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이 시작됐다 창비청소년문학 28
최인석 지음 / 창비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은 현실을 뒤쫓을 따름이다. 최인석의 장편소설 <약탈이 시작됐다>를 보며 새삼스런 생각을 했다. <약탈이 시작됐다>는 창비청소년문학 시리즈로 출간된 소설이다. '작가의 말'에서 최인석은 "내 안에는 아직 그 작고 외로운 소년이 있다. 이 작은 책은 내 안의 그 작은 소년이 쓴 소설이다."라 말하며 청소년과의 회통을 강조한다. 문제는 소설의 소재인데 청소년문학이라 일컫기엔 꽤 문제적이다. 소설의 가장 큰 흐름은 사랑이다. 그런데 이 사랑의 모습이 문제적이다. 주인공인 고등학생 성준은 친구의 어머니를 사랑한다. 그의 소꿉친구인 여학생 윤지는 담임교사 봉석을 사랑한다. 어머니와 교사 역시 이들을 사랑한다.  

  교사와 제자간의 성관계가 심심치 않게 보도된다. 유부녀인 여교사가 남학생과 관계를 갖고, 미혼의 남교사가 여제자와 관계를 갖기도 한다. 최인석 역시 금기의 사랑을 다루지만 이런 현실의 모습과는 썩 다르다. 우선 등장 인물들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네 사람 모두 일종의 경계인이다. 고등학생 성준과 윤지는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와 가정을 뛰쳐나가려 하나 쉽지 않다. 담임교사 봉석 역시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 시인인 그는 언제든 학교를 뛰쳐나갈 준비가 되어 있다. 성준의 친구인 용태의 어머니 금순은 술집을 전전하는 삶을 산다. 친자식이 아니지만 용태를 아끼는 그이지만 용태는 가출을 한다. 금순이 술집을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의 사랑은 물론 이루어지지 않는다. 최인석은 꽤 오랜 시간 소외 받는 자들의 사랑을 그려왔다. 2002년 발표한 중편 <서커스 서커스>에서 그는 우화를 빌려 와 '우렁이들의 사랑'을 말한다. 우렁이는 소외 받는 이들의 한 비유이다. 소설 속 우렁이의 역할을 했던 승호와 상준은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비참한 사랑의 결말에도 불구하고 우화 속 우렁 각시는 말한다. "사랑이 장꾼을 만들고 나를 만들었으며, 우렁이들의 사랑이 이 세상을 만들었다." 사랑이 우렁이 각시를 사람으로 만들 듯이, 사랑만이 존재의 근본 변화를 가져다 준다. 그리고 버림 받은 존재들간의 사랑만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것이다.  

  버림 받은 자들의 사랑을 말함은 최인석 특유의 것이지만, 이 소설에서 이채로웠던 건 '종각'이란 장소이다. 종각은 무법천지이다. 약탈이 수시로 이루어지며,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약탈에 가담한다. 학교에서 근엄한 척 하던 교장선생은 물론, 늘상 문제아라 불리는 학생들까지 이 장소에선 약탈자로 함께 한다. 이 장소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앞서 소설 속 인물들을 경계인이라 말했는데, 이 장소 역시 경계라 말하면 어떨까? 중심과 주변을 가르는 경계는 혼돈의 장소이다. 혼돈 속에선 축제 혹은 혁명이 매일 같이 일어난다. 여기서 바흐친의 생각은 썩 시사적이다. <소설 속의 시간과 크로노토프의 형식>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 인물-악한, 광대, 바보-은 이 세계 속에서 ‘타자’가 될 권리, 즉 현존하는 인생의 범주들 중 어느 하나와도 협력하지 않을 권리를 지닌다.” 경계라는 공간 속에서만 이 세 인물의 활동이 자유롭다. 소설 속 '종각'을 경계로 봐도 무방할 듯 하다.  

  작가가 '종각'이란 경계 공간을 좀 더 힘주어 밀고 갔으면 어땠을까 싶다. 이 공간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경계는 중심과 주변 가운데 어느 쪽의 힘이 더 센지 겨루는 장소일텐데, 작가가 소설을 통해 이를 어떻게 보여줄 지 궁금하다.


댓글(27)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이조부 2010-11-26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인석 이라는 작가를 읽어 본적도 없으면서 웬지 청소년문학과는 어울리지 않을것같은

선입견의 근거가 뭘까 생각해 봤어요.

소설의 소재가 살짝 자극적인게 제가 좋아할만한 내용이네요 ^^ ㅎㅎ

종각을 언급하길래 종로 근처 인가 갸우뚱 했는데 아닌것 같군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26 11:01   좋아요 0 | URL
그동안 써왔던 소설들이 청소년 문학과는 어울리지 않죠. 청소년 문학으로선 소재도 파격적이구요. 작가가 열과 성을 다한 작품이란 생각은 안 들더군요.
종각은 말씀하신 곳이 맞아요. 작가가 촛불시위를 염두에 두고 경계 공간을 설정한 것 같은데, 다른 자리를 빌어서 좀 더 상세히 보여주겠죠.

반딧불이 2010-11-26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각'이 보신각 종을 치는 그 주변을 말하는 것인가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26 11:03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굳이 종각을 경계 공간으로 삼은 이유는 잘 알지 못하겠는데, 일종의 결집소 역할이겠죠.

