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몬의 시대, 생명의 논리
박경미 지음 / 녹색평론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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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에 대해서 우선 말을 꺼내본다. <마태복음> 6장 24절이다. "그 누구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이쪽을 미워하고 저쪽을 사랑하거나, 혹 이쪽을 받들고 저쪽을 멸시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마몬을 함께 섬길 수 없습니다." 예수의 말인데, 마몬은 부나 재물을 상징하는 아람어이다. 하나님과 마몬은 함께 섬길 수도, 함께 할 수도 없다. 주인이 둘일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의 선명한 이 논리는 '마몬의 시대'를 힘겨이 살아가는 나에게 '생명의 논리'란 무엇인가 고민케 한다.  

  저자는 기독교학과 교수이다. 주로 종교와 신학 관련 서적을 번역하는데, 나는 <녹색평론>에 기고하는 글을 종종 보았다. 이 책은 <녹색평론>에 기고한 글과 종교 관련서 역자 해설을 묶어 놓았다. 시사 관련한 글도 보이는데, 현 정부와 한국 교회에 대한 쓴소리가 돋보인다. 저자는 근래 '이반 일리치 읽기모임'을 통해 새로운 배움과 사귐을 가졌고, 진실한 말과 글에 대한 절박함도 가졌다고 한다. '책머리에'서 박경미 교수는 학자로서 글을 쓰는 어려움에 대해 토로한다.

  "논문이란 형태의 글쓰기는 글을 쓰는 행위가 본질적으로 공격적인 행위임을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과거의 축적물들을 뒤져서 이리저리 각을 떠 '말길'을 찾아내고 미래의 있을 수 있는 모든 반론들을 앞당겨 격파하면서 글을 쓰기에는 한마디로 체력이 달렸고, 처음의 문제의식을 놓치기 일쑤였다. 대학시절 신학의 길로 이끄셨던 돌아가신 허혁 선생님은 "베끼지 않고는 논문을 쓸 수 없어서" 좋은 책을 번역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미련하게 표절이 들통나게 논문을 쓰지는 않았지만, 엄밀히 말해 아이디어를 가져오는 것도 표절이라 본다면 내가 쓴 논문 중 베끼지 않은 논문은 없고, 표절 아닌 논문도 없다." 이만한 지적 염결함을 근래 나는 보지 못했다. 교수 출신의 정부 각료 후보자들이 논문을 표절했니, 안 했니 하는 소동이 우습게 여겨질 만큼 저자의 염결함은 높이 사두고 싶다. 

  저자는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에 대해서 알량한 논리라며 비판한다. "이반 일리치의 말대로 비가 오는데 우산을 만들어 비를 피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비 자체를 없애려 하는 것이 근대산업주의의 오만이다. 유전자조작과 우생학,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극단적인 공학적 접근, 그리고 가장 가까운 예로는 한반도대운하 같은 것이야말로 이러한 근대적 오만과 어리석음의 극치이다."('이른바 '실용주의'의 내면성에 대하여' 중) 홍수로 수해를 입는다며 멀쩡한 강을 메우고 괜한 물길을 내는 게 이 정부의 실용주의이다. 내면성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실용주의이다.  

  교회 다니는 이로서 이런 말은 정말 가슴 아프다. "이랜드 박성수 회장은 "성경에는 노조가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고, 이랜드 전 직원 앞으로 "불법파업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노동조합원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현장으로 복귀하여 다시는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의 달란트(임금)에 불만을 갖지 않는 성실한 종의 소임을 다하도록" 기도하라는 기도제목을 하달했다."('예수의 교회, 마몬의 교회' 중)  

