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이야말로 바로 철학의 대명사이다. 그 이름은 인류의 영광임과 동시에 어느 의미에서는 불명예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뒤에 나타난 로마인들도 앵글로색슨인들도 기본적으로는 플라톤이 개척한 사상의 틀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쓰는 문장의 박력은 마치 한꺼번에 떨어지는 별똥별의 엄청남을 생각하게 한다. 그 사고의 확고함은 마치 별들이 그 안정된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유연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 에머슨, 『위인이란 무엇인가』, <철학자 플라톤>

 

 * * *

 

플라톤의 <대화편>은 얼핏 보면『논어』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둘 다 대화체로 쓰인 데다가, 사람 이름이 붙은 <대화편>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두 작품 모두 주된 화자가 '스승'인 공자와 소크라테스인데 반해 그들이 책을 직접 저술하지 않았다는 점도 닮았다.

 

플라톤의 대화편은 『논어』보다는 훨씬 방대해서 모두 56편에 이르는데, 그 가운데 특히 『법률』이 12편이고 『국가』도 10편을 차지한다. 그런데 『국가』와 『법률』을 각각 1권의 책으로 보고, 플라톤의 대화편을 총 <36편>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또 이걸 각각 주제별로 4부작으로 묶어서 총 9부작으로 재분류하는 사람도 있다.

 

그 많은 플라톤의 <대화편>을 대표하는 작품이 『국가』라는 작품이다. 이 책을 요약하는 설명은 거의 똑같다. '철인이 다스리는 이상 국가에 대해 논한 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대한 대화'를 주도한 소크라테스가 '이상 국가'에 이르는 수많은 곁가지 설명들을 아낌없이 펼쳐놓은 덕분에 이 책은 온갖 서양 사상의 원형들을 두루 폭넓게 담은 거대한 호수와 같은 책으로 변했다. 그러니 플라톤 이후에 등장한 거의 모든 '철학'이나 '정치사상'을 다룬 책들은 도무지 이 책을 벗어날 길이 없었고, 아무리 새로운 사상을 전개하려 애를 쓴 사상가라 하더라도 결국 이 책의 영향 아래로 끌려들어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단적으로 말해서 모든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원조가 바로 이 책이었으니까.

 

그런데 이 책이 다루는 주제가 워낙 방대한 데다가, 특히 초반부터 다소 빡세게(?) 전개되는 '정의와 불의'에 대한 까다로운 논의는 이 책에 대한 일종의 '진입장벽'이 된 듯한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이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이데아'를 설명하기 위한 그 유명한 '동굴의 비유'나 '태양의 비유' 등에 이르는 과정이 매우 험난하다는 느낌도 든다. 그러니 이 책의 중반부에서 전개되는 '까다로운 남녀 평등 문제'나 '아내와 자식들의 공유 문제'를 조심스레 다루는 부분은 아예 맛도 보지 못하는 독자들도 드물지는 않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이 까다롭고도 무거운 철학적 주제들을 숱하게 진지하게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일반 독자들에게까지 사랑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아무래도 플라톤의 뛰어난 산문 실력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플라톤의 문답식 대화 속에는 알게 모르게 은근한 유머와 재치도 적잖이 숨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언어 유희까지도 구사되어 있을 정도로 문학적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으면 '소크라테스'는 갑자기 친숙한 이웃집 동네 아저씨처럼 돌변하고, 그가 들려주는 진지한 철학 이야기는 어느새 평범한 소시민들의 인생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기분마저 든다.

 

 

그래서 내가 말했네. "그의 생성과정은 다음과 같네. 그는 잘못 다스려지고 있는 나라에 살기에 명예나 관직이나 소송이나 그 밖에 그와 비슷한 일을 기피하며 성가신 일을 당하기보다는 차라리 손해 보기를 원하는 선량한 아버지의 젊은 아들일 경우가 종종 있네."

 

"그런 그가 어떻게 명예 지상 정체적인 인간이 된다는 거지요?" 하고 그가 물었네.

 

그래서 내가 대답했네. "첫째, 그는 어머니의 불평을 들음으로써 그런 인간이 되네. 어머니는 남편이 아무런 관직도 맡지 않아 다른 여자들 사이에서 자기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하네. 그다음, 어머니는 남편이 재물에도 별로 관심이 없고 사적인 송사에서나 공적인 집회에서 모욕을 당해도 대항하는 일 없이 그 모든 것을 태연히 참고 견디는 모습을 보고 있네. 어머니는 또한 남편의 생각이 언제나 그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있고, 아내인 자기를 무시하지도 않지만 존경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네. 이 모든 것에 화가 난 어머니가 아들에게 아버지는 남자답지 못하다는 둥 너무 안이하다는 둥, 그런 경우에 여자들이 흔히 늘어놓는 불평들을 쏟아내는 거지."