반딧불이 2010-11-26 14:01   좋아요 0 | URL
종각은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장소로 모든이에게 각인된 공간이기도 하잖아요. 작품을 읽지 않아서 잘모르겠지만 이런 의미와도 관련이 있는건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26 14:34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대로 결집소로서 종각이 갖는 역사적,문화적 의미가 있는 듯 합니다. 약탈이란 수단이 그렇긴 하지만, 송구영신이란 말처럼 새로운 것을 얻는 것도 종각이란 상징적 공간을 통해서 이루어지니까요.
작가의 생각을 알 수 없지만, 개연성이 있는 말씀입니다.

2010-11-26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6 1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이조부 2010-12-02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한게 있어요. 혹시 황석영, 문익환목사 가 북조선에 갔던 이유를

아시나요?

이재록에 관한 문의 다음으로 쌩뚱맞다고 핀잔 들을지도......

파고세운닥나무 2010-12-02 17:43   좋아요 0 | URL
목사와 작가의 의식이 사뭇 다르겠지만, 통일에 대한 선취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루쉰P 2010-12-03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고세운닥나무님의 서평을 읽으면 책을 읽고 싶어지는데 책 자체는 취향이 아닌지라 ㅋㅋㅋ 전 역시나 한국 소설은 영 별로 입니다. 그래도 파고세운닥나무님의 서평을 읽으며 조금이라도 한국 소설에 대해 알게 되서 감사하네요. 뭐랄까 지금 서평도 읽었지만 주제라든가 그리고 그 글을 써 내는 것이라든가 뭔가 쓰기 위해 쓰는 듯한 느낌을 저는 받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글을 쓰는 사람한테는 실례가 되겠지만요.^^ 전 역시나 고전이나 읽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ㅋㅋㅋ

파고세운닥나무 2010-12-03 19:06   좋아요 0 | URL
어려운 고전을 더 좋아하시다니요, 대단하세요^^
꼭 무슨 비율을 맞춰 읽을 필요는 없겠지만, 현재 창작되는 소설들도 충분히 읽어볼만하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각자의 취향이 더 중요하겠지만요!

루쉰P 2010-12-06 07:57   좋아요 0 | URL
하하 고전을 좋아한다고 해서 어려운 책이 아닐진데 마치 너무 고상한 사람이 된 듯하네요. 전 이해 못하고 읽는 책들이 많습니다.물론 고전도 그렇구요. 게다가 독서력도 형편 없어서 많이 읽지도 못합니다. 주로 읽는 작가에 한정돼 있죠. 마치 고전만 좋아하는 그런 고상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절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일본 만화를 더 많이 읽어요. ㅋㅋㅋ

파고세운닥나무 2010-12-06 18:37   좋아요 0 | URL
만화도 만화 나름이겠죠. 저는 가장 좋아하는 책의 첫머리에 <슬램덩크>를 둡니다.
고전이란 게 필요에 의한 책이 아닐진데 아껴 읽어가는 듯해 말씀 드려 봤습니다^^ 루쉰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말이에요.

루쉰P 2010-12-07 10:18   좋아요 0 | URL
제 사상 형성의 근본은 대 사상가 후루야 미노루 선생의 <이나중 탁구부>입니다. 미노루 선생은 <슬랭덩크>가 일본을 휩쓸고 있던 시절 유일하게 <슬램덩크>를 누루고 일본 만화 1위의 기염을 토했는데 그 작품이 바로 저 <이나중 탁구부>라고 합니다. 이건 미노루 선생의 오타쿠들만 인정하는 공공연한 사실이죠. ㅋㅋ 신빙성은 없습니다. 요즘은 프리모 레비를 정리도 하지 못한채 요시카와 에이지의 <미야모토 무사시>를 다시 보고 있습니다. 크흑....

파고세운닥나무 2010-12-07 21:39   좋아요 0 | URL
미야모토 무사시라면 <슬램덩크>의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베가 본드>로 그려낸 그 사람 아닌가요? <베가 본드>는 아주 감명 깊게 읽었는데 말이죠.
이런 교집합이 또 있군요? ^^

루쉰P 2010-12-09 20:55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배가본드'의 뜻이 '방랑자'라고 저는 알고 있거든요.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일본 만화가 중 특히나 '배가본드'를 그리는 그림체는 제가 볼 때 최고의 그림체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배가본드'와 '미야모토 무사' 원작과는 이름만 같은 사람이 나올 뿐 그 내용 구성에 있어서 차이가 많아서 같은 작품이라고 보기는 조금 힘들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배가본드'도 열심히 읽고 있거든요. 거기서 나오는 사사키 고지로와 원작의 사사키 고지로는 그 인간상이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ㅋㅋㅋ 전 원작을 더 좋아합니다. '배가본드'는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미야모토 무사시'입니다. 그 속에 또 다른 맛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참 이 달의 영화리뷰에 당선 되셨더군요. '거북이 난다'로요. 왕 왕 축하드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2-10 16:55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 <베가 본드> 보며 미야모토 무사시에 관해 알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서점에 가보니 그가 쓴 <오륜서>가 번역돼 있더군요.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겠네요. 여하튼 이노우에의 만화가 다리 역할을 해준 듯 해요.
지난 달엔 책 리뷰와 영화 리뷰가 하나씩 당첨 되었어요. 오늘 확인해보니 이번달에도 책 리뷰가 당첨되었네요^^ <시인의 죽음> 서평인데 전공 관련한 책이라 기분이 좋네요!
루쉰전집이 그린비에서 출간되고 있네요. 말그대로 전집을 출간할 모양인데 우선 3권이 출간되었군요. 기대 되는걸요^^

