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오 바디스>(1,2권) / 헨릭 시엔키에비츠 / 민음사 / 2005


쿠오 바디스


등장인물

베드로
비니키우스
리기아
페트로니우스
네로
악테

 

#1 페트로니우스의 저택


페트로니우스가 비니키우스를 기다린다. 비니키우스가 들어서자

페트로니우스: 오! 비니키우스. 무사히 로마로 돌아왔구나.

비니키우스: 삼촌!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페트로니우스: 무사하다니 정말 다행이다.

비니키우스: 전쟁은 정말 힘들었어요.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구요. 그런데 로마는 별일 없었나요?

페트로니우스: 네로 황제가 더욱 악랄해져만 간단다. 황제를 비롯해 도시 전체가 알 수 없는 열기에 싸여 있어.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비니키우스, 어차피 이 세상은 거짓 위에 세워져 있고 인생이란 한낱 환상에 불과하단다. 영혼 또한 환상에 지나지 않지. 그저 우린 살아있는 동안에 즐거움만을 좇으며 살면 되지 않겠니? 이제 너도 전장터에서 돌아왔으니 로마에서 마음껏 즐기거라.

비니키우스: (회의적으로) 그런가요? 그런데 삼촌, 제가 전쟁을 하던 중 부상을 당했는데 아 울루스 장군의 집에서 치료를 받았어요. 그런데 그 집 사람들은 우리들과는 뭔 가 다르던데요. 요란한 신상들도 보이지 않고 뭔가 경건해 보였어요. 마치 다른 세계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더라구요. 특히 리기아라는 여종은 전혀 노예 같질 않았어요. 이야길 들어보니까 본래는 한 왕국의 공주였다던데, 나라가 망해 로마로 끌려왔다더군요. 아울루스 장군 부부도 그녀를 친딸처럼 대하구요. 뭔가 그녀에게선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졌어요.

페트로니우스: 응, 아울루스의 아내인 폼포니아가 그리스도란 존재를 믿고 있다는 이야긴 들 었다. 그녀는 날 볼 때마다 그리스도는 하나이시며, 정의로우며, 전능하다고 말하곤 했지. 그런데 이 같이 불의하고 어지러운 세상에 그 같은 신이 있기나 한단 말이냐? 난 이미 오래 전에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에 대한 감각을 버렸단다. 그것이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이냐?


#2 네로황제의 향연장

사회자:

비니키우스: 리기아, 다시 보는군요.

리기아: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비니키우스: 덕분에요. 어떻습니까? 로마 향연장의 이 화려한 분위기가. 술과 음악, 사람들의 끊이질 않는 웃음. 무엇이 부족하단 말입니까?

리기아: 그런가요? 그런데, 제겐 왜 이러한 모습들이 슬프게만 다가오는 걸까요? 이 모습들 을 불쌍히 바라보시는 분이 계시다는 걸 당신은 아시나요?

비니키우스: 그게 무슨 말이요? 누가 이 모습을 불쌍히 생각한단 말이요? 리기아, 저 앞에 계시는 네로황제가 보이지 않소? 저 분은 살아있는 신이란 말이요. 또 다른 신 을 운운하는 불경함을 사과하시오.

리기아: 세상을 지배하는 분은 네로가 아닙니다. 그건 하나님이십니다.


악테: 지금 네로 황제께서 두 분을 보고 계십니다.



#3 감옥에서


리기아: 아아, 당신이군요! 저는 당신이 오시리라고 믿고 있었어요.

비니키우스: 리기아. 당신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가호와 구원이 내리기를 빌겠소.

리기아: 저는 경기장이나 이 감옥에서 죽을 거예요. 하지만, 그 전에 당신을 만날 수 있도록 기도를 드렸어요. 그래서 와 주셨군요. 그리스도께서는 제 기도를 들어주신 거예요. 저는 곧 주님의 품 안으로 돌아갈 거예요.

비니키우스: 아니오. 당신은 죽지 않소. 베드로 사도께선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약속하 셨소. 그분은, 󰡐희망을 가지십시오.󰡑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래요, 리기아. 그리 스도는 당신을 불쌍히 여기실 겁니다.

