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독서 계획』이 알라딘에서는 제법 '뜨거운' 책인가 보다.

금방 뜨거워졌다가 이내 식어버리는 '냉정과 열정 사이'의 커다란 간극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긴 하지만,  '평생 동안의 읽을 거리'를 친절히 안내해 준다는 클리프턴 패디먼의 속삭임에는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그가 제안하는 '서둘러 읽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일단 '서둘러 구입한' 책들이 어제 배달되었다.

평소에는 좀처럼 서둘러서 빠르게 책을 읽는 법이 없기 때문에, 이번처럼 '한꺼번에' 대량으로 책을 구매할 일도 거의 없는데, 어쩌다가 이번에 '평생' 읽을 책들을 구매하느라 적지 않은 분량의 책을 왕창 사들이게 되었다. (책의 권수로 보나 지출 금액으로 보나 단일 규모로는 알라딘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두 번째로 많은 규모이다)

여러 권의 책에 대해 한꺼번에 소개하는 식의 글들은 '인터넷 전문 서평꾼'에게나 어울리는 영역이므로 나의 관심사항이 아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새로 구입한 책들의 외양이라도 보여드리는 일이 아닐까 싶어 이 글을 쓰게 되었는데, 『평생 독서 계획』을 펼쳐 들고 저자 서문과 역자 후기 등을 읽어보니 꽤나 마음에 들어 '그 책'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고 싶다.

1960년에 초판이 발간된 이후 수정판이 거듭되다가, 저자(1904-1999)가 사망하기 2년 전에 마지막으로 심혈을 기울여 손을 본 결정판이 이번에 나온 책이란다.  그래서 예전 판본에 들어 있던 작가들이 탈락되기도 했다는데, '시간의 테스트를 견뎌내지 못한 까닭'을 그 이유로 들고 있다.

월 듀런트의 『문명 이야기』같은 대형 논평서 역시 제외되었다. ······ 남의 책을 논평한 그런 책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간격을 뛰어넘어 독자에게 직접 자신의 사상을 호소하는 책들만 선택하기로 했다.

이 부분을 읽으니 나 개인적으로도 '남이 쓴 책을 읽고 나서 쓴 글들'을 담은 책들은 여태 '한 권'도 제대로 사서 읽은 적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책을 읽을 시간을 그리 넉넉하게 확보하지 못하는 편이다. 그래서 애써 책을 읽을 시간을 만들게 되면, 남들이 쓴 서평글을 읽는 것보다 '독창적 사상'을 담은 책을 읽는 게 훨씬 더 낫다는 생각을 남들보다 훨씬 더 강하게 지니고 있다.

그런 면에서 나에게『평생 독서 계획』이라는 책은 다소 예외적인 경우인데, 그 이유 또한 이 책이 나름대로 '시간의 테스트'를 훌륭히 견뎌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공저자인 존 S. 메이저의 글이다)

가령 패디먼은 투키디데스에 대하여 집필하면서 이렇게 썼다. "그는 권력 정치의 내면을 파악한 최초의 역사가이다. 홉스, 마키아벨리, 마르크스는 모두 다른 방식으로 그의 자식들이다." 이 교차 참조는 독자들로 하여금 그 작가들을 즉시 뒤져보게 만들려는 뜻이 아니다. 이런 독창적 사상을 가진 작가들이 오랜 세월 동안 서로 '위대한 대화'를 나누어 왔음을 독자에게 상기시키려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여러 작가들을 동시에 생각함으로써 그 위대한 대화를 엿들을 수 있다.

나 또한 투키디데스의『펠로폰네소스 전쟁사』와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나름대로 꼼꼼이 읽었기 때문에 저자의 얘기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겠다 싶다. 그리고 키케로의 책(노년에 대하여/우정에 대하여/변론집) 뒷 부분에 나오는 '키케로의 생애와 사상'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키케로의 자식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 마키아벨리, 홉스, 몽테스키외, 볼테르, 칸트, 헤겔, 존 스튜어트 밀, 마르크스를 거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며 키케로와 '많은 대화'를 나눈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독자들과의 간단한 대화'에서 패디먼은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이 책들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길동무이다. 한번 당신의 내부에 자리 잡으면,  당신이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당신의 내부에서, 외부에서, 그리고 대인관계에서 꾸준히 작용한다. 우리가 친구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면 서두르는 법이 없듯이, 이 책들도 서둘러 읽어서는 안 된다. 이 리스트는 '단번에 슥 훑어보는" 그런 리스트가 아니다. 엄청나게 풍요로운 의미가 담겨 있기에 평생에 걸쳐서 캐내야 하는 광산 같은 것이다.

내가 이번에 사들인 책들도 어쩌면 평생토록 먹어야 하는 '쌀'처럼 평생에 걸쳐서 캐내야 하는 '광산' 같은 것이라 여겨진다. 우리는 '쌀'이나 혹은 '돈'으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는 없지만 다른 여러 예속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 이 순간의 세상에 집착하는 예속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 내에서 우리의 위치가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비록 명확하게는 아닐지라도-깨달을 수 있다. 우리가 저 오랜 인류의 역사로부터 어떻게 하여 이 세상에 오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위대한 사상들을 무의식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 또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사항으로서, 고매한 사상과 느낌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평생 독서 계획'에 담긴 저자와 책들을 '제대로' 읽어본 걸 기준으로 꼽아보니 고작 20권이 조금 넘는데 그쳐 무척이나 실망스러웠지만 저자의 다음 글에서는 조금 용기를 얻을 수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평생 독서 계획』은 18세부터 81세의 독자를 위한 것이다. 이런 독자들은 앞으로 남은 생애 동안에 그들의 정신을 풍요롭게 할 자료를 목말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까지 여기에 열거된 작가들의 10퍼센트도 제대로 읽지 않았을 것이다. 『평생 독서 계획』은 학부 시절에 여기에 제시된 책들을 많이 만났으나 정작 읽지는 못한 대학 졸업자들을 위한 책이다.

몇 해 전에 헤로도토스의『역사』를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이번에 '천병희 선생님'께서 번역한 책을 새로 사서 읽어볼 생각인데, 패디먼은 이 책 속에서 이런 조언을 담아 놓았다.

"그는 책 속에서 당신을 이끌고 가면서 자신(헤로도토스)이 들은 것을 본 것으로 바꾸어 놓는다." 이 조언은 하나의 단서가 된다. 그냥 따라가면서 사물들을 보도록 하라.

이 책의 역자는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여기서 우리는『평생 독서 계획』의 뜻을 되새겨보게 된다. 그것은 첫째, 이 책에 소개된 133명의 작가들을 평생에 걸쳐 읽으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둘째, 이 작가들을 시간을 들여 통독한 다음 그 중에서 특히 가슴에 와 닿는 작가들을 평생에 걸쳐서 재독 삼독 사독 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나는 이 책의 제목이 두번째 뜻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음 구절을 덧붙인다.

책과 인생의 상호 관계에 대하여 이런 좋은 비유가 있다. "인생의 마흔까지는 책으로 따지자면 텍스트이고 마흔 이후는 그 텍스트의 주석이다."

나도 마흔을 넘겨 조만간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책을 읽을수록 점점 더 책의 여백에 '주석'을 주렁 주렁 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자기 자신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Piget me stultitia mea(나의 우둔함은 나를 짜증나게 해)." 그리고 한참 있다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Ego mihi placui(그래도 나는 나 자신이 대견스러워)." 나는 대학에서 셰익스피어 드라마를 배울 때에는 "이 한심한 화상아!"라는 대사의 심오함을 전혀 알지 못했다. 사실 젊은 대학생에게 셰익스피어 드라마는 벅찬 독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왜 그것을 읽고 또 배울까? 어릴 때 그것을 배우지 않으면 나중에 나이 들어 그 가르침의 선견지명을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성숙을 촉진하는 교육의 본령이고, 『평생 독서 계획』의 원대한 취지이며, 텍스트와 주석의 관계인 것이다.

역자의 다음 구절도 나이가 들수록 더욱 공감하게 되는 내용이다.

좋은 책은 좋은 사람과 비슷한 점이 많다. 사람을 처음 만나면 잘 알 수 없듯이 책도 한 번 읽어서는 잘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여러 번 되풀이하여 읽는 과정에서 그 책을 잘 알게 되고 그리하여 아주 가까운 친구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가 없으면 더 이상 삶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마저 갖게 된다.

이것을 보여주는 좋은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클리프턴 패디먼의 책 얘기를 마칠까 한다.

독일의 소설가 프란츠 베르펠은 토마스 만의 『부덴부로크 가의 사람들』이라는 장편소설을 너무 좋아하여 평생 30번 가량 읽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으로 그 소설을 읽은 것은 죽기 한 달 전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30번이라는 횟수가 아니라 죽기 한 달 전의 경황없는 상황에서도 토마스 만의 소설을 읽었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베르펠에게 있어서 죽음은 곧 만의 소설을 읽지 못하는 것이었으리라.

이 대목에 이르니 갑자기  '책 읽어주는 남자'를 비롯해서 '책'이 등장하는 수많은 영화들이 마구 떠오른다.
어차피 영화나 소설이나 책에 담긴 내용들이 결국은 '삶 그 자체'에 다름 아닐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 평생 동안 일용할 양식인 '쌀'과 함께 배달되어 온 책 박스





 - '평생독서계획'과 무관한 듯 무관하지 않은 '대하소설'도 많이 포함해서 샀다.

    (술술 읽히는 소설을 특히 좋아하는 '평생'의 길동무인 아내가 먼저 읽을 책이다.)





 -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 역시 한 사람의 '평생'이 담긴 책이니만큼 분량이 만만치 않다.





 - 막강한 분량을 자랑하는 몇 권의 책들





 - 드디어 구입하게 된 '로마제국쇠망사 전6권'과(대광서림에서 나온 1권짜리 축약본만 읽었다)
   천병희 선생님의 번역본으로 다시 읽고 싶어 구입한 '역사'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그리고 이런 책들에 대한 얘기를  '아주 절묘하게' 제시한다는  '평생 독서 계획'





 - 기존의 책들이 왜소해 보일 정도로 엄청난 두께를 자랑하는 책들





 - 아직도 책꽂이에는 빈 틈이 많아 읽히지 않은 채로 편히 누워있을 공간이 많다.






 - 갑자기 '문학' 쪽으로 곁눈질을 많이 한 느낌이 든다.





책 읽기도 등산에 비유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정식으로 등반가를 양성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는  '등산학교' 과정을 졸업했고, 불가능에 대한 도전의 상징처럼 느껴지던 '암벽등반'까지 배우고 경험해본 터여서 '등산은 오히려 투자'와 더욱 닮았다고 생각한다. 이 둘은 본질적으로 어렵다는 특성과 실패에 따르는 참담한 결과와 성공에 뒤따르는 희열과 보상 등에서 특히 닮았다. 그리고 치밀한 사전 준비와 충분한 경험과 훌륭한 안내자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도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다시 책 읽기로 돌아와서 얘기해 보자면, 독서도 '등산'과 닮은 점은 분명히 있다고 본다.

쉽게 읽을 수 있는 부피가 얇은 책들은 쉽게 오를 수 있는 동네 주변의 야트막한 산들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두껍고 어려운 책들은 높이가 1,000m 혹은 2,000m 이상의 높은 산들에 가깝다고 본다. 한 사람의 평생의 노고가 닮긴 훌륭한 책들은 뛰어난 등반가가 '수많은 산들을 섭렵하고 난 뒤에' 오르게 되는 5,000m ∼ 8,000m 급의 '고봉'과 무척이나 닮았다고 본다. 왜냐하면 높은 산은 그 자체로 낮은 산들을 수없이 많이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낮은 산에 올라서는 도저히 볼 수도 없고 경험할 수도 없는 '놀라운 장관과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니까 말이다.

국내의 여러 산들을 자주 찾아 오르고 몇년 전 중학생이던 아들과 함께 백두산도 종주해 봤지만, 여전히 히말라야에는 여태껏 가보지 못했다. 10여년 전 등산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 어느 겨울날 등산학교 담임 선생님과 같은 반 동기들과 함께  '태백산 겨울산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 때 막 히말라야 원정등반을 마치고 돌아온 선생님으로부터 멋진 선물을 받았다. 네팔에서 직접 사오신 세계 최고의 봉우리들을 담은 사진인데 내 방 책상 앞에서 고개만 들면 (사진으로나마) 언제나 그 멋진 광경을 마주할 수 있다.

한때나마 에베레스트를 올라가 보고 싶은 열망도 있었던 것 같지만, 점점 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언젠가 부터는 저 높은 산들을 '실제로' 먼 발치에서나마 바라볼 수 있는 5,000m급의 히말라야 트레킹이라도 다녀왔으면 하는 소박한(?) 꿈으로 줄어들었는데, 그 꿈만은 여전히 뜨겁게 남아 있어서 여태껏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독서가 등산에 비해 명백히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 육체적 능력의 측면에서 나이가 들수록 등산이 어려워지는 반면 독서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 히말라야의 웅장한 모습이 담긴 사진의 일부

  ('파노라마' 사진의 일부분, 이 사진에는 Mt. Everest를 비롯 4개만 보이나, 전체 사진에는 16곳이 보임)




"참된 등산가는 하나의 방랑자이다. 내가 말하는 방랑자는 일찌기 인류가 도달하지 않은 곳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 일찌기 인간의 손가락이 닿지 않은 바위를 붙잡거나, 대지가 혼돈에서 일어난 이래 안개와 눈사태에 그 음산한 그림자를 비쳐온 얼음으로 가득 찬 걸리를 깎아 올라가는데 기쁨을 느끼는 사람을 의미한다.

바꾸어 말하면 참된 등산가는 새로운 등반을 시도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는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마찬가지로 그 투쟁의 재미와 즐거움에 기쁨을 느낀다. 그것을 이해하려면 그것을 느껴야 한다. 그것은 행복에 대한 강력한 감정이다. 그것은 온 혈관에 욱신거리는 피를 흐르게 하여 모든 냉소의 자국을 파괴하고 비관적인 철학의 뿌리 그 자체를 강타한다."

"인생의 근심걱정은 금권주의 및 사회의 본질적 속악함과 함께 아득히 저 아래쪽에 남는다. 위쪽에서 우리는 맑은 공기와 날카로운 햇빛 속에서 신들과 함께 걷고, 인간은 서로를 알며 자신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안다."

 - 알버트 프레드릭 머메리(Albert Frederick Mummery, 1855~1895) 『알프스에서 카프카스로』中에서












댓글(11) 먼댓글(3)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고전을 읽어라. 그전에 패디먼을 먼저 만나보라.
    from Value Investing 2010-12-27 21:34 
    우리가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 된다. 뛰어남이란 행위가 아니라 하나의 습관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인생에서 재미있는 사실은, 다른 건 다 마다하고 최고만을 받아들이려고 하면 그걸 얻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 서머셋 모옴 당신이 하는 것, 꿈꾸는 것은 모두 이룰 수 있으니, 시작하라. 대담함에는 천재성과 힘과 마력이 들어있다.  - 괴테  * * * 고전이 우
  2. 한 권의 책과 새로운 기원
    from Value Investing 2012-02-08 01:30 
    2주전 주말에 동네 도서관에서 (열람실에 앉아서 내가 가져간) 책을 읽다가 문득 칸트의『순수이성비판』이 생각나서 (도서실로 내려가서) 그 책을 찾아 펼쳐보게 되었다. 그건 순전히 쇼펜하우어 때문이었는데, 그의 책『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칸트 철학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전제'로 하고 쓰여진 책이었던 데다가, 더군다나 쇼펜하우어의 책을 다 읽고 나서까지도 정작 '칸트'의 그 어려운 책은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물
  3. 텍스트와 주석의 관계
    from Value Investing 2017-07-08 15:34 
    "모든 말은 결핍이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다 담지 못한다. 모든 말은 과잉이다. 내가 전하지 않았으면 했던 것들도 전하게 된다."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 * * 때로는 간단한 대사 한 구절이 우리의 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가령 "이 한심한 화상아!(Alas, poor caitiff)"는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의 4막 1장에서 나오는 말인데, 나는 이 대사로부터 위안을 얻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결혼 후 고부 갈등으로
 
 
라로 2010-10-11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공감가는 글이에요!! 저도 [평생독서계획]지금 읽고 있는데, 거의 반은 넘게 읽은것 같은데,,,정말 이 책 따봉이에요~.^^;(386세대만 아는 표현일까요??ㅎㅎㅎ)
정확하게 어떤 책들을 구입하신거에요????저 사진에 있는 책 다 주문하신건가요????와~~~
전 토지는 몇 년전에 한국 나왔을 때 다 사가서(남편에게 구박들으면서,,ㅠㅠ)한 달 정도에 다 읽었어요. 그렇게 몰아 읽었어도 감동은 정말 대단했지요!! 평생독서계획 덕분에 앞으로의 제 독서가 제대로 길을 찾게 될것 같아요~.
천천히 읽으려구요,,저도 님처럼~.^^

oren 2010-10-11 11:19   좋아요 0 | URL
박스에 담긴 책들을 꺼내보니 3줄로 쌓아올릴 수 있더라구요.
지금 세어보니 이번에 54권을 한꺼번에 샀네요.

