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우리 모두가 똑같은 정도의 정직과 신의, 그리고 경애를 모두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다수로부터 경애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지, 아니면 소수에게서 존경과 사랑을 받아도 충분한지는, 그 사람 개인의 직업과 생의 목표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 즉 확실히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의 존재 가치를 존경하는 친구들의 우정과 신의를 갖는다는 것이 급선무이며 최대로 필요한 것임을 시인하도록 하자. 왜냐하면 바로 이 한 가지 점에 있어서만은 정상에 오른 사람들과 보통 사람들간에 대체로 큰 차이가 없으며, 우정이란 거의 동등하게 양쪽에 의해 배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13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러나 위에 열거한 모든 동기 중에서 권력을 유지하고 확고히 하는 데는 경애보다 더 적합한 것은 없고, 공포보다 더 낯선 것도 없다. 엔니우스는 정말 감탄조로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두려워하는 자를 증오하노라.

누구나 자신이 증오하는 자가 죽기를 바라노라.

 

그런데 어떤 권력도 다수의 증오를 견녀낼 수는 없다. 전에 몰랐다면 최근에는 알았을 것이다. 이 참주, 즉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군대를 이용하여 국가의 목줄을 눌렀고, 또 그가 죽은 후인데도 불구하고 국가는 전보다 더 아주 비굴하게 그에게 쩔쩔매고 있는 터인데, 그의 암살은 사람들의 증오가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밖의 다른 모든 참주들의 유사한 운명에 의해서도 같은 교훈이 도출되는데, 실제로 참주치고 그 누구도 일찌기 이러한 죽음에서 피할 수 있었던 자는 없었던 것이다. 정녕 공포 정치란 단지 권력을 유지시킬 뿐인 나쁜 안전 장치이지만, 이와 반대로 선의(선의)는 실제로 그것을 영구히 믿을 만하게 지켜주는 안전판인 것이다.(129∼130쪽)

 

(나의 생각) 작금의 대한민국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이 매우 가파르다. 이 '지지율 하락'이 진짜 무서운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바로 '어떠한 권력도 다수의 증오를 견뎌낼 수는 없다'는 저 변치 않는 무서운 진리 때문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그런데 벌떼가 벌집을 만들기 위해서 군집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군집성이 있어서 벌집을 만드는 것처럼, 우리 인간들은 본래 벌보다 더 군집성이 있는 데다가 행동하고 사유하는 데 총명이 더해져 머리를 쓰게 된다. 그러므로 만약 인간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 즉 인간사회를 유지하는 데 집중되어 있는 저 덕인 정의가 사물의 인식과 무관하다면 그 인식도 고립된 것이요 공허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저신의 위대함, 즉 용기가 인간의 결속과 공동체 사회에서 동떨어진 것이라면 ㄱ것은 일종의 야수적, 비인간적인 만용이 될 것이다. 여기서 인간의 결속과 공동체를 유지하는 일이 사변적 지식의 추구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우리에게 본래 필욯나 것들은 다른 사람들이 도움이 없다면 구할 수도 없고 또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산출해 낼 수도 없기 때문에, 일상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마련하기 위해서 인간 사회와 공동의 유대관계가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그리고 만약 생활 필수품과 생활비에 관련되는 모든 것들이 이야기 책 속에 나오듯이 신의 마술지팡이에 의해 제공된다면, 가장 능력있는 사람은 각자 자기 맡은 바 모든 일에서 벗어나 오로지 진리 탐구에만 전념할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이 또한 전혀 사실과 다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각자 고독에서 벗어나려고 같이 연구할 동료를 구해, 때로는 가르치면서 배우고자 하며, 때로는 들으면서 말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사회를 결속, 유지시키는 모든 의무는 저 진리 탐구와 학문에 관련되는 의무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

 

그러므로 의무들을 비교 선택함에 있어서의 우선 순위는 인간사히를 유지하는 데 관련되어 있는 의무들이다. 그리고 이것은 자연적인 귀결이니, 왜냐하면 신중한 행동은 지식과 예지를 수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이 현명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가치가 있다.

