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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소디 인 베를린
구효서 지음 / 뿔(웅진)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구효서의 소설은 처음 접한다. 소설을 손에 잡은 건 순전히 서경식과 윤이상의 삶을 작가가 소설의 소재로 삼았다는 이야길 들어서다.
소설의 중심엔 재일조선인 야마가와 겐타로(김상호)와 일본인 여인 하나코가 있다. 둘은 젊은 날 사랑하던 사이인데, 겐타로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끊어졌던 인연이 다시 시작된다. 겐타로는 일본에서 나고 자라 독일로 음악 공부를 위해 유학한다. 이 때 임진왜란으로 독일로 건너간 18세기의 유랑민 작곡가 힌터마이어를 발견한 그는 힌터마이어의 흔적을 찾으려 평양에 간다. 무작정 떠난 평양 여행이 빌미가 되어 겐타로는 한국에서 17년간 감옥살이를 한다. 이후 그는 독일에 거주하다 생을 마친다.
겐타로의 삶 속엔 여러 실존 인물들이 녹아있다. 서경식과 윤이상이 각각 큰 부분을 담당한다면 서승과 서준식이 나머지 역할을 하고 있다. 자살로 생을 마친 건 프리모 레비를 떠 올리게 한다. 힌터마이어의 음악과 관련지어 소설의 중간에 아우슈비츠 경험이 잠깐 나오기도 한다.
작가는 코리안 디아스포라로서 겐타로를 상정했는데, 실은 그의 연인 하나코 역시 디아스포라라고 할 수 있겠다. 그녀의 집안은 불가촉천민인데 신분해방 후 아버지의 극성과 본인의 열심으로 황족과 화족만 입학할 수 있었던 가쿠슈인(學習院) 대학에 입학한다. 하지만 재일조선인 겐타로를 사랑하는 데서 보여지듯이 그녀는 중심에 진입하는 삶을 택하기보단 어중이 떠중이로 살아가려 한다.
실존 인물의 삶과 무엇이 같고 다른지 비교하는 게 이 소설의 한 재미였다. 소설을 읽으며 상당히 놀랐던 게 두 주인공의 인연이 음악으로 맺어지는데 실제 서경식도 부인과의 만남이 음악을 통해서였음을 최근에 알았기 때문이다. 예스이십사에 연재하는 <서경식의 서양음악 순례> 중에 부인 F를 합주단의 단원과 관객으로 처음 만나 인연을 맺었다고 하는데, 소설과의 일치를 보며 꽤 놀랐다. 부인과의 첫 만남 이야기는 처음 접하는 이야긴데, 작가 구효서의 꾸려가는 이야기가 묘하게 일치하고 있다. 내겐 꽤 의미있는 발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