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의 시간 - 강만길 자서전, 2010년 제25회 만해문학상 수상작
강만길 지음 / 창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자서전을 꽤 좋아한다. 우선은 진실의 영역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진실일까?’하는 의문은 늘 갖는다. 사건이 이루어진 시공간을 떠난 상태에서 인간은 과연 얼마나 진실할 수 있을까? 자신을 객관화했기에 진실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이 곳에 주관으로 똘똘 뭉친 내가 서 있는데 객관화가 쉬울 리 없다. 인간은 자기 연민과 자기 합리화에 능한 존재다. 다음은 내 자신에 대한 계몽을 수행하고자 함이다. 덜 된 인간인 내가, 좀 더 된 인간을 보며 무언가 배우고자 한다.  계몽이 늘 성공하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역사학자 강만길의 자서전이다. 1933년생이니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모두 겪은 분이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유소년기에 8.15와 6.25를 체험한다. 역사학도로서 4.19와 5.16을 목도하고, 역사학자로서 5.18과 6.10을 몸소 겪는다. 퇴임 후에는 사학 비리로 말썽이 많았던 상지대 총장을 지내고, 민주정부 10년간 통일고문을 맡기도 한다. 노무현 정부 때는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으로도 활동한다.  

  저자는 '역사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역사는 이상의 현실화 과정이다'라고 답한다. 일제강점과 전쟁의 잿더미에서 민주와 통일의 시대를 열고자 직접 역사 속에 뛰어든 역사학도의 삶을 따라가보니 '역사는 이상의 현실화 과정이다'란 답이 눈물겹다. 이명박 정부를 두고도 저자는 어떻게든 역사는 앞으로, 앞으로 나가고야 만다고 말한다.  

  자서전을 남기지 않는 우리 역사학계에서 이만한 기록을 갖게 됨이 소중하다. 저자도 한 인터뷰에서 기록을 남기는 것 자체가 위험했던 시대를 이유로 들던데, 그러고 보니 역사학자 김성칠 선생의 일기(<역사 앞에서>)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다. 책에서 '역사론'을 쓰는 게 역사학자로서 마지막 바람이라고 하시던데, 그 바람이 꼭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着語 :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신영복 교수의 스승이기도 한 노촌 이구영 선생의 자서전인 <역사는 남북을 묻지 않는다>는 현대사를 기록한 자서전으로 꼭 기억해야 한다. 두 자서전은 계몽의 역할을 적어도 내겐 충분히 해냈다.

 

         黎史 姜萬吉(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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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 2010-08-11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책이 나올 때 눈여겨 봐둔 책인데. 제 리스트에도 올려두어야겠습니다. 이구영 선생의 자서전이 있었군요. 저도 기억해 두겠습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08-11 20:58   좋아요 0 | URL
무더위를 역사학자와 현대사를 추체험하며 보냈습니다. 이구영 선생님의 일생을 후학인 심지연 교수가 기록했는데 슬픔이 묻어나는 자서전입니다. 속절없이 돌아가셨다는 얘길 듣고 더욱 슬펐습니다.

미지 2010-08-11 21:30   좋아요 0 | URL
저도 읽어야겠습니다.

반딧불이 2010-08-12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상하게 자서전이 안읽히더라구요. 평전은 좀 나을까 싶었는데 박홍규의 카프카 평전때문에 또 평전마저 등돌린지 꽤 되었네요. 리스트까지 만들어두었는데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 책도 함께 읽어야할 듯 싶습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08-12 10:36   좋아요 0 | URL
박홍규 교수의 평전은 저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근래 오웰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더욱 했구요. 그가 존경한다는 오웰과 사이드에게 그의 이념적 지향성을 덧씌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역사가의 시간>은 꼭 한 번 읽어볼만한 자서전입니다. 분량이 조금 많긴 하지만요.

다이조부 2010-08-12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시절 강만길 선생의 강연을 들었던게 생각나네요~

자기연민과 자기합리화 에 단어에 찔리네요 ㅋ

파고세운닥나무 2010-08-12 10:40   좋아요 0 | URL
저도 찔리는 말입니다^^;
 
에드워드 사이드 다시 읽기 - 오리엔탈리즘을 넘어 화해와 공존으로
김상률.오길영 외 지음 / 책세상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2003년 세상을 떠난 에드워드 사이드를 추모하며 영문학자들이 쓴 글을 모은 책이다. 추모랬지만, 머리글과 1부를 제외하곤 사이드를 대상으로 한 논문을 모아놓았다. 이런 형식의 책이 으레 그렇듯 고인에 대한 상찬이 주를 이룰 듯 한데, 논문 몇 편은 화끈한 비판도 하고 있다. 당시 창비쪽에서 활동하던 윤지관 교수와 설준규 교수는 사이드가 푸코에게 휘둘림을 못마땅해 하고, 태혜숙 교수는 페미니즘 입장에서 사이드의 제인 오스틴 읽기를 비판한다.