 

그러자 아데이만토스가 말했네. "여자들은 그런 불평을 많이 늘어놓는데, 그야말로 여자다운 불평들이지요."

 

그래서 내가 말했네. "또한 자네도 알다시피, 이런 집에서는 하인들도 가끔 호의를 가장하여 아버지가 듣지 않는 곳에서 아들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네. 하인들은 아버지가 채무자나 가해자에게 가혹하게 대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나중에 성인이 되면 이들을 응징하라고, 아버지보다 더 남자다운 남자가 되라고 아들을 부추기네. 마찬가지로 아들은 밖에 나가서도 시내에서 제 할 일만 하는 사람들은 바보라고 불리며 아무런 존경을 받지 못하는데, 그러지 않는 자들은 존경과 칭찬을 받는 것을 보고 듣네. 이와 같이 젊은이가 이 모든 것을 보고 듣는 한편, 아버지의 주장을 듣고 아버지의 생활태도를 가까이에서 보며 그것을 다른 사람들의 생활태도와 비교하게 되면, 그는 양쪽 모두에게 끌리게 되네. 말하자면 아버지는 그의 혼의 이성적인 부분을, 다른 사람들은 욕구적인 부분과 기개적인 부분을 키우는 거지. 그래서 그는 본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나쁜 사람들과 교제한 탓에 결국 양쪽으로 끌려서 그 중간에 자리 잡게 되네. 그리하여 그는 자신에 대한 지배권을 양쪽의 중간인 승리를 좋아하는 기개적인 부분에 맡기게 되어 교만하고 명예를 사랑하는 인간이 된다네."

 

"선생님께서는 그의 생성과정을 아주 정확하게 서술하신 것 같아요" 하고 그가 말했네.(449∼450쪽)

 

 - 플라톤, 『국가』, <제8권>

 

 

그런데 위와 같은 재미있는 대화를 읽다 보면 새삼 '소크라테스가 과연 저런 말을 저토록 천연덕스럽게 했을까' 싶은 의구심도 살짝 든다. 소크라테스야말로 인류가 배출한 최고로 지혜로운 사람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가정생활만큼은 '악처에게 내내 시달린' 사람으로 널리 인식되고 있으니까 하는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소크라테스는 '가정생활'에서 그리 높은 점수를 받을 위인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나아가서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이고 위엄을 갖춘 인물이었다. … 언젠가 알키비아데스가 그에게 집을 지으라며 넓은 땅을 제공해 주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가령 내가 신발을 필요로 한다고 해서 자네가 나에게 직접 신발을 지어 신으라면서 무두질한 가죽을 제공해 준다 한들, 내가 그것을 받는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이 되겠는가."

 

또 그는 가게에서 팔리는 많은 물건들을 보면서 자주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나에겐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필요치 않은 것일까?" 라고. 그리고 그 이암보스조의 시를 끊임없이 읊었던 것이다.

 

은 접시도, 자줏빛 옷도,

비극작가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살아가는 데는 쓸모없는 것들.

 

(100∼101쪽)

 

 -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 철학자 열전』

 

 

 

한편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두 명의 여자를 아내로 두었다고도 한다. 즉, 최초의 아내는 크산티페로 그녀에게서는 람프로클레스를 얻었다. 두 번째 아내는 미르토로서 그녀는 '의인(義人)' 아리스테이데스의 딸이다. 그녀를 지참금 없이 얻었는데 이 아내에게서는 소프로니스코스와 메네크세노스가 태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최초로 결혼한 것은 미르토라고 하고, 또 두 사람을 동시에 아내로 두었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 아테네 사람은 인구가 부족했기 때문에 그 숫자를 늘리려고 결혼은 한 명의 아테네 시민 여성과 하지만, 자식은 다른 여성에게서 낳아도 괜찮다는 의결을 했으며, 그래서 소크라테스도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101쪽)

 

 -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 철학자 열전』 

 

 

 

나아가 그는, 사람은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이미 고령인데도 리라를 배우기 시작했다. 또한 크세노폰도 <향연>에서 쓰고 있는 것처럼 그는 춤을 계속했는데, 그것은 몸을 좋은 상태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만 빼고, 그것 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했다.

 

또한 아직 제철이 되지 않은 과일을 비싼 값에 산 사람들은 막상 그 계절이 오면 실망하기 마련이라고도 했다.

 

또 언젠가 청년의 덕은 무엇이냐는 물음에 "'도를 지나치지 말라'는 것이다"라고 그는 대답했다.

 

또한 에우리피데스가 그의 극 속에서 덕에 관해,

 

이런 것은 떠나가는 대로 놔두는 것이 제일이다.