리기아: 그리스도 자신은 아버지이신 하나님에게, "이 쓴 잔을 제게서 거두워 주옵소서."라고 말씀하셨지만, 주님은 하나님께 순종해 그 잔을 마셨어요. 그 주님을 위해 지금 몇 천 명의 사람들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자기 자신도 고통을 받으 며 죽어 갈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분에 비하면, 저는 아무 것도 아니 에요. 보시다시피 이 곳은 무서운 감옥이에요. 하지만 저는 천국으로 가고자 합니다. 하늘에는 친절하시고 자비로우신 주님이 계십니다. 당신도 그 곳으로, 제가 있는 곳 으로 오시리라는 걸 잊지 마세요. 제가 그리스도를 만나면 이렇게 말씀드릴 거예요. 저는 죽지만, 당신은 제가 죽는 것을 보시면서 슬픔 속에 홀로 남게 되더라도, 지금 도 주님을 사랑하고 있다고요. 당신은 언제나 주님을 사랑하시겠죠? 비니키우스, 약 속해 줘요.

비니키우스: 주님의 이름으로 약속하겠소.


#4  페트로니우스의 저택


페트로니우스는 비니키우스의 얼굴에서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안정감과, 어떤 불가사의한 빛을 발견하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비니키우스가 뭔가 새로운 구출 방법을 찾아내지나 않았나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페트로니우스: 너는 요즈음 많이 달라졌구나. 내게 숨길 건 없다. 나는 너를 도와주려 하고 있고, 또 그런 능력도 있으니까 말이다. 무슨 계획이라도 있느냐?

비니키우스: 있습니다. 그러나 이젠 도와주실 수가 없습니다. 그녀가 죽은 뒤, 저는 제가 그 리스도인이란 것을 고백하고, 그 사람 뒤를 따를 테니까요.

페트로니우스: 그럼, 모든 희망을 포기했단 말이냐?

비니키우스: 아닙니다.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그녀를 구해줄 것입니다.

페트로니우스: 너는 알고 있니? 내일은 그리스도인들을 황제의 정원에서 화형(火刑)시킨다는 것을.

비니키우스: 내일이라고요?


#5 비니키우스의 세례


비니키우스: 사도시여. 저는 벌레만도 못한 자입니다. 저는 전쟁터에서 숱한 사람을 죽였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해 왔습니다. 그리스도는 거룩하고 순결한 분이라 들었습니 다. 그런데 저 같은 자도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베드로: 내 아들이여. 주님은 바로 당신을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무엇이 잘못 인지, 죄인지 알지 못하던 당신을 위해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순결한 피를 흘리셨소. 그 사랑이 당신을 영원한 삶으로 인도할 것이오. 비니키우스, 이제 그대는 그리 스도가 당신을 사랑함을 믿소?

비니키우스: 사도시여, 제가 아직 어린애 같으나 그리스도는 세상을 제멋대로 휘두르는 황제 보다도 강한 힘을 지니고 계신 줄 제가 믿습니다. 또한 그가 나를 사랑하사 이 처럼 새롭고도 깨끗한 영혼을 주셨음을 믿습니다.

베드로: 이제, 당신은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6 쿠오 바디스


성문에 다다른 베드로

베드로: (뒤를 돌아보며) 당신이 보호하던 어린양들도 모두 흩어졌고 교회도 불타 없어졌습 니다. 이제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 (일어나 성문을 나서려한다. 이때 로마로 들어가 시는 주님이 보인다)

베드로: (놀라며)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주님: 나는 로마로 가서 다시 한번 십자가에 못 박히리라.

베드로: 주여, 주님께서 또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실 작정이란 말입니까?

주님: 그렇단다. 베드로야. 내가 또 십자가에 못 박힐 수밖에 없구나.

베드로: 주님이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힌다니. 아니야, 이건 내게 주신 주님의 십자가야. 로마 로 돌아가자.


베드로: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 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 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베드로전서 2: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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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시간의 기억> / 김원일 / 문학과지성사 / 2001


슬픈 시간의 기억



나오는 사람들

윤여은: 교사

정례 이모: 여은의 이모

동네 아이들

황민우: 여은을 짝사랑하는 남학생

마리아 선교사

중년 신사

노인

방도식: 여은의 제자

전경수: 여은의 제자

곽기동: 의사, 여은의 제자

의사

형사


1막

1장 동네

여은이를 동네 아이들이 둘러싸고 있다. 한뎃 말로 놀린다.