  윤지관은 '푸꼬에 들린 사람들'(<놋쇠하늘 아래서>, 2001)이란 비평을 쓴 적도 있는데, 푸코의 냄새만 맡아도 호들갑을 떠는 분이다. 설준규도 이 책에 실린 논문에서 '푸코의 잔영'이란 장을 빌어 푸코와 사이드를 엮는다. 두 논문 모두 사이드의 초기작인 <오리엔탈리즘>을 과녁으로 삼고 있는데 다른 필자들도 이야기 하듯 사이드의 이후 행보는 푸코와는 꽤 거리가 멀다.  

  사실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을 처음 대했을 때 내가 가졌던 느낌은 이랬다. 근대에 다다르기까지 동서양의 뒤틀린 관계를 비판하지만 근대 이후를 어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선 말하지 않음이 답답했다. 대안이라 달리 말해도 되겠다. 여기서 푸코의 냄새를 맡은 이들이 사이드를 공격한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중세에 대한 공부를 더욱 철저히 하면 무언가 실마리를 찾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후 사이드는 현실 정치에 적극 나서게 되고 중세에 대한 연구는 진행되지 않는다. 이젠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후학들의 몫이겠지만 말이다.   

  창비가 펼친 민족, 민중문학론을 구하려는 창비쪽의 영문학자들과 여성 작가 제인 오스틴을 구하려는 태혜숙을 보며 나도 에드워드 사이드를 억지를 펼치면서까지 구하려는 건 아닌가 자문해본다. 그들의 주장이 억지스럽진 않지만 설익은 느낌은 갖는다. 나도 에드워드 사이드를 다시 읽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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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 2010-08-08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드에게는 오리엔탈리즘을 분석한다는 것 자체가 대안적 삶을 여는 문턱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푸코에 과민한 분들이 계시는군요, 재밌습니다^^
혹시 권할 만한 동양과학연구자 아시는지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8-08 15:34   좋아요 0 | URL
제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라서, 소경이 길 가르쳐주는 느낌이네요. 김영식 교수의 글을 종종 읽는데, 이 분의 이력이 독특해요. 화학 박사인데, 역사학 박사이기도 하구요. 서울대에서도 동양사학과에 계셨구요. 최근에 펴낸 <인문학과 과학>에도 동양 과학에 대한 이야기가 있네요.
조지프 니덤 책도 조금 보았는데, 외국 학자로선 꽤 특유한 모습을 보인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이드의 학문은 <오리엔탈리즘>만 놓고 평가해선 안 된다고 봐요. 대안은 이후 글들에 더 나타난다고 보구요. 말씀 드린 논문들이 좀 오래된 감이 있구요.

2010-08-08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08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지 2010-08-08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영식 교수, 찾아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이조부 2010-08-08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슬램덩크 였군요

의외인데요 ㅋ

최근에 슬럼프여서 슬램덩크를 다시 꺼내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봤는데

여전하더군요. 저에게는 고전의 반열 ㅎㅎㅎ

파고세운닥나무 2010-08-08 21:11   좋아요 0 | URL
저도 이리 저리 치여 힘들 때 빼든답니다. <슬램덩크> 예찬론을 펴는 제게 친구 하나가 뭐가 그리 좋냐며 자기도 한 번 본다길래 1권을 빌려줬어요. 그 친군 어떨지 모르겠네요.
 
<공부>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공부 - 김열규 교수의 지식 탐닉기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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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열규 교수는 학부 시절 민속학 관련 논문을 읽은 기억이 있다. '읽은' 기억만 있달 뿐이지,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기억하질 못한다. 비슷한 시기에 한 출판사에서 주관한 독서장학생으로 활동했는데, <고독한 호모디지털>을 보내주어 읽어 보았다. 책은 최신 정보 기술과 연계된 학문의 변화를 말했는데 민속학자로만 알던 그의 새로운 면모였다. <공부>를 읽으면서도 느낀 거지만 전공을 넘어 여러 이야길 하는 건 좋지만 시구(詩句)마냥 훅 던지고 마는 문체가 성의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고독한 호모디지털>을 보면서도 했던 생각이다.   

