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만이, 그리고 그보다 좀 덜하지만 옹고집은 모든 기회에 억눌러서 나오지도 크지도 못하게 막아야 할 결함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은 그들과 함께 커 간다. 그리고 주둥이에 이런 못된 버릇이 생기는 것을 놓아 두면, 거기서 빠져나오기란 놀라울 만큼 어려운 일이다.
 - 몽테뉴

 * * *

 

사람이 취할 현명한 태도의 하나는, 상대에 대해 위협하는 언사를 쓰거나 모욕하는 말은 절대로 삼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런다고 해서 적의 힘이 약화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위협하는 말은 도리어 상대를 더 조심하게 만드는 결과가 되고, 모욕을 하면 점점 더 분격을 돋구어서 어떻게 해서든지 여러분을 곯려 주려고 마음 먹게 하는 결과가 된다.

 


이에 대한 좋은 예는 …… (중략)

 

 


이 점에 대해서 아시아에서의 유명한 예를 들기로 하겠다 …… (중략)

 


위의 사실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대개 군대의 명지휘관이라든가 뛰어난 정치가란, 자기네끼리나 적을 향하고 있을 때나, 시민이나 병사들이 이 같은 모욕이나 욕지거리를 내뱉는 일이 없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해 두는 법이다. 그것은, 적을 향해 이런 언사를 사용하면 지금 말한 것처럼 터무니없는 변을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료끼리 이런 말을 주고받다가는 이 역시 그 결과가 더 엉뚱한 일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누군가 뛰어난 인물이 나서서 어떤 수단을 강구해 두지 않는 한 어쩔 도리가 없어지게 된다.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한니발과의 전쟁에서, 노예로 편성된 군대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노예군이란 로마인이 병사들의 부족으로 고민한 결과 노예에게 무기를 들려서 편성한 것이었다. 그가 취임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누구를 막론하고 서로가 상대를 노예 출신이라고 헐뜯는 짓을 하면 사형에 처한다고 명령한 일이었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로마인은 남을 헐뜯거나 남의 수치를 비웃는 것은 지극히 해로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본심을 말할 때는 물론이고 농담할 때라도,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손상시키고 화나게 만드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옛사람의 말(타키투스, 《연대기》XV,68)에 있듯이 '야비한 농담이란 그것이 진실에서 완전히 동떨어져 있을 때는 더욱 가시 돋친 뒷맛을 남기는 법'이다.(406∼408쪽)

 


 - 마키아벨리, 『군주론/정략론』, 《정략론》 제2권, <제26장 경멸, 험구를 일삼으면 미움을 산다>


(나의 생각)


역사를 살펴 보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쩌면 이토록 닮았을까' 싶은 대목을 마주치기 마련이다. 마키아벨리가 쓴 책이라고 다르지 않다. 『정략론』제1권 제7장에 나오는 <탄핵권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하여>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과 너무나 닮아서 우리를 놀라게 한다. 또다른 대목에서는 '우병우'를 떠올리게 만들고, 어떤 대목에서는 '인명진' 혹은 '김문수'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도 있다. 다음 대목이 무려 500년 전에 마키아벨리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이와 똑같은 현상이 숱한 사람 사이에서 여러 차례 되풀이되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입버릇처럼 하게 되었다.


"정계에만 들어가면 재야 때의 뜻은 어디로 가 버리는지."(274쪽)


제2권 제26장의 내용을 인용한 건 두 말할 필요도 없이 대통령 대리인단을 떠맡은 일부 변호사의 '막말'이 생각나서이다. 그들은 그게 자신들한테 얼마나 불리한지조차도 모르는 듯하다. 하기야 사태를 여기까지 끌고 온 장본인 또한 '일찌감치 접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뭐? 아직도 아니라고?

 

 


 * * *


적을 향해 업신여기는 말을 자꾸 하다 보면 완전히 이긴 듯한 기분이 들거나 헛된 승리의 환상에 도취해 버린다. 그래서 우쭐한 태도를 취하게 되는 수가 흔히 있다. 이렇듯 헛된 승리의 환영에 도취하면 말뿐 아니라 행동에서도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왜냐하면, 이런 환영이 사람의 마음속에 깃들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분수를 벗어나게 만들어 버리므로 어쩐지 미지의 훨씬 더 좋은 것이 잡힐 듯한 생각이 들게 된다. 그래서 그것을 추구하다가 모처럼의 확실한 성과조차 놓치게 되어 결국은 이것도 저것도 다 놓치고 마는 결과가 흔히 있다. 이런 환영에 들뜬 사람들은 자기의 국가마저 해치는 일이 매우 많은 것을 보더라도 충분히 고려할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고금의 실례에 비추어서 상세히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론만으로는 명확하게 이것을 입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칸네에서 로마 군을 격파한 한니발은 카르타고로 사절을 파견해서 승리를 보고하고 지원을 구하게 했다. 이에 대한 방침이 카르타고 원로원에서 심의되었다. 개중에서도 나이 많고 현명한 시민인 한논은 다음과 같은 의견을 말했다.


