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통 같은 독서

 

 

자신만만하고 못하고는 스스로가 처한 환경 나름인 것이다.

 - 구스타프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중에서

 

 * * *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가 같은 날 죽었다는 건 흥미로운 문학적 우연이다. 귀스타브 플로베르(1821∼1880)와 생몰연대가 가장 가까운 작가가 도스토예프스끼(1821∼1881)라는 사실도 '흥미'를 가지고 살피면 약간은 흥미롭다. 그러면 이 두 사람과 생몰연대가 가장 가까운 대문호는 누구였을까? 아마도 톨스토이(1828∼1910)?

 

플로베르와 톨스토이는 '간통 문학'의 대표작을 쓴 작가라는 점에서도 남다른 문학적 연관성을 갖는 듯하다. 비록 잘은 모르겠지만 숱한 문학 전공자들이『마담 보바리』(1857년)와 『안나 까레니나』(1873년)를 두고 숱한 비교 분석을 쏟아냈으리라는 점은 누구라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 싶다.(『안나 까레니나』를 '영화'로만 봤지 여태까지 '책'으로는 읽지 않은 나도 태연스레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혹시 톨스토이가 쓴『전쟁과 평화』(1869년) 속에서도『마담 보바리』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톨스토이가 워낙 플로베르의 작품을 좋아했다고 하니 그런 궁금증을 품는 사람도 아예 없지는 않으리라. 작가들 사이에 일어났던 '내밀한 교감'을 어찌 일반 독자가 시시콜콜 다 알아챌 수 있으랴만 그래도 『마담 보바리』의 다음 대목을 읽은 나로서는 두 사람 사이의 '간통 현장'을 목격한 듯한 짜릿한 흥분을 감추기 어려웠다.


과연 톨스토이는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에 나오는 그 유명한 '마차 장면'에 영향을 받아서 『전쟁과 평화』의 일부를 썼을까.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를 구상한 것은 1856년이었다. 플로베르가 무려 5년 동안에 걸쳐 '납덩이같은 펜과의 처절한 싸움' 끝에 마침내 『마담 보바리』의 탈고를 끝낸 게 그해 봄이었다. 톨스토이는『전쟁과 평화』의 <제1부>를 완성하는 데만 무려 6년이 걸렸다. 그 작품을 쓰기 위해 그가 모은 자료들만 하더라도 '도서관을 가득 채울 정도'였다고 한다. 그 일단을 보여주는 편지가 그 사정을 엿보게 해 준다.

 

"나는 우수(憂愁)에 휩싸여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오직 괴로움만을 거듭하고 있을 뿐입니다. 모내기를 하기 위해 거친 땅을 깊이 갈아엎는 이 예비적 노작이 얼마나 고된 작업인지 당신으로선 상상하기도 힘들 것입니다. 이제부터 착수하려는 훌륭한 대작 가운데 나오는 여러 사람들에게 일어날 모든 사건을 구상하고 고쳐 생각하고, 그러한 여러 인물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몇백만의 관계를 고려하고, 그 가운데서 백만분의 일을 골라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내가 지금 그런 일에 착수하고 있는 것입니다."

 

 - A.A. 페뜨에게 보낸 편지(1864.011.1) 중에서

 

톨스토이가 『전쟁의 평화』를 쓰기 위해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책들 가운데 『마담 보바리』도 끼어 있었으리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만, 그가 골라낸 '백만분의 일' 가운데 하나가 과연 『마담 보바리』에 나오는 다음 대목이 아니었을까 싶은 나의 합리적인 의문까지도 의심의 여지가 없는 건 아니다. 어차피 최종 판단은 언제나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 * *

 

 

파리에서는 흔히 있는 일인 걸요

 

성당 앞 광장에는 어린애가 하나 놀고 있었다.

 

「마차 한 대만 불러다오!」

 

어린애는 카트르 방 거리로 총알처럼 뛰어갔다. 그러자 그들은 한동안 얼굴을 마주한 채 어색한 기분이 되어 서 있었다.

 

「아, ……레옹! ……. 정말 …… 몰라요 …… 어쩌면 좋아요 ……!」

 

그녀는 선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건 아주 못할 짓이에요, 알아요?」

 

「뭐가 어때서요?」하고 서기는 되물었다. 「파리에서는 흔히 있는 일인 걸요!」

 

그러자 이 한마디 말이 거역할 수 없는 논거인 양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다.(353∼354쪽)

 

 

뒤이어 마차가 나타나고, 레옹과 엠마는 그 유명한 '마차 안에서의 한낮의 질주'를 벌인다. 사실 방금 인용한 문장 보다는 곧이어 이어지는 장면이 훨씬 더 압권이다. 이왕에 내친 김이니 나도 그 유명한 대목까지 인용함으로써 내 글을 조금이라도 더 내달리게 만들고 싶다.

 

 

「가시더라도 북쪽 문으로 나가주세요!」하고 아직도 문간에 서 있던 성당지기가 그들에게 소리쳤다. 「부활, 최후의 심판, 낙원, 다윗왕, 그리고 지옥불 속의 저주받은 자들을 보실 수 있으니까요」

 

「나리, 어디로 모실깝쇼?」하고 마부가 물었다.

 

「아무데라도 좋아!」하고 레옹은 엠마를 마차 안에 밀어 넣으면서 말했다.(355쪽)

 

 * 강조한 부분은 번역문을 따랐다. 곧 있을 '엠마와 레옹의 마차 안에서의 정사(情事)'를 상징하는 단어들이다.

 

 

그리고 마차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후로도 오랫동안' 계속 달렸다. 마부가 멈출 때마다, 마차 안에서는 "계속 가요!" 라는 대답만 들려왔다. 마차가 세 번째로 멈추었을 때도 마부는 "그냥 가라니까! 라는 더 거센 목소리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마부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목마름과 피로와 근심으로 거의 울상이 되어' 마차를 몰았다. 이제 마차는 이쯤에서 세우자.

 

마지막으로 남은 건 내가 '두 작가와의 교감'을 의심하는 『전쟁과 평화』속 대목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니꼴라이는 '로스토프 노백작 집안'의 맏아들이자 순박한 다혈질의 청년이다. 그는 어릴 땐 집에서 함께 자란 사촌 누이동생 쏘냐를 좋아했지만, 군대에 입대하고 '도시 생활'을 겪고 나서는 차츰 '도회지 사람'으로 변모한다. 심지어 '유부녀'를 능란하게 유혹할 정도로 점점 더 까진(?) 모습을 보여준다. 이 점이 바로 '파리 물을 먹은 레옹'과 너무나도 닮았다. 레옹 또한 엠마를 처음 만났을 땐 순진하기 그지 없었으나 '파리 생활'을 겪은 뒤 3년 만에 나타난 모습에선 어느새 '선수'가 다 되어 있었던 것이다. 시골마을 용빌로 돌아가야 할 유부녀인 엠마를 한낮에 '마차'에 태울 생각을 할 정도로 말이다.

 

이쯤에서 톨스토이의 펜으로 그려진 '유부녀 유혹 장면'으로 넘어가 보자. 내가 '파리와 서울 사이'에서 뭔가 유사한 낌새를 발견했다면 그게 오로지 나만의 느낌일까, 나는 그게 너무나 궁금하다.

 

서울에서는 보통인데...

 

까쩨리나 뻬뜨로브나가 왈츠와 에꼬쎄즈를 타기 시작하고 댄스가 시작되자 니꼴라이는 그의 민첩한 동작으로 더욱더 이곳의 상류 사회를 매료시키고 말았다. 그는 독특하고 분방한 댄스로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니꼴라이 자신도 이날 밤의 자기 춤솜씨에 약간 놀랐다. 그는 모스크바에서는 이렇게 추어 본 일이 한 번도 없었고, 이와 같이 너무나 분방한 춤 태도는 버릇없는 악취미라고까지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모든 사람을 무엇인가 기발한 것으로, 서울에서는 보통인데 시골에 사는 자기들은 아직 모르고 있다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놀라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날 밤 밤새도록 니꼴라이는 현의 어느 관리의 아내이자 파란 눈의 살이 찐 귀여운 금발 미인에게 가장 마음이 끌리고 있었다. 남의 아내는 자기를 위해서 만들어져 있다는 신멋이 든 젊은이들의 순진한 신념으로, 니꼴라이는 이 부인으로부터 떠나지 않고 남편에 대해서도 마음을 터놓고, 그러면서도 속에 무엇인가 있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자기들, 즉 니꼴라이와 그 남편의 아내는 서로 마음이 잘 맞을 것이라는 것을 두 사람은 말로는 하지 않지만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러나 남편 쪽은 그러한 신념에는 동감이 가지 않는 듯, 애써 니꼴라이에게 언짢은 태도를 취하려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니꼴라이의 사람이 좋은 순진성에는 끝이 없었기 때문에, 때로는 남편은 저도 모르게 니꼴라이의 매우 들뜬 기분에 끌려들 뻔 하기도 했다. 그러나 파티가 끝날 무렵에 아내의 얼굴이 점점 빨갛게 상기되어 생기를 띠어 가자 남편의 얼굴은 더욱더 침울하고 창백해졌다. 그것은 마치 활기의 분량이 두 사람에게는 일정하고, 그것이 아내 쪽에서 증가함에 따라서 남편 쪽에서는 줄어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니꼴라이는 얼굴에 미소를 계속 띠고 안락의자에 약간 몸을 숙이고 앉아, 금발의 여인에게 몸을 가까이 하고 그녀에게 뮤즈네 비너스네 하며 겉치레의 말을 하고 있었다.

 

다리의 위치를 힘차게 바꾸기도 하고 향수 냄새를 사방에 풍기며 상대방 부인과, 자기 자신에게 꼭 맞는 승마 바지에 싸인 자기의 아름다운 다리 모양을 넋을 잃고 바라보며 니꼴라이는 금발의 여성에게, 자기는 이 보로네시에 있는 어느 여성을 유괴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분은 어떤 분이에요?"

 

"매력적이며 여신 같은 분입니다. 그분의 눈은(하고 니꼴라이는 상대 여성을 바라보았다) 파랗고, 입은 산호 같으며, 하얀 살결 ……" 그는 어깨를 보았다. "어깨나 가슴은 다이애나 여신입니다 ……."

 

남편이 두 사람한테로 다가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고 어두운 얼굴로 아내에게 물었다.