  '공부'란 제목은 너무 커다랗다. 김열규 교수가 노학자인 건 맞겠지만, 거장인 듯 과장하는 책 앞날개의 저자 소개는 눈에 크게 거슬린다. 한국학의 한 분야를 완성했다는 평을 듣는다는데 누가 그런 평을 하고 있는지 출판사에 묻고 싶다. 이어령을 한국학의 거장으로 주워 섬기는 행태에 이젠 김열규까지 보태야 하나?  

  책은 이 내용, 저 내용 많이도 담고 있다. 저자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문학 이론을 거쳐 글쓰기 방법을 지나 최신 정보 기술도 슬쩍 말한다. 문제는 슬쩍 말하는 행태인데, 슬쩍 말하니 교양에도 도움이 되질 않고 문학 혹은 글쓰기 개론서라 말하기도 부족하다. 저자가 친절히도 책 속에서 출판사 편집자가 '이런 걸 요구하더라'고 말해주던데 그 요구를 맞춰주다 보니 책이 이 모습일까? 아니면 김열규 교수 고유의 스타일일까? 난 후자에 더 혐의를 둬 본다.  

  인문학계에서 '공부론'을 펼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는 한 둘이다. 국문학의 조동일과 철학의 김영민인데 두 사람의 공부론-조동일의 <세계.지방화 시대의 한국학>, 김영민의 <공부론>-을 읽은터라 이 책이 눈에 잘 들어오질 않았다. 역사학의 정수일을 보태고 싶은데, 그는 파란만장한 삶 때문인지 아직 학문론을 쓰지 못했다. 옥중서신인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에서 잠시 공부 이력을 이야기 하던데, 본격적으로 써 나가면 값진 업적이 되지 않을까 한다.  

  그냥 공부에 대한 회고담으로만 삼았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그게 독자편에서도 부담이 덜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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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고쿠도 2010-08-06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조동일 교수님 책 중에 좋은것이 많지요. 국문과생들의 바이블, 한국문학통사를 비롯하여...
저 역시 <공부>를 읽고, 공부론이라기보단 그냥 수필류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출판사에서 굉장히 밀어주는 책이라 기대했건만, 기대했던 만큼 훌륭한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파고세운닥나무 2010-08-06 22:04   좋아요 0 | URL
저는 사실 저자 이름 확인하고선 기대 안 했는데 말이죠^^;

미지 2010-08-06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한겨레신문 기사로는 엠비가 휴가 때 이문열을 만났고, 이문열은 엠비 휴양지에서 1박을 했다는군요...
한국에 이른바 '거장'이 각 분야마다 몇몇 있죠. 먼저 인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재능과 힘을 타고난 덕으로 거장 행세하는 그 괴물들의 행진이 역겹습니다. 괴물과 인간의 차이는, 자기만의 고통말고 타자의 고통에 관심이 있는가 여부로 거의 정확히 판정이 되는 것 같습디다.
실은 뭐 여쭤보려고 들렀다가, 살짝 흥분했네요.
요사이 제가 왕후이 책을 틈틈이 아껴 보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모택동 전집과 루쉰을 읽어얄 것 같습니다. 좋은 번역본과 가이드 부탁드려도 될지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8-06 22:35   좋아요 0 | URL
왕후이를 보시는군요? 중국 신좌파 가운데 개인적으로도 가장 주목하는 학자입니다. 왕후이가 번역된 게 2권 정도 있지요? 왕후이를 비롯한 신좌파는 서강대 이욱연 교수가 열심히 소개하는데, <포스트 사회주의 시대의 중국문화>를 한 번 보시면 그를 이해하는 데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루쉰은 선집 번역이 있어요. 집단번역을 신뢰하지 않아서 이 번역보단 소설과 잡문을 따로 번역한 판본을 추천해 드리고 싶네요. 김시준 교수의 소설전집 번역이 괜찮습니다. 최근에 을유문화사판으로 나온 전집은 서울대출판부 번역을 손 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론 전형준 교수의 선집 번역을 더 좋아합니다. 이 분은 비평가이기도 한데 문장이 좀 더 좋아요. 아쉽게도 선집만 있구요. 최근에 창비세계문학전집에 이욱연 교수의 번역이 있던데 대표작은 이 걸로 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범우사에서 마오쩌둥의 선집을 냈어요. 그래도 정본 번역이니 참고하셔도 좋을 듯 하고 저는 80년대에 번역한 글들로 마오를 만났거든요. 그 번역본들은 지금 구하기도 어렵구요. 최근에 신봉수 교수가 <마오쩌둥>이란 책을 썼는데 그 책에 마오에 대한 참고 자료들이 세세히 정리되어 있다고 하네요. 길잡이가 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미지 2010-08-07 0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흐, 감사드립니다!
제가 읽고 있는 왕후이 책도 이욱연 교수가 번역한 것이군요-<새로운 아시아를 상상한다>... <포스트...>도 찾아보겠습니다.
그러니까, 루쉰은, 김시준/전형준/이욱연의 번역.
마오는, 범우사 선집과 신봉수의 해설서를 보면 되겠군요.
거듭 감사드립니다^^