 

라고 한 것을 읽고, 소크라테스는 달아난 노예를 찾지 못할 때는 찾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덕은 그런 식으로 잃어버린 채로 놔두는 것은 우스꽝스런 일이라고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극장에서 나가바렸다.

 

결혼하는 것인 나은 일일까, 아니면 하지 않는 편이 나을까 그에게 물었을 때, "어떻게 하든 자네는 후회할 것이다"라고 그는 대답했다.

 

그가 부자를 식사에 초대했을 때, 크산티페가 대접할 음식이 없음을 부끄러워하고 있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걱정할 것 없어. 소양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것으로 봐줄 것이고, 하찮은 사람들이라면 그런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마음을 쓸 필요는 없으니까" 라고.

 

그는 또한 다른 사람들은 먹기 위해 살아가지만, 자신은 살기 위해 먹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아내가 "당신은 부당하게 죽음을 당하려 하고 있어요" 라고 하자, "그렇다면 당신은 내가 정당하게 죽음을 당하기를 바라고 있었던가 보군" 이라고 대답했다.(104∼105쪽)

 

 -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 철학자 열전』 

 

 

 

처음엔 잔뜩 잔소리를 퍼붓다가 나중에는 그에게 물을 끼얹기까지 했던 크산티페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 봐, 내 그동안 수없이 말하지 않았나. 크산티페가 징징 울기 시작하면 비를 내리게 한다고."

 

크산티페가 잔소리를 해대기 시작하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알키비아데스가 말한 것에 대해서는, "아니, 나는 이제 완전히 익숙해졌어. 도르래가 삐걱삐걱 계속해서 돌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

 

"그리고 자네도"라고 그는 말을 이었다. "거위가 꽥꽥 우는 것을 참고 있지 않은가." 그러자 알키비아데스가, "하지만 거위는 나에게 알과 병아리를 낳아줍니다" 라고 하자, "나에게도 크산티페는 자식을 낳아 주었다네" 라고 소크라테스는 되받았다.

 

그는 자주 기질이 억센 여자와 함께 사는 것은 마치 기수가 야생마와 지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기수들이 이들 말을 길들이고 나면 다른 말도 쉽게 탈 수 있는 것처럼 나도 그와 같아서 크산티페와 사노라면 다른 사람들과는 원만히 지낼 수 잇을 거야" 라고 말했던 것이다.

 

위의 내용 및 이와 비슷한 것이 소크라테스가 말하거나 행한 것들이다. 이는 퓨티아(무녀)가 (아폴론의 신탁을 묻는) 카이레폰에서

 

소크라테스야말로 모든 사람들 가운데 가장 현명한 사람

 

이라는 저 유명한 대답을 했을 때 증명된 사실이다.(106∼107쪽)

 

 -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 철학자 열전』 

 

 

한편, 플라톤의 『국가』는 유독 시인에 대한 가혹한 비판이 담긴 책으로도 유명한데, 특히 호메로스의 싯구들을 조목조목 끌어다 놓으면서, "우리는 호메로스와 다른 시인이 신들에 대해 무식하게 다음과 같은 실언을 하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되네." 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한다. 오죽하면 니체가 이런 플라톤을 두고 '유럽이 낳은 예술의 가장 강력한 적'이라고까지 표현했을까.

 

어쨌든 호메로스에 대한 불타는 경쟁심 때문에 플라톤은 한동안 시를 쓰기도 했고, 나중에는 비극까지도 썼다고 전해지는데, 그가 문학의 꿈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철학으로 돌아선 결정적인 계기는 물론 소크라테스 때문이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꿈속에서 새끼백조를 무릎에 안고 있었는데, 그것이 순식간에 깃이 생기고, 날카롭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지저귀면서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런 다음날 플라톤이 그에게 제자로 들어왔으므로 이 사람이야말로 꿈에서 보았던 그 새가 틀림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한편 알렉산드로스가 <철학자들의 계보>에서 쓰고 있는 것처럼 그는 처음엔 아카데메이아에서, 이어 코로노스산 부근의 정원에서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을 받들어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뒤에 비극을 놓고 상을 다투던 때에 디오니소스의 극장 앞에서 소크라테스에게 매료되어 시 작품을 불속에 던져 넣고 이렇게 말했다.

 

헤파이스토스여, 이리로 와주십시오.

플라톤은 지금 당신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 20살이었던 그는 그 뒤로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었다.(179쪽)

 

 -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 철학자 열전』 

 

 

『그리스 철학자 열전』을 쓴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손수 지은 플라톤의 비문은 다음과 같다.

 

포이보스(아폴론)가 헬라스땅에 플라톤을 태어나게 하지 않았더라면,

인간들의 영혼을 글자로서 어찌 치유할 수 있었으랴!