 

"아! 니끼따 이바노이치." 니꼴라이는 예의 바르게 일어나면서 말했다. 그리고 니끼따 이바노이치도 자기의 농담에 참가해 주기를 바라는 듯이, 그에게도 어떤 금발 미인을 납치하려는 계획을 들려주었다.(1293-1294쪽)

 

 -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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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7-20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투르게네프(1818~1883)는 플로베르보다 3년 일찍 태어나서 3년 늦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19세기 유럽 문단은 정말 ‘별들의 전쟁‘이었습니다. ^^

oren 2017-07-22 09:18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투르게네프는 플로베르보다 앞뒤로 3년씩 늘려 살았군요.^^
 
간통 같은 독서

 

헤럴드 블룸의 『교양인의 책 읽기How To Read and Why』는 책의 제목이 번역 과정에서 엉뚱하게 바뀐게 몹시 아쉽다. 이 책을 볼 때마다 그냥 원제 그대로 번역했더라면 훨씬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블룸의 '책 읽기에 대한 강의'는 내 판단으로는 수준이 꽤나 높다. 문학 전공자들에게 권장할 만한 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쨌든 나는 그 책을 먼저 읽고 나서 '셰익스피어'도 읽고, '윌리엄 포크너'도 읽었는데, 이렇게 거꾸로(?) 책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헤럴드 블룸의 책을 먼저 읽으면 마치 '작품 감상'에 앞서서 미리 예습을 하는 기분이 들어서 좋고, 작품을 읽고 나서 다시 헤럴드 블룸의 책을 펼치면 '복습'하는 기분마저 든다.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헤럴드 블룸의 책으로 '예습'을 하고 그 작품을 읽으니 훨씬 더 쉽고 재미있었고, 포크너의 책을 읽고 나서 다시 헤럴드 블룸의 책을 펼쳐 보니 '복습'하듯 명쾌하게 작품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윌리엄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에 대한 '헤럴드 블룸의 해설'은 나에게 '케케묵은 숙제' 하나를 새롭게 꺼내 놓도록 요구했다. 이제부터 그 얘기를 해 볼까 싶다.

 

우선, 윌리엄 포크너의 걸작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에 대한 '헤럴드 블룸의 해설' 도입부를 잠깐 살펴 보고 넘어 가자. 이 소설은 무엇보다도 '화자'가 계속 바뀐다는 점에서 형식부터 아주 독특하다. 소설의 등장인물이 바뀔 때마다 바로 그 사람이 '화자'가 되는 구조다.

 

20세기 미국 소설 중에서 가장 멋진 시작은 윌리엄 포크너가 쓴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가 아닌가 싶다. 59개의 내적 독백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에서 53개는 번드렌 가家 사람들의 독백이다. 번드렌 가는 가난하지만 자부심이 강한 백인 가족이다.

 

이들은 홍수와 불의 위험을 무릅쓰고 어머니의 관을 미시시피 주 제퍼슨에 있는 묘지로 옮기는 중이다. 할아버지 곁에 묻히기를 바라는 어머니 애디의 뜻을 위해서다.

 

도입부를 포함한 전체 중 19개 부분은 달 번드렌이 말하고 있는데, 그는 몽상가로 나중에는 광증의 경계를 넘어선다. 달은 사이가 좋지 않은 형 주얼과 함께 어머니가 죽어가는 집을 향해 달려간다.(305쪽)

 

 - 헤럴드 블룸, 『교양인의 책 읽기』

 

 

헤럴드 블룸의 해설 대로, 이 소설은 번드렌 가의 둘째 아들인 달이 이끌고 가는데, 소설의 막바지에 가면 마침내 달이 '사고'를 친다. 형이 손수 짠 관에 죽은 어머니를 안치한 채 마차에 싣고 시골길을 열흘 가까이 이동하는 동안에 관에서 악취가 나기 시작하자 '아버지와 5남매로 구성된 장례 일행'은 어딜 가나 문전박대를 당한다.  어느 날 밤, 냄새 때문에 어머니의 관은 숙소에서 멀리 떨어진 헛간으로 옮겨지는데, 한밤중에 헛간에서 불길이 치솟는다. 몹시 예민한 성격을 지닌 달이 '시신 운구 여행'을 견디다 못해 광인(狂人)처럼 느닷없이 헛간에 불을 지른 것이다. 누이동생 듀이 델의 '고자질'로 '방화범'으로 지목된 달은 경찰에 붙잡혔고, 이제 기차에 실려 '감옥'으로 호송되는 중이다.
 

그들은 자리 두 개를 합쳐 달을 앉혔다. 창문 옆에 앉아서 달은 실컷 웃었다. 한 사람은 그의 옆 자리에 앉고, 또 한 사람은 그 앞에 앉아 거꾸로 가고 있었다. 미시시피의 돈은 각각 앞면과 뒷면이 붙어 근친상간을 하고. 그 돈으로 그들은 기차를 타고 있다. 5센트짜리 동전은 한 면에 여자가 있고 다른 면엔 물소가 새겨져 있다. 얼굴만 두 개고 뒤통수가 없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달은 전쟁 중 프랑스에서 얻은 쌍망원경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그 안에는 여자와 돼지가 새겨져 있었는데, 얼굴은 없고 모두 뒤통수만 있었다. 그게 뭔지 나는 알고 있다. "달, 그래서 웃고 있는 건가?"

 

"맞아 맞아 맞아 맞아 ……."

 

 - 윌리엄 포크너,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이 대목에 대한 헤럴드 블룸의 해설이 없었다면 우리들의 '작품 이해'는 상당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의 해설이 그만큼 '놀라운 깊이'를 지녔기 때문이다.

 

분열된 달은 자기 자신과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보는 자'다. 즉 "근친상간인 주(州)의 화폐"다. 이 구절은 이아고의 이성애異性愛에 대한 라블레의 익살로 보인다. 두 개의 등을 가진 한 마리의 야수라는 생각은 '주의 화폐'를 근친상간으로 보는 점에서 셰익스피어의 『잣대엔 잣대로』와 비슷하다.(312쪽)

 

 - 헤럴드 블룸, 『교양인의 책 읽기』

 

 

'미시시피의 돈'에서 윌리엄 포크너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오셀로』에 나오는 '이아고의 말'과 '근친상간'을 동시에 떠올린다. 헤럴드 블룸은 바로 그 점을 지적한 것이다. 나는 블룸의 해설에 등장하는 '두 개의 등을 가진 야수'라는 표현을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서 맨처음으로 만났었다. 조이스 역시 그 표현을 셰익스피어의 작품 『오셀로』에서 빌려온 것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제임스 조이스가 세익스피어의 그 표현에 얼마나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는 작품 속에서 '거듭 반복되는 인용'만 봐도 충분히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어쨌든 나는 이번 기회에 '두 개의 등을 가진 야수' 이야기를 꺼낼 기회를 꽉 붙잡게 되었다. 여기서부터는 잠시 무대를 '미시시피 강'에서부터 아일랜드의 '더블린'으로 옮길 필요가 있다. 여기까지 나를 따라온 독자들이라면 이제부터 인용하는『율리시스』의 소설 내용까지 굳이 자세히 이해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쯤은 충분히 눈치채고 있으리라. 우리는 그저『율리시스』의 주석에 딸린 내용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약간 벅차다.

 

ㅡ 내 생각으로는 내가 여태껏 내 일생에서 들은 가장 연마된 문장들 가운데 하나가 부쉬의 입술에서 떨어졌지. 그것은 저 형제 살해사건. 덧문즈의 암살 사건이었어. 부쉬가 그를 변호했지.

 

그리하여 나의 귓구멍에 부어 넣었노라.157)

 

 

그런데 어떻게 그가 그걸 알아냈던가? 그는 잠 도중에 죽었지. 아니면 다른 이야기, 두개의 등을 가진 야수(野獸)?158)

 

ㅡ 그게 무엇이었는데? 교수가 물었다. (114∼115쪽)

 

주석

 

157) 유령이 햄릿 왕자에게 자신이 클로디어스에 의해 암살당한 방법을 알리는 구절(『햄릿』1막 5장 59∼63)

 

158) 그런데 어떻게 …… 죽었는데 ㅡ 유령은, 죽은 다음에 자신을 죽인 방법이 폭로되어지지 않는 한 그 방법을 알 수 없다는 것. 다른 얘기는 …… 야수를 ㅡ 유령은 왕자에게, 클로디어스는 '간통의 야수'라 말하고 왕비는 '미덕을 가장한 자'라 말함.(『햄릿』1막 5장 42∼46). 이는 스티븐에게, 숙부와 어머니는 부왕의 죽음 전에 간통을 범함으로써 이아고의 말대로 '두 개의 등을 가진 야수'(『오셀로』1막 1장 117∼118)라는 사실을 암시해 줌. 그러나 이 두 가지 사실을 죽은 부왕이 어떻게 알 수 있었느냐가 문제로 남음.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제7장 신문사(아이올러스)> 중에서

 

 * * *

 

모두들 듣는다. 그리고 그들의 귀의 현관에 나는 부어 넣는다.

 

ㅡ 영혼이 이전에 이미 치명적인 상처를 받았소. 독(毒)이 잠자는 귀의 현관에 부어졌던 거요. 그러나 그들의 창조주가 다가올 생(生)의 저 지식을 그들의 영혼에 부여하지 않는 한 잠 속에 죽음을 당한 자들은 자신들의 소멸의 방식을 알 수 없는 거요.286) 독살과 그것을 재촉했던 두 개의 등을 가진 야수(野獸)를 햄릿 왕의 유령은 그가 자신의 창조주에 의해 지식을 부여받지 않는 한 알 수 없었을 거요.287)  바로 그것이 언어(그의 말라빠진 보기 흉한 영어)가 항상 다른 데로 이탈하고, 후퇴하는 이유지요. 강탈자며 강탈당하는 자로서, 그가 의지(意志)하려 했거나 의지하려하지 않았던 것이, 루크리스의 푸른 정맥으로 둘러싸인 상아(象牙) 같은 유방.289)에서부터 다섯 끗 점 사마귀 있는, 이모겐의 벌거벗은, 젖가슴에까지 자신과 동행하지요. (이하 생략)

 (161∼162쪽)

 

주석

 

286) 『맥베스』, 1막 7장 72행

287) 성교(性交)를 암시함(『오셀로』, 1막 1장 118행)

289) 셰익스피어 작 『루크리스의 강간』, 4행∼7행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제9장 국립도서관(스킬라와 카립디스)> 중에서


 * * *

 

 

스티븐

 

(성냥을 눈 가까이 가져간다) 살쾡이 눈이야. 안경을 사야겠어. 어제 그걸 깼지. 16년 전에. 거리(距離). 눈은 모든 걸 평평하게 보지. (그는 성냥을 멀리 끌고 간다. 불이 꺼진다.) 두뇌는 생각하도다. 가까이: 멀리. 가시적인 것의 불가피한 양상. (그는 신비스럽게 상을 찌푸린다) 흠. 스핑크스다. 한밤중에 두 개의 등을 지닌 짐승이군.482)  시집을 가다니.(456쪽)

 

주석

 

482) 『오셀로』, 1막 1장 117∼118행에서 이아고가 한 말 "저는 말입죠. 따님과 무어놈이 지금 잔등이 둘 달린 짐승을 연출하고 있는 ……" 밤의 여인 조지너 존슨은 스티븐에게 불성실함으로써 두 개의 등을 가진 야수를 연출하는 셈임. 또한 『햄릿』에서도 부왕 햄릿이 죽기 전에 클로디어스가 왕비와 간음을 행함으로써 '두 개의 등을 가진 야수'가 됨.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제15장 밤의 거리(키르케)> 중에서


 

제임스 조이스는『율리시스』에서 『오셀로』를 (내가 세어 본 바로는) '아홉 번' 인용했는데, 그 가운데 무려 '세 번'이 이아고가 말한 '두 개의 등을 가진 야수'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에서 읽는『오셀로』에서는 '두 개의 등을 가진 야수'를 좀처럼 만날 수 없다. 심지어 (물론 내가 아는 좁은 범위 내에서만 말하는 거지만) '그와 비슷한 번역' 조차 구경하기 힘든 실정이다. 이렇듯 '원래의 문장이 지닌 강렬한 이미지'를 다 내다버리고 밋밋하기 짝이 없는 문장으로 번역함으로써 독자들은 '셰익스피어 언어의 놀라운 힘'을 결국 놓치고 마는 게 아닐까.