  김두식 교수가 한 강연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님은 한국 기독교 전통이 낳을 수 있는 최대치의 인물입니다. 미국 기독교 전통이 낳을 수 있는 최고의 인물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구요. 상향성의 한국 기독교 문화가 만들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모델이 이명박 대통령님입니다." 주목할 건 '상향성'이라는 말인데, 상향성의 교회를 박경미식으로 바꾸어 말하면 마몬의 교회이다. 결국 상층엔 권력과 더불어 돈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상층 지향과 마몬의 현신인 이명박 장로가 대통령으로 있는 이 시대는 정말 마몬의 시대이다. 누구보다 기독교인들이 이를 뼈아프게 새겨야 한다. 예수가 우리에게 "여러분은 하나님과 마몬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난 어떤 생명의 논리로 마몬의 시대를 뚫고 나가야 할까? 예수의 선명한 논리를 두고 다시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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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10-09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랜드 회장의 말이 참 거시기합니다.성경이 저런 식으로 인용되는 사례가 의외로 많더군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0-09 17:25   좋아요 0 | URL
기독교 기업이라는 이면엔 오너의 저런 해괴망측한 논리가 있었던 거죠.
마몬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논리로 움직이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는 생각입니다. 두 장로 모두다 말이죠.

다이조부 2010-10-14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 있는 녹색평론 을 뒤져봐야겠네요.

김두식교수 강연회에 참여하셨나봐요?

이 책은 엄마한테 선물하면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0-14 11:49   좋아요 0 | URL
저도 친한 친구한테 권했는데 구입했더라구요.
김두식 교수가 백주년기념교회에서 운영하는 양화진문화원에서 강연을 했어요. 직접 가보진 못하고, 교회 홈페이지에서 동영상으로 보았네요. 얼마 전엔 박원순 선생님도 같은 곳에서 강연을 해서 들었구요.
개인적으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고 있는데, <녹색평론>을 구독해 볼까 고민중이에요. 대학 입학 때 <창비>는 제게 우상에 가까웠는데, 이젠 <녹색평론>이 제 생각에 더 가까운 듯 합니다.

다이조부 2010-10-14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녹색평론 구독도 좋지만, 제가 더 하고 싶은건 녹색평론 모임에 한 번 나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왜 있잖아요? 잡지 뒤에 있는 지역 독자들 모임 말이에요.

창비 이야기 하니까 옛날 룸메이트 형이 신입생때 외판원에게 창비 옛날 책들을

모조리 구입해서 이걸 언제 다 읽냐고 걱정하던게 생각나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0-14 18:10   좋아요 0 | URL
녹색평론 모임 가운데 '이반 일리치 읽기 모임'이 있다던데 저도 꼭 가보고 싶네요.
지역 모임도 좋구요.
 
불편해도 괜찮아 -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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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으로 김두식 교수의 책은 모두 보았다. 법조계와 기독교계에서 '삐딱선'을 타는 저자는 따로 연구를 필요로 하는 인물이다. 연구의 한 실마리로 한국 사회의 레드 콤플렉스를 들 수 있겠다. 김두식의 외삼촌이 한국전쟁 중 북한을 택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검사 임용 때도 자신은 따로 면접을 봤다고 한다. 집안의 사정이 한 몫을 했으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김두식을 보면 뚱딴지 같이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자!'는 생각을 한다. <불편해도 괜찮아>에는 저자가 본 영화와 드라마가 숱하게 등장하는데 그 숫자가 우선 놀랍다.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며 틈나는 대로 영화를 봤다지만 영화편수만이 아닌 꼼꼼하게 뜯어보는 눈도 놀랍다.  

  저자의 전작인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를 보면서도 해박한 신학 지식에 놀랐다. 김두식은 대학 때 한국기독학생회(IVF)에서 활동했는데 이 단체는 '기독 학사 운동'을 사명으로 삼고 이성적이고 지적인 크리스천을 양성하고 있는 걸로 안다. IVF는 IVP라는 출판부를 운영하는데 양서를 출간하는 걸로 이름이 나 있다. <불편해도 괜찮아>를 보며 자극 받아 나도 서점에 가 IVP에서 출간한 철학자 강영안의 책들-<신을 모르는 시대의 하나님>, <십계명 강의>-을 구입했다. 김두식은 선교회 활동 시절 친구들과 신학 서적을 섭렵하고 토론도 했다는데 근래 그 공부가 결실을 맺는 듯 하다.

