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 수상록 동서문화사 월드북 12
미셸 드 몽테뉴 지음, 손우성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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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18. 반증에 대하여


자랑으로 보여준다는 의심의 여지는 없다 734


이것은 서재의 한구석에 꽂아 두고, 이웃이나 친척이나 친구로 이 영상 속에 나와 사귀고, 나를 알아보고 싶은 이에게 심심풀이로 주기 위한 것이다. 남들은 당당하고 풍부한 재료를 자기들 속에서 찾기 때문에 자기의 말을 할 생각이 났다. 나는 반대로 내 재료가 너무 가늘고 얇으며 빈약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니, 여기에 자랑으로 보여 준다는 의심의 여지는 없다.


이 책으로 일반 사람들과 가질 수 있는 교제
734

내가 이 책으로 일반 사람들과 가질 수 있는 교제는 기껏해야 그들의 인쇄 기계를 빌린다는 일뿐이다. 그것이 더 신속하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이 책의 낱장은 아마도 장터에서 버터 한 귀퉁이가 녹아 떨어지지 않게 막아줄 것이다.

다랑어나 올리브를 마음껏 싸는 포장지가 되어 주자.                                                   (마르티알리스)

그리고 나는 자주 고등어에게 편하게 들어 있을 옷을 제공하련다.                                 (카툴루스)


내 글을 읽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해도 735

내 글을 읽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해도, 내가 그 많은 한가한 시간을 그렇게도 유용하고 즐거운 사색으로 보낸 것이 시간의 낭비였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내 자신의 틀에 이런 그림을 판박아 내며, 나를 뽑아 내기 위해서 그렇게도 여러 번 손질하고 꾸며 보아야 했기 때문에, 나라는 원형이 어느 점에서 굳어지고 만들어져 갔다. 남을 위해서 나를 그려 가다가, 나는 첫 빛깔보다도 더 뚜렷한 색채로 내 속에 나를 색칠해 간 것이다. 내가 내 작품을 만들었는지 내 작품이 나를 만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이 작품은 작가와 동체이며 작가 자신만이 취급되고, 내 생명의 부분으로 되어 있다. 다른 서적들처럼 제3의 외부적인 목적으로 취급된 것이 아니다.

내가 그렇게도 끊임없이, 그렇게까지 호기심을 가지고 나 자신을 보고해 온 것은 단지 시간 낭비뿐이었을까? 오로지 공상으로, 그리고 말로만 몇 시간 동안 자기를 더듬어 보는 자들은, 그것으로 자기 연구와 자기 작품, 그리고 자기 직업을 삼으며 성심껏 전력을 다해서 꾸준히 기록해 가는 일에 전념하는 자만큼 본심으로 자기를 살피지도 자기 속에 침투하지도 못한다.

가장 감미로운 쾌락은 그것이 내부적으로 소화되면 그 흔적을 남기기를 피하고, 세상 사람들뿐 아니라 남의 눈에 띄는 것을 꺼린다.

얼마나 여러 번 이 일이 내게서 울적한 상념을 흩어지게 해 줬는가! 모든 부질없는 상념들은 울적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자연은 우리들에게 외따로 반성하는 소질을 풍부하게 선사하였고, 우리는 부분적으로는 사회의 신세를 지고 있지만, 그 최대 부분은 우리 자신에게 신세지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우리에게 스스로 반성해 보도록 자주 권고한다. 내 공상에도 어떤 질서와 계획을 세워서 몽상해 가도록 정리하여 그것이 바람결에 흩어져 사라지는 것을 막으려면, 이 공상에 떠오르는 하고많은 자디잔 생각들에 형체를 주어서 기록해 두는 수밖에 없다. 나는 몽상들을 기록해 두어야 하기 때문에, 이 몽상들을 주의해서 듣는다. 내가 얼마나 여러 번 어떤 행동에 관해서 예법과 이성이 드러내 놓고 비난하지 못하게 하는 데 마음속에 화가 북받쳤는가, 그것을 대중에게 알려 주려는 의도도 없지 않아서 여기에 털어놓는다. 그리고 참으로---

저 잡놈의 눈깔 위에 탁!
배때기에 탁! 등때기에 탁!                                                                                              (마로)

이 시의 채찍은 몸뚱이에 때릴 때보다 종잇장 위에 매질할 때에 자국이 더 잘 박힌다. 뭐? 내가 다른 책들에서 무엇이건 도둑질해 작품을 장식하거나, 보강할 수 있을까 하고 엿보아 온 것에, 좀더 책들의 말에 주의해서 귀를 기울이면 어떠냐고? 나는 책을 만들기 위해서 공부한 것이 아니고, 책을 만들었기 때문에 얼마쯤 공부하였다. 적어도 이때는 이 작가, 저때는 저 작가의 머리나 다리를 스쳐 보고 꼬집어 보는 것이 공부라면 말이다. 결코 내 사상을 만들려고 한 것은 아니다. 벌써 오래 전에 형태가 잡힌 사상들을 보충하고 거들어 주기 위해서 하는 일이다.


거짓말 737


거짓말이라는 것은 천한 악덕이다. 그리고 옛 사람(플루타르트를 말함)은 이것을 수치스럽게 묘사하며, 그것은 신을 경멸하고 동시에 인간을 두려워한다는 증거를 보여 주는 일이라고 하였다. 이 악덕의 흉칙스럽고 비굴하고 난잡스러움을 이보다 더 풍부하게 표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에 대하여 비굴하고 신에 대해서 용감하다는 것보다 더 비굴한 일을 달리 상상해 볼 수 있는가? 우리들의 상호 양해는 오로지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 말을 그릇하는 자는 공공 사회를 배반하는 것이다. 말은 그 방법으로 우리의 의지와 사상을 서로에게 전달하는 유일한 연장이다. 그것은 우리들 심령의 통역이다. 말이 우리에게 없으면 우리는 서로 의지할 수 없으며, 알아보지도 못한다. 말이 우리를 속인다면 우리의 모든 관계를 부수며 우리 사회의 모든 연락을 무너뜨린다.