 

내가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에 나오는 한 대목을 두고 이토록 자세하면서도 복잡하게 인용문들을 잔뜩 늘어놓으면서 이야기하는 것도 다 이아고가 말한 그 유명한 대사 때문이다. 제임스 조이스와 윌리엄 포크너와 헤럴드 블룸이 모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목했던 셰익스피어의 그 놀라운 표현을 왜 우리들은 여태 모를 수밖에 없었던가. 그건 바로 '번역' 때문이었다! 이 문제야말로 내가 '두 개의 등이 달린 야수'를 만난 이후 오랫동안 품어 왔던 '진짜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우연히 집어든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이 마침내 그 실마리를 풀어보도록 내게 요청해 온 셈이었다.(헤럴드 블룸이 슬쩍 언급한 『잣대엔 잣대로』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생략했다. 이쯤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일물일가의 법칙도 있잖은가. 잣대엔 잣대로.)

 

마지막으로 덧붙일 건 내가 읽은『오셀로』에 나오는 이아고의 밋밋하기 짝이 없는 대사다.

 

    브라반티오

입버릇 더러운 넌 누구냐?

 

         이아고

어르신, 전 당신 딸과 무어인이 지금 배를 맞추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온 사람입니다.

 

    브라반티오

네놈은 악당이다!

 

         이아고

당신은 의원입죠!

 

- 최종철 번역, 『오셀로』, <1막 1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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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7-07-04 15: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귓구멍에 부어 넣는다면 바로 햄릿이 떠오르는데, 두 개의 등을 가진 야수는 처음 봅니다. 오셀로를 제대로 안 읽었나.. 했더니 오렌님께서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다 해주시니 책을 뒤지지는 않겠지만 아쉽습니다. 멋진 표현인데..

oren 2017-07-04 15:39   좋아요 1 | URL
예전에 읽은 어떤 책에서 본 ‘번역 후기‘도 생각납니다. 대학에 다닐 때 영문학 수업 시간엔 세익스피어의 비극『오셀로』4막 1장에 나오는 대사 ˝Alas, poor caitiff!(이 한심한 화상아!)˝의 뜻을 잘 몰랐는데, 나중에서야 그 말의 깊은 뜻을 알게 되었다고요. 그런데 제가 찾아본 그 어떤『오셀로』에서도 ‘이 한심한 화상아!‘라는 번역은 찾질 못하겠더군요.

겨울호랑이 2017-07-04 1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학의 표현은 역사를 가지고 있군요. 작품 자체의 의미도 표현도 중요하지만, 다른 작품과의 연계성까지 고려해야 온전한 작품 감상이 이 된다는 것을 oren님 덕분에 깨닫게 됩니다.^^:

oren 2017-07-04 16:57   좋아요 1 | URL
제 생각으로는, ‘텍스트 간의 관련성(intertextuality)‘을 극대화한 작품이 아마도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아닐까 싶어요. 작가가 일부러 숱한 ‘미로‘와 ‘건너 뛰기 어려운 협곡‘들도 만들어 놓은 듯하고요. 그 때문에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그 작품을 ‘해석‘하느라 기를 쓰고 달려들고 있기도 하고요. 천병희 선생님이 번역한 책들도 ‘주석‘이 많기로 유명한데, 작품을 쓴 옛날 사람들이 미리 ‘텍스트 간의 관련성‘을 두루 염두에 두고 썼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 * *
베르길리우스 시의 묘미를 느끼려면 호메로스의 시를 알아야 하듯,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도 그의 선배 시인들의 시를 알고 있으면 그 깊은 맛을 구석구석 느낄 수 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를 비롯한 그리스 라틴문학의 읽는 재미를 극대화하려면 텍스트 간의 관련성(intertextuality)을 파악할 것을 권한다. 앞서 말했듯이 네스토르는 젊은 나이에 칼뤼돈의 멧돼지 사냥에 참가하지만 멧돼지가 덤벼들자 당장 이를 피해 마치 장대높이뛰기 하듯 창자루를 짚고 나무 위로 도망치는데(8권 260∼546행 참조), 이 장면은 그가 『일리아스 』에서 그리스 장수들의 회의석상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자기는 젊었을 때 아무리 강한 적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다며 다른 장수들을 나무라는 장면들을 알고 있어야만 더 재미있게 읽히는 것이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옮긴이 해제> 중에서
 


(밑줄긋기)


여자들의 삶이 힘겹기는 하다. 종종 남자들이 …… 저지른 죄에 대한 변명이 있다면 그것은 남자 탓이지. 사람이 한평생 사는 일이 만만하지가 않다. 그렇지 않다면 선량한 사람이 죽어야 할 이유가 없겠지.

 

"이봐 아가씨, 그런 생각일랑 지워버려요. 그것은 어쨌거나 하느님이 주신 것이오. 비록 악마를 통해서일지라도 말이오. 하느님의 뜻이 생명을 없애버리는 것이라면 그렇게 될 것이오. 레이프에게 돌아가서 그가 준 10달러로 결혼이나 하시요."

 

"약국에 가면 살 수 있을 거라고 레이프가 말했거든요."

 

그녀가 말했다.

 

"그렇다면 가서 구해 봐요. 그러나 이곳에서는 살 수 없소."

 

손에는 보따리를 들고, 신발로 바닥을 쓸면서 그녀는 밖으로 나갔다. 출입문에서 그녀는 다시 멈칫거렸다. 창문을 통해 거리로 걸어 나가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소녀에 대한 나머지 이야기는 앨버트를 통해 들었다. 마차 한 대가 그러미트의 철물점 앞에 멈춰 섰는데, 여자들은 모두들 손수건으로 코를 틀어막았고, 냄새에 그리 민감하지 않은 남자들과 소년들은 마차 주변에 둘러서서 한 남자와 경찰관이 다투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차 위에 앉아 있는 그 남자는 키가 좀 큰 듯하고 얼굴이 초라한 사람이었는데, 이 거리는 공공시설이니만큼 자신이 거리에 서 있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찰관은 주민들이 냄새를 견딜 수 없으므로 마차를 치우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앨버트에 따르면 관 속의 시체는 벌써 여드레나 되었다고 한다. 요크나파토파 어딘가로부터 온 그들은 제퍼슨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마치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거리에 던져진 썩은 치즈같이 보였던 것이 틀림없다. 금방이라도 부숴질 듯한 마차에다, 집에서 짜 만든 관, 그 위에 누워 있는 다리 부러진 남자, 그리고 앞자리에 앉은 아버지와 작은 소년을 보며, 사람들은 그들이 마을을 빠져 나가기도 전에 모두 산산조각 나버리지 않을까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래서 경찰관은 그들이 한시라도 빨리 마을을 떠나게 하려고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은 공공 도로요. 다른 사람들처럼 우리도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지 않소. 돈도 있단 말이오. 원하는 곳에서 자기 돈을 쓰겠다는데, 안 된다는 법이 어디 있소." 그 남자가 말한다.

 

그들은 시멘트를 사려고 멈추었던 것이다. 아들 하나가 그러미트의 철물점에서 시멘트를 사고 있었는데, 시멘트 한 부대를 헤트려 10센트어치만 사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마침내 그러미트는 그 사람들을 빨리 떠나게 할 요량으로 부대를 뜯어 그가 원하는 만큼을 팔았다. 부러진 다리를 고정시킬 목적으로 필요한 모양이었다.

 

"당신들은 저 남자를 결국 죽게 할 거요. 시멘트를 바르면 다리를 잃게 될 거란 말이오. 어서 의사에게 데려가시오. 그리고 시체는 빨리 땅에 묻으시오. 공공 위생을 저해한 죄로 당신을 감옥에 넣을 수도 있는 것을 도대체 알기나 하오?"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소." 아버지란 사람이 말했다. 그는 자신들이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마차가 돌아오기를 얼마나 학수고대했는지, 다리가 어떻게 떠내려갔는지, 다른 다리를 찾아 다시 8마일을 갔으나 그것마저 떠내려가 여울목으로 강을 건넌 이야기, 그 와중에 노새를 잃은 이야기, 그래서 다른 노새를 구해서 가보니 길이 떠내려가 다시 모슨으로 우회해서 가고 있다는 이야기 등등을. 시멘트를 사러 갔던 아들이 돌아와서 이 광경을 보고는, 떠벌리는 아버지에게 닥치라고 말했다.

 

"우린 곧 떠날 거예요." 아들이 경찰관에게 말했다.

 

"누구도 귀찮게 하지 않을 거요." 아버지가 말했다.

 

"저 친구를 의사에게 보내시오." 시멘트를 들고 있던 아들에게 경찰관이 말했다.

 

"그는 괜찮을 거예요." 그가 말했다.

 

"우리들이 몰인정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요. 아마도 당신들 자신이 더 잘 알 거요." 경찰관이 말했다.

 

"물론이죠. 보따리를 전달하러 간 듀이 델이 돌아오는 즉시 떠날 거예요."

 

사람들이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 뒷걸음치는 가운데, 소녀가 신문지로 둘둘 만 보따리를 들고 나타날 때까지 그들은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234∼237쪽)

 

 - 윌리엄 포크너,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 * *


포크너의 이 작품은 제목에서부터 의도적으로 애디 벤드렌을 말하고 있다. 그녀는 작품이 시작되자마자 죽음을 맞는다. 포크너는 아가멤논의 유령이 오딧세우스에게 한 말(「오뒷세이아」11권, 「죽음의 세계로의 하강」)을 인용하고 있다.

 

내가 누워 죽어갈 때 개의 눈을 가진 그녀는 내 눈조차 감겨 주지 않았소. 내가 죽음의 세계로 내려가는 동안 말이오.

