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강상진.김재홍.이창우 옮김 / 길(도서출판)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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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에 사로잡히고 즐거움에 이끌리기 때문

 

그런데 자신의 의견에 머물러 있으려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고집쟁이라고 불린다. 이 사람들은 설득 자체가 어렵고, 또 한번 마음 먹은 것을 바꾸게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 사람들은 자제력 있는 사람들과 비슷한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 마치 낭비가 심한 사람이 자유인다운 사람과 비슷한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고, 또 무모한 사람이 대담한 사람과 비슷한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러나 그들은 여러 가지 점에서 서로 다르다. 자제력 있는 사람은 감정이나 욕망 때문에 마음을 바꾸지는 않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설득을 잘 받아들이기에 자제력 있는 사람이다. 반면에 고집쟁이들은 이치에 닿는 말에도 마음을 바꾸지 않는데, 그것은 욕망에 사로잡히고 대부분 즐거움에 이끌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독선적인 사람들, 무식한 사람들, 그리고 촌사람들 또한 고집쟁이들이다. 독선적인 사람들은 즐거움과 고통으로 말미암아 고집쟁이가 된 것이다. 이들은 설득되어 마음을 바꾸는 일이 없기만 하면 승자로서 기뻐하고, 자신들의 견해가 민회에서 던진 표처럼 무효가 되면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제력 있는 사람을 닮았다기보다는 자제력 없는 사람을 더 닮은 것이다. (261∼262쪽)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7권 제9장 「자제력 있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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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을 바꾸는 것도 어려운데, 그것은 습관이 본성을 닮았기 때문

 

그런데 자제력 없음과 자제력 있음은 대부분 사람들의 품성상태를 넘어서는 것에 관계한다. 자제력 있는 사람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견디는 반면, 자제력 없는 사람은 그것보다 못 견디기 때문이다.

 

자제력 없음의 종류들 가운데 불같은 성질의 소유자가 보여 주는 자제력 없음이, 숙고는 하되 숙고한 바에 머물지 못하는 자제력 없음보다 더 고치기 쉽다. 또 습관으로 말미암아 자제력 없게 된 사람이 본성적으로 그러한 사람보다 더 고치기 쉽다. 습관을 바꾸는 것이 본성을 바꾸는 것보다 더 쉬우니까. 사실 습관을 바꾸는 것도 어려운데, 그것은 습관이 본성을 닮았기 때문이다. 에우에노스48도 말하고 있는 것처럼

 

친구여, 오랜 시간에 걸친 훈련, 실로

그것이 결국 인간의 본성이 되네

 

 

 

 

────────

48 에우에노스, 단편9(Diehl). 그는 파로스(Paros) 출신의 시인으로 비가(悲歌)와 격언시를 썼다고 전해지는데, 소크라테스에게 시를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플라톤의 작품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되고 있다. 『변론』20a ;『파이드로스』267a ; 『파이돈』60d-61a.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제7권 제10장「자제력 없음과 품성」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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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을 이유로 성립하는 친애


유익을 이유로 성립하는 친애가 서로 가장 받대되는 것으로부터 생겨나는 듯 보인다. 예를 들어 가난한 사람이 부자와 맺는 친애나 무지한 사람이 식자와 맺는 친애의 경우처럼. 자신이 마침 필요로 하는 것을 추구하면서 다른 것을 보답으로 주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사랑을 구하는 사람'과 '사랑을 받기만 하는 사람' 사이의 친애, '아름다운 사람'과 '못생긴 사람' 사이의 친애를 끌어 올 수도 있겠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사랑을 구하는 사람'이 우스꽝스럽게 보이는데, 그들이 사랑하는 만큼 사랑받기를 요구할 때이다. 둘이 비슷한 정도로 사랑할 만한 사람들이라면 동등하게 요구해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서도 동등하게 사랑받기를 요구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마 서로 반대되는 것 중 한편은 다른 한편을 그 자체로는 추구하지 않고 우연히 추구할 것이다. 욕구하는 바는 사실 중간이며 이것이 좋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마른 것은 젖은 것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이르기를 바라고, 이것은 뜨거운 것이나 다른 것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이제 접기로 하자. 상당히 다른 논의에 속하니 말이다.(296쪽)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제8권 중 제8장「사랑하는 것과 사랑받는 것」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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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건넬 수 없음이...