(나의 생각)

'신뢰의 가치'를 역설한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책 『트러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19. 신앙의 자유에 대하여


20. 우리는 순수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맛보지 못한다


꼬랑지끼리 붙들어매어 놓기로 작정한 것 743

우리가 갖는 쾌락이나 재물들은 고통과 불편이 얼마간 섞여 있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쾌락의 샘 복판에 쓴 것이 솟아나와
꽃처럼 피어나는 연인들을 괴롭힌다.                                                                                   (루크레티우스)

우리의 탐락은 극도에 도달하면 어느 점에서 신음과 오열의 풍이 있다. 이 탐락이 고민 속에 사라진다고 말하지 못할 일인가? 진실로 우리가 그 모습을 절정 상태에 꾸며 볼 때에, 우리는 그것을 오뇌·유연·허약·실신·병태 등 병적이며 고통스런 소질의 접두사로 매흙질한다. 그들이 혈연성과 동질성으로 되었다는 두드러진 증거이다.

심각한 기쁨은 쾌활성보다 더 엄격함을 지닌다. 극도로 충만한 만족감에는 유쾌미보다도 한층 안정감이 있다. "절제 없는 행복감은 그 자체를 파괴한다." 안일은 우리들을 찢어발긴다.

그리스의 한 시구 첫머리가 바로 그런 뜻으로 말하고 있다. "신들은 우리에게 주는 모든 일들을 판매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어떠한 좋은 일도 순수하고 완벽하게 주지 않으며, 그것을 우리는 대가를 치르고 산다는 말이다. 노고와 쾌락은 기본 성질상 대단히 다르지만, 그렇지만 무엇인지 모르는 자연스런 결합으로 서로 협력한다.

소크라테스는 어떤 신이 고통과 쾌락을 뭉쳐서 뒤섞어 놓으려고 했다가 그것을 잘 해낼 수 없자, 이들을 꼬랑지끼리 붙들어매어 놓기로 작정한 것이라고 하였다.


보상 없는 불행은 없다 744

대자연은 우리에게 이런 혼돈을 드러내 보인다. 화가들은 울 때에 사용하는 얼굴 움직임과 주름살이 웃을 때에도 역시 쓰인다고 생각한다. 이 두 가지 표현이 완수되기 전에 화가가 그려가는 모습을 살펴보라. 어느 쪽으로 그려 가는 것인지 의심이 생긴다. 그리고 웃음의 절정에는 울음이 섞인다.


"보상 없는 불행은 없다."(세네카) 인간이 소원대로의 편익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을 상상해 보면(신체의 모든 부분이 늘 생식 행동(生殖行動)의 쾌감이 극치에 이르렀을 때의 것과 같은 쾌감으로 잡혀 있을 경우를 들어 보면), 나는 그가 쾌감의 무게 밑에 쓰러져서, 그렇게도 순수하고 견실하고 보편적인 탐락을 전혀 견디어 낼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 경지에 있으면 그는 마치 발을 단단히 디딜 수 없어 빠져 들어갈까 두려워하는 것같이 조급해져서 달아난다.


표본적 처벌 745

"모든 표본적 처벌은 개인들에 대하여 비공정성을 지니되, 그것은 공공의 이익으로 보상된다"고 타키투스는 말한다.


25. 병자를 흉내내지 말 것에 대하여


상상력의 작용 758


플리니우스는 어떤 자가 전에는 아무런 병도 없었는데, 자다가 시각장애인이 된 꿈을 꾸고 나서 다음 날 바로 시각장애인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내가 다른 데서도 말했지만, 상상력은 그런 작용을 일으키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플리니우스도 같은 의견인 것 같다. 그러나 의사들이 그 원인을 알아보려고 했으면 발견했을 일이지만, 그에게서 시각을 앗아 가고 있던 증상을 신체는 그 내부에 느끼고 있었으며, 이 증상이 꿈을 꾸게 한 동기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이치에 맞다.



우리의 병폐 759

"우리의 병폐는 우리 밖에서 찾을 일이 아니다. 우리들 속에 있다. 그리고 바로 우리가 병들어 있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의 병을 고치기가 어려워진다. 우리가 일찍부터 자신을 보살피지 않으면 언제 가서 그 많은 상처와 병폐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인가? 그 때문에 우리는 철학이라는 대단히 감미로운 약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다른 약들은 치료되고 난 뒤에 밖에는 유쾌한 맛을 느끼지 못하는데, 이 약은 쓸 데에도 유쾌하며, 동시에 병을 고쳐 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세네카가 편지글에서 한 말이다.


27. 비겁은 잔인의 어머니



비겁은 잔인의 어머니 760

나는 '비겁은 잔인의 어머니'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리고 저 악의에 찬 비인간적인 마음씨의 악랄함과 가혹함은 대개 여성적인 유약한 성격에 수반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중에도 가장 잔인한 자들이 변변찮은 이유로 쉽사리 우는 것을 보았다.


가장 비겁한 부류들, 겁 많은 똥개들 761


승냥이나 곰 같은 짐승들 중에도
가장 비겁한 부류들이 죽어 가는 사람을
집요하게 습격한다.      (오비디우스)

마치 겁 많은 똥개들이 들판에서는 공격할 엄두도 못 내던 야수들의 껍질을 집에 가지고 와서는 찢고 물어 뜯는 식이다.