동네 아이들: 여은이 입은 토끼 입/까치가 쪼았나 새앙쥐가 갉았나/째보는 시집도 못 간 대...


아이들 헤어지며, 손가락질 한다. 여은이는 고개 숙여 운다. 정례 이모가 수줍은 듯 다가온다.


정례 이모: (눈을 내리깔고 더듬으며)여은아, 괘, 괜찮아?

여은: 이모, 난 왜 째보로 난 거야. 아이들 놀림감 밖에 더 되냐구?

정례 이모: 여은아, 호, 혹시 예수님을 알아? 예수님을 믿으면 서, 성령으로 병자를 낫 게 해준대.   내 얽은 얼굴을 마, 말끔하게 해주시고 째보인 네 이, 인중도 예 수님이 꾸, 꿰매주실 거야.

여은: 예수님? 그건 그렇고, 이모, 성령이 뭔데 그렇게도 용해요?

정례 이모: 예수님은 죽은 나, 나사로를 보고, 나사로야 나오라 하고 부르시니 나사로가 사, 살아났다잖아. 네가 예수님을 여, 열심히 섬기고 기도로 간청하면 예수님 이 니, 네 입을 보고, 내가 꾸, 꿰매주마 하실 거야. 그럼 찌, 찢어진 살이 감 쪽같이 붙게 돼.

여은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2장 교회당 1

여은과 정례 이모가 교회당으로 들어선다. 교회당에는 엄숙한 분위기로 많은 이들이 앉아 예배드리고 있다. 여은과 정례 이모가 조용히 앉는다. 여은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주위를 계속해 살펴댄다.


정례 이모: (정면을 가리키며)저분이 바로 구, 구세주 예수님이란다.

여은: (살살 앞으로 기어나가며 가까이서 예수님상을 살핀다. 제자리로 돌아온다. 혼잣 말로)불쌍하기도 해라. 알몸에, 온몸이 상처 투성이네. 저런 꼴로 죽은 벌거숭이 서양 남자를 어른들이 섬기다니. 그런데, 이모. 이모 말대로 정말 저분을 열심히 섬기면 병이 낫고 병신을 면할 수 있을까?

정례 이모: (여은을 바라보며 웃는다)예수님은 하나님으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셔서 많은 병자와 병신을 고쳐주고 우리의 죄를 대신해 저렇게 죽으셨어. 여, 여은이와 나도 예수님을 진실로 믿으면 꼬, 꼭 낫게 해주실테야.


예배가 끝나고 모두들 나온다. 여은도 뒤돌아선다. 순간 음성이 들린다.


예수님: (음성으로)어린 딸아, 내가 너를 여태 찾았다. 나를 다시 만나러 오렴. 내가 찢 어진 네 입술을 고쳐주마.

여은이 뒤돌아선다. 고개를 갸우뚱한다. 마리아 선교사가 강대상 쪽에서 다가온다.


마리아 선교사: 네가 여은이니?

여은: (눈치를 보며 피하며)네.

마리아 선교사가 웃으며 다가와 여은을 꼭 안는다. 여은은 불편해 하며 품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여은이 밖으로 나간다.


마리아 선교사: 다음 주로 여은이 수술 날짜가 잡혔어요. 여은이에게는 말씀하지 마시구 요.

정례 이모: 네, 네 알겠어요. 고, 고맙습니다.


3장 집 1

여은: (거울 앞에서 신기해하며)이모, 정말 내 입이.......

정례 이모: (기쁜 목소리로)예수님은 사, 살아 계시지. 서, 성령으로 목사님을 통해 너 입을 고, 고쳐주셨어.


여은 이모와 함께 기뻐한다.


4장 기찻간 1

한 남학생이 여은이를 줄곧 쳐다보고 있다. 슬그머니 다가와 편지를 여은의 교복 주머니에 넣는다. 여은은 편지를 꺼내 읽는다. “......윤여은님의 아리따운 모습이 꿈속에서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외로운 사슴마냥 며칠 밤을 잠 못 이루었습니다......” 편지를 이내 찢는다.

기차 소리가 세차게 들린다. 여은이 기차에 들어선다.

