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에게만 위로 들린 얼굴을 주며

다른 동물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대지를 내려다보는데
신은 인간에게만은 위로 들린 얼굴을 주며 별들을 향하여
얼굴을 똑바로 들고 하늘을 보라고 명령했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우주와 인간의 탄생>, 제1권  84∼86행

 

 

아마 아직 어떤 동물도 별이 있는 하늘을 주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해는 여전히 의지의 직무를 위해 요구되는 데까지만 미친다. 지각과 지각된 것에 의해 청원되는 것은 완전히 구별되지 않는다. 심지어 좀 더 영리한 동물은 객체들에서 자신과 관계있는 것만을, 즉 자신의 의지에 관련되거나 어쩌면 미래에 관련될 수도 있는 것만을 본다. 마지막 경우의 예를 들면, 고양이는 장소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습득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다른 모든 것에 대해 동물들은 둔감하다. 아마 아직 어떤 동물도 별이 있는 하늘을 주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개는 우연히 처음으로 해를 바라보았을 때 크게 놀라서 펄쩍 뛰었다. 가장 영리하고 또 훈련을 통해 교육된 동물들에게서 주변에 대한, 관심 없는 이해의 최초의 약한 흔적이 가끔 나타난다. 개들은 이미 사물을 뚫어지게 바라보기까지 한다. 창가에 앉아 지나가는 모든 것을 주의 깊게 쳐다보는 개들을 우리는 자주 본다. 원숭이는 마치 주변에 관해 숙고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가끔 주위를 둘러본다. 인간에게서 비로소 동기와 행위 및 표상과 의지가 완전히 명백하게 분리된다. 그러나 이 분리가 의지에 대한 지성의 예속 상태를 즉시 지양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일상인은 사물들에서 그 자신과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어떤 관계를 갖는 것(그에게 관심있는 것)만을 참으로 명백하게 이해한다. 나머지 다른 것에서 그의 지성은 엄청나게 게으르다. 따라서 그 나머지는 배후에 머무르며 완전하고 환한 명백성을 갖고 의식에 나타나지 않는다. 현상에 대한 철학적 경탄과 예술적 감동은 그가 무엇을 하든지 그에게 영원히 이질적인 것으로 남는다. 엄밀히 말하자면 일상인에게는 모든 것이 저절로 이해되는 것으로 보인다. 지성을 의지와 의지의 직무로부터 완전히 분해하고 분리하는 것은 내가 내 책의 미학 부분에서 상세히 보여주었듯이 천재의 특권이다. 천재는 객관성이다. 사물이 직관 안에서(이 기초적이고 내용이 풍부한 인식에서) 나타날 때 갖는 순수한 객관성과 명백성은 실제로 매 순간 의지가 동일한 사물에서 받아들이는 몫과 반대의 관계에 서 있다. 그리고 의지 없는 인식은 모든 미학적 이해의 조건이며 실로 그 본질이다. 왜 인상적인 화가는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풍경을 그렇게 나쁘게 묘사하는가? 그가 그것을 더 아름답게 보지 않기 때문이다. 왜 그는 풍경을 더 아름답게 보지 않는가? 그의 지성이 의지로부터 충분히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분리의 정도는 인간들 사이에서 큰 지적 차이를 만든다. 인식은 의지로부터 더 많이 벗어날수록 더 순수하며, 결국 더 객관적이고 정확하기 때문이다. 자라난 땅의 뒷맛을 갖지 않은 열매가 가장 좋은 열매인 것처럼 말이다. 

 

 - 쇼펜하우어,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 <식물생리학>, 145∼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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