전집류가 39권(토지 전21권 + 아리랑 전12권 + 로마제국쇠망사 전6권)이고,
낱권이 15권(일리아스, 오뒷세이아, 역사, 사기열전 1·2, 율리시스, 전쟁의역사, 욕망의진화, 화폐전쟁1·2, 죽음의 밥상, 동물해방, 새엄마 찬양, 위대한 설계, 평생독서계획)이네요.

이번에 산 책 가운데 '평생독서계획'에 포함된 책들은 서둘러 읽어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텐데, 저자의 제안에 따라 천천히 읽다보면 오랜 '세월'이 걸릴 수도 있겠다 싶네요.

2010-10-11 09: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1 1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0-14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머메리를 좋아하시는군요.산악문학 쪽에 관심이 있으시죠? 어린 시절 우에무라 나오미나 라인홀트 메스너 이야기를 탐독했던 기억이 납니다.

oren 2010-10-15 12:51   좋아요 0 | URL
머메리를 좋아한다기 보다는 '탐험'이나 '모험'을 좋아한다는 게 오히려 맞을 것 같아요.

전 총각시절 TV에서 문득 봤던 '번지점프'를 몹시도 하고 싶어서 신혼 여행도 일부러 '번지점프가 가능한' 호주로 갔었답니다.(그 일이 아주 가끔씩 비난받을 만한 일로 변할 때도 있었지만, 그 당시 번지~~의 쾌감은 하여튼 끝내줬답니다. ㅎㅎ)

우에무라 나오미는 저로선 생소한 이름인데, 지금 살펴보니 '내 청춘 산에 걸고'는 등산학교 다닐 때 읽어보라던 책 가운데 있었던 것 같아요.

히말라야 14좌를 최초로 완등한 라인홀트 메스너의 '나는 살아서 돌아왔다'라는 책은 저도 등산학교 다닐때(1994년) 사서 읽었는데 지금은 아쉽게도 절판이 되었군요.

노이에자이트 2010-10-15 16:31   좋아요 0 | URL
동양권 출신으로 가장 지명도가 높은 탐험가가 우에무라 나오미입니다.탐험중 실종되었죠.우리나라 고상돈처럼...소설 중엔 이노우에 야스시<빙벽>은 아직 판매하고 있을 겁니다.

마녀고양이 2010-10-16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장이 저랑 겹치는 부분도 상당히 있어서, 너무 반가왔어요. ^^

저는 토지와 율리시스는 중고로 구하고나서, 너무 뿌듯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부부 간에 모두 책을 좋아하신다니 부러워요. 저희 신랑은 책에 관심이 없거든요. 본인도 노력하는데, 잘 안 되나봐요. 책 사진에서 로마제국쇠망사와 사기열전, 이거 저도 사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배부르시겠어요!

oren 2010-10-16 20:31   좋아요 0 | URL
율리시스는 언제 읽을 수 있을지 저도 장담할 수 없는데 한 번 도전하고 싶어 샀답니다.
* * * * * * * * * *
『율리시스』는 침투하기가 불가능한 소설처럼 보인다. 이 높은 산은 단숨에 걸어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올라갈 수는 있다. 이 산의 정상에 오르면 아주 풍요로운 광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 『율리시스』를 읽으려고 시도했다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모험이다. 또 독자에게 큰 소득을 안겨줄 것이다. (클리프턴 패디먼)
- - - - - - - - - - - - - - - - - - - -
사마천의 사기는 두고 두고 읽어볼 책이 아닐까 싶어 늦었다 싶지만 '이번에' 사게 되었답니다.
* * * * * * * * * *
그 엄청난 규모만으로도 『사기』는 놀라운 저서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오늘날 이 작품을 읽어도 여전히 흥미롭고 재미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사마천이 뛰어난 문장가였고, 또 그의 역사관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는 투키디데스와 함께 과학적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존 S.메이저)

양철나무꾼 2010-10-17 0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서재 뽐내기 때도 이미 주눅이 들었었지만,
우왕~왕 부럽습니다.

근데,전에 서재 뽐내기 때는 책들이 단정히 들어 차 있어서 범접하기 좀 힘들다는 느낌이었는데,
옆으로 아무렇게나 누운 책들을 보니 좀 편안해 지기도 하군요.(속닥)

보는 것만으로도 한참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듯~!!!

oren 2010-10-17 09:22   좋아요 0 | URL
그 때는 갓 '대청소'를 하고 난 뒤라서 티끌마저 털어낸 뒤였으니까요. ㅎㅎ

배가 부르다는 느낌보다 걱정되는 게 한 가지 있어요. 이번에 두툼한 책들을 너무 많이 사들이다 보니 자칫 이러다가 책 속에 묻혀서(빠져서가 아니라) 제대로 헤쳐 나오지도 못하는 게 아닐까 걱정도 조금 됩니다. ㅎㅎ
 
너무 자책하시는 듯합니다.


『자연 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에 관하여: 즉 생존 투쟁에 있어서 적자생존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Survival of the Fittest in the Struggle for Life』(1859) - 이것은 유명한 제목이다. 이를 읽는 사람은 숨죽이며 읽어 내려간다. 그런데 읽는 사람에게 이처럼 은연중에 꺼림칙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고전"이 이것 말고 또 있을까? 이토록 겸허한 외관을 쓰고 세상에 나타난 기초 과학 이론이 또 있을까? 이 책의 표현은 대단히 평범한 것이어서 책을 펼쳐 읽으면 마치 자연에서의 자조(自助)에 관한 전도사의 설교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설교단이나 회계부서에서 들을 수 있는 이익과 손실에 관한 잠언이 모두 거기에 있다.

"어떤 생물체나 나쁜 것은 배척하고 좋은 것은 모두 보존하고 축적하며 기회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항상 진보를, 묵묵히 그리고 서서히 계속하고 있다." 이것은 경쟁을 통한 진보이다. "그러나 성공은 흔히 수컷의 특수한 무기 또는 매력에 달려 있다. 그리고 조그마한 이점이 승리를 결정한다." 이것은 성공에 관한 말이다. "겉모습이 생물에 유익한 경우를 제외하면, 자연은 겉모습에 신경 쓰지 않는다." 아름다운 마음씨에 관해서이다. "부지런한 벌이 얼마나 시간을 절약하는지, 많은 사례들을 보여줄 수 있다." 근검절약에 관해서이다.

(중략)

"생존 투쟁에 관하여 고찰할 때 우리는 다음 사실을 확신해도 되리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다소 위안도 된다. 즉 자연의 싸움은 그칠 새 없이 일어나지는 않으며, 공포가 느껴지지도 않으며, 죽음은 보통 신속하게 이루어지며, 원기 있고 건강하고 행복한 것은 모두 살아남아 증식한다."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 얻게 되는 보상에 관한 말이다.

 - 찰스 길리스피,
객관성의 칼날 中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제가 아직도 알라딘의 지형을 제대로 몰라 경솔한 짓을 저질렀군요.
알라딘 도서팀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메일을 조금만 더 일찍(불과 몇 시간) 보내주셨더라도,
이런 황당한 글은 올리지 않았을텐데 하고 제 스스로 변명거리를 찾아봅니다.

너무 & 괜히 & 쓸데없이 촐싹거리다가 이런 우스운 꼴을 자초한 게 아닌가 반성하게 됩니다.

어쨌든 모든 건 제 불찰입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알라딘도서팀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조금 늦게 도착해 아쉬웠던 이메일 한 통)


(끝)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녀고양이 2010-10-08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립금 지급 공지는 나중에 추가되었더라구요. ^^
저도 아직 책장이 안 와서, 이미 알라딘에 한차례 전화해서 타박한 기억이... ㅎㅎ
아직도 못 받았답니다. 15일 경이나 올거라 하네요. 이벤트 참가한지 두달만인건가요? 에고.
그래도 주시는건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만...

oren 2010-10-08 10:59   좋아요 0 | URL
이벤트 제목은 '2010 여름 내책장 뽐내기!'로 해놓고,
정작 엉뚱한 곳에 그것도 제목조차 '알라딘 : 2010 여름 문학 시리즈 할인전 당첨자 발표'로 해놓았으니,
저처럼 아둔한 사람이 어떻게 찾아 읽었겠어요..
(제대로 찾아 읽으신 분들은 정말 대단하신 분들 같습니다. ㅎㅎ)

정작 이벤트 공지글에는 '당첨자 발표'에 대한 그 어떠한 '단서'조차 남겨놓지 않았고 말입니다.
이벤트 결과를 발표한지 보름도 훨씬 넘겨 뒤늦게 '이 메일'을 보내는 처사도 야속하기만 하네요.

저는 마고님께서 추석 직후에 알라딘으로부터 '책장 드린다는 이메일'을 받았다고 하셔서,
이벤트 공지글에 가봤더니 '당첨자 발표'에 관한 그 어떤 흔적도 올라온 게 없더라구요.
그래서.... 알라딘에서 아마도 1등하신 분께만 '이메일' 통보로 때우는 줄 착각했답니다.

이벤트 마감을 불과 몇 분 남긴 시각까지 열과 성을 다해 이벤트에 참가하신 분도 계시고,
엄청난 장서를 갖고 계신 분들도 정성스레 서재에 대한 사진과 글들을 올려주셨는데,
그 분들께 이건 예의가 아니지 않느냐 싶어 글을 올렸던 것입니다.

이벤트 공지글에 가보니 어젯밤에도 어떤 분이 댓글을 다셨더군요.



당첨자 발표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마녀고양이 2010-10-08 11:25   좋아요 0 | URL
저도 매번 헤매서 잘 모르겠어요.. ㅎㅎ
머랄까, 고객 서비스가 2% 부족한 아쉬움이 좀 있어요.

양철나무꾼 2010-10-17 0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ren님,이런 글을 쓰실 수 있다니 진짜 멋지세요~
저도 지난 번 알라딘 도서팀 댓글을 보고 트랙백해 들어가 봤는데도,
찾을 수 없어 한참 헤맸었거든요.
이래서였군요~
 
2010 여름, 내 책장 뽐내기!



알라딘에서 이벤트를 한다는 '댓글' 하나 때문에 결국 어찌어찌 하다가 '내 책장 뽐내기' 이벤트에 참가하게 되었다.
좋은 이벤트 덕분에 알라딘을 이용하시는 많은 분들을 새로이 알게 되어서 참~ 기뻤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벤트를 한다고 뽐낸 것까진 좋았는데 여태껏 '공식적인 결과 발표'가 없다는 점이다.

'그려려니......' 하고 적당히 무시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오늘 문득 '이건 아니다......' 싶어서 글을 올려본다.

이 정도의 사소한 실수를 가지고 웬 호들갑이냐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서재 이벤트에 정성스레 글을 올려주신 분들에 대한 예의가 이게 아니다 싶다.

그래서 문득 떠오르는 몇몇 낱말들에 대해 '제 나름의 창고'에서 검색해 본 결과도 함께 덧붙여본다.


<해당 화면> (화면캡쳐후 빈 공간만 편집)


 * * * * * * * * * * * * * * * * * * * *

'고양이 목'에 관하여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까? 448

공익에 필수적으로 수반하는 문제는 이솝 우화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까?」에 잘 나타나 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면 고양이가 가까이 왔을 때 경고음이 나기 때문에 좋을 것이라는 데 한 집 안의 쥐들이 모두 동의하지만, 어떤 쥐도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방울을 매달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는 자발성-즉 공익에 기여하려는 마음-은, 만약 그 부담을 짊어지는 사람에게 보상을 해 주겠다는 자발성이나 그 부담을 회피하는 사기꾼에게 응징을 내리겠다는 자발성이 수반한다면 진화할 수 있다.

 - 스티븐 핑커,『빈 서판』 中에서



'사기꾼'에 관하여


도덕적 감정들 : 좋아함, 노여움, 감사, 동정, 죄의식, 수치 621쪽

트리버스는 도덕적 감정들을 호혜주의 게임의 전략으로 보고 그것을 다음과 같이 역설계했다.

'좋아함liking'은 이타적 관계를 시작하고 유지하는 감정이다. 대략적으로 그것은 타인에게 호의를 제공하는 자발성이고, 그 방향은 자발적으로 호의를 돌려줄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 맞춰진다. 우리는 우리에게 친절한 사람을 좋아하고,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친절하다.

'노여움anger'은 친절함의 대가로 사기를 당하는 경우를 막아 준다. 착취 행위가 발견되면 당사자는 그 불쾌한 행동을 불공정한 것으로 분류하고 분노와 도덕적 공격의 욕구-관계를 단절함으로써, 그리고 때때로 사기꾼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벌을 주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노여움에는 도덕적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거의 모든 노여움이 정당한 노여움, 즉 의분이라는 것이다. 격노한 사람은 자신이 손해를 입었고, 그래서 부당함을 시정해야 한다고 느낀다.

'감사gratitude'는 최초의 행동에서 비롯된 비용과 이익에 따라 보답하려는 욕구를 조절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어 큰 도움을 주고 그로 인해 큰 손실을 겪은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느낀다.

'동정sympathy'은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욕구이고, 감사를 벌기 위한 감정일 수 있다. 사람들은 호의가 가장 절실할 때 가장 많이 감사하므로, 어려움에 빠진 사람은 이타적 행동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다.

'죄의식guilt'은 발각될 위험에 처한 사기꾼을 괴롭힐 수 있다. H.L. 멩켄은 양심을 "우리에게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고 경고하는 내면의 목소리"로 정의했다. 만일 피해자가 미래의 모든 도움을 끊는다면 사기꾼은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악행을 배상하고 그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음으로써 관계 단절을 막는 일에 관심을 기울인다. 사람들이 사적인 범죄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는 것은 그 행위가 공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죄가 발각되기 전에 자백하는 행위는 진실함을 입증하고 피해자에게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좋은 근거가 된다.

'수치shame'는 범죄가 발각된 후의 반응으로 공개적인 뉘우침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 이것도 분명 같은 이유에서다

 - 스티븐 핑커,『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중에서



'신뢰'에 관하여

신뢰의 경제적 비용

현대세계에서 거의 모든 경제활동은 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높은 수준의 사회적 협동을 필요로 하는 조직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재산권, 계약, 상법 등은 시장지향적인 현대 경제체제를 이룩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제도이지만, 이런 제도가 '사회적 자본'과 '신뢰'로 보완된다면 경제활동 비용을 상당히 절약할 수 있다.

한편 신뢰는 공유되는 도덕규범이나 가치를 지닌, 그 전부터 있어 온 공동체의 산물이다. ...... 이런 공동체는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의미에서의 합리적 선택의 산물이 아니다. 

필자는 지난 번 책『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에서 일반적으로 경제적인 동기라고 받아들여지는 것이 실제로는 합리적인 욕망의 문제가 아니라 인정받으려는 욕망의 구체화임을 다소 장황하게 주장한 바 있다. ......

경제생활이 가능한 한 최상의 물질적인 풍요를 얻는 것뿐만 아니라 승인과 인정을 얻기 위해서 추구되는 것이라면,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상호 의존성은 더욱 명백해진다. ......