포이보스에 의해 태어난 아스클레피오스가 몸의 의사인 것과 같이,

플라톤, 영원히 죽지 않는 영혼의 의사일지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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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8-01-08 2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 볼 때 마다 읽고 싶음 책이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oren 2018-01-08 22:24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을 사 놓고 가끔씩 펼쳐보기만 했을 뿐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생각을 하지는 못했었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볼 때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말이 떠올라 괴로울 때도 있었고요.^^
* * *
내가 플라톤의 이름을 듣고도 끝내 그의 저서를 읽지 않을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플라톤이 바로 우리 마을 사람인데도 내가 그를 한 번도 만나본 일이 없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이며, 그가 바로 옆집 사람인데도 그의 말을 들어보지 못하고 그 말의 예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런데 실상은 어떠한가? 플라톤의 《대화편》은 그의 영원불멸한 지혜를 담은 책이며 바로 옆 선반에 놓여 있는데도 나는 그 책을 거의 들추지 않는다. - 『월든』
 

 

(밑줄긋기)

 

"어떤가?" 하고 내가 물었네. "어떤 사람이 모르는 것을 아는 체하며 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아는 체하며 말하는 것은 옳지 않겠지요. 하지만 자기 생각을 어디까지나 하나의 의견으로 말하려 한다면, 그것은 옳겠지요." 하고 그가 말했네.

 

"어떤가?" 하고 내가 말했네. "지식이 결여된 의견이란 모두 추악하다는 것을 자네는 깨닫지 못했는가? 그중 아주 훌륭한 것들조차 눈이 멀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느냐는 말일세. 아니면 자네는 지성이 결여되어 있으면서도 어떤 사물에 대해 올바른 의견을 갖는 사람들이란 실수하지 않고 길을 걸어가는 장님들과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무 차이도 없다고 생각해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렇다면 자네는 다른 사람들한테서 밝고 아름다운 것을 들을 수 있는데도 추악하고 눈멀고 등이 굽은 것들을 보고 싶다는 것인가?"(371∼372쪽)

 

 - 플라톤, 『국가』, <제6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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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철학적 품성들

 

"철학적 품성들은 철학에 가장 어울리는 배필인데도, 철학은 그들에게 이렇게 버림받고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채 홀로 남게 되네. 그 결과 그들은 그들대로 자신들에게 맞지도 않고 건실하지도 않은 생활을 하는가 하면, 친척 없는 고아나 다름없어진 철학은 철학대로 어울리지도 않는 엉뚱한 자들을 만나 욕을 보게 되고, 자네 말처럼 철학 비방자들이 철학에 퍼붓는다는 그런 비난을 받게 된다네. 철학과 함께하는 자들은 더러는 무용지물이고, 대부분은 갖은 고생을 겪어 마땅한 자들이라는 비난 말일세."

 

"아닌 게 아니라 철학 비방자들은 대개 그렇게 말하지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세. 그도 그럴 것이, 보잘것없는 인간들은 아름다운 이름들과 장식으로 가득한 이곳이 비어 있는 것을 보면 마치 감옥에서 신전으로 도주하는 죄수들처럼, 자기들의 전문 기술을 버리고는 얼씨구나 잘됐다 하고 철학으로 뛰어들기 때문이네. 그런데 이들은 자기들의 전문 기술에서는 가장 유능한 자들이네. 그들이 그러는 이유는 철학이 비록 이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해도 다른 전문 기술에 견주면 아직도 높은 명망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네. 그래서 품성이 불완전할뿐더러 마치 몸이 기술과 직업으로 망가친 것처럼 그런 기술이 지니게 마련인 천한 성격 때문에 혼까지 불구가 된 수많은 사람들을 이 명망이 유인하는 것이라네. 그게 당연하지 않은가?"

 

"물론 당연하지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이들은 방금 감옥에서 풀려나와 목욕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신랑처럼 차려입고는, 주인 딸이 고아가 된 것을 기화로 그녀와 결혼하려고 하는 돈 많은 작은 몸집의 대머리 땜장이와 비슷해 보이는데, 자네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무 차이도 없어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런 부모한테서는 어떤 자식들이 태어날 것 같은가? 서자나 볼품없는 자식들이 태어나지 않을까?"

 

"당연하지요."

 

"어떤가? 교육에 어울리지도 않는 자들이 교육에 접근하여 어울리지 않게 결합한다면, 어떤 사상과 의견을 낳을까? 그들은 진실로 궤변이라 불리어 마땅한 것을 낳고, 순수한 것이나 참다운 지혜를 내포하는 것은 아무것도 낳지 못하겠지?"

