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VS역사>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책 vs 역사 - 책이 만든 역사 역사가 만든 책
볼프강 헤를레스.클라우스-뤼디거 마이 지음, 배진아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저자 두 사람은 독일의 언론인이다. 서지사항을 살펴보니 정확히 말하자면 한 사람은 편집자, 또 한 사람은 저자이겠다. 역사 이래 역사를 만든 50권의 책을 갈무리 하는데, 삽화 및 자료들이 50권의 책을 더 돋보이게 하고 있다.  

  불만은 '왜 이 책 뿐인가?'이다. 저자들이 꼽은 책들은 대체로 서양의 사상과 역사를 만든 책들이다. 폭을 좀 더 좁히면 독일의 지금을 있게 한 책들이다. 서양과 그 안에서의 독일의 역할과 위상을 무시하는 말이 아니다. 일종의 선집으로서 균형감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갖는다. 동양의 책이라면 <사자의 서>(이집트), <논어>(중국), <꾸란>, <벽암록>(중국), <마오쩌둥 어록>(중국)이 전부다. 다섯 권 중의 네 권이 종교와 관련한 책이니 그저 동양은 종교만 있는 곳이라는 건가? 오리엔탈리즘을 꺼낼 수 밖에 없는데, 이런 모습은 좀체로 변하질 않는다. 서양이 자랑하는 지성인 러디야드 키플링(<킴>)과 에드워드 포스터(<인도로 가는 길>)가 동양을 그저 종교만 아는 곳으로 서양에 소개한 이래로 여태 변하질 않는다.  

  49번째 책으로 꼽은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은 저자들의 서양 편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내게 헌팅턴은 그저 백인중심 서구문명의 옹호자일 뿐인데, 저자들이 헌팅턴을 비판적으로 본다지만 싸움에 기름을 끼얹는 이 책을 왜 꼽았는지 모르겠다. 미국과 유럽이 손을 맞잡고 세계 평화를 지키자는 주장에 저자들이 공감했는지도 모르겠다. 독일어권의 책은 왜 이리 많나? 꼽은 책만 놓고 보면 인류 사상의 삼분의 일은 독일인이 만든 듯 하다.  

  전집이나 선집을 보며 항상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균형감각이다. 균형감각이 아쉬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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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고쿠도 2010-07-16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같은 생각을 하셨군요! 무슨놈의 독일어권 책이 그렇게 많은지...세계사를 모두 독일이 만든것도 아니고 솔직히 굉장히 아니꼬웠습니다. 중국의 수많은 문인, 지식인들을 억압한 문화대혁명의 배경이 된 <마오쩌둥 어록> 들어있는것도 기분나빴는데...
협찬받은 책이라 싫은소리를 많이 쓰기가 좀 어려웠는데, 앞으로는 그런거 신경쓰지 말고 옳은건 옳고 그른건 그르다고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07-16 16:06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저자들이 대체로 사회주의에 대해 반감이 있는 것 같더군요. 헤겔의 <정신현상학>도 그런 분위기로 독해하구요. <마오쩌둥 어록>과 문혁만 놓고 보면 마오는 '죽일 놈'이지만 글쎄요, 마오의 전생애를 놓고 보면 평가가 다르리라 봅니다. 중문학도 입장에선 생각이 좀 다르네요.
보기 좋게 잘 만들어진 책인데, 한 쪽으로 치우친 감이 많아서요.
재일문학을 공부하시나 보죠? 앞으로 도움 좀 구할게요^^

교고쿠도 2010-07-16 16:11   좋아요 0 | URL
앗, 네 '_' 재일교포문학...저의 숙명(?)입니다. 제 네이버블로그에 오시면 재일문학에 대한 많은 서평 등의 자료가 있습니다. ^^
http://blog.naver.com/satsukinovel 비에도 지지 않고

다이조부 2010-07-16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봤습니다.

몇 글자 적어보면, 50권의 책 을 추렸는데 기계적으로 서양 25권 동양 25권

으로 구성되길 바라는것은 아니겠지만, 동양에 관한 책의 비중이 너무 적은걸

문제로 지적한것 같네요. 제 짧은 생각인데, 이 책을 쓴 사람들이 동양에 관하여

몰라서 불가피하게 책의 모양새가 이렇게 된 건 아닐까요? 물론 서양이 동양보다

우월하다는 편견이나 무의식이 작용했을 수도 있지만 말이죠. 비트겐슈타인 이

그런 말을 했다죠. 말 할수 없는것에 관하여 침묵하라고~

그리고 이 책의 독자를 설정했을때도 우선 독일사람을 타깃으로 여겼을것 같은데 말이죠.