  이 사람의 공부가 근래 결실을 맺는다는 생각은 <불편해도 괜찮아>를 읽기 전에도 했다. 김두식이 한 강연회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자신의 어린 딸이 성경엔 귀신 얘기가 많은데 왜 자기 눈엔 귀신들이 보이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빠 눈엔 귀신이 보이냐고도 물었다. 김두식은 자신도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는데 왜 딸과 자신의 눈에 안 보일까 고민했다고 한다. 고민의 결과는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자체를 사탄이 돌리고 있지 않나 하는 것이었다. 자본주의라는 세련된 시스템 사이에 숨어 사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별스런 얘기가 아니달 수 있지만 경제학자 칼 폴라니도 주저인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에서 비슷한 얘기를 해서 눈이 갔다. 폴라니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를 빌려 자본주의를 '악마의 맷돌'이라 말한다. 악마가 굴리고 돌리는 맷돌 밑에서 사람들은 악마를 보지 못하지만 고통 끝에 죽어간다. 비슷한 맥락에서 프리모 레비도 이런 말을 남긴다.  “괴물이 있긴 하다. 그러나 그 수가 많지 않아 그리 위험하지 않다. 실제로 위험한 것은 의문을 품지 않고 무조건 믿고 행동하는 평범한 기계적 인간들이다.” 맷돌 밑에서 자본주의 혹은 괴물을 무조건 믿고 행동하는 기계적 인간들이 위험한 것이다.  

  책에서 장애인 문제를 언급하며 김지석 <한겨레> 논설위원의 칼럼을 저자가 문제 삼고 있다. 장애인의 현실을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게 비판의 요지인데, 비판에 동의한다. 하지만 김지석 논설위원이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장애를 입은 분이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장애인의 세계를 이제야 알아간다는 반성과 희망이 뒤섞인 자기 다짐이 칼럼의 요지인 듯 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김두식 교수의 트위터로 글을 남겼는데 저자가 이렇게 답해왔다. "김지석 논설위원께서 교통사고로 장애를 갖게 되셨다는 사실은 제 책 나온 이후에 알았습니다. 원래 글을 선의로 쓰신 것은 처음부터 알았고요. 제 책을 보셔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실 것 같습니다."(2010년 9월 19일) 김지석은 칼럼집(<시대의 과제에 맞섰는가>)에 실린 자전적인 글을 통해 자신이 장애인이란 사실을 말하고 있다. 문제 삼은 칼럼이 저자의 상황을 알고나면 달리 이해될 듯 해 댓글을 달아봤다.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를 비판한 대목은 경청할 부분이다. 난 이 영화를 이창동이 새로 보여준 영화적 세계를 중심으로 보았는데 김두식은 장애인의 현실을 틀거리로 삼아 얘기를 꺼냈는데 고민해 볼 여지를 남겨 주었다. 고마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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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09-28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두식의 책은 다 마련해놓고도 한권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또 일깨워주시네요. 언젠가 날잡아 한꺼번에 읽어야할까봅니다.

2010-09-28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8 2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8 2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9 0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9 1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9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9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2 2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이조부 2010-09-30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문열 아버지도 월북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아저씨는 그것이 컴플렉스가

되어서 그것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저돌적으로 우향우 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구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9-30 10:15   좋아요 0 | URL
문학으로나마 한국 사회의 주류가 되려했던 이문열의 절박한 선택이겠죠.
같은 콤플렉스가 김두식은 검사라는 주류에 들었다가 외려 겉돌게 되는 원인을 만들기도 하구요. 물론 김두식을 비주류라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해선 논란이 있을 수 있죠. <불편해도 괜찮아>가 발간되었을 때 한 시민단체운동가가 그 책을 비판적으로 읽었는데, 그 분의 논지도 김두식은 어찌되었든 주류라는 것이었어요. 김두식은 그 비판을 수용한다는 얘기를 했구요.
중산층, 법조인, 국립대 교수, 기독교인이라는 자신의 범위안에서 소수자를 이해하려는 그의 뜻은 충분히 사둘만하다는 생각이지만요.
 