다이조부 2010-08-07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장학생 활동은 혹시 한길사 아닌가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8-07 11:57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3년간 활동 했더랬죠.

다이조부 2010-08-07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상당히 오랫동안 활동하셨네요~

아쉬운 점이 어쩌면 같이 활동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ㅎㅎ

저도 01년도에 지원서를 정성껏 써서 가지고 있다가 술 퍼마시다가 분실했거든요. --

뭐 지원했다고 한길사에서 선발했을지야 알 수 없지만 말이죠.

제 기억으로는 활동기간이 2년 이었고, 매달 2권의 책을 보내주는 시스템으로 알고있어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8-07 16:16   좋아요 0 | URL
같이 활동할 수도 있었겠군요? 아쉬워라~
2003년말까지 했으니 3년이 조금 안되죠. 매달 2권씩 읽었구요. 고전을 비롯해서 좋은 책 많이 읽었는데 말이죠^^

거리산책자 2010-08-12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오랜만에 닥나무님 글들을 쭈욱 훝어보았는데 옛날보다 서평의 길이가 길어지셨어요. ㅎㅎ 그건 그렇고 '독서장학생'이란 게 있었군요. 학교 다닐 때 왜 그리 시야가 좁았는지... 이제야 좀 후회되요. 어쩌면 닥나무님 독서실력(독서에도 실력이 있다고 봅니다)은 그때 다져졌는지도. :)

파고세운닥나무 2010-08-12 18:01   좋아요 0 | URL
그 활동하며 다양한 책을 많이 봤어요. 한길사가 지금도 그렇지만 인문학의 고전이나 사회과학 관련 책을 많이 내는데, 꾸준히 보는 일종의 훈련을 받은 것 같아요. 스스로 찾아서 읽기는 힘든 책들도 덕분에 읽었구요. 지금 생각하니 고마운 일인 것 같네요. 그 땐 벅찼는데 말이죠.
<나는 행복합니다> 보셨어요? 지난 주말에 후배 두엇이 보여달래서 봤는데, '어때?'랬더니 '음, 난해한걸요.'라던데요. 뭐, 난해까진 아닌듯 싶지만요.
 
랩소디 인 베를린
구효서 지음 / 뿔(웅진)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구효서의 소설은 처음 접한다. 소설을 손에 잡은 건 순전히 서경식과 윤이상의 삶을 작가가 소설의 소재로 삼았다는 이야길 들어서다.  

  소설의 중심엔 재일조선인 야마가와 겐타로(김상호)와 일본인 여인 하나코가 있다. 둘은 젊은 날 사랑하던 사이인데, 겐타로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끊어졌던 인연이 다시 시작된다. 겐타로는 일본에서 나고 자라 독일로 음악 공부를 위해 유학한다. 이 때 임진왜란으로 독일로 건너간 18세기의 유랑민 작곡가 힌터마이어를 발견한 그는 힌터마이어의 흔적을 찾으려 평양에 간다. 무작정 떠난 평양 여행이 빌미가 되어 겐타로는 한국에서 17년간 감옥살이를 한다. 이후 그는 독일에 거주하다 생을 마친다.  

  겐타로의 삶 속엔 여러 실존 인물들이 녹아있다. 서경식과 윤이상이 각각 큰 부분을 담당한다면 서승과 서준식이 나머지 역할을 하고 있다. 자살로 생을 마친 건 프리모 레비를 떠 올리게 한다. 힌터마이어의 음악과 관련지어 소설의 중간에 아우슈비츠 경험이 잠깐 나오기도 한다.