루쉰P 2010-12-11 10:38   좋아요 0 | URL
아니!!그런 놀라운 소식이!! 정말 감사합니다. 그린비로 해서 검색을 해 봐야 겠네요. 정말 좋은 소식 너무 감사합니다. 역시나 파고세운닥나무님의 리뷰가 좋은 문장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당첨 아닐까요? ㅋㅋ 전 조정래 작가 소설 리뷰가 당첨돼서 알사탕 천개를 주더군요. <시인의 죽음>으로 책 리뷰가 당첨되신 걸 보니 다 의미가 있는 듯합니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중국 문학을 통해 일본 사회와 문학을 비평 했듯이 파고세운닥나무님도 한국을 중국 문학으로 거울 삼아 마구 비평 해주세요.전 다케우치 요시미의 <루쉰> 같은 작품이 한국에도 꼭 나왔으면 합니다. 뭐랄까?

루쉰P 2010-12-11 10:41   좋아요 0 | URL
다케우치 요시미의 <루쉰>은 그 내용 면에서는 이미 지금에 나오는 평전들에 비하면 객관적 사실의 내용은 부족하지만 그 속에 있는 다케우치 요시미의 절절함이 한 문장, 한 문장 속에서 느껴진다고 할까요? 다케우치 요시미의 아우라가 깊이 녹아져 있기에 지금도 <루쉰>에 대한 평전류 중에서는 가장 아름답다고 할까요? 잘 설명이 안 되지만 그 작품만의 강한 아우라가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자꾸 읽게 되는 것도 있구요. 파고세운닥나무님도 리뷰가 당첨되는 서상을 보니 반드시 그런 길을 걸으실 수 있다고 생각 듭니다. 전 이번 겨울 루쉰 선생 전집을 다시 보며 가구 공장에서 열심히 일 해야 겠습니다. 후후후

파고세운닥나무 2010-12-11 12:15   좋아요 0 | URL
격려가 되는 말씀 고맙습니다. 쑨꺼라는 중국의 학자가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이란 책을 썼어요. 얼마전에 구입했는데 읽어보고 얘기 나눴으면 좋겠네요.
루쉰전집 읽어가시면 제게도 좋은 말씀 나눠 주시구요^^

2010-12-13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13 1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13 21: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15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이조부 2010-12-05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바쁜가요? ^^ 업데 가 시간차가 있길래요 ㅋ

파고세운닥나무 2010-12-05 16:50   좋아요 0 | URL
요새 다른 일들로 많이 바쁘네요^^;
 
논쟁과 상처 - 우리 시대 문학의 주요 논쟁에 대한 탐사!
권성우 지음 / 숙명여자대학교출판부 / 2006년 1월
평점 :
절판


  1999년에서 2002년 사이의 이른바 '문학권력논쟁'을 나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논쟁의 입각점이 여럿이었지만 내 관심은 진보를 자처하는 에콜과 예술주의를 표방하는 비평가들의 행태에 있었다. 논쟁 속의 문제 제기가 지금 의미가 있달 수 있을까?  며칠 전 발간된 <창작과비평> 겨울호에서 이 잡지의 주간 백영서는 통권 150호를 맞는 <창작과비평>을 이렇게 자리매김한다.  

   
  도리어 <창비>의 영향력을 무겁게 보면서 창비가 '문화권력'이 되었다는 비판도 있다. ...... '권력화'되었다는 일각의 비판은 물론 창비가 나태해지거나 타락하지 않도록 다그치는 고마운 채찍질로 받아들이지만, 우리는 그동안 창비가 쌓아올린 성취에 합당한 영향력 자체를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지는 않으며 오히려 최대한으로 키워나가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실제로 <창비>는 보수적 주류언론에 대항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그로부터 소외당하기 일쑤라는 점에서 여전히 비주류의 위치에 있지 않은가.  
   

 내게는 이 말이 비주류 창비가 아직 문화권력이 아니라는 소리로 들린다. 창비가 보수언론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나? '소외'를 어떤 뜻으로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창비와 창비의 좌장격인 백낙청의 운신을 <한겨레> 못지 않게 보수언론도 주워 섬긴다. <창비> 통권 150호 발간도 <한겨레>엔 기사가 아직 없지만, <조선일보>는 기사를 실었다. 보수의 이데올로그라 자처하는 안병직도 자신이 펴내는 <시대정신>을 <창비>의 위상만큼 끌어올린다는 다짐을 해대니 창비를 비주류라 일컫는 건 마땅치 않다.

  예술주의를 표방하는 에콜 <문학과사회> 동인들은 어떤 모습일까? <문학과사회> 편집동인인 이광호가 지난해에 펴낸 비평집 <익명의 사랑> 서문이다. 내가 대학에서 비평 공부를 게을리하기도 했지만, 난 이 서문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 회통불능의 자폐적인 비평을 주워섬기는 비평가들도 여전하다. 