 

"전적으로 동의해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아데이만토스, 그렇다면 철학과 결합하기에 적합한 사람들 가운데 극소수만이 남았네. 그것은 마음이 고상한 데다 훌륭한 교육을 받은 성격이 국외로 추방당한 결과 그를 타락시키려는 자들이 없었기에 타고난 품성 그대로 철학에 머무른 경우이거나, 또는 위대한 혼의 소유자가 작은 나라에서 태어나 그 나라의 국사를 무시하고 깔보는 경우일 것이네. …… 나처럼 신의 암시를 받은 경우는 거론할 필요가 없을 걸세. 나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는 신의 암시를 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이들 소수의 일원이 된 사람은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재산이 얼마나 감미롭고 축복받은 것인지도 맛보았겠지만, 대중의 광기도 충분히 보아왔을 것이네. 그는 또한 건전한 그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 정치가나, 자기와 함께 싸우며 자기를 지켜줄 수 있는 투사는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네. 오히려 그는 야수들의 무리 사이에 떨어져 함께 불의를 행하려고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모두가 광포한 가운데 혼자서 이에 항거할 수도 없는 사람처럼, 친구들에게 뭔가 도움을 주기도 전에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쓸모없는 인간으로 최후를 맞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네. 이 모든 점을 심사숙고한 끝에 그는 조용히 자기 일에만 전념하게 될 것이네. 그리고 폭풍이 몰아치는 겨울날 먼지나 폭우를 피해 담벼락 밑에 서 있는 사람처럼 남들이 도리에 어긋나는 생활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면서도, 자기만 부정과 불경행위에 오염되지 않고 이 세상을 살다가 아름다운 희망을 품고 편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할 것이네."

 

"하지만 그가 가장 작은 일을 해놓고 세상을 떠난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내가 말했네. "하지만 그는 자기에게 맞는 정체를 만나지 못했으니 가장 큰일을 해놓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네. 그는 자기에게 맞는 정체에서는 스스로도 더 성장하여 자신도 구하고 공동체도 구하게 될 테니 말일세. 이상으로 우리는 어째서 철학이 그런 비방을 듣게 되었으며, 어째서 그것이 부당한지 충분히 논의한 것 같네."(350∼354쪽)

 

 - 플라톤, 『국가』, <제5권>

 

 

 

 * * *


 

선생님께서는 참 멀리도 내다보시는군요

 

"그게 어떤 부분인가요?"

 

"나라가 망하지 않으려면 어떤 방법으로 철학을 다루어야 하느냐는 문제일세. 무슨 일이든 큰일에는 위험이 따르게 마련이고, 사람들 말마따나, 아름다운 것은 진실로 어렵기 때문일세."

 

"그렇지만 증명이 완결되려면 그 문제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텐데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나를 방해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의지의 결여가 아니라 능력의 부족일세. 자네는 내 열성을 직접 보게 될 것이네. 자, 자네는 내가 얼마나 대담하게 거리낌 없이 말하는지 눈여겨보게. 나는 국가가 오늘날과는 정반대되는 방법으로 철학을 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네."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래서 내가 말했네. "오늘날 철학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에 불과하네. 이들은 소년시절과 가사를 볼보고 돈벌이를 시작하는 시기 사이에 철학의 가장 어려운 부분에 다가가다가 철학에서 떨어져 나가는데, 바로 이들이 철학의 대가(大家)로 간주되고 있네. 그런데 내가 말하는 철학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란 논리적 논의를 뜻하네. 이들은 훗날 철학에 관여하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토론을 들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에 응하면 그것을 무슨 대단한 일로 여긴다네. 이들이 생각하기에 철학이란 여가가 날 때 틈틈이 하는 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일세. 그리고 이들은 노년에 이르면 소수를 제외하고는 불꽃이 꺼져버리는데, 다시 점화할 수 없다는 점에서 헤라클레이토스의 태양보다 더 심하게 꺼져버린다네."

 

"그럼 어떻게 대해야 하나요?" 하고 그가 물었네.

 

"그와 정반대로 대해야지. 소년시절이나 청년시절에는 그 나이에 걸맞은 교양이나 지혜에 관여해야겠지. 아직도 성인으로 성장하고 있는 이 시기에는 철학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몸을 세심하게 돌보지 않으면 안 되네. 그러다가 나이 들어 혼이 성숙해지기 시작하면 혼의 단련을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되네. 그러나 기력이 쇠하여 정치적 봉사와 병역 의무를 면제받게 되면 그때는 철학의 풀밭에서 마음껏 풀을 뜯으며, 여가 시간을 제외하고는 철학 이외의 다른 일에 몰두해서는 안 되네. 그래야만 행복한 삶을 살고, 죽은 뒤에는 저승에 가서 자기가 살아온 삶에 합당한 운명을 부여받게 될 걸세."