 

아내와 그녀의 정부(情夫)에게 살해당한 아가멤논의 운명은 포크너의 소설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 포크너는 문맥보다는 그 구절만을 원해서 취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애디와 아들 달의 애정 결핍이 클뤼타임네스트라와 오레스테스, 그리고 엘렉트라의 관계와 비슷한 점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클뤼타임네스트라는 "개의 눈을 가진 여자"로 죽은 아가멤논의 눈을 감겨 주지도 않고 떠나 보낸다. 애디는 클뤼타임네스트라보다 더 불쾌한 여자다.(307∼308쪽)

 

 - 헤럴드 블룸, 『교양인의 책 읽기』, <3. 장편 소설> 중에서

 

오뒷세이아_11권 저승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

 

 * * *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에서는 자연 그 자체가 하나의 상처로 그려지고 있다. 앙드레 지드는 포크너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에게는 영혼이 빠져 있다고 말했다. 지드는 번드렌 가 사람들은 콤슨 가(『음향과 분노』에 등장하는 인물들) 사람들처럼 파멸적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신은 두 집안 사람들에게 아무런 약속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심연으로부터 왔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운명이다. 듀이 델이 필사적으로 신을 믿는다고 외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는 파멸적인 인간의 상황을 묘사했다. 특히 핵가족이 그런 파멸 가운데서도 가장 공포스럽다는 것을!(312∼313쪽)

 

 - 헤럴드 블룸, 『교양인의 책 읽기』, <3. 장편 소설> 중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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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토의 경우
영웅들의 ‘운명‘에 대하여
로마의 역사를 뒤바꾼 ‘성폭행 사건‘을 둘러싼 내밀한 심리 묘사가 압권인 작품

 

 

"브루투스, 너 마저?"

 

이 짧은 대사만큼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것도 드물다. 이 말은 삼척동자도 웬만큼 안다. 왜? 누구나 한 번만 들어도 금세 '상황 파악'이 되기 때문이다. 친구들끼리 장난을 치다가도 "아무개, 너 마저?" 라고 외칠 만한 상황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맞닥뜨렸던가.

 

나도 언젠가부터 저 짧은 대사를 듣고 알게 되었다. 그게 언제였는지는 결코 알 수 없지만. 그 이후로 오랫동안 내가 품었던 생각은 이랬다. '브루투스는 '참 나쁜 사람'이었구나, 카이사르가 자신을 그토록 믿고 아껴주었는데 어떻게 그 끔찍한 '암살'에 가담하게 되었을까?' 그런 오해와 의문이 완전히 해소된 건 아마도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거듭 읽고 나서였지 싶다. 몽테뉴가 '저 위대한 브루투스'라고 말하며 칭송을 거듭할 때까지도 그의 위대성을 도무지 실감할 수 없었으니까.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는 '카이사르 암살 장면'이 두 번 거듭해서 나온다. 한 번은 「카이사르 편」에서, 다른 한 번은「브루투스 편」에서. 그런데 묘하게도 플루타르코스가 쓴 책에는 "브루투스, 너 마저?"라는 대화는 눈을 씻고 찾아 봐도 없다. 「카이사르 편」을 거듭 뒤져 봐도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말과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말고는 더 이상 인상적인 대사가 없다. 카이사르 암살 장면에서 플루타르코스로부터 직접 들을 수 있는 카이사르의 음성은 기껏해야 "비겁한 놈! 카스카, 이게 무슨 짓인가?"가 전부다.(「브루투스 편」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일부러 살짝 비틀어 번역한 "카스카, 이 못된 놈! 이게 무슨 짓이냐?"라는 문장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 저 유명한 대사는 말 그대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이었다!

 

        카스카

손이여 말해 다오!                (그들이 시저를 찌른다.)

 

           시저

브루투스, 너 마저? ㅡ 그럼 시저, 죽으리라. (죽는다.)

 

           신나

자유다! 해방이다! 독재는 무너졌다!

뛰어가서 공포하라, 길거리에 외쳐라.

 

 - 『줄리어스 시저』, <3막 1장> 중에서

 

 


 - 원로원에서 암살당하는 카이사르, 빈센초 카무치니

 

이 '역사적인 장면'에서 카이사르가 브루투스에게 했다는 그 유명한 말에 대해 좀 더 정확하게 알려면 천병희 선생님이 번역한 발췌 번역본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천병희 선생님만큼 꼼꼼하게 주석을 달아서 번역하는 분은 드물기 때문이다.

 

브루투스도 카이사르의 아랫배에 일격을 가했다. 일설에 따르면, 카이사르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저항하며 그들의 가격을 피해 이리저리 몸을 틀면서 도와달라고 소리쳤으나 브루투스가 단검을 빼어든 것을 보자 머리에 토가를 뒤집어쓰고는 …… (550쪽)

 

주석) 카이사르가 브루투스에게 했다는 "내 아들아, 너 마저?"(kai su, teknon?)라는 유명한 그리스 말은 수에토니우스의 『황제전』중 「율리우스 카이사르 전」82장에 기록되어 있다. "브루투스여, 너 마저?" 라는 말은 셰익스피어의 사극 『줄리어스 시저』에 나온다.

 

 - 천병희 번역,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중에서

 

이 주석에서 셰익스피어의 사극에 나온다는 "브루투스여, 너 마저?"에 앞서 소개된 내용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카이사르가 죽으며 브루투스에게 했다는 말 "내 아들아, 너 마저?"는 결코 카이사르가 죽을 때 정신줄을 놓으며 내뱉은 '헛소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저간의 사정을 플루타르코스의 설명을 통해 좀 더 알아 보자.

 

카이사르도 브루투스를 무척 아꼈다고 한다. 카이사르는 부하들에게, 전투를 할 때에도 브루투스는 죽이지 말라는 특별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만일 그가 항복하면 자기에게 데려오고, 끝까지 저항하더라도 절대로 다치게 하지 말고 도망가도록 놓아두라고 했다. 카이사르가 이렇게까지 한 것은, 브루투스 어머니인 세르빌리아 때문이었다고 한다. 카이사르는 젊은 시절에 세르빌리아를 알게 되어 한때 서로 깊이 사랑했던 사이였다. 브루투스가 태어난 것도 바로 그 무렵 일이었으므로 카이사르는 어쩌면 그가 자기 아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언젠가 로마를 뒤엎으려는 카틸리나의 음모를 밝히기 위해 원로원에서 회의가 열렸을 때였다. 서로 반대 의견을 주장하던 카토와 카이사르는 열띤 논쟁을 벌였다. 그때 카이사르에게 쪽지 한 장이 전해졌고, 이를 본 카토는 분명히 적과 내통하는 자들로부터 온 편지일 것이라며 카이사를 공격했다. 다른 의원들까지 카이사르를 몰아세웠으므로 카이사르는 하는 수 없이 그 쪽지를 카토에게 넘겨주었다. 그런데 그것은 카토의 누이인 세르빌리아가 카이사르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였다. 카토는 그 편지를 카이사르에게 도로 던져주며 이렇게 말했다.

 

"에이, 술주정꾼 같으니라고. 어서 가져가게."


카토는 다시 회의에 정신을 쏟았다. 카이사르와 세르빌리아의 사랑 이야기는 이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모두 알려졌을 만큼 유명했다.(1775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마르쿠스 브루투스 편>

 

 

이쯤에서 다시 셰익스피어에게 돌아가자. 셰익스피어가 쓴『줄리어스 시저』에서는 여덞 명의 등장인물이 죽는다. 그들 가운데 카이사르가 맨 처음으로 죽고, 브루투스는 맨 나중에 죽는다. 이 극의 핵심 주제는 그토록 위대했던 두 사람이 왜 죽는지 그리고 그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그 주제는 '이상주의'이다. 로마의 긴 역사를 통해 볼 때 브루투스만큼 '고귀한 성품'을 지닌 인물도 드물었다. 브루투스의 이상주의는 '공화정 옹호와 독재 반대'로 나타나면서 불가피하게 카이사르의 암살로 이어진다. 브루투스가 생각하는 공화정 최고의 가치는 '자유'였다. 그로서는 이 자유가 한 사람에게만 허용되는 '왕정'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자유 수호'를 위해서 그는 기꺼이 자신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셰익스피어가 그려낸 '이상주의와 현실의 충돌'은 극의 도입부에서부터 선명하게 그려진다. 카이사르의 개선 장면에 열광하는 '로마 시민들'을 보고 한심해 하는 셰익스피어의 '대사'가 참으로 인상적이다.

 

 

왜 축하해? 그가 뭘 정복해서 가져오지?

어떤 조공 사신들이 포로 되어 묶인 채

전차 바퀴 장식하며 로마로 따라오지?

 

 

로마 시민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폼페이우스가 개선할 때 그와 똑같은 식으로 열광했었다. 그런데 시저가 폼페이우스를 죽이고 돌아오는 지금도 반응은 역시 똑같았다. 로마의 군중들은 "목석 같은 멍청이, 짐승만도 못한 것들"이라고 욕을 잔뜩 먹었다. 물론 셰익스피어가 등장시킨 극중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서였다. 오로지 자신의 권력을 잡기 위해 서로 죽고 죽일 뿐인 국가 지도자를 보면서, 매번 똑같은 역할을 떠맡지만 '등장 인물'만 바뀔 뿐인데 거기에 매번 열광하는 로마 시민들을 셰익스피어는 그렇게 꾸짖었던 것이다.

 

이제부터는 '카이사르 암살'에 대한 브루투스의 태도를 살펴 보자. 브루투스가 처음부터 '카이사르 암살'을 주도했던 건 아니다. 그 사정을 자세히 살펴 보면 우리는 마르쿠스 브루투스의 먼 조상인 '유니우스 브루투스'까지도 이 사건에 희미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브루투스, 지금도 살아 계셨더라면!


그러나 브루투스가 카이사르 암살 음모를 꾸미게 된 까닭은 카시우스와는 좀 다르다. 그와 가까운 친구들과 시민들이 끊임없이 그를 설득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익명의 편지들이 그에게 쏟아졌던 것이다. 어떤 시민은 옛날에 왕정을 뒤엎었던 유니우스 브루투스 동상에 이런 글을 새기기도 했다.


"브루투스, 지금도 살아 계셨더라면!"

 

"브루투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해요."

 

그리고 법무관인 브루투스가 법정에 나갈 때면, 그의 자리에는 다음 같은 글이 적힌 쪽지들이 수북하게 쌓였다.

 

"브루투스, 아직도 잠자고 있는가?"

 

"당신이 진정한 브루투스인가?"

 

하지만 브루투스가 카이사를 암살하기로 마음먹게 된 결정적 까닭은 카이사르에게 아첨하는 이들의 경솔한 행동 때문이었다. 그들은 민중의 이름을 빌려 카이사르에게 온갖 영광을 주려 했고, 한밤에 몰래 카이사르 동상 위에 왕관을 씌워놓아, 집정관을 넘어서 왕으로 내세우려 했다. 그러나 이런 행동들은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왔는데, 이것은 카이사르 전기를 보면 잘 알 수 있다.(1779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마르쿠스 브루투스 편>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을 주도했던 인물은 브루투스의 의동생이었던 카시우스였다. 그는 처음엔 브루투스와 카이사르 사이의 돈독한 관계 때문에 브루투스에게 '자신의 의중'을 솔직히 밝힐 수 없었다. 오랫동안 브루투스를 암살 계획에 가담시킬 방법을 궁리하던 카시우스는 마침내 그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 카시우스가 브루투스를 설득하는 대사가 매우 길지만 거기에서도 역시 '또 한 명의 브루투스'가 빠지지 않았다.