   
 

 동시대의 소설에서 읽은 것은 무심함의 존재 미학과 자기 연출법이었고, 시에서 읽은 것은 탈현대성의 언어가 익명성의 공간으로 존재를 이동시키는 장면이었다. 오늘의 시에서 비인칭성의 언어를 읽었고, 소설에서 초연성의 존재 미학을 읽었다면, 그것은 시가 언어(감각)의 국면과 관련되고, 소설이 인간(윤리)의 국면과 더 관계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둘은 일치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현대 이후의 다른 삶의 '정치성'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혹은, 어떤 젊은 텍스트 속에서는 거꾸로 소설의 비인칭성과 시 언어의 초연성을 읽었다. 동시대 문학의 무심함과 익명성으로부터 다른 사랑의 사건을 만났다. 놀랍게도 지난 시대의 빛나는 텍스트들 역시, 명사적인 것으로부터 이탈함으로써 동시대성을 보존하고 있다. 다른 삶(인간, 언어)의 가능성을 꿈꾸지 않는 문학은 불온하지 않다. 비평은 저 매혹적인 텍스트들, 그 몸의 일부가 되고 싶다.

 
   

  <논쟁과 상처>에서 권성우는 열심히도 논쟁을 하고 비평을 썼다. 그가 싸웠던 남진우, 류보선, 윤지관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창비>와 <문사>의 요즈음의 모습에 권성우가 겹쳐 보인다. 그는 여전히 쓸쓸한 모습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지 2010-11-24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용된 두 글 다 심각해 보이는군요... 하나는 옹색하고 하나는 수사뿐인..

파고세운닥나무 2010-11-25 11:00   좋아요 0 | URL
창비는 피해의식이 있는 듯도 하구요, 문지는 여전히 독야청청하고 있네요.
권성우가 문학동네와도 열심히 싸웠는데, 문학동네는 달리 더 할 말도 없구요......

다이조부 2010-11-24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인용문은 갸우뚱 거려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아먹겠는데,

두 번째 글은 독해 자체가 안되네요. 다시 읽어보고 싶은 생각도 안들어요 ㅋ

이광호 의 짧은 글을 읽으면서 비평이 왜 독자와 멀어졌는지 생각하게 하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25 11:04   좋아요 0 | URL
인용한 이광호의 글 말미에 '텍스트의 일부가 되고 싶다'라는 말이 있죠. 비평을 향해 해설만을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라는 건방진 메시지만을 줘서도 안 되겠죠. <문사> 동인들이 주워섬기는 비평가 김치수가 '공감의 비평'을 말하던데, 전혀 공감이 안되는 비평을 쓰고 있으니 말이죠.
 
우리들의 하느님 - 권정생 산문집, 개정증보판
권정생 지음 / 녹색평론사 / 200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게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나 보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세 때 22세나 23세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 1일 쓴 사람 권정생

 
   

   권정생 선생의 유언을 처음 접한 건 한 일간지를 통해서였다. 선생의 1주기를 맞아 출간된 책들을 소개하며 유언장의 일부를 공개했는데 그 글자들을 난 눈물바람으로 맞았다. 다시 유언장을 대해도 역시 눈물바람이다. 2007년 선생의 부고를 접하고 부랴부랴 <우리들의 하느님>을 찾아 들었다. 당시 책은 초판본이었는데, 이번엔 개정증보판을 읽는다. 개정판엔 비록 선생의 글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글이 세 편 추가돼 있다.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의 책 소갯글과 선생의 지인인 김용락 시인과 고교 교사 이계삼씨의 추모글이 실려있다. 세 편 모두 선생의 삶과 사상을 잘 담고 있다. 

  선생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난 그 분의 이름 속에 한 방법이 있다고 본다. 정생(正生), 바른 삶이다. 이토록 바르게 살아간 삶이 몇이나 더 있을까? 그의 삶을 바로 세운 힘은 무얼까? 선생의 삶을 여러 존재가 지나갔을테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이는 예수일테다. 그의 일생을 지배한 육신과 마음의 고통은 그를 예수에게로 인도했고, 그 자신 예수의 삶을 살게된다. 헨리 나웬의 말처럼 예수가 '상처입은 치유자'라면, 권정생 역시 일평생 얻은 상처와 고통으로 인해 치유자가 될 수 있었다.

  선생이 지상에 남긴 마지막 글이다. 삶이 끝나가는 순간까지 아름다운 세상을 말하는 그였고, 제발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말기를 당부한 그이였다. 

   
    정호경 신부님. 마지막 글입니다. 제가 숨이 지거든 각각 적어놓은 대로 부탁 드립니다. ...... 3월 12일부터 갑자기 콩팥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뭉툭한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계속되었습니다. 지난달에도 가끔 피고름이 쏟아지고 늘 고통스러웠지만 이번에는 아주 다릅니다. 1초도 참기 힘들어 끝이 났으면 싶은데 그것도 마음대로 안됩니다.  하느님께 기도해 주세요. 제발 이 세상, 너무도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요. 

  제 예금통장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측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 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 주십시오. 중동, 아프리카, 그리고 티벳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지요. 기도 많이 해주세요. 안녕히 계십시오. 권정생

 
   

  

                  권정생(1937-2007)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치니 2010-11-21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덕분에 일요일 아침부터 살짝 눈물바람이어요.

(아까 쓴 댓글 다시)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아이구 ^-^;; 귀여운 권정생 선생님.

파고세운닥나무 2010-11-21 10:47   좋아요 0 | URL
번거롭게 해 드렸네요^^;
선생은 끝내 유머와 귀여움을 잃지 않으셨네요. 근데 그 유머와 귀여움이 눈물을 자아냅니다. 슬프게도 말이죠.

다이조부 2010-11-22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권정생 쌤 책을 읽어본게 없네요.