사소한 문제지기 인데요. 주인장이 이야기 하는 서양과 동양의 구별도 서양에서

만들어진 개념 아닌가요?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동양은

아닌거 같은데 말이죠. 이집트가 동양으로 분류되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봅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07-17 14:06   좋아요 0 | URL
저도 댓글 잘 보았습니다^^ 개념 정리부터 해 볼게요. 우선 동양이라 말하는 'the east'는 본디 유럽을 중심으로 한 동쪽을 말한다고 합니다. 에드워드 사이드에 의하면 말이죠.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아메리카를 발견하곤, 미국이 들어서며 미대륙도 서양에 포함되게 된거죠. 어찌됐든 아메리카는 유럽편에서 볼 땐 서쪽이니까 문제는 없구요. 이집트는 동양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생각입니다. 영화 <300>에도 등장하는 페르시아도 그리스 쪽에선 동양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꽤 역사가 길죠?
사실 東洋이란 말은 교토학파가 만들었다고 하죠. 제국주의가 물씬 풍기는 말인데, 마땅한 번역어가 없으니 그대로 쓰고 있구요. 개인적으론 서양이 만들었든 일본이 만들었든 기만적인 용어인 건 마찬가지지만 대안이 없을 땐 사용해야한다는 생각이구요.
책에 대해 얘기하자면 동양의 책으로 꼽은 5권의 책을 보면 이들이 동양을 잘 모르는 것 같진 않아요. 그런데 그 책들이 종교와 고대로만 편향돼 있어 불만인 거죠. 그 후 동양은 마치 아무 것도 안 하다가 뜬금없이 마오쩌둥이 등장해 학살을 한 것처럼 서양의 독자들이 받아 들일 수 있으니까요. 거기서 저는 오리엔탈리즘을 본 거구요.
독일의 독자들이 읽는다면 그런 의미에서 저는 더 문제라는 생각이구요. 책의 원제가 '책이 만든 역사'정도가 될 듯 한데 역사란 말이 너무 커다랗죠? 서양이나 유럽역사라면 모를까......

미지 2010-07-18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르네상스 이후 세계사는 서양사다'라는 것이 그들의 역사관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나중엔 고대 그리스로까지 소급하죠... 현재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지식의 체계라는 것이 그런 전제 위에서 수립된 것임을 생각하면 참 ... 머리 쥐어뜯을 수박에 없는... 한국의 경우 중화에 일제에 미제에 글로벌자본으로... 자신의 역사나 자기 삶의 이야기의 화자가 거의 언제나 타자였던 것 같습니다(세종 때와 영정조 때는 제외하구요)... 크게는 동양이 서양에 대해 영원한 타자이지만, 동양에서도... 또... 현재 한국이 동남아를 착취하듯이...

파고세운닥나무 2010-07-19 10:49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론 서구의 작품 속에 녹아있는 식민주의를 꼼꼼하게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동양의 모습은 어떤지도 보고 있구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젠 우리가 동남아를 비롯한 저개발국가에 어떤 모습일지 심각하게 고민해볼 때도 된 것 같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 폴란드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타데우쉬 보로프스키 외 지음, 정병권.최성은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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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제작이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이다. 소설 제목의 무서움에 이끌려 책을 집었는데 역시나 내용도 무섭고 슬프다. 작가인 타데우쉬 보로프스키는 유대계 폴란드인으로 아우슈비츠를 체험했는데 소설엔 그 경험이 녹아있다. 작가는 같은 열차에 실려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유대인을 사살하는 작업을 하는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어느새 그 작업을 그저 귀찮고 피곤한 일로 여기게 됨을 슬프게 고발한다. 작가는 폴란드 문학의 기대주로 주목받다, 수용소 귀향 6년 만에 돌연 가스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10년 만에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를 다시 봤다. 이전에 미처 몰랐던 걸 몇 가지 발견했는데 레싱 박사의 상징성이 그 중 하나이다. 시종일관 수수께끼에 골몰하는 레싱 박사는 휴머니티가 말소된 기능적 지식인의 한 상징이라는 생각을 했다. 가족의 안위에 애가 탄 주인공 귀도에게 수용소에서도 심각한 모습으로 수수께끼를 내는 레싱의 모습은 유대인 시체를 태우며 베토벤 교향악을 들었다는 독일 병사의 일화처럼 슬펐다. 베토벤 음악의 본질은 무얼까? 그 음악과 유대인들의 비명 사이엔 무엇이 놓여져 있을까? 유대인을 실은 숱한 열차를 아우슈비츠로 보낸 아돌프 아이히만이 전범 재판에서 가장 즐겨 읽는 책이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이라 답했다는데(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칸트는 그 책에서 무엇을 말했나?  

