요(도판3)가 즐겨 그렸던 부랑아들이 엄격하게 말해서 아름다운지 아닌지 잘 모르겠으나 일단 그가 그 어린아이들을 그린 후에는 그들은 분명히 대단한 매력을 지니게 된다. 그 반면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터 데 호흐의 화려한 네덜란드 실내모습에 나오는 아이의 그림(도판4)이 매우 평범하다고 하겠지만 이것 역시 대단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도판 3> 무리요 : 부랑아들
<도판 4> 피터 데 호흐 : 사과껍질을 벗기는 여인이 있는 실내
<도판 5> 멜로초 다 포를리 : 천사 / <도판 6> 멤링 : 천사
아름다운 것에 관한 문제는 무엇이 아름다운 것이냐에 관한 취향과 기준이 그처럼 다르다는 데 있다. 도판 5와 도판 6은 둘 다 15세기에 그려진 작품으로, 기타와 비슷한 류트를 켜고 있는 천사의 그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북유럽의 화가 한스 멤링의 작품(도판6)보다는 동시대의 이탈리아 화가인 멜로초 다 포를리의 그림(도판5)을 더 좋아할 것이다. 나 자신으로 말하면 두 그림을 다 좋아한다. 멤링의 천사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일단 그 천사가 어딘가 힘없고 어색하다는 인상을 떨쳐버린다면 우리는 그 천사가 한없이 사랑스럽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도판 7> 귀도 레니 : 가시면류관을 쓴 그리스도
<도판 8> 토스카나의 한 미술가 :그 리스도의 얼굴
아름다움의 진실은 또한 표현의 진실과 같다. 사실 그림 속에 있는 인물의 표정이 우리로 하여금 그 작품을 좋아하게 만들거나 싫어하게 만들 때가 많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좋아하며 그 때문에 깊이 감동받기도 한다.
17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귀도 레니는 십자가에 못박힌 <가시면류관을 쓴 그리스도> (도판7)을 그렸을 때, 분명히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예수의 얼굴에서 수난의 고통과 영광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뒤 수백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구세주의 표현에서 용기와 위안을 얻곤 했다. 이 작품이 표현하는 감정이 얼마나 강렬하고 분명했던가 하는 것은 '미술'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예배당이나 외딴 농가에 이 작품의 복제판을 걸어놓고 있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강렬한 감정의 표현에 쉽게 마음이 끌린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게 표현된 그림에서 등을 돌리거나 해서는 안되다. 십자가에 못박힌 또 다른 예수상 (도판8)을 그린 중세의 한 이탈리아 화가도 레니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해서 진지하게 느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가 그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의 작업방식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다.
이처럼 상이한 표현 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면 레니의 작품보다 표현이 덜 분명한 작품들을 더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말과 몸짓을 적게 사용하면서 많은 것을 상대방이 추측하도록 남겨두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이,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추측하고 곰곰히 생각할 여지를 주는 그런 회화나 조각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술가들이 지금과 같이 사람의 얼굴 표정이나 몸짓을 표현하는 데 숙련되지 않았던 문예부흥기 이전의 작품들을 대할 때 우리는 그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감정을 전달하려고 노력했는가를 알고 나서 더 큰 감동을 받을 때가 많다.
출처 : http://www.artvus.co.kr/art_story/story_3rd.a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