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말하여 농담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자유인에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창피하며, 추하고 촌스러우며 외설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아하며 세련미가 넘치는 것으로서 명쾌하고 재치있는 것이다. 후자에 속하는 것으로는, 우리 로마인의 플라우투스와 아테네인들의 고희극(古喜劇)들뿐만 아니라, 소크라테스의 철학책들에 가득 차 있다. 노 카토에 의해 수집된 농담들은 그리스어로 아포프테그마타 즉 경구라고 울리고 있는데, 이 속에는 많은 사람들의 많은 재치가 넘쳐 있다. 그러므로 세련된 농담과 유치한 농담의 구별은 쉽다. 하나는, 농담을 적절한 때에 하기만 한다면 정신의 휴식처럼 위대한 사람에게 가치있는 것이 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추악한 해위에 음담패설까지 곁들여진다면, 참으로 자유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될 것이다.(80∼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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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유념해야 할 점은 욕망을 이성에 복종케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욕망이 이성을 앞지르거나, 나태함이나 게으름 때문에 이성을 거들떠보지 ㅇ낳도록 해서는 안 된다. 사람은 마음이 평온해야 하며, 그렇기에 모든 정신의 혼란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여기서 모든 확고함과 온전함의 광채가 빛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욕망이 너무 강해 원하든 피하든 간에, 고삐풀린 말처럼 끝없이 날뛰거나, 이성의 힘으로 충분히 통제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은 틀림없이 한계와 정도를 넘어선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욕망은 복종의 미덕을 내팽개치고 이성에 복종하지 않는데, 사실 욕망은 자연법들을 통해 이성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욕망 때문에 정신이 혼란될 뿐만 아니라 신체에도 이상이 오게 된다. 어떤 충격을 받은 사람, 격분한 사람, 공포에 질린 사람, 또는 지나친 쾌락에 빠진 사람들은 그 얼굴만 보아도 안다. 그들의 안색, 음성, 행동과 태도 등 모둔 것이 변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들에서 우리가 의무의 형태를 고안해 내는 데 필요한 저 원리가 이해된다, 즉 의무의 개관으로 되돌아와서, 우리는 모든 욕망을 억제하고 진정하지 않으면 안 되고 어떤 일이나 단순한 충동에 의해 깊은 생각도 없이 무모하게 아무렇게나 행하지 않도록 자각하고 항상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연은 본래 우리 보고 게임이나 농담을 하라고 이 세상에 내보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엄격한 생활을 하고, 더 중요하고 큰 어떤 일에 열중하라고 우리에게 생명을 부여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저 개인이나 농담은 실제로 즐길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대하고 보람있는 일을 충분히 하고 난 다음, 수면이나 그 밖의 다른 휴식을 취하는 것과 꼭같이 해야 한다. 그리고 농담을 할 때에도 음담패설이나 부적절한 것은 피하고, 고상하고 재치있는 것들을 택해서 하도록 해야 한다. 실제로 우리가 소년들에게 모든 게임을 다 허락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도 도덕적으로 선한 행동과 직결되는 것만을 허락해 주듯이, 농담 자체에도 그 어떤 도덕적으로 선한 재치의 빛이 번뜩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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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수치심과 일종의 생활의 미적 감각, 절제와 중용, 그리고 모든 정신 혼란의 진정과 사물들의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도덕적 선의 나머지 한 부분에 관해 언급해야 되겠다. 여기에 더 포함시킬 수 있는 것이 그리스어로는, 소위 프레폰이라 말해지는 것으로서, 우리 라틴어로는 데코룸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의 본질은 도덕적 선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왜냐하면 데코룸한 것은 도덕적으로 선하며, 도덕적으로 선한 것은 데코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네스툼과 데코룸 간에 어떤 차이가 있느냐 하는 문제는, 설명의 필요보다는 직감으로 이해하기가 더 쉽다. 왜냐ㅏ면 데코룸한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명예로운 도덕적 선이 먼저 있고 나서야 비로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논의되고 있는 도덕적 선의 이 부분에서뿐만 아니라 앞에서 언급한 세 부분에 걸쳐 무엇이 데코룸한지는 명백하게 나타난다. 즉, 이성과 웅변을 사려깊게 이용하는 것과 행동을 신중히 하는 것, 그리고 모든 사물 중에서 어떤 것이 참됨인가를 직시하여 유의하는 것은 데코룸한 것이지만, 반대로 판단을 잘못하여 실수나 오류를 범하여 기만당하는 것은 미쳐 날뛰고 정신나간 짓만큼이나 데코룸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정당한 모든 것은 데코룸하며, 반대로 불의는 추한 것처럼 데코룸하지 않다.