"이번 승리를 잘 이용해서 로마와 화평을 맺도록 합시다. 싸움에 이겼다는 것을 뒷받침으로 한다면 조건이 좋으므로 화평을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깊이 쫓다가 지고 나서 화평을 맺으려 하면 그때는 이미 늦어 버리니까요. 왜냐하면 카르타고가 로마를 충분히 격파할 임이 있다는 것을 로마에 깨닫게만 해주면 그것만으로도 카르타고인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승리를 장악한 이 마당에서는 너무 많이 바라다가 결국에 가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티투스 리비우스, 《로마사》XXⅢ,11∼13)

그런데 실제로는 이 제안이 채택되지 않았다. 이렇듯 화평을 맺을 좋은 기회를 놓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카르타고의 원로원은 한논의 제안이 얼마나 선견지명이 있었던가를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전 오리엔트를 정복했을 때 …… (중략)

 


1512년의 일인데, 에스파냐 군은 피렌체에 미디치 가를 복귀시킨 다음 …… (중략)

 


자기보다 월등하게 강력한 군대에 공격당하는 군주가 저지르는 실수 중 가장 큰 실패는 화목을 거부해 버린다는 것이다. 특히 상대방 쪽에서 신청이 있었을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그 이유는, 제시된 내용이 아무리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는 받아들이는 쪽이 유익한 조건도 반드시 포함되어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승리자의 몸의 일부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한니발은 영광과 함께 16년간을 지낸 이탈리아를 뒤로 하고, 카르타고인의 요구에 따라 조국 구제를 위해 귀국해 보니, 눈에 비친 것은 하스드루발과 시파쿠스의 패전이고 누미디아 왕국의 상실이었다. 그리고 카르타고인은 그 성벽 속에 갇혀 꼼짝도 못하고, 겨우 구제의 길을 강구할 수 있는 것은 한니발 자신과 그 군대밖에 남겨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기의 조국이 최후의 막다른 곳에 몰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덮어 놓고 모든 것을 결전에 거는 것을 피하고 다른 수단을 써 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조국을 구제할 길은 화평에 있지 전쟁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자 순순히 평화를 구했다. 그런데 그의 화평 신청이 로마인에게 거부되자, 패전이 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굳이 전쟁을 피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직도 이길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며, 또 진다 하더라도 적어도 명예로운 패배가 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니발같이 기력이 충실하고, 또 무패의 군대를 이끈 명장이라도 패전을 당하면 자기 조국이 노예의 처지로 떨어지고 만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전쟁보다도 우선 화평 공작을 구했던 것이다.


이것을 생각한다면, 한니발 정도의 기력도 없고 그의 경험의 발꿈치에도 못 따라가는 다른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그런데 사람이란 자기의 희망을 어느 선에다 멈추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채 실패해 버리는 법이다. 그리고 제 실력을 냉정하게 측량해 보려고도 하지 않고 한없는 희망에 기대를 걸다가 결국은 파멸하고 마는 것이다.(408∼411쪽)

 


 - 마키아벨리, 『군주론/정략론』, 《정략론》 제2권, <제27장 너무 과하게 바라다가는 본전도 못 찾게 된다>


(나의 생각)


마키아벨리가 달아놓은 제목만 봐도 너무 웃긴다. "너무 과하게 바라다가는 본전도 못 찾게 된다"니. 하기야 지금이라도 너무 늦지는 않지 않을까, 이리저리 재면서 뒤늦게 '본전'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


뭐? 아직도 아니라고?

 



 *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니콜로 마키아벨리



저자의 이름과 그 사람이 쓴 대표적인 작품의 이름, 이 두 가지만 딸랑 알고 있는 경우만 하더라도 도대체 얼마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인가.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겐 마키아벨리와 그가 쓴『군주론』도 그런 경우의 하나였다.