 

탁월성들에 관한 논의에서 어떤 사람들은 품성상태(hexis)에 따라, 또 어떤 사람들은 활동(energeia)에 따라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되듯, 친애의 경우에 있어서도 그러하다. 함께 살면서 서로에게 기쁨을 주고 좋음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고 있는 사람들, 혹은 장소상 서로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친애]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친구처럼 활동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지기도 한다. 공간적 거리는 친애를 단적으로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활동을 막을 뿐이다. 그러나 친구의 부재(不在)가 길어질 경우 친애의 망각이 빚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러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말을 건넬 수 없음이 많은 친애들을 해체시켰다.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8권 제9장 「친애들의 특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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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가 바로 그러한 것을 지향했으니까

 

서로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가 잘 되기를 바라는데, 그들이 사랑하는 그 관점에서 그러기를 바란다. 유익을 이유로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를 그 자체로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상대로부터 자신들에게 어떤 좋음이 생겨나는 한 사랑하는 것이다. 즐거움을 이유로 서로 사랑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재담꾼을 사랑하지만 재담꾼이 어떤 성격의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다. 유익을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어떤 좋음을 이유로 상대에게 애착을 가지는 것이며, 즐거움을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어떤 즐거움이 돌아오는 이유로 그러한 것이다. 그들은 사랑을 받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그 사람인 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유익을 주는 한, 혹은 [자신들이] 즐거운 한 사랑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은 우연적인 의미에 따른 친애이다. 사랑받는 사람이 그 자체로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어떤 좋음이나 즐거움을 주는 한에서만 사랑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친애는 [사랑을 주고 받는 친구들이] 계속 이전 같지는 않을 때 쉽게 해체되고 만다. 더 이상 즐거움이나 유익을 주지 못하게 될 경우 그들의 사랑 역시 멈추게 된다. 그런데 유익한 것은 지속적이지 않고 경우에 따라 유익한 것이 달라지기도 한다. 따라서 그들이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그 이유가 사라지고 나면 친애 역시 해체된다. 친애가 바로 그러한 것을 지향했으니까. 이러한 종류의 친애는 주로 나이 든 사람들에게서 생겨나는 것으로 보인다. 나이 든 사람들은 즐거움이 아니라 도움이 되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전성기에 있는 사람이나 젋은이들 중에서도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친애가 해당되는 것 같다. 이러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일이 별로 없다. 사실 어떤 때에는 피차 상대방이 즐겁게 느껴지지 않으니까. 서로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친교도 필요하지 않다. 그들이 좋음의 희망을 가지는 바로 그만큼만 [서로에게]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손님에 대한 친애'도 이러한 범주에 넣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면서


젊은이들의 친애는 즐거움을 이유로 성립하는 것 같다. 젊은이들은 감정에 따라 살며 주로 그들에게 즐거운 것을 추구하고, 또 지금 있는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즐거운 것들도 달라지게 된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그들은 쉽게 친구가 되고, 또 쉽게 헤어진다. 그들의 친애는 즐거움에 따라 바뀌는데 그러한 즐거움의 변화는 빠르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또 에로스 지향적이다. 에로스적인 사랑은 대부분 감정에 따른 것이며 즐거움을 이유로 성립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그들은 순식간에 사랑에 빠졌다가 순식간에 헤어진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면서. 이들은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같이 살기를 원한다. 이들에게 친애라는 것은 이런 식으로 생겨나니까.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8권 제3장 「친애의 세 종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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