 

 

 우리의 이 시저가 무엇을 먹었기에

이렇게 커졌지? 시대여, 넌 창피당했다!

로마여, 네 고귀한 혈통은 다 사라졌다!

대홍수 이래로 어느 한 시대가

한 사람만으로 유명한 적 있었단 말인가?

지금까지 로마를 얘기할 때 그 누가

그 넓은 거리가 한 사람만 품었다 할 수 있나?

오로지 한 사람만 있게 된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게다가 여지가 충분한 로마로다.

오, 자네와 난 선친들이 하는 얘기 들었지,

일찍이 또 한 명의 브루투스는 로마에서

왕이 쉽게 자기 옥좌 지키게 하느니

영원한 마왕이 그러도록 놔뒀을 거라고.

 

(『줄리어스 시저 』, <1막 2장>)

 

 

셰익스피어가 『줄리어스 시저』를 쓰면서 참고한 책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었다. 그는 플루타르코스가 쓴 원전을 조금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원작'보다 훨씬 더 생생한 극작품을 탄생시켰다. 그것도 오로지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서 말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플루타르코스는 과연 어떻게 썼는지 살펴 보면 셰익스피어의 극작품이 얼마나 독자들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자극하는지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마르쿠스 브루투스의 조상은 유니우스 브루투스이다. 유니우스 브루투스는 타르퀴니우스를 쫓아내고 왕정을 몰락시킴으로, 로마인들은 그가 칼을 빼들고 선 동상을 카피톨리움에 있는 왕들 동상 사이에 세웠다. 성격이 지나치게 강직한 그는 남들과 타협하지 않았으며 학문으로도 그런 성격을 누그러뜨리기는커녕 오히려 독재자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독재자와 공모한 자기 아들들까지 모두 사형시켰다.

 

그러나 이제부터 쓰려는 브루투스는 성격이 유순한 데다가 철학과 학문을 갈고닦아 더할 나위 없이 조화롭고 훌륭한 인격을 갖춘 인물이다. 그는 이러한 성품으로 나랏일에 헌신했으며, 그 때문에 사람들은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뒤에 좋은 일들은 모두 브루투스 공으로 돌리고, 나쁘거나 잔인한 일들은 브루투스의 친척이자 친구인 카시우스 잘못으로 돌렸다. 그만큼 카시우스는 정직함이나 동기의 순수함에서 브루투스를 따라가지 못했다. ……

 

브루투스의 어머니 세르빌리아는 철학자 카토와 남매 사이였다. 브루투스는 로마 사람들 가운데 외삼촌인 카토를 가장 존경했으며, 뒷날 카토의 딸 포르키아를 아내로 삼았다.(1772∼1773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마르쿠스 브루투스 편>

 

이렇게 해서 마침내 브루투스가 카이사르 암살 계획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런데 암살에 가담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자 '비밀 유지'가 무엇보다 관건이 되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훗날 마키아벨리가 『로마사론』의 한 장을 할애했던 <음모에 대하여>에서도 '카이사르 암살 음모의 장애 요인'에 대해 별도로 분석할 정도였다. 브루투스가 어느날부터인가 갑자기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가장 먼저 눈치챈 사람은 그의 아내 포르키아였다.

 

브루투스는 이제 용맹과 문벌에서 로마 으뜸가는 인물들 운명이 모두 자기 한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집 밖에서는 행동을 조심하면서 여느 때처럼 일을 처리했지만, 일단 집 안에 들어온 뒤에는 여러 문제들로 고민하며 밤을 꼬박 새기도 했다. 그러나 한방을 쓰는 아내가 이를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중대한 문제로 고민하고 있거나, 아니면 매우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있음을 알아챘다.

 

브루투스의 아내 포르키아는 카토의 딸로, 두 사람은 사촌 간이었다. 포르키아는 젊었을 때 첫 남편이 죽자, 어린 아들 비불루스를 데리고 브루투스와 재혼했다. 비불루스는 뒷날 《브루투스 회상록》을 남기기도 했다.

 

남편과 마찬가지로 철학을 사랑했으며, 용기도 뛰어나고 이해심도 넓었던 포르키아는 남편에게 비밀을 묻기 전에 먼저 자기 의지력을 시험하기로 했다. 그녀는 시녀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낸 다음 손톱을 깎는 날카로운 칼로 자신의 허벅지를 세게 찔렀다. 많은 피가 쏟아졌고, 심한 통증에 포르키아는 온몸을 덜덜 떨었다. 포르키아는 자신을 간호하는 브루투스에게 통증을 참으며 이렇게 말했다.

 

"브루투스, 나는 카토의 딸이에요. 내가 당신과 결혼한 것은 당신과 잠자리나 하려던 것이 아니라 운명을 함께하기 위해서였지요. 이제껏 우리는 잘 지내왔고 당신도 잘못한 게 없었어요. 그러나 지금 당신은 무언가로 무척 괴로워하면서도 내게는 말 한 마디 안 하고 있어요. 물론 당신이 나를 걱정하기 때문이라는 걸 잘 알아요. 그런 중대한 일이라면 비밀과 믿음이 꼭 지켜져야 하겠지만, 나는 무슨 일인지 알아야겠어요. 당신에게 나의 사랑을 증명할 기회를 주세요. 본디 여자들은 마음이 약해 비밀을 잘 지키지 못한다는 건 나도 알아요. 그러나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바른 교육을 받고 훌륭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여자들도 달라지는 법이에요. 나는 카토의 딸이고, 브루투스의 아내예요. 그리고 나는 이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그 전에는 내가 정말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웠지만, 이제 나 스스로 시험해 보니 어떤 고통도 참고 이겨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러고는 허벅지 상처를 남편에게 보여주며, 이것은 자신의 의지를 시험한 증거라 털어놓았다. 브루투스는 깜짝 놀라더니, 포르키아에게 부끄럽지 않은 남편이 되고, 자기 계획에 신의 축복이 있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포르키아에게 자신의 계획을 모두 알려주었다.(1782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마르쿠스 브루투스 편>

 

 

포르키아와 브루투스, 19세기경, 발랑시엔 미술관

펠릭스 오브레(1800∼1833, 프랑스)

 

카이사르 암살은 결국 성공했고, 브루투스는 로마 시민들을 상대로 '암살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명연설을 했으나 이 모든 노고가 로마 시민들을 향한 '안토니우스의 선동'으로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었다.(카이사르 암살 직후에 안토니우스가 취한 놀라운 행동과 로마 시민들을 격분시키는 명연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에서도 특히 돋보이는 장면이다.) 

 

브루투스에게는 졸지에 '카이사르 살해자'라는 오명이 씌어졌다. 그는 안토니우스와 간신히 타협하여 마케도니아 속주 총독 자격으로 망명하듯 길을 떠났다. 로마에서는 옥타비아누스가 급부상하면서 안토니우스와 손잡고 암살 공모자들에 대한 복수에 나섰다. 오늘날 동부 마케도니아에 위치한 '필리피 전투'에서 브루투스는 잘 싸우고도 전황을 오판하여 끝내 자결하고 만다. 그의 죽음과 함께 '로마 공화정'도 끝나고 말았다. 브루투스의 죽음은 결코 그 혼자만의 죽음이 아닌 셈이었다. 남편의 소식을 들은 카토의 딸 포르키아도 남편 못지 않게 인상적인 죽음을 택했다.

 

한편 브루투스의 시신은 안토니우스에게 발견되었다. 안토니우스는 그의 시신을 가장 값진 자줏빛 옷으로 감싸도록 했으며, 그 뒤 그의 유골은 어머니인 세르빌리아에게 보냈다.

 

브루투스의 아내 포르키아는 몇 번이나 목숨을 끊으려 했지만, 친구들 감시 때문에 도저히 죽을 수가 없었다. 끝내 그녀는 벌겋게 달아오른 숯덩이를 입에 물고 질식해 죽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철학자 니콜라우스와 역사가 발레레우스 막시무스 기록에 나와 있다.(1814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마르쿠스 브루투스 편>

 

 

포르키아, 카토의 딸, 브루투스의 부인(Porcie, fille de Caton d'Utique, épouse de Brutus)

 17세기경, 베르사이유와 드리아농 궁

 

셰익스피어는 '안토니우스의 입'을 빌려 브루투스의 죽음을 각별하게 애도했다.

 

 안토니

이 사람이 그들 중 가장 귀한 로마인이었다.

그를 뺀 나머지 공모자들 모두는

위대한 시저에게 악심 품고 그 짓 했다.

오직 그만 공적이고 정직한 생각에서

모두의 공익을 위하여 한 패가 되었다.

그의 삶은 고귀했고 인성은 완벽하여

자연의 여신조차 일이서서 온 세상에

'이게 사람이었다.'라고 했을 것이다.

 

(『줄리이서 시저』, <5막 5장>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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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투스를 아낀 사람은 안토니우스 말고도 여럿이 더 있었다. 플루타르코스가 전하는 다음의 '일화'도 흥미롭다.

 

알프스 내륙의 갈리아 지방에는 오늘날까지도 브루투스 동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카이사르는 브루투스가 죽고 나서 몇 년 뒤에 이곳을 지나다가 그 동상을 발견했는데, 브루투스 얼굴과 너무나 비숫한 훌륭한 작품이었다. 카이사르는 문득 걸음을 멈추더니 여러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그곳 관리를 꾸짖었다. 이 도시가 적을 숭배하고 있으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관리들은 절대 그런 일이 없다면서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그러자 카이사르는 브루투스 동상을 가리키며 눈살을 찌푸렸다.

 

"보시오! 저기에 우리의 적이 서 있지 않소?"

 

이 말을 들은 관리들은 더욱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카이사르는 얼굴에 미소를 띠면서, 불행한 처지에 놓인 친구라 할지라도 그 사람에 대한 의리를 잃지 않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며 갈리아 사람들을 칭찬했다. 그리고 그 동상을 영원히 보존하라고 명령했다.(1818쪽)

 

 -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디온과 브루투스의 비교>

 

 

 - 마르쿠스 브루투스(기원전 85∼4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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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으로 '브루투스 가문'의 인물들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평가를 살펴볼 차례다. 브루투스 가문의 사람들만큼 '로마의 역사'에 깊은 영향을 준 인물도 흔치 않다. 마키아벨리의 얘기를 들어 보면 "브루투스, 너 마저?"라는 짧은 대사에 담긴 의미가 얼마나 다양한 함의를 지니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다.