그런데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가볍게(?) 뛰어넘어서, 그보다 훨씬 더 묵직한『로마사론』속으로 풍덩 몸을 담그고 보니,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피렌체 사람인 마키아벨리가 내게는 어느새 몹시도 매혹적인 인물로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옴을 느끼게 된다. 그 이유는 앞으로 차차 밝히겠다.


그런데 나는 『군주론』과 『로마사론』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 먼저 이 책의 말미에 딸린 105쪽 분량의 <마키아벨리에 대하여>를 무려 세 번씩이나 거듭해서 읽는데 더 열을 올렸다. 내게는『군주론』보다 '군주론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들'이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거기엔 마키아벨리라는 이름에 항상 바싹 따라 붙게 마련인 사람들이 잔뜩 등장하는데, 그 인물들은 '이름'만 간략하게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벅찰 정도이다. 그들을 대충이라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플라톤(특히 『국가』와 『고르기아스』), 아리스토텔레스(『정치학』), 토마스 아퀴나스(『신학대전』), 단테(『신곡』), 페트라르카, 보카치오(『데카메론』), 레오나르도 다빈치(<모나리자>), 미켈란젤로(<천지창조>), 보티첼리<비너스의 탄생>,<봄>), 갈릴레이, 셰익스피어(<리처드 3세>). T.S.엘리엇, 볼테르, 루소, 헤겔, 야콥 부르크하르트(『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등


방금 언급한 인물과 작품들 가운데서도 앞서 이야기한 경우가 거듭 반복된다. 작가의 '이름과 작품명'만 아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운이 좋게도 오래 전에 '피렌체'를 한 번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비록 마키아벨리의 무덤까지는 찾아가지 못했지만 단테의 생가에는 들렀었다.(그런 경험 덕분인지는 몰라도 나중에 결국 단테의『신곡』도 읽었다.) 그리고 피렌체 땅을 밟았을 때만 하더라도 '과학자'가 확고한 꿈이었던 아들(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을 위해 갈릴레이의 무덤까지 데리고 가기도 했었다. 또 피렌체에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조각상도 봤고, (그보다 며칠 앞서) 로마에 들렀을 때에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려진 <천지창조>도 직접 봤었다. 그러니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자 '피렌체 사람'인 마키아벨리에 대한 이야기가 내게는 '이탈리아 여행의 추억'까지 곁들여 떠올리게 하는 것이어서 더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군주론』을 읽으면서 그동안 막연하게나마 '이름'만 들어왔던 체사레 보르지아를 마키아벨리의 생생한 필치로 직접 만나는 것도 반가웠고, 메디치 가문의 여러 인물들을 둘러싸고 급변하는 복잡한 정치 환경을 헤아려 가면서, 그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신의 혁신적인 정치 이론을 '현실에 접목하고자' 애쓰는 마키아벨리의 치밀한 연구를 살펴보는 일도 몹시 흥미로웠다. 하지만 『군주론』은 단기간에 너무 바쁘게 쓴 작품인 탓인지 '치밀한 논리 구성'이 돋보이는 웅장한 작품은 아닌 듯해서 약간 아쉬웠다. 냉혹하리만치 현실적이면서도 너무나 솔직한 표현들이 조금의 체면치레나 가식도 없이 그대로 서술된 문장들이 가득차 있어 놀라웠지만 단지 그 '규모'가 미흡하게 느껴졌다는 말이다.


그런데『로마사론』을 읽어 보니 과연 '섬광처럼 번뜩이는' 마키아벨리의 혜안이 곳곳에서 번뜩이는 모습과 함께 웅장한 대건축물을 바라보는 듯한 치밀한 구성에 금세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가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얼마나 깊이 읽었고, 그가 익힌 역사적 사례들을 '당대의 정치 현실'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시켜 관찰하려고 노력했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결국 그런 역사 연구를 통해 '동서고금을 통한 불변의 진리'에 아주 가까이 다가가려고 엄청나고도 진지한 노력을 기울였던 셈이고, 그런 통찰에 가장 도움을 준 인물이 바로 로마의 역사가였던 티투스 리비우스였다.