민우: 저, 미, 민웁니다. 잠시 시간 좀 내어주시면......

여은 놀라 눈길을 돌린다.

민우: (여은의 손을 잡으며)제가 유, 유수역에서 내리겠습니다. 제발 시간 좀......

여은: (책가방으로 민우의 팔을 내리친다)이거 놓아요!

민우: 다, 다른 게 아닙니다. 잠시만 시간 좀......

여은: (힘있게 민우의 몸을 밀친다)이거 놓으란 말예요!

터널속이다. 사방이 깜깜해진다. 남학생의 외마디 비명이 들린다.

환해진다. 여은은 놀란 표정이다.


5장 기찻간 2

여은이 기찻간에 서 있다. 옆으로 두 남자가 서 있다.

중년의 신사: 쯔쯔, 기어코 숨을 거두었다더구먼. 마산까지 가서 일본인 양의에게 보였 는데도 결국 못 살려냈어. 머리 좋은 아까운 자식을 그렇게 잃고 말다니.

노인: 다리뼈는 그렇다 치고 갈비뼈가 몇 개나 나갔다던데 무슨 재주로 살려내요. 그런 데 민우 말이, 혼자 승강구 손잡이를 잡고 바람을 쐬다 열차가 굴로 들어 서자 갑자기 숨이 막혀 한 손으로 입을 막다 실수로 떨어졌다고 우기니, 그게 미 심쩍다 이 말입니다. 허긴 비가 오던 날이라 손잡이가 미끄럽긴 했겠으나 비오는 날 왜 난간에 서 있었는지......

중년의 신사: 친구와 장난치다 떨어질 수 있었겠고, 민우를 미워하던 한 반 애가 열차가 굴속으로 들어서자 민우를 밀어버릴 수도 있잖았겠습니까. 아닌말로 일본 인 학생이 조선인 학생을 미워해 장난삼아 그런 짓을 할 수도 있으니깐요. 그런데다 걔가 굴속에서 떨어지는 걸 아무도 본 사람조차 없었다니......


여은 괴로운 표정이다.


6장 집 2

여은: 주님, 제 발로 지서에 찾아가 제가 그를 밀친 죄를 자백해야 할까요, 이 비밀을 숨기고 있어도 될까요? 주님, 저는 이제껏 당신을 알았지만 마음 깊이는 당신을 알지 못했습니다. 공부하는 틈틈이 성경도 읽으며, 기도도 하고, 경건하게 예배도 드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이태껏 제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아브라함에 게 말씀한, 그런 고난과 절망이 없었습니다. 주님 무섭습니다. 죄가 무섭습니다. 저의 죄를 용서하소서. 저를 어찌하오리까? 저를 용서하소서.


해설: 여은은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시골 초등학교에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2막

1장 교실 1

새 학기 첫 시간이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다.

여은: 안녕하세요, 여러분. 올 한 해 담임을 맡게 된 윤여은이에요. 반가워요. 오늘은 첫 시간이니까 올 한 해 우리 교실의 급훈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하죠. 선생님이 적어 왔는데(한 학생을 가리키며)한 번 읽어 볼래요?

곽기동: (아이들의 눈치를 살피며)서로 사랑하라.

여은: 그래요, 서로 사랑하라. 여러분은 서로를 사랑하나요? 우리가 이 교실에서 함께 배워야 할 게 참 많죠. 우리말도 배워야 하고, 덧셈․뺄셈도 배워야 하고...... 이것 도 참 중요해요. 하지만 우리가 함께 하는 1년 동안 꼭 잊지 않고 서로 배워야 할 게 바로 사랑이에요. 여러분, 사랑이 뭔가요? 선생님은 어릴 적 몸과 마음에 상처 가 있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을 피하고 다녔죠. 여러분들과 같은 친한 친구들도 없 었구요. 모두들 절 보면 징그럽고, 무섭다며 놀리기만 했구요. 하지만 한 선교사 님은 그렇지 않았어요. 그 분은 말없이 다가와 저를 꼭 안아주셨어요. 저는 발버 둥을 쳤지만 그 분은 그럴수록 더 꼭 안아 주셨어요. 선생님은 태어나 그 때 처음 으로 사랑을 느꼈어요. 아무 말씀도 없으셨지만, 나의 상처와 아픔을 아시고 가만 히 다가와 꼭 안아주실 때 사랑을 느꼈던 거에요. 친구들이 서로를 볼 때 밉고 부 족한 점도 있을테지만, 감싸주며 안아줄 때 그 때 바로 사랑이 이루어지는 거예 요. 우리도 서로를 꼭 안아주는 친구들이 되도록 해요. 알았나요?