경제학자 알베르트 히르쉬만은 근대 부르주아의 등장을 귀족사회의 특징인 명예에 대한 '열정'을 신흥 부르주아지의 특징인 물질적인 '이해관계'로 대치시킨 '윤리적 혁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사실상 이런 대체는 최초의 자유주의적 정치이론가 토마스 홉스의 마음속에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홉스가 보기에 시민사회란 종교적인 열정에서든 귀족적인 허영심에서든 간에 합리적인 부의 축적에 명예에 대한 욕망을 의식적으로 종속시킨 것이라고 생각했다.

- 프랜시스 후쿠야마,『트러스트』 中에서


실수와 신뢰

펩시사의 회장인 크레이그 웨더는 "사람들은 실수를 너그럽게 보아 넘길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그들의 신뢰를 망가뜨린다면 그들로부터 신뢰를 다시 얻기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뢰를 가장 귀중한 재산으로 여겨야 하는 이유다."라고 말한 바 있다. 노르만 슈바르츠코프 장군은 이에 대해 더욱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다. "지휘란 전략과 신뢰를 견고하게 혼합시켜 놓은 것이다. 하지만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만 한다면 전략을 포기하라."

 - 『위대한 기업의 조건』 中에서


'꾸물거림'에 관하여

햄릿(Hamlet)은 불확실한 결과 앞에서 너무 많이 주저하는 것은 나쁘다고 투덜거렸다. 그 이유를 들어보자.

『결심의 본질적 색조가 사고의 희미한 색조로 흐려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극히 중요한 실행욕이 행위의 명분을 잃게 된다.』

그러나 일단 행동을 하고 나면 우리는 새로운 정보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선택권을 상실한다. 결과적으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결과가 불확실할수록 그만큼 지연(꾸물거림)의 가치는 커진다는 뜻이다. 햄릿은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주저하는 자는 목표달성에 그만큼 가까워지는 것이다.

- 피터 L. 번스타인, 《리스크(AGAINST THE GODS)》 中에서


정당함과 부정

사기꾼, 겁장이, 군중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하여 빠른 두뇌와 미래에 대한 안목을 지닌 사람은 그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정직이 최선의 방안이었기에 나는 무허가 증권거래소를 제외하고는 심한 거짓에 대하여 상대하지 않았다. 큰 돈은 정당함에 있지 부정에 있지 않다.


 - 에드윈 르페브르(1870∼1943),《어느 주식 투자자의 회고》中에서

(끝)


댓글(9) 먼댓글(1)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oren님 너무 자책하시는 듯합니다.
    from 태어남에 대한 망설임 2010-10-08 17:25 
        oren님 불만이 저는 잘 이해가 되는데요. 오히려 저는 알라딘도서팀의 답변이 좀 아쉬워요.. 알라딘도서팀 2010-10-07 17:32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알라딘 도서팀입니다. 해당 이벤트 당첨자는 예정된 발표일인 9월 20일에 공지되었습니다. http://blog.aladin.co.kr/eventWinner/4132237 감사합니다. 외국
 
 
양철나무꾼 2010-10-07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요~~~
이거 발표하지않았나요?
그래서 마고님,일등으로 책장 받게 되신거구요.

음,어찌 되었건...덕분에 전 좋은 글들 마이 읽고 갑니다.^^

oren 2010-10-08 01:08   좋아요 0 | URL
마고님이 '일등'으로 책장을 받은 사실은 진작에 알았구요.
마고님은 당연히 받으실 자격이 차고 넘치는 분이라 참~ 잘 되었다 싶었답니다.
다만, 이벤트에 참여하신 다른 분들도 적잖이 '용기를 내어' 글을 써주셨는데, 알라딘에서 그 분들의 성의를 무시하고 '아무런 응답조차 없는 줄로' 제 스스로 착각해서 이런 황당한 시츄에이션을 만들게 되었네요.

알라딘도서팀 2010-10-07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알라딘 도서팀입니다.
해당 이벤트 당첨자는 예정된 발표일인 9월 20일에 공지되었습니다.

http://blog.aladin.co.kr/eventWinner/4132237

감사합니다.

oren 2010-10-08 01:10   좋아요 0 | URL
알라딘도서팀에게 너무 '무례한' 실수를 저질렀군요.
부디 제 잘못을 꾸짖어 주십시오!

마녀고양이 2010-10-07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렌님의 말씀에 공감할 수 있는게,
서재 이벤트 공지에 가보면,
결과 발표 후 원 이벤트 공지 페이퍼에 링크 하나만 걸어줘도 덜 헤매일텐데...
그런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알라딘 도서팀에 그런 부분은 아쉽습니다.

그리고 오렌님, 제가 책장 탔어요! 축하해주셔여!

oren 2010-10-08 01:12   좋아요 0 | URL
위로의 말씀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리고... 책장 타신 '빅 뉴스'는 추석 끝나자 말자 들었어요.
그 때도 댓글로 축하를 드렸지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oren 2010-10-08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다가 '제대로 걸려든' 생쥐 꼴이 되었군요. ㅎㅎ

결국 제가 경솔했군요.

피터 번스타인의 가르침을 '마음 속으로는'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불과 몇 시간을 참지 못했군요.
'인내의 미덕'을 새삼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제 경솔함을 스스로 꾸짖기 위해서라도 (알라딘도서팀에겐 정말 죄송하지만)이 글은 금방 내리고 싶진 않군요.
어찌보면 꼴 값을 떠느라 이벤트에 참가한 것부터 단추를 잘못 채웠다 싶은 후회도 드는군요.

[결과적으로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결과가 불확실할수록 그만큼 지연(꾸물거림)의 가치는 커진다는 뜻이다.]

! 2010-10-08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나다가 적습니다. 저는 지금 oren님이 올리신 페이퍼를 읽고, 댓글까지 함께 읽었습니다. 알라딘 측에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는 것은 과거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그렇고, 페이퍼의 내용으로도 공감하지만 솔직히 페이퍼가 좀 성급하고 까칠한 게 아닌가 하다가... 댓글보고 감동(?)했습니다.
자신의 경솔함을 바로 반성하고 피드백하는 oren님, 정말 멋지십니다! 알라딘이 여타 인터넷 서점보다 고객 입장에서 많이 생각하는 것 같지만, 여기 역시 결국 그런 인터넷 서점들과 별다른 곳은 아니다 싶습니다. 그럼에도 유독 알라딘 유저들은 지나치게 예민한 경우가 있습니다. 그만큼 기대치가 높고 충성도가 높은 고객이기에 그렇다고 해도, 도를 넘었구나 싶어서 같은 고객입장에서도 고깝게 보이고, 뭐하자는 거냐 싶은 사람들이 왕왕 나오는 게 사실이더군요. 그런데 oren님은 이렇게나 멋지게 마무리를 지으시다니, 아무리 어쩌니저쩌니 해도 아직 알라딘에는 멋진 사람들이 더 많구나 오랜만에 실감했습니다.

oren 2010-10-10 17:04   좋아요 0 | URL
제건 너무 과분한 말씀입니다. 어쨌든 댓글까지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인간 본성에 대한 근원적 탐구를 시도한 심오한 통찰을 담은 책
































































(밑줄긋기)

인류의 초상화 15

이 책은 인간 본성에 대한 금기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금기에 대한 도전이 정말로 위험한 것인가 아니면 단지 익숙하지 않은 것인가를 궁금히 여기는 사람들을 위해 썼다. 또한 이 책은 이제 막 윤곽이 잡히고 있는 인류의 초상화에 호기심을 느끼거나 그 초상화에 대한 정당한 비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나, 인간 본성에 대한 금기로 인해 우리가 긴급한 문제들에 직면했을 때 완전한 기반 없이 해결을 시도하고 있음을 우려하는 사람들을 위해 썼다. 그리고 마음, 뇌, 유전자, 진화의 과학이 우리의 인간관을 영구적으로 변화시키고 있음을 인식하고, 우리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가치들이 사라질 것인지, 존속할 것인지, 아니면 (나의 주장대로) 더욱 강화될 것인지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가장 인기 있는 인간 본성 이론 27∼28

유대-기독교의 개념은 여전히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간 본성 이론이다.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6%가 성서의 창조 이야기를 믿고, 79%가 성서에 기록된 기적들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믿으며, 76%가 천사와 악마를 비롯한 영적인 존재들을 믿고, 67%가 어떤 형태로든 사후 세계가 존재할 것이라고 믿는 반면, 단 15%만이 다윈의 진화론이 지구상에 출현한 인간의 기원을 가장 적절히 설명하는 이론이라 믿는다.

많은 종교적 전통들이 결국에는 과학의 명백한 위협들(가령 코페르니쿠스와 다윈의 혁명적 이론)을 참고 받아들였듯이, 우리의 가치관도 빈 서판의 종말을 이기고 꿋꿋이 살아남을 것이다.


루소의 '고상한 야만인' 34

홉스와 루소는 자연 상태를 대조적으로 그렸고, 그 상반된 그림은 그 후 수세기 동안 사상가들의 영감을 자극했다. 고상한 야만인이라는 학설이 현대인의 의식에 미친 영향을 외면하기란 불가능하다. 우리는 자연적인 모든 것(자연 식품, 자연 의학, 자연 분만)을 존중하는 경향에서, 인위적인 것을 불신하는 경향에서, 권위적 방식의 양육과 교육에 대한 거부감에서, 그리고 사회적 문제들을 인간 조건에 고유한 비극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제도적으로 개선이 가능한 결점으로 이해하는 경향에서 그 영향을 보게 된다.


뇌의 '소유자' 38

마음과 육체의 이분법은 또한 일상 언어에까지 스며들어 있어서, 흔히들 "머리를 쓴다"라고 하거나 '육체를 떠난 경험'을 이야기하고, "존의 머리"나 "존의 뇌"라고 말하는데, 이러한 표현들은 그 뇌와 어떤 식으로든 별개로 존재하는 뇌의 소유자, 존을 전제로 한다. 이따금씩 언론인들은 "육체 이식 수술"이라 부를 수도 있는 것을 "뇌 이식 수술"로 표현한다. 사실 그것은 철학자 대니얼 데닛이 언급한 것처럼 기증자가 되는 편이 수혜자가 되는 것보다 훨씬 나은 이식 수술이기 때문이다.


기계장치 70

생물과 무생물 역시 더 이상 서로 다른 영역으로 분리되지 않았다. 1628년 윌리엄 하비는 인간의 신체가 수력학과 그 밖의 기계적 원리에 의해 가동되는 기계임을 입증했다. 1828년 프리드리히 뵐러는 생명의 재료가 고동치는 신비한 젤라틴이 아니라 화학적 법칙을 따르는 평범한 화합물들임을 입증했다. 찰스 다윈은 생명의 놀라운 다양성과 어디에나 존재하는 그 설계의 증거들이 어떻게 복제자들의 물리적인 자연 선택 과정으로부터 발생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그레고어 멘델,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은 복제 자체가 어떻게 물리적 관점으로 이해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세포는 그보다 단순하면서도 복제 능력이 있는 분자, 즉 물리적 세계의 무생물 부분에서 진화했고, 따라서 분자로 이루어진 기계 장치들의 집합체로 이해될 수 있다. 그것은 물론 엄청나게 복잡한 기계이지만 그럼에도 기계장치인 것은 분명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혜안 88

수감중인 드미트리 카라마조프가 그를 방문했던 학자에게서 방금 배운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누가 그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중략)
알료샤, 이 과학이란 건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내가 이해하기로는 새로운 인간의 출현일세. ...... 하지만 슬프게도 신을 잃게 되지 않는가!

도스토예프스키의 혜안은 정말 놀랍다. 1880년은 신경 기능의 기초만이 밝혀진 때여서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모든 경험이 떨리는 신경 꼬리에서 발생한다고 믿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뇌의 정보 처리 활동이 마음의 원인이라고 말하거나, 혹은 그것이 바로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느 경우든 간에 정신 활동의 모든 양상이 뇌 조직 속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사건들에 전적으로 좌우된다는 증거는 압도적으로 분명하다.


하나의 네트워크 90

오래된 교육 만화에 종종 등장하는 것처럼, 뇌를 각종 계기와 레버가 달린 제어반으로 보고 그것을 사용자-자아, 영혼, 유령, 개인, '나'-가 조종한다고 하는 것은 여전히 매력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인지 신경학에서는 자아 역시 뇌의 체계들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네트워크일 뿐임을 입증하고 있다.


세 가지 심각한 폭행 92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도발적인 설명에 따르면, "지금까지 인간은 과학의 손길이 순진한 자기애(自己愛)에게 가하는 세 가지 심각한 폭행을 견뎌야 했다." 그 세 가지는 우리의 세계가 천체의 중심이 아니라 광대한 우주의 한 점이라는 사실의 발견, 우리가 특별히 창조된 존재가 아니라 동물에게서 갈라져 나왔다는 사실의 발견, 그리고 우리의 의식이 종종 우리의 행동 방식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의 행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뿐이라는 사실의 발견이다.


자연 선택의 산물 106

진화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핵심 요인이다. 모든 생명체처럼 우리도 자연 선택의 산물이다. 우리는 생존과 짝짓기와 번식을 할 수 있는 특성들을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덕분에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바로 이 중대한 사실이 우리의 가장 깊은 내면에 자리잡은 갈등들을 설명해 준다. - 왜 은혜를 모르는 자식을 두는 것이 독사의 이빨에 물리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지, 왜 재산께나 모은 독신 남성에게 아내가 필요하리라는 것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진리로 통하는지, 왜 우리는 그 좋은 밤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못하고 빛의 소멸에 분노, 또 분노하는지.


자연 선택에 의해 형성된 갈망들 110

가까운 목표와 궁극적 목표의 차이는 우리가 빈 서판이 아님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이다. 사람들이 건강이나 행복과 같이 가까운 동시에 궁극적인 것으로 이해되는 분명한 보상을 얻기 위해 노력할 때, 우리는 마음의 행복이나 육체의 건강을 얻고자 하는 단 하나의 욕망과,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단 하나의 원인-결과 계산법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기 쉽다. 그러나 사람들은 종종 가까운 행복을 파괴하는 욕망, 드러내 놓고 표현할 수도 없고 그들이(그리고 사회가) 끝내 근절하지도 못하는 욕망을 느낀다. 사람들은 때때로 이웃의 배우자를 탐내고, 수명을 재촉할 정도로 먹어대고, 사소한 모욕에도 폭발하고, 의붓자식을 사랑하지 못하고, 맞서 싸우거나 도망칠 수 없는 스트레스 요인에 반응해 신체를 혹사하고, 이웃을 따라잡거나 승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평범하지만 믿을 수 있는 파트너보다는 섹시하고 위험한 파트너를 더 좋아한다. 개인적으로 당혹스럽게 느껴질 법한 이 충동들에는 진화의 명백한 근거가 있다. 그 모순들은 인간의 마음이 개인적 행복을 위한 포괄적인 충동이 아니라 자연 선택에 의해 형성된 갈망들로 가득 차 있음을 시사한다.


음울하고 불길한 본질적 특성 112

고상한 야만인의 학설은 새로운 진화적 사고에 의해 그 오류가 더욱 무자비하게 노출된다. 자연 선택의 산물 중에는 그야말로 고상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 다음 세대의 발현을 위한 유전자들의 경쟁 속에서 고상한 것들은 도태되기 때문이다. 두 동물이 한 물고기를 먹을 수 없고 같은 짝을 독점할 수 없기 때문에 이익을 위한 투쟁은 모든 생명체에 편재한다. 사회적 동기가 자신의 복제를 최대화하려는 유전자들의 적응의 산물이라면, 그것은 그러한 투쟁에서 경쟁자들을 이기도록 설계되어야 하는데, 이기는 방법에는 경쟁을 중화시키는 방법도 포함된다. 윌리엄 제임스의 화려한 표현에 따르면, "경쟁자들을 차례차례 도살하는 장면을 성공적으로 연출했던 자들의 직계 후손인 우리는, 아무리 평화로운 미덕을 소유했을지라도 여전히 어느 한 순간에 화염처럼 타오를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것은 그들이 수많은 학살을 통해 다른 존재들을 죽이고 자신은 살아남기 위해 휘둘렀던 음울하고 불길한 본질적 특성이다."