돌덩이에 상처를 입었다고 해서 761


적의 숨길을 끊기보다는 패배시키는 것에, 그를 죽이기보다는 굴복시키는 데에 더 큰 용맹과 멸시가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뿐더러 복수의 욕망은 이것으로 더 만족한다. 복수는 자기 실력을 뼈저리도록 느끼게 하는 것밖에 다른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우리는 짐승이나 돌덩이에 상처를 입었다고 해서 그것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리의 보복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없는 데서라면 763


한 문장을 공격하려고 그 작가가 죽기를 기다리는 자는 약한 자이며 싸움꾼이라는 것밖에 무엇을 뜻하는가? 누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어떤 자가 당신을 나쁘게 말하더라고 하자 그는, "그보다 더한 것이라도 하게 하오. 내가 없는 데서라면 아무리 내게 매질해도 좋소"라고 말했다.


28. 모든 일에는 저마다 때가 있다
 



한 발은 무덤 속에 있는데도 772

젊은이는 자기 준비를 해야 하고, 늙은이는 그것을 누려야 한다고 현자들은 말한다. 그리고 우리의 천성에서 그들이 주목하는 가장 큰 결함은, 우리의 욕망이 끊임없이 다시 젊어지는 일이다. 우리는 늘 살기를 다시 시작한다. 우리의 공부와 욕망은 때로는 늙음을 느껴야 할 일이다. 우리는 한 발은 무덤 속에 있는데도 욕망과 추구는 출생만 하고 있다.

그대는 죽음에 임박해서도 무덤 생각은 않고,
대리석을 깎으며 가옥을 건축한다.      (호라티우스)

내 계획은 가장 긴 것이라 해도 일 년의 폭을 넘지 않는다. 나는 이제부터는 마지막을 장식할 생각밖에 않는다. 나는 내게서 모든 새로운 희망과 계획을 벗어던진다. 나는 이제 두고 떠나려는 모든 장소에 마지막 작별을 고한다. 그리고 날마나 내가 가진 것을 포기해 간다.

"오래 전부터 나는 잃지도 따지도 않는다. 내게는 갈 길보다 더 많은 비용이 남아 있다."(세네카)


30. 한 기형아에 대하여



전에 본 일이 없는 것 783

"그가 빈번히 보는 것은 어째서 그렇게 되는가를 그가 알지 못할 때라도 그를 놀라게 하지는 않는다. 그가 전에 본 일이 없는 것이 일어나면, 그것은 기적이라고 생각한다."(키케로)


31. 분노에 대하여


격정이 지배하는 것 785


우리의 맥이 극도로 뛰며 흥분을 느끼는 동안은 일을 중지할 일이다. 우리의 마음이 가라앉아 냉철해질 때에는 사물들은 다르게 보일 것이다. 그때에는 격정이 지배하고 격정이 말하는 것이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다.

격정을 통해서 보면, 마치 안개를 통하여 보는 물체와 같이 잘못들이 우리에게 더 크게 보이는 것이다. 배고픈 자는 음식을 찾는다. 그러나 징계를 사용하고자 하는 자는 벌 주고 싶은 생각에 굶주리고 목이 말라서는 안 된다.


키케로와 브루투스 786

나는 옛 사람들의 문장에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쓰는 자는, 그런 생각을 가진 체하고 말하는 자보다 더 강한 감명을 주는 것에 주목한다. 키케로가 자유애(自由愛)에 관해서 말하는 것을 들어 보라. 브루투스가 같은 제목으로 말하는 것을 들어 보라. 그 문장에서, 이 후자는 생명을 내걸고 자유를 살 인물이라는 것이 울려 온다.


키케로와 세네카 786


웅변의 시조인 키케로에게 죽음의 경멸을 말하게 해 놓고, 세네카에게 같은 문제를 다루게 해 보라. 전자는 기운 없이 끌어간다. 그리고 자기가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을 그대에게 결단내리게 하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는 그대에게 조금도 용기를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후자는 그대에게 활기를 주고 불을 지른다. 나는 작가들, 특히 도덕과 의무를 취급하는 작가들은 그가 어느 종류의 인물인가를 호기심을 가지고 살펴보지 않고는 그 작품을 읽지 않는다.


분노라는 격정, 격정이 갑자기 꾸며낸 궤변 788


분노는 그 자체에 쾌락을 느끼며, 아부하는 격정이다. 얼마나 여러 번 우리는 그릇된 원칙 아래 혼동되어서, 누가 와서 우리들 앞에 정당한 변호와 변명을 제시하면, 우리는 진리나 실속 없는 일에 대해서 분개하는가! 나는 이 문제에 관해서 옛날의 한 경이로운 예를 기억하고 있다.

피소는 탁월한 도덕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는 자기 부하 병사 하나가 꼴을 베러 갔다가 혼자 돌아왔고 같이 갔던 동료를 어디에 두고 왔는지 말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이 자가 그를 죽인 것이 명백하다고 생각하고 당장에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그래서 그를 사형대에 올려놓았을 때에 마침 길을 잃었던 동료가 돌아왔다. 군대 전체는 이것을 큰 경사로 여기고, 두 병사는 한참 서로 껴안고 어루만지면서 반가워했다. 그 다음 거기 와 있던 피소에게도 이 일은 대단히 기쁘리라고 기대하고, 사형 집행인이 이 두 병사를 그의 앞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사정은 거꾸로였다. 피소는 수치와 울분으로 아직도 속에서 치밀어오르던 화가 배로 터지며, 그의 격정이 갑자기 꾸며 댄 궤변으로, 홧김에 이 셋에게 죄를 씌우며 모두 형장으로 보내게 하였다. 첫번 병사는 그가 선고를 받았으니 유죄이고, 길을 잃었던 둘째 병사는 그의 동료의 죽음의 원인이 되었으니 그렇고, 사형 집행인은 그가 받은 명령에 복종하지 않은 까닭에 죄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힘든 것 789


분노를 조절하려면 잔혹하게 자기를 억제해야만 한다. 나로서는 격정치고, 그것을 덮어가며 버티어 나가는 데 이렇게 힘든 것을 알지 못한다.


