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대홍수

어느새 바다와 대지가 따로 없었다.

온 세상이 바다였고 바다에는 해안도 없었다.

어떤 사람은 언덕을 차지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구부정하게 휜 거룻배를 타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쟁기질하던 곳 위로 노를 저어 지나갔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곡식밭이나 또는 물에 잠긴 별장의 지붕 위로

배를 타고 지나갔고, 또 다른 사람은 느릅나무 우듬지에서 물고기를

잡았다. 그리고 때로는 우연히 닻이 초록빛 풀밭에 내려지거나,

굽은 용골들이 물에 잠긴 포도밭 위를 스쳐 지나가는 일도 있었다.

방금 전만 해도 여윈 염소 떼가 풀을 뜯던 곳에서는

이제 물개들이 보기 흉한 몸을 드러낸 채 쉬고 있었다.

네레우스의 딸들은 물 밑에서 임원들과 도시들과 집들을

보고 놀랐고, 돌고래들은 숲을 차지하고는 높은 나뭇가지들에

부딪치기도 하고 줄기들을 들이받아 흔들어보기도 했다.

늑대가 양 떼 사이에서 헤엄치는가 하면, 황갈색 사자들과 호랑이들도

물결에 떠다니고 있었다. 멧돼지에게 벼락 같은 힘은 쓸모없어졌고

사슴에게는 날랜 다리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되었으니,

함께 물에 휩쓸렸다. 그리고 새들은 앉을 만한 대지를 찾아

오랫동안 떠돌아다니다가 지쳐 결국 바닷물에 떨어졌다.

바다는 엄청난 방종을 만끽하며 언덕들을 덮었고,

낯선 파도들이 산꼭대기들을 쳤다.

대부분의 생물들은 물에 빠져 죽었고, 물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것들도 식량이 부족하여 오랜 기근으로 굶어 죽었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1권 291∼312행


 

 

넵투누스의 말, 월터 크레인(1845∼1915), 1893, 캔버스에 유채, 뮌헨 노이에 피나코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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