직관 심리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 121

침팬지를 비롯한 영장류에게는 모방자라는 명성이 있지만('원숭이는 보는 대로 따라 한다.'), 사람과 같은 모방 능력(다른 사람의 동작이 아니라 의도를 모사하는 것)은 발달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그들의 직관 심리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웃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고자 하는 강한 충동 124

사회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이웃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고자 하는 강한 충동을 갖고 있다고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실험자에게 돈을 받고 일부러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아무것도 모르는 피실험자들 넣으면, 다수의 또는 대부분의 피실험자가 같은 행동을 보인다. 그들은 자신의 눈을 무시하고, 긴 줄을 짧다고 하거나 짧은 줄을 길다고 말하고, 난방 장치에서 연기가 나오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설문지를 작성하고,「몰래 카메라」에서처럼 뚜렷한 이유도 없이 갑자기 속옷을 내린다. 그러나 사회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순응성이 의도적으로 고안된 실험에서는 아무리 유쾌해 보일지라도, 거기에는 사회 생활에 필요한 진정한 논리적 이유-실은 두 가지 이유-가 담겨 있다고 지적한다.

첫째는 정보와 관련된 이유, 즉 다른 사람들의 지식과 판단에서 이익을 얻고자 하는 욕구이다.(중략)

순응성의 두 번째 동기는 규범과 관련된 이유, 즉 공동체의 규범을 따르고자 하는 욕구이다.


막대한 관성 129

어떤 집단적 관습들은 막대한 관성을 자랑하는데, 이는 그 관습을 변화시키려는 최초의 개인에게 큰 대가가 강요되기 때문이다. 차량의 좌측 통행을 우측 통행으로 전환하는 것은 누군가의 용감한 반항이나 시민 운동으로 시작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향식으로 강제되어야 가능한 일이다(1967년 9월 3일 일요일 오전 5시 스웨덴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 적들이 빈틈없이 무장하고 있을 때 무기를 내려놓는 것, 컴퓨터나 자판 배열을 포기하는 것, 임금님이 벌거벗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 등도 그러한 예에 속한다.


역사와 과학의 부합 132

생리학자 제러드 다이어먼드는 진화 심리학의 개념들을 제안한 동시에 인문과학 특히 그중 역사와 과학의 부합(consilience)을 제의한 사람이다. 『총, 균, 쇠(Guns, Germs, and Steel)』에서 그는 역사가 단지 사건의 연속이라는 표준적인 가정을 거부하고, 수만 년에 걸친 인류 역사를 인간의 진화와 생태학의 맥락에서 설명하려고 했다. 소웰과 다이어먼드는 인간 사회의 운명이 우연이나 인종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혁신적 성과물을 채택하려는 인간의 충동에서 나오는 것이며, 이 충동은 지리와 생태계의 변화와 결합되어 있다는 믿을 만한 견해를 제시했다.


공통된 유전자 때문 188

인간 게놈의 유전자와 비암호화 부위 모두에는 엄청난 양의 정보가 담겨 있고, 그 정보가 복잡한 유기체의 완성을 이끈다. 특정 유전자가 인지, 언어, 개성의 여러 측면에 구체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가 갈수록 늘고 있다. 심리적 특성이 다양할 때 그 다양성의 많은 부분은 유전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함께 성장했든 떨어져 성장했든 일란성 땅둥이는 이란성 땅둥이보다 더 비슷하고, 생물학적 형제는 입양된 형제들보다 더 비슷하다. 개인의 기질과 성격은 생애 초기에 출현해서 일생 동안 상당히 일관되게 유지된다. 그리고 성격과 지능 모두 어린이의 가정 환경으로부터 거의 또는 어떤 영향도 받지 않는다. 한 가정에서 양육된 아이들이 비슷한 것은 그들의 공통된 유전자 때문이다.


민주 제도의 관리 체제 233

"우리"가 정말로 생물학의 족쇄에서 해방되어 있다면, 자유의 빛을 보는 순간부터 옳다고 간주되는 급진적 변화의 전망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화의 불완전한 산물이어서 지식과 지혜가 제한되어 있고, 지위와 권력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도덕적으로 우월한 존재라는 자기 기만과 착각에 눈이 멀어 있다면, "우리"는 그 모든 역사를 짜 맞추기 전에 다시 생각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정치에 관한 장에서 설명하겠지만, 입헌 민주주의는 인간 본성에 대한 편견 즉 "우리"가 거만과 타락의 유혹에서 영원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론을 기초로 하고 있다. 민주 제도의 관리 체제는 불완전한 인간이 종종 휘두르는 위험한 야망을 막기 위해 고안되었다.


진화에 대한 종교적 반대 234

인간 본성 과학에 가장 끈질기게 반대해 온 우파 집단은 종교 부문 특히 기독교 근본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진화를 믿지 않는 사람은 마음의 진화도 믿지 않고, 비물질적 영혼을 믿는 사람은 인간의 생각과 감정이 뇌 세포에서 일어나는 정보 처리와 관계가 깊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진화에 대한 종교적 반대는 몇 가지 도덕적 두려움에서 동력을 얻는다. 분명한 것은 진화라는 객관적 사실이 성서에 기록된 창조 이야기의 엄밀한 진실성을 훼손하고 그럼으로써 종교적 권위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한 창조론자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성서가 생물학적으로 틀렸다면 내가 왜 도덕과 구원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을 믿겠는가?"


과학 교육이 왜곡된다는 것 235

진화에 대한 우익의 반대로 인해 발생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창조론 운동가들 때문에 미국의 과학 교육이 왜곡된다는 것이다. 1968년 대법원 판결이 있기 전까지 미국의 여러 주에서는 진화론에 대한 정직한 교육을 금지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판결이 난 이후 지금까지 창조론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법정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들이 통과시키고자 하는 내용에는, 과학 성적 기준에서 진화론을 빼는 것, 진화론은 "이론에 불과하다"는 선언문을 넣는 것, 교과 내용을 완화시키는 것, 진화론을 자세히 다루는 교과서에 반대하거나 창조론이 소개된 교과서를 채택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뇌과학 235

종교적 우익은 진화론뿐 아니라 신경과학 때문에도 곤혹을 치르고 이다. 기계 속의 유령을 쫓아내고 있는 뇌과학은 그에 의존하는 두 가지 도덕적 원리를 무너뜨리고 있다. 하나는 모든 사람에겐 영혼이 있으며 그 영혼은 가치를 찾고, 자유 의지를 행사하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진다는 원리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행동이 화학적 법칙을 따르는 뇌 회로의 지배를 받는다면 선택과 가치는 물거품이 될 것이고 도덕적 책임의 가능성은 수증기처럼 증발할 것이다. 창조론 옹호자 존 웨스트는 이렇게 표현했다. "인간이 (그리고 인간의 믿음이) 정말로 물질적 존재의 무심한 산물이라면,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모든 것-종교, 도덕, 미-이 객관적 기초를 잃게 될 것이다."

두 번째 도덕적 원리는 (모든 기독교 종파가 아니라 일부 종파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임신할 때 영혼이 몸 안으로 들어오고 사망할 때 몸 밖으로 나가면, 따라서 개인의 생명을 규정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 원리에 따르면 낙태, 안락사, 배반포에서 줄기 세포를 채취하는 것이 모두 살인에 해당된다. 또한 인간을 동물과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로 규정하고, 인간 복제를 신의 질서를 위반하는 행위로 간주한다.


모든 가치의 완전한 일식 240

저널리스트 앤드루 퍼거슨은 독자들에게, 진화 심리학이 "틀림없이 섬뜩한 느낌을 줄 것"이라 경고한다. "행동이 도덕적인가 아닌가, 가치를 나타내는가 아닌가는 새 과학과 유물론이 판정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의 글에 따르면 새 과학은 사람들이 단지 "고깃덩어리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인간을 애초에 신이 창조했고, 영혼을 부여받았으며, 무한히 소중한 존재"로 보는 전통 유대-기독교적 관점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심지어 신경과학과 진화 심리학을 찬양하는 좌익 성향의 저자 톰 워프도 그 속에 함축된 도덕적 의미를 걱정한다. 「미안하지만 당신의 영혼은 방금 죽었다」란 수필에서 그는 과학이 마침내("가치의 마지막 피난처인") 영혼을 죽일 때, '그 뒤를 이을 섬뜩한 광란의 축제는' 모든 가치의 완전한 일식"이라는 [니체의] 표현을 무색하게 만들 것"이라 쓰고 있다.


압도적인 증거에 의해 자연스럽게 침몰할 것 242

종교적 우익이 지식 활동에 가하는 어떤 공격도 진화론에 대한 반대보다 극단적이지 않다. 창조론으로 불리든 지능적 설계라는 완곡한 이름으로 불리든 자연 선택 이론을 부인하는 견해는 그 이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압도적인 증거에 의해 자연스럽게 침몰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바다 속으로 가라앉기 전까지 과학 교육과 생물·의학 연구에 얼마나 더 큰 피해를 입힐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합리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246

문제는 인간 본성이 갈수록 마음의 과학, 뇌, 유전자, 진화 등에 의해 설명될 것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우리가 그 지식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있다. 평등, 진보, 책임, 개인의 가치라는 우리의 이상에는 어떤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가? 인간 본성에 반대하는 좌·우익 분파들은 한 가지 사실에 대해서는 옳다. 그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그 문제를 대할 때에는 두려운 방어적 태도가 아니라 합리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


사슬 250

알렉산더 포프는 "자연의 사슬에서 어떤 고리가 깨지든,/ 그것이 열 번째든 만 번째든 사슬은 똑같이 붕괴한다."라고 썼다.


불변성 250

『2대 세계 체계에 관한 대화』에 담긴 갈릴레오의 본심은 불변성이 왜 그렇게 위대한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내가 보기에 지구가 이토록 고귀하고 훌륭한 것은 바로 그 안에서 다양한 변경, 변화, 생성 등이 끊임없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변화도 없어서 지구가 광대한 모래 사막이나 벽옥의 산으로 남았거나, 대홍수가 일어났을 때 지구를 덮었던 물이 얼어붙어 거대한 얼음 덩어리로 남았다면, 내 눈에는 그저 이 우주 속에서 아무 운동도 하지 않는, 한미디로 불필요하고 존재 가치가 없는 무의미한 덩어리로만 보일 것이다. 이것은 살아 있는 동몰과 죽은 동물의 차이인데, 나는 달과 목성과 그 밖에 모든 천체들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 사람들이 완벽함, 영원성 등을 높이 찬양한다면 내 생각에 그것은 계속 살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들은 인간이 불멸이라면 그들 자신이 결코 이 세상에 오지 못했을 것이란 사실을 생각하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은 정말로 메두사의 머리와 마주쳐서 벽옥이나 다이아몬드의 상태로 변하고 그럼으로써 현재 상태보다 더 완벽해질 만한 가치가 있다.


가짜 자격증 251

오늘날 우리는 이 세계를 갈릴레오처럼 본다. 우리로서는 돌과 공기가 3차원의 공간에 존재하는 것이 선악과 관계가 있다거나 삶의 의미나 목적과 관계가 있다고 상상하기 어렵다. 갈릴레오 시대의 도덕적 감각은 결국 천문학적 사실에 따라 수정되었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도덕성이 거대한 존재 사슬과 관계 있다는 바로 그 생각이 애초에 잘못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도 그때와 비슷한 과도기를 겪고 있다. 빈 서판은 현대의 거대한 존재 사슬이다. 그 학설은 삶의 의미와 도덕성의 이론적 근거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당대의 과학으로부터 맹공을 받도 있다. 갈릴레오가 세상을 떠난 다음의 100년 동안에 그랬듯이, 우리의 도덕 관념도 생물학적 사실에 따라 수정될 것이다. 사실은 사실이기 때문에, 그리고 빈 서판의 도덕적 자격증이 가짜이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차이와 사회 정의 269

생물학적 차이를 사회 정의라는 개념과 조화시킬 수 있는가? 물론이다. 철학자 존 롤스는 그의 유명한 정의 이론에서, 무지의 베일에 가린 채 자기 이익을 위해 협상하는 행위자들이 하나의 사회적 계약을 만들어 내는 것을 상상해 보라고 요구한다.


평등주의의 이름으로 전개된 잔학 행위 271

평등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불공평한 대우는 여러 가지 형태를 띨 수 있다. 가령 누진세, 부동산 중과세, 능력보다는 나이에 의한 학급 편성, 인종이나 지역을 안배한 할당제와 특혜, 의료 기관의 사적 운영이나 몇몇 자유 상거래의 금지 등의 경우에는 한성과 험담이 엇갈린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대단히 위험하다. 만약 사람들이 동일하게 출발하지만 결국에는 일부가 나머지보다 더 부유해진다고 한다면,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부유한 사람들이 분명 더 탐욕스럽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자칫 재능을 죄악으로 추락시켜 그 해결책을 재분배가 아닌 복수에서 찾을 수도 있다. 20세기의 수많은 잔학 행위가 평등주의의 이름으로 전개되었는데, 성공을 범죄의 증거로 여기고 부유층을 공격했다. 소련에서는 쿨락("부르주아 농민")이 레닌과 스탈린의 손에 절멸되었고, 중국 문화혁명에서는 교사, 전(前) 지주, "부농"이 모욕과 고문과 살해를 겪었으며, 캄보디아의 크메르루주 정권 하에서는 도시 거주자와 지식 전문가들이 과도한 노동으로 인해 죽거나 처형되었다. 교육과 기업 정신을 자산으로 해 번영을 이루었던 소수 민족들, 가령 동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의 인도인, 나이지리아의 이보스인,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인도네이사와 말레이시아의 중국인, 전 세계의 유대인이 고향에서 쫒겨나거나 조직적인 학살의 희생자가 된 것은 그들 중 두드러지게 성공한 사람들을 기생충과 착취자로 몰아붙인 결과였다.


노벨상 수상자를 생산하는 정자를 원한다면 273

가령 과학적 천재성, 체육 능력, 음악적 재능 같은 특성들은 행동 유전학에서 창발적(emergenic)이라 부르는 범위에 속한다. 다시 말해 유전자 조합이 있어야만 구현되므로, "실물 그대로 번식"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하나의 유전자라도 다른 환경에서는 다른 행동을 낳는다. 생화학자 조지 월드는 노벨상 수상자라는 이유로 윌리엄 쇼클리 정자 은행으로부터 정액 샘플을 요청받았을 때 이렇게 대답했다. "노벨상 수상자를 생산하는 정자를 원한다면 우리 아버지같이 외국에서 이민 온 가난한 재단사를 만나 보시오. 내 정자에서 무엇이 나왔는지 아시오? 두 명의 기타리스트요!"


"단지" 277

역사가들은 공산주의자들의 집단 처형, 강요된 행군, 강제 노동, 인위적 기아가 1억 명의 사상자를 냈는지 아니면 "단지" 2,500만 명의 사상자를 냈는지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또한 그 잔학 행위들이 도덕적으로 나치의 홀로코스트보다 더 나빴는지 아니면 "단지" 그 정도였는지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인간 개조 280

나치즘과 마르크스주의는 모두 인류를 개조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마르크스는 "대규모의 인간 개조가 필요하다."라고 썼다. 히틀러는 "인류를 새롭게 창조할 의지"야말로 국가 사회주의의 핵심이라고 썼다.


인간의 완벽함 286

인간이 핵심까지 썩어 있고 어떤 노력을 해도 더러워지기만 한다면 누가 이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겠는가? 루소의 저작들이 낭만주의 문학 운동과 프랑스 혁명을 동시에 자극했던 것이나 1960년대에 낭만주의 운동과 급진 정치 운동이 나란히 부활했던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철학자 존 패스모어는, 새롭게 개선된 인간 본성을 통해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열망이 서구 사상에 반복해서 나타났음을 밝히면서, 그것을 D. H. 로렌스의 말로 요약했다. "인간의 완벽함! 아, 얼마나 음울한 주제인가!"


대단히 부도덕한 자연 291

존경받는 진화 생물학자 조지 윌리엄스는 자연 세계를 "대단히 부도덕하다."라고 묘사한다. 자연 선택은 선견지명이나 동정심이 전혀 없어서, "솔직히 말해 근시안적 이기심이 극대화되는 과정"이다. 포식자들과 기생 생물이 만들어 내는 온갖 불행만이 있을 뿐, 같은 종의 구성원들 사이에도 연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유아 살해, 형제 살해, 강간이 여러 종에서 관찰되고, 심지어 금실이 좋다고 하는 종에서도 간통이 흔하며, 채식에만 의존하지 않는 모든 종에서 동족 식육이 일어나고, 가장 폭력적인 미국 도시에서보다 더 빈번하게 싸움으로 인한 죽음이 대부분의 동물 집단에서 나타난다.


