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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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대홍수

어느새 바다와 대지가 따로 없었다.

온 세상이 바다였고 바다에는 해안도 없었다.

어떤 사람은 언덕을 차지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구부정하게 휜 거룻배를 타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쟁기질하던 곳 위로 노를 저어 지나갔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곡식밭이나 또는 물에 잠긴 별장의 지붕 위로

배를 타고 지나갔고, 또 다른 사람은 느릅나무 우듬지에서 물고기를

잡았다. 그리고 때로는 우연히 닻이 초록빛 풀밭에 내려지거나,

굽은 용골들이 물에 잠긴 포도밭 위를 스쳐 지나가는 일도 있었다.

방금 전만 해도 여윈 염소 떼가 풀을 뜯던 곳에서는

이제 물개들이 보기 흉한 몸을 드러낸 채 쉬고 있었다.

네레우스의 딸들은 물 밑에서 임원들과 도시들과 집들을

보고 놀랐고, 돌고래들은 숲을 차지하고는 높은 나뭇가지들에

부딪치기도 하고 줄기들을 들이받아 흔들어보기도 했다.

늑대가 양 떼 사이에서 헤엄치는가 하면, 황갈색 사자들과 호랑이들도

물결에 떠다니고 있었다. 멧돼지에게 벼락 같은 힘은 쓸모없어졌고

사슴에게는 날랜 다리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되었으니,

함께 물에 휩쓸렸다. 그리고 새들은 앉을 만한 대지를 찾아

오랫동안 떠돌아다니다가 지쳐 결국 바닷물에 떨어졌다.

바다는 엄청난 방종을 만끽하며 언덕들을 덮었고,

낯선 파도들이 산꼭대기들을 쳤다.

대부분의 생물들은 물에 빠져 죽었고, 물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것들도 식량이 부족하여 오랜 기근으로 굶어 죽었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1권 291∼312행


 

 

넵투누스의 말, 월터 크레인(1845∼1915), 1893, 캔버스에 유채, 뮌헨 노이에 피나코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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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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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시대

첫 번째 시대는 황금시대였다. 이 시대에는 벌주는 자도 없고

법이 없어도 모두들 스스로 신의를 지키고 정의로운 일을 행했다.

·····
또한 대지는 시키지 않아도, 괭이에 닿거나 보습에

다치지 않고도 저절로 온갖 것을 제공해주었다.

·····
마지막으로 온 것은 단단한 철(鐵)의 시대였다.

더 저급한 금속의 시대가 되자 지체 없이 온갖 불법이 쳐들어왔다.

부끄럼과 진실과 성실은 온데간데없었다.

그 자리에는 기만과 계략과 음모와 폭력과 저주 받을 탐욕이

들어찼다. 뱃사공은 여태까지 잘 알지 못했던 바람들에게 돛을 맡겼고,

전에는 높은 산 위에 서 있던 용골(龍骨)들은

여태까지 알지 못했던 파도 위에서 오만하게 춤추었다.

그리고 전에는 햇빛과 공기처럼 공유물이었던 지면(地面) 위에

세심한 측량사가 경계선을 길게 그었다.

사람들은 풍요로운 지면에게 씨앗과 그것이 우리에게 빚지고 있는

식량만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대지의 내장 속으로 파들어갔다.

그리하여 대지가 스튁스의 그림자들 근처에다 감춰둔

재보(財寶)를 파내니, 재보야말로 악행들을 부추기는 자극제이다.

그리하여 어느새 유해한 무쇠와 무쇠보다 더 유해한 황금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이 두 가지를 두고 끊임없이 전쟁이 벌어져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요란하게 울리는 무기들을 휘둘렀다.

사람들은 약탈을 생업으로 삼았다. 친구는 친구 앞에서,

그리고 장인은 사위 앞에서 안전하지 못했고,

형제들 사이에서도 우애는 드물었다.

남자는 아내가 죽기를, 아내는 남편이 죽기를 바랐다.

무시무시한 계모들은 사람을 창백하게 만드는 독약을 조제했고,

아들은 때가 되기도 전에 아버지의 수명을 알아보았다.

경건함이 패하여 쓰러져 눕자, 처녀신 아스트라이아가

하늘의 신들 중에 마지막으로 살육의 피에 젖은 대지를 떠났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1권 143∼150행

 

 

[The Statue of Ceres] 1612∼1615, 루벤스, 판 유채, 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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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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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만 위로 들린 얼굴을 주며

다른 동물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대지를 내려다보는데
신은 인간에게만은 위로 들린 얼굴을 주며 별들을 향하여
얼굴을 똑바로 들고 하늘을 보라고 명령했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우주와 인간의 탄생>, 제1권  84∼86행

 

 

아마 아직 어떤 동물도 별이 있는 하늘을 주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해는 여전히 의지의 직무를 위해 요구되는 데까지만 미친다. 지각과 지각된 것에 의해 청원되는 것은 완전히 구별되지 않는다. 심지어 좀 더 영리한 동물은 객체들에서 자신과 관계있는 것만을, 즉 자신의 의지에 관련되거나 어쩌면 미래에 관련될 수도 있는 것만을 본다. 마지막 경우의 예를 들면, 고양이는 장소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습득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다른 모든 것에 대해 동물들은 둔감하다. 아마 아직 어떤 동물도 별이 있는 하늘을 주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개는 우연히 처음으로 해를 바라보았을 때 크게 놀라서 펄쩍 뛰었다. 가장 영리하고 또 훈련을 통해 교육된 동물들에게서 주변에 대한, 관심 없는 이해의 최초의 약한 흔적이 가끔 나타난다. 개들은 이미 사물을 뚫어지게 바라보기까지 한다. 창가에 앉아 지나가는 모든 것을 주의 깊게 쳐다보는 개들을 우리는 자주 본다. 원숭이는 마치 주변에 관해 숙고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가끔 주위를 둘러본다. 인간에게서 비로소 동기와 행위 및 표상과 의지가 완전히 명백하게 분리된다. 그러나 이 분리가 의지에 대한 지성의 예속 상태를 즉시 지양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일상인은 사물들에서 그 자신과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어떤 관계를 갖는 것(그에게 관심있는 것)만을 참으로 명백하게 이해한다. 나머지 다른 것에서 그의 지성은 엄청나게 게으르다. 따라서 그 나머지는 배후에 머무르며 완전하고 환한 명백성을 갖고 의식에 나타나지 않는다. 현상에 대한 철학적 경탄과 예술적 감동은 그가 무엇을 하든지 그에게 영원히 이질적인 것으로 남는다. 엄밀히 말하자면 일상인에게는 모든 것이 저절로 이해되는 것으로 보인다. 지성을 의지와 의지의 직무로부터 완전히 분해하고 분리하는 것은 내가 내 책의 미학 부분에서 상세히 보여주었듯이 천재의 특권이다. 천재는 객관성이다. 사물이 직관 안에서(이 기초적이고 내용이 풍부한 인식에서) 나타날 때 갖는 순수한 객관성과 명백성은 실제로 매 순간 의지가 동일한 사물에서 받아들이는 몫과 반대의 관계에 서 있다. 그리고 의지 없는 인식은 모든 미학적 이해의 조건이며 실로 그 본질이다. 왜 인상적인 화가는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풍경을 그렇게 나쁘게 묘사하는가? 그가 그것을 더 아름답게 보지 않기 때문이다. 왜 그는 풍경을 더 아름답게 보지 않는가? 그의 지성이 의지로부터 충분히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분리의 정도는 인간들 사이에서 큰 지적 차이를 만든다. 인식은 의지로부터 더 많이 벗어날수록 더 순수하며, 결국 더 객관적이고 정확하기 때문이다. 자라난 땅의 뒷맛을 갖지 않은 열매가 가장 좋은 열매인 것처럼 말이다. 

 

 - 쇼펜하우어,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 <식물생리학>, 145∼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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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 수상록 동서문화사 월드북 12
미셸 드 몽테뉴 지음, 손우성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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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18. 반증에 대하여


자랑으로 보여준다는 의심의 여지는 없다 734


이것은 서재의 한구석에 꽂아 두고, 이웃이나 친척이나 친구로 이 영상 속에 나와 사귀고, 나를 알아보고 싶은 이에게 심심풀이로 주기 위한 것이다. 남들은 당당하고 풍부한 재료를 자기들 속에서 찾기 때문에 자기의 말을 할 생각이 났다. 나는 반대로 내 재료가 너무 가늘고 얇으며 빈약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니, 여기에 자랑으로 보여 준다는 의심의 여지는 없다.


이 책으로 일반 사람들과 가질 수 있는 교제
734

내가 이 책으로 일반 사람들과 가질 수 있는 교제는 기껏해야 그들의 인쇄 기계를 빌린다는 일뿐이다. 그것이 더 신속하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이 책의 낱장은 아마도 장터에서 버터 한 귀퉁이가 녹아 떨어지지 않게 막아줄 것이다.

다랑어나 올리브를 마음껏 싸는 포장지가 되어 주자.                                                   (마르티알리스)

그리고 나는 자주 고등어에게 편하게 들어 있을 옷을 제공하련다.                                 (카툴루스)


내 글을 읽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해도 735

내 글을 읽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해도, 내가 그 많은 한가한 시간을 그렇게도 유용하고 즐거운 사색으로 보낸 것이 시간의 낭비였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내 자신의 틀에 이런 그림을 판박아 내며, 나를 뽑아 내기 위해서 그렇게도 여러 번 손질하고 꾸며 보아야 했기 때문에, 나라는 원형이 어느 점에서 굳어지고 만들어져 갔다. 남을 위해서 나를 그려 가다가, 나는 첫 빛깔보다도 더 뚜렷한 색채로 내 속에 나를 색칠해 간 것이다. 내가 내 작품을 만들었는지 내 작품이 나를 만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이 작품은 작가와 동체이며 작가 자신만이 취급되고, 내 생명의 부분으로 되어 있다. 다른 서적들처럼 제3의 외부적인 목적으로 취급된 것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도 끊임없이, 그렇게까지 호기심을 가지고 나 자신을 보고해 온 것은 단지 시간 낭비뿐이었을까? 오로지 공상으로, 그리고 말로만 몇 시간 동안 자기를 더듬어 보는 자들은, 그것으로 자기 연구와 자기 작품, 그리고 자기 직업을 삼으며 성심껏 전력을 다해서 꾸준히 기록해 가는 일에 전념하는 자만큼 본심으로 자기를 살피지도 자기 속에 침투하지도 못한다.

가장 감미로운 쾌락은 그것이 내부적으로 소화되면 그 흔적을 남기기를 피하고, 세상 사람들뿐 아니라 남의 눈에 띄는 것을 꺼린다.

얼마나 여러 번 이 일이 내게서 울적한 상념을 흩어지게 해 줬는가! 모든 부질없는 상념들은 울적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자연은 우리들에게 외따로 반성하는 소질을 풍부하게 선사하였고, 우리는 부분적으로는 사회의 신세를 지고 있지만, 그 최대 부분은 우리 자신에게 신세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우리에게 스스로 반성해 보도록 자주 권고한다. 내 공상에도 어떤 질서와 계획을 세워서 몽상해 가도록 정리하여 그것이 바람결에 흩어져 사라지는 것을 막으려면, 이 공상에 떠오르는 하고많은 자디잔 생각들에 형체를 주어서 기록해 두는 수밖에 없다. 나는 몽상들을 기록해 두어야 하기 때문에, 이 몽상들을 주의해서 듣는다. 내가 얼마나 여러 번 어떤 행동에 관해서 예법과 이성이 드러내 놓고 비난하지 못하게 하는 데 마음속에 화가 북받쳤는가, 그것을 대중에게 알려 주려는 의도도 없지 않아서 여기에 털어놓는다. 그리고 참으로---

저 잡놈의 눈깔 위에 탁!
배때기에 탁! 등때기에 탁!                                                                                              (마로)

이 시의 채찍은 몸뚱이에 때릴 때보다 종잇장 위에 매질할 때에 자국이 더 잘 박힌다. 뭐? 내가 다른 책들에서 무엇이건 도둑질해 작품을 장식하거나, 보강할 수 있을까 하고 엿보아 온 것에, 좀더 책들의 말에 주의해서 귀를 기울이면 어떠냐고? 나는 책을 만들기 위해서 공부한 것이 아니고, 책을 만들었기 때문에 얼마쯤 공부하였다. 적어도 이때는 이 작가, 저때는 저 작가의 머리나 다리를 스쳐 보고 꼬집어 보는 것이 공부라면 말이다. 결코 내 사상을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다. 벌써 오래 전에 형태가 잡힌 사상들을 보충하고 거들어 주기 위해서 하는 일이다.


거짓말 737


거짓말이라는 것은 천한 악덕이다. 그리고 옛 사람(플루타르트를 말함)은 이것을 수치스럽게 묘사하며, 그것은 신을 경멸하고 동시에 인간을 두려워한다는 증거를 보여 주는 일이라고 하였다. 이 악덕의 흉칙스럽고 비굴하고 난잡스러움을 이보다 더 풍부하게 표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에 대하여 비굴하고 신에 대해서 용감하다는 것보다 더 비굴한 일을 달리 상상해 볼 수 있는가? 우리들의 상호 양해는 오로지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 말을 그릇하는 자는 공공 사회를 배반하는 것이다. 말은 그 방법으로 우리의 의지와 사상을 서로에게 전달하는 유일한 연장이다. 그것은 우리들 심령의 통역이다. 말이 우리에게 없으면 우리는 서로 의지할 수 없으며, 알아보지도 못한다. 말이 우리를 속인다면 우리의 모든 관계를 부수며 우리 사회의 모든 연락을 무너뜨린다.

