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인간 모두에게 서로 최대로 이용할 수 있도록 활짝 열려져 있는 것이 바로 사회이다. 이런 점에서 인간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게 자연이 산출한 모든 것에 대한 공동의 권리는 수호되어야 한다. 즉, 법과 시민권에 의해 할당된 권리들은 법 자체의 규정대로 지켜져야 함은 물론, 나머지 권리들도 '친구들 간의 모든 것은 공동 소유다'라는 그리스의 격언처럼 보호되어야 한다. 더욱이 모든 인간의 공동 소유는 엔니우스에 의해 제시도니 유의 사물로서 보이는데, 그가 든 아래의 한 가지 예는 한정되어 있지만 그 원리는 많은 것에 적용시킬 수 있다.

 

길 잃고 방황하는 자에게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마치 자신의 등불로 다른 사람의 등에

불을 붙여 주는 것과 같도다.

그런데 남에게 불을 붙여 주었다고 해서

자신의 불빛이 덜 빛나는 것이 아니니라.

 

이 예에서 그는 한 가지 사실을 충분히 가르치고 있는데, 그것은 손해가 없다면 낯선 사람일지라도 무엇이든 주라고 하는 것이다.(49∼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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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더 나아가, 호의를 받았을 때는 그에 대한 선별이 행해져야 한다. 즉, 말할 것도 없이 최대의 호의를 베푼 자에게 최대의 보답을 해야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선 상대방이 어떤 마음가짐과 어떤 생각에서 호의를 베풀었는지 고려해야 한다. 그 까닭은 많은 사람들이 때로는 모든 것이 병적인 상태에서, 때로는 마치 바람이 갑자기 휘몰아치고 지나가듯 일시적인 마음의 충경을 받아 돌발적인 상태에서 무모하게 선심을 많이 쓰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호의는 사려깊고 일관된 판단에 입각해서 행해진 값진 호의와 같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호의를 베풀고 은혜를 보답함에 있어 모든 조건이 같다면, 최대의 의무란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가능한 한 최대의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대로 한다. 그들은 내심으로 가장 큰 것을 주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에게, 비록 그 당사자는 정작 아무런 호의와 도움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가능한 한 최대의 봉사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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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누군가가 우리에게 행한 호의에 대해 우리가 해야 할 첫째 의무는 우리를 가장 많이 생각해 준 사람에게 최대의 것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방의 호의를 평가함에 있어 유치한 청소년의 기질과 어떤 사랑의 열정 같은 것으로 하지 말고, 변하지 않고 일관성 있는 원칙으로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상대방의 호의가 베풀어졌지만, 감사한 마음을 보답으로 표시하지 못했을 때에는 더 큰 배려를 하여 감사의 표시를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감사의 마음을 표시해 보답하는 것보다 더 필요한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만일 네가 사용하기 위해 빌어온 것들을 헤시오두스의 말처럼, 가급적 더 많은 것으로 되돌려 갚아 주어야 한다면, 생각지도 않은 호의를 받았을 때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생각건대, 아마 우리는 받은 것보다 훨씬 많이 생산해 내는 기름진 땅을 닮아야 하지 않을까? 만일 우리가 장차 우리에게 도움을 주리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참으로 주저하지 않고 호의를 베푼다면, 이미 우리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대해야 하겠는가? 사실 관대함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친절을 베푸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보답하는 것이다. 친절을 베풀 것이냐, 베풀지 않을 것이냐 하는 선택은 우리의 권한이지만,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보답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답하지 않는 것은 선인이라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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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에 대한 정의가 어떤 것인가 하는 가장 훌륭한 실례를 우리 선조들은 보여주고 있다. 피루스왕에게서 도망해 온 자가 로마 원로원에서 자기가 왕을 독살하겠다는 약속을 했을 때, 원로원과 가이우스 파브리키우스는 그 도망자를 피루스왕에게 되돌려 보냈다. 진실로 강대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고, 더구나 더 큰 전쟁을 도발할 지도 모르는 적을 부당하게 제거하는 것에 그들은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다. (43∼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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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전쟁들의 의무에 관해서는 정말 충분히 언급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심지어 가장 미천한 자들에 대해서조차도 정의가 구현되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가장 천한 상태와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은 노예들인데 여기서 우리가 얻게 되는 훌륭한 교훈은 그들을 고용 노동자처럼 다루라고 멸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심하게 일을 시키키는 하되, 의식주와 같은 근본 문제는 해결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불의가 행해지는 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그것은 폭력과 기만이다. 기만은 마치 여우의 교활함처럼 보이고, 폭력은 마치 사자의 사나움처럼 보인다. 폭력과 기만은 인간과는 가장 거리가 먼 것이지만, 기만이 더 큰 혐오를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모든 불의 중에서도, 남을 가장 기만하면서도 자신은 마치 선인처럼 보이도록 위장하면서 속이는 자들의 불의가 가장 위험하다. (44쪽)

 

(나의 생각) 왜 자꾸 땅콩 때문에 난리를 쳤던 그 못난 여자가 떠오를까? 다시 생각해도 정말 화가 치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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