인간 본성에 대한 인정 298

인간 본성에 대한 인정은 사회적·도덕적 진보와 모순되지 않을 뿐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일어난 뚜렷한 진보의 이유를 설명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디, 역사와 선사 시대의 전 기간에 공통적이었던 관습-노예제, 신체 절단 처벌, 고문에 의한 처형, 편리함을 위한 대량 학살, 끝없는 피의 원한, 이방인에 대한 즉결 처형, 전쟁의 노획물로서의 강간, 산아 제한으로서의 유아 살해, 여성에 대한 법적 소유 등-은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라졌다.


인지적·도덕적 자원 308

인간 본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를 영원한 억압, 폭력, 탐욕으로 몰아넣는 반동적 교의가 아니다. 물론 우리는 굶주림이나 질병 같은 불행의 요소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인간의 해로운 행동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요소와 싸우기 위해서는 인간 본성에 포함된 성가신 사실들을 부인하려고만 하지 말고, 그것을 좋은 사실들과 대립시켜야 한다. 사회적 변화를 위한 노력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인지적·도덕적 자원이 무엇인가를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그 노력을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려면 그런 종류의 변화를 바람직한 것으로 만드는 보편적 즐거움과 노고를 인정해야 한다.


이해는 용서가 아니다 320

"행동을 설명하는 것과 변명하는 것의 차이는 "이해는 용서가 아니다."라는 말에 잘 표현되어 있고, 흄, 칸트, 사르트르 등의 철학자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그것을 강조했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개인이 말 그대로 강요당하지 않으면(즉, 누군가 머리에 총을 들이대지 않으면), 그의 행동은 비록 두개골 안에서 일어난 사건들의 결과일지라도 자유롭게 선택된 것이라고 믿는다.


억제의 역설 323


사형은 억제의 역설적 논리를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예지만, 그 논리는 보다 약한 형벌에도 적용되고, 개인의 복수 행동에도 적용되며, 추방이나 경멸 같은 무형의 사회적 처벌에도 적용된다. 진화 심리학자들과 게임 이론가들은 억제의 역설이 정의에 대한 욕구를 뒷받침하는 감정들-준엄한 보복의 욕구, 세계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악한 행동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그에 상응하는 처벌뿐이라는 강렬한 감정-의 진화로 이어졌다고 주장해 왔다.


남들은 안 되고 나만 된다 333


모든 시대의 윤리 철학자들이 지적했듯이, "남들은 안되고 나만 된다!"는 삶의 철학은 객관적인 관점에서 자기 자신을 남들과 똑같은 존재로 보는 순간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것은 지금 이 순간 내가 서 있는 공간상의 한 점인 "여기"가 우주에서 특별한 장소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


생리학과 유전학의 대상 336

줄기 세포를 연구하면 간염이나 파킨슨병의 치료법을 발견할 수도 있는데, 그것이 "존재론적 비약"을 통해 "영혼"으로 성장할 세포 덩어리이므로 연구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종교 운동에서 어떤 존엄을 볼 수 있는가? 알츠하이머병, 중증 우울증, 정신 분열증 같은 불행의 씨앗들은 생각과 감정을 비물질적 영혼으로 취급할 때가 아니라 생리학과 유전학의 대상으로 취급할 때 제거될 것이다.


허무주의에 대한 극복(종교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생각) 336

영혼이 육체보다 오래 산다는 교의는 결코 옳지 않다. 필연적으로 지상에서의 삶을 무가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수잔 스미스는 어린 두 아들을 호수 바닥으로 던질 때 "우리 아이들은 가장 좋은 곳에서 살 자격이 있고 이제 그렇게 될 것"이라는 합리화로 자신의 양심을 속였다. 행복한 사후 세게는 부모가 자식의 생명을 빼앗으면서 남기는 최후의 편지에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다. 최근에도 그런 믿음이 자살 폭탄 테러범과 공중 납치범에게 용기를 돋우어 주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더 이상 신의 응보를 믿지 않으면 거리낌없이 악행을 저지를 것이라는 주장을 거부해야 한다. 물론 비신자들은 법망이나 사회적 비난이나 자신의 양심을 피할 수만 있다면 영원한 지옥 불에 떨어지는 것쯤은 두렵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는 희망을 위해 수천 명의 사람을 학살하지는 않는다.


인생의 소중한 선물 337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이 주는 정서적 위안도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뇌가 죽을 때 우리의 존재가 끝난다면 삶은 목적을 상실하는가? 오히려 매 순간을 감각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소중한 선물이라는 깨달음보다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순간순간 "인생은 짧다."라는 사실을 떠올림으로써 얼마나 많은 싸움을 피했고, 얼마나 많은 친구를 사귀었으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아꼈고, 얼마나 많은 애정을 표현했는가?


궁극 원인과 근인과의 혼동 339

우리의 모든 동기가 이기적이라는 생각 때문에 우울함을 느끼는 사람은 엘비와 똑같은 혼란에 빠져 있다. 궁극 원인(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의 이유)과 근인('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사는가?')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두 의미는 아주 비슷해 보이기 때문에 혼동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리처드 도킨스가 밝힌 바에 따르면, 자연 선택의 논리를 이해하는 좋은 방법은 유전자가 이기적 동기를 가진 행위자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그의 비유는 완벽하지만 한편으로는 경솔한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릴 수 있는 위험성을 품고 있다. 유전자는 비유적 동기-자기 자신을 복제하는 것-를 가지고 있으며, 유전자에 의해 설계된 유기체는 실제적 동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같은 동기가 아니다. 때로는 유전자의 가장 이기적인 행위가 인간의 뇌에 이타적인 동기-진심에서 우러난, 무조건적인, 뼛속에서 우러나는 헌신성-를 배선한다.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물려줄) 자식에 대한 사랑, (유전적으로 한 배를 탄) 충실한 배우자에 대한 사랑, (신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와 동지에 대한 사랑은 우리 인간의 경우(근인의 차원)에서는 한계와 비난을 초월하지만, 유전자의 경우(궁극적 차원)에서는 이기적 행동에 비유된다.


非제로섬 게임 342

이 세계에는 양 당사자가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보다는 비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더 유리한 비(非)제로섬 게임이 존재한다(떠밀고 떠밀리는 것보다는 떠밀지 않고 떠밀리지도 않는 것이 더 이익이다.). 이익이 목표라면 몇 가지 조건이 필연적으로 주어진다. 나를 해치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회로를 가졌다면 어느 누구도 남을 해치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다. 수와 숫자 감각의 경우처럼 도덕 체계도 다른 문화 또는 다른 행성에서 비슷한 결론을 향해 진화했을 것이다. 실제로 황금률은 여러 시대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레위기」와 「마하바라다」의 저자들, 힐렐, 예수, 공자, 로마 제국의 스토아 학파 철학자들, 홉스, 루소, 로크 등의 사회 계약론자들, 정언 명령을 제시한 칸트 등의 윤리 철학자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의 도덕 관념은 무리 속에서 무로부터 날조되었다기보다는 윤리학의 고유 논리와 맞물리도록 진화했으리라 추정된다.


도덕관념 342

존재론적 지위가 무엇이든 도덕 관념은 인간의 마음에 기본적으로 갖추어진 표준 장비의 일부이다. 인간의 마음은 우리가 획득한 단 하나의 마음이고, 따라서 우리는 그 직관적 능력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우리가 도덕적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면(최소한 어느 때에 그리고 누군가에 대해), 도덕성은 전능한 신의 명령이나 우주 속에 새겨졌다고 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는 실제적인 것이 된다. 사랑, 진리, 미 같은 다른 가치들도 마찬가지이다. 그것들이 "외부에" 실제로 존재하는지 또는 인간의 뇌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작용하는 것인지를 과연 우리는 알 수 있을까? 그것이 인간의 사고 방식에 고유한 특성이라면 과연 얼마나 끔찍해질까? 우리는 인간의 조건에 대해 칸트의『실천 이성 비판』에 따라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두 가지를 더욱 자주 그리고 진지하게 숙고할수록, 그것은 마음을 더욱더 새롭고 강렬한 감탄과 경외로 채운다. 별이 총총한 하늘과 마음 속의 도덕률이 그것이다."

(나의 생각)
내 머리 위에는 별이 빛나는 하늘, 내 마음 속에는 도덕법칙!
(30년 전에 칸트의 책에서 접했던 '번역'이 훨씬 더 매끄럽다. 그래서 아직도 내 마음 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지도......)



언어 366

인간이라는 작품을 구성하는 모든 기능들 중에서 언어야말로 가장 경외로운 기능일 것이다. (중략) 길릴레오도 당대의 예술과 발명품에 놀라움을 표하는 대목에서 글자 형태의 언어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그러나 그 모든 위대한 발명품을 능가하는 것이 있으니, 비록 시간과 공간이라는 강력한 장벽이 놓여 있지만 자신의 깊은 사고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단을 꿈꾸었던 자의 마음은 얼마나 위대했던가! 인도에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 또는 앞으로 천 년이나 만 년이 지나도 태어나지 않을 사람들에게 자신의 말을 전하다니, 스무 개의 철자를 종이 한 장에 배열해 그렇게 쉽게 의사를 소통하다니!

그러나 지적 활동의 영역에서는 아주 우스운 일이 언어에 일어났다. 언어가 사고를 전달하는 능력을 인정받기보다는 사고를 속박하는 힘 때문에 비난을 받았다. 그런 걱정은 두 철학자의 유명한 인용문에 잘 포착되어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언어의 감옥에 갇혀 사고하기를 거부하려면 사고를 멈춰야 한다."라고 썼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라고 썼다.


뇌 속의 포토샵 381

심리학자 스티븐 코슬린은 우리의 뇌에는 지각 경험의 기억들을 재활성화하고 조작하는 체계가 갖추어져 있음을 입증했는데, 이 체계는 마치 적절한 기계를 이용해 이미지를 조립하고 돌리고 채색하는 포토샵과 흡사하다고 한다. 언어처럼 심상도 뇌의 고위 간부를 위해 일하는 노예 체제-"시공간적 스케치북"-이고, 그럼으로써 가치 있는 형태의 정신적 표현물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의자가 거실에 어떻게 맞을지 또는 스웨터가 딸에게 잘 어울릴지를 마음 속으로 그릴 때 정신적 이미지를 사용한다. 심상은 또한 장면을 말로 묘사하기 전에 상상해 보는 소설가와, 상상 속에서 분자를 회전시키거나 작용력과 운동 형태를 그려 보는 과학자에게 매우 귀중한 도구이다.


생물학적 법칙의 지배를 받는 신체 기관 395

최근까지는 영혼에 대한 직관적 개념이 우리에게 매우 효과적이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고, 그 영혼은 임신의 순간 생겨나 죽을 때 몸을 떠난다. 동물, 식물, 사물에게는 영혼이 없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은 이른바 영혼이란 것(감정, 이성, 의지의 그릇)이 뇌의 정보 처리 활동이고 뇌는 생물학적 법칙의 지배를 받는 신체 기관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인간의 탄생을 가름하는 선 400

이른바 "개인"이 점차로 발달하는 뇌로부터 조금씩 출현한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생명 윤리의 문제들을 재구성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뇌가 완전히 조립되거나 완전히 접속되어 처음으로 반짝하고 켜지는 어느 한 시점을 생물학자들이 발견했다면 문제는 아주 간단해졌겠지만, 뇌는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신경계는 배아에서 하나의 간단한 관 모양으로 생겨난 후 뇌와 척수로 분화된다. 뇌는 태아 때부터 기능을 하기 시작하지만, 아동기를 거쳐 심지어 사춘기까지도 배선을 계속한다. 종교적 윤리학자와 비종교적 윤리학자들이 한 목소리로 "인성의 기준"을 확인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데에는, 뇌 발생기의 어느 한 시점에 인간의 탄생을 가름하는 선을 그을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그런 선을 발견했다는 주장은 어김없이 도덕적 모순으로 이어진다.


그런 권한 401

어차피 다른 포유류들도 살기 위해 투쟁하고,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처럼 보이고, 행복이 위태로워질 때에는 고통과 두려움과 스트레스를 겪는다. 대형 원숭이들도 우리처럼 호기심과 가족애라는 고도의 즐거움을 느끼고 지루함, 외로움, 슬픔 같은 깊은 고통을 경험한다. 그런 권한이 오직 우리 종에게만 소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퇴출당한 감자 이야기 404

2001년 유럽연합(EU)의 한 보고서는 15년에 걸친 81건의 조사 프로젝트를 검토한 결과 유전자 조작 곡물이 인간의 건강과 환경에 새로운 위험을 가한다는 증거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것은 생물학자에게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유전자 조작 식품은 결코 "자연"식품보다 위험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자연 식품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건강 식품점에서 판매하는 거의 모든 동물과 야채는 수천 년 동안 선택적인 품종 개량과 이종 교배를 통해 "유전적으로 조작된" 것들이다. 야생에서 자라던 당근의 조상은 가늘고 쓴맛이 나는 흰색 뿌리였다. 옥수수수의 조상은 쉽게 부서지는 속에 돌처럼 단단하고 작은 낱알 몇 개가 붙어 있던 1인치 길이의 보잘것없는 품종이었다. 다윈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식물들은 먹히겠다는 특별한 욕구를 갖지 않은 생물이어서 맛있다거나 건강에 좋다거나 인간이 재배해서 수확하기 쉬운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인간에게 먹히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자극물, 독성, 쓴맛이 나는 성분 등을 진화시켰다. 따라서 자연 식품이라고 해서 특별히 안전한 점은 없다. 유해물에 저항하기 위해 선택적으로 교배하는 "자연"의 방법은 식물의 독성 농도를 증가시키기만 한다. 자연 감자의 한 품종은 인간에게 해로운 독성이 발견되어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한 두려움은 건강의 측면에서 보자면 명백히 비합리적일 뿐 아니라, 식품 가격을 더욱 올려서 가난한 사람들이 이용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이 그럴듯한 두려움은 어디서 나오는가? ······

······ 이렇게 볼 때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한 두려움은 더 이상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생물에는 어떤 본질이 있다는 표준적인 직관에 불과하다. 자연 식품에는 그 식물이나 동물의 순수한 본질이 있고 그와 함께 그것이 성장한 시골 환경의 건강한 힘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두려움 407

위험에 대한 지각이 사실에서 크게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실재론적 직관 때문만은 아니다. 위험 분석가들은 사람들의 두려움이 종종 객관적 위험의 한도를 벗어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자동차 여행이 11배나 더 위험한데도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 여행을 피한다. 그리고 욕조에서 익사할 가능성이 400배나 높은데도 상어에게 잡아먹힐 것을 두려워한다.


위험과 두려움 409

위험을 완전히 이해하는 합리적인 사람들조차도 진보한 기술을 외면하기로 결정할 수 있다. 만약 어떤 것이 본능적으로 역겹다고 느껴지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것이 합리적이든 아니든 자신의 심리적 기준에 따라 거부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위생적으로 복원된 쓰레기장에서 재배한 야채를 거부하고 바닥이 유리로 된 승강기를 피하는 것은, 그것이 위험하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그런 생각이 두려움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개념의 힘으로 살아가는 종 419

비경합재의 힘은 인간의 진화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인류학자 존 투비와 어빈 드보어는 수백만 년 전 윌의 조상들이 이 세계의 생태계에서 "인지적 적소"를 점유했다고 주장한다. 사람과(科)의 동물인 호미니드는 환경의 인과적 관계를 모형화할 수 있는 정신적 연산 방법을 진화시킴으로써 마음의 눈으로 사건의 전개 과정을 그려 보고, 자기 주변의 돌, 식물, 동물을 이용하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해 낼 수 있었다. 인간의 실제적 지능은 언어(기술 정보를 낮은 비용으로 공유할 수 있게 한다.)와 사회적 인식(사람들로 하여금 속지 않게 함으로써 협동하게 한다.)과 함께 진화했을 것이고, 그래서 말 그대로 개념의 힘으로 살아가는 종을 탄생시켰을 것이다.