  작가는 코리안 디아스포라로서 겐타로를 상정했는데, 실은 그의 연인 하나코 역시 디아스포라라고 할 수 있겠다. 그녀의 집안은 불가촉천민인데 신분해방 후 아버지의 극성과 본인의 열심으로 황족과 화족만 입학할 수 있었던 가쿠슈인(學習院) 대학에 입학한다. 하지만 재일조선인 겐타로를 사랑하는 데서 보여지듯이 그녀는 중심에 진입하는 삶을 택하기보단 어중이 떠중이로 살아가려 한다.   

  실존 인물의 삶과 무엇이 같고 다른지 비교하는 게 이 소설의 한 재미였다. 소설을 읽으며 상당히 놀랐던 게 두 주인공의 인연이 음악으로 맺어지는데 실제 서경식도 부인과의 만남이 음악을 통해서였음을 최근에 알았기 때문이다. 예스이십사에 연재하는 <서경식의 서양음악 순례> 중에 부인 F를 합주단의 단원과 관객으로 처음 만나 인연을 맺었다고 하는데, 소설과의 일치를 보며 꽤 놀랐다. 부인과의 첫 만남 이야기는 처음 접하는 이야긴데, 작가 구효서의 꾸려가는 이야기가 묘하게 일치하고 있다. 내겐 꽤 의미있는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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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08-04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10년이 다 되어가는것 같네요. 구효서 의 산문집 인생은 지나간다 를

무척 좋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보내주신 영화를 다운은 받았는데, 어디 숨어있는지 이리저리 20분 가까이

뒤졌는데 찾기가 힘드네요. 아 컴맹은 참 애로사항이 많아요 -- ㅋ


파고세운닥나무 2010-08-04 22:06   좋아요 0 | URL
아, 피시 어딘가에 있겠죠. 영화 제목으로 검색해 봐도 될 듯 하구요. 메일에서 다시 다운로드 하셔도 될테구요.
구효서의 작품들은 단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어요. 서경식 선생을 고리 삼아 읽어본 소설입니다. 수월히 읽히는 소설을 쓰는 작가란 생각을 했습니다.

반딧불이 2010-08-05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정말 꾸준히 읽고 쓰시는군요. 저는 요즈음 완독하는 책이 하나도 없이 이것저것 뒤적이고만 있는데 말이에요. 아래 '버마시절'도 그리고 '뮌헨'도 글이 예전보다 좀 길어져서 저는 훨씬 좋아요. 고맙습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08-05 22:58   좋아요 0 | URL
저는 본디 대여섯권을 돌아가며 읽는 스타일이에요. 갈래를 달리 해서 말이죠. 제겐 이 방식이 더 생산적인 것 같아요.
더우니 저도 찔끔, 찔끔 읽고 있답니다.
글을 길게 못 쓰는 게 제 고질병이에요. 대학 때는 연극 대본을 많이 썼는데, 늘 글이 짧다고 혼났어요. 선배들의 가필이 들어가기도 했는데, 그럼 저는 자존심 상해 했구요. 지금 생각하면 별 것도 아닌데 말이죠.

Tomek 2010-08-06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효서 작가의 소설은 『낯선 여름』 한 권 밖에 읽어보지 않아서... 『랩소디 인 베를린』은창작 블로그에서 띄엄 띄엄 읽어서인지 무슨 내용인줄 알 수 없었는데, 이렇게 리뷰를 접하고 나니 관심이 당겨지네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

파고세운닥나무 2010-08-06 10:41   좋아요 0 | URL
저는 연재 당시에는 몰랐는데, 출간되고 신문 기사 통해 내용을 알게 되었어요. 좋아하는 서경식 형제 분들과 윤이상 선생을 소재로 했다기에 얼른 읽게 되었구요.
실존 인물들의 삶을 잘 몰라도 충분히 흥미를 끄는 소설인 듯 합니다.
 
버마 시절 열린책들 세계문학 103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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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오웰은 1922년부터 1927년까지 버마에서 제국경찰로 근무했는데, 소설은 1934년 출간된다. 이튼 스쿨을 졸업한 이듬해부터 버마에서 근무를 시작해 스물 네살 때 까지 버마에 거주한다. 첫 사회 생활을 한 셈인데 이 때 목격한 제국과 식민지의 여러 모습이 이 소설 속에 담겨 있다.  