 

이상으로 이 문제는 충분히 설명되었다고 본다. 의무의 본질이 분명하게 밝혀진 이상, 의무에 관한 문제를 취급할 때에 어떤 의무가 어떤 의무에 우선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게 되었다. 더구나 공동체 자체 내에서조차도 의무의 등급이 있어서 그들 가운데 어떤 의무가 다른 의무들보다 더 중한지 이해할 수 있으니, 그 첫째가 불멸의 신들에 대한 의무이고, 둘째가 조국에 대한 것이요, 세번째가 부모에 대한 거싱고, 그 다음부터는 점차 밑으로 내려가면서 나머지 의무들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112∼114쪽)

 

(나의 생각) 제1권의 '결론'에 해당하는 이 대목이 지금에 와서는 '우스운 꼴'이 되고 만 듯한 느낌을 부정하기 어렵다. 세상이 너무 변한 것인가, 아니면 시대가 너무 변한 것인가, 아니면 가치관이 너무 변한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도덕적으로 너무 타락한 것인가?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키케로가 '도덕적 선'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먼 미래에는' 결국 변할 수도 있는 '우선 순위'에 너무 무리하게 손을 댄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건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기술과 기타 생계 수단, 즉 직업의 귀천에 대해서 우리는 이미 대체로 다음과 같이 배웠다. 우선, 사람들의 혐오의 대상이 되는 세금 징수자와 고리대금업자들의 직업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된다. 또 귀하지 않은, 즉 천한 것은 모둔 고용노동자들의 생계 수단이다. 그들은 기술을 파는 것이 아니라, 단지 손으로 하는 노동력을 파는 것인데, 이들의 경우 일의 대가로 받는 보수 그 자체는 노예 상태의 임금수준이기 때문이다. 물건을 도매상인들에게서 사가지고 즉각 소매하는 것은 천하게 여겨야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전혀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어떤 이익도 볼 수 없는데, 거짓말하는 것보다 더 도덕적으로 나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또 수공업자와 같이 손으로 물건을 만드는 모든 사람들은 천하게 평가받아야 하니, 그 까닭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사람 치고 자유인 출신은 없기 때문이다. 테렌티우스가 말하는 바로는, 모든 직업 중에서 가장 천한 것은 감각적인 쾌락을 만족시켜주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다. 즉 생선 장수, 백정, 요리사, 가금업자, 어부들이다.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여기에 향로 장수, 무희, 전 삼류 극단원들을 첨가시켜도 좋다.

 

그러나 전문지식이 필요하거나 상당한 유용성이 있는 기술, 즉 의술, 건축술, 도덕적으로 선한 것들에 관한 교습술은 출신 성분에 적합산 사람들에게 명예로운 직업이다.

 

그런데 무역이 소규모라면 천하게 생각해야 하지만, 그것이 대규모로서 세계 각처에서의 물품을 수입하여 대량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속임이 없이 분배한다면 비난을 퍼부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니 심지어 공정하게 일단 무역을 하여 큰 재산을 마련하여 만족감을 충족시키고 나서 바다에서 항구로 활로를 찾듯이, 이제는 바로 그 항구에서 시골의 토지로 와서 그들의 진로를 개척하는 것은 최상의 찬사를 받을 만하나고까지 생각된다. 그러나 소득이 획득되는 모든 직업 중에서 농업보다 더 좋고 즐겁고 자유인 출신에게 더 적합한 것은 없다. 농업에 대해서는 전에 《대(大) 카토》에서 충분히 언급했으니, 이 문제에 관해서는 네가 그 책을 읽고 알도록 하여라.(108∼109쪽)

 

(나의 생각) 저 당시만 하더라도 키케로는 저렇게 생각했구나. 요즘 사람들로서는 정말 경악할(?) 내용들도 적지 않다는 생각마저 드는 얘기를 '도덕 교과서'에서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는 절도있는 행동을 하고자 노력하여 잘 끝낸 웅변에서처럼 우리의 모든 생활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사실 심각한 국면에 직면했을 때, 연회에서나 어울리는 어떤 유쾌한 대화를 나누려는 것은 도덕적으로 좋지 않은 거싱고, 비난받을 짓이다. 페리클레스가 10인 장군 회의의 한 사람이며 역시 동료 장군인 시인 소포클레스와 공무로 만나 이야기하고 있을 때, 마침 잘 생긴 소년이 지나갔다. 그러나 소포클레스가 "오, 보시오. 페리클레스여, 얼마나 아름다운 소년이요!"라고 탄성을 발하였다. 이때 페리클레스의 휼륭한 답변은 이러하였다. "아, 소포클레스여. 참으로 장군이라면 손놀림도 조심해야 되지만, 보는 눈도 통제해야 됩니다." 이런 말을 소포클레스가 운동선수 선발 심사시에 했더라면 위와 같은 비난의 소리는 듣지 않았을 것이다. 때와 장소를 가릴 줄 아는 힘은 그처럼 큰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여행중이거나 산보 중일 때, 법정에서 행한 소송 사건에 대해서 자신도 모르게 깊은 생각에 잠기거나 어떤 다른 문제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한다면 비난받지 않겠지만, 이같은 행동을 연회석상에서 한다면 때를 가릴 줄 모르는 인간 이하의 인간으로 취급될 것이다. (105∼10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