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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사이드 다시 읽기 - 오리엔탈리즘을 넘어 화해와 공존으로
김상률.오길영 외 지음 / 책세상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2003년 세상을 떠난 에드워드 사이드를 추모하며 영문학자들이 쓴 글을 모은 책이다. 추모랬지만, 머리글과 1부를 제외하곤 사이드를 대상으로 한 논문을 모아놓았다. 이런 형식의 책이 으레 그렇듯 고인에 대한 상찬이 주를 이룰 듯 한데, 논문 몇 편은 화끈한 비판도 하고 있다. 당시 창비쪽에서 활동하던 윤지관 교수와 설준규 교수는 사이드가 푸코에게 휘둘림을 못마땅해 하고, 태혜숙 교수는 페미니즘 입장에서 사이드의 제인 오스틴 읽기를 비판한다.
윤지관은 '푸꼬에 들린 사람들'(<놋쇠하늘 아래서>, 2001)이란 비평을 쓴 적도 있는데, 푸코의 냄새만 맡아도 호들갑을 떠는 분이다. 설준규도 이 책에 실린 논문에서 '푸코의 잔영'이란 장을 빌어 푸코와 사이드를 엮는다. 두 논문 모두 사이드의 초기작인 <오리엔탈리즘>을 과녁으로 삼고 있는데 다른 필자들도 이야기 하듯 사이드의 이후 행보는 푸코와는 꽤 거리가 멀다.
사실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을 처음 대했을 때 내가 가졌던 느낌은 이랬다. 근대에 다다르기까지 동서양의 뒤틀린 관계를 비판하지만 근대 이후를 어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선 말하지 않음이 답답했다. 대안이라 달리 말해도 되겠다. 여기서 푸코의 냄새를 맡은 이들이 사이드를 공격한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중세에 대한 공부를 더욱 철저히 하면 무언가 실마리를 찾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이후 사이드는 현실 정치에 적극 나서게 되고 중세에 대한 연구는 진행되지 않는다. 이젠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후학들의 몫이겠지만 말이다.
창비가 펼친 민족, 민중문학론을 구하려는 창비쪽의 영문학자들과 여성 작가 제인 오스틴을 구하려는 태혜숙을 보며 나도 에드워드 사이드를 억지를 펼치면서까지 구하려는 건 아닌가 자문해본다. 그들의 주장이 억지스럽진 않지만 설익은 느낌은 갖는다. 나도 에드워드 사이드를 다시 읽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