 

그러자 아데이만토스가 말했네. "소크라테스 선생님, 내가 보기에 선생님께서는 과연 열성적으로 말씀하시는군요. 하지만 트라쉬마코스를 비롯하여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선생님보다 더 열성적으로 선생님 말씀을 반박하며 믿으려 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내가 말했네. "여보게, 자네는 나와 트라쉬마코스 사이를 이간하지 말게나. 우리는 방금 친구가 되지 않았는가. 전에도 서로 적이었던 적은 없지만 말일세. 나는 트라쉬마코스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아니면 그들이 내세(來世)에 이런 토론을 하게 될 때 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무엇인가를 해주기 전에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네."

 

"선생님께서는 참 멀리도 내다보시는군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영원(永遠)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지. 그러나 사람들이 대부분 내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닐세. 그 이유는 지금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 실현된 것을 그들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네."(355∼357쪽)

 

 - 플라톤, 『국가』, <제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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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그러니 우리가 규정한 바 있는 철학적 품성은 적절한 교육을 받으면 필연적으로 성장하여 온갖 미덕에 도달하겠지만, 적절하지 않은 곳에 씨 뿌려지거나 심어져 양육되면 신의 도움이 없는 한 정반대되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아니면 자네도 대중처럼 젊은이들 가운데 일부가 소피스트들에 의해 타락한다고 생각하는가? 소피스트들이 사교육(私敎育)을 통해 젊은이들을 언급할 가치가 있을 만큼 타락시킬 수 있을까? 사실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최악의 소피스트들이 아닐까? 그들이야말로 완벽하게 교육시켜 남녀노소를 자기들이 원하는 인간으로 만드는 것 아닐까?"

 

"그들이 언제 그렇게 한다는 거지요?" 하고 그가 물었네.

 

그래서 내가 대답했네. "그들이 민회, 법정, 극장, 군영 등 다중이 모인 공개석상에 함께 모여 앉아 떠들썩하게 고함을 지르고 박수를 치며 남의 언행을 침소봉대하여 비난하기도 하고 칭찬하기도 할 때 그런다네. 더군다나 비난과 칭찬의 소음은 바위들과 그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 되울려 갑절로 크게 들리네. 이럴 경우 자네는 젊은이가 사람들 말마따나 심정이 어떨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사교육이 이에 저항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것은 이런 비난과 칭찬의 홍수에 휩쓸려 그 흐름이 이끄는 대로 떠내려가지 않을까? 그리하여 그는 그들이 아름답다고 하면 덩달아 아름답다 하고 추하다고 하면 덩달아 추하다 하게 되어, 결국 그들과 똑같은 것을 추구하며 똑같은 인간이 되지 않을까?"

 

"소크라테스 선생님, 당연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겠지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강제력 중에서 가장 중대한 것은 우리가 아직 말하지 않았네."

 

"그게 어떤 것인가요?" 하고 그가 물었네.

 

"이들 교육자들과 소피스트들이 말로 설득할 수 없을 때 행동을 통해 가하는 강제력 말일세. 누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을 때, 자네는 그들이 시민권을 박탈하거나 벌금형을 부과하거나 사형에 처한다는 것도 모르는가?"

 

"물론 알고 있지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렇다면 다른 소피스트나 어떤 개인적인 발언이 그런 압력에 맞서 싸워 이길 수 있을까?"

 

"아무도 싸워 이길 수 없을걸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물론 없겠지. 그리고 그런 시도를 하는 것 자체가 아주 바보 같은 짓이지. 여보게, 그들의 교육과 반대되는 교육을 받음으로써 미덕에 관해 그들과 다른 견해를 갖게 된 성격이란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한 적도 없으며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네. 여보게, 인간의 성격은 그렇다는 말일세. 신적인 성격은 사람들 말마따나 논외로 하세. 잘 알아두게. 이런 정체에서 살아남아 제대로 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신의 가호를 입어 살아남았다고 말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네."

 

"전적으로 동의해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렇다면 그에 더하여 자네는 이 점에도 동의해야 할 걸세" 하고 그가 말했네.

 

"어떤 점 말인가요?"