  또 한 가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남은 도라-귀도의 아내-가 어떻게 살아갈지가 궁금했다. 10년 전 영화를 본 이후로 아우슈비츠 작가들이 대부분 자살로 생을 마감한 걸 알게 되었다. 프리모 레비와 장 아메리가 대표적일 듯 한데, 이젠 타데우쉬 보로프스키까지 포함해야겠다. 도라와 조슈아의 생환을 즐겁게만 받아들일 일이 아닌게 되었다.

    

         Tadeusz Borowski(1922-1951)

 

着語 : 책엔 표제작 말고도 좋은 소설이 많다. <파문은 되돌아온다>(볼레스와프 프루스)는 중편은 종교에 대한 비판과 긍정을 동시에 해내는 수작이다. <쿠오바디스>의 작가로 유명한 헨릭 시엔키에비츠의 단편 <등대지기>는 약소국 폴란드의 현대사를 비추며 등대의 빛처럼 아련한 아름다움을 던져준다. 보석 같은 소설이 이리 많은데 여태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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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7-15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 다소 억지로 민족주의를 불러 일으키려는 데 비해 '등대지기'는 굉장히 자연스럽지요.모국어가 그리운 사나이의 심정도 이해되구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7-15 17:30   좋아요 0 | URL
<마지막 수업>에 대해선 서경식 교수가 날선 비판을 하죠. 소설의 배경인 당대 알자스 지방에선 프랑스어를 가르친 적이 없는데, 뚱딴지 같이 불어 수업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하냐구요. 알자스 지방은 알자스어를 사용했고, 독일이 점령하자 할 수 없이 독일어를 사용했다고 하죠. 일종의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을 합니다.
알퐁스 도데의 황당한 민족주의입니다.

다이조부 2010-07-15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서경식 아저씨가 쓴 글 읽어보고 싶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7-15 19:17   좋아요 0 | URL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에 원고가 실려 있습니다. <별>의 작가가 이토록 기만적인 소설을 쓸 줄 몰랐습니다.

반딧불이 2010-07-16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틀러가 바그너를 스토커처럼 좋아해서 행진할때나 모든 행사, 그리고 유태인을 가스실에 넣을 때도 바그너 음악을 틀었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병사들을 휴가보낼 때도 바그너 작품을 감상하고 귀대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하던데 베이토벤은 금시초문이에요.

미지 2010-07-16 03:37   좋아요 0 | URL
최고의 베토벤 해석가 푸르트벵글러(그는 당대 최고의 바그너 해석가이기도 했죠. 이른바 독일적 정신 구현에 최고의 경지를 보여준다고 자타가 공인하던 지휘자)의 친나치(하이데거를 연상케 하는) 행적은 베토벤애호가들에게 언제나 주어지는 윤리적 딜레마입니다. (한국에선 특히 서정주,,,,가 그 몫을 하죠. 한때 많은 시인들이 처녀 시집의 자서에 서정주에 대한 애증을 토로했더랬습니다...) 어찌 보면 베토벤이 근대 음악의 효용을 자신의 고통-직관을 통해 선취했다 싶습니다. 나치가 써먹었다 해도 베토벤은 멋집니다.(사실 몸소 친일하고 전두환지지한 서정주의 '천재적 유연함'과는 구별해서 얘기해야 합니다) 특히 후기 현악곡들은...

파고세운닥나무 2010-07-16 13:21   좋아요 0 | URL
서경식 교수의 어느 글귀에 그 내용이 있는데 말이죠. 이젠 이 분의 책도 꽤 많아 찾는 게 일이 되었네요^^
근래 예스24에 연재하는 '나의 서양음악 순례기'를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그동안 음악에 관한 책을 따로 내진 않았는데, 연재가 마무리 되면 서양음악에 대한 좋은 책이 될 듯 합니다.

미지 2010-07-16 0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닥나무님 문학전집 수집하시는 소식을 꾸준히 듣고 싶네요. 부탁드립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07-16 13:27   좋아요 0 | URL
중앙일보사 간 '오늘의 세계문학'은 전 30권인데, 이제 절반 모았어요. 요사이 문학동네와 민음사에서 펴내는 세계문학전집과 중복되는 작품도 있네요. 아주 생소한 작품도 눈에 띄구요. 독문학과 불문학 중심인데 출간된 당시에는 상당히 이채로웠을 듯 합니다. 제겐 지금도 이채롭지만요^^
전공이 중문학인데 중앙일보사에서 90년에 펴낸 '중국현대문학전집'을 구하려 합니다. 몇 권은 공부하며 도서관에서 빌려보기도 했는데요. 인터넷까지 뒤지면 어렵지 않게 구할 듯도 하구요.
이리 보면 <중앙일보>가 참 좋은 신문이죠?^^;