가장된 건전함 밑에 은폐된 때에 789∼790


사람들은 분노를 숨기다가 그것이 몸에 배어들게 한다. 그것은 마치 데모스테네스가 주막집에서 사람들에게 들킬까 봐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을 보고, 디오게네스가 "속으로 물러나 들어갈수록 더욱 그대는 그 속으로 들어간다"고 말한 식이다. 나는 점잖은 외모를 보이느라고 속으로만 고민하는 것보다는 차리라 격에 맞지 않게 하인의 뺨을 한 대 치는 편이 낫다고 충고한다. 그리고 고생하며 울화통을 덮어두기보다는 차라리 그것을 밖으로 터뜨려 내보낼 것이다. 격정은 새어 나가서 밖으로 표현되면 힘이 약해진다. 격정의 화살을 안으로 향하게 해서 우리를 해치게 하는 것보다는 밖으로 작용시키는 편이 낫다. "모두 드러내 보이는 악덕은 비교적 가볍다. 그것은 가장(假裝)된 건전함 밑에 은폐된 때에 가장 나쁘다."(세네타)


허공에 대고 화를 내서는 안 된다 790

허공에 대고 화를 내서는 안 된다. 그 꾸지람이 자기가 불평으로 생각하는 자에게 도달하도록 잘 보아서 해야 한다. 어떤 자는 꾸지람 받을 자가 앞에 나오기도 전에 고함지르며, 그가 가 버린 뒤에도 한 세기를 두고 계속해서 소리지른다.


누가 어떻게 밀건 791


불행한 일로 사람이 낭떠러지에 서게 되면, 누가 어떻게 밀건 늘 바닥까지 떨어지게 마련이다. 추락은 그 자체가 돌진과 격앙과 촉진력을 제공한다.


분노라고 하는 무기 792


다른 무기를 가지고는 우리가 그 무기를 움직이지만, 분노라고 하는 무기는 반대로 우리를 움직인다. 우리의 손이 무기를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손을 조종한다. 이 분노라는 무기가 우리를 잡고 있는 것이지, 우리가 이 무기를 잡고 있는 것은 아니다.


32. 세네카와 플루타르크의 변호



얼마나 바보같은 우둔성인가? 796∼797


가능한 일과 가능하지 않은 일은, 내가 다른 데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의 지각으로 믿을 수 있거나 믿을 수 없는 것에 따라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자기들이 할 수 없거나 하고 싶지 않는 것이라고, 남이 하는 것을 여간해서 믿지 않으려는 것은 대단한 잘못이며 사람들 대부분이 거기에 잘 빠진다. 각자에게는 자연이 주장하는 형태가 자기에게 있는 것같이 보이며, 이 형태를 시금석으로 모든 다른 형태들을 여기에 관련시켜 본다. 자기 태도에 맞추지 않은 자세는 꾸며 낸 것이고 인공적인 것이다. 얼마나 바보 같은 우둔성인가!

나로서는 어떤 사람들은 나보다 아주 위에 있다고 보는데, 특히 옛 사람들이 그렇다. 내 걸음으로 그들을 뒤따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해도, 그래도 나는 그들을 눈으로 뒤따르며 그들을 그렇게 높이 올려놓는 원동력을 판단해 보는 일을 멈추지 않고, 어느 점에서 그 힘의 씨앗이 내게도 있음을 알아본다. 마찬가지로 나는 그 어느 심정이 극도로 비천한 것을 알아 보고, 거기에 놀라지도 않으며 그것을 믿는다. 나는 이런 인물들이 자기를 높이 올리려고 사용하는 법을 잘 고찰해 보며, 그들의 위대성에 감탄하고, 내가 대단히 훌륭하다고 보는 이런 비상(飛翔)을 내 속에 품어 보며, 비록 내 힘이 도달하지 못할망정 적어도 내 판단력은 기꺼이 노력한다.


33. 스푸리나의 이야기

몸뚱이가 말썽을 부리며 800

크세노크라테스는 여기에 더 가혹한 방법을 썼다. 제자들이 그의 절조를 시험해 보려고, 저 유명한 예쁜 창녀 라이스를 벌거벗겨 그녀의 미모와 아양떠는 매력의 무기를 발휘하도록 그가 자는 침대 속에 밀어 넣었더니, 그는 자기 사상과 규칙에도 불구하고 몸뚱이가 말썽을 부리며 거역하기 시작하자, 이 반역에 귀를 기울인 부분들을 불로 태워 버렸다.


34. 줄리우스 카이사르의 전쟁하는 방법에 대하여



장수된 자의 최고의 역할 809

이 가련한 자들은 그가 얼마나 탁월하게 시간을 아껴 쓸 줄 아는 자인가를 모르고 있었다. 그는 때맞추어 기회를 잡아 번개같이 집행하는 것이 장수된 자의 최고의 역할이라고 몇 번이고 되풀이했으며, 이 재간이 사람의 일로 믿어지지않는 전대미문의 공훈을 세웠던 것이다.