양자 역학 421

머리 겔만은 양자 역학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그 사용법을 알고 있는 신비하고 혼란스런 학문 분야"라고 설명했다. 리처드 파인만은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아무도 양자 역학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 가능하다면 ······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라는 의문 따위는 버리는 게 좋다. ······ 어떻게 그러는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양자 이론을 이해한다고 생각한다면, 양자 이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요!"


오래된 수수께끼들 422

우리의 조합적 지능으로 최선을 다해 분석해 봐도 그 이상한 실체들을 낚아 올릴 만한 낚싯바늘을 얻어낼 수가 없어서, 그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그 존재를 부정하거나 신비주의로 빠지게 된다. 좋건 궂건 우리의 세계는 항상 약간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어서 우리 후손들은 끝없이 종교와 철학의 오래된 수수께끼들을 숙고할 것인데, 그 수수께끼들은 결국 물질과 마음의 개념들과 연결되어 있다. 앰브로즈 비어스의 『악마의 사전』에서는 마음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마음 [명] 뇌에서 분비되는 신비한 물질 형태, 주요 작용은 자신의 본질을 확인하려는 노력에 있으나, 그 시도가 무익한 것은 자신의 본질을 알기 위해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의존해야 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게 내 본능이야 424

한 우화에 다르면, 전갈 한 마리가 개구리에게 강을 건너게 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독침으로 개구리를 찌르면 자기도 물에 빠져 죽게 될 터이니 절대로 찌르지 않겠다고 안심시켰다 한다. 강을 절반쯤 건넜을 때 전갈은 개구리를 찔렀고, 독침에 찔린 개구리가 왜 찔렀는지 이유를 묻자 전갈은 "그게 내 본능이야."라고 대답했다 한다.


'다윈주의적'이라는 말 425

생물이 때때로 서로를 해치는 것은 신비가 아니다. 진화에는 양심이 없다. 만약 어떤 생물이 포식, 협박, 기생, 탁란 등의 방법으로 다른 놈을 해쳐서 이익을 얻으면, 그 후손들은 조상의 역겨운 습관을 앞세워 생태적으로 우세한 지위를 점하게 된다. 이 때문에 "다윈주의적"이라는 말은 "무자비하다"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었고, 테니슨은 자연의 모습을 피로 물든 이빨과 발톱으로 묘사했다.

족벌주의는 인간의 보편적인 성향이자 대규모 조직의 보편적인 재앙이다. 그것은 세습 왕조가 지배하는 나라들을 도탄에 빠뜨리고 제3세계 정부와 기업들을 수렁에 빠뜨리는 대표적인 악습이다. 이에 대해 역사적으로 자주 등장하는 해결책은 가족적 연고가 없는 사람들, 가령 환관, 독신자, 노예, 집이 먼 사람 등에게 해당 지역의 권력을 주는 것이었다. 보다 최근에 등장한 해결책은 친족 등용을 법으로 금지하거나 규제하는 것인데 그나마 그러한 규제에는 항상 타협 조항과 예외 조항이 딸려 있다. 규모가 작은 회사-종종 "가업"이나 "아버지 회사"라 불린다.-일수록 족벌주의가 심하고, 따라서 기회 평등의 원칙을 위배하고 주변 사회로부터 분노를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의 생각)
기회 평등의 원칙을 위해한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 딸의 경우' 대한민국 사회 전체의 분노가 참으로 대단했던 것 같다.


참여와 헌신 441

흔히 달걀을 주는 닭과 베이컨을 주는 돼지의 공헌도를 가리켜, 전자는 참여이고 후자는 헌신이라고 말한다.


일시적 섹스 444

"일시적 섹스는 일시적이지 않다. 상처 없이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여기에는 생물학적으로 깊은 이유가 있다. 섹스의 위험 중 하나가 아기인데, 아기는 기껏해야 3킬로그램 남짓밖에 안 되지만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여성은 남성과 섹스를 할 때마다, 앞으로 몇 년간 어머니로 살아야 할 가능성은 물론이고 상대방의 변덕에 따라 독신모가 될 수도 있는 도박까지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유한한 출산 능력의 일부를, 더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다른 남자에게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까먹고 이 남자의 유전자와 목적에 바쳐야 한다. 남자 입장에서는 은연중에 미래의 아기에게 자신의 땀과 노고를 바치고 있거나, 그 목적을 상대방 여성에게는 속이고 있는 셈이 된다.


은밀하게 섹스를 하는 이유 445

에리카 종이 다른 대목에서 한탄했듯이, 침대에는 단 두 사람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항상 부모, 전 애인, 실제의 도는 상상의 경쟁자가 자리잡고 있다. 다시 말해, 제3자들도 성 관계의 가능한 결과에 대해 이해관계가 있는 것이다. ······ 제3자들의 이해 관계는 왜 섹스가 거의 보편적으로 은밀하게 행해지는가를 설명한다. 시먼스는, 남성의 번식 성공은 여성을 손에 넣은 경우로 엄격히 제한되기 때문에 남성들 생각에 섹스는 항상 희귀한 물품이라고 지적했다. 사람들이 은밀하게 섹스를 하는 이유는, 기근이 일어났을 때 귀한 음식을 먹으려면 은밀하게 먹어야 하는 이유와 같다. 즉 위험한 질투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호혜적 이타주의 448

실험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사람들이 이방인을 가장 돕고 싶어하는 경우는, 낮은 비용으로 그를 도울 수 있을 때, 그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그리고 그가 보답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 베풀 수 있는 호의를 베룰지 않았을 때 죄 의식을 느끼는 사람, 자기에게 호의를 베풀지 않은 사람을 응징해 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까? 448

공익에 필수적으로 수반하는 문제는 이솝 우화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까?」에 잘 나타나 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면 고양이가 가까이 왔을 때 경고음이 나기 때문에 좋을 것이라는 데 한 집 안의 쥐들이 모두 동의하지만, 어떤 쥐도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방울을 매달려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는 자발성-즉 공익에 기여하려는 마음-은, 만약 그 부담을 짊어지는 사람에게 보상을 해 주겠다는 자발성이나 그 부담을 회피하는 사기꾼에게 응징을 내리겠다는 자발성이 수반한다면 진화할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 455

의심하는 사람에게 나는 믿을 만하고 관대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확신을 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믿을 만하고 관대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자기 기만 463

자기 기만 이론은 일찍이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의 1959년 저서 『일상 생활에서의 자아 표현』에 의해 예고된 바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는 가면 뒤에는 하나의 진실한 자아가 있다는 낭만적 견해를 반박했다. 고프먼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가면 뒤에는 또 다른 가면들이 계속 있다는 것이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수많은 발견들이 그의 이론을 뒷받침했다.


합리화 464

영화 「새로운 탄생(The Big Chill)」에서 제프 골드블럼은, "합리화는 섹스보다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친구들이 이의를 제기하자 그는 이렇게 묻는다.
"한 번도 합리화를 하지 않고 일주일을 보낸 적이 있는가?"


과대 평가 465

사회 심리학 실험들이 보여 주는 바에 따르면 사람들은 시종일관 자신의 능력, 정직성, 관대함, 자율성을 과대 평가한다. 사람들은 공동의 노력에 포함된 자신의 기여도를 과대 평가하고, 자신의 성공을 능력 탓으로, 실패를 불운 탓으로 돌리고, 항상 상대방에게 더 좋은 조건을 양보했다고 느낀다.


자기 기만(2) 466

자기 기만은 인간의 다툼과 어리석음을 만들어 내는 가장 뿌리깊은 원천 중 하나이다. 그것은 우리의 차이를 해결해야 하는 기능들-진리를 추구하고 합리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잘못된 눈금에 맞추어져 있어서, 논쟁의 당사자들은 제각기 자기 자신을 실제보다 더 현명하고, 유능하고, 고상하다고 평가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논쟁의 당사자들은 자신의 논리와 증거가 정확하고, 상대방은 착각에 빠졌거나 부정직하거나 아니면 둘 다라고 진심으로 믿는다. 자기 기만은 도덕 관념이 종종 유익한 결과보다는 해로운 결과를 낳는 이유 중 하나이다.


비극의 목적 466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비극의 기본 목적은 고통을 포함해 인간의 마음 속에 잠재해 있는 연민과 두려움, 경탄과 경외의 감정을 일깨우는 것이라 했다. 비극은 적대적인 세계 앞에 서 있는 인간의 가치를 옹호한다.


영원한 공식 466

자연은 살과 피를 나눈 사람들의 감정을 살짝 어긋나게 조율하는 잔인한 장난을 쳤지만, 그럼으로써 모든 시대의 소설가와 극작가들에게 끊임없는 일거리를 제공했다. 두 명의 인간이 동물의 세계에세 가장 강한 끈으로 묶일 수 있고 그와 동시에 때때로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은 연극적 가능성을 무한히 증폭시킨다. 비극적 이야기가 가족 관계에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 최초의 인물은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가 지적했듯이, 두 명의 낯선 사람이 싸우다 죽는 이야기는 두 명의 형제가 서로 싸우다 죽는 이야기에 비해 조금도 흥미롭지 않다. 카인과 아벨, 야곱과 에서, 오이디푸스와 라이오스, 마이클과 프레도, 제이알과 바비, 프레지어와 나일스, 요셉과 형제들, 리어왕과 딸들, 한나와 자매들 ·······, 수세기에 걸친 드라마 목록에서 볼 수 있듯이, "일가의 증오"와 "일가의 적대"는 영원한 공식이다."


완벽에 가까운 작품 467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와 요카스타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지만, 아버지가 곧 오빠이고 언니가 곧 어머니라는 사실은 가족의 고난이 시작되는 출발점에 불과하다. 안티고네는 크레온 왕의 명을 어기고 형제인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묻어 주는데, 이것을 알게 된 왕은 그녀를 산 채로 매장하라고 명령한다. 안티고네는 그를 속이고 먼저 자살하지만, 그녀를 미친 듯이 사랑했던 왕의 아들은 그녀의 사면을 얻어내지 못한 것을 애통해하며 그녀의 무덤 위에서 자결한다. 스타이너는 『안티고네』야말로 "그리스 비극의 최고봉이자 인간이 만든 어떤 예술보다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이야기한다.


강렬한 감정 470

가족과 친구에 대한 우리의 감정도 이와 똑같다. 우리 마음 속에 풍부하고 강렬한 감정이 존재하는 것은 삶 속에서 그들과의 결속이 얼마나 귀중하고 깨지기 쉬운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간단히 말해, 고통의 가능성이 없어진다면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조화롭고 완벽한 행복이 아니라 의식의 결핍인 것이다.


도덕 관념 475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Haidt)는 최근에 인간의 도덕 관념을 구성하는 감정들을 하나의 계보로 짰다. 그가 분류한 네 가지 주요 집합은 트리버스의 호혜적 이타주의 이론과 그것을 기초로 해 협동의 진화를 실험한 컴퓨터 모델들의 실험 결과와 정확히 일치한다. 타인 비난(other-condemning) 감정-경멸, 분노, 혐오-은 사기꾼을 처벌하게 하는 작용을 하고, 타인 칭찬(other-praising) 감정-감사, 고양시키는 감정, 도덕적 경외, 감동-은 이타주의자에게 보상하는 기능을 한다. 타인 고통(other-suffering) 감정-동정, 공감, 연민-은 어려운 수혜자를 도와 주는 기능을 하고, 자의식적(self-conscious) 감정-죄 의식, 수치, 당혹-은 남을 속이지 않거나 속인 결과를 바로잡는 기능을 한다.

이 감정의 집합들 뒤에는 세 개의 도덕성 영역이 있는데, 각 영역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도덕적 판단의 틀을 형성한다. 자율성(autonomy) 윤리는 개인의 이해와 권리에 관계한다. 그것은 공평함을 기본 미덕으로 강조하며, 서양 문화권에서 비종교적 교육을 받은 사람들 사이에서 도덕성의 핵심으로 이해된다. 공동체(community) 윤리는 집단의 사회적 관습에 관계한다. 여기에는 의무, 존경, 인습에 대한 고수, 계급 조직에 대한 복종 같은 가치가 포함된다. 신성(divinity) 윤리는 숭고한 청렴과 신성의 감정에 관여하며, 오염과 신성 모독의 감정과 대립된다.


진실한 신자 VS 냉소적인 운영자 490

인간의 도덕화에는 여전히 조심해야 할 점이 많다. 도덕성을 신분이나 순수함과 혼동하는 것, 지나치게 도덕적인 차원에서 판단을 내리고 그에 따라 반대자들에 대한 공격을 허락하는 것, 불가피한 흥정안을 생각하는 것조차 금기시하는 것, 어디에나 존재하는 자기 기만의 악덕(자기 자신을 항상 천사의 편이라고 생각한다.), 히틀러 역시 온갖 이유로 자신의 대의가 청렴하다고 확신했던 도덕주의자(실은 도덕적 채식주의자)였다. 역사학자 이안 부루마는 이렇게 썼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진실한 신자가 냉소적인 운영자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본다. 냉소적인 운영자는 패를 버릴 줄 안다. 반면에 진실한 신자는 끝까지 가서 기어코 세상을 무너뜨린다."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 506

노력하기 전에는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노력을 포기하고 기존의 악습을 이 세계의 존재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비양심적이다. 로버트 케네디의 장례식에서 그의 동생 에드워드 케네디는 다음과 같은 로버트의 연설문을 인용했다.


우리 모두는 결국 심판을 받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새로운 세계의 건설에 바친 우리의 노력에 따라, 그리고 우리의 이상과 목표를 그러한 노력으로 얼마만큼 만들어 냈는가에 따라 틀림없이 우리 자신을 심판할 것이다.

미래는 오늘에 만족하고, 공통의 문제와 동료 인간들에게 무관심하고, 새로운 생각과 용감한 계획을 두려워하는 자들의 몫이 아니다. 그것은 전망과 이성과 용기를 묶어 미국 사회의 이상과 위대한 모험에 직접 뛰어들어 헌신하는 자들의 몫이다.

우리의 미래는 우리의 전망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우리의 지배에서는 완전히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숙명이나 자연이나 저항할 수 없는 역사의 파도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노력이 이성과 원칙과 일치할 때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사실이 바로 미국을 건설하는 힘이다. 그 속에는 자부심이 있고 어찌 보면 거만함도 있지만, 또한 경험과 진리가 있다. 여하튼 그것은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느닷없이 나타난 과학자들 513

1970년대 들어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진화 생물학과 행동 유전학 개념들은 유토피아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모욕일 수 있었다. 결국 유토피아적 관점은 빈 서판(영구적인 인간 본성은 없다.), 고상한 야만인(이기적 본능이나 악한 본능은 없다.), 기계 속의 유령(보다 나은 사회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운 "우리")을 기초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과학자들이 나타나 이기적 유전자 운운하다니!


종(種)이 틀렸다 517

개미에 대한 세계적 전문가 윌슨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은 최종 결론을 내렸다. "이론은 훌륭한데 종(種)이 틀렸다."


정치의 목적과 필요성 520

존 애덤스는, "타인으로부터 존경을 받으려는 욕구는 굶주림만큼이나 자연스럽고 실질적인 욕구이다. 이 열정을 규제하는 것이 정치의 주요한 목적"이라고 말했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아무리 고결한 사람이라도 명예욕의 지배를 벗어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제임스 매디슨은 이렇게 말했다. "천사들이 인간을 지배한다면 그때서야 정치에 대한 외적·내적 통제가 불필요해질 것이다."


우리가 인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 감에 따라 533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인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 감에 따라 전통적인 정치적 전선은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좌익 이데올로기와 우익 이데올로기가 형태를 갖춘 것은 다윈도 멘델도 그 누구도 유전자가 무엇이고 뉴런이 무엇이고 호르몬이 무엇인지를 몰랐을 때였다. 정치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누구나 정치적 이데올로기들이 인간 본성에 대한 이론을 기초로 하고 있다고 배운다. 그렇다면 왜 그 이데올로기들이 300년 전의 낡은 이론을 기초로 해야 한다는 말인가?