2장 교실 2

새떼 소리가 들린다.


여은: 여러분, 창밖의 기러기떼를 잠깐 볼래요? 무슨 모양으로 날고 있죠?

방도식: 응, 기역, 니은, 디귿, 리을, 미음, 비읍, 시...... (머리를 긁적이며)응, 시옷자요.

여은: (웃으며)맞아요. 누가 일러주거나 훈련시키지 않아도 기러기들은 열 맞춘 생도들 처럼 저렇게 아름다운 띠를 만들어 날잖아요.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얼마나 오묘해요? 여러분 도요새를 알아요?

방도식: 응..... 모르겠는데요.

여은: 선생님은 도요새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몸집은 작지만, 날갯짓이 정말 힘차죠? 도요새는 오백만 년 전 신생대부터 이 지구상에 살아온 나그네새 에요. 봄가을에 시베리아란 곳에서 이 곳 까지 일만 킬로미터를 무리 지어 이동해 요. 누가 그 먼 길을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도요새들은 끊임없이 제가 가야할 길을 가죠. 연어도 그래요. 수만 킬로미터를 여행한 끝에 모태의 강을 찾아 돌아와 알 을 낳고 죽죠. 우리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에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늘 인도하세 요.


3장 교실 3

용의 검사날이다.

방도식: 경수야, 너 손톱이 그게 뭐냐? 시컴해가지구, 그게 손이냐 발가락이지?

전경수: 그런 넌 임마! 손 좀 씻고 다녀라. 넌 그게 손이냐 탄 누룽지지?

곽기동: 야, 어쩌냐? 3반 애들은 손톱 긴 애들은 회초리로 진창 맞았다는데. (다리를 절 며 제 자리로 오며)선생님 오신다!


윤선생이 들어온다. 아이들의 손톱을 하나, 둘 살핀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눈치를 살핀다.


여은: 방도식, 전경수, 곽기동!

도식,경수,기동: (기어가는 목소리로)네!

여은: 수업 끝나고 남아요.

전경수: (아이들을 쳐다보며)우린 이제 죽었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은 교실에 앉아있다. 여은은 양동이에 물을 담아 온다.

여은: 더운 물이에요. 여기에 모두들 손을 담가요.


아이들 서로 눈치를 살피며, 양동이에 손을 담근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여은이 다가가 아이들의 손을 씻는다. 아이들은 어쩔 줄 몰라한다. 여은이 주머니에서 손톱깍개를 꺼내 아이들의 손톱을 하나, 둘 깎는다.


3막

1장 전쟁

해설: 1950년 6월 전쟁이 발발한다. 윤선생이 재직하던 학교는 문을 닫고 그는 도립병 원의 보조 간호사로 나선다. 전투는 치열했다. 병원은 복도에까지 부상병으로 초 만원이었고 하루 평균 수십 구의 시체가 매장지로 떠났다.


수술대가 놓여 있고 의사와 윤선생이 수술 준비를 하고 있다.


의사: 복부 파편상이구만.

여은: 수술을 해야겠지요?

의사: 윤간호사, 이 아이가 인민군이라는 거 몰라? 이 아인 수술 규정에 위반된다구. 발 각이라도 되는 날이면 이 아이는 물론이고, 한 간호사와 나 역시 살아남지 못할 거야. 지금은 전쟁중이야. 다들 미쳐있다구.

여은: 선생님, 이 인민군 아이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에요. 금방 죽어가는 환자를 놔두고 모르는 체 할 순 없잖아요. 의사의 사명이 무엇이죠? 죽을 때까지 환자를 돌보는 것이 의사의 사명 아닌가요?