(나의 생각)

'신뢰의 가치'를 역설한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책 『트러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19. 신앙의 자유에 대하여


20. 우리는 순수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맛보지 못한다


꼬랑지끼리 붙들어매어 놓기로 작정한 것 743

우리가 갖는 쾌락이나 재물들은 고통과 불편이 얼마간 섞여 있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쾌락의 샘 복판에 쓴 것이 솟아나와
꽃처럼 피어나는 연인들을 괴롭힌다.                                                                                   (루크레티우스)

우리의 탐락은 극도에 도달하면 어느 점에서 신음과 오열의 풍이 있다. 이 탐락이 고민 속에 사라진다고 말하지 못할 일인가? 진실로 우리가 그 모습을 절정 상태에 꾸며 볼 때에, 우리는 그것을 오뇌·유연·허약·실신·병태 등 병적이며 고통스런 소질의 접두사로 매흙질한다. 그들이 혈연성과 동질성으로 되었다는 두드러진 증거이다.

심각한 기쁨은 쾌활성보다 더 엄격함을 지닌다. 극도로 충만한 만족감에는 유쾌미보다도 한층 안정감이 있다. "절제 없는 행복감은 그 자체를 파괴한다." 안일은 우리들을 찢어발긴다.

그리스의 한 시구 첫머리가 바로 그런 뜻으로 말하고 있다. "신들은 우리에게 주는 모든 일들을 판매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어떠한 좋은 일도 순수하고 완벽하게 주지 않으며, 그것을 우리는 대가를 치르고 산다는 말이다. 노고와 쾌락은 기본 성질상 대단히 다르지만, 그렇지만 무엇인지 모르는 자연스런 결합으로 서로 협력한다.

소크라테스는 어떤 신이 고통과 쾌락을 뭉쳐서 뒤섞어 놓으려고 했다가 그것을 잘 해낼 수 없자, 이들을 꼬랑지끼리 붙들어매어 놓기로 작정한 것이라고 하였다.


보상 없는 불행은 없다 744

대자연은 우리에게 이런 혼돈을 드러내 보인다. 화가들은 울 때에 사용하는 얼굴 움직임과 주름살이 웃을 때에도 역시 쓰인다고 생각한다. 이 두 가지 표현이 완수되기 전에 화가가 그려가는 모습을 살펴보라. 어느 쪽으로 그려 가는 것인지 의심이 생긴다. 그리고 웃음의 절정에는 울음이 섞인다.


"보상 없는 불행은 없다."(세네카) 인간이 소원대로의 편익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을 상상해 보면(신체의 모든 부분이 늘 생식 행동(生殖行動)의 쾌감이 극치에 이르렀을 때의 것과 같은 쾌감으로 잡혀 있을 경우를 들어 보면), 나는 그가 쾌감의 무게 밑에 쓰러져서, 그렇게도 순수하고 견실하고 보편적인 탐락을 전혀 견디어 낼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 경지에 있으면 그는 마치 발을 단단히 디딜 수 없어 빠져 들어갈까 두려워하는 것같이 조급해져서 달아난다.


표본적 처벌 745

"모든 표본적 처벌은 개인들에 대하여 비공정성을 지니되, 그것은 공공의 이익으로 보상된다"고 타키투스는 말한다.


25. 병자를 흉내내지 말 것에 대하여


상상력의 작용 758


플리니우스는 어떤 자가 전에는 아무런 병도 없었는데, 자다가 시각장애인이 된 꿈을 꾸고 나서 다음 날 바로 시각장애인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내가 다른 데서도 말했지만, 상상력은 그런 작용을 일으키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플리니우스도 같은 의견인 것 같다. 그러나 의사들이 그 원인을 알아보려고 했으면 발견했을 일이지만, 그에게서 시각을 앗아 가고 있던 증상을 신체는 그 내부에 느끼고 있었으며, 이 증상이 꿈을 꾸게 한 동기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이치에 맞다.



우리의 병폐 759

"우리의 병폐는 우리 밖에서 찾을 일이 아니다. 우리들 속에 있다. 그리고 바로 우리가 병들어 있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의 병을 고치기가 어려워진다. 우리가 일찍부터 자신을 보살피지 않으면 언제 가서 그 많은 상처와 병폐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인가? 그 때문에 우리는 철학이라는 대단히 감미로운 약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다른 약들은 치료되고 난 뒤에 밖에는 유쾌한 맛을 느끼지 못하는데, 이 약은 쓸 데에도 유쾌하며, 동시에 병을 고쳐 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세네카가 편지글에서 한 말이다.


27. 비겁은 잔인의 어머니



비겁은 잔인의 어머니 760

나는 '비겁은 잔인의 어머니'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리고 저 악의에 찬 비인간적인 마음씨의 악랄함과 가혹함은 대개 여성적인 유약한 성격에 수반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중에도 가장 잔인한 자들이 변변찮은 이유로 쉽사리 우는 것을 보았다.


가장 비겁한 부류들, 겁 많은 똥개들 761


승냥이나 곰 같은 짐승들 중에도
가장 비겁한 부류들이 죽어 가는 사람을
집요하게 습격한다.      (오비디우스)

마치 겁 많은 똥개들이 들판에서는 공격할 엄두도 못 내던 야수들의 껍질을 집에 가지고 와서는 찢고 물어 뜯는 식이다.


돌덩이에 상처를 입었다고 해서 761


적의 숨길을 끊기보다는 패배시키는 것에, 그를 죽이기보다는 굴복시키는 데에 더 큰 용맹과 멸시가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뿐더러 복수의 욕망은 이것으로 더 만족한다. 복수는 자기 실력을 뼈저리도록 느끼게 하는 것밖에 다른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짐승이나 돌덩이에 상처를 입었다고 해서 그것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리의 보복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없는 데서라면 763


한 문장을 공격하려고 그 작가가 죽기를 기다리는 자는 약한 자이며 싸움꾼이라는 것밖에 무엇을 뜻하는가? 누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어떤 자가 당신을 나쁘게 말하더라고 하자 그는, "그보다 더한 것이라도 하게 하오. 내가 없는 데서라면 아무리 내게 매질해도 좋소"라고 말했다.


28. 모든 일에는 저마다 때가 있다
 



한 발은 무덤 속에 있는데도 772

젊은이는 자기 준비를 해야 하고, 늙은이는 그것을 누려야 한다고 현자들은 말한다. 그리고 우리의 천성에서 그들이 주목하는 가장 큰 결함은, 우리의 욕망이 끊임없이 다시 젊어지는 일이다. 우리는 늘 살기를 다시 시작한다. 우리의 공부와 욕망은 때로는 늙음을 느껴야 할 일이다. 우리는 한 발은 무덤 속에 있는데도 욕망과 추구는 출생만 하고 있다.

그대는 죽음에 임박해서도 무덤 생각은 않고,
대리석을 깎으며 가옥을 건축한다.      (호라티우스)

내 계획은 가장 긴 것이라 해도 일 년의 폭을 넘지 않는다. 나는 이제부터는 마지막을 장식할 생각밖에 않는다. 나는 내게서 모든 새로운 희망과 계획을 벗어던진다. 나는 이제 두고 떠나려는 모든 장소에 마지막 작별을 고한다. 그리고 날마나 내가 가진 것을 포기해 간다.

"오래 전부터 나는 잃지도 따지도 않는다. 내게는 갈 길보다 더 많은 비용이 남아 있다."(세네카)


30. 한 기형아에 대하여



전에 본 일이 없는 것 783

"그가 빈번히 보는 것은 어째서 그렇게 되는가를 그가 알지 못할 때라도 그를 놀라게 하지는 않는다. 그가 전에 본 일이 없는 것이 일어나면, 그것은 기적이라고 생각한다."(키케로)


31. 분노에 대하여


격정이 지배하는 것 785


우리의 맥이 극도로 뛰며 흥분을 느끼는 동안은 일을 중지할 일이다. 우리의 마음이 가라앉아 냉철해질 때에는 사물들은 다르게 보일 것이다. 그때에는 격정이 지배하고 격정이 말하는 것이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다.

격정을 통해서 보면, 마치 안개를 통하여 보는 물체와 같이 잘못들이 우리에게 더 크게 보이는 것이다. 배고픈 자는 음식을 찾는다. 그러나 징계를 사용하고자 하는 자는 벌 주고 싶은 생각에 굶주리고 목이 말라서는 안 된다.


키케로와 브루투스 786

나는 옛 사람들의 문장에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쓰는 자는, 그런 생각을 가진 체하고 말하는 자보다 더 강한 감명을 주는 것에 주목한다. 키케로가 자유애(自由愛)에 관해서 말하는 것을 들어 보라. 브루투스가 같은 제목으로 말하는 것을 들어 보라. 그 문장에서, 이 후자는 생명을 내걸고 자유를 살 인물이라는 것이 울려 온다.


키케로와 세네카 786


웅변의 시조인 키케로에게 죽음의 경멸을 말하게 해 놓고, 세네카에게 같은 문제를 다루게 해 보라. 전자는 기운 없이 끌어간다. 그리고 자기가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을 그대에게 결단내리게 하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는 그대에게 조금도 용기를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후자는 그대에게 활기를 주고 불을 지른다. 나는 작가들, 특히 도덕과 의무를 취급하는 작가들은 그가 어느 종류의 인물인가를 호기심을 가지고 살펴보지 않고는 그 작품을 읽지 않는다.


분노라는 격정, 격정이 갑자기 꾸며낸 궤변 788


분노는 그 자체에 쾌락을 느끼며, 아부하는 격정이다. 얼마나 여러 번 우리는 그릇된 원칙 아래 혼동되어서, 누가 와서 우리들 앞에 정당한 변호와 변명을 제시하면, 우리는 진리나 실속 없는 일에 대해서 분개하는가! 나는 이 문제에 관해서 옛날의 한 경이로운 예를 기억하고 있다.

피소는 탁월한 도덕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는 자기 부하 병사 하나가 꼴을 베러 갔다가 혼자 돌아왔고 같이 갔던 동료를 어디에 두고 왔는지 말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이 자가 그를 죽인 것이 명백하다고 생각하고 당장에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그래서 그를 사형대에 올려놓았을 때에 마침 길을 잃었던 동료가 돌아왔다. 군대 전체는 이것을 큰 경사로 여기고, 두 병사는 한참 서로 껴안고 어루만지면서 반가워했다. 그 다음 거기 와 있던 피소에게도 이 일은 대단히 기쁘리라고 기대하고, 사형 집행인이 이 두 병사를 그의 앞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사정은 거꾸로였다. 피소는 수치와 울분으로 아직도 속에서 치밀어오르던 화가 배로 터지며, 그의 격정이 갑자기 꾸며 댄 궤변으로, 홧김에 이 셋에게 죄를 씌우며 모두 형장으로 보내게 하였다. 첫번 병사는 그가 선고를 받았으니 유죄이고, 길을 잃었던 둘째 병사는 그의 동료의 죽음의 원인이 되었으니 그렇고, 사형 집행인은 그가 받은 명령에 복종하지 않은 까닭에 죄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힘든 것 789


분노를 조절하려면 잔혹하게 자기를 억제해야만 한다. 나로서는 격정치고, 그것을 덮어가며 버티어 나가는 데 이렇게 힘든 것을 알지 못한다.


가장된 건전함 밑에 은폐된 때에 789∼790


사람들은 분노를 숨기다가 그것이 몸에 배어들게 한다. 그것은 마치 데모스테네스가 주막집에서 사람들에게 들킬까 봐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을 보고, 디오게네스가 "속으로 물러나 들어갈수록 더욱 그대는 그 속으로 들어간다"고 말한 식이다. 나는 점잖은 외모를 보이느라고 속으로만 고민하는 것보다는 차리라 격에 맞지 않게 하인의 뺨을 한 대 치는 편이 낫다고 충고한다. 그리고 고생하며 울화통을 덮어두기보다는 차라리 그것을 밖으로 터뜨려 내보낼 것이다. 격정은 새어 나가서 밖으로 표현되면 힘이 약해진다. 격정의 화살을 안으로 향하게 해서 우리를 해치게 하는 것보다는 밖으로 작용시키는 편이 낫다. "모두 드러내 보이는 악덕은 비교적 가볍다. 그것은 가장(假裝)된 건전함 밑에 은폐된 때에 가장 나쁘다."(세네타)


허공에 대고 화를 내서는 안 된다 790

허공에 대고 화를 내서는 안 된다. 그 꾸지람이 자기가 불평으로 생각하는 자에게 도달하도록 잘 보아서 해야 한다. 어떤 자는 꾸지람 받을 자가 앞에 나오기도 전에 고함지르며, 그가 가 버린 뒤에도 한 세기를 두고 계속해서 소리지른다.


누가 어떻게 밀건 791


불행한 일로 사람이 낭떠러지에 서게 되면, 누가 어떻게 밀건 늘 바닥까지 떨어지게 마련이다. 추락은 그 자체가 돌진과 격앙과 촉진력을 제공한다.