아니나 다를까. 마키아벨리의 생애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 또한 그가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만나는 장면이다. 마키아벨리의 어린 시절의 일은 수백 년 동안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가, 부친인 베르나르도의 《회상록》이 제2차 세계대전 뒤에 발견되면서 비로소 밝혀졌다고 한다. 그 기록에 따르면 1486년, 마키아벨리가 17살 때, 이버지를 대신하여 리비우스의 『로마사』의 제본을 제본소에서 받아온 대가로 포도주 3병과 식초 1병을 받았다고 한다. 마키아벨리가 훗날 가장 기댔던 인물이 리비우스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것도 하나의 '운명'이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는 실로 엄청난 역사서임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전해지지 않고 있다.


리비우스의 『도시의 건설로부터』 (Ab Urbe Condita)는 총 142권으로 되어 있다. 아이네이아스가 로마를 건설한 기원전 753년부터, 드루수스(Nero Claudius Drusus Germanicus) 장군이 죽은 기원전 9년까지, 총 745년의 역사를 기록한 참으로 방대한 역사서다. 불행하게도 35권만 현존하고, 거의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시기적으로는 1권에서 10권까지 기술된 기원전 753년부터 기원전 293년까지, 그리고 21권에서 45권까지 기술된 기원전 218년부터 기원전 167년까지가 남겨졌다. 비록 그 내용은 4세기에 만들어진 ‘요약’(Periochae)을 통해 전해지고 있지만, 이마저도 원래 책과 일치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 소실된 부분이 있다. 현존하는 저술을 통해 로마 공화정의 시작과 절정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리비우스 - 로마는 재건될 수 있을까? (정치철학 다시보기, 2016. 7. 15.)


마키아벨리가 쓴『로마사론』은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총 142권 가운데 현존하는 35권, 그 가운데서도 '초편 10권'에 대한 논의를 담고 있다. 미루어 짐작해 봐도 리비우스의 『로마사』는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방대한 작품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마키아벨리는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거의 줄줄 외우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의 문장을 책 속에 쉴 새 없이 쏟아내고 분석한다. 그가 살던 시대의 혼란스러운 정치 환경 때문에라도 그는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교훈을 얻기 위해서' 역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군주론』에서도 거듭 주장했듯이, "군주는 역사서를 읽고, 그것을 통해 위인이 남긴 행동을 고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티투스 리비우스를 언급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두 사람을 고르라면 나는 플루타르코스와 몽테뉴를 꼽고 싶다.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과 몽테뉴의 『수상록』도 내게는 '이름'만 알려진 작가로 머문 세월이 결코 짧지 않았다. 그나마 나는 '몽테뉴'의 경우에는 운이 아주 좋은 편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를 1980년 겨울에 만났는데 그 당시만 하더라도 나는 무려 '10대'였다! 그 때 그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인물들이 여럿 있으니 말이다. 플루타르코스와 티투스 리비우스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사람들인데, 몽테뉴는 그 두 사람을 특별히 좋아했다.

이야기의 흐름에서 살짝 비켜가기는 하지만, 마침 마키아벨리의 『로마사』에도 '플루타르코스'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그 대목을 여기에 잠깐 인용해 보고 싶다. 마키아벨리가 그 두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직접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로마 인민이 그 광대한 영역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의 실력이라기보다는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견해는, 최대의 역사가 플루타르코스를 비롯하여 많은 학자가 가지고 있던 것이다. 그 이유의 하나로서 플루타르코스는 다음의 내용을 들고 있다. 즉 '로마가 차지한 어느 승리를 보더라도 모두 행운에 의해 초래된 것이다'라고 로마 인민 스스로가 말하고 있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와 같은 행운이 초래된 것도, 인민이 다른 신은 다 두고라도 첫째로 '운명의 여신'의 신전 건립에 열중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티투스 리비우스도 플루타르코스의 이런 생각에 가까운 것 같다. 왜냐하면 그가 사서에서 로마인 등장 인물들의 입을 빌려 말했던 것을 검토해 볼 때, 로마가 가지고 있던 실력을 운이 좋다는 것과 결부시키지 않고 실력만을 운운하는 예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아무래도 이런 의견에 찬성할 마음이 나지 않는다. 또한 이런 의견에 가담할 사람도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그 까닭은, 로마 정도의 발전을 이룬 공화국이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따지고 보면 어떤 공화국이라도 로마와 같은 큰 목적을 향해 국가 체제를 정비한 자가 없었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대제국을 지배하여 다스렸던 것도 그 군사력 때문이고, 또 일단 성립한 대제국을 오랜 기간에 걸쳐서 유지해 나갈 수 있었던 것도 대국가를 운영해 나간 그 솜씨와 로마의 기초를 쌓은 사람이 궁리해 낸 독특한 방법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으로 충분히 지면을 할애할 작정이다.(312∼313쪽)