 

용기에 대한 생각도 비슷하다. 왜냐하면 용감하고 위대한 정신의 소산은 남자에게 가치있고 어울리는 것으로 데코룸하게 보이지만, 그 반대의 것은 추한 것처럼 데코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는 이 데코룸하다는 것은 실로 모둔 도덕적으로 선한 것, 즉 호네스툼과 관계가 있고, 또 그 관계가 매우 밀접하게 맺어져 있어 어떤 심오한 이성에 의해 식별되는 것이 아니라, 자명한 것으로 나타난다. 사실 소위 데코룸한 것은 모든 덕에서 인식되는 것이고, 사실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사유 능력에 의해 덕에서 더 잘 분리시킬 수가 있다. 육체의 매력과 미는 건강상태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듯이, 우리가 말하고 있는 이 데코룸은 실로 덕과 완전히 혼합되어 있어, 다만 느낌과 생각에 의해서 구별되는 것뿐이다.

 

그런데 그것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가 있다. 하나는 모든 호네스툼에 내재해 있는 어떤 일반적인 데코룸을 이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일반적인 데코룸에 종속되어 있으면서 호네스툼의 각개의 부분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보다 더 우월한 전자는 다음과 같이 정의되는 것이 보통이다. 즉, '데코룸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나머지 짐승의 본성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인간의 우수성과 합치하는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부분이 전체에 종속되어 있는 후자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사람들이 원하는 데코룸이란 자연, 즉 인간 본성과 합일하여 그곳에서 어떤 예의바른 신사의 태도와 함꼐 중용과 절제가 나타나는 바로 그것이다.'

(74쪽∼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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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심지어 행운의 여신이 미소지어 우리의 뜻대로 삶을 영위할 때는, 더욱 많은 노력을 기울여 건방지거나 자만하지 말고 뭇 사람들의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만사가 순조롭게 잘 풀려나갈 때 역경에 부닥쳤을 때처럼 경망스런 행동을 하는 것은 온당치 않으며, 소크라테스나 또한 가이우스 라일리우스에 대해 듣고 알듯이, 전 생애를 통해 항상 평정을 유지하되, 안색을 변치 말고 이마에 주름살을 짓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 얼마나 좋은 일인가. 마케도니아의 왕 필립은 사실 업적과 명성은 아들 알렉산더대왕에 미치지 못했지만, 친절과 인간성이라는 면에서는 더 낫다고 나는 본다. 그러므로 필립왕은 상상 위대했지만, 알렉산더대왕은 가끔 매우 추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따라서 우리는 위대해지만 해질수록 그만큼 더 겸손하게 행동할 줄 알아야 한다는 충고자들의 말 이상으로 좋은 교훈이 없다고 본다. 실로 파나이티우스가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의 제자요 유일한 친구인 아프리카누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계속되는 전투 때문에 사나워진 말들이 제멋대로 날뛸 때에는 더 쉽게 이용하기 위해 조련사에게 넘겨 길들이게 하는 것처럼, 아무에게도 구속받지 않고 순탄하게 자라 성공했다고 하여 자기 과신과 자만에 날뛰는 사람들은 , 인간사가 얼마나 허망하며 행운의 여신이 그 얼마나 변덕이 심한가를 통찰하도록 이성과 배움의 굴뚝 속으로 들여보내야만 한다."

  (7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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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욕심과 공포는 물론 마음의 병인 슬픔과 고통, 그리고 분노와 같은 모든 정신적 혼란 상태에서 벗어나 도덕적으로 확고하고 고귀한 품위를 지키도록 하는 마음의 평정과 근심걱정이 없는 마음을 갇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내가 말한 대로 마음의 평정을 구하여 공무에서 물러나 은둔 소게서 여가를 즐기는 자들이 과거에도 많았고 지금도 많다. 이런 사람들 가운데 가장 고귀하고 유명한 철학자들과 진지하고 엄격한 특정인들은 국민이나 그들의 지도자들의 행위를 견딜 수가 없어 농촌에 파묻혀 살면서 가사를 돌보는 데에서 기쁨을 누리는 자들도 없지 않다.

 

이런 사람들은 제왕 같아서 부족한 것도 없고 머리를 숙여 복종할 사람도 없기 때문에, 그야말로 자유를 만끽하며 요컨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면서 사는 것이다.(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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