분노라고 하는 무기 792


다른 무기를 가지고는 우리가 그 무기를 움직이지만, 분노라고 하는 무기는 반대로 우리를 움직인다. 우리의 손이 무기를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손을 조종한다. 이 분노라는 무기가 우리를 잡고 있는 것이지, 우리가 이 무기를 잡고 있는 것은 아니다.


32. 세네카와 플루타르크의 변호



얼마나 바보같은 우둔성인가? 796∼797


가능한 일과 가능하지 않은 일은, 내가 다른 데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의 지각으로 믿을 수 있거나 믿을 수 없는 것에 따라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자기들이 할 수 없거나 하고 싶지 않는 것이라고, 남이 하는 것을 여간해서 믿지 않으려는 것은 대단한 잘못이며 사람들 대부분이 거기에 잘 빠진다. 각자에게는 자연이 주장하는 형태가 자기에게 있는 것같이 보이며, 이 형태를 시금석으로 모든 다른 형태들을 여기에 관련시켜 본다. 자기 태도에 맞추지 않은 자세는 꾸며 낸 것이고 인공적인 것이다. 얼마나 바보 같은 우둔성인가!

나로서는 어떤 사람들은 나보다 아주 위에 있다고 보는데, 특히 옛 사람들이 그렇다. 내 걸음으로 그들을 뒤따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해도, 그래도 나는 그들을 눈으로 뒤따르며 그들을 그렇게 높이 올려놓는 원동력을 판단해 보는 일을 멈추지 않고, 어느 점에서 그 힘의 씨앗이 내게도 있음을 알아본다. 마찬가지로 나는 그 어느 심정이 극도로 비천한 것을 알아 보고, 거기에 놀라지도 않으며 그것을 믿는다. 나는 이런 인물들이 자기를 높이 올리려고 사용하는 법을 잘 고찰해 보며, 그들의 위대성에 감탄하고, 내가 대단히 훌륭하다고 보는 이런 비상(飛翔)을 내 속에 품어 보며, 비록 내 힘이 도달하지 못할망정 적어도 내 판단력은 기꺼이 노력한다.


33. 스푸리나의 이야기

몸뚱이가 말썽을 부리며 800

크세노크라테스는 여기에 더 가혹한 방법을 썼다. 제자들이 그의 절조를 시험해 보려고, 저 유명한 예쁜 창녀 라이스를 벌거벗겨 그녀의 미모와 아양떠는 매력의 무기를 발휘하도록 그가 자는 침대 속에 밀어 넣었더니, 그는 자기 사상과 규칙에도 불구하고 몸뚱이가 말썽을 부리며 거역하기 시작하자, 이 반역에 귀를 기울인 부분들을 불로 태워 버렸다.


34. 줄리우스 카이사르의 전쟁하는 방법에 대하여



장수된 자의 최고의 역할 809

이 가련한 자들은 그가 얼마나 탁월하게 시간을 아껴 쓸 줄 아는 자인가를 모르고 있었다. 그는 때맞추어 기회를 잡아 번개같이 집행하는 것이 장수된 자의 최고의 역할이라고 몇 번이고 되풀이했으며, 이 재간이 사람의 일로 믿어지지않는 전대미문의 공훈을 세웠던 것이다.


35. 세 현숙한 부인에 대하여


때늦은 표시로다! 817

화목한 결혼의 기준과 진실한 증거는 그 교합이 얼마나 지속되며, 이 교합이 꾸준히 조용하고 성실하고 유쾌했던가에 달려 있다. 우리 시대에는 여자들은 일반적으로 선량한 봉사와 맹렬한 애정을 남편이 죽은 뒤에 표시하려고 보류해 두고 있으며, 그때에야 비로소 그 선의의 증거를 보여주려고 한다. 때늦은 표시로다! 여자들은 도리어 이것으로 남편들을 죽어서밖에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생전엔 다툼으로 가득하고, 사후엔 사랑과 예절로 가득하다. 부친들이 그들 자녀에 대한 애정을 감추고 있듯, 그녀들은 점잖은 존경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즐겨 남편에 대한 애정을 감춘다. 이런 신비는 내 비위에 맞지 않는다. 그녀들이 아무리 머리털을 쥐어뜯고 자기 몸을 할퀴고 해 보아도 소용 없다. 나는 바로 침모(針母)나 서기의 귀에 대고, "그이들은 어떻게 되었지? 그이들은 어떻게 살았지?" 하고 물어 본다.


가장 애통이 적은 자가 가장 소란스레 비탄한다 817


나는 늘 "가장 애통이 적은 자가 가장 소란스레 비탄한다"(타키투스)라는 좋은 말이 생각난다. 그녀들의 찌푸린 상은 살아 있는 자들에게 흉하고, 죽은 자들에게는 소용없다. 살아 있는 우리에게 웃어 준다면 죽은 뒤에 웃는 것을 기꺼이 면제해 줄 것이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코에 대고 침뱉던 자가, 이제 죽어 갈 때에 와서 발을 문질러 본다면, 울화가 터져서라도 다시 살아날 일이 아닌가? 남편의 죽음을 울어 주는 데 무슨 명예가 있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웃어 준 여자들만의 차지가 된다. 살아서 울어 준 여자들은 죽어서는 속으로나 겉으로나 웃어 댈 일이다.

그러므로 그 축축한 눈과 가엾은 목소리를 보지 말고, 저 요란스러운 베일 밑의 저 거동, 저 안색, 저 오동통한 볼을 보라. 그녀는 이런 것으로나 프랑스어로 말한다. 그 다음에 건강이 더 좋아지지 않는 예는 드물다. 이 소질만은 속이지 못한다. 이런 격식을 차리는 자태는 앞이나 꾸밀까, 자기 뒤는 그다지 가다듬어 주지 못한다. 그것은 밖에서 빌려 온 것이고, 자기 속을 내어 주는 것이 아니다. 나는 어릴 적에, 지금도 살아 있지만, 한 점잖고 대단히 예쁜 귀부인이 왕공의 과부 신분으로는 우리의 관습이 허용하는 이상의 몸치장을 하고 있음을 보았다. 사람들이 그것을 책망하자 그녀는 "그건 내가 새로운 친교를 맺지 못한 까닭이오. 그리고 나는 재가할 뜻이 없소" 하고 말하였다.

사례 1. 이탈리아에서 젊은 플리니우스의 집 옆에 살던 한 이웃(p818∼819)
사례 2. 파에투스 케킨나의 아내 아리아 (p 819∼821)
사례 3. 폼페이아 파울리나. 세네카의 부인 (p821∼823)


36. 가장 탁월한 인물들에 대하여

 

처음이자 마지막 시인 825∼828

누구든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특출한 인물을 골라 보라고 하면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게 탁월한 인물 셋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호메로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나 바로가 그만큼 박식하지 못하다는 것은 아니고, 예술에서 베르길리우스가 그에게 비교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이 판단은 그들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맡겨 둔다. 한편밖에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단지 내가 아는 한도로 시신(詩神)들까지도 이 로마 시인보다 뛰어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판단에서도 베르길리우스가 그 재질을 주로 호메로스에게서 배워 온 것이었으며, 이 시인이 그의 안내자이며 스승이었고, 《일리아드》의 단 한 줄이 저 위대하고 거룩한 《아에네이스》에 본체와 재료를 제공하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고찰하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나는 여기에 이 인물을 감탄스럽고 거의 인간 조건 이상으로 만들어 주는 여러 가지 다른 조건들을 섞어서 생각한다.

사실 나는 자기 권위로 많은 신들을 세상에 내놓고 사람들을 믿게 한 그가, 자신이 신의 지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자주 이상하게 여겨 왔다. 앞을 보지 못하며 궁핍한 몸으로 학문이 아직 규칙과 확실한 관찰로 사물들을 기록해 놓기도 전에, 그는 이런 일을 모두 알고 있어서, 다음에 정치를 세우고 전쟁을 지휘하고, 어느 학파에 속하건 종교나 철학에 관한 것을 쓰고, 기술을 다루는 일에 간섭하는 자들을 누구나 다 그를 모든 사물들에 관한 지식의 지극히 완벽한 스승과 같이 보며, 그의 작품을 모든 종류의 능력을 기르는 기초 터전 같이 이용했다.

그는 무엇이 명예롭고 수치스러우며
유용하고 그렇지 않은가를
크리시포스와 크란토르보다도 더 능란하게
더 완전하게 말한다.                                                                                                  (호라티우스)

그리고 다른 자가 말하는 것처럼-

마치 무궁무진한 샘처럼
피에리아(詩神들의 고향)의 물에
시인들은 입술을 축이러 온다.                                                                                    (오비디우스)

또 다른 자는 말하기를-                            

헬리콘(보이오티아 접경의 산, 중턱에 시신(詩神)들의 제전이 있었다) 시신들의 길동무들을 더하라.
그 가운데 단 한 사람 호메로스만이
별무리의 높이에 오른다.                                                                                           (루크레티우스)

그리고 또 하나는 말하기를-

그의 풍부한 원천에서 후세의 시인들은 그들 시가에 물을 길었고
단 한 사람의 재보로 부유해져서
감히 수많은 작은 하류로
물을 끌어대는 큰 강이다.                                                                                           (마닐리우스)

그가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가장 탁월한 것을 생산해 냈다는 것은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사물들은 출생할 때에 대개 불완전하며 성장하면서 불어 가고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옛 사람들이 그를 두고, 자기 앞에 아무도 모방할 자가 없었기 때문에 자기 뒤에 그를 모방할 자가 없었다고 말한 이 아름다운 증언에 따라, 우리는 그를 시인들 중에서 처음이며 마지막 시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의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생기와 행동을 가진 유일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유일한 실질적인 언어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다리우스 왕의 전리품 가운데에 호화롭게 장식된 한 상자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호메로스를 넣어 두는 데에 사용하라고 명령하며, 이 시인은 자기 군사 업무에 가장 훌륭하고 충실한 고문이라고 말하였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 아낙산드리다스의 아들 클레오메네스는, 호메로스는 군사 훈련에 대단히 훌륭한 스승이기 때문에 라케데모니아 인들의 시인이라고 말하였다.

플루타르크의 판단에 의하면, 그는 독자에게 언제나 전혀 다르게 나타나며, 항상 새로운 우아미로 개화하며, 결코 사람들을 물리게 하거나 염증 나게 하는 일이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가라는 특별한 찬사를 받는다. 장난하기 좋아하는 알키비아데스는 학자로 자처하는 어떤 자에게 호메로스 한 권을 달라고 요구했더니, 가진 것이 없다고 하자, 따귀를 한 대 갈겨 주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 신부님들 중에 성무 일과서(聖務日課書)를 갖지 않은 자를 보는 식이다.

크세노파네스가 어느 날 시라쿠사의 폭군 히에론에게 자기는 하인 둘을 먹여 살릴 거리도 갖지 못했다고 불평을 하자, 그가 대답했다. "뭐? 그대보다 훨씬 더 가난하던 호메로스는 아무리 죽을 지경이언정 만 명 이상의 학자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파나이티오스가 플라톤을 철학자들의 호메로스라고 말했을 때에, 이 말에 무슨 부족한 것이 있었던가?

그뿐더러 어떤 영광을 그의 영광에 비겨 볼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이름과 작품보다 더 사람들의 입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트로이의 헬레나와 그녀로 인한 전쟁만큼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고 인정받은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네 아이들은 3천 년이 넘는 옛날에 그가 꾸며 댄 이름을 아직도 쓰고 있다.

누가 헥토르와 아킬레우스를 모르는가? 어느 사사의 가문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가 꾸민 이야기 속에 자기들의 근원을 찾고 있다. 마호메드라는 이름을 두 번째 가진 터키 황제가 교황 피우스 2세에게 편지를 보내기를, "우리는 트로이 사람들에게서 나왔고, 나도 그들과 같이 그리스 인들에 대해서 헥토르의 피에 대한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데 관심을 가졌는데, 어째서 이탈리아 인들이 내게 대항해서 단결하는지 나는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국왕들과 국가들과 황제들이 그렇게 오랜 세기를 두고 그 속에 자기의 역할을 연기해 오고, 이 큰 우주 전체가 그것의 무대로 쓰이는 한 고상한 연극이 아닌가?(825∼828쪽)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위대성 828∼829

또 하나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다. 왜냐하면 그가 그의 계획을 시작한 나이, 그가 그렇게도 영광스런 계획을 완수하는 데 쓴 방법이라는 것이 대단치 않다는 것, 그가 그 어린 나이에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경험 많은 장수들 사이에 권위를 세워서 그들을 따라오게 한 일, 그 모험적이며 거의 철없다고 할 만한 하고많은 그의 업적을 운이 품어 주고 밀어 준, 예사로움을 넘어선 하늘의 은총 등을 고려해 보면,

그의 무한한 욕구에 장애되는 모든 것을 부수어 가며
파괴의 한가운데에서 혈로를 여는 기쁨을 맛보며      (루카누스)

이 위대성은 33세의 나이에, 사람이 살 수 있는 땅 전체를 승리자로서 거쳐 갔고, 반생 동안에 인간의 천성이 성취할 수 있는 궁극에 도달했으며, 그래서 인간을 초월한 무엇인지를 상상해 보지 않고는, 정상적인 생명의 폭을 가지고는 용덕으로, 그리고 운으로 그의 정당한 지속 기한과 성장을 상상해 볼 수 없을 정도로 된 일, 그의 군사들 속에서 여러 왕실들이 가지를 쳐 나가게 하고, 죽은 뒤에도 군대의 부대장들인 네 명의 상속자에게 세계를 분할하여 그 후손들이 계속해서 이 방대한 영토를 유지하며 오래도록 계속 된 일, 정의·절제·관후성·약속을 지키는 신의, 자기 가족들에 대한 사랑, 피정복자에 대한 인간성 등 하고많은 탁월한 덕성들을 가지고 있던 일.