35. 세 현숙한 부인에 대하여


때늦은 표시로다! 817

화목한 결혼의 기준과 진실한 증거는 그 교합이 얼마나 지속되며, 이 교합이 꾸준히 조용하고 성실하고 유쾌했던가에 달려 있다. 우리 시대에는 여자들은 일반적으로 선량한 봉사와 맹렬한 애정을 남편이 죽은 뒤에 표시하려고 보류해 두고 있으며, 그때에야 비로소 그 선의의 증거를 보여주려고 한다. 때늦은 표시로다! 여자들은 도리어 이것으로 남편들을 죽어서밖에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생전엔 다툼으로 가득하고, 사후엔 사랑과 예절로 가득하다. 부친들이 그들 자녀에 대한 애정을 감추고 있듯, 그녀들은 점잖은 존경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즐겨 남편에 대한 애정을 감춘다. 이런 신비는 내 비위에 맞지 않는다. 그녀들이 아무리 머리털을 쥐어뜯고 자기 몸을 할퀴고 해 보아도 소용 없다. 나는 바로 침모(針母)나 서기의 귀에 대고, "그이들은 어떻게 되었지? 그이들은 어떻게 살았지?" 하고 물어 본다.


가장 애통이 적은 자가 가장 소란스레 비탄한다 817


나는 늘 "가장 애통이 적은 자가 가장 소란스레 비탄한다"(타키투스)라는 좋은 말이 생각난다. 그녀들의 찌푸린 상은 살아 있는 자들에게 흉하고, 죽은 자들에게는 소용없다. 살아 있는 우리에게 웃어 준다면 죽은 뒤에 웃는 것을 기꺼이 면제해 줄 것이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코에 대고 침뱉던 자가, 이제 죽어 갈 때에 와서 발을 문질러 본다면, 울화가 터져서라도 다시 살아날 일이 아닌가? 남편의 죽음을 울어 주는 데 무슨 명예가 있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웃어 준 여자들만의 차지가 된다. 살아서 울어 준 여자들은 죽어서는 속으로나 겉으로나 웃어 댈 일이다.

그러므로 그 축축한 눈과 가엾은 목소리를 보지 말고, 저 요란스러운 베일 밑의 저 거동, 저 안색, 저 오동통한 볼을 보라. 그녀는 이런 것으로나 프랑스어로 말한다. 그 다음에 건강이 더 좋아지지 않는 예는 드물다. 이 소질만은 속이지 못한다. 이런 격식을 차리는 자태는 앞이나 꾸밀까, 자기 뒤는 그다지 가다듬어 주지 못한다. 그것은 밖에서 빌려 온 것이고, 자기 속을 내어 주는 것이 아니다. 나는 어릴 적에, 지금도 살아 있지만, 한 점잖고 대단히 예쁜 귀부인이 왕공의 과부 신분으로는 우리의 관습이 허용하는 이상의 몸치장을 하고 있음을 보았다. 사람들이 그것을 책망하자 그녀는 "그건 내가 새로운 친교를 맺지 못한 까닭이오. 그리고 나는 재가할 뜻이 없소" 하고 말하였다.

사례 1. 이탈리아에서 젊은 플리니우스의 집 옆에 살던 한 이웃(p818∼819)
사례 2. 파에투스 케킨나의 아내 아리아 (p 819∼821)
사례 3. 폼페이아 파울리나. 세네카의 부인 (p821∼823)


36. 가장 탁월한 인물들에 대하여

 

처음이자 마지막 시인 825∼828

누구든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특출한 인물을 골라 보라고 하면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게 탁월한 인물 셋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호메로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나 바로가 그만큼 박식하지 못하다는 것은 아니고, 예술에서 베르길리우스가 그에게 비교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이 판단은 그들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맡겨 둔다. 한편밖에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단지 내가 아는 한도로 시신(詩神)들까지도 이 로마 시인보다 뛰어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판단에서도 베르길리우스가 그 재질을 주로 호메로스에게서 배워 온 것이었으며, 이 시인이 그의 안내자이며 스승이었고, 《일리아드》의 단 한 줄이 저 위대하고 거룩한 《아에네이스》에 본체와 재료를 제공하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고찰하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나는 여기에 이 인물을 감탄스럽고 거의 인간 조건 이상으로 만들어 주는 여러 가지 다른 조건들을 섞어서 생각한다.

사실 나는 자기 권위로 많은 신들을 세상에 내놓고 사람들을 믿게 한 그가, 자신이 신의 지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자주 이상하게 여겨 왔다. 앞을 보지 못하며 궁핍한 몸으로 학문이 아직 규칙과 확실한 관찰로 사물들을 기록해 놓기도 전에, 그는 이런 일을 모두 알고 있어서, 다음에 정치를 세우고 전쟁을 지휘하고, 어느 학파에 속하건 종교나 철학에 관한 것을 쓰고, 기술을 다루는 일에 간섭하는 자들을 누구나 다 그를 모든 사물들에 관한 지식의 지극히 완벽한 스승과 같이 보며, 그의 작품을 모든 종류의 능력을 기르는 기초 터전 같이 이용했다.

그는 무엇이 명예롭고 수치스러우며
유용하고 그렇지 않은가를
크리시포스와 크란토르보다도 더 능란하게
더 완전하게 말한다.                                                                                                  (호라티우스)

그리고 다른 자가 말하는 것처럼-

마치 무궁무진한 샘처럼
피에리아(詩神들의 고향)의 물에
시인들은 입술을 축이러 온다.                                                                                    (오비디우스)

또 다른 자는 말하기를-                            

헬리콘(보이오티아 접경의 산, 중턱에 시신(詩神)들의 제전이 있었다) 시신들의 길동무들을 더하라.
그 가운데 단 한 사람 호메로스만이
별무리의 높이에 오른다.                                                                                           (루크레티우스)

그리고 또 하나는 말하기를-

그의 풍부한 원천에서 후세의 시인들은 그들 시가에 물을 길었고
단 한 사람의 재보로 부유해져서
감히 수많은 작은 하류로
물을 끌어대는 큰 강이다.                                                                                           (마닐리우스)