<하찮은 인간 호모라피엔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존 그레이 지음, 김승진 옮김 / 이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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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존 그레이라는 철학자는 처음 접한다. 책을 읽어가며 이 사람이 철학의 지형도에서 어디쯤 자리잡고 있을까 궁금했다. 반(反)휴머니즘의 입장에 선다는데 니체와 쇼펜하우어를 자주 인용하는 걸 보니 지형도가 대충 그려지는 듯 하다. 눈길이 더 갔던 건 저자가 지적 친밀도를 과시하는 제임스 러브록이란 사람이다. 책의 뒷 면을 보니 러브록은 이 책의 서평을 쓰기도 했다. 받아 적어 본다.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이 계몽된 휴머니즘이라는 꿈을 꾸고 있는 우리를 깊은 잠에서 깨웠다면 존 그레이의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는 우리로 하여금 거울을 보고 스스로를 직시하게 한다."

  일종의 상찬인데, 러브록은 '가이아 이론'을 주창한 과학자이자 생태학자이다. 한국에선 <녹색평론>이 공들여 소개하는 사람이다. 나도 평소 좋아하는 <녹색평론>을 통해서 러브록의 생각을 접했다. 참고로 <녹색평론선집1>에는 러브록의 '가이아를 위하여'를 비롯해 '가이아의 경제학' 등 가이아와 관련한 글들이 실려있다.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이 내게는 에콜로지를 거쳐 다가와 거부감이 덜했다면 직설적인 그레이의 주장은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예컨대 이런 대목이다. "기독교는 역사란 죄와 구원의 드라마라고 파악했다. 휴머니즘은 구원에 대한 이 기독교 교리를 보편적 인간 해방이라는 기획으로 바꾼 것이다. 진보라는 개념은 신의 섭리에 대한 기독교적 믿음의 세속 버전인 셈이다. 고대의 다신교 철학자들 사이에 진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 진보에 대한 믿음에는 또 다른 원천이 있다. 과학은 인간의 힘을 증대시키면서, 인간 본성이 가진 결점들도 확대시킨다."(11면) 그레이는 기독교, 휴머니즘, 진보주의, 과학을 싸잡아 비판한다.  

  비판의 틀거리는 인간중심주의이다. 이 정도의 주장은 러브록의 사상이 서 있는 에콜로지와 별 다르지 않은데, 내게 반감을 갖게 했던 건 기독교에 대한 피상적 이해 때문이다. 또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동양 종교에 대한 편애로 대체하는데 그가 도교를 이해하는 정도도 깊지는 않은 듯 하다. 참고로 이 책의 원제는 <Straw Dogs(짚으로 만든 개)>인데, 이 단어는 <도덕경> 영문판에 등장한다.  

  노자에게 덧씌어진 자연주의와 신비주의에 대해선 강신주가 비판한 적도 있다. 노자 역시 여느 유가와 다르지 않게 국가라는 시스템 속에서 사유한 철학자라는 게 강신주의 주장일텐데 이 주장에 동의하는 나로선 그레이가 갖는 도교에 대한 생각에 수긍하기가 힘들다. 또한 기독교가 인류-저자는 인류란 말도 잘못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역사를 망쳐놓은 주범이라 주장하는 저자의 생각에도 동의하기 힘들다. 기독교의 죄악사에 대해선 그레이를 통하지 않고서도 배울 수 있고, 배웠던 자리가 많은데 성긴 주장으로 과한 비판을 하는 저자의 주장은 자꾸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저자의 책 번역이 이루어지고 있는 걸로 아는데, 또 만남을 갖는다면 좀 더 의미있는 책읽기가 되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John N. Gray(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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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09-24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절 잘 보내고 있나요?~ 저는 천안에 기도원 1박2일로 다녀왔습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주인장의 리뷰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궁금합니다 ^&