 

 

속속들이 썩어버렸기 때문

 

로마의 실례만큼 이 점에 꼭 맞는 것은 달리 없을 것이다. 타르키니우스 가를 멸망시킨 뒤 로마는 곧바로 자유를 획득하여 이를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카이사르나 가이우스 칼리굴라, 그리고 네로가 죽고 카이사르의 혈통이 완전히 절멸한 뒤에 로마는 자유를 유지하기는 커녕 그에 한 발도 접근할 수 없었다. 같은 도시를 무대로 해서 같은 조건 아래 생긴 일인데도 결과가 아주 정반대로 되어 버린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즉 타르키니우스 시대에는 로마인이 아직 그다지 타락해 있지 않았던 데 비해, 카이사르 시대에는 속속들이 썩어 있었다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타르키니우스 시대에는 로마의 민중으로 하여금 국왕의 압제 정치를 물리치고자 굳게 결의시키는 대신, '로마에서는 앞으로 어떤 왕도 통치할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민중에게 맹세시키는 일만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 시대가 되자 전 오리엔트의 지지를 배경으로 가진 브루투스의 권력이나 가혹함을 가지고도 로마 민중을 분기시켜서 자유를 지키게 할 수는 없었다. 이 브루투스는 초대 브루투스를 본받아서 로마 민중에게 자유를 되돌려주려고 노력한 인물이다. 이처럼 자유를 회복하는 일에 성공하지 못한 것은 그때까지 가이우스 마리우스 일파가 민중에게 심어 놓은 타락한 풍조 때문이다. 그리고 마리우스의 평민당 수령이 된 카이사르는 교묘하게 민중의 눈을 가려 버렸기 때문에, 그들은 목에 칼을 쓰고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이상과 같은 로마의 실례에 대해서는 다른 어떤 예를 꺼낸다 해도 맞설 수 없는 것이지만 나는 이 점을 둘러싸고 현대의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생생한 실례를 열거해 보고자 한다. 즉 천지가 뒤집힐 대소동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밀라노나 나폴리가 두 번 다시 자유를 손아귀에 넣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두 국민은 속속들이 썩어 버렸기 때문이다.(207쪽)

 

 - 마키아벨리, 『로마사론』,

   제1권 제17장 <퇴폐한 민중은 해방된다 하더라도 자유를 유지해 나가기가 매우 어렵다>

 

 

오랫동안 한 군주 밑에서만 통치되어 온 민중이, 타르키니우스 추방 뒤의 로마처럼 우연한 계기로 자유로운 몸이 된다 하더라도 그 자유를 유지해 나가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역사 속의 숱한 실례만 보더라도 명백한 일이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유 때문이다. 즉 이런 국민은 본래 거친 야생의 맹수가 우리에 갇혀 사육되어 온 것과 비슷하다. 이런 짐승은 어쩌다가 들판에 놓여지더라도 어떻게 먹이를 찾아야 할지 어디에 숨어야 할지 도무지 모르기 때문에, 잡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문제없이 잡을 수 있다.(202쪽)

 

 - 마키아벨리, 『로마사론』,

   제1권 제16장 <군주정치의 지배를 감수하는 민중은 해방된다 하더라도 자유를 유지하기 곤란하다> 

 

 

훌륭한 일을 수행했기 때문에 그 철저한 배려와 현명함을 높이 찬양받는 인물이라 하더라도, 유니우스 브루투스가 바보처럼 가장하고 수행한 그 행동에는 가까이 따라갈 수 없으리라 생각된다.

 

티투스 리비우스는 브루투스가 그런 짓을 한 것은 자기의 몸의 안전과 집안의 대를 지켜 나가기 위해서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브루투스가 한 행동을 생각해 보면, 그가 바보를 가장하고 있었던 것은 자신의 속셈을 눈치채이지 않으려는 수단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그는 왕을 타도하고 로마를 해방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아폴로 신전의 신탁에 대한 해석 방법을 보면 그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탁을 받을 때 그는 자기의 계획에 신의 가호를 얻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일부러 발부리를 차고 넘어져서 남몰래 어머니인 대지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루크레티아의 죽음에 즈음해서는, 아버지와 그의 남편과 그 밖의 친척들이 모인 가운데서 맨 먼저 그 상처에서 단도를 뽑고는, 앞으로는 어떤 왕의 지배도 로마에서는 용납하지 않는다는 맹세를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시켰다.

 

이 브루투스의 고사는, 군주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배워야 할 일이다. 즉 우선 자기 자신의 실력을 측량해야 한다. 그리하여 상대를 적으로 맞아 당당하게 싸워 나갈 만한 확신이 설 만큼 자기의 실력이 갖추어져 있다면 당연히 싸움에 돌입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위험이 적은 자랑스러운 행동이라 할 수 있겠다.(434쪽)

 

- 마키아벨리, 『로마사론』,

   제3권 제2장 <백치를 가장하는 것이 때로는 가장 현명할지도 모른다>

 


 

 

타르키니우스 수페르부스는 아주 가증스런 방법으로 왕국을 손에 넣었다. 그렇다고는 하나 그가 이전의 왕들의 유훈에만 따랐더라도 그의 입장은 그대로 용인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원로원과 평민이 힘을 합해서 그의 손으로부터 국가를 빼앗는 사태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그가 추방된 것도 그의 아들 세스투스가 루크레티아에게 무례함을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라 본인 자신이 국법을 유린하고 제멋대로 폭정을 폈기 때문이다.

 

(중략)

 

앞에서 말한 루크레티아에 대한, 아들 세스투스의 능욕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뭔가 다른 사건이 벌어져서 결국은 같은 결과가 되었을 것이다. 타르키니우스 자신이 자중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그 때까지의 국왕과 변함 없는 행동을 했더라면, 아들 세스투스가 실수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브루투스도 코라티누스도 세스투스에게 복수하겠다는 것을 타르키니우스에게 호소했을 뿐이지 인민에게 호소해서까지 그와 같은 행동을 일으킬 리는 없었다.


따라서 옛날부터 오랜 세월에 걸쳐서 사람들이 익혀 온 법률이나 제도나 습관을 군주 스스로 깨뜨렸을 때 국가는 그의 수중으로부터 떠나기 시작한다는 것을 군주는 명심해야 한다.

 

군주의 권위를 박탈당한 뒤에야, 그때 순순히 충언을 들었더라면 왕국을 유지해 나가기가 쉬웠을 텐데 하고 아무리 후회해 봤자, 국가를 잃었다는 슬픔만 점점 더 더해갈 것이다. 이런 자책감은 어떤 벌보다도 더 뼈에 사무칠 것이다.(438∼439쪽)

 

 - 마키아벨리, 『로마사론』,

   제3권 제5장 <국왕이 세습한 왕국을 잃는 이유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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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투스와 소(小)카토에 대한 마키아벨리(1469∼1527)의 드높은 평가를 곧바로 이어받은 인물은 프랑스 사람 몽테뉴(1533∼1592)였다. 그가 마키아벨리의 『로마사론』을 읽었는지는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다만, 몽테뉴가 마키아벨리만큼 '로마사'에 정통했다는 점은 명확하다. 그러니 그 두 사람의 판단이 결코 다를 수가 없었다.

 

 

브루투스의 경우 439

나는 브루투스가 도덕에 관해서 쓴 저작이 소실된 것을 수백 번은 애석하게 여겼다. 왜냐하면 실천을 잘할 줄 아는 인물의 이론을 알아두는 것은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교와 설교자는 같은 것이 아닌 만큼, 나는 브루투스를 플루타르크의 저서에서나 그 자신의 저서에서나 마찬가지로 읽어 보고 싶다. 나는 차라리 그가 전투한 다음 날 자기 군대에게 해 준 언행보다, 전투하기 전날 자기 천막 속에서 친한 친구 하나와 흉금을 털어놓고 하던 이야기를 알고 싶으며, 그가 자기 사무실이나 방에서 하던 일을, 그가 광장이나 원로원에서 하던 일보다 더 알고 싶다.

 

 

 

esse videatur 440

모든 점을 참고해 보고, 그의 웅변을 비길 바 없는 것으로 평가한 사람들 속에서도 그의 웅변에 흠이 있는 것을 간과하지 않은 자들이 있었다. 그의 친구였던 저 위대한 브루투스도 그의 것을 '부서지고 허리 부러진' 웅변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의 세기와 가까운 시대의 웅변가들도 역시 그가 문장의 끝에 붙이는 기다란 시가에 다는 운을 각별히 유의해서 집어넣는 버릇을 꼬집으며, esse videatur(그런 듯싶을 것이다)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을 지적하였다. 나로서는 장단격으로 짧게 떨어지는 음절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그는 드물기는 하지만 음절의 수를 가끔 뒤섞는 일이 있다. 나는 그의 문장에, "나로서는 늙기 전에 늙는 것보다는 늙고 나서 오래 있지 않는 편이 낫다"(키케로)라는 말이 귀에 거슬렸다.

 

 

 

키케로와 브루투스 786

나는 옛 사람들의 문장에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쓰는 자는, 그런 생각을 가진 체하고 말하는 자보다 더 강한 감명을 주는 것에 주목한다. 키케로가 자유애(自由愛)에 관해서 말하는 것을 들어 보라. 브루투스가 같은 제목으로 말하는 것을 들어 보라. 그 문장에서, 이 후자는 생명을 내걸고 자유를 살 인물이라는 것이 울려 온다.

 

 

 

 

적당하게 살아가는 일 1239∼1240

본성이 자기를 나타내고 계발하기 위해서는 운수 따위는 상대할 거리도 안 된다. 본성은 모든 층계에서 똑같이, 마치 장막이 없는 것처럼 그 뒷면까지도 나타내 보인다. 계락을 꾸밀 것이 아니라, 행동 습관을 꾸미는 것이 우리가 할 업무이다. 전쟁에 승리하여 영토를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 행실에 질서와 안정을 얻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우리의 영광스럽고 위대한 걸작은 우리가 적당하게 살아가는 일이다. 지배한다, 재물을 모은다, 건설한다는 따위의 모든 일들은 기껏했자 부수적이며 부차적인 데 지나지 않는다.

나는 한 군대의 장군이 방금 공격하려고 하는 돌격구(突擊口) 아래에서, 친구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서 마음을 터놓고 한가로이 담소하는 장면이나, 천지가 자기와 로마의 자유에 반대해서 음모를 꾸미고 있는 때에 브루투스가 순회 근무에서 물러나와 밤의 몇 시간을 안심하고 사학자 폴리비오스를 읽으며 주(註)를 달던 모습을 보는 것이 즐겁다. 하찮은 심령들이나 자기 일의 무거운 부담에 눌려 지내며, 그런 일에서 완전히 풀려나와 채워 두었다가 다시 잡아서 처리할 줄 모르는 것이다.

오오, 나와 함께 가장 독한 시련을 겪어 온 용감한 전사여,
오늘은 그대 근심을 술잔에 담그라.
내일 우리는 망망한 대해로 배 띄워 나가리라.
                                                                       (호라티우스)

 

 

 

요즈음 사람들 252

우리의 판단력은 병들어서 타락한 풍속을 좇고 있다. 우리는 대부분 우리 시대의 정신들이 옛 사람들의 행동을 비굴하게 해석하고 그들에게 헛된 사정과 원인들이나 꾸며 붙이며, 고대의 아름답고 후덕한 행적들의 영광을 더럽히는 약은 꾀만 쓰는 것을 본다.