 - 마키아벨리, 『정략론(로마사론)』,
    제2권 제1장 <로마인이 광대한 영역을 확보한 것은 실력에 의해서인가, 아니면 운이 좋았기 때문인가>



티투스 리비우스와 플루타르코스에 대해서 덧보태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일례로,『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담긴 50명의 인물이 마키아벨리의 『로마사론』에 거의 다 등장할 정도인데, 그만큼 리비우스의 『로마사』는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과도 밀접하다. 플루타르코스가 리비우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 둘은 생몰연대도 매우 가깝다. 이 두 사람에게 매료되었던 마키아벨리와 몽테뉴도 생몰연대가 매우 가깝다.) 대략 이쯤에서 접어야 마땅하다 싶다. 왜냐하면 내게 이 글을 쓴 동기를 만들어 준 '글뭉치' 하나를 여기에 마저 꺼내 놓아야만 내가 이 글을 끝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가 여기서 자꾸만 더 옆길로 샌다면 이 글은 너무나 길어질 게 뻔하다.


내가 말하는 글뭉치는 바로 몽테뉴의 『수상록』에 담긴 '티투스 리비우스' 관련 기록이다. 물론 이 글뭉치는 내가 몇 년 전에 『몽테뉴 수상록』을 읽고 나서 후끈 마음이 달아 올라 내 마음 내키는 대로 필사해 둔 것이며, 이 글을 쓰기 위해 일부러 새로 첨가한 대목은 전혀 없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아예 몽테뉴의 『수상록』은 꺼내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런 글을 이런 식으로 쓸 수 있게 된 것도 다 '글뭉치' 때문이다.



 * * *


(몽테뉴의 수상록에 담긴 티투스 리비우스 관련글)


신념은 신의를 불러온다 144

너무 상냥하고 잘 살펴보는 예지는 고매한 사업에는 치명적인 적이다. 스키피오는 시팍스를 자기 편으로 만들려고 군대를 남겨 두고, 새로 정복해서 치안이 아직 의심스런 스페인을 떠나서 아프리카 땅으로 건너가던 때에, 단지 배 두 척을 가지고 적의 땅이며 야만인 왕의 세력권이고 신의도 믿을 길 없는 곳에, 아무 보증도 없이 인질도 잡아 두지 않고, 다만 자신의 위대한 용기와 자기 행운과 높은 희망이 약속하는 바를 믿고 뛰어들었다. "우리가 보여 주는 신념은 신의를 불러온다."(티투스 리비우스)



철학의 분석을 공부하게 173

나는 티투스 리비우스의 작품 속에 다른 사람이 읽지 못한 수백 가지 사물들을 읽었습니다. 플루타르크는 이 작품 속에 내가 읽을 수 있었던 것 외에도 수백 가지 사물들을 읽었고, 아마도 작가가 생각하던 것 이상의 사연을 읽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순수한 문법상의 공부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속에 우리들 천성의 가장 심오한 부분들이 침투되어 있는 철학의 분석을 공부하게 합니다.



건강을 가장 가벼운 병만큼도 느끼지 못한다 528

고통과 불행에 대해서 냉담하고 둔감한 취미를 갖는 것이 주는 편리함은 역시 그 결과로 해서 좋은 것과 유쾌한 것을 누리는 경우에도 예민하지 못하고 맛보지도 못하게 만드는 불편함을 이끌어 온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비참한 조건으로는 즐겨야 할 것보다도 피해야 할 일이 더 많고 극도의 탐락은 가벼운 고통만큼도 우리에게 느껴지지 않게 되어 있다. "인간은 고통보다도 쾌락의 감각이 적다." (티투스 리비우스) 우리는 건강을 가장 가벼운 병만큼도 느끼지 못한다.


속인과 어리석은 대중의 여론 688

한 아르팡의 토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한 나라 전체에서 사람 열두엇만 뽑아 내면 된다. 그리고 우리의 경향과 행동의 판단은 세상에 있을 수 있는 가장 어렵고 중대한 문제인데, 우리는 그것을 무지와 부정과 무절제의 원천인 속인과 어리석은 대중의 여론에 맡긴다. 한 현자의 인생을 광인들의 판단에 매이게 하다니, 그것이 될 말인가?