아울러 그의 부지런함·예측·참을성·훈련·책략·호방·결단성 그리고 한니발의 권위가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가 사람들 중의 제일인자였던 행운 등의 하고많은 군사적 덕성, 기적이라고까지 보고 싶은 인물의 희미한 미모와 성품, 그렇게도 불그레하니 화색이 도는 젊은 얼굴 밑의 그 자태와 그 존경할 만한 몸가짐.

그의 학문과 능력의 탁월성, 그 순수하고 명쾌하고 오점과 시기심으로 더럽혀진 일이 없는 오랜 영광의 지속과 위대성, 그리고 그가 죽은 뒤에도 오래도록 그의 메달을 몸에 지닌 자에게는 행운이 온다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경건한 신념으로 되었던 사실, 다른 역사가들이 어느 왕이나 왕공들의 공훈을 두고 쓴 것보다도 더 많이, 왕들과 왕공들 자신이 그의 공훈에 관해서 기술하였고, 다른 역사를 경멸하는 마호메트 교도들이 지금까지도 다만 그의 역사에는 특권을 주어 이것을 용인하고 숭앙하는 사실들을 고찰해 본 자이면, 그는 이 모든 것을 뭉쳐 생각해서 단 하나 내 선택에 의문을 품게 할 수 있었던 카이사르보다도 내가 역시 그를 택한 것이 옳았다고 고백할 것이다. 카이사르의 공훈에는 그 자신의 힘이 더 많았고, 알렉산드로스의 공훈에는 운의 힘이 더 많았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이 여러 면에서 대등하였고, 카이사르가 어느 점에는 아마도 더 위대했다. 그들은 이 세상을 여러 군데에서 황폐시켜 나간 두 불덩이거나 또는 두 급류였다.

소리내며 타는 마른 숲과 월계수 숲 속에
맹렬한 기세를 떨치며 번지는 화염과도 같고
신속히 고산 준령에서 떨어져 내려
물거품 던지는 급류가 소란스레 대해로 달려가며
모든 것을 파괴하여 그 통로를 터 나가듯.      (베르길리우스)

그러나 카이사르의 야심엔 더 많은 절제가 있었다 하여도, 그것은 자기 나라의 궤멸과 세계의 전반적인 악화에 그의 낮고 추한 목적을 두었던 만큼, 너무 심한 불행을 초래하였기 때문에, 모든 점을 종합해 저울질해 보면, 나는 알렉산드로스의 편으로 기울어지지 않을 수 없다.


37. 자손들이 조상을 닮음에 대하여


철 맞추어 생명을 내놓지 않는 자에게 834

세월이 그들과 오래 교제하는 자들에게 주기로 되어 있는 여러 선물들 중에도 내가 수락할 수 있는 것을 그들이 골라 주었더라면 좋았을 성싶다. 그들은 내가 어릴 적부터 가장 흉측하게 생각하던 것을 줄 수는 없을 테니까. 이것은 노년기에 일어나는 모든 재앙들 중에도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것이었다. 나는 앞으로 나가는 것이었고, 이렇게 먼 길을 가다가는 결국 어떤 불쾌한 일에 걸리고 말 것이라고 혼자 여러 번 생각했다. 나는 이미 떠날 시간이 되었다고, 외과의들이 신체의 어느 부분을 끊어 낼 때의 규칙을 따라서 이 인생을 생짜로 그 알맹이에서 잘라 내야 하는 것이고, 철 맞추어 생명을 내놓지 않는 자에게 대자연은 아주 호된 높은 이자를 물리는 습관이 있다고 어지간히 느끼고 있다고 주장했다.


고함쳐 볼 일 836∼837


극단적인 재앙을 당한 자에게 점잖게 차린 자세를 요구하는 것은 잔혹한 일이다. 행동만 떳떳이 해 나간다면 언짢은 얼굴을 해도 좋다. 신체가 비탄함으로써 괴로움이 좀 멀어진다면 그렇게 할 일이다. 몸을 흔드는 것이 기분에 좋다면, 멋대로 곤두박질이건 수선이건 떨어 볼 일이다. 만일 소리를 힘껏 맹렬하게 밖으로 내질러서(여자들이 해산할 때에는 그것이 도움이 된다고 어떤 의사들이 말하듯), 아픔이 어느 정도 풀어지는 듯하다면, 또는 그것으로 아픈 생각이 헛갈린다면, 악을 써서 고함쳐 볼 일이다. 이 소리에게 나오라고 명령은 하지 말자. 그러나 나오는 것은 허가하자. 에피쿠로스는 현자에게 아플 때에 소리지르는 것을 허용할 뿐 아니라, 그것을 권하기까지 한다. "역사(力士)들도 역시 그들 적수를 강타할 때에 철장갑을 내휘두르며 소리지른다. 심오한 발성으로 전신이 단단해지고 타격이 더 맹렬히 내리쳐지기 때문이다."(키케로) 우리는 이런 쓸데없는 규칙으로 애쓰지 않아도 고통만으로 할 일이 많다.

 

기적의 모든 난해성보다 더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괴상한 일 839

우리가 여느 때 보고 있는 사물들 중에도 기적의 모든 난해성보다 더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괴상한 일들이 많다고 본다.


도대체 이 정액 한 방울이라는 것이 무슨 괴물이기에 거기서 우리가 생겨나며, 거기에 우리 조상들의 육체적 형태뿐 아니라, 그 사상과 경향의 흔적까지 지니고 있는 것일까? 이 물방울은 어디다 이 무한한 수의 형태를 깃들이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어떻게 이 물방울들은 종잡을 수 없게 혼란된 추이로, 증손자가 증조부를 닮고 조카가 삼촌을 닮는 이런 유전성을 지니고 있는 것인가?

······ 내가 이 담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부친에게서 받은 것이라 믿을 만하다. ······
 
어디서 그렇게 오랫동안 이 결함의 성향은 부화되고 있었던 것일까? 부친이 이 병에 걸리기까지에는 아직도 시일이 멀던 시절에 그가 나를 이뤄 낸 그 실체의 변변찮은 한 조각이, 어떻게 이렇게도 굉장한 사태의 흔적을 지니고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한 어머니에게서 나온 그 많은 형제들과 자매들 중에 지금까지 나 혼자만 40년이 지난 뒤에 내가 그것을 느끼기 시작했을 정도로 어떻게 그토록 깊이 숨어 있었던 것인가? 누가 내게 이 추이에 대해 설명해 준다면, 나는 그만큼 다른 기적들도 그가 바라는 대로 믿어 줄 것이다.



건강 841

건강이라는 것은 소중한 것이며, 사실 그것을 추구하여 시간뿐 아니라 땀과 수고와 재산과 생명까지도 사용할 만한 단 하나의 것이다. 더욱이 건강 없이는 생명은 우리들에게 괴롭고 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탐락도 예지도 지식도 도덕도 건강 없이는 흐려지고 사라진다.


의약을 몰라서 844

누가 라케데모니아 인에게 어떻게 해서 그렇게 오래 살게 되었느냐고 물어 보자, "의약을 몰라서"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죽어 가면서 의사들이 자기를 죽였다고 끊임없이 소리질렀다. 못난 역사(力士)가 의사가 되었다. "잘해라" 하며 디오게네스가 그에게 말했다. "너 참 잘했다. 전에 너를 쓰러뜨리던 자들을 이번에는 네가 쓰러뜨릴 것이다."


그들의 기술을 원망한다 859


나는 그들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기술을 원망한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의 어리석음을 타서 이득을 올린다고 크게 책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상일 대부분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직업보다 값어치가 못하거나 더 대접받는 많은 직업들이 사람들을 기만하는 일밖에 다른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나의 생각)

증권회사 영업사원들이 하는 일이 떠오른다. '그들의 기술'이 고객들의 어리석음을 틈타서 이득을 올리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


나는 살아가는 데 쓸모없는 보배에는 결코 영수증을 떼어 주지 않습니다. 862∼863

나는 살아서보다 죽은 뒤에 내가 더 사랑받고 존중받기를 조금도 바라지 않습니다.

티베리우스 황제의 심정은 우습습니다. 그러나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는 자기 시대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좋게 보이려는 생각보다는 장래에 명성을 연장시킬 걱정이 더 컸으니까요.

내가, 세상이 칭찬해 주어야 할 의무를 질 수 있는 사람들의 축에 든다 하여도, 나는 그것을 당겨서 치러 주기를 요구하고, 다음의 의무는 말소해 주겠습니다. 그 칭찬은 길게 끄는 것보다는 속이 차고, 지속하기보다는 더 충만하게 서둘러서 내 주위에 뭉쳐 쌓아 줄 일입니다. 그리고 내 지각이 사라지고 동시에 그 달콤한 음성이 내 귀에 울려 오지 않을 때에는 이 칭찬도 과감하게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내가 사람들과의 교섭을 포기하려는 이 시간에, 새로 나를 추천해서 그들 앞에 내놓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심정일 것입니다. 나는 살아가는 데 쓸모없는 보배에는 결코 영수증을 떼어 주지 않습니다. 내가 어떠한 자이건, 나는 종잇장으로 된 일보다는 다른 일로 받고 싶습니다. 내 기술과 기교는 나 자신을 더 가치 있게 하는 데에 사용되었습니다. 내 공부는 행할 줄 알기 위한 것이지, 글 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내 인생을 만드는 데 온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것이 내 직분이고 내 사업입니다. 나는 다른 일꾼은 되어도 책 만드는 일꾼은 아닙니다. 나는 현재의 본질적인 편익에 소용되기 위해서 능력을 바란 것이지, 내 후계자들에게 저축과 예비 재산을 쌓아 주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어떠한 장점을 가진 자는 그것을 자기 행동 습관에, 여느 때의 말과 행동에, 사랑하거나 싸우는 행동에, 놀음에, 잠자리에, 식탁에, 자기 일처리에, 자기 집 세간살이에 드러낼 것입니다. 내가 보는 바 추레한 잠방이를 만들어 입고 좋은 책을 지어 내는 자들은, 내 말을 믿었더라면 먼저 잠방이를 만들어 입었을 것입니다. 스파르타 인에게 훌륭한 군인보다 훌륭한 수사학자가 되고 싶은가를 물어 보십시오. 나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내게 밥을 차려 주는 자가 없다면 차라리 익숙한 요리사가 되겠습니다.

정말입니다! 부인, 글 쓰는 데는 유능한 인간이고, 다른 데서는 쓸모없는 바보 인간이라는 따위의 칭찬을 내가 얼마나 싫어하는지요. 나는 내 능력을 사용할 자리를 그렇게 못나게 골라잡았다기보다는 차라리 여기저기서 바보로 통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나는 이런 어리석은 수작으로 어떤 새로운 명예를 얻으려고 기대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건강을! 865


나는 건강과 같은 그 견실하고 살 붙고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쾌락을 공상적이고 정신적인, 바람과 같은 쾌락과 바꾸려고 할 정도로 내 마음이 부풀어올랐거나 바람이 차 있는 것은 아니다. 영광은 에이몽의 네 아들들의 영광이라고 해도, 그 때문에 담석증을 세 번이나 심하게 겪어야 한다면, 내 기분과 같은 사람에게는 너무나 비싸게 사들이는 것이 된다. 무엇보다도 건강을!


털 두 개와 씨앗 두 낱알이 똑같아 본 일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 865


나는 나와 반대되는 사상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나는 내 판단력이 남의 것들과 합치되지 않는 것을 본다고 겁을 내거나, 그리고 사람들의 방향과 파당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사람들과의 교제에 서로 통하지 않고 지낼 생각은 가져본 일이 없다. 그 반대로 다양성이라는 것은 자연이 좇고 있는 가장 전반적인 방식이며, 정신은 더 부드럽고 더 많은 형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물질로 되어 있다. 이 다양성은 육체보다 정신에 더 많기 때문에 나는 우리 기분과 의도가 합치하는 것을 보는 일이 더 드물다고 본다. 그래서 세상에 두 의견이 똑같아 본 일이 결코 없었던 것은 털 두 개와 씨앗 두 낱알이 똑같아 본 일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의견의 가장 보편적인 소질, 그것은 다양성이다.

 

(제2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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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 수상록 동서문화사 월드북 12
미셸 드 몽테뉴 지음, 손우성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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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이거, 저기서 따왔군! 595

나는 철학에 관해서도 똑같이 말한다. 철학은 너무나 여러 가지 형태를 가졌고, 말해 놓은 것도 너무 많아서, 우리의 몽상이나 잠꼬대 따위도 모두 그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의 망상은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그 속에 없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없다. "철학자가 말하지 않았을 정도로 졸렬하고 어리석은 말은 찾아볼 수 없다."(키케로) 그래서 나는 "아무렇게나 나오는" 생각을 더 자유롭게 사람 앞에 내놓는다. 이런 것은 어디서 본뜬 것이 아니고 내게서 나온 것이지만, 그것이 옛 사람들의 심정과 닿고 있음을 나는 안다. 그렇다고 누가 "이거, 저기서 따왔군!" 하고 말해서는 안 될 일
이다.