파고세운닥나무 2010-09-24 22:05   좋아요 0 | URL
부모님 따라 가신 건가요?교회 안 다니시는 걸로 아는데 말이죠.
저는 교회 다니면서도 기도원 가는 걸 무지 싫어해요. 유독 좋아하는 사람들도 꽤 있던데 말이죠.
<나는 행복합니다> 리뷰는 영화 보곤 블로그 영평란에 올려놨어요. 원작 소설과 비교해본 짤막한 글이구요^^
 
평화의 얼굴 - 총을 들지 않을 자유와 양심의 명령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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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두식이란 사람을 좋아하고, 그의 주장에 공감하지만 <평화의 얼굴>을 읽는 데는 적잖은 망설임이 있었다. 한국에선 소위 '이단'이라 불리는 종파의 교인들이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하고, 그들을 옹호하는 게 이 책의 큰 줄기이니 이 책 읽기만큼은 미루고, 미뤄뒀다. 나는 김두식과 같은 장로교에 속한 교회를 다닌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이 책의 주장인 반전(反戰)에 대한 내 자신의 생각이 명료하지 않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기독교 작가 C.S.루이스가 <영광의 무게>에서 '나는 왜 반전론자가 아닌가? _ 전쟁에 대한 태도'란 꼭지를 빌어 반전론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치는데 사실 난 그의 주장에 많이 공감하고 있다. 어쩌나? 그래도 읽고 싶은 마음이 승하여 책을 읽어간다.  

  이단에 대한 기억은 둘 있다. 동생이 어느 교회를 잠깐 다녀왔다는데 어딘지 말을 하지 않길래 궁금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여호와의 증인'이었다. 화들짝 놀라 이유를 말하며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평소의 동생은 그렇지 않는데 고집부리며 계속 나가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고집스레 말하는 동생이 평소완 너무 달라 무서웠다. 동생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내게 말을 하는 듯 했다. 가족이 총동원해 말리니 이후 동생은 더 이상 그 단체에 나가질 않았다. 대학 때는 선교회에 있었는데 한창 세를 확장하던 이단 종파와 싸운 적이 있다. 쫓고 쫓기며 몸싸움도 했는데, 지금도 그들의 무서운 눈이 기억난다.   

  C.S.루이스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에 옥스퍼드 반전론자 협회에서 '나는 왜 반전론자가 아닌가?'란 제목으로 강연을 한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루이스는 자신의 경험과 성경을 근거로 주장을 펼친다. 주장의 대종은 이렇다. "반전론자들은 전쟁이 언제나 유익보다 해를 더 많이 끼친다는 그들의 주된 주장을 사실로 내세울 것입니다. 전쟁이 아무 유익을 끼치지 못한다는 말은 사실과 너무 거리가 먼 주장이라서 역사적 견해로 볼 수도 없습니다. 1914년, 유럽이 독일의 수중에 들어가는 상황을 '악'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악을 방지한 전쟁은 그 부분에서 정당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예수의 언행을 제외하곤 베드로나 바울 같은 예수의 제자들은 폭력 사용을 승인한다는 것이다. 루이스도 문제는 예수의 언행이라는 것을 인정하는데, 반전론자들의 주장처럼 예수가 폭력 사용을 강고하게 거부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란 구절을 해석하며 이 말이 '위해 일반'에 대한 무저항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지만, 향후 나타날 '특정한 위해'에 대해서까지 무조건 금지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 책을 읽으며 우선 고마웠던 건 정통과 이단을 말하기에 앞서 평화를 먼저 말하는 게 기독교의 정신에 맞다는 사실을 알게 해줘서이다. 싸우는 사람들을 향해 싸움을 멈추라는 말을 건네기보다 외려 더 부추기고 싸움에 뛰어드는 기독교는 비종교인들 앞에서 정통과 이단을 말할 자격도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실제 참전 중에 대학 친구를 잃고 남겨진 친구의 가족들을 평생 거뒀던 루이스다. 그는 반전주의가 곧 평화주의가 아님을 말한다. 전쟁 안에 가로놓인 명분과 이익도 잘 살펴야 한다고 덧붙인다. 그의 주장이 평화주의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용서는 말하고 있음을 난 발견한다. 이 것만으로도 난 그에게 고마움을 갖는다. 물론 김두식에겐 더한 고마움을 갖지만 말이다.