읽으면 무척 좋을것 같은 예감이 ^^


파고세운닥나무 2010-11-22 11:21   좋아요 0 | URL
누가 그러더군요. 권정생 선생은 기독교 급진주의자라구요. 타당한 면이 있는 게 선생은 교회를 통해 예수님을 배우지 않았으니까요. 예수님도 "여러분의 말은 다만 '예'는 '예'라 하고, '아니요'는 '아니요'라 하십시오. 그 이상의 말은 악한 자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옳고 그름에 있어 단순하고 진실함을 말씀하십니다. 크리스천들이 많이 잃어버린 모습이구요.
권정생 선생의 산문집으로는 <우리들의 하느님>이 유일합니다. 동화나 소설 읽기가 저어하시면 이 책이 좋을 듯 합니다. 저도 그랬구요^^

반딧불이 2010-11-22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분의 글을 편편으로만 접하고 책 한권 갖지 못하고 있어요. 날잡아 읽으며 이 리뷰를 기억할 날이 곧 오겠지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22 14:26   좋아요 0 | URL
우리 곁에 '귀여운' 성자로 살다간 선생을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중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에 <강아지똥>이 실려 있더군요. 몇 년 전이니 지금의 교과서 체계로 바뀌기 전일 거에요. 부고를 듣고 얼마 안되어서였는데, 그 글을 읽을 때 왜 그리 눈물이 나던지요......

2010-11-23 2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24 0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울림 - 우리가 몰랐던 이 땅의 예수들
조현 지음 / 시작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부제는 '우리가 몰랐던 이 땅의 예수들'이다. <한겨레> 종교전문기자인 조현은 기독교가 이 땅에 전래된 이래 예수의 삶에 감화받고, 그 자신 예수의 삶을 살다간 24인을 다룬다. 장기려, 권정생, 유일한 처럼 널리 알려진 사람들을 포함해 책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살다간 이 땅의 예수들을 다루고 있다.   

  개신교가 이 땅에 전해진 지 100년이 지났다. 한국 개신교의 공과를 논할 자격이 나는 없지만, 이 책을 보며 '참된 종교란 무얼까?' 짧은 고민을 했다. 근래 한국기독교총연합회란 단체가 광화문에 이승만 동상을 세운다는 발표를 했다. 한 유명 목사의 성추행 사건이 회자된 지 얼마되지 않아 다시 욕먹을 일이 생겼다는 생각을 했다. 개신교가 왜 자꾸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걸까? 본래 한국 개신교가 이런 모습이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는 대답을 듣고 싶었다. <울림>이 그 대답을 해주고 있다.  

  1919년 3.1운동 때 조선의 기독교 신자는 인구 중 1.3퍼센트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운동을 주도한 33인의 지도자 가운데 기독교인이 16명이다. 온건하고도 온전한 의식을 지녔던 한국 기독교가 왜 이 지경이 됐을까? 만세운동 10년 전, 천주교 신자인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을 때도 벽안의 천주교 신부들과 조선인 신자들은 그의 행동을 나무랐지만, 개신교 지도자들은 안중근의 행동을 옹호했다. 개신교의 현실 인식이 뒤틀어진 첫 사건은 일제 신사 참배일 것이다. 주기철 목사의 신사참배를 들어 신사 참배에 저항했다지만, 당시의 역사를 보면 개신교가 집단적으로 참배에 불복한 것은 고신파 뿐이다.  

  군부 독재 시절 개신교 지도자 역시 투쟁했다. 그러나 힘을 모두어야 할 때 개신교 특유의 배타성은 적을 눈 앞에 두고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할 때도 있었다. 이와 관련된 한 일화이다. 법정 스님이 유신 철폐 운동에 나서자 그동안 군부 독재에 반대하던 한 목사가 스님의 행동을 못마땅해하며 이리 말했다고 한다. "저 땡중놈과는 유신 철폐고 뭐고 같이 못한다." 이에 스님이 그를 찾아가는데, 자신이 정말 이 운동에 힘을 보태고 싶은데 목사님이 정말 싫어하시면 목사님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는 승복을 벗고서라도 함께 하고 싶다는 말을 한다. 목사의 옹졸함과 스님의 인격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일화이다.  

  얼마 전 고신파에 속한 한 목사님과 얘기를 나눴다. 고신파 목사들의 모임에 참석해서 그 분이 어쩌면 법정 스님이 천국에 가 있을수도 있겠다는 얘기를 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중인데 무슨 소리냐며, 발끈하는 목사들을 두고 그 목사님은 우리보다 더 예수를 닮은 삶을 산 법정 스님이기에 어쩌면 천국에 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했단다. 군인 출신 학살자 대통령을 두고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며 소리 친 목사도 있지만, 그 민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 기도를 한 목사도 있다. 이런 부끄러운 역사를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은 개신교이다. 개신교는 자랑스럽게 세 명의 장로 대통령을 들먹이지만 그들의 행적을 보자면 초기 개신교 선구자들을 그들의 곁에 두기도 민망하다.  그래도 그 선구자들의 삶을 나는 알고 싶었다. <울림>은 그 선구자들의 평전이다.  

  내가 아는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고, 갱신의 종교이다. 성추행한 유명 목사와 관련해서도 나는 생각이 단순하다. 당신이 강대상에서 그리 가르치던 부활과 갱신을 스스로 행하면 될 것이다. 교인과 교회를 핑계 대고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은 자신의 가르침과도 어긋난다. 김두식 교수를 비롯한 기독법률가회에서 목사 사임을 종용했다는데, 그 고언을 들어 사임한 건 선배 목사들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은 것이니 그것만으로도 훌륭하다는 생각이다. 