공정치 못한 불균형 599


영혼의 힘과 효과들은 여기서, 다른 데서가 아니라 이 곳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영혼의 완벽성 전부가 헛되고 무용한 일이 된다. 영혼의 영생불멸은 현상태를 위해서 보상되고 인정되어야 하며, 오로지 인간 생명을 위해서 영혼은 책임져야 한다. 영혼에게서 수단과 힘을 박탈해 놓고, 그것이 사로잡히고 갇혀서 허약하고 병약해 있는 동안, 또 이 세상에서 강제받고 억압되어 있는 동안, 이 영혼을 무장 해제시켜 두고, 아마도 한두 시간밖에 못되는 시간, 기껏해야 한 세기밖에 못 되고, 무한에 비하면 한 순간밖에 안 되는 너무나 짦은 시간에 구애되어, 저 무한하고 영원한 지속 위의 판결과 처단을 내리고, 이 간극의 순간을 가지고 그의 온 존재를 결정적으로 조정하고 처리한다는 것은 이치에 어긋날 것이다. 이렇게도 짧은 인생을 살았다는 결과로, 영원의 보상을 치르거나 받아야 한다는 것은 공정치 못한 불균형이 될 것이다.


미친 생각 602


사실 반드시 멸할 자를 영원자에게 결합시키고
둘 사이에 공통의 마음과 상호 반영이 있다고 상상함은 미친 생각이다.
당연히 멸할 자를 영원의 불멸자에게 협동하여
폭풍우의 사나운 위세를 감동하도록 결합시키는 시도보다
서로간에 더 반발적이고 이질적이고 더 충돌할 일을
상상해 볼 수 있는가?                                            (루크레티우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영혼이 육체와 같이 죽음에 관련되어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영혼은 나이의 무게 밑에 합해 쓰러진다.     (루크레티우스)


영혼의 영생불멸에 대한 반대사상 602-603


키케로가 최초로 소개한 영혼의 영생불멸에 대한 반대 사상은, 적어도 서적에 밝혀진 바로는 툴루스 왕의 시대에 페레키데스 시루스에 의해서 시작된다고 하는데(어떤 사람은 탈레스의 착상이라고 하고, 어느 사람은 다른 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이것은 가장 의문을 남겨 두고 취급된 인간 지식의 일부이다. 확고한 독단론자들은 이 점에 관해서는 아카데미아(플라톤 학파)의 그늘에 의지해서 숨어 있지 않을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그리고 '그들이 증명하기보다 차라리 약속하고 있는 가장 착하고 아름다운 사물로', 흔들리는 신념을 가지고 다루는 옛 사람들 대부분이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키케로를 가리킴)는 가장 난삽하고 이해할 수 없는 말과 뜻의 구름 속에 숨어서, 이 문제와 마찬가지로 그의 판단에 관해서 그의 추종자들에게 토론거리를 남겨 주고 있다. 그들에게는 이 견해가 두 가지로 그럴듯하게 보였다. 하나는 영혼의 영생불멸 없이는 세상 사람들이 놀라울 만큼 신용하며 존중하고 있는 영광에 관한 공허한 희망을 세워 볼 기초가 없어지는 것이며, 또 하나는 플라톤이 말하듯 인간 정의의 불확실하고 침침한 시야에서 악덕이 죄를 벗는 일이 있어도, 그것은 언제까지나 하늘의 정의가 추구하는 목표로 남아서, 즉 죄인들이 죽은 뒤까지 그들의 책임이 추궁된다는 생각이 대단히 유익한 사상이 되는 것이다.


욕망하는 자의 몽상 604


정신의 영생불멸에 관한 정당하고 명백한 확신에 가장 완고한 자들이, 그들의 인간적인 힘으로 이것을 증명하기에 얼마나 모자라고 무력한 처지에 있는가를 보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런 것은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욕망하는 자의 몽상이다"(케케로)라고 옛 사람은 말했다. 인간이 이 사실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발견하는 진리는 운명과 우연의 덕택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진리를 손에 잡았을 때에도 이를 파악하고 유지할 능력이 없고, 그의 이성은 이것을 이용할 힘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성과 능력으로 생산된 사물들은 진실하건 거짓이건 모두 불확실성과 힐난을 면치 못할 것들이다.


논쟁과 불화를 의미하는 것 외에 무엇이란 말인가? 604

하느님이 인간 사회라는 작품을 혼란시키는 수단으로 쓰신 저 방언들과 언어의 잡다성은 인간 지식의 헛된 구조를 수반하며, 그것을 혼란시키는 사상 사이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논쟁과 불화를 의미하는 것 외에 무엇이란 말인가? 하느님이 이 인간 지식의 구조를 뒤섞어 놓으시는 것은 유익힌 일이다. 만일 우리가 지식의 한 낱말이라도 갖게 된다면 누가 우리를 제어할 것인가? "우리에게 유익한 사물의 지식을 감추는 암흑은 겸양을 위한 훈련이며, 오만에 대한 제어이다"(성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성자의 말씀은 대단히 내 마음에 든다. 우리의 맹목성과 우둔성은 어느 정도의 오만하고 분수 넘치는 수작이라고 우리를 밀어 내지 않을 것인가?


솔직하게 고백하자 604∼605

내 문제로 다시 돌아와서, 우리가 영원한 복지의 향락을 이루는 영생불멸이라는 과실을 오로지 하느님의 두터운 덕에서 받는 것인 이상, 우리가 오로지 하느님께, 그리고 그의 은혜와 그렇게도 고귀한 신앙적 진리의 혜택에 매여 지내게 되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당연한 일이다.

하느님만이, 그리고 신앙만이 우리에게 그렇게 말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자. 왜냐하면 이것은 본성의 , 그리고 우리 이성의 가르침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거룩한 특권 없이 인간의 존재와 그의 힘을 안으로 밖으로 다시 시험해 보는 자, 또 아첨하지 않고 인간을 똑바로 쳐다보는 자는 거기에서 죽음과 흙냄새밖에 다른 것을 느끼게 하는 아무런 효율도 소질도 보지 못할 것이다.


갓난아이 상태로 돌아오는 식 607

인간 오성이 모든 사물들을 궁극까지 탐구하여 지배하려고 하다가 혼란에 빠지는 것은, 마치 우리가 인생의 오랜 생애의 힘들고 어려움에 지쳐서 지내다가 마침내 다시 갓난아이 상태로 돌아오는 식이다.


이런 연장들 617


우리가 오성에 무엇을 받아들였건 우리는 거기에 그릇된 일을 받아들인다는 것과, 또 잘 모순되고, 그르치는 바로 이 연장들을 가지고 받아들인다는 것을 생각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런 연장들은 아주 가벼운 사정 때문에 잘 기울고 틀어지기 쉬운 만큼, 그것이 온당치 않게 된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우리의 이해력과 판단력 및 심령의 소질들은 대개 신체의 움직임과 변화에 따라 영향받는 것이며, 이런 변화가 계속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은 확실한 일이다. 우리는 병들었을 때보다 건강할 때에 정신이 더 개운하고, 기억력이 빠르며 사고력이 더 새로운 것이 아닌가? 기쁘고 유쾌할 때에는 슬프고 우울할 때보다 더 우리 심령에 나타나는 사물들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아닌가? 카툴루스나 사포의 시가 인색하고 빽빽한 늙은이에게나 기운차고 정열에 찬 청년에게나 마찬가지로 즐겁게 느껴진다고 생각하는가?


기분파 619


내가 자신에게서 발견하는 허영과 양심은 감히 말할 용기도 안 난다. 내가 디딘 발은 너무 불안정하고 자리잡히지 못하여, 걸핏하면 쓰러질 듯 금세 근뎅거리고, 내 시각은 너무 혼란해서 배고플 때에는 배부를 때와는 아주 다른 사람으로 느껴진다.

내 몸이 건강하고 청명한 날씨가 웃음을 띠어 주면, 나는 정말 사귈 만한 친구이다. 발가락에 티눈이 박히면 나는 기분 나쁘고 불쾌하고 사귀지 못할 인간이 된다. 말이 똑같은 보조로 걸어가도 어느 때는 거칠게, 어느 때는 편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똑같은 길이 이 시간에는 더 가깝게, 다른 때에는 더 멀게 보이며, 똑같은 형태가 이때는 더 낫게, 저때는 더 못하게 느껴진다. 이제 무슨 일이라도 하려다가 금세 아무 일도 하기 싫어진다. 이 시간에는 내게 유쾌한 것이 어느 때에는 내게 괴로워질 것이다.

내 속에는 조심스럽지 못한 이 우발적인 충동이 수없이 일어난다. 떄로는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히며, 때로는 화를 잘 낸다. 이 시간에는 고민이 내 속에 우세하다가도, 저 시간에는 쾌활성이 우세하다.


형편없는 뭉치 620


내가 책을 들여다보면 어떤 문장에서는 탁월한 우아미를 발견하며 마음조차 깊은 감명을 받게 된다. 그런데 다른 때에 다시 그것을 읽어 보면 아무리 뒤적거리고 다시 돌아와 보아도, 아무리 접어 보고 만져 보아도, 그것은 내게는 알려지지 않은 형편없는 뭉치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쓴 글에서도 처음 내 생각의 모습은 늘 찾아볼 수가 없다. 내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 것인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더 나았던 첫번 생각을 놓치고는 일부 이것을 고쳐 쓰며 새 뜻을 넣어 주려고 애를 쓴다.


왔다리 갔다리 620

나는 왔다갔다하기밖에는 하지 않는다. 내 판단력은 늘 진척하는 것이 아니다. 생각은 허공에 떠서 헤매며-

광막한 대해에 광풍에 쉽쓸린 조각배와 같다.      (카툴루스)

나는 여러 번(내가 즐겨 하는 일이지만) 재미로 내 견해와 반대되는 의견을 주장해 보고 나면, 정신을 이편으로 전념하여 돌아서다가 너무 거기에 집착해서, 내가 첫 번째 의견을 가졌던 이유를 알 수 없게 되며 그 견해를 버리게 되고 만다. 이렇게 되면 내가 기울어지는 곳으로 거기 끌려간다. 그리고 내 무게에 실려 간다.


거의 같은 말을 할 것 620


누구나 다 나처럼 자기를 살펴본다면, 자기에 관해서 거의 같은 말을 할 것이다. 설교가들은 말하거나 느끼는 감각에서 자기들의 신앙심이 더 열렬해지는 것이며, 우리는 지각이 더 냉철하고 침착할 때 하는 것보다도 화가 치밀어오를 때에 우리 의견을 옹호하려고 더 열중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우리 마음에 감명을 주고 한층 맹렬하게 찬성하며, 그 사상을 품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대가 단순히 어떤 소송 사건을 변호사에게 이야기한다면, 그는 의심스러운 듯 자신 없이 응대한다. 그는 이 편을 들건, 저편을 들건 무관하다고 그대는 느낀다. 그대가 돈을 듬뿍 쥐어 주어서 그가 바싹 대들며 사건에 분개하게 해 놓았는가? 그가 거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가? 그가 이 사건에 의지를 열중시켰는가? 그의 이성과 지식은 동시에 거기에 열중한다. 여기 명백하고 의심 없는 진실이 그의 오성 앞에 나타난다. 그는 거기서 새로운 빛을 발견하며 그것을 진짜로 믿고 진실이라고 확신한다.


주색에 빠진 흥분 없이는 621


욕심은 데미스토클레스를 흥분시켰고, 데모스테네스를 흥분시켰다. 그리고 철학자들을 부추겨서 애쓰고 철야하며 편력하게 하였다. 이 욕심들이 우리를 명예와 학문과 건강 등, 유익한 목표로 인도한다. 그리고 저 번민과 불안을 참아 내는 비굴성은 고행과 후회의 심정을 양심 속에 가꾸어 주고 하느님이 내리는 재앙과 국가가 징계하는 형벌을 우리가 당하는 징벌로 느끼게 하는 데에 소용된다. 동정심은 후덕한 마음에 박차(拍車)가 되고 우리 자신을 보존하고 지배하려는 조심성은 공포심에서 깨어난다. 사람들은 대망을 가졌던 까닭에 얼마나 많은 아름다운 행동을 행하였던가? 그리고 오만은 얼마나 큰 일을 하였던가? 어떠한 탁월하고 장쾌한 덕성도 결국 주색에 빠진 흥분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의 생각)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 나오는 '오만과 허영의 긍정적 역할'을 떠올리게 한다.


예언자와 점쟁이 622

광분이 죽음의 심상 때문에 우리의 이성을 뿌리 뽑으면, 우리는 예언자와 점쟁이가 된다. 이보다 더 내가 철학을 믿게 할 일은 없다. 거룩한 진리가 철학 정신에 부어넣은 저 순결한 열성이 철학에게 그 제언과는 반대로, 우리 심령의 평온 상태, 안정 상태, 철학이 심령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건전한 상태가 심령의 최선의 상태가 아님을 고백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잠 깨어 있는 때가 잠든 때보다 더 잠들어 있다. 우리의 예지는 광증보다 더 예지롭지 못하다. 우리의 꿈은 사색보다 더 가치가 있다.