 

"대중은 돈을 받고 개인적으로 가르치는 자들을 소피스트라 부르며 자신들의 경쟁자로 여기지만, 이들 각자가 가르치는 것은 대중의 의견, 즉 대중이 집회 때 갖게 되는 의견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며, 이들이 지혜라고 부르는 것 역시 대중의 의견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 말일세. 그것은 마치 거대하고 힘센 짐승을 사육하는 사람의 경우와도 같네. 이런 사람은 그 짐승의 기질과 욕구를 잘 연구해서 그 짐승을 가까이할 수 있는 방법이라든가 다룰 수 있는 방법, 어떤 경우에 가장 난폭하고 어떤 경우에 가장 유순한지 그리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네. 또한 무엇 때문에 여러 가지 소리를 지르는지, 반대로 어떤 소리를 내면 유순해지고 어떤 소리를 내면 사나워지는지 알게 될 것이네. 그는 오랜 접촉을 거쳐 이런 것들을 모두 배운 뒤 그것을 지혜라 부르며 하나의 기술로 체계화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줄 것이네. 하지만 그는 그 짐승의 이러한 취향과 욕구들 가운데 어는 것이 아름답거나 추한지 또는 좋거나 나쁜지, 또는 올바르거나 불의한지 실제로는 알지도 못하면서 오직 거대한 짐승의 반응과 결부시켜 이런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네. 말하자면 그는 그 짐승이 좋아하는 것은 좋은 것이라 부르고, 그 짐승이 싫어하는 것은 나쁜 것이라 부르네. 그는 이에 대해 달리 설명하지도 못하면서 필요불가결한 것을 올바르고 아름답다고 일컫지만, 필요불가결한 것과 좋은 것의 본성이 실제로 얼마나 다른지는 관찰한 적도 없거니와 다른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일 수도 없네. 제우스에 맹세코, 교육자가 그런 사람이라면 참으로 이상한 교육자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나에게는 그렇게 생각되요"하고 그가 말했네.

 

"그런데 자네는 그림에서건 음악에서건 정치에서건 사방에서 모여든 잡다한 대중의 기질과 취향을 아는 것이 지혜라고 여기는 자가 있다면, 그가 이런 인간과 다소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사람이 대중과 가까이 지내면서 시(詩)나 다른 예술품이나 국가를 위한 봉사를 과시함으로써 필요 이상으로 대중을 주인으로 섬긴다면, 그는 이른바 디오메데스적인 필연성(주석)에 따라 대중이 칭찬하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에 하는 말일세. 한데 자네는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대중이 칭찬하는 것이야말로 진실로 좋고 아름답다고 칭찬하는 말을 듣고 가소롭지 않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없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하고 그가 말했네.(343∼347쪽)

 

(주석)

Diomedeia ananke. 이 말의 유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런데 주석학자들에 따르면, 그리스 장수 디오메데스가 오뒷세우스와 함께 트로이아 성에 안치되어 있던 아테나 여신의 신상(palladion)을 훔쳐 가지고 돌아오던 도중, 공을 독차지하기 위해 자기를 죽이려던 오뒷세우스의 양팔을 묶은 다음 칼로 그의 등을 두드리며 군영으로 데려갔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 플라톤, 『국가』, <제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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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단위는 단순한 약속일 뿐이야. 시간에는 눈금이 없지. 세기가 바뀔 때 총을 쏜다거나 종을 울린다든지 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뿐이야.

 - 토마스 만, 『마의 산』중에서

 

 * * *

 

연말이다. 다시는 못 볼 2017년의 끄트머리에 바싹 다가섰지만 이 순간들을 음미하는 사람들의 감흥만큼은 조금의 공통점도 없을 듯하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시간이 주어지지만 그걸 쓰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 다르게 쓰니까 말이다.

 

사실 '시간'이란 '공간'처럼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시간은 흐른다고 생각하지만 '흐르는 시간'을 직접 눈으로 봤던 사람은 이제까지 아무도 없었다. 단지 시간이 흐른다고 느낄 뿐이다. 그래서 토마스 만도 소설 속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이다.

 

우리는 시간을, 순전히 시간 그 자체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정말이지, 아니다, 그것은 말도 안 되는 바보 같은 짓이다. '시간이 지나갔고, 시간이 경과했으며, 시간이 흘러갔다.' 건전한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를 결코 이야기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똑같은 음이나 화음을 한 시간 동안 미친 듯이 계속 울려 대고는 이를 음악이라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 토마스 만, 『마의 산』 중에서

 

그런데 아주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위대하다고 말했다. 아담 스미스는 '저 위대한 판관'이라고까지 극찬할 정도였다. 시간이 결국 모든 걸 밝혀주니까. 그 누구도 해결하지 못하는 수많은 어려운 일들을 아주 능숙하게 처리하는 일꾼 또한 시간이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모든 게 잊혀지니까.

 

그렇지만 인간은 잊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쓰기도 한다. 오늘날과 같은 극히 복잡다단한 삶을 사는 현대인에게만 '기록'이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절해고도에서 홀로 십수 년을 살았던 로빈슨 크루소도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애썼다. 무인도에서는 조금만 방심하더라도 날짜나 연도조차 잊기 쉬웠으니까. 자신의 나이는 말할 것도 없었다.