그가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가장 탁월한 것을 생산해 냈다는 것은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사물들은 출생할 때에 대개 불완전하며 성장하면서 불어 가고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옛 사람들이 그를 두고, 자기 앞에 아무도 모방할 자가 없었기 때문에 자기 뒤에 그를 모방할 자가 없었다고 말한 이 아름다운 증언에 따라, 우리는 그를 시인들 중에서 처음이며 마지막 시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의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생기와 행동을 가진 유일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유일한 실질적인 언어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다리우스 왕의 전리품 가운데에 호화롭게 장식된 한 상자를 발견하고는, 그것을 호메로스를 넣어 두는 데에 사용하라고 명령하며, 이 시인은 자기 군사 업무에 가장 훌륭하고 충실한 고문이라고 말하였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서, 아낙산드리다스의 아들 클레오메네스는, 호메로스는 군사 훈련에 대단히 훌륭한 스승이기 때문에 라케데모니아 인들의 시인이라고 말하였다.

플루타르크의 판단에 의하면, 그는 독자에게 언제나 전혀 다르게 나타나며, 항상 새로운 우아미로 개화하며, 결코 사람들을 물리게 하거나 염증 나게 하는 일이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가라는 특별한 찬사를 받는다. 장난하기 좋아하는 알키비아데스는 학자로 자처하는 어떤 자에게 호메로스 한 권을 달라고 요구했더니, 가진 것이 없다고 하자, 따귀를 한 대 갈겨 주었다. 그것은 마치 우리 신부님들 중에 성무 일과서(聖務日課書)를 갖지 않은 자를 보는 식이다.

크세노파네스가 어느 날 시라쿠사의 폭군 히에론에게 자기는 하인 둘을 먹여 살릴 거리도 갖지 못했다고 불평을 하자, 그가 대답했다. "뭐? 그대보다 훨씬 더 가난하던 호메로스는 아무리 죽을 지경이언정 만 명 이상의 학자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파나이티오스가 플라톤을 철학자들의 호메로스라고 말했을 때에, 이 말에 무슨 부족한 것이 있었던가?

그뿐더러 어떤 영광을 그의 영광에 비겨 볼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이름과 작품보다 더 사람들의 입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트로이의 헬레나와 그녀로 인한 전쟁만큼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고 인정받은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네 아이들은 3천 년이 넘는 옛날에 그가 꾸며 댄 이름을 아직도 쓰고 있다.

누가 헥토르와 아킬레우스를 모르는가? 어느 사사의 가문들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가 꾸민 이야기 속에 자기들의 근원을 찾고 있다. 마호메드라는 이름을 두 번째 가진 터키 황제가 교황 피우스 2세에게 편지를 보내기를, "우리는 트로이 사람들에게서 나왔고, 나도 그들과 같이 그리스 인들에 대해서 헥토르의 피에 대한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데 관심을 가졌는데, 어째서 이탈리아 인들이 내게 대항해서 단결하는지 나는 이상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국왕들과 국가들과 황제들이 그렇게 오랜 세기를 두고 그 속에 자기의 역할을 연기해 오고, 이 큰 우주 전체가 그것의 무대로 쓰이는 한 고상한 연극이 아닌가?(825∼828쪽)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위대성 828∼829

또 하나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다. 왜냐하면 그가 그의 계획을 시작한 나이, 그가 그렇게도 영광스런 계획을 완수하는 데 쓴 방법이라는 것이 대단치 않다는 것, 그가 그 어린 나이에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경험 많은 장수들 사이에 권위를 세워서 그들을 따라오게 한 일, 그 모험적이며 거의 철없다고 할 만한 하고많은 그의 업적을 운이 품어 주고 밀어 준, 예사로움을 넘어선 하늘의 은총 등을 고려해 보면,

그의 무한한 욕구에 장애되는 모든 것을 부수어 가며
파괴의 한가운데에서 혈로를 여는 기쁨을 맛보며      (루카누스)

이 위대성은 33세의 나이에, 사람이 살 수 있는 땅 전체를 승리자로서 거쳐 갔고, 반생 동안에 인간의 천성이 성취할 수 있는 궁극에 도달했으며, 그래서 인간을 초월한 무엇인지를 상상해 보지 않고는, 정상적인 생명의 폭을 가지고는 용덕으로, 그리고 운으로 그의 정당한 지속 기한과 성장을 상상해 볼 수 없을 정도로 된 일, 그의 군사들 속에서 여러 왕실들이 가지를 쳐 나가게 하고, 죽은 뒤에도 군대의 부대장들인 네 명의 상속자에게 세계를 분할하여 그 후손들이 계속해서 이 방대한 영토를 유지하며 오래도록 계속 된 일, 정의·절제·관후성·약속을 지키는 신의, 자기 가족들에 대한 사랑, 피정복자에 대한 인간성 등 하고많은 탁월한 덕성들을 가지고 있던 일.

아울러 그의 부지런함·예측·참을성·훈련·책략·호방·결단성 그리고 한니발의 권위가 이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가 사람들 중의 제일인자였던 행운 등의 하고많은 군사적 덕성, 기적이라고까지 보고 싶은 인물의 희미한 미모와 성품, 그렇게도 불그레하니 화색이 도는 젊은 얼굴 밑의 그 자태와 그 존경할 만한 몸가짐.