의사: 자넨, 사람이 왜 그렇게 콱 막혔나? 정신 똑바로 차리라구. 현실을 똑바로 보란 말야. 더구나 인민군이 다시 들이닥친다고 하더군. (가운을 벗으며)여러 소리 말 고 나랑 같이 여길 피하자고. 자네 목숨이나 챙기라구.

여은: 아니요. 전 여기 남겠어요. 죽어가는 환자가 있는데 이 곳을 뜰 수는 없어요. 설사 죽는 한이 있어도 환자를 두고 떠날 수는 없어요.

의사: (고민하며 가운을 다시 입는다)서둘러야 되겠어. 마취제와 지혈겸자를 준비해. 취 사실에 가서 물도 끓이고.

여은: 예, 선생님.


2장 고문

해설: 인민군이 잠시 지역을 점령했으나 곧 물러가고, 국군에 의해 수복이 된다. 곧이어 대대적인 부역자 색출작업이 시작되었다.


여은이 의자에 묶여 있다. 형사가 취조 중이다.


형사: 윤여은, 선생 출신이라 봐줬더니 이년이 거짓말만 둘러대! 네 년이 한 일이 무슨 짓인지 아는 거야? 의사를 꼬셔대 인민군만 골라 치료를 하고 말야. 너 빨갱이지? 사범학교 다닐 때부터 학습해 왔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어. 아이들에게도 수업 시 간에 사상을 주입해왔던 거지? 얼른 대답하지 못해?

여은: 그런 적이 없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여종입니다. 신분과 지위, 부귀와 빈 천을 따지지 않으시고 모든 이를 사랑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 아이를 치료한 것 뿐입니다. 죽어가는 환자 앞에서 이념이 무엇이고, 사상이 무엇입니까?

형사: (여은을 발로 치며)이런 빨갱이년, 뭐가 어째? 말 잘하는 거 보니 진짜 빨갱이군. 그럼 교사로서 모은 돈은 다 어디에 둔 거야? 대남공작금으로 사용하지 않았냐 구?

여은: 제가 평소 돈을 모아 하고 있는 사업이 있습니다. 돈이 조금씩 모이면 고아들과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교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힘이 닿 는대로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게끔 하는 게 아닙니까?

형사: 흥,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기회를 주겠어. 빨갱이라고 실토하지 않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리겠어. 전시에 너따위 하나 죽여봤자 누가 알 성 싶어? 마지막 기 회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으라고.(나간다)

여은: 주님, 저를 구해 주옵소서. 나를 어찌 버리십니까? 욥과 예레미야도 고난을 당하 였으나 하나님을 의심치 않았다 했습니다. 주님,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내게도 그들과 같은 믿음을 주소서.


불이 꺼진다.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제자 1: 윤선생님은 죄가 없습니다!

제자 2: 윤선생님은 빨갱이가 아닙니다!

제자 3: 우리 선생님을 풀어주세요!


해설: 보통학교 학생 학부모와 교회 교인들이 수감된 경찰서 마당까지 몰려왔다. 그들의 탄원으로 윤선생은 재판에 회부되지 않고 풀려났다. 전쟁이 끝났다. 여은은 결혼 도 하지 않은 채 아이들을 가르치며 고아들을 양자로 들여 키우며 산다. 윤선생은 도교육청에 건의서를 제출하여 낙도나 작은 분교의 평교사를 지원했다. 외딴 섬에 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그곳에 교회가 없다면 젊은 목사를 청빙해와 자신이 개척 교회를 세우고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기로 마음먹었다.


3장 교실 4

여은이 강의 중이다.


여은: 이 시간은 시인 천상병님의 「귀천」을 공부하겠어요. 천상병님은 깊은 고문의 상 처로 평생 육체적 고통을 안고 산 분이에요.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맑고 밝은 시 를 지으시며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다 주었죠. 선생님이 한 번, 읽어보겠어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여은 복부에 통증을 느낀다. 몸이 비틀거리며 숨을 헐떡인다. 아이들이 놀래하며 선생님에게 달려간다.


아이들: 선생님, 선생님!


4막


1장 병원 1


해설: 여은은 신장암으로 병원에 입원한다.


방도식, 곽기동이 선생님 주위에 있다.


