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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 Baldung [1485-1545], Pyramus and Thisbe

[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 中 P.162-164

  한스 발둥은 뒤러의 제자였는데, 마법에 대해 강박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마법의 숲 분위기가 느껴지고, 유령과 마녀가 중얼거리는 덤불 사이로는 바람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 그림은 피라모스와 티스베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에서 보텀과 친구들이 하는 '연극' 때문에 이 극을 희극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실제로는 진정한 비극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피라모스와 티스베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두 가문은 서로를 미워하는 사이였다. 그래서 이 불쌍한 연인들은 직접 만나지는 못하고, 두 집을 가로지르는 벽에 난 구멍을 통해서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두 사람은 도망가기로 결심하고,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무덤가에서 만나기로 한다. 먼저 도착한 티스베는 그곳에서 사자를 한 마리 발견하는데, 그 사자에게 먹이를 던져주고 나서 자신은 자리를 피한다.  그 와중에 사자는 고양이처럼 그녀가 떨어뜨린 스카프를 들고 장난을 치다가 거기에 피를 묻힌다. 뒤늦에 도착한 피라모스는 스카프와 사자의 흔적만을 보고 그녀가 죽은 것이라고 성급하게 단정해 버린다. 자기가 늦게 도착했기 때문에 그런 비극이 일어났다고 생각한 그는 깊은 슬픔과 자책감을 느낀다. 결국 피라모스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고 마는데, 모든 일이 끝난 후에 다시 나타난 티스베 또한 그가 목숨을 잃은 것이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칼을 들어 그의 뒤를 따른다.

  전설에 의하면, 그들이 만나기로 한 장소에는 하얀 뽕나무가 있었는데 그 열매가 두 사람의 피로 물들어 진홍색으로 변했다고 한다. 피라모스가 누워 있는 진홍색 외투와 티스베가 입고 있는 하얀 치마(그녀가 스스로를 찌르면 진홍색으로 변할 것이다)가 이 전설을 암시하는 듯하다. 달을 가린 불길한 하늘과 석주 위에 있는 슬픈 큐피드, 그리고 두 개의 샘까지 그림의 모든 곳에서 발둥의 작품임을 알게 하는 요소들을 찾을 수 있다.

  특이하게도, 발둥은 그림 속의 연인들을 신화에 나오는 젊은이들보다 훨씬 나이 든 사람들로 표현해 이 사건을 성숙한 사람들 사이의 가슴아픈 사건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특징적인 것은 여성에 대한 화가의 두려움에서 기인한 두 사람의 위치다. 우리는 두 사람 모두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림에서 실제로 보게 되는 것은 죽어 쓰러져 있는 남자와, 그 앞에 숙명처럼 버티고 서 있는 여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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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 中

  마티스는 아주 개인적인 사람으로, 피카소가 자신의 드라마 같은 삶 속에서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었던 것과는 달리, 마티스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이 그림이 이색적인 것은 잠옷 차림의 마티스 자신과 실내복을 입고 있는 아내가 마주보고 있는 장면을 그린 일종의 자화상이라는 점이다. 이는 부부 사이의 소외에 대한 이미지인데, 내가 보기에 마티스 자신은 이 그림이 얼마나 노골적인지 몰랐던 것 같다. 우리는 이 그림을 보편적으로 해석해서, 순탄하지 않은 결혼 생왈을 하고 있는 어떤 부부의 모습을 읽고 싶어한다.

   이 그림에서 지배적으로 보이는 것은 남편이며, 아내는 낮은 위치에, 단순히 높이에서가 아니라 지위에 있어서 낮은 위치에 있다. 그녀는 의자에 갇혀 있다. 커다란 팔걸이가 그녀를 가두고 있고, 자루 같은 가운이 발을 감싸고 있다. 마치 발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남편만이 유일한 힘의 원천이기 때문에, 수동적인 그녀에게는 발이 필요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편의 눈에서는 어둠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고, 비록 아내는 고개를 들고 공격적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이 소용없는 일임을 안다.
  마치 길게 늘여놓은 권력 같은 남편의 형상은 영원으로 치닫겠다는 듯이 그림 밖으로까지 솟아 있는 반면, 아내는 완전히 감금되어 있다. 그는 그림의 프레임으로부터도 자유롭다. 화살처럼 꼿꼿한 그의 몸과 잠옷에 있는 하얀 선이 그것을 말해 준다. 굵은 목과 창 밖으로 보이는 세계와의 유사성까지, 그에 관한 모든 것은 권력과 연결되어 있다. 남성의 몸이 곧게 뻗은 나무라면, 여성은 동그란 연못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나마 세 개의 연못 중 전체 모양이 다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 잘린 채 일부분만 보여진다.