식인 풍습 536

수십 년 동안 "평화의 인류학자들"은 어떤 인간 집단도 동족을 잡아먹는 습성인 식인 풍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증거는 쌓여만 가고 그 중에는 대단히 결정적인 증거도 포함되어 있다. 고고학자들은 미국 남서부에서 발견된 850년 전의 유적지에서, 음식으로 먹다 남은 동물의 뼈처럼 잘게 분해된 사람의 뼈를 발견했다. 그들은 또한 그릇 파편에서 인간의 미오글로빈(인종의 근육 단백질) 흔적을 발견했고, 놀랍게도 화석화된 인간의 배설물에서도 같은 것을 발견했다. 네안데르탈린과 현대 인류의 공통 조상의 친척이라 할 수 있는 호모 안티세서(Homo antecessor)들 역시 서로를 공격하고 도살했는데, 이것은 폭력과 식인 풍습의 기원이 적어도 8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적 잔인성 537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반 카라마조포는 투르크족이 불가리아에서 저지른 만행을 알고 나서 다시 이렇게 말했다. "어떤 동물이 인간만큼 이렇게 예술적으로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국제사면위원회의 연례 보고서는 예술적 잔인성이 결코 흘러간 옛 노래가 아님을 보여 준다.


신념을 보여 주기 위한 주문 542

"폭력은 학습된 행동"이라는 진술은 올바른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폭력은 감소해야 한다는 신념을 보여 주기 위해 거듭 외워 대는 주문이다. 그것은 어떤 확실한 조사에도 근거하고 있지 않다. 슬픈 사실은 "우리는 폭력을 낳는 조건을 알고 있다."라는 확언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 수 있는 어떤 단서도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공격을 위한 설계의 직접적인 증거 553

인간의 신체와 뇌를 볼 때 우리는 공격을 위한 설계의 직접적인 증거를 곳곳에서 보게 된다. 남성의 신체 크기, 힘, 상체 골격이 더 큰 것은 진화의 역사가 남성들 간의 폭력적인 경쟁으로 점철되어 왔음을 폭로하는 동물학적 증거이다. 그 밖의 증거로는, 테스토스테론이 지배 성향과 공격성에 미치는 영향, 분노의 감정(송곳니를 드러내고 주먹을 쥐는 반사 작용으로 완성된다.), "싸움 도피(fight-or-fight)"라는 확실한 이름이 붙은 자율 신경계의 반응, 뇌의 억제 시스템이 (알코올, 전두엽이나 편도의 손상, 세로토닌 대사 작용과 관련된 유전자의 결함 등에 의해) 고장 났을 때 변연계의 회로에 의해 공격적인 행동이 유발될 수 있다는 사실 등이 포함된다.


누구의 소가 다쳤는가에 달린 문제 555

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폭력적 사고 방식을 영웅적으로 볼 것인가 병적으로 볼 것인가는 종종 누구의 소가 다쳤는가에 달려 있다. 자유의 전사인가 테러리스트인가, 로빈후드인가 도둑인가, 수호 천사인가 자경단원인가, 귀족인가 군벌인가, 순교자인가 카미카제인가, 장군인가 깡패 두목인가-이것은 가치 판단의 문제이지 과학적 분류의 문제가 아니다.


폭력적 본능 556-557

홉스는 흔히 자연 상태의 인간은 서로를 증오하고 파괴하는 비합리적 충동에 사로잡힌 존재라고 주장하는 철학자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분석은 보다 섬세하고 어쩌면 훨씬 더 비극적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행위자들의 상호 작용으로부터 어떻게 폭력이 발생하는가를 설명했기 때문이다. 홉스의 분석은 진화 생물학, 게임 이론, 사회 심리학 분야에서 재발견되고 있으며, 나 역시 그의 분석을 토대로 해서 폭력의 논리를 논한 다음 인간이 어떻게 폭력적 본능을 중화하기 위해 평화적 본능을 구사하는가의 문제로 넘어가고자 한다.

다음은 그 유명한 "인간의 삶"에 관한 구절 앞에 제시된 분석이다.

인간의 본성에서 우리는 싸움의 세 가지 주된 요인을 발견한다. 첫째는 경쟁이고, 둘째는 자신감 결여이고, 셋째는 영광이다. 첫 번째는 인간이 이익을 위해 서로를 공격하게 만들고, 두 번째는 안전을 위해 서로를 공격하게 만들고, 세 번째는 가령 말 한마디, 미소, 견해 차이를 비롯하여, 본인이 직접 겪는 것이든 혈연, 친구, 국가, 직업, 이름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겪는 것이든 자신을 무시하는 갖가지 사소한 이유들 때문에 서로를 공격하게 만든다.

첫째는 경쟁이다. 자연 선택의 힘은 경쟁에 있는데, 그것은 자연 선택의 산물들-리처드 도킨스의 비유에 따르면 생존 기계들-이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일이면 어떤 것이든 미리 정해진 디폴트 값에 따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략)

둘째, "불신"의 원래 의미는 자신감 결여(diffidence)이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번역한 홉스는 "전쟁이 불가피해진 것은 성장하는 아테네의 힘과 그에 대해 스파르타가 느낀 두려움 때문이었다."라는 설명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만약 이웃이 내가 가진 것을 몹시 탐낸다면 나는 그들의 욕구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따라서 나는 자신을 방어할 준비를 해야 한다. 방어란 성벽, 마지노선, 대탄도 미사일 등의 첨단 기술을 망라해도 불확실한 방법이고, 그런 것이 없으면 더욱 미심쩍고 불확실하다. 자기 보호를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잠재적으로 적대적인 이웃에게 선제 공격을 퍼부어 쓸어 버리는 것일 수 있다. 요기 베라의 충고대로 "최상의 수비는 최상의 공격이고, 또 최상의 공격은 최상의 수비이다."

셋째는 영광인데 보다 정확한 단어는 "명예"일 것이다. 인간은 "말 한마디, 미소, 견해 차이를 비롯해 자신을 무시하는 갖가지 사소한 이유들 때문에" 싸운다는 홉스의 말은 17세기에나 지금에나 사실이다.



남자들 558

또 다른 인간 장애물은 아내로 삼을 수 있는 여자들을 독점하고 있는 남자들이다. 홉스가 이 현상을 지적한 것은 1세기 후 로버트 트리버스에 의해 밝혀질 진화론적 이유를 모른 상태에서였다. 트리버스가 밝힌 진화론적 이유는, 남성과 여성이 부모로서 투자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의 최소치가 서로 달라서 여성의 번식 능력이 희소 가치를 띠게 되고 그로 인해 남성들이 경쟁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왜 남성이 폭력적인 성인가, 그리고 왜 남성들은 생존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에도 항상 무엇인가를 놓고 다투는가를 설명한다. 국가 이전 사회의 전쟁에 대한 연구를 보면, 남성들은 음식이나 땅이 모자라서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남자들이 다른 부락을 습격하는 이유는 종종 여자를 유괴하기 위해, 과거의 유괴에 대한 앙갚음을 하기 위해, 또는 결혼할 여자의 교환 조건을 놓고 일어난 분쟁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여자들이 가령 물질적으로 더 많이 소유하고 있는 사회에서도 남자들은 여자를 유혹할 수 있는 지위와 부를 높고 경쟁을 벌인다. 그 경쟁은 폭력적일 수 있는데, 댈리와 윌슨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현재의 길로 달리면 완전한 번식의 실패로 끝날 것이라 느끼는 생물은 종종 죽음을 무릅쓰더라도 어떻게든 현재의 생활 궤도를 개선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길에 놓인 가난한 젊은이들은 지위와 부와 짝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해 목숨이라도 걸려고 한다.


먹는 것과 못 먹는 것 559

······ 사람들의 도덕적 범위에는 모든 인간이 아니라 자신의 친족, 마을, 부족의 구성원들만 포함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이 모순을 이해할 수 있다. 그 범위 안에 포함된 사람들은 공감의 대상이고, 범위 밖에 있는 사람들은 돌이나 강이나 음식물처럼 취급된다. 이전의 한 책에서 나는 아마존에 사는 와리 부족의 언어에는 먹는 것과 못 먹는 것을 구별하는 일련의 명사 분류사가 있는데, 그 부족의 구성원이 아닌 사람은 누구나 먹는 것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언급한 적이 있다.


식인 풍습과 동물 해방 560

우리에게 식인 풍습은 아주 불쾌한 것이어서 오랫동안 인류학자들 조차도 그것이 선사 시대에 일반적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쉽게, 어떻게 사람들이 그렇게 끔찍한 행동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운동가들도 육식을 하는 사람들을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 육식을 하는 사람들은 무수한 생명을 죽음으로 몰 뿐 아니라 그렇게 하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소를 마취도 시키지 않은 채 거세시키거나 낙인을 찍고, 낚싯바늘로 물고기의 입을 꿰뚫어 잡아 올린 다음 보트 바닥에 내동댕이쳐 헐떡거리게 하고, 바다 가재를 산 채로 삶는다. 내 요점은 채식주의를 도덕적으로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폭력과 잔인성에 대한 사고 방식을 조명해 보자는 것이다. 역사학과 민족지학에서는 마치 우리가 바다 가재를 취급하듯이 사람들이 타인을 취급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행동에 대한 우리의 몰이해는 우리의 행동에 대한 동물 권리 운동가들의 몰이해와 비교될 수 있다. 『확대되는 원』의 저자 피터 싱어가 『동물 해방』의 저자인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세계주의적 관점에 기여하는 기술 561

로버트 라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일본을 폭격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내 미니밴이 일본제라는 것이다." 이 외에도 다른 사람들과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게 만드는 세계주의적 관점에 기여하는 기술에는, 언어 능력, 여행, 역사적 지식, 사실주의 예술이 포함된다. 이런 기술들을 통해 사람들은 다른 시대였다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적이었을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 자기 자신을 투사해 본다.


약자의 처신
572

만성적으로 반목하고 싸우는 사회에서 남성적 미덕의 핵심은 폭력적인 능력이다. 이때 머리 사냥과 화려한 전적은 위신과 직결되고, 살인이 통과 의례의 필수 조건이 되기도 한다. 다른 쪽 뺨을 내미는 것은 고상한 행동이 아니라 멍청한 짓이거나 경멸할 만한 약자의 처신이 된다.


전쟁보다 더 나쁜 것들
582

체임벌린의 후계자 처칠은 왜 평화가 일방적인 평화주의로 해결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닌지를 설명했다.
"전쟁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고? 불명예가 전쟁보다 더 나쁘다. 노예 상태가 전쟁보다 더 나쁘다."


캐나다가 이웃 나라보다 더 평화로운 이유
583

캐나다가 이웃 나라보다 더 평화로운 데에는 정부가 국민을 앞질러 영토를 선점했다는 이유도 있다. 정착민들이 수많은 구석과 틈이 숨어 있는 광대한 이차원적 영토 위로 부채꼴처럼 퍼져 나갔던 미국과는 달리, 캐나다의 거주 가능한 지역은 미국과의 국경을 따라 1차원의 띠로 펼쳐져 있어서 명예 문화가 자리잡을 미개척지와 고립된 주거지가 없었다. 캐나다 연구학자 데즈먼드 모턴은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의 서부는 경찰이 정착민보다 먼저 도착하면서 평화롭고 질서 있게 확장되었다."


죄수의 딜레마 585

죄수의 딜레마는 평화주의자의 딜레마와 비슷하다. 한쪽에게만 좋은 것(전쟁)은 양쪽 모두에게 나쁘다. 그러나 양쪽 모두가 서로에게 좋은 것(평화)을 선택할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할 때에는 최선의 결과(평화)를 얻을 수 없게 된다.

죄수의 딜레마에서 승자가 되는 유일한 방법은 규칙을 바꾸거나 게임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조합적· 회귀적인 사고 능력 587

합리성의 개방적 측면에 대한 강조는, 마음이 조합적·회귀적 체계라는 인지과학의 발견과 일맥 상통한다. 우리는 생각을 할 뿐 아니라, 생각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에 대한 생각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가 이 장에서 살펴보았던 갈등 해결의 진보적 방법들-법치에 복종하는 것, 양편이 체면을 잃지 않고 양보하는 방법을 찾는 것, 자기 기만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 자신의 이익과 타인의 이익을 평등한 눈으로 보는 것-은 조합적· 회귀적인 사고 능력에 달려 있다.


문제와 해결책 모두 인간 본성에 있다 587

많은 지식인들이 폭력의 진화론적 논리를 외면한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그것을 수용하거나 승인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고상한 야만인이 던져 주는 안락한 망상을 추구하면서, 폭력이 학습의 임의적 산물이거나 외부에서 침투한 병원균이라고 믿어 왔다. 그러나 폭력의 논리를 거부하면 폭력이 얼마나 쉽게 고개를 드는지를 잊기 쉽고, 폭력에 불을 붙이는 마음의 기능들을 무시하면 그 불을 끌 수 있는 마음의 기능들을 간과하기 쉽다. 우리의 많은 관심사들처럼 폭력의 경우에도 문제는 인간 본성에 있고, 해결책도 인간 본성에 있다.



아프리카에서 온 남자와 여자 601

(중략) 따라서 남자는 화성에서 오지 않았고 여자는 금성에서 오지 않았다. 남자와 여자는 모두 진화의 요람인 아프리카에서 왔고, 그 곳에서 한 종으로서 함께 진화했다. 남자와 여자는 Y 염색체에 있는 소량의 유전자 말고는 모두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며, 뇌 또한 아주 비슷해서 독수리처럼 날카로운 눈을 가진 신경 해부학자들만이 몇 안 되는 차이를 간신히 발견할 정도이다. 최고의 심리 측정 기술에 따르면 남녀는 일반 지능의 평균도 비슷하다. 그리고 언어를 사용하고 물리적 세계와 생물에 대해 생각할 때에도 동일한 방법을 적용한다. 남녀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감정을 느끼고, 양쪽 다 섹스를 즐기며, 영리하고 친절한 결혼 상대자를 찾고, 질투를 하고, 자식을 위해 희생을 하고, 지위와 짝을 얻기 위해 경쟁을 하고, 때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격을 감행한다.


안드로겐과 에스트로겐 607

인간의 몸에는 남자 아이의 뇌와 여자 아이의 뇌가 서로 다르게 발달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이 담겨 있다. Y 염색체가 남자 태아의 몸에서 고환의 성장을 촉발시키면, 고환은 (테스토스테론을 비롯한) 남성 특유의 호르몬인 안드로겐을 분비한다. 안드로겐은 태아 발생기와 출생 후 수개월, 그리고 사춘기 동안 뇌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여성 특유의 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도 평생 동안 뇌에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뇌에서 성호르몬 수용체는 대뇌 피질은 물론이고 시상하부, 해마, 변연계의 편도에서 발견된다. ······ 남자는 전(前)시상하부의 간질핵과, 분계선조의 핵, 시상하부의 핵이 월등히 큰데, 이것이 성적 행동와 공격성에 관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남자의 매력 622


보통 남성의 자부심은 지위, 봉급, 재산과 더 밀접하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성에게서 무엇을 찾는가에 대한 수많은 연구에서 볼 수 있듯이 성적 파트너나 결혼 상대자로서의 남자의 매력도 그런 것들과 밀접하다. 따라서 남자들은 자기 분야에서 승진이나 출세를 하기 위해 더 많이 일하고 삶의 다른 부분들을 기꺼이 희생시킬 수 있다고-따분한 지방 도시에서 살거나, 발령을 받았을 때 친구와 가족을 떠나 살 수 있다고-말한다.


성과 양육의 관계 623


자식에 대한 애착은 대개 아버지들보다는 어머니들 쪽이 더 강하다. 이것은 전 세계 모든 사회에서 사실일 뿐 아니라, 약 2억만 년 전 최초의 포유류가 진화한 시점까지 우리의 계통을 거슬러 올라가도 그럴 것이다. 수잔 에스트리히의 표현대로, "성과 양육의 관계가 깨지길 기다리는 것은 고도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수입을 비교하는 방식 623


경제학자 제니퍼 로백은 이렇게 지적한다. "사람들이 금전적 수입을 희생하고 다른 즐거움을 찾는다면, 이 사람과 저 사람의 수입을 비교하는 방식으로는 어떤 것도 추론할 수 없다."