방도식: (여은을 향하며)선생님 기억하세요? 저희 반에 홍동시라는 애가 있었잖습니까? 별명이 홍시였는데 얘가 동네 애들과 남의 밀밭에 들어가 밀 서리를 했는데, 그 만 이 홍시만 주인한테 잡혔지 뭡니까? 이튿날 학교로 통고가 오자 방과 후 선 생님이 홍시를 데리고 밀밭 주인을 찾아가 학생을 잘못 가르쳐 죄송하다며 백 배 사죄하시고 선생님이 서리하여 베어진 밀밭에 무릎 꿇어 홍시 대신 한 시간 벌을 서시고, 홍시는 한 시간 동안 꼴을 한 짐 베라는 일감을 맡겼지 뭐예요. 선생님 기억하세요?


여은은 웃기만 한다.


방도식: 곽박사, 자네도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각별하지?

곽기동: 집에서 산 넘고 개울 건너 십 오리 길을 다리 절며 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은 내 게 늘 용기를 주시고 보릿고개 때는 도시락을 여러 개 준비해 오셔서 나처럼 점 심 굶는 반 애들에게 나누어 주셨지. 졸업을 앞두고 반 애들에게 선생님께서 장 래 희망을 물으시자, 나는 의사가 되어 나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돕고 싶다 고 말했잖았나? 선생님이 그 말을 새겨들었다, 논 몇 마지기에 목을 매는 우리집 까지 찾아오셔서, 기동이가 이제 글을 깨쳤으니 보통학교 졸업으로 충분하다는 부모님을 설득하여 나를 공립중학교에 입학시켜주셨어. 졸업할 때까지 납입금을 보태주시기까지 했으니 그런 은공을 살아생전 잊으면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야. (여은을 향하며)선생님은 제게 영원한 어머님이십니다. 잠자리에서 눈을 뜨면 선 생님 건강 지켜주십사고 기도부터 드리지요.

여은: (수줍게 웃으며)곽박사님 기도 덕분에 제가 이렇게 오래 살고 건강하잖아요.


2장 병원 2

여은: (힘겹게)전 선생님, 저기 성경책에서 구약 이사야 53장을 찾아 좀 읽어줘요.

전경수: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 고를 아는지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이지 않음을 받은 자 같아 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으로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여은: 고마워요, 전 선생. 모두 쉬쉬하지만, 전 알아요. 신장으 암이 온몸으로 저, 전이 된 것 같아요.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겠지요.

전경수: (민망해하며)선생님 절대 체념 마시고 힘을 내세요. 포기하시면 안돼요. 제가 옆에서 힘이 되어 줄게요.

여은: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3장 임종

여은: 저는 세상 사람들 앞에 교사로서의 품위를 보이려 위선이란 옷을 입고, 모범으로 꾸미며, 내 몸을 상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주님을 섬긴다고 멸시를 당했거나 수 난과 박해를 겪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저같은 죄인이 주님이 계신 하늘나라 에 들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도 이런 참기 어려운 고통이 찾아왔겠지요. 저희 죄를 알지 못하는 뭇 사람들을 사랑으로 용서하시고, 저희가 당할 고통을 대 신 당하시며 그 고통이 하도 괴로워, 나를 어찌 버리셨나이까, 나의 영혼을 하나 님께 맡긴다고 말씀 하셨지요. 주님, 주님은 메시아이시니 몸은 비록 죽더라도 이 여식으 영혼을 구원해주소서......

주님만은 알고 계시죠. 저는 사범학교에 다닐 때 한 남학생을 사지로 몰아넣는 죄 를 지었습니다. 하늘 아래 영원히 숨겨지는 죄가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저야말로 그 살인죄를 평생 숨기고 살았습니다. 그 남학생은 하늘나라로 갔겠지요. 저으 죄 까지 그 남학생이 지고 침묵하며 눈감았으니 주님이 그 선행을 이뻐하셨겠지요. 그런데 주님, 한 가지만 더 살짝 말씀드릴게요. 부끄러운 말이지만 저도 여성인데 왜 자식 낳아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어요. 아기 젖 먹이고 아장아장 걷는 모습이 귀여운 줄 저라고 왜 몰랐겠어요. 주님, 제 어리광을 받아주세요. 등잔을 들고 주 님 오시기를 밤새 기다린 신부으 마음을......하늘나라는 사철 꽃이 지지 않는 아 름다운 동산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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