  그녀의 내향적인 포즈는 난간의 곡선과도 비슷한데, 바로 여기서 마티스는 재치있고 재미있는 표현을 하고 있다. 난간의 곡선은 '안 돼' (non)라고 말하고 있다. 마티스와 아내는 서로에게 '안 돼'라고, 침묵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입을 굳게 다물고 있으므로, 제목으로 쓰인  '대화'는 마음으로의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말을 할 필요는 없다. 거부의 표시를 보이는 그들의 몸이 이미 '안 돼'라고 소리치고 있으며, 둘 사이의 거리도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 사이의 거리는 육체적인 거리뿐만 아니라 이미 마음이 그만큼 멀어져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분리와 서로에 대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그림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짙은 파란색과 사랑스러운 패턴이 그림 전체를 조금은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이 그림은 결국 슬픈 그림이 아니라, 강하고, 약간 익살스럽지만 진지하다. 작품 안의 모든 것이 각각 나름대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 비록 그것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음악이 '거부'를 표현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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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 P.159 - 161


  홀바인은  전형적인 독일 화가라고는 할 수 없다. 그는  '떠나간 독일인'으로 (그를 폄하하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십대 때 스위스로 건너갔으며 나중에는 영국으로 가서 헨리 8세의 궁정 화가가 되었다. 부드러운 완성도를 보여주는 홀바인의 작품들은 개별 국가의 특징보다는 국제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독일인다운 내적인 것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의 관심을 끈 것은 기체의 깊은 내면이 아니라 그의 개인적인 세계였다. 홀바인은 마치 열쇠구멍을 통해 보여지는 것 같은 이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해 보라고 질문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어려운 질문은 아니다. 단서가 많이 있는데, 우선 그의 이름과 나이를 알 수 있게 하는 안내문이 있다(그는 서른 네 살이다), 또한 런던의 스틸야드Steelyard에서 온 편지가 있는데, 그 편지를 통해 우리는 이 사람이 한자동맹에 소속된 상인이며, 무역에 필요한 도구들을 자신의 깔끔한 녹색 사무실에 정리해 두고 있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저울, 책, 상자들, 봉인, 장부, 약간의 현금 등 그가 필요로 하는 물건들이 보인다. 빛나는 새틴으로 된 소매를 봐서 그가 부유한 상인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의 앞에 있는 테이블에는 아주 훌륭한 이국적 테이블 보가 깔려 있고, 베네치아산으로 보이는 꽃병도 놓여 있다.

꽃병에 꽂혀 있는 카네이션이 친밀한 분위기를 주고 있는데, 카네이션은 원래 약혼을 상징하는 꽃이다. 결국 이 초상화는 그의 약혼녀였던 크리스틴 크루거에게 주려던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는 그녀를 감동시키고 싶었을 것이다(벽에 붙어 있는 그의 좌우명, "그냥 생기는 즐거움은 없다"를 보라). 약혼녀로서는 진지하고, 책임감있고,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세심하기까지 한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하게 되는 셈이다. 사랑스럽게 매달려 있는 공 같은 것은 향갑으로, 그 안에는 향기로운 꽃잎들이 채워져 있어서 방안에 향기를 더해준다. 또한 금시계는 시간을 함부로 낭비하면 안된다는 것을 사기키셔 준다.

  물론 이 그림은 사적인 초상화이지만, 홀바인은 지나치게 개인적인 것까지 보여주지는 않았다.그는 기체의 사생활을 존중해준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화가는 초상화를 모델의 사무실에서 그림으로써 더욱더 그를 보호해주고 있다. 다른 배경에서 그렸다면, 집에서 멀리 떨어진 이국에서 생활하는 사람의 외로움이 느껴졌을 것이다.  그 느낌을 없애기 위해서 개인적인 작업실의 친숙함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림을 보고 있는 우리는 착하고, 진지하고, 외로운 젊은 기체를 따뜻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홀바인이 표현하고 있는, 보호받는 공간에서의 행복한 느낌을 함께 느낄 수 있다. 그는 일상적인 느낌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는 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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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her about to Wash a sleepy child - Mary  Cassat

 

   묘하게도 어머니와 아이의 주제에 관한 한 최고이며, 작품의 반 이상을 이와 같은 주제로 그림을 그린 화가는 결혼할 마음이 전혀 없던 미국 독신 여성이었다. 메리 커샛은 부유하고 매력적이며 친구도 많았지만(드가를 포함해서), 가족 이외에는 누구와도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않았다. 예술만이 그녀의 전부였다.

    이 그림은 그녀가 이 주제를 다룬 첫 작품으로 여겨진다. 그녀가 여전히 인상주의자들의 영향 아래에 있던 시기에 완성된 초기작이다. 이후에 그녀의 양식은 좀더 딱딱해지지만, 여기 이 작품은 경쾌한 터치가 돋보인다.

   벽지의 수직선 위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빛이 의자의 줄무늬로 내려오고, 그런 다음 쭉 드러누워 있는 아아이와 어머니의 몸으로 자유롭게 흘러드는 방식에서 인상주의의 영향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마치 아이가 심하게 뒤척이는 것처럼 인물들 주위가 희미하게 빛난다. 이 운동감과 밀접성은 물 속에 담긴 뚜렷하게 붉은 어머니의 손을 닻으로 해서 단단하게 고정된다. 물이 너무 뜨거워서 손이 붉은 것일까? 아니면 이 여인은 노동자일까?