  오웰은 특유의 시니컬한 태도로 인물들을 그려간다. 주인공을 제외하곤 선악의 경계가 분명한 모습이다. 식민지에 거주하는 백인들은 악의 화신일 정도다. 이들은 동양 문화와 황인종에 대해선 작품 내내 혐오를 드러내며 무시로 일관한다. 식민지인인 버마 사람들은 이들 백인들에 빌붙어 사리사욕을 채운다. 버마인들은 편히 살 길은 백인들 곁에 빌붙는 것임을 생득적으로 깨닫고 온갖 술수를 동원해 곁에 붙어 돈과 권력이라는 콩고물을 받아먹고 있다. 선한 인물로 그려지는 사람은 둘이다. 주인공인 백인 플로리와 그의 버마인 친구 베라스와미이다.  

  플로리는 백인임에도 불구하고 버마인과 동양 문화에 대해 비교적 호감을 갖는 사람이다. 이로 인해 같은 백인들에게 따돌림을 당한다. 이런 그에게 베라스와미는 말벗이 되어주며 인종을 뛰어넘는 우정을 쌓는다.  버마인 치안 판사 우포킨은 베라스와미를 눈에 가시처럼 생각하며 해치우려는 계략을 쌓는데 두 친구의 우정은 이 와중에도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다.  

  버마인들에게 정서적 공감과 동정심을 갖던 플로리가 식민주의자로서의 모습을 확연히 드러내는 모습이 있다. 버마인의 반란을 진압하고 베라스와미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는 이리 말한다. "내가 경찰에게 그들(버마인)을 향해 똑바로 쏘지 말고 머리 위로 쏘라고 말한 것이 유일한 옥에 티요. 그게 정부 규칙을 위반한 모양이오. 엘리스도 그것에 약간 불만이었소. '기회가 있었는데도 왜 검둥이들에게 직접 총을 쏘지 않았어?'라고 나에게 물었소. 나는 저들에게 발포하면 군중 속에 섞여 있는 경찰이 총에 맞을 수도 있다고 말했소. 엘리스는 어쨌든 그들 또한 검둥이가 아니냐고 하더군요." 그리 버마인들을 사랑하던 플로리도 경찰을 보호해 질서를 유지할 생각 뿐이지 버마인들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다.  

  버마인 베라스와미는 이에 어떻게 반응할까? 본래 베라스와미는 버마인들이 이 정도의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산 것도 영국인들의 은혜 덕분이라며 감사하던 사람이다. 플로리의 어떤 모습에도 그는 실망하지 않는다. 두 사람의 대화 중에 베라스와미는 이렇게 말한다. "버마인들이 스스로 무역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기계와 배를 만들고 철도와 도로를 건설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당신들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지요. 만일 영국 사람들이 이곳에 없다면 버마 정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우리는 즉시 정글을 일본에 팔아먹을 것입니다. ..... (영국) 관리들은 우리를 문명화시켜 당신들 수준까지 끌어올리죠. 이것은 자기희생의 빛나는 기록입니다." 

  제국주의에 의해 황폐화된 인물들의 모습을 그리는 데 이 소설이 한 역할을 인정하지만 소설의 시종 버마의 자립과 독립의 가능성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오웰의 비관주의가 식민지 경험을 한 한국 독자의 가슴마저 답답하게 한다. 난 에드워드 사이드가 했다는 이 말을 되뇌일 뿐이다. "Orwell had no great love for Indians or Blacks or Jews."(<Culture and Resistance>) 'great love'를 바라는 건 과욕이겠지만 말이다.

着語  : 이 책은 같은 역자에 의해 <제국은 없다>란 이상한 제목으로 번역된 적이 있다. 원제가 <Burmese Days>이니 직역한 <버마 시절>이 더 낫다. 열린책들에서 역자의 번역을 새로 살렸는데 열린책들의 장기이다. '고급소설 읽기'를 추구한다는 열린책들의 방향과 어울리는 행보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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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08-04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uniqyahoo@empal.com 입니다.


여담이지만 알라딘의 바뀐 로고는 후져보여요-- 한겨레 신문도 예전 녹색바탕의

모양이 좋고 지금의 시꺼먼 글자는 답답하고 별로지만, 최악까지는 아닌데 말이죠 쩝

파고세운닥나무 2010-08-04 14:16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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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말로는 곰으로 보시려면 코덱인가를 받아야 한다네요. 아까 보니 곰홈페이지 들어가면 쉽게 받을 수 있더군요.

저도 새 알라딘의 로고가 촌스럽다는 생각입니다. 색깔도 그렇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