인간 본성에 대한 과학 648

감정만 앞서고 도덕적으로는 무의미한 엉터리 지식 때문에 주제에서 벗어날 이유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 본성에 대한 과학들 덕분에 우리는 엉터리 정보와 정말로 중요한 목표를 구별함으로써 여성의 권익을 향상시킬 수 있게 되었다. 여성 운동은 정치적·사회적 평등을 위한 운동으로서는 중요하지만, 인간 본성에 대한 괴벽스런 교의에 몰두하는 학문적 파벌로서는 중요하지 않다. 여성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여성과 남성이 뒤바뀔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믿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선택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여성이 모든 직업의 50퍼센트를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행동 유전학의 세 가지 법칙 652

행동 유전학의 세 가지 법칙은 심리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견일 것이다. 그러나 세 가지 법칙이 여러 시사 잡지의 커버 스토리를 통해 소개되었음에도,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그것을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았고,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중략)

세 가지 법칙은 다음과 같다.

제1법칙 : 인간의 모든 행동 특성은 유전적이다.
제2법칙 : 한 가족 내에서 양육되는 것의 효과는 유전자의 영향보다 작다.
제3법칙 : 복잡한 행동 특성들의 편차 중 상당 부분은 유전자나 가족의 영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중략)
세 법칙을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유전자 50퍼센트, 공유 환경 0퍼센트, 단독 환경 50퍼센트(조금 양보하자면, 유전자 40∼50퍼센트, 공유환경 0∼10퍼센트, 단독 환경 50퍼센트). 이것을 기억하는 간단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일란성 쌍둥이는 함께 자라든 따로 자라든 50퍼센트 비슷하다.



무엇이 우리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드는가 652


알렉산더 포프는 "가지가 휘는 대로 나무는 굽는다."라고 말했다. 워즈워스는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말했고, 밀턴은 "아침이 하루를 보여 주듯 유년은 그 사람을 보여 준다."라고 말했다. 예수회 수도사들은 "아이의 처음 7년을 다오. 그러면 너에게 어른을 돌려줄 수 있다."라고 했는데, 이 금언은 영화 감독 마이클 앱티드가 영국 아이들을 7년 단위로 추적해 제작한 다큐멘터리에 맺음말로 사용되기도 했다.


생애 후반 656


예를 들어 지능의 유전율은 개인의 나이에 따라 증가하고, 생애 후반에는 0.8까지 높게 나타나기도 한다. "가지가 휘는 대로"가 아니라, "이런, 내가 우리 부모랑 똑같이 되어 가고 있군!"인 것이다.


유전적 656


일반 지능은 유전적이고, 사람들의 성격에 차이를 부여하는 다섯 가지 주요 특성 또한 유전적이다. 그 다섯 가지 주요 특성은 지적 개방성, 성실성, 외향성-내행성, 적대성-친화성, 정서 안정성인데 이를 OCEAN이라는 약자로 지칭하기도 한다. 그리고 놀라울 만큼 구체적인 특성들-가령 니코틴이나 알코올 의존성, 텔레비젼 시청 시간, 이혼 가능성 등-도 유전적이다.


지적 장애의 진단 662


유전자 이야기만 나오면 사람들은 갑자기 이성을 잃고 50퍼센트와 100퍼센트, "어떤"과 "모든", "영향을 미친다"와 "결정한다"를 구분하는 능력을 상실한다. 이런 지적 장애의 진단은 간단하다. 만약 유전자의 영향이 신학적인 이유로 0이어야 한다면, 0이 아닌 모든 값들도 똑같이 이단적일 것이다.


도가니 683


거의 모든 경우에 사람들은 부모가 아니라 또래를 모델로 삼는다. 이것이 바로 그토록 포착하기 힘들었던 환경의 성격 형성에 대한 해리스의 설명으로, 그녀는 여기에 집단 사회화 이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모든 것이 유전자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유전자에 없는 것이 부모에게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사회화-사회생활에 필요한 규범과 기술의 습득-는 또래 집단에서 이루어진다. 아이들도 문화가 있으며, 그 문화는 성인 문화의 요소들을 흡수하는 동시에 그들만의 가치와 규범을 발전시킨다. 아이들은 깨어 있는 동안 어른들의 근사치가 되려고 노력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아이들은 보다 나은 아이들, 그들 자신의 사회에서 잘 살아가는 아이들이 되려고 노력한다. 우리의 인성은 바로 이 도가니에서 형성된다.


자유의지가 아니라 운명이라는 개념 696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우리가 인간 본성을 설명할 때 과학 이전의 한 개념-자유 의지가 아니라 운명이라는 개념-에 여지를 남겨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자유 의지가 아닌 이유는, 함께 자란 일란성 쌍둥이들 간에 다르게 나타나는 특성들 중에는 본인도 어쩔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정신 분열증 환자, 동성애자, 음악적 천재는 물론이고 불안한 사람, 자신만만한 사람, 지적으로 개방적인 사람이 되겠다고 결정하지 않는다. 일단 우리가 발생 과정에 작용하는 수많은 우연의 가능성을 인정한다면, (엄격히 예정된 길이라는 뜻에서가 아니라,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미래라는 의미에서의) 운명이라는 오래된 개념은 현대 생물학과 손을 잡을 수 있다. 이 점에 있어 해리스는 우리가 자녀를 형성할 수 있다는 믿음이 얼마나 최근의 것이고 편협한가를 지적하면서 1950년대 인도의 외진 마을에 사는 한 여자의 말을 인용한다. 자식이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내 바람과는 상관없이 그건 아이의 운명에 달려 있다."


또래 집단 698

사람들은 아이가 특별한 인간 관계의 당사자란 사실을 쉽게 잊고 말랑말랑한 공작용 재료쯤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또래 집단에 적응한다는 이론도 그들을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생각하면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다. "또래 집단"은 우리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친구와 동료"라고 표현하는 것을 아이들의 세계에 그럴듯하게 적용시킨 용어이다. 우리는 찢어진 청바지나 배꼽티를 입고 싶어 안달하는 아이들을 보고 개탄하지만, 마찬가지로 덩치가 아주 큰 사람이 나에게 분홍색 덧바지를 입혀 기업 이사회 모임에 보내거나 디스코 의상을 입혀 학술 회의에 보낸다면 죽고 싶은 심정이 들 것이다. "또래 집단에 의해 사회화된다"는 "어떤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인데, 사회적 동물에게 이것은 "삶"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아이들을 빈 서판이라 생각하면서 아이들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종종 망각한다.


예술은 적응 특성의 부산물 708


나를 포함한 일부 학자들은(이야기 문학을 제외한) 예술이 세 가지 적응 특성의 부산물이라고 생각한다. 그 세 가지 적응 특성은 지위에 대한 갈망, 적응할 수 있는 사물과 환경을 경험할 때 얻는 미적 즐거움, 원하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인공물을 설계하는 능력이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예술은 마약이나 성애 예술 또는 섬세한 요리법처럼 즐거움의 기술이며,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자극을 정화하고 농축해서 우리의 감각에 제공하는 방법이다.


지위에 대한 충동
711


예술이 채택한 마지막 심리적 특성은 지위에 대한 충동이다. 더턴이 목록으로 작성한 예술의 보편적 특성에는 비실용성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쓸모 없는 것이 역설적으로 특별한 목적에 매우 유용할 수 있는데, 그 특별한 목적이란 바로 타인의 재산 감정이다. 소스타인 배블런이 그의 사회 지위 이론에서 최초로 이 개념을 강조했다. 우리는 이웃의 은행 통장이나 카드 대금 청구서를 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재산을 짐작하는 좋은 방법은 그들이 사치품과 여가 활동에 돈을 낭비하는가 아닌가를 살피는 것이다. 배블런은 취미의 심리가 세 가지 '금전적 규범"에 따라 움직인다고 말했다. 확실한 소비, 확실한 여가, 확실한 낭비가 그것이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설명한다. 즉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물은 예외 없이 희귀한 재료에 까다롭고 전문적인 노동을 가해 만든 물건, 또는 섬세하고 불편한 옷이나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취미처럼 자신이 육체 노동에서 자유롭다는 것을 나타낼 수 있는 어떤 것이다.


기이한 장식의 진화 711

생물학자 아모츠 자하비도 이와 동일한 원리를 이용해 가령 공작의 꼬리처럼 동물들에게서 볼 수 있는 기이한 장식의 진화를 설명했다. 아주 건강한 수컷 공작들만이 아까운 영양분을 성가시고 사치스러운 꼬리로 돌릴 수 있다. 암컷은 꼬리의 아름다움을 보고 짝을 평가하고, 진화는 최고의 꼬리를 가진 수컷들을 선택한다.

애호가들은 이 제안에 깜짝 놀라겠지만, 예술-특히 엘리트 예술-은 확실한 소비를 보여 주는 교과서적인 예이다. 정의상 예술은 실용적 기능과 무관하고, 더턴이 그의 목록에서 지적했듯이 일반적으로 미덕(유전적 우수성, 기술 연마를 위한 시간, 또는 둘 다를 보여 주는 징표)과 비평(예술과 예술가의 가치를 측정한다)을 수반한다. 유럽 역사의 대부분 동안 미술과 사치스러움은 함께했다. 오페라 극장의 사치스런 장식, 그림을 담은 장식적인 액자, 음악가의 정장, 고서의 표지와 제본 등이 좋은 예이다. 예술과 예술가는 귀족이나 갑작스런 존경을 추구하는 벼락부자들의 후원을 받았다. 오늘날에도 그림, 조각, 사본들은 여전히 충격적인 가격에 팔린다(1990년 반 고흐의「닥터 가셰의 초상화」는 8,250만 달러에 팔렸다).


상류 계급의 견장 713

예술 창작과 소유의 목적 가운데 하나(유일한 목적이 아니라)가 다른 사람들(단지 장래의 짝만이 아니라)에게 자신의 사회적 지위(유전적 우수성 만이 아니라)를 각인시키는 것이라는 설명은 위의 이론에서 설득력이 약한 부분에 해당하지만, 나는 이 설명을 각별히 지지한다. 베블런이 제시한 이 개념은 예술사학자 쿠엔틴 벨에 의해 그리고 톰 울프의 소설과 논픽션을 통해 상세히 설명되어 왔다. 아마도 현재 가장 열렬한 옹호자는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일 것이다. 어렵고 난해한 문화적 산물에 대한 감식안은 상류 계급의 견장 역할을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해하는 능력의 희소성 722

20세기의 예술은 더 이상 작품 자체의 희소성이나 뛰어남으로 특권을 부여하지 못하게 되었고, 대신 작품을 이해하는 능력의 희소성으로 특권을 부여해야 했다. 부르디외가 지적하듯이, 단지 특별히 선택된 엘리트만이 새 예술 작품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인지적 착각 727

분명한 사실은 여가 시간을 즐기는 방법에 따라 도덕적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예술가와 감식가들이 도덕적으로 앞서 있다는 확신은, 도덕성에 해당하는 회로가 지위에 해당하는 회로와 교차 배선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인지적 착각에 불과하다. 비평가 조지 스타이너가 지적했듯이, "한 남자가 저녁에 괴테나 릴케를 읽고 바흐나 슈베르트를 연주하고 나서는 아침에 일어나 아우슈비츠로 출근할 수 있다." 반면에 글자조차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신체 일부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자원 봉사자로 일하거나 장애아를 입양해 키우면서, 현대 예술에 대해서는 "우리 네 살 난 딸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야기 733

A. S. 바이어트는《뉴욕타임스 매거진》의 편집자들이 지난 1,000년 동안 최고의 이야기가 무엇이었냐고 묻자 사헤라자데 이야기를 꼽았다.

 『천일야화』속의 이야기들은 ······ 사랑과 삶과 죽음과 돈과 음식과 그 밖의 다른 필수품들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하는 이야기들이다. 인간에게 있어 이야기하기는 숨쉬기나 혈액 순환만큼이나 중요한 본성이다. 모더니즘 문학은 이야기를 제거하려 했다. 이야기를 저속하게 생각했고, 플래시백, 직관, 의식의 흐름 등으로 대체했다. 그러나 이야기는 생물학적 시간의 본질이어서 우리는 그로부터 탈출할 수 없다. 파스칼이 말했듯이, 인생은 동료 죄수들이 매일 처형당하기 위해 끌려 나가는 감옥에서 사는 것과 같다. 세헤라자데처럼 우리도 누구나 사형 선고를 받은 존재여서, 자신의 삶을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는 이야기로 생각한다.


인간이라는 동물 733

존 업다이크 역시 지난 1,000년을 회고해 달라는 질문에 자신이 속한 문학의 미래로 그 답을 대신했다. "거짓말의 전문가인 소설가는 역설적으로 무엇이 진실인가에 집착한다." 그리고 "진실의 단위는 최소한 소설가에게는 지난 10만 년 동안 변하지 않은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에 속한, 인간이라는 동물이다."


" ······ 인간은 팽팽한 긴장 속에서 죽음을 예견하고 리비도를 의식하는 동물이다. 지상의 어떤 다른 존재도 그렇게 뛰어난 사고 능력을, 가능성을 상상하고 좌절하는 복잡한 능력을, 종족과 생물학의 명령을 의심하는 골치아픈 능력을 경험하지 못한다.

그렇게 많은 갈등과 영리함을 지닌 존재로서 인간은 허구적인 생각에 초점을 맞추며 끝없이 즐거워한다. 아마도 호모 사피엔스는 아무리 아름다운 유토피아에 도달해도 자신의 모든 갈등을 풀거나 온갖 심술의 원천인 궁핌함을 제거할 만큼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의 비극
755

인간의 비극은 모든 인간 관계에 본래부터 존재하는 불공평한 이해 갈등에 있다는 것이 나의 마지막 주제이다. 나는 그것을 어떤 위대한 소설에서도 쉽게 발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지 스타이너는『안티고네』에 대한 글에서, 그 불멸의 문학 작품이 "인간의 조건에 항상 존재하는 모든 주된 갈등들"을 표현하고 있다고 썼다. 존 업다이크는 "보통 사람들이 경험하는 갈등이 글을 쓰는 우리의 손과 가슴을 뜨겁게 한다."라고 말했다.


인간 본성 759

······ 격노와 사랑과 신비와 영원한 매력이 가득하며 예측이 가능한 그것을 우리는 인간 본성이라 부른다.


(끝)




댓글(1)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oren 2010-10-07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 들렀다가 소설가 조정래 선생님의 아래 글을 발견하고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저 또한 스티븐 핑커의 책들을 두 번씩이나 읽고도 모자라 그의 책에 대해 '필사'를 하다시피 '엄청난 분량'의 밑줄 친 부분들을 여러 날 밤을 졸면서까지 타이핑했는데, '괜한 헛수고'는 아니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저 또한 단순하고도 고된 작업을 하면서도 '저자인 스티븐 핑커는 이 많은 분량의 책을 쓰기 위해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했을까. 이 훌륭한 책을 쓰느라 숱한 책들을 헤메고 다녔을 게 아닌가.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그래도 창작은 창작 아닌가. 저자는 이 방대한 분량을 새로이 지어내기까지 했는데, 책 내용의 일부를 베껴쓰는 것조차 힘들어 하는 건 저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 * * * * * * * * * * * * * * * * * *
정독 중의 정독, 필사

우리 흔한 말이 그런 게 있죠.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 마찬가지로 저 당나라 시대부터 백 번 읽는 것보다 한번 옮겨 베끼는 필사가 더 효과가 있다는 것이에요. 필사는 정독 중의 정독이거든. 그래서 우리 아들, 며느리에게 니 애비가 어떤 고통 속에서 이 글을 썼는가를 알아라, 그래야 내 새끼로서의 자격이 있다. 그런 뜻으로 필사를 시킨 것이고, 독자들도 필사를 하게 되면 태백산맥 문학관에 놔줄 수 있냐고 최근에도 확인이 왔어요. 그래서 필사를 정말 다 하시면 그러겠다고 했어요. 그러나 정말 필사하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우리 아들과 우리 며느리는 자식, 며느리의 의무 때문에 억지로 마지못해서 하는 부분이 있어요. 알아요. 그러나 서른 두 권을 쓴 사람에 비하면 필사는 훨씬 쉬운 일이니까 정말 쓰는 독자가 있을 수 있겠죠. 쓰시면 반드시 태백산맥 문학관에 전시해 드리겠습니다. 이름 명확하게 박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