옛 사람들의 문장 624


옛 사람들의 문장은(그 중에 충만하고 견실한 좋은 문장들 말이지만) 거의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나를 유혹하고 감동시키며, 내가 읽고 있는 작가가 가장 견고하게 보인다. 그들이 서로 반대되는 말을 하더라도, 내게는 그 나름대로 다 옳게 보인다. 재능있는 두뇌들이 무엇이든지 진실하게 보이고 싶은 것은 힘 안들이고 그렇게 보여 주며, 나같이 단순한 머리를 속이려고 아무리 해괴망측한 일이라도 그럴듯하게 분장해서 보여 주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은 그들의 증명이 근거가 박약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경멸의 암흑에서 기어 나온다 625


이리하여 세월의 회전은 사물들의 운명을 변경시킨다.
전에 진귀하게 간주되던 것은 영광을 상실하고
마침내 다른 사물이 그것을 계승하여 경멸의 암흑에서 기어나온다.
매일 평가는 높아지며, 이 발견의 찬사가 꽃처럼 만발하며
그것은 인간들에게 경이로운 신용을 누린다.      (루크레티우스)


미다스 왕 이야기 632


미다스 왕은 자기가 만지는 것이 모두 황금이 되게 하여 달라고 신에게 요구하였다. 그의 소원은 성취되어서 포도주가 황금이 되고, 그의 빵과 이불의 털도 황금, 그의 셔츠와 옷도 황금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소원이 성취된 것을 누리기에 지쳤고, 감내하지 못할 보물을 선물받게 되었다. 그는 자기의 축원을 풀어 달라고 기도해야만 하였다.

부유하고 동시에 궁색한 이런 새로운 불행에 놀라서
그는 재물을 멀리하며,
전에 갈망하던 것을 지금은 혐오한다.      (오비디우스)

(나의 생가)

'부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 만드는 대목이다.


다만 우아미와 연령과 미모를 고려할 일 640

아르케실라오스는 여자와의 육체적 관계는 어느 방면에서 하건, 어느 장소에서 하건 상관 없는 문제라고 하였다. "여자의 육체를 탐하는 것은 본성이 요구하면 혈통과 문벌과 지위는 고려할 것이 못 되며, 다만 우아미와 연령과 미모를 고려할 일이라고 에피쿠로스는 생각한다."(키케로)


사람을 심고 있소 642

한 철학자가 그짓을 하다가 들켰다. 그게 무슨 짓이냐고 사람들이 물어 보자, "나는 사람을 심고 있소" 하고 담담하게 대답하며, 그짓을 하다가 들키고도 그가 마늘을 심고 있는 것을 남이 본 것처럼 얼굴빛도 붉히지 않았다.


길 한복판에서 배가 고프니까 642


디오게네스는 사람들이 보는 데서 수음을 하며, 구경꾼들을 향해서 배도 이처럼 문질러서 부르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누가 그에게 하필이면 한길에서 식사하느냐고, 왜 더 편리한 장소를 찾아가지 않고 큰길 복판에서 식사하느냐고 물어보자, "길 한복판에서 배가 고프니까 그렇지" 하고 대답했다.


목소리는 미인을 장식하는 꽃 652∼653


나로서는 호라티우스와 카툴루스의 시구를, 한 예쁘고 젊은 인물의 입으로 그 풍부한 음성을 가지고 노래하는 것을 침착하게 듣고만 있을 정도로 내 마음이 충분히 강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제논이 목소리는 미인을 장식하는 꽃이라고 한 것은 옳은 말이다. 우리 프랑스 인이면 모두 알고 있는 한 사람이 자기가 지은 시를 낭독해 보이고 내게 깊은 감명을 주었는데, 그 시는 종이에 쓴 것을 음조로 들은 것과는 같지 않으며, 내 눈으로 읽어 보면 귀로 들은 바와는 반대로 판단했으리라고 내게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정도로 발음은 그 재간에 맡겨진 작품에 가치와 풍류를 즐긴다는 신용을 얻고 있다. 이 점에서, 필로크세노스가 누가 자기 작품을 나쁜 어조로 읽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의 소유인 기왓장을 발로 짓밟아 부수며, "네가 내 것을 망치고 있으니, 나도 네 것을 부순다"고 하였다고 해서 그를, 화를 잘 내는 자로 볼 것도 아니다.


먼 곳의 일처럼 느끼짐 656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은 실제보다 더 예쁘게 보인다.

그리하여 우리는 모든 면으로 추악하고 못난 여자들이
가장 큰 영광으로 숭배받고 총애받는 것을 본다.      (루크레티우스)

그리고 우리가 싫어하는 자는 더 못나 보인다. 괴로운 처지에 고민하는 자에게는 대낮의 빛도 흐리고 컴컴한 것같이 보인다. 우리의 감각은 심령의 정열 때문에 변질될 뿐 아니라 완전히 마비되는 수가 많다. 정신이 다른 데 팔려 있을 때에는 눈에 띄지 않는 사물들을 얼마나 많이 보는가!

그대가 똑똑히 보는 사물에 관해서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그에 따라서 마치 시간적으로 먼 일인 듯, 또는
먼 곳의 일처럼 느껴짐을 그대는 관찰할 것이다.      (루크레티우스)


우리는 잠자며 잠 깨어 있고, 잠 깨어서 잠자고 있다 656

우리 인생을 꿈에 견주어 본 자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옳게 본 것이리라. 우리가 꿈을 꿀 때의 심령은 잠이 깨어 있을 때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살며 행동하며 모든 소질들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좀 무르고 흐리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차이가 분명히 밤과 환한 대낮 사이 만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 밤에서 그늘까지의 차이는 있다. 저 편에서는 심령은 잠자고 있다. 이 편에서는 다소간 졸고 있다. 그것은 언제나 암흑이다. 킴메리아 인의 암흑이다.

우리는 잠자며 잠 깨어 있고, 잠 깨어서 잠자고 있다. 나는 잠을 자면서 똑똑히 보지 못한다. 그러나 잠이 깨어 있을 때에도 언제나 흐리지 않게 충분히 또렷하게 보이는 적이 없다. 하기는 잠이 깊이 들 때에는 꿈을 잠재우는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잠이 깨어 있음은 결코 깨끗이 꿈을 씻어 흩을 만큼 깨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꿈은 깬 자들의 꿈이며, 꿈보다 더 나쁜 꿈이다.

우리의 이성과 심령은 잠자는 동안에 나오는 공상과 개념을 받아들이며, 심령이 낮의 행동에 대해서 인정하는 바와 같은 권위를 꿈속의 행동에도 주고 있는데, '어째서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다른 방식의 꿈꾸는 일이며, 깨어 있는 것이 어떤 종류의 잠이 아닌가' 하고 의문에 붙이지 않는가?



진실로 존재하는 것 664∼665


진실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영원히 있는 것, 다시 말하면 출생한 일이 결코 없었고, 영원히 끝이 없을 것이며, 시간이 그것에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는 일이 없는 것이다. 시간이란 움직이는 사물이며, 항상 그림자같이 나타나고, 그 재료는 항상 흐르며 유동하고, 안정해서 머무른다든지 항구적인 것이 없고, 그것에 '전에', '뒤에', '있었던 것', '있을 것'이라는 말이 해당되는 것들은, 그것이 존재하는 사물이 아닌 것을 단번에 보여 준다. 왜냐하면 아직 존재로 있지 않은 것, 또는 이미 존재로 있기를 멈춘 것을 존재한다고 말함은 너무나 어리석은 것이고, 아주 확실한 거짓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로 그것으로 시간의 이해를 세우며 유지하는 것같이 보이는 '현재'·'순간'·'지금' 같은 말로 말하면, 이성은 그것을 발견하며, 당장에 그것을 부숴 버린다.

이성은 즉석에 그것을 쳐서 미래와 과거로 갈라 버린다. 마치 필연적으로 둘로 갈라 놓고 보려는 식이다. 자연을 측량하는 시간에서와 같이, 측량당하는 자연에게도 일은 마찬가지로 되어 간다. 자신에게도 머무르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지속되는 것도 없고, 그 반대로 거기서 모든 사물들이 출생되었거나, 출생하고 있거나,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치가 그러하니 단 하나 존재하는 신을 가지고, 그가 전에 있었다든가 장차 있으리라고 말하는 것은 죄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이러한 용어들은 지속할 수 없거나 존재로 머물러 있을 수 없는 것의 변화·통과·변천 등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 까닭에 신 혼자만이 존재하며, 그것은 어느 시간의 척도에 따르는 것이 아니고, 변화를 겪을 수 없고 움직임이 없으며, 시간으로 측량되지 않고, 어떤 쇠퇴도 당할 수 없는 영원성에 따라서 존재한다. 그 이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뒤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더 새롭다는 것도 최근의 일이라는 것도 없고, 단지 진실로 존재하는 것이며, 그것은 바로 유일한 '지금'을 가지고 영속을 채운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는 있었다'라거나, '그는 있을 것이다'라고 말할 수 없으며, 시작도 끝도 없이, 그 신 하나밖에는 진실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결론지어야만 할 일이다.

"만일 인간이 인간성을 초월하지 못한다면, 오, 인간이란 얼마나 비굴하고 더러운 사물인가!" (세네카)


부조리하다 666

* 신 없이는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건 참 좋은 말이고 유익한 욕망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부조리하다. 왜냐하면 손바닥보다 더 큰 것을 쥐려고 하고, 팔에 넘치는 것을 안으려 하며, 우리의 다리 길이보다 더 길게 발을 떼어 놓자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부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신과 인간성을 초월한다는 것도 안 될 말이다. 그는 그의 눈으로밖에는 보지 못하고, 그의 파악으로밖에는 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13. 타인의 죽음 판단하기


지난날을 찬양하며 현재를 비난하지 않는 자를 본 일이 있는가?
667


우리가 사물들을 두고 가는 것이 서러울 정도로 사물들 또한 우리를 잃는 것이 서러우리라고 생각한다. 늙어서 자기의 곤궁과 설움을 세상과 인간들의 인심 탓으로 돌리고, 지난날을 찬양하며 현재를 비난하지 않는 자를 본 일이 있는가?


짧은 죽음 671


카이사르는 누가 그에게 어떠한 방법으로 죽는 것이 가장 좋겠느냐고 묻자, '예측되지 않은 가장 짧은 죽음'이라고 대답했다. 카이사르까지 이렇게 말한 터에,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비굴할 것은 없다.

짧은 죽음은 인생의 최고 요행이라고 플리니우스는 말하였다. 사람들은 이것을 인정할 마음이 안 난다. 죽음을 흥정하기가 두렵고 눈을 똑바로 뜨고 그것을 보지 못하는 자는, 어느 누구도 죽을 결심을 가진 자라고 말할 수 없다. 고문을 당할 때에, 인생의 종말로 달음질치며 형의 집행을 서둘러서 재촉하는 자들이 보이지만, 그들은 결단력이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죽음을 생각할 시간을 없애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죽는 것이 싫다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의 괴로움이 정말 싫다는 것이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그러나 죽어 버린 것은 무관하다.   (키케로)


혁혁한 일 671


내 생각으로는 소크라테스의 생애 중에, 사형 선고를 받고 30일 동안 이 생각을 되새기며, 그 동안 아무런 흥분도, 기분이 변하는 일도 없이 긴장하거나 정도가 심해지지 않고, 오히려 가라앉고 누그러진 행위와 언동으로 이 사건을 음미해 간 태도보다 더 혁혁한 일은 없다.


15. 우리의 욕망은 어려움에 부닥치면 커진다


언젠가는 없어질 것으로 생각되는 것밖에는 어떠한 보배도 우리에게 쾌락을 주지 못한다 675


어떠한 이치라도 그 반대의 이치가 없는 것은 없다고 철학자들 중의 가장 현명한 학파(피론 학파)는 말한다. 나는 방금 옛 사람(세네카)이 인생을 경멸하며 "언젠가는 없어질 것으로 생각되는 것밖에는 어떠한 보배도 우리에게 쾌락을 주지 못한다", "한 사물을 잃어버렸다는 비통과 그것을 잃을 것이라는 공포심은 똑같다"(세네카)고 한 이 묘한 말을 음미하고 있었다. 이 말은 그것을 잃을 근심이 있으면 생을 즐긴다는 것이 진실한 재미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뜻이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는 어떤 보배가 내 것으로 확실히 되어 있지 않고 빼앗길 우려가 있는 경우, 그것에 더 한층 애착을 가지고 악착스레 틀어쥐며 매달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불이 찬 기운이 있을 때에 더 잘 일어나듯, 우리의 의지는 반대에 부딪칠 때에 더 날카로워지는 것을 우리는 확실하게 느낀다.