  도올 김용옥의 추천사가 <울림>의 앞 장에 있다. 그도 기독교의 갱신을 말하는 사람이니, 책과 함께 그의 생각도 접어둔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이조부 2010-11-17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ㅇㅖ전에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피차 미루다가 반납했던 기억이 나네요.

리뷰만 보면 정말 좋은 책이네요 ^^

이 저자에게 관심이 생겨서 한동안 즐겨찾기도 했는데 말이죠.

세명의 장로 대통령이이 근데 ys mb 말고 또 누구죠?

와이에스가 대통령을 퇴임하고 헛소리를 자주 해서 실소를 자아내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지만, 현직대통령이랑 같은 카테고리로 묶이는것은 불쾌하지 않을까요? ^^

근데 전병욱목사는 사임했나 보군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7 19:41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알고 계셨군요? 저는 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했어요. 저자의 기사는 예전부터 보아왔지만요. 제겐 근래의 제 고민들이 저자의 글과 마주치는 좋은 시간을 가졌던 책이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도 장로였죠. 장로라서 한기총에서 동상을 세운다는 걸까요? 차라리 그런 이유라면 좋겠어요. 기릴 만한 행적도 없는 이를 말도 안되는 이유를 대가며 세우려는 모습보다는 그게 더 나을 듯 해요.
전병욱 목사는 사임했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그를 계속 삼일교회에 있게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죠. 삼일 교회는 신도가 3000명 정도 이미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목사의 개인적인 카리스마로 운영되는 교회가 예수님이 바라는 교회는 아니겠죠. 저는 이번 사건이 목사가 잘못을 범한 후에 교회와 목사 자신이 어찌 행동해야 하는지 한 이정표를 세웠다는 의미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루쉰P 2010-11-17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우치무라 간조와 같은 사람이 한국에도 많이 나왔으면 합니다. 개신교가 욕을 먹는 이유는 예수를 상징으로 자신의 권력을 쟁취하는 사람들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혁명적 아나키스트로 받아들이고 있거든요.^^ 어떤 종교든 공통점은 정말 그 말씀대로 남을 거기에 규제하는 것이 아닌 행동을 자신을 규제하는 자! '번뇌의 격류를 극복하는 자'가 바로 진정한 종교가라 생각합니다.^^ 기독교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싶은데 서평 좀 많이 올려주세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7 19:47   좋아요 0 | URL
교회를 다니지만 기독교 서적을 많이 보지 않아요. 간간히 보는데 서평을 적어보겠습니다.
위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기독교는 갱신의 종교죠. 우찌무라 간조도 청일전쟁 때 제국주의 성향의 글을 남기기도 했죠. 하지만 그는 이내 자신의 생각을 반성하고, 기독교의 평화주의를 연구하고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합니다. 그게 우찌무라의 위대함이고, 기독교인이 가져야 할 모습인 듯 합니다.
한국 기독교 지도자들이 그런 면에서 매우 부족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기독교를 권력지향의 도구로 이용하는 모습은 말할 수 없이 부족한 모습이구요.

글샘 2010-11-17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격이 없는 나라에 국격을 논하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모욕입니다.
한국의 많은 교회에서는 예수를 팔아서 장사하는 셈인 곳이 많다 보니... 제대로 된 책 찾기도 어렵습니다. 이 책도 너무 단편적이지 않을지...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8 00:01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신문에 연재된 글을 묶은 책이니 형식부터 단편적이긴 합니다. 허나 저자인 조현 기자의 문제의식이 단편적이진 않은듯 해요. 저자가 책의 마지막 부분에 정리해 놓은 자료들을 찾아보는 것도 문제의식을 깊이 갖는 좋은 방법 같습니다. 저는 그리 하려 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1-18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신파의 성서해석은 좋게 말해 엄격하고 나쁘게 말하면 편협하죠.뿌리는 같다 하지만 예장합동보다 더 보수적이랄까요...게다가 나름대로 자부심이 강해서 독선적인 느낌도 강하죠.미국남부 분위기가 난다 할까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8 23:16   좋아요 0 | URL
미국 남장로교가 한국 장로교의 뿌리니까요. 고신파는 뿌리의 모습을 좀 더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책에선 감리교 얘기를 많이 하더군요. 그러고보면 한국 개신교의 뿌리는 감리교인데 말이죠. 장로교 홍수 속에 살다보니 감리교의 존재를 잃어버릴 때가 많아요.

노이에자이트 2010-11-19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리교가 좀 유연한 느낌을 줬습니다만 변선환 파동 때 보여주는 모습을 보니 좀 실망스럽더군요.아무래도 대중들에겐 김홍도 목사가 인상을 흐리기도 했구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9 16:06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서도 변선환 교수를 다룹니다만. 책을 보니 변선환 교수 파면 때 김홍도 목사도 일조를 했더군요.
그리 남은 감리교의 김홍도가 말씀하신대로 감리교의 인상만 흐리고 있으니 덧붙일 말이 없습니다.
 