위대한 재간이지! 글쎄, 가장 훌륭하고 순결한 행동을 내놓아 보라. 그러면 나는 거기 그럴듯하게 50가지 나쁜 의향을 꾸며 댈 것이다. 거짓말을 펴 보려고 하는 자에 의해서, 우리 속마음의 의도가 얼마나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해갈 것인가는 하느님만이 아신다. 그들은 남을 모함하는 데는 심술궂기보다도 더 둔중하고 상스럽게 재간을 부린다.

사람들이 이런 위대한 이름들을 깎아 내리는 데 쓰는 수고로, 그와 똑같이 방자하게 나는 이런 이름들을 높이는 데 수고하며 어깨를 빌려 줄 것이다. 그 희귀한 모습들은 현자들의 동의를 얻어서 세상의 모범으로 추려낸 것이니, 나는 이 이름들에 영광을 다시 살려 주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능력을 다하며, 유리한 사정으로 해석해 보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사색 노력은 그들의 가치를 이해할 힘이 너무나 부족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도덕을 묘사하는 일은 착한 사람들의 임무이다. 그리고 이렇게 거룩한 모범을 위해서 감격하며 열중하는 것은 우리에게 맞지 않는 일도 아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이와 반대로 하는 수작은 악의로 하거나, 또는 지금 내가 말한 바 인물들의 신용을 자기들 수준으로 끌어내리려는 악덕에서 하거나, 또는 차라리 이렇게 생각해 보고 싶지만, 찬란한 도덕을 그 소박한 순결성대로 생각해 볼 수 있을 만큼 이해력이 강력하고 명석하지 못하고 그러한 훈련도 받은 일이 없는 탓이다. 마치 플루타르크가 말하는 바, 그의 시대에 어떤 자들이 작은 카토의 죽음의 원인을 카이사르가 무서워서 그랬다고 하는 따위이다. 거기에 대해서 플루타르크가 분개한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것으로도, 이 죽음을 야심뿐이라고 해석하는 자들에 대해 그가 얼마나 분개하고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아름답고 후덕하고 정당한 행동을 그는 영광을 얻기 위해서보다는 차리리 세상의 추악함을 더럽게 생각하여 버렸을 것이다.

이 인물은 진실로 인간의 도덕과 지조가 어느 정도까지 도달할 수 있는가를 보여 주기 위해 대자연이 골라 놓은 시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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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님께서 인용해 주신 '오셀로와 데스데모나'를 담은 그림 때문에 문득 먼댓글을 하나 써 보고 싶었습니다. 어제 저녁에 달았던 댓글에서도 이미 밝혔듯이, 제가 가진 책에 담긴 그림은 겨울호랑이 님께서 인용해 주신 그림과 '아주 흡사한 그림'일 뿐, 그림을 그린 화가조차도 서로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암튼 그 그림 한 장 때문에 저로서는 제법 '품'이 많이 드는 긴 글을 쓰게 되었으니 아무쪼록 시간이 나실 때 찬찬히 살펴봐 주시길 바랍니다. '같은 듯 서로 다른 그림'까지 포함해서 말이지요...

 

 * * *

 

한 사람의 화가가 비슷한 그림을 그리는 경우는 자주 있는 듯하다. 2년 전에 암스테르담에 갔을 때 들렀던 반 고흐 미술관 덕분에 그런 사실을 차츰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나 <감자 먹는 사람들>은 '비슷하지만 다른 그림들'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얼핏 보면 같은 그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흡사하지만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자세히 살펴보면 그림이 서로 다르다.

 

<감자 먹는 사람들>의 경우, '암스테르담'에서는 동그란 눈을 뜨고 쳐다보던 여인이 '오텔로'에서는 눈을 내리깔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물론 내가 두 미술관을 모두 들러서 '서로 다른 그림'을 직접 확인했다는 뜻은 아니다. 나 역시 대부분의 관광객들처럼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고흐 미술관'에 들르기 바빴다. 두 그림의 차이점은 몇 권의 책을 통해 확인했을 뿐이다. 암스테르담에는 '반 고흐 미술관'이 있고, 거기서 제법 떨어진 '오텔로'에는 고흐 작품을 두 번째로 많이 소장하고 있는 크뢸러 뮐러 미술관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오텔로까지 가기가 만만찮다는 것이다. '오텔로'는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로 1시간 이동 후에 다시 버스를 타고 20∼30분 이동해야 다다를 수 있는 마을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고흐의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버스에서 내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약 10km를 더 이동해야 한다는 데 있다.

 

그런데 네덜란드에 있다는 '오텔로'와 셰익스피어의『오셀로』는 도대체 서로 무슨 관계가 있을까. 그런 사소한 궁금증까지 뒤져볼 여유는 내게 없다. 그냥 우연히 서로 닮았다고 해 두자. 우린 한시바삐 셰익스피어가 남긴 불멸의 비극 『오셀로』를 '그림'으로 구경해야 한다. 그 그림들을 둘러보고도 조금 더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들마저도 '그림'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제공하는 그림들은 완전 공짜다. 비행기표를 끊을 필요도 없고, 미술관 입장권을 살 필요도 없고, 자전거를 타고 10km씩 이동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그러니 아무쪼록 시간적 여유가 되시는 분들은 즐겁게 감상하시도록.

 

한 가지 미리 유의할 점을 안내해야 옳겠다. 이 그림들은 그저 한번 훓어보는 것만으로도 유익하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어느 정도라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겐 그림들이 너무 낯설 지도 모르겠다. 매사가 그렇다. 여행이든 음악이든 그림이든 결국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내게 주어진 몫은 그저 내가 봤던 '그림들'을 풍부하게 소개하는 일이다. 독자들의 수준을 미리 설정해서 '친절한 해설'까지 덧붙이는 일은 가급적 피하겠다는 말이다. 그렇게 할라치면 글과 그림으로 이 글이 한정없이 길어질 테니까. 그렇지만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별로 접하지 않은 독자들도 이 글에 담긴 '그림들' 덕분에 셰익스피어 작품들에 대한 흥미가 조금은 생기리라고 믿는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두루 접한 독자들은 '새로운 감동'을 느낄 수도 있으리라. 어쨌든 나는 '그림'과 '음악' 덕분에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만나는 일이 조금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우선『오셀로』부터 시작하자. 어쨌든 거기가 내 이야기의 '우연한 출발점'이었으니까.

 

『오셀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세 사람'이 거의 전부다. 주인공 오셀로, 아무런 죄가 없었지만 남편에게 죽임을 당한 데스데모나, 그리고 그 둘 사이를 이간질한 이아고.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인물들 가운데 가장 나쁜 인물이 바로 이아고다. 이 그림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들리는가. 오셀로는 나이를 제법 먹은 '무어인' 장군이다. 그래서 얼굴이 검다. 베네치아 사람들 입장에서 봤을 땐 '외국인'이었다. 그와 반대로 데스데모나는 베네치아 원로원 의원 브라반티오의 귀한 딸이었다. 그 사이에 낀 이아고는 오로지 '군대에서의 자리 욕심' 때문에 자신의 지휘관인 오셀로를 질투심에 사로잡혀 미치도록 만든다.

 

오셀로, 데스데모나, 이아고. 헨리 먼로(Henry Munro, 1791∼1814)

 

 

오셀로. 세바스티아노 노벨리(Sebastiano Novelli, 1853∼1916)

 

 

자신의 모험담을 이야기하는 오셀로. 로버트 알렉산더 힐링포드(1825∼1904) 

 

 

베니스의 무어 인, 오셀로. 제임스 노스코트(James Northcote, 1746∼1831), 1826년

 

 

<오셀로>의 데스데모나. 프레더릭 리튼(Frederick Leighton, 1830∼1896)

 

대략 이 정도의 그림만으로도 『오셀로』의 분위기를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물론 원작에 담긴 절묘한 감정 표현과 아름다운 문장들에 비하면 조족지혈일지도 모르겠지만.

 

『햄릿』에 등장하는 가련한 여인 '오필리아'는 이미 그림으로 충분히 봐왔으리라 여겨진다. 그래도 그녀를 빼놓고 지나가기란 어렵다. 다시 한번 '자살'인지 '실족사'인지도 모른 채 물에 빠져 죽은 오필리어를 만나보자.

 

<햄릿>의 오필리아.

칼 프리드리히 빌헬름 트라우트숄프(Carl Friedrich Wilheim Trautschold, 1815∼1877, 독일)

 

『리어 왕』은 셰익스피어 작품에 등장하는 가장 나이 많은 노인이다. 그 노인이 두 딸에게 버림받고 '황야의 폭풍' 속에 내몰린 모습이야말로 '비극의 초입'을 장식하는 상징이다. 코델리어의 죽음은 비극의 절정이고.

 

리어 왕 습작. 조슈어 레널즈(Joshua Reynolds, 1712∼1792), 1760년경.

 

 

리어 왕, 폴 팰커너 풀(Paul Falconer Poole, 1807∼1879)

 

 

《리어 왕》의 한 장면. 코델리아의 죽음.

요한 하인리히 퓌슬리(Johann Heinrich Fussli, 1741∼1825, 스위스)

 

 

감옥에서 아버지 리어 왕을 위로하는 코델리아.

조지 윌리엄 조이(George William Joy, 1844∼1925), 1886년

 

 

리어 왕과 그의 세 딸. 윌리엄 힐튼(William Hilton, 1786∼1739).

 

 

맥베스 부인. 요한 하인리히 퓌슬리(Johann Heinrich Füssli, 1741∼1825, 스위스)

 

 

맥베스와 세 마녀. 존 워튼(John Wotton, 1686∼1765).

 

 

맥베스. 요셉 안톤 코흐 폰 게묄데(Joseph Anton Koch von Gemälde, 1768…839, 오스트리아).

 

셰익스피어의 세계가 이토록 비극에만 치우쳐 있었더라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그의 머리 속엔 온갖 '사랑의 환상'이 가득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한여름 밤의 꿈』이다. 이제 막 7월이 시작되었으니 '한여름'도 시작되었다. '밤' 또한 매일 찾아 오니 '꿈'을 꾸는 일만 남았다.

 

《한여름 밤의 꿈》의 한 장면. 엉뚱한 환상 세계를 헤매고 있는 티티아나.

루돌프 칼 후버(Rudolf Carl Huber, 1839∼1896, 오스트리아)

 

 

《한여름 밤의 꿈》의 허미아와 헬레나. 조지프 세번(oseph Seven, 1793∼1879)

 

이쯤에서 방금 본 그림의 씨앗이라고 볼 수 있는 '허미아와 헬레나의 대화'를 인용하고 넘어가자. 천진난만했던 단짝친구가 '사랑 때문에' 갈등을 겪는 모습이 그저 순진무구하고 아름답기만 하다.