"군중의 의지보다 더 잴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티투스 리비우스)


사건을 기다려 보는 태도 870

나라가 동란에 빠지고 국민이 분열되어 있는 마당에 박쥐같이 휘뚝거리며 마음이 어느 편으로 움직이지도 기울어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나는 훌륭하다거나 명예롭다고 보지 않는다. "그것은 중도를 취함이 아니다. 그것은 어느 길도 취함이 아니다. 그것은 운의 편으로 넘어가기 위해서 사건을 기다려 보는 태도이다."(티투스 리비우스)


위험을 면하려는 열망 997

이것은 날마다 경험하는 바이지만, 우리가 위험을 면하려는 열망보다 더 위험한 경지에 빠지게 하는 일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이 위대한 장수의 증언이다. "대개 공포심이 덜할수록 위험을 덜 당한다."(티투스 리비우스)


부정(不正)의 극단적인 종류는 부정의가 정의로 간주되는 일 1161

플라톤은 마찬가지로 한 국가의 병폐를 고치려고 폭력으로 평화를 문란케 하는 일에 동의하지 않았고, 국민을 살육하고 피를 흘려 가며 하는 개혁을 용인하지 않았다. ······ 나는 이 방면에는 플라톤이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을 모를 때부터 플라톤주의자였다. ······

나는 이런 일에 참견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진심으로 이런 가장 못된 사태를 나쁜 방향으로 바꾸는 행위를 사회 개혁의 수단으로 택하며, 아주 확실하게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가장 명백한 원칙을 가지고 자기 영혼의 구제를 찾고, 하느님이 자기에게 맡겨 주신 정부와 관리와 법률을 둘러엎고, 어머니(조국)의 사지를 찢어서 옛날의 적에게 갉아먹게 던져 주고, 동포애를 골육상쟁의 증오심으로 채우고, 마귀와 광귀들을 원군으로 청하면서, 하나님의 법의 거룩한 평화와 정의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할 만큼 이해력이 우둔한 수작을 본 자가 하나라도 있을까 자주 의심을 품어 본다.


야심과 탐욕과 잔인성과 복수심은 그 자체로서 본연의 기세를 충분히 갖지 않았다. 그런 것을 정의와 신앙의 영광스런 자격으로 뜨겁게 해 주고 부채질해 주자. 도리에 어그러지고 흉악함이 합법적으로 되고, 관청의 허가를 얻어서 도덕의 망토를 입는 꼴보다 더 괴악한 사태를 상상해 볼 수는 없는 일이다. "미신보다 더 심한 기만은 없다. 그것은 신들을 구실 삼아 범죄를 은폐한다."(티투스 리비우스) 플라톤에 의하면 부정(不正)의 극단적인 종류는 부정의가 정의로 간주되는 일이다.

접힌 부분 펼치기 ▼

 

이 글을 마무리하고 뒤늦게 '사진 촬영'을 위해 몽테뉴 수상록을 꺼냈다가 거기서 정말 뜻밖에도 '마키아벨리'를 만났다. 난 정말 몽테뉴(1533∼1592)의 책 속에 마키아벨리(1469∼1527)가 언급되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몽테뉴를 만날 때까지만 해도 내 머리 속에 '마키아벨리'는 그저 그림자 같은 인물에 지나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마키아벨리 Machiavelli, Niccolo 1469∼1527 이탈리아 정치 사상가 · 역사가, 피렌체 출생. 인문주의 교육하에 그리스, 라틴 고전 작가를 섭렵함. 광범한 독서로 인간 심리를 깊이 규명, 현실과 시대 풍조를 명민(明敏)하게 관찰했다. 피렌체 공화 정부에 들어가 국가적 중대사가 일어날 때마다 외교 사절로서 절충 역할을 해냈음. 《군주론》을 제출하여 국가의 성격과 종류, 국가 권력의 획득 방법과 유지, 국가 상실의 이유 등을 전장(全章)에 걸쳐 논하고, 정치 활동의 법칙은 도덕과 종교에서 분리되어 순수한 정치적 행위와 그 경험에서 추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군주나 정치가에겐 목적 수행을 위해서라면 반도덕적 행위도 용납될 수 있다는 그의 사상에서 '마키아벨리즘'이란 어휘가 나왔다. 문학 분야에서는 여성을 조소하고 비난하는, 이탈리아 여러 도시를 풍자한, 《군주론》을 이상화한 여러 저술이 있다. 특히 《피렌체사(史)》전8권은 과학적 근대 역사의 시초라 함.(1296쪽)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인명 찾아보기> 중에서