그의 학문과 능력의 탁월성, 그 순수하고 명쾌하고 오점과 시기심으로 더럽혀진 일이 없는 오랜 영광의 지속과 위대성, 그리고 그가 죽은 뒤에도 오래도록 그의 메달을 몸에 지닌 자에게는 행운이 온다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경건한 신념으로 되었던 사실, 다른 역사가들이 어느 왕이나 왕공들의 공훈을 두고 쓴 것보다도 더 많이, 왕들과 왕공들 자신이 그의 공훈에 관해서 기술하였고, 다른 역사를 경멸하는 마호메트 교도들이 지금까지도 다만 그의 역사에는 특권을 주어 이것을 용인하고 숭앙하는 사실들을 고찰해 본 자이면, 그는 이 모든 것을 뭉쳐 생각해서 단 하나 내 선택에 의문을 품게 할 수 있었던 카이사르보다도 내가 역시 그를 택한 것이 옳았다고 고백할 것이다. 카이사르의 공훈에는 그 자신의 힘이 더 많았고, 알렉산드로스의 공훈에는 운의 힘이 더 많았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이 여러 면에서 대등하였고, 카이사르가 어느 점에는 아마도 더 위대했다. 그들은 이 세상을 여러 군데에서 황폐시켜 나간 두 불덩이거나 또는 두 급류였다.

소리내며 타는 마른 숲과 월계수 숲 속에
맹렬한 기세를 떨치며 번지는 화염과도 같고
신속히 고산 준령에서 떨어져 내려
물거품 던지는 급류가 소란스레 대해로 달려가며
모든 것을 파괴하여 그 통로를 터 나가듯.      (베르길리우스)

그러나 카이사르의 야심엔 더 많은 절제가 있었다 하여도, 그것은 자기 나라의 궤멸과 세계의 전반적인 악화에 그의 낮고 추한 목적을 두었던 만큼, 너무 심한 불행을 초래하였기 때문에, 모든 점을 종합해 저울질해 보면, 나는 알렉산드로스의 편으로 기울어지지 않을 수 없다.


37. 자손들이 조상을 닮음에 대하여


철 맞추어 생명을 내놓지 않는 자에게 834

세월이 그들과 오래 교제하는 자들에게 주기로 되어 있는 여러 선물들 중에도 내가 수락할 수 있는 것을 그들이 골라 주었더라면 좋았을 성싶다. 그들은 내가 어릴 적부터 가장 흉측하게 생각하던 것을 줄 수는 없을 테니까. 이것은 노년기에 일어나는 모든 재앙들 중에도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것이었다. 나는 앞으로 나가는 것이었고, 이렇게 먼 길을 가다가는 결국 어떤 불쾌한 일에 걸리고 말 것이라고 혼자 여러 번 생각했다. 나는 이미 떠날 시간이 되었다고, 외과의들이 신체의 어느 부분을 끊어 낼 때의 규칙을 따라서 이 인생을 생짜로 그 알맹이에서 잘라 내야 하는 것이고, 철 맞추어 생명을 내놓지 않는 자에게 대자연은 아주 호된 높은 이자를 물리는 습관이 있다고 어지간히 느끼고 있다고 주장했다.


고함쳐 볼 일 836∼837


극단적인 재앙을 당한 자에게 점잖게 차린 자세를 요구하는 것은 잔혹한 일이다. 행동만 떳떳이 해 나간다면 언짢은 얼굴을 해도 좋다. 신체가 비탄함으로써 괴로움이 좀 멀어진다면 그렇게 할 일이다. 몸을 흔드는 것이 기분에 좋다면, 멋대로 곤두박질이건 수선이건 떨어 볼 일이다. 만일 소리를 힘껏 맹렬하게 밖으로 내질러서(여자들이 해산할 때에는 그것이 도움이 된다고 어떤 의사들이 말하듯), 아픔이 어느 정도 풀어지는 듯하다면, 또는 그것으로 아픈 생각이 헛갈린다면, 악을 써서 고함쳐 볼 일이다. 이 소리에게 나오라고 명령은 하지 말자. 그러나 나오는 것은 허가하자. 에피쿠로스는 현자에게 아플 때에 소리지르는 것을 허용할 뿐 아니라, 그것을 권하기까지 한다. "역사(力士)들도 역시 그들 적수를 강타할 때에 철장갑을 내휘두르며 소리지른다. 심오한 발성으로 전신이 단단해지고 타격이 더 맹렬히 내리쳐지기 때문이다."(키케로) 우리는 이런 쓸데없는 규칙으로 애쓰지 않아도 고통만으로 할 일이 많다.

 

기적의 모든 난해성보다 더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괴상한 일 839

우리가 여느 때 보고 있는 사물들 중에도 기적의 모든 난해성보다 더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괴상한 일들이 많다고 본다.


도대체 이 정액 한 방울이라는 것이 무슨 괴물이기에 거기서 우리가 생겨나며, 거기에 우리 조상들의 육체적 형태뿐 아니라, 그 사상과 경향의 흔적까지 지니고 있는 것일까? 이 물방울은 어디다 이 무한한 수의 형태를 깃들이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어떻게 이 물방울들은 종잡을 수 없게 혼란된 추이로, 증손자가 증조부를 닮고 조카가 삼촌을 닮는 이런 유전성을 지니고 있는 것인가?

······ 내가 이 담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부친에게서 받은 것이라 믿을 만하다. ······
 
어디서 그렇게 오랫동안 이 결함의 성향은 부화되고 있었던 것일까? 부친이 이 병에 걸리기까지에는 아직도 시일이 멀던 시절에 그가 나를 이뤄 낸 그 실체의 변변찮은 한 조각이, 어떻게 이렇게도 굉장한 사태의 흔적을 지니고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한 어머니에게서 나온 그 많은 형제들과 자매들 중에 지금까지 나 혼자만 40년이 지난 뒤에 내가 그것을 느끼기 시작했을 정도로 어떻게 그토록 깊이 숨어 있었던 것인가? 누가 내게 이 추이에 대해 설명해 준다면, 나는 그만큼 다른 기적들도 그가 바라는 대로 믿어 줄 것이다.