   메리 커샛은 피츠버그 근처에서 태어나 미국 중서부의 여인으로 살았다. 그녀는 절대 실물을 과장하여 그리는 법이 없다.  이 아이는 사랑스럽다기보다는 아무렇게나 누워서 완전히 녹초가 되어버린 한 인간으로 묘사된다. 이 그림에 감정적인 힘을 실어주는 것은 바로 아이의 표정이다. 반은 미소짓고 있고 반은 무표정한 아이는, 그럼에도 절대적인 신뢰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어머니의 얼굴을 완전히 다 볼 수 없다. 그녀가 몸을 구부려 아이를 향해 있기 때문이다. 이 자세 자체가 무한한 봉사와 헌신의 증거이다.

   커샛의 그림은 자식이란 사랑받을 것을 믿는 것이며, 어머니란 전부를 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커샛은 많은 작품을 남긴 중요한 화가이지만, 이 그림은 삶이 끝나는 날까지 자신만의 소중한 그림으로 남았다.  

 


자화상

 

 

 


The Caress

 

 


The Bath, 1891-2


메리 커샛 (Mary  Cassat, 미국, 1844- 1926)

메리 커샛은1866년에 파리에 정착했고, 그녀의 친구이자 조언자인 드가가 그녀에게 인상주의자들과 함께 전시회를 열자고 권유했다. 그녀는 프랑스 인상주의 운동에 정식으로 참여한 유일한 미국 화가였다.

그녀의 작품은 대개 비유적이고, 어머니와 아들이라는 주제의 습작들이 유명한데, 이것이 메리 커샛 작품에서 반 정도를 차지한다.

뛰어난 데생 화가였던 메리 커샛은 일본의 드라이포인트 동판기법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또한 뚜렷한 무늬들과 선형 소묘같은 일본 양식들을 도입했다.

드라이포인트 동판기법으로 그린 작품

The Coiffure

 

The Bath, 189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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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4-11-12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좋네요
 

 


Pieter Jansz. Saenredam (Dutch, 1597-1665)

Interior of the Buurkerk, Utrecht 1645

 

위트레흐트, 부르케르크의 내부 - 피테르 얀스 산레담

 

    17세기의 네덜란드 화가들은 초상, 풍경, 바다 경치, 정물, 동물같은 특정 분야를 중심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산레담은 이들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만의 독특한 소재는 바로 교회의 내부였따. 워낙 유별난 기호인지라 아버지가 남겨준 작은 유산이라도 없었다면 그는 연명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아버지, 얀에게 감사해야 한다.  아들 피터는 고요하고 빛으로 가득한 준엄함을 잊을 수 없는 그림들로 표현했다.

    그는  등이 구부러진 작고 숫기 없는 남자로, 몇 시간이고 교회에 앉아서 그 건물을 완벽하게 스케치하고 나서 몇 년 후에야 그것들을 그림으로 옮겼다. [위트레흐트, 부르케르크의 내부]라는 이 그림은 9년이나 지난 후에 완성되었다.

    장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완벽한 청교도 교회가 아주 사실적이지만, 이는  정확히 산레담이 본 그대로는 아니다. 1636년 그가 위트레흐트에 있을 당시 전염병이 창궐해 밤이나 낮이나 시체들이 교회로 옮겨져 판석 아래 묻혔다. 스케치를 위해 그곳에 온 산레담은 그 처참한 광경을 목격했을 체지만, 우리에게는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그는 우발적인 것, 일시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다. 산레담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교회의 정수, 즉 색채는 모두 바닥(지상)에 있고 기둥은 하늘을 향해 조용히 솟아있는, 그 순수하고 고결한 공간감이다. 그는 지저분한 거리의 무덥고 시끄러운 혼란 속에 있다가 기도를 위해 따로 마련된 건물의 석조 잿빛과 빛으로 충만한 맑음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어떠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다.

 

피테르 얀스 산레담 - 네덜란드, 1957-1665

산레담은 가상의 건축소재보다는 현실적인 건축물, 측히 교회만 집중적으로 그린 최초의 화가이다.

그는 그림을 진행하기 전에 상세한 스케치 습작에 몇 년을 투자했다.

그의 작품들은 밝은 색조와 섬세한 색채, 정교한 원근법, 고결한 공간감이 특징이다.

 

 

 

 

 


Bavokerk Haarlem 1660

 

 


Interieur St. Bavokerk Haarlem, 1648

 

 


Maria Kerk

 

 


St Peter Hertogenbosch, 1632

 

 

 


St Bavon, Haarlem,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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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11-11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군요.^^

파란여우 2004-11-11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그림은 웅장한걸요.마치 내가 저 복도에 있는 듯한...

panda78 2004-11-11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조금만 더 선명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좀 아쉬워요. ^^



스텔라님. ^ㅡㅡ^ 그림 올리는 것도 오랜만이죠-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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