노이에자이트 2010-07-16 16:31   좋아요 0 | URL
저는 오늘의 세계문학과 중국현대문학전집 다 있습니다.헌책방에서 구했지요(오늘의 세계문학 시리즈 중에선 조셉 콘라드<서구인의 눈으로>가 재미있었습니다.드릴러물로도 그만이더군요).토지개혁에 관심이 많아 주립파의 <폭풍취우>는 따로 구했습니다.소설 자체보다는 국공내전에 관심이 많아서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7-16 17:14   좋아요 0 | URL
후, 부럽네요^^ 콘라드의 <서구인의 눈으로>는 좋은 작품이죠. 콘라드의 정체성이 당대 정치 현실과 맞물려 잘 드러나지요. 그 극렬한 자기 부인을 에드워드 사이드는 높게 사구요. 한길사에서 펴냈던 콘라드의 <노스트로모>는 제국 미합중국의 모습을 예견한 훌륭한 작품이기도 하구요. 번역이 다시 되었으면 합니다만......
중국현대문학 번역은 유명 작가 위주라, 전집에 실린 작품들이 시간이 지나니 아쉬운 게 많아요. 말씀하신 저우리보도 그렇구요. 왕멍의 <변신하는 인형>은 번역자인 전형준 교수가 다시 살렸습니다만. 번역자와 연구자들의 몫이겠죠.

다이조부 2010-07-16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프가 중앙일보에서 근무합니다. 만나면 한 번 그 책 물어봐야겠네요 ㅋ

파고세운닥나무 2010-07-17 11:52   좋아요 0 | URL
90년에 중앙일보사에서 나온 소련.동구현대문학전집도 컬렉터들이 많이 찾는 책이죠. 동유럽 쪽은 이후에도 번역이 잘 안됐으니까요. 이 책도 물어봐 주실래요?^^
 
발칸의 전설 대산세계문학총서 49
요르단 욥코프 지음, 신윤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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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근래 동유럽 소설을 찬찬히 읽어보고 있다. 한국의 번역 현실에서 동유럽 문학을 마주하기가 어려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번역자들의 발품과 손품이 정성스레 녹아 있는 작품들이 여기 저기 있어 반갑게 읽고 있다. 창비는 근래 세계문학전집을 마련하며 폴란드 소설선을 출간했는데 꽤 이채로운 작품들이 실려 있다. 유럽 문학의 중심이라는 영국, 독일, 프랑스 사이에 끼어있는 폴란드 소설선이 외로워 보이지만 그래도 동유럽을 챙겨준 출판사가 고맙다. 작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루마니아 출신 헤르타 뮐러의 소설도 꼼지락, 꼼지락 보고 있다.  

  동유럽 소설을 보며 우선 갖는 인상은 '끼어서 부대낌'이다. 독일, 프랑스, 터키, 러시아 사이에 끼어 있어 부대끼는 모습을 문학은 그려내고 있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강대국 사이에서 어찌할 바 몰라 당황하는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주체성을 지키려는 모습이 가련하다. 우리의 모습과도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 책은 불가리아 작가 요르단 욥코프의 단편소설선이다. 작가는 외교관이기도 한데,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려는 조국의 현실을 직접 체험하고 불가리아인의 정체성을 찾고자 소설을 썼다 한다. 소설은 대체로 슬프다. 연인과 가족, 인간성을 지키고자 노력한 사람들이 속절없이 죽음을 맞는다. 싸움의 상대는 불가리아를 지배했던 터키인들이다. 혹은 지배층에 빌붙은 불가리아인들이다. 터키의 이슬람 문화 강요 속에서도 기독교 신앙과 문화적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인물들의 노력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역자에 따르면 이 소설은 '불가리아인의 성서'란 별칭을 갖는다 한다. 짧은 편폭 속에 사람과 시대의 아픔이 잘 녹아있다. 책을 덮으니 별칭마저 슬프게 다가온다.

 

Yordan Yovkov(1880–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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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07-14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가리아 하는게 막상 떠오르는게 아무것도 없네요.

국제관계학을 전공했는데도 다른 나라에 관하여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는

나라가 거의 없네요 --

불가리아 하니까 고작 생각한게 불가리스 라니 쩝~ 이렇게 무식해서야~ 휴

파고세운닥나무 2010-07-15 11:55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소설 보며 불가리아 현대사에 대해 조금 알게 됐어요.그저 이름만 아는 나라였는데 말이죠.국제관계학이 전공이세요?어려운 공부 하셨네요.사회과학 가운데 꽤 관심이 가는 분얀데 말이죠.