시인의 죽음 을유세계문학전집 6
다이허우잉 지음, 임우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에 소개 된 중국현대문학의 첫 베스트셀러는 무얼까? 다이허우잉(戴厚英)의 <사람아 아, 사람아!(人啊,人!)>이다. 이는 중문학계의 중론인데 장안의 지가를 높인 진융(金庸)의 무협소설을 제쳐두는 건 아쉬운 대목이다. 1991년 신영복의 번역으로 한국에 소개된 이 소설은 '죽의 장막'속에서 벌어진 문화대혁명의 실상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회자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이듬해에 한국과 중국은 수교를 맺는다. 신중국 성립 이후 교류가 없던 두 나라였다. 루쉰(魯迅)의 소설이 이미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지만 루쉰의 사후 성립된 중화인민공화국의 모습을 알 수 없었던 한국 독자들에게 다이허우잉의 소설은 일종의 목마름을 채워주는 구실을 했다.  

  다이허우잉은 문혁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작가이다. 그는 4인방의 단죄로 문혁이 종료된 후 지식인 3부작을 써 낸다. <시인의 죽음(詩人之死)>(1978), <사람아, 아 사람아!>(1980), <하늘의 발자국 소리(空中的足音)>(1985)가 그것이다. 문혁을 소재로 한 문학은 두 갈래로 나뉜다. 우선 혁명의 광기를 폭로하고 비판하는 상흔문학이 등장한다. 상흔문학이란 명칭은 1978년 푸단대 학생이던 루신화(廬新華)가 과제물로 제출한 단편소설 <상흔(傷痕)>에서 비롯된다. <상흔>을 먼저 살펴보자.  

  소설은 문혁으로 입은 상처를 말하고 있다. 대혁명은 샤오화(曉華)의 가정을 비극의 한 복판으로 몰아넣었다. 그런데 작가는 왜 하필이면 비극의 대상으로 가정을 택한 것일까? 누구에게나 가정은 애틋한 감정의 공간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맞이하는 두 가지 리얼리티인 탄생과 죽음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정에서 맞는다. 또한 그 삶의 대부분이 가정에서 이루어진다. 가족 누구나 가정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사회의 폭압이 가정이라 하여 비껴갈 리는 없다. 폭압 앞에 가정은 무력하기만 하다. 또한 소설에는 샤오화와 샤오쑤(小蘇)의 사랑이 가로 놓여있다. 현실의 고통 앞에서 의미를 잃어가는 이들의 사랑도 공감을 일으킨다. <상흔>으로부터 얻는 공감은 당대 중국인들에겐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누구도 문혁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었다. 태풍의 눈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소설의 한 대목이다. “모주석(마오쩌둥)께서 성분이 중요하다고는 하셨지만 너무 성분만을 볼 것이 아니라 정치 실적을 중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여기는 아버지가 영웅이면 아들도 영웅이요, 아버지가 반동이면 자식도 반동이니.” 샤오쑤의 이 말은 작가 루신화의 생각이 간접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의 교조주의를 정면으로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혁 직후 생산된 상흔문학은 급하게 씌어진 만큼 한계도 갖는다. 낯 간지러운 장면이 있다. 소설의 말미에 화궈펑(華國鋒)에 대한 충성 맹세가 나오는데, 이 충성 맹세는 이내 덩샤오핑(鄧小平)에게로 향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 흐름은 반사문학이다. '반사(反思)'란 돌이켜 생각함을 뜻한다. 반사문학은 상흔문학과 같이 문혁의 상처를 말하되, 역사적이고도 사상적인 깊이를 담고 있다. 해서 상흔문학에 비할 때 편폭이 길다. 반사문학 작가의 한 주자인 가오샤오성(高曉聲)의 소설 한 편을 들여다본다. 1979년에 발표된 <리순따의 집짓기(李順大造屋)>는 하층민들의 이야기이다. 허나 가정을 소재로 삼음은 <상흔>과 동일하다. 본래 가난하던 리순따의 가정은 문혁을 겪으며 더욱 가난해졌다. 무엇 때문인가? 소설의 말미에서처럼 ‘내가 형편없이 타락했‘기 때문인가? 문혁은 리순따의 꿈도 빼앗았고 상처만을 남겼다. 그는 이유도 알지 못한 채 감금된다. 감금보다 더욱 괴로운 것은 ’순종파‘인 리순따가 이젠 도통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를 추종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옳고 그름을 분간할 도리가 없다. 갈피를 못 잡던 이들은 개혁 개방 이후 돈만을 추종하는데, 소설은 그들의 전조를 보여준다. 서민이 집 한 채를 못 짓게 하는 사회가 무슨 ’낙원‘이란 말인가? 작가는 회의한다. <상흔>이 소설의 배경으로 택한 시간이 문혁 직전인 반면 이 작품은 중일전쟁 직후 국공내전으로부터 소설을 시작하고 있다. 시간이 꽤 긴 셈이다. 중국이 현재 겪는 어려움은 꽤 먼 과거로부터 연유한다는 작가의식의 발로이다.   

  먼 길을 돌아 다시 다이허우잉으로 온다. <시인의 죽음> 속에 그가 견뎌 온 문혁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파락호 집안에서 총명한 딸로 태어나 대학에 입학한다. '박격포'로 불리며 반우파 투쟁에 나서지만 그와중에 아버지는 우파로 몰리고 숙부는 자살한다. 죽마고우와 결혼하지만 잇딴 별거 속에 멀어진 남편과 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문화대혁명중에 이별한다. 문화대혁명에 전투적으로 참여하던 중 유명 작가 원졔(聞捷)를 비판하는 심사조에 참여하나,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와의 결혼을 신청하나 당으로부터 허락을 받지 못하고, 원졔는 자살로 생을 마친다. 여기까지가 <시인의 죽음>을 쓰기 전까지의 작가 삶이다. 삶의 끝마저 고단했다. 1996년 자택에서 고향 은사의 손자에게 작가는 피살당한다.  