 

헬레나

우리 둘이 나눠가진 그 모든 비밀과

여형제의 맹세와, 우리들을 갈라놓는

발 빠른 시간을 꾸짖으며 같이 보낸

그 많은 시간을 ㅡ 오, 다 잊어버렸어?

학창 시절 우정과 어린 날의 순수함도?

허미아, 우린 마치 솜씨 좋은 신들처럼

한 방석에 앉아서 둘이서 한 견본에

둘이서 한 송이를 두 바늘로 수놓으며

한 가지 음조로 같은 노래 읊조렸어.

우리 손과 옆구리와 목소리와 마음이

일체가 된 것처럼. 그렇게 우린 같이 자랐어.

겹버찌의 모습처럼 갈라진 것 같지만

갈라진 상태에서 합쳐진 것으로서

한 자루에 맺혀 있는 두 귀여운 열매였어.

몸은 둘로 보이지만 마음은 하나였지,

처음엔 둘이지만 하나에게 귀속되고

한 투구로 장식되는 방패의 두 문장처럼.

근데 네가 우리의 옛사랑을 찢어 놓고

남자들과 합세하여 불쌍한 친구를 조롱해?

이것은 친구답지, 처녀답지 않은 일로

상처는 나 홀로 느끼지만 나뿐만 아니라

여성들 모두가 이 일로 널 꾸중할 거야.

 

허미아

네 말이 격렬한 데 참 많이 놀랐다.

나는 널 경멸 안 해. 네가 날 경멸하는 것 같아.

 

 - 『한여름 밤의 꿈』, <3막 2장> 중에서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여주인공 가운데 '사랑의 본질을 가장 잘 꿰뚫어 보았던' 처녀는 로잘린드였다. 가히 '사랑의 여교사'로 불려 마땅하다. 그녀의 대사 하나하나는 유쾌하기 그지 없으면서도 '사랑의 본질'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녀의 모습이 몹시 궁금하던 차에 '그림'으로 그녀를 만나니 반갑기 그지 없다.

 

《뜻대로 하세요》의 아든 숲과 로절린드 역의 펙 워핑튼(Peg Woffington).

곁에 함께 있는 등장 인물은 실리아와 터치스톤.

프랜시스 헤이먼(Francis Hayman, 1708∼1776)의 작품으로 추정.

 

『뜻대로 하세요』와 닮은 듯 다른 '사랑 희극'은 『십이야』를 들 수 있다. 둘 다 주인공들이 '변장'으로 자신의 모습을 감춘 채 '사랑'에 성공하기 때문이다.

 

《십이야(12夜)》의 오시노와 바이올라. 프레더릭 리처드 피커스길(Fredrick Richard Pickergill, 1820∼1900).

 

『베니스의 상인』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들이라면 여주인공 포샤의 모습이 궁금해서 견디기 힘들었으리라. 아울러 유태인 상인의 현명한 딸 제시카의 모습도.

 

《베니스의 상인》의 포샤. 찰스 에드워드 페루기니(Charles Edward Perugini, 1839∼1918, 이탈리아).

 

 

《베니스의 상인》의 한 장면. "달콤한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가 않아요"라고 말하는 제시카.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ias, 1829∼1896), 1888년.

 

희극 가운데 더 소개할 그림들은 『말괄량이 길들이기』,『겨울 이야기』 , 『폭풍우』등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말괄량이 캐서리나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그림'보다 더 나은 대안은 없다. 그림 하나는 '진짜 말괄량이'로 보이지만 다른 그림은 '개선의 여지'가 다분해 보이는 모습도 흥미롭다.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한 장면. 오거스터스 에그(Augustus Egg, 1816∼1863).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캐서리나.

에드워드 로버트 퓨즈(Edward Robert Hughes, 1851∼1914), 1896년.

 

 

분노의 세 여신에게 둘러싸여 있는 《겨울 이야기》의 퍼디타. 뒤편에 있는 것은 공기의 요정 에어리얼.

요한 하인리히 퓌슬리(Johann Heinrich Fussli, 1741∼1825, 스위스)

 

 

《폭풍우》의 미란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1849∼1917).

 

희극 작품은 이쯤에서 그치고 사극으로 넘어갈 차례다. 사극은 '실존 인물'을 그렸다는 점에서 '지어낸 이야기'보다 훨씬 더 사실적이다. 화가들은 인물들의 '비범한 특징'만 골라잡는 솜씨를 지녔다. 그림들만 보더라도 그 인물의 성격까지 훤히 들여다보는 듯하니 말이다. 사극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최고의 캐릭터로 불리는 뚱보 '폴스타프'다. 흔히 『돈키호테』에 나오는 산초 판사에 비교되는 인물이다.

 

 

《헨리 4세》에 생기를 불어넣는 존재인 폴스타프.

조지 파이팅 플랙(George Whiting Flagg, 1816∼1897), 1834년경.

 

 

《헨리 4세_제2부》의 한 장면. 샐로우 치안 판사의 집에서 신병을 만나는 폴스타프.

제임스 더노(James Duno, 대략 1745∼1795).

 

 

헨리 왕자와 폴스타프. 래슬릿 존 포트(Laslett John Pott, 1837∼1898), 1873년.

 

『헨리 4세』1부와 2부에서 폴스타프와 함께 '주색잡기'에 빠져 놀던 '헨리 왕자'는 나중에 '헨리 5세'로 등극하자 '랭카스터 왕조' 최고의 통치자로 돌변한다. 그의 초상화 두 점을 비교해서 감상하는 것도 흥미롭다.

 

헨리 5세(1387∼1422) 초상화. 벤자민 버넬메(Benjamin Burnell, 1769∼1828).

 

 

헨리 5세. 작가 미상.

 

헨리 8세는 복잡한 여성 편력과 여섯 번의 결혼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왕비 중에는 첫 번째 왕비 캐서린의 시녀였던 앤 불린이 가장 유명하다.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버지였다. 『헨리 8세』는 '왕비 교체'에 따라 주변 인물들의 신세가 얼마나 자주 뒤바뀌는가를 그린 흥미로운 작품이다.

 

헨리 8세. 한스 홀바인(Hans Hollbein, 독일)풍의 작가 미상의 그림. 1536년경.

 

리처드 3세는 '잉글랜드의 수양대군'으로 불리는 요크 왕가의 마지막 왕이다. 나이 어린 조카 에드워드 5세를 몰아낸 뒤 등극했지만 조카들을 잔인하게 처리했다는 소문에 계속 시달렸다. 자신과 함께 했던 '반정의 동지들'마저 냉혹하게 숙청하면서 급속히 신뢰를 잃었다. 셰익스피어의 사극 가운데 '피비린내'를 가장 많이 풍기는 작품이다.

 

리처드 3세. 작가 미상.

 

이제야 겨우 끝이 보인다. 세익스피어의 작품들 가운데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다룬 세 작품만 언급하면 대충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작품들은 『코리올라누스』, 『줄리어스 시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이다. 코리올라누스에 대해서는 다른 화가들의 그림들과 함께 글로도 쓴 적이 있는데(☞ 코리올라누스에 대하여...), 여기서는 앤터니 홀든의 『윌리엄 셰익스피어』에 담긴 그림들만 소개하는데 그치겠다. 나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나오는 코리올라누스를 다루려는 게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작품 『코리올라누스』를 그린 그림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코리올라누스. 삐에르 조셉 셀레스땡 프랑수아(Pierre Joseph Celestin Francois, 1759∼1854, 프랑스)

 

 

코리올라누스와 그의 어머니와 아내. 17세기

 

『줄리어스 시저』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인물은 브루투스이다. "브루투스, 너마저?" 라는 대사야말로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대사 가운데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명대사이기 때문이다.

 

《줄리어스 시저》의 한 장면. 브루투스 역의 에드먼드 킨(Edmund Kean).

제임스 노스코트(James Northcote(1746∼1831).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를 그린 그림을 볼 땐 '클레오파트라의 모습'부터 찾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클레오파트라의 모습을 그린 그림은 찾기 어렵다. 앤터니 홀든의 책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의 한 장면. 샤미언과 예언자.

 

아직도 더 많은 그림들이 내 PC 속에 저장되어 있지만 이 정도로 그쳤으면 싶다. 내게 주어진 과제는 이 정도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만큼 많은 그림들을 담은 글을 쓰는 게 그리 쉽지는 않다. 이런 작업은 사실 생각보다 '품'이 제법 많이 드는 작업이다. 이만하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에게는 적잖은 참고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설사 당장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집어 들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셰익스피어의 초상을 소개할 차례다. 아마도 이마가 훤히 벗겨진 초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할 듯하다. 그런데 네덜란드 사람이 그린 초상화를 보면 셰익스피어에 대한 느낌이 훨씬 달라진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존 테일러(John Taylor, 1651년 사망)의 것으로 추정. 1610년경.

 

 

셰익스피어의 초상화. 제라드 조우스트(Gerard Soest, 대략 1600∼1681, 네덜란드).

 

이렇게 많은 그림들을 아낌없이 올리고 나니 한편으로는 후련하다. 이런 그림들을 한달여 전에 사진으로 잔뜩 찍어 놨지만 글로 쓸 기회가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이틀 전에는 '윈도우 오류' 때문에 PC가 갑자기 '복구 불능 상태'에 빠졌던 적도 있었다. 결국 윈도우를 새로 깔았지만 '사진 자료들'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하드를 쪼개 '분리 보관'한 덕분이었다. 이제 글로 써서 이렇게 '서버'에 올려놓으니 마음이 한결 가뿐하다.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읽느냐 마느냐는 결국 독자들의 몫이다. 내게 주어진 마지막 과제는 '알라딘 상품 넣기'라는 진부한 작업이고... 휴~ 덥다... 한여름 밤에 시작한 작업이 한여름 낮에 겨우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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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7-01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oren님 감사합니다. 소개해주신 그림을 보니 그림과 연관된 작품이 떠오르네요. 어떤 그림은 작품의 한 장면을 묘사하기도 하는 반면, 어떤 그림은 그 안에 작품 전체 분위기가 녹아있는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네요. 물론 자세한 것을 알려면 작품에 대한 설명을 알아야하겠지만요. oren님 덕분에 셰익스피어 희극, 비극, 사극에 대한 좋은 그림을 접했습니다. 아직 미처 읽지 못한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을 때 큰 즐거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oren님 좋은 작품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oren 2017-07-01 20:24   좋아요 2 | URL
겨울호랑이 님 덕분에 ‘사진 정리‘ 한 번 시원하게 했습니다~~ 그것도 무더운 여름날에요.
머잖아 장맛비가 폭우처럼 쏟아질 모양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시원한 소나기‘ 자주 좀 내렸으면 싶어요^^

단발머리 2017-07-03 09: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과 oren님 덕분에 저도 좋은사진 구경 실컷 했습니다. 안 읽은 작품이 많기는 하지만요... ^^

oren 2017-07-03 12:12   좋아요 1 | URL
안 읽은 작품들에 대한 사진들은 아무래도 좀 낯설긴 하죠.. 그래도 ‘그림‘이 하나의 연결고리가 되어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