당연한 일로, 안일에서 오는 포만보다 더 우리 취미에 역하는 것은 없고, 희귀하고 얻기 어려운 일보다 더 우리 취미를 자극하는 것은 없다. "모든 사물에서 쾌락은 그것을 놓쳐 버릴 위험 때문에 더 증대한다."(세네카)

갈라여, 싫다고 해라.
쾌락에 고통이 없으면 사람은 포만을 느낀다.                                           (마르티알리스)

리쿠르고스는, 사랑을 생기있게 보존하려고 라케데모니아의 부부들이 숨어서밖에 자지 못하게 하였고, 부부가 함께 자다가 들키면 다른 사람들과 자는 것만큼 수치가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만날 날짜 정하기의 어려움, 들킬 위험, 다음 날의 수치,

남모를 나의 생각, 나의 침묵
내 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는 탄식.                                                             (호라티우스)

이것이 소스에 쏘는 맛을 준다. 사랑이라는 수작의 얌전하고도 부끄러움 많은 방식에서 얼마나 얄궂게 음탕한 장난이 나오는 것인가! 탐락은 고통으로 자극받기를 원한다. 탐락은 찌르르 쑤시는 때에 더 달콤하다. 창녀 플로라는 폼페이우스와 동침할 때는 반드시 그에게 자신이 물어뜯은 자국을 남겨 주었다고 한다.

그들은 정욕의 대상을 강력히 포옹하여 신체에 고통을 주며,
이빨은 흔히 입술에 자국을 남긴다.
그 대상이 무엇이건 이 대상 자체를 상해하려는
비밀스런 행동에서 사나움의 싹이 솟아난다.                                           (루크레티우스)

모든 일은 이렇게 돌아간다. 고통이 사물들에게 가치를 준다.

저 위대한 카토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기 아내가 자기 것인 동안은 싫어하더니,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다음에는 그 여자를 욕심내었다.

우리의 욕망은 내 손에 있는 것은 경멸하며 넘겨 버린다 676

나는 내 종마장에서 늙은 말 한 필을 쫓아냈다. 이놈은 암컷 냄새만으로는 붙여 볼 도리가 없었다. 제 암컷들과는 일이 쉬우니까 바로 물려 버렸다. 그러나 다른 집 암컷들은 어느 것이 목장 부근을 지나기만 해도 귀찮게 이힝힝거리며 흥분하는 꼴이었다.

우리의 욕망은 내 손에 있는 것은 경멸하며 넘겨 버린다. 그리고 자기가 갖지 않은 것을 차지하려고 애쓴다.

그는 수중에 있는 것은 경멸하고
잡히지 않는 것을 추구한다.                                                                  (호라티우스)

우리에게 무엇을 금지하는 것은 그것을 욕심 내게 하는 일이다.

그대가 애인을 감시하지 않으면
그녀는 머지않아 내 관심을 잃으리라.                                                   (오비디우스)

그것을 우리에게 완전히 맡겨 둔다는 것은 경멸을 일으키게 하는 일이다. 결핍과 풍부는 똑같이 폐단이 되고 만다.

그대는 남은 재산에 골치를 앓고
나는 가난으로 골을 싸맨다.                                                                 (테렌티우스)


힘 안 들이고 쉽게 넘어오는 것도 실은 거북하다 677


욕심과 향락은 똑같은 고통 위에 사람을 둔다. 애인이 냉혹하게 굴면 괴롭다. 그러나 힘 안 들이고 쉽게 넘어오는 것도 실은 거북하다. 불만과 분노는 자기가 욕심내는 사물을 높이 평가하는 데서 나오는 만큼, 그것이 연정을 자극해서 열이 오르게 하며, 그 반대로 포만은 염증을 일으킨다. 이것은 무디고 둔하며, 지치고 잠든 열정이다.

여자가 애인을 오래 지배하려면
그를 경멸할 일이다!                                                                           (오비디우스)

업신여기거나 모욕하라, 애인들이여,
어제 거역하던 자가 오늘은 항복하리라.                                               (프로페르티우스)


가리는 꾀 677

포파에아가 자기 얼굴의 아름다움을 가리는 꾀를 쓴 것은 애인들에게 더 비싸게 보이려고 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여자는 각기 내보이고 싶고, 남자는 각기 보고 싶어하는데, 왜 이 미인들은 발꿈치 뒤까지 가리는 것인가? 우리의 욕망과 그녀들의 욕망이 주로 거기 있는데, 어째서 여자들은 그 부분들을 겹겹이 가리고 있는 것인가? 우리네 여자들이 그 옆구리를 무장하는 저 성과 요새는 우리의 욕심을 도발하며, 우리를 물리침으로써 더 끌어 보려는 것밖에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녀는 수양버들 밑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 앞서 쳐다보아 주기를 바랐다.                                             (베르길리우스)

때로 그녀는 내 정열에 대해 옷으로 장벽을 쌓았다.                              (프로페르티우스)


처녀들의 부끄러움 타는 기술 678


처녀들의 부끄러움 타는 기술은 어디에 필요한가? 시치미를 떼고 냉정한 체하는 맵시, 엄격한 용모, 그리고 가르치는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체하는 수작, 그것이 모두 우리 욕심대로 이런 장애를 극복하고 책망하고 유린하고 싶은 생각을 더 나게 하는 것밖에 무슨 소용이 있는가? 이 상냥한 애교와 어린애다운 정숙함을 미쳐서 놀아나게 하며, 이 존대하고 거만한 엄숙함을 우리 정열에 굴복시키는 일은 쾌락일 뿐만 아니라 허영심을 만족시킨다. "엄격함과 겸손과 정숙함과 절조를 정복함은 영광이 된다. 그리고 부인들에게 이런 수작을 쓰지 말라고 권하는 자는 여자들 뿐만 아니라 자기를 속이는 자이다"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녀들의 마음은 공포로 떨리고, 우리의 말소리만 들어도 깨끗한 귀를 더럽혀 그 때문에 우리를 미워하는데, 다만 힘에 못 이겨서 우리가 귀찮게 구는 수작에 넘어간다고 믿어야 한다.


이탈리아에 가 보라 678

미모는 아무리 그 힘이 크다 해도 이런 방법의 중개가 없이는 맛들일 거리가 안 된다. 이탈리아에 가 보라. 거기에는 돈에 팔린 미인, 더욱이 매우 날씬한 미녀가 많은데, 그녀들이 자기를 예쁘게 보이려고 얼마나 색다른 방법과 기술들을 찾고 있는가를 보라. 그러나 사실 무슨 짓을 해도 공중 앞에 팔려 내놓은 몸이니, 그녀들은 언제나 약하고 기운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여성이 지닌 두 가지 같은 효과 중에, 우리는 적어도 더 많은 장애와 모험이 있는 편을 더 훌륭하고 가치있게 여기는 식이다.


4백 년 이상 679


우리는 한번 결혼하면 그것을 풀어 볼 모든 방법을 없애고 있으니, 그 결속을 확고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구속이 단단한 만큼, 의지와 애정의 결속은 더 풀어지고 느즈러져 있다. 반대로 로마에서 결혼이 그렇게 오랫동안 명예롭고 안정되게 한 것은, 아무 때건 원하면 서로 헤어질 수 있는 자유에 있었다. 그들은 아내를 빼앗길지도 모르니, 그만큼 더 아내를 사랑하였다. 그리고 아무 때나 이혼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그들은 사백 년 이상 아무도 그것을 쓰지 않고 보냈다.


허용된 일은 매력이 없다.
금지된 일은 욕심을 도발한다.         (오비디우스)

이 문제에는 "징벌은 악덕을 깨뜨리기보다도 조장한다. 이런 것은 착한 일을 하려는 의지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런 것은 이성과 훈련의 성과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나쁜 짓을 하면서 들키지 않을 마음의 의지만 가꾼다"고 한 옛 사람의 견해를 여기에 결부시켜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근절되었다고 믿은 악은
더 멀리 확대되고 있다.       (루틸리우스)


16. 영예에 대하여



웬일인지 모르지만 683

웬일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자신 속이 이중으로 되어 있어서, 우리가 믿는 것을 믿지 않고, 우리가 질책
하는 것을 물리치지 못한다.


세평보다 더 운에 매인 일이 어디 있는가? 686

세평보다 더 운에 매인 일이 어디 있는가? "진실로 운은 모든 사물들에 지배력을 갖는다. 실제보다도 그의 변덕에 따라서 어떤 자는 올려 주고 어떤 자는 끌어내린다."(살루스투스) 행동이 세상에 알려지고 남의 눈에 띄게 하는 것은, 순전히 운에 달린 일이다.

자기 변덕대로 우리들에게 영광을 붙여 주는 것은 운이 하는 것이다. 나는 영광이 진실한 가치에 앞서 나가며, 흔히 상당한 거리로 가치를 초과하는 것을 보았다. 영광이 그림자를 닮았다고 맨 먼저 생각해 본 자는, 자기 생각보다 더한 일을 하였다. 이런 것은 두드러지게 헛된 일들이다.

영광은 어느 때는 본체보다도 훨씬 앞서 나간다. 그리고 어느 때는 본체보다 길이로 많이 넘친다.

(나의 생각)

나도 참 많이 보아왔다. '순전히 운에 달린' 영광과 세평들을......


착한 사람 687

자기가 착한 사람임을 사람들이 알아 주고, 그것을 알고 나서 자기를 존경해 줄 것인 까닭에 착한 사람이며, 자기 도덕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다는 조건으로 착한 일을 하려고 원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자가 아니다.

수치스런 실패를 겪지 않은 용덕은
이름을 더럽힘 없는 명예로 빛난다.
그리고 속인들의 인기 따라 도끼를 들었다놓았다하지 않는다.   (호라티우스)


속인과 어리석은 대중의 여론 688

한 아르팡의 토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 나라 전체에서 사람 열두엇만 뽑아 내면 된다. 그리고 우리의 경향과 행동의 판단은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가장 어렵고 중대한 문제인데, 우리는 그것을 무지와 부정과 무절제의 원천인 속인과 어리석은 대중의 여론에 맡긴다. 한 현자의 인생을 광인들의 판단에 매이게 하다니, 그것이 될 말인가?

"군중의 의지보다 더 잴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티투스 리비우스)


곧은 길 689


곧은 길은 그것이 곧기에, 또 내가 좇는 것이 아니라 해도 결국 따져 보면 그것이 일반적으로는 가장 좋고 유익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좇을 것이다. "신의 뜻은 명예로운 사물이 가장 유익하다는 것을 인간들에게 선물로 주셨다."(퀸틸라아누스)

저 어리석은 로마가 무슨 일을 제창한다 해도
그대는 저 도량형기의 부정확한 지침은
찬성하거나 책망하지 말 일이다.
그대의 외부에서 그대 자신을 찾지 마라.      (페르시우스)


이름이 알려진다는 것 691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 일을 어떻게 말해 주는가 하는 것보다는 우리 말을 해 주는 것에 관심이 가며, 우리 이름이 어떻게 돌건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기만 하면 된다. 이름이 알려진다는 것은 자기의 생명과 존속이 남의 손에 보존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과 같다.


그들의 이름 694


사람들은 그렇게 작은 일을 가지고는 역사를 만들지 않는다. 한 제국이나 한 왕국을 정복하는 데에 대장이 되어 보았어야 한다. 카이사르 같이 늘 상대편보다 약한 군대를 가지고 52회의 지정된 전투에 승리를 거두었어야 한다. 1만 명의 선량한 동료들과 수많은 장수들이 그에게로 종군하다 용감하게 죽어 갔다. 그들의 이름은 그들의 처자들이 살아 있는 동안밖에는 지속되지 못했던 것이다.


이 허황되고 공상적인 생명을 3년 동안 살기 위해서 694


우리가 눈으로 보는 훌륭하게 싸우는 사람들까지도, 전쟁터에서 쓰러진지 석 달이나 3년이 지나면, 마치 그들이 세상에 있은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들의 말도 나오지 않는다. 어떠한 인물들과 사적(事)들이 서적의 기억 속에 남는가를 정당하게 고찰해 보는 자이면, 누구든지 우리 시대에 행동이나 인물로서 어떤 권한이라도 주장할 수 있는 자가 대단히 적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우리는 용덕을 가진 인물들이 얼마나 많이 그들 청춘에 정당히 얻은 명예와 영광이, 그들이 아직 살아 있는 동안에 사라지는 것을 보고 고민하며, 그들의 명성이 없어진 뒤까지도 당자들이 생존해 있는 것을 보아 왔는가? 그리고 이 허황되고 공상적인 생명을 3년 동안 살기 위해서 우리는 진실하고 본질적인 인생을 잃고 영원한 죽음을 받아야 할 일인가? 현자들은 이렇게 중대한 기도를 위해서는 더한층 훌륭하고 정당한 목표를 세운다.

"선행에 대한 보상은 그것을 수행한 사실이다."(세네카) "어떤 봉사의 과실은 그 봉사 자체이다."(키케로) 아마도 어떤 화가나 다른 장인이나, 또는 수사학자나 문법학자라도 명성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용서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도덕의 행동은 그 자체가 너무 고상해서 그 자체의 가치밖에는 다른 대가를 바랄 수 없다. 특히 인간의 허영된 판단 속에서 그것을 찾을 일이 아니다.


저 위대한 목매달아 죽일 놈 695

그렇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행할 의무를 지키게 하기 위해서는 이런 그릇된 생각이 대중에게 필요하다면, 만일 국민들이 그 때문에 도덕에 잠 깬다면, 만일 세상 사람들이 트라야누스의 추억을 축복하고 네로의 추억을 증오하는 것을 왕공(王公)들이 보고 감격한다면, 만일 옛날에 그렇게도 가공하고 두려움 받던 더 위대한 목매달아 죽일 놈의 이름이, 어떤 학생에게라도 그 일을 배우다가 그렇게도 모욕당하고 저주받는 것을 보고 왕공들이 깊은 인상을 받는 것이라면, 평판은 과감하게 키워 갈 일이며, 사람들은 될 수 잇는 한 이 평판을 가꾸어 갈 일이다.