  <시인의 죽음>은 작가의 첫 작품이다. 작가는 이후 일관되게 사회주의와 휴머니즘이 어디쯤에서 손을 잡아야할 지 고민하는 소설을 내놓는다. 이 소설은 그 고민의 단초를 보여준다. 제대로 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자며 시작한 문화대혁명이 인간을 말살하는 광기로 돌변할 때 작가는 우리가 건설하고자 하는 사회가 진정 어떤 사회인지 뼈 아프게 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이 광기 속에서도 연민과 안타까움을 지니고 애처롭게 '사람아!'라고 외친다. 이 외침은 단말마의 고통에서 나오는 절규이다. 통곡이다. 그의 묘비에 새겨진 말처럼 그는 "살았고, 통곡했고, 싸웠다." 그 삶과, 통곡과 싸움이 그의 묘비만이 아닌 소설에도 온전히 새겨져 있다.

 

                       戴厚英 (1938-1996)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딧불이 2010-11-12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가보군요. 진정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쓰여질 수 없는 것이 글이라는걸 배우게 될듯 싶어요. 1번 예약자가 보셔야할텐데....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2 19:49   좋아요 0 | URL
꼼꼼이 작가의 사랑과 아픔이 소설에 배여져 있습니다. 그 사랑과 아픔을 되새김하는 것이 독자로서의 배움이 되리라는 생각을 저 역시 해 봅니다.
예약을 하셔서 급하게 읽고, 급하게 적어 봤는데요. 1번 예약자가 어디서라도 보고 계실지......

다이조부 2010-11-14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규찬 1집을 듣는데 이소라 와의 듀엣곡이 있네요.

전 그 사람한테 별 관심이 없지만 노래가 시쳇말로 쩌네요~

한 번 들어보세요 ^^ 난 그댈 보면서

이소라는 한참 옛날인데 노래 잘하네요 휴우 ㅋ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5 11:18   좋아요 0 | URL
조규찬 앨범에 있는 곡이죠? 조만간 들어보겠습니다^^

다이조부 2010-11-15 0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재록 목사에 관하여 아시나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5 11:17   좋아요 0 | URL
잘 모르는 분입니다만......

노이에자이트 2010-11-16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이 분이 비명에 가셨군요.저는 이 분 생존 때 나온 다섯수레 출판사 번역본을 구했는데...아...참...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6 21:56   좋아요 0 | URL
윤구병 선생이 번역한 책을 가지고 계시군요? <시인의 죽음>은 '지리산'이란 출판사에서도 오래전에 번역을 했지요. 새 번역은 을유문화사에서 했는데, 그러고보면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작가는 한국인에게 꽤 주목받아온 작가인듯 합니다.
작가의 피살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죽음마저 드라마틱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구요. 그의 문학적 정적들은 그의 죽음을 두고 고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도 합니다만......

노이에자이트 2010-11-17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흔'에 대한 설명도 잘 읽었습니다.화국봉...이 양반 이름도 이젠 잊혀졌지요.모택동 사후에서 등소평 등장까지 사이의 과도체제 지도자라고 해야겠죠.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7 16:30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임표(린뱌오)야 죽음과 관련된 미스테리 때문에 회자라도 되지만, 화궈펑은 중국 현대사에서 말할 거리도 없는 지도자이지요.
소설 <상흔>의 끄트머리에 그에 대한 충성 맹세가 나오는데, 낯이 좀 간지러웠습니다.

루쉰P 2010-11-18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화대혁명에 대해서 나온 책 중에서 바진의 '매의 노래'나 작가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붕잡억'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두 책은 회고록의 형식으로 문혁의 흐름을 얘기하는 것인데 그 내용이 피가 절절 흐르는 내용이라 정말 숨 막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문혁에 대해서는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많은데 그런 책이 있을까요? '시인의 죽음'도 읽었기는 했지만 그 총체적이 모습에 대해서는 감이 안 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맨날 책만 여쭤보지만 혹시 문혁에 대해 알 수 있는 책들이 있을까요? 부탁 좀 드릴께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8 11:06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신뢰하는 중국 연구자인 백승욱 교수의 <문화대혁명-중국 현대사의 트라우마>라는 얇은 책이 있습니다. 문혁의 약사인데, 참고할 만한 책입니다.
<문화대혁명, 또 다른 기억>이란 책이 있습니다. '노신파'님이 두루 읽으셨던 회고록 스타일의 책인데, 꽤 밀도있게 문혁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자신 하방되어 문혁을 겪었던 소설가 한샤오궁의 해제가 책 말미에 있는데 그 역시 읽어볼만 합니다.

루쉰P 2010-11-19 07:30   좋아요 0 | URL
<문화대혁명, 또 다른 기억>이라는 책이 좋을 듯 합니다. 이거 원 항상 여쭤보고 신세만 지니 죄송할 따름입니다. 개인적으로 신뢰한다는 교수님의 책도 어서 사서 봐야 겠네요. 회고록 스타일의 책들이 저에게는 좀 와 닿더라구요. 저는 이상하게 문혁이나 수용소 생존자 문학 같은 그런 류의 책들이 마음에 팍팍 와 닿는데 그런 제 심리를 좀 연구를 해 봐야 할 듯합니다. 파고세운닥나무님의 중국 관련 서적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