着語 : 책 가운데 이스라엘의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제도를 다루는 장이 있다. 병역 거부를 지지하던 인사들 중 한 사람이 <나와 너>의 철학자 마르틴 부버이다. 결국 부버가 전쟁을 반대했다는 말일텐데 이 얘기가 쓸쓸히 다가왔다. 이유는 그가 1948년 팔레스타인으로 귀국할 수 있었던 것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의 전투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사이드 가족이 살던 집을 전쟁을 통해 차지한 그가 '병역 거부'와 '사랑', '나와 너'를 말함이 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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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09-16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는 주인장 글 길이가 압축적이고 짤막했는데 언제부터 인가 분량이

많이 늘어난것 같은데 그 시점을 모르겠어요~ ^~^

김두식 아저씨도 트위터를 하더군요. 팔로잉 하는데 읽는 재미가 쏠쏠하네요 ㅎ

파고세운닥나무 2010-09-17 00:23   좋아요 0 | URL
요새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인가봐요^^;
저도 김두식 선생 팔로우 하는데 말이죠. 이 책 읽고 물어볼 게 있어 트윗 남겼는데 대답해 주시더라구요.
우린 트위터에서도 친구이군요^^

다이조부 2010-09-18 0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위터에 가입은 작년에 했는데

아시다시피 컴맹에다가 기계치여서 활동은 전혀 없어요 ㅋ

그냥 구경하는 정도~

파고세운닥나무 2010-09-18 15:02   좋아요 0 | URL
가입은 일찍 하셨네요. 저는 아이폰 사용하면서부터 이용했는데 말이죠.
뭐,저도 좋아하는 분들의 일상과 생각을 눈팅하는데 이용할 따름입니다^^

다이조부 2010-09-18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폰 유저군요 ^^ 저는 전화중독 증세가 심해서 당분간 전화기를 사용하지

않ㅇ ㅏ요~ 전화기를 달고 살다가 없으니까 처음에는 허전했는데 시간 좀 지나니까

주변에 친구 몇 명이랑 가족은 불편하다고 투덜대도 저는 편하네요~ 살짝 이기적인가?

파고세운닥나무 2010-09-18 19:54   좋아요 0 | URL
친구 하나가 휴대폰을 잃어버렸는데 안쓰럽기도 한데 한편으론 부럽기도 해요^^;
공부 하시는데는 당분간 없는 게 나을듯 합니다만. 행시 축소가 백지화 되지 않았나요?

2010-09-20 1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20 1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이조부 2010-09-20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주인장 블로그에 가게 됬어요~

어떻게 주인장 얼굴 보게 됬네요~

김두식샘 블로그 구경하다가 어째 그렇게 됬네요. 아무튼 반가워요 ㅋ


파고세운닥나무 2010-09-20 14:51   좋아요 0 | URL
아,트위터 계정에 올린 사진 말이죠? 졸 때 후배가 몰래 찍은 사진인데요^^;
트윗 아이디가 뭐예요? 팔로우 하려구요^^

반딧불이 2010-09-20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닥나무님. 비가 와서 보름달은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구름뒤에서 달은 빛나고 있을거에요. 그런 달처럼 환하고 넉넉한 명절 보내시기 바래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9-21 02:00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마음만이라도 정말 풍성한 한가위였으면 합니다. 그런 마음을 갖기가 너무 어려운 요즘인 것 같아 감히 저와 반딧불이님께 그런 행운이 있길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늘 힘과 도움이 되는 말씀에 고마움을 전합니다.

