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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의 시간 - 강만길 자서전, 2010년 제25회 만해문학상 수상작
강만길 지음 / 창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자서전을 꽤 좋아한다. 우선은 진실의 영역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진실일까?’하는 의문은 늘 갖는다. 사건이 이루어진 시공간을 떠난 상태에서 인간은 과연 얼마나 진실할 수 있을까? 자신을 객관화했기에 진실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이 곳에 주관으로 똘똘 뭉친 내가 서 있는데 객관화가 쉬울 리 없다. 인간은 자기 연민과 자기 합리화에 능한 존재다. 다음은 내 자신에 대한 계몽을 수행하고자 함이다. 덜 된 인간인 내가, 좀 더 된 인간을 보며 무언가 배우고자 한다. 계몽이 늘 성공하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역사학자 강만길의 자서전이다. 1933년생이니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을 모두 겪은 분이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유소년기에 8.15와 6.25를 체험한다. 역사학도로서 4.19와 5.16을 목도하고, 역사학자로서 5.18과 6.10을 몸소 겪는다. 퇴임 후에는 사학 비리로 말썽이 많았던 상지대 총장을 지내고, 민주정부 10년간 통일고문을 맡기도 한다. 노무현 정부 때는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으로도 활동한다.
저자는 '역사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역사는 이상의 현실화 과정이다'라고 답한다. 일제강점과 전쟁의 잿더미에서 민주와 통일의 시대를 열고자 직접 역사 속에 뛰어든 역사학도의 삶을 따라가보니 '역사는 이상의 현실화 과정이다'란 답이 눈물겹다. 이명박 정부를 두고도 저자는 어떻게든 역사는 앞으로, 앞으로 나가고야 만다고 말한다.
자서전을 남기지 않는 우리 역사학계에서 이만한 기록을 갖게 됨이 소중하다. 저자도 한 인터뷰에서 기록을 남기는 것 자체가 위험했던 시대를 이유로 들던데, 그러고 보니 역사학자 김성칠 선생의 일기(<역사 앞에서>)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다. 책에서 '역사론'을 쓰는 게 역사학자로서 마지막 바람이라고 하시던데, 그 바람이 꼭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着語 :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신영복 교수의 스승이기도 한 노촌 이구영 선생의 자서전인 <역사는 남북을 묻지 않는다>는 현대사를 기록한 자서전으로 꼭 기억해야 한다. 두 자서전은 계몽의 역할을 적어도 내겐 충분히 해냈다.
黎史 姜萬吉(1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