명예와 양심 697


모든 명예로운 인간들은 자기 양심에 실수하기보다는 차라리 명예를 잃는 편을 택한다.


17. 교만에 대해서



우리가 자신을 애증하는 분수 없는 심정 697


세상에는 다른 종류의 남을 업신여기며 잘난 체하는 마음이 있으니, 그것은 우리가 자신에 대해서 품는 지나친 호평의 말이다. 그것은 우리가 자신을 애증하는 분수 없는 심정이며, 우리를 실제 있는 것과는 다르게 보여 주는 것이 마치 사랑의 정열 때문에 마음속의 인물이 미와 단아한 품을 지녔다고 보는 것이며, 연모하는 자들은 혼란되고 변질된 판단력을 가지고 사랑하는 대상을 실제와는 달리 더 완벽한 것으로 보게 하는 식이다.

그렇다고 나는 사람이 이 면에서 실수할까 염려해서, 자기를 잘못 판단하거나 사실보다 못난 것으로 생각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판단력은 모든 방면에 자기 권한을 유지하고 있어야 하며, 이 문제에서도 다른 경우와 같이 진실이 보여 주는 대로 보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카이사르의 경우라면 그는 자기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장수로 보아야 한다.


우리의 기관 698

우리는 우리의 기관을 똑바로는 감히 부르지도 못하면서 그것을 모든 종류의 방탕한 행동에 사용하기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가 압박받고 있는 것을 느끼는 일 699

교만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즉, 자기를 높이 평가하는 일과 남을 충분히 존경하지 않는 일이다. 전자의 경우에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내게 불쾌하고 동시에 부당하고 더욱이 폐스러운 것이라고 내가 압박받고 있는 것을 느끼는 일이다.


가장 그릇된 사상을 가꾸는 주요 원인 700


대체로 옛 사람들이 품던 인간 전체에 대한 사상들 중에서 내가 가장 즐겨 품으며 애착을 느끼는 것은, 우리를 가장 경멸하고 천시하고 무시하는 사상이라는 것이다. 철학은 내 생각으로는 우리의 교만과 허영심을 공격하며, 철학 자체의 허약성과 무지와 미해결을 성심으로 인정할 때보다 더 잘 할 수는 없는 일로 보인다.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가장 그릇된 사상을 가꾸는 주요 원인은 사람이 자신을 높이 평가하는 데에 있다고 본다.

 

과도한 기쁨 때문에 죽었던 시인 이야기 701-702


나는 무척이나 시가를 좋아한다. 남의 작품은 어지간히 알아본다. 그러나 사실 내가 시가를 써 보려면 어린아이 장난이 되어 버려, 스스로 참을 수 없게 된다. 사람은 다른 데서는 아무 데서라도 어리석은 수작을 할 수 있지만 시가에서는 못한다.

 

신들도 인간도

작품을 붙이는 기둥도

시인들의 평범함은 용서되지 않는다.                                  (호라티우스)

 

우리 출판사 사옥 앞에 이 격언이 붙어 있어서, 그 많은 사이비 시인들이 작품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면 얼마나 좋을ㄹ까!

 

진실로 졸렬한 시인보다 더 자신을 가진 자는 없다.    (마르티알리스)

어째서 우리에게는 이런 사람들이 없는가? 선대(先代) 디오니시우스는 자기 재주 중에도 시짓는 것을 가장 자랑삼았다. 올림픽 경기 때에 그는 화려하기가 다른 어느 것보다도 더한 수레들을 가지고 제왕답게 금박을 하고 수를 놓은 천막에 깃발을 날리며, 시인들과 음악가들을 시켜서 자기 시를 제출케 하였다. 그의 시가 낭독될 때에 처음에는 그 운율이 우아하고 탁월한 데서 민중들의 주의를 끌었다. 그러나 다음에 이 작품의 변변찬은 내용을 감식하게 되자, 그들은 처음에는 경멸하다가 점점 그 판단이 명확해지자, 금세 화를 내며 달려나가 그 깃발을 모두 쓰러뜨리고 찢어 내팽개쳤다. 수레도 역시 경기에서 아무런 성적을 올리지 못했고, 부하들을 실어왔던 배는 시칠리아로 귀환하지 못하고 폭풍우에 밀려서 타렌토의 해안에 가서 부서졌다. 민중들은 이것이 확실히 신들이 그들과 같이 이 못된 시에 분개한 탓이라고 생각하였다. 더욱이 난파에서 겨우 살아난 뱃사람까지도 이 민중들의 의견에 가담하였다.

 

그의 죽음을 예언한 신탁도 역시 어느 면에서 백성들에게 찬동하는 것 같았다. 그 신탁에는 디오니시우스가 자기보다 우수한 자들에게서 승리를 거두었을 때에, 그의 종말이 다가올 것이라고 실려 있었다. 이것을 그는 자기보다 우세하던 카르타고 인들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리고 그들과 싸움을 하게 되었을 때에 그는 이 예언의 뜻에 거스르지 않으려고 여러 번 승리할 기회를 저버리며 조절해 갔다. 그러나 그는 잘못 해석했다. 왜냐하면 신은 그가 아테네에서 자기보다 우수한 비극 시인들에 경쟁해서 《레네이아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작품을 상연시키고, 매수행위(買受行爲)와 부정으로 승리를 거두는 때를 그 시기로 정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이 승리 뒤에 그는 갑자기 죽었다. 얼마간은 그가 이때 느낀 과도한 기쁨 때문이었다.

 

 


평범한 부류에 속한다고 본다 701


나는 나를 평범한 부류에 속한다고 보는 그 사실 하나만을 빼놓고, 자신을 평범한 뷰류에 속한다고 본다. 가장 속되고 천한 결함을 가진 죄는 있어도 그런 것을 떳떳이 자백하지 않았거나, 변명해 본 죄는 없다. 그리고 나 자신의 가치를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나를 평가하지도 않는다.


다시 읽을 때에는 703


내 작품은 내게 기쁨을 주기에는 너무나 모자라서 다시 음미해 볼수록 더욱 화만 치민다.

나는 다시 읽을 때에는 얼굴을 붉힌다.
왜냐하면 많은 문장이 작가인 내가 판단하기에도
마땅히 삭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비디우스)


지난 시대의 풍부하고 위대한 심령들이 내놓은 작품들 703
 


나는 늘 마음속에 한 상념과 뒤섞인 어떤 영상을 갖는다. 그것은 마치 꿈속에서와 같이 내가 써 내놓는 것보다 더 나은 형태를 보여 주는데, 나는 그것을 파악해서 전개시켜 볼 수가 없다. 그리고 이 상념 자체도 중간쯤밖에 못 된다. 내가 이것으로 추론해 보면 지난 시대의 풍부하고 위대한 심령들이 내놓은 작품들은 내 상상력과 소원의 극한을 훨씬 넘는 것이다. 그들의 문장은 나를 만족시켜 채워 줄 뿐만 아니라 나를 놀라 넘어지게 하며 감탄으로 넋을 잃게 한다. 나는 그들의 미를 판단하며 그 미를 눈으로 본다. 전부를 이해하는 것이 못 되더라도 적어도 내가 그런 것을 써 보려고 갈망해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 정도까지는 이해한다.



내 언어 705

내 언어는 유창하고 매끈한 맛이 없다. 오히려 거칠고 오만하며 멋대로 노는 방종한 경향이 있다. 내 판단으로는 아닐지라도 내 경향으로는 이대로가 내 취미에 맞다. 그러나 나는 때때로 너우 이런 식으로 흘러서 기교와 허식을 피하려고 애쓰다가 도리어 다른 면으로 거기에 빠지는 것을 느낀다.

간결하려고 노력하다가
난삽함에 빠진다.      (호라티우스)


미모는 대단한 장점 706

미모는 사람들과의 교제에 추천되는 대단한 장점이며, 사람들 사이에 화합을 이루어 주는 제일의 방편이다. 사람이 아무리 거칠고 퉁명스럽다 해도 그 아름다움에 감명받지 않는 자는 없다. 육체는 우리 인생에 큰 몫을 차지한다. 그 역할은 크다. 그 때문에 신체의 구조와 기질을 존중하는 것은 지당한 일이다. 우리의 이 두 가지 주요 부분을 떼어서 분리시키려고 하는 것은 잘못하는 일이다. 반대로 이 둘을 짝지어 맞춰 놓아야 한다.


반쪽의 존재밖에 709


청춘의 힘과 정기는 점점 없어지고
나이와 함께 우리는 늙어 간다.      (루크레티우스)

이제부터 내가 되어 갈 것은 반쪽의 존재밖에 없으며, 그것은 이미 내가 아닌 것이다. 나는 날마다 사라지며, 내 자신에서 빠져나간다.

흘러가는 세월은 하나하나 우리의 행복을 빼앗아 간다.      (호라티우스)


이것이 단 하나 내가 노력하는 일 711


나는 우리가 자주 당하듯이 일이 여의치 않게 되어 가는 귀찮은 사건들을 감내할 만큼 마음이 강하지 못하고, 늘 긴장해서 일에 질서를 세우고 정돈하며 처리해 갈 수 없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내 일을 운에 맡기며, 모든 일이 아주 잘못되어 가는 것이라고 작정해 놓는다. 그리고 이 최악의 사태를 순하게, 그리고 참을성 있게 견디기로 결심한다. 이것이 단 하나 내가 노력하는 일이며, 나의 모든 사색을 그리로 돌리는 목표이다.


진흙구덩이에 박히더라도 712


길 가는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낭떠러지와 미끄러져 떨어지는 길을 피한다. 그보다는 진흙구덩이에 박히더라도 더 아래로 갈래야 갈 수 없는 단단한 길로 들어서서, 그 곳에서 안정을 찾는다. 그런 만큼 나는 불행을 둘러맞추다가 생기는 불확실성 때문에 나를 단련시키지 않으며, 단번에 나를 고통 속으로 밀어넣는 아주 순수한 불행을 당하는 편이 낫다.

(나의 생각)

'가치투자자의 기본 자세'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속는 서방보다 더 손해보기 마련 712

질투꾼은 속는 서방보다 더 손해보기 마련이다. 소송을 하기보다는 숫제 포도원을 빼앗기는 편이 흔히 불행이 덜하다. 가장 얕은 길이 가장 단단한다. 그것이 견실성이다. 거기서는 자신밖에 아무도 없다. 진실성은 여기에 기초를 두며, 전적으로 자기에게 의존한다.


출세하려면 운이 와서 내 손목을 끌고 갔어야 할 일이다 713

야심으로 말하면 교만과 이웃 간이랄까, 그보다는 딸 뻘이긴 하지만, 출세하려면이 와서 내 손목을 끌고 갔어야 할 일이다. 불확실한 희망 때문에 수고하며 인생 행로의 첫머리에 남의 신용을 얻으려고 하는 자들이 당하는 고난을 겪어 내는 일 따위는 나 같으면 못해 냈을 일이다.

(나의 생각)

'나의 처지'를 두고 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안전투자 713

나는 내 눈으로 보고 내 손에 잡히는 일에 집착한다. 그리고 항구에서 멀리 떠나지 않는다.

한 노는 물을 치고, 한 노는 기슭을 긁으라.      (프로페르티우스)

그뿐더라 사람은 먼저 자기 운을 걸지 않고는 이런 영달을 얻는 일은 드물다. 내 의견으로는 사람은 자기가 출생해서 성장한 운을 유지하면 족할 것을, 그 운을 더 키우려고 불확실한 일을 하다가 손에 잡은 운마저 놓치는 일은 미친 수작이라고 본다. 운을 못 타서 살아 갈 발판을 닦아 평온하고 안정된 생활을 세워 보지도 못하는 자라면, 어차피 궁핍에 몰려서 운을 터 보아야 하는 이상, 가진 것을 우연의 모험에 던져 보아도 용서될 만한 일이다.

불행 속에 있을 때는 험한 길을 취해야 한다.      (세네카)

(나의 생각)

안전투자, 가치투자를 떠올리게 만든다.


기억 718

기억은 제가 오고 싶은 시간에 오지, 내가 바라는 시간에는 오지 않는다.


자기 추천 726

내가 하는 자기 추천은 비천하고 평범한 것이다. 도대체 누가 자기에게 지각이 없다고 생각해 본 일이 있었던가?


자기의 사상 727


나는 정당하고 건전한 사상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가 자기의 사상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인가?


세상 사람들과 나 727∼728


세상 사람들은 늘 서로 상대편을 쳐다본다. 나는 내 눈을 내 속으로 돌리며, 시선을 거기에 처박고, 그 속을 부지런히 둘러본다. 모두들 자기 앞만 쳐다본다. 나는 내 속을 들여다본다. 나는 나밖에 일이 없다. 나는 끊임없이 나를 고찰하며 검토하며, 나를 맛본다. 다른 자들은 그들이 잘 생각해 본다면, 늘 다른 곳으로 가고 있다. 그들은 늘 앞으로 간다.

아무도 자기 속으로 들어가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페르시우스)

나는 내 속에서 굴러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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