건강 841

건강이라는 것은 소중한 것이며, 사실 그것을 추구하여 시간뿐 아니라 땀과 수고와 재산과 생명까지도 사용할 만한 단 하나의 것이다. 더욱이 건강 없이는 생명은 우리들에게 괴롭고 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탐락도 예지도 지식도 도덕도 건강 없이는 흐려지고 사라진다.


의약을 몰라서 844

누가 라케데모니아 인에게 어떻게 해서 그렇게 오래 살게 되었느냐고 물어 보자, "의약을 몰라서"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죽어 가면서 의사들이 자기를 죽였다고 끊임없이 소리질렀다. 못난 역사(力士)가 의사가 되었다. "잘해라" 하며 디오게네스가 그에게 말했다. "너 참 잘했다. 전에 너를 쓰러뜨리던 자들을 이번에는 네가 쓰러뜨릴 것이다."


그들의 기술을 원망한다 859


나는 그들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기술을 원망한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의 어리석음을 타서 이득을 올린다고 크게 책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상일 대부분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직업보다 값어치가 못하거나 더 대접받는 많은 직업들이 사람들을 기만하는 일밖에 다른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나의 생각)

증권회사 영업사원들이 하는 일이 떠오른다. '그들의 기술'이 고객들의 어리석음을 틈타서 이득을 올리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


나는 살아가는 데 쓸모없는 보배에는 결코 영수증을 떼어 주지 않습니다. 862∼863

나는 살아서보다 죽은 뒤에 내가 더 사랑받고 존중받기를 조금도 바라지 않습니다.

티베리우스 황제의 심정은 우습습니다. 그러나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는 자기 시대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좋게 보이려는 생각보다는 장래에 명성을 연장시킬 걱정이 더 컸으니까요.

내가, 세상이 칭찬해 주어야 할 의무를 질 수 있는 사람들의 축에 든다 하여도, 나는 그것을 당겨서 치러 주기를 요구하고, 다음의 의무는 말소해 주겠습니다. 그 칭찬은 길게 끄는 것보다는 속이 차고, 지속하기보다는 더 충만하게 서둘러서 내 주위에 뭉쳐 쌓아 줄 일입니다. 그리고 내 지각이 사라지고 동시에 그 달콤한 음성이 내 귀에 울려 오지 않을 때에는 이 칭찬도 과감하게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내가 사람들과의 교섭을 포기하려는 이 시간에, 새로 나를 추천해서 그들 앞에 내놓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심정일 것입니다. 나는 살아가는 데 쓸모없는 보배에는 결코 영수증을 떼어 주지 않습니다. 내가 어떠한 자이건, 나는 종잇장으로 된 일보다는 다른 일로 받고 싶습니다. 내 기술과 기교는 나 자신을 더 가치 있게 하는 데에 사용되었습니다. 내 공부는 행할 줄 알기 위한 것이지, 글 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내 인생을 만드는 데 온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것이 내 직분이고 내 사업입니다. 나는 다른 일꾼은 되어도 책 만드는 일꾼은 아닙니다. 나는 현재의 본질적인 편익에 소용되기 위해서 능력을 바란 것이지, 내 후계자들에게 저축과 예비 재산을 쌓아 주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어떠한 장점을 가진 자는 그것을 자기 행동 습관에, 여느 때의 말과 행동에, 사랑하거나 싸우는 행동에, 놀음에, 잠자리에, 식탁에, 자기 일처리에, 자기 집 세간살이에 드러낼 것입니다. 내가 보는 바 추레한 잠방이를 만들어 입고 좋은 책을 지어 내는 자들은, 내 말을 믿었더라면 먼저 잠방이를 만들어 입었을 것입니다. 스파르타 인에게 훌륭한 군인보다 훌륭한 수사학자가 되고 싶은가를 물어 보십시오. 나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내게 밥을 차려 주는 자가 없다면 차라리 익숙한 요리사가 되겠습니다.

정말입니다! 부인, 글 쓰는 데는 유능한 인간이고, 다른 데서는 쓸모없는 바보 인간이라는 따위의 칭찬을 내가 얼마나 싫어하는지요. 나는 내 능력을 사용할 자리를 그렇게 못나게 골라잡았다기보다는 차라리 여기저기서 바보로 통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나는 이런 어리석은 수작으로 어떤 새로운 명예를 얻으려고 기대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건강을! 865


나는 건강과 같은 그 견실하고 살 붙고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쾌락을 공상적이고 정신적인, 바람과 같은 쾌락과 바꾸려고 할 정도로 내 마음이 부풀어올랐거나 바람이 차 있는 것은 아니다. 영광은 에이몽의 네 아들들의 영광이라고 해도, 그 때문에 담석증을 세 번이나 심하게 겪어야 한다면, 내 기분과 같은 사람에게는 너무나 비싸게 사들이는 것이 된다. 무엇보다도 건강을!


털 두 개와 씨앗 두 낱알이 똑같아 본 일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 865


나는 나와 반대되는 사상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나는 내 판단력이 남의 것들과 합치되지 않는 것을 본다고 겁을 내거나, 그리고 사람들의 방향과 파당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사람들과의 교제에 서로 통하지 않고 지낼 생각은 가져본 일이 없다. 그 반대로 다양성이라는 것은 자연이 좇고 있는 가장 전반적인 방식이며, 정신은 더 부드럽고 더 많은 형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물질로 되어 있다. 이 다양성은 육체보다 정신에 더 많기 때문에 나는 우리 기분과 의도가 합치하는 것을 보는 일이 더 드물다고 본다. 그래서 세상에 두 의견이 똑같아 본 일이 결코 없었던 것은 털 두 개와 씨앗 두 낱알이 똑같아 본 일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의견의 가장 보편적인 소질, 그것은 다양성이다.

 

(제2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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