다이조부 2010-09-20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uniqyahoo 입니다.

가입한지는 1년이 넘었는데 규모는 주인장거보다 더 작아요~ ㅋ

파고세운닥나무 2010-09-21 02:04   좋아요 0 | URL
팔로우했습니다. 사진도 한번 봤으면 합니다만^^

2010-09-26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30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연스러운 건축>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자연스러운 건축
쿠마 켄고 지음, 임태희 옮김 / 안그라픽스 / 201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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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론 학제간 연구에 관심이 많다. 영어를 사용하는 이들은 'interdisciplinary study'라고 하는데, 접두사로 'inter-'가 붙은 걸 보니 둘 이상의 학문이 마주치는 학문이란 뜻이겠다. 대학(大學)이란 이름과는 달리 크고 종합적인 학문을 하기 힘든 곳이 요새 대학이다. 근대의 분절화된 학문은 그 속으로 들어가 코 박고 있어야 전문가란 이름을 얻는다. 다들 스페셜한 자신을 원한다. 전문가를 '스페셜리스트'라고도 하니, 모두들 전문가가 되기를 원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스페셜리스트에 딴지를 거는 일군의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주장이 '제너럴리스트'이다. 제너럴리스트 앞에 '높은' 같은 말들을 덧붙일 뿐이지 이 말을 사용하는 피터 드러커, 다치바나 다카시의 주장은 대동소이하다. 비슷한 맥락에서 '아마츄어리즘'을 주장하는 에드워드 사이드도 있다.  

  건축학이란 학문은 보통 공과대학에서 가르치고 배운다. 잔뜩 사족을 깔았던 건 이 학문이 학제간 연구에 가깝기 때문이다. 일본의 건축가 쿠마 켄고의 <자연스러운 건축>은 건축학이 학제간 연구임을 뚜렷이 보여주는 책이다. 미술과 음악,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한 데 뭉쳐 새로운 건축물 하나를 짓게 한다. 저자는 이 과정 속에서 했던 고민들을 찬찬히, 그리고 생생히 보여준다. 그 고민의 결실로 한 건축물을 바라보며 확인하는 게 이 책을 대하는 한 즐거움이리라.  

  제목으로 삼은 '자연스러움'은 저자가 지니는 건축 정신의 밑절미이다. 건축물은 자연과 자연스레 어울려야 하며, 인간과 또한 자연스레 만나야 한다. 결국 앞서 말한 학문간 종합 정신이 자연과 건축물, 인간과 건축물 사이에서도 자연스레 발휘된다. 그 자연스러움을 발견하는 게 이 책이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隅硏吾(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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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09-14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정학 수업 시간에 공채를 제너럴리스트 특채를 스페셜리스트 로 비유하더군요~


궁금한게 있는데요 가스펠 이 뭔지? 인터넷을 검색하니까 기독교복음 복음성가 이런게

뜨던데 말이죠~ 가스펠송 가스펠송 하는데 감이 잘 안와서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9-15 11:37   좋아요 0 | URL
가스펠은 God과 Spell의 합성어라고 해요. 신의 말 정도가 되겠죠. 보통 복된 소식이란 뜻의 복음이라고 번역하구요. 가스펠은 고대영어인데 현대어로는 good news정도가 되겠죠. 좁은 의미로는 신약성경의 4복음서만을 말하기도 하구요.
가스펠송은 복음성가라고 하는데, -송을 붙이지 않아도 가스펠을 그냥 복음성가라고 말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