반딧불이 2010-07-15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유럽에 대해 아는게 너무 없다는 걸 저는 최근에서야 깨닫게 되었어요. 불가리아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또 도움을 주시네요. 고맙습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07-15 13:30   좋아요 0 | URL
동유럽 여행을 가셨다면 무지한 저에게도 도움을 주셨을텐데요^^ 저도 아쉽네요.
 
무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0
이광수 지음, 정영훈 엮음 / 민음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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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를 어슴하게나마 알던 젊은이가 근대 아닌 사회를 살아간다.
 

  그가 부딪쳐 깨지는 것은 근대가 부서지는 것이다.

 

  이광수가 알던 근대는 이형식에게 녹아있다.

 

  그의 몰이해가 작품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물론이다.

 

  한국적 근대의 의미와 함께. 

LeeGwangSu.jpg 

              이광수(1892-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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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07-09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시기를 살던 루쉰, 소세키, 이광수의 작품을 보면 근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이렇게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무조건 가르치려 드는 이형식류의 계몽에 짜증이 나다가도 웃어버렸던 기억이 새롭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7-10 12:17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이에요.나쓰메까지 갈것도 없죠.전에 말씀 드린 후타바테이의 <뜬 구름>과만 비교해봐도 <무정>이 얼마나 너저분한지 알 수 있죠.
 
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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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루하게 읽은 유일한 황석영의 소설이다. 작가도 대하소설을 '낡은 방식'이라 말하는데, 대하소설로 이 작품을 대했다면 그 지루함이 오죽했으랴? 소설의 지루함을 확 깼던 게 책의 말미에 있는 '작가의 말'이었다. 황석영은 몽자(夢子)류 소설의 예로 <홍루몽(紅樓夢)>을 들며 '현실세계가 어째서 변해야 하는가를 드러내준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 여기의 삶이 꿈처럼 덧없다고 덧붙이며, 하여 소설의 제목을 '강남몽(江南夢)'이라 지었다 말한다.   

  작가는 최근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도 조설근의 <홍루몽>을 추천하는 책으로 꼽았다. 중문학계에선 <홍루몽>만을 연구하는 '홍학(紅學)'이 따로 있을 정도로 <홍루몽>은 중국인의 사랑을 받는 소설이다. 대중적 인지도만을 놓고 보면 우리의 <춘향전> 정도가 비교될 듯 하다. 황석영은 <홍루몽>을 말하며 변혁을 얘기하지만, 글쎄 난 아니라고 본다. 변혁보단 허무에 방점을 찍어야할 듯 한데 말이다. 작가 조설근의 삶을 비추어봐도 몰락한 현실을 인정하긴 싫지만 현실을 바꾸기 보단 과거로 돌아가려는 생각이 강하다. 중국인의 감성도 소설에 녹아있는 허무에 대한 편애가 더 강한 듯 하고 말이다.  

  황석영이 변혁을 얘기하지만 근래 그의 언행을 보며 난 허무를 느끼곤 한다. ‘광주사태 같은 것은 유럽에서도 있었던 것’이라 말할 때도 좌우의 문제보단 허무를 느꼈다. 'MB정부는 중도실용이다'는 말도 그렇고 말이다. <강남몽>에선 변혁의 기운을 느낄 수 없었는데 작가가 변혁을 얘기하길래 뚱딴지 같아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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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07-07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인데 벌써 읽었네요 ^^ 부지런 하셔라~

김훈이 그러더군요. 자기 또래 중에 현역으로 뛰고 있는 사람은 황석영이랑 자기

밖에 없다고~ 나머지 사람들은 병들었거나 활동을 하지 않는다고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7-07 14:59   좋아요 0 | URL
남성작가로만 놓고 봐도 김원일이나 박상륭은 소설을 쓰고 있는데요. 김훈과 황석영처럼 활발하게는 아니더라도 말이죠. 김훈의 친교 범위에서 하는 말인 것 같은데요......
<오래된 정원>을 읽을 땐 설렘이 있었죠. 대학 1학년 때 출간되었는데 읽으며 일종의 감격도 있었구요.
황석영에게 바람이 있다면 그저 소설을 묵묵히 써 주었으면 하는 거에요. 그도 청춘은 아니니까요.

미지 2010-07-08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석영의 근래 언행에 허무를 느끼는 또 한 사람입니다. 서평 잘 읽었습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07-08 18:11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그래도 신간을 챙기는 걸 보면 저는 여전히 황석영을 좋아하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