 

섬에 온 지 열흘 내지 열이틀이 지났을 때 책과 펜, 잉크가 없으니 날짜 계산을 못하고 심지어 평일과 안식일도 구분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일을 방지하려고 나이프로 커다란 나무 기둥에 대문자로 도착한 날짜를 새겨 넣었다. 그리고 그 기둥을 십자가 모양으로 만들어서 내가 처음 착륙했던 해변에 세워 놓았다. 나는 거기에 <1659년 9월 30일 처음 섬에 도착하다>라고 새겼다. 그리고 이 네모난 기둥 양 옆면에 매일 칼로 금을 새겨 날짜를 기록했다. 일주일때 되는 날은 다른 날보다 좀 더 길게 금을 새겼고, 매달 초하루도 그날만큼 길게 새겼다.

 

 -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중에서

 

 

월든 호숫가에서 몇 년 동안 홀로 살았던 헨리 데이빗 소로우도 다니엘 디포를 열심히 읽었다. 로빈슨 크로소야말로 '외딴 생활'을 막 시작하려는 그에게는 온갖 훌륭한 지침을 제공해줄 '인생 선배'였기 때문이었다.

 

 

어떤 날씨에나, 낮이나 밤 어떤 시간에나 나는 시간의 홈을 활용하고 그 순간을 내 지팡이86에도 표시해두고 싶었다. 달리 말하면, 과거와 미래라는 두 영원이 만나는 점,87 요컨대 현재의 순간에 서고 싶었고, 현재라는 출발선에 발끝을 대고 서고 싶었다. (52쪽)


주석

86. 소로는 측량하기 위해 눈금이 새겨진 막대를 갖고 다녔지만, 여기에서는 대니얼 디포(Daniel Defoe, 1660-1731)의 로빈슨 크루소를 빗댄 표현이다. 크루소는 나무 기둥에 눈금을 새겨 시간을 기록했다. 소로는 일기에서도 "로빈슨 크루소가 막대기에 매일 표식을 했듯이, 우리는 매일 우리의 품성에 눈금을 매겨야 한다"(일기 1:220)라고 썼다. 소로는 자급자족하며 독립된 삶을 살았던 크루소에게 매력을 느꼈던지 「커타딘 산」과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일주일」에서 거듭 크루소에 대해 언급했다.

87. 토머스 모어(Thomas Moore, 1779-1852)가 동양의 화려한 분위기를 배경으로 삼아 쓴 이야기체 시 「랄라 루크」에서 "과거와 미래-두 영원! / 두 끝없는 바다 사이의 이 좁은 지협"을 빗댄 표현으로 여겨진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주석 달린 월든』 중에서

 

 

이처럼 '시간의 눈금'은 모두에게 중요하고 또 모든 걸 '구분'한다. 그러므로 해가 바뀌면 그저 '아라비아 숫자' 하나만 딸랑 바뀌지 않는다. 달력이나 다이어리만 새걸로 바뀌는 게 아니다. 모든 사람의 나이가 순식간에 다 바뀌고 심지어 책마저도 나이를 먹는다. 어느 한 순간에 말이다.

 

유독 이맘때 알라딘이 고맙게 느껴지는 점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독서생활에 필요한 눈금들'을 비교적 정확하게 알려준다는 점이다. 해가 바뀌면 바뀌는 대로 딱딱 '통계'까지 내어 준다. 심지어는 내가 해마다 작성한 글자의 숫자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준다. 그 글자를 소설책으로 환산하면 몇 권의 책이 되는지까지도.

 

오래도록 알라딘을 꾸준히 이용해 온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자신들의 과거를 되돌아볼 만하지 싶다. 이토록 친절한 알라딘이 아니라면 과연 어디서 이런 정직한 통계를 구할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연말모임도 다 끝나고 모처럼 한가하니 이런  그래프도 그려보게 된다. 모든 통계들이 들쭉날쭉이지만 마지막 통계 하나만큼은 '우상향 추세'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어서 큰 위안이다. 미우나 고우나 제 글에 대해 기꺼이 '좋아요'를 눌러주신 모든 분들께 크나큰 행운이 함께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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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라딘 통계 2018
    from Value Investing 2018-12-20 01:00 
    시간 단위는 단순한 약속일 뿐이야. 시간에는 눈금이 없지. 세기가 바뀔 때 총을 쏜다거나 종을 울린다든지 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뿐이야. - 토마스 만, 『마의 산』중에서 * * * 올해 연말은 기분이 영 꿀꿀하다. 그렇다고 올해 빼고는 매년 연말마다 기분이 뿌듯했던 것도 아니다. 올핸 경제도 연말로 올수록 점점 더 내려앉는 듯한 느낌인 데다가, 기분 좋은 뉴스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구경조차 하기 어렵다. 오늘은 괜히(?) 알라딘에 들어 왔다가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