 

펼친 부분 접기 ▲



 * *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호랑이 2017-02-25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각 개인의 평전도 뛰어나지만 다른 시대, 공간을 뛰어넘는 두 인물의 비교가 대단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이를 통해 역사의 순환, 반복 또는 다른 선택의 결과를 통해 많은 통찰을 준다고 여겨집니다. oren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oren 2017-02-25 23:38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플루타르코스가 절묘하게 짝지어 놓은 ‘대비 열전‘은 두 인물들에 대한 비교에서 역사가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이 가득차 있더군요. 각 인물들에 대한 아주 상세한 <전기>에 비해 <두 인물간의 비교>는 때때로 그 분량이 너무 적어서 도리어 아쉬움이 느껴질 때도 있더군요^^
 
땡스투는 살아 있다?

 


책에 대한 글을 쓸 때 좋은 점 한 가지는 '책 제목'을 슬쩍 비틀기만 해도 생각보다 이야기가 술술 풀린다는 점이다. 아무리 국어 시간을 재미 없게 보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모를 리는 없을 테니까 하는 말이다.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로 우리를 단번에 까닭모를 슬픔에 빠지게 만들었던 그 강렬한 문장들을 누가 모르겠는가. 어느날 문득 하늘을 우러러 보다가도 불현듯 찾아오는 '슬픔 한 조각'과 함께 그 산문 속을 나뒹굴던 슬픈 구절들을 다시금 떠올려 보지 못한 사람 또한 아예 없지는 않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을 바라보면서 문득 까닭모를 슬픔을 느낄 때, 우리가 "정원의 한 모퉁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를 떠올리고, 뒤이어 이어지는 안톤 슈낙의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라는 문장까지 다 떠올릴 필요도 없다. 그럴 땐 그냥 아무렇게나 슬픔 속에 그저 잠겨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가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어느날 문득 방 한 켠에 잔뜩 쌓아둔 '책의 무덤' 속에서 발견했다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억측이라고 나무랄지도 모르겠다. 사실이 그랬다. 그래서 나는 하릴없이 저런 이상한 제목을 내세워 그 이야기를 여기에 꺼내보는 것이다.

 

나도 한 때는 '알라딘 적립금'을 바라볼 때마다 슬픔에 잠길 때가 있었다. 사고 싶은 책들은 많은데 적립금은 늘 부족하기만 했으니까. 그렇다고 지금은 적립금이 너무 풍족하게 쌓여서 행복하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어떻게 그런 사람이 나타날 수가 있단 말인가.

 

며칠 전부터 알라딘으로부터 이상한 문자가 계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알라딘 마일리지 ***점이 곧 사라질 예정입니다.'

 

처음엔 무시했다. 그까짓 거 얼마나 된다고... 그런데 며칠 지나니 또다른 '소멸 예정 안내 메시지'가 들어온다. 그래도 무시했다. 소멸 예정일이 아직은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며칠 지나니 또다른 액수의 '소멸 예정 메시지'가 들어왔다.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자칫 어영부영하다가는 '진짜로' 마일리지를 허공에 날리는 수가 있었다. 그래서 서둘러 '마일리지'를 쓸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마일리지 등이 쌓인 적립금'이 생각보다 꽤나 많았다. 최근 몇 달 동안 책을 거의 사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제의 신간'에 대해서는 별다른 구매의욕을 느끼지 못하겠고, 오래된 책들 가운데 아직까지도 읽지 못한 책들이 너무 많으니, 새로운 책을 구태여 살피고 고를 생각도 별로 없었다.


이미 방 한켠에 쌓인 책탑도 늘 부담스러웠다. 나는 저 책들을 볼 때마다 '안정된 주거지'를 마련해 주고픈 생각이 간절하다. 저 책들을 볼 때마다 조금 안쓰럽다. 어딘지 모르게 한 켠으로 밀려난 듯한 느낌도 들고, 가끔씩은 '울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마저도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 책들이 바로 '나를 슬프게 하는 책들'이라고 단정지을 정도는 물론 아니다. 둘 사이에는 미묘한 감정의 차이가 있는 셈이다. 뭐라고 딱히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언제부터 저 책들이 저기에 내려앉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책들은 아직도 어디론가 떠나지 못해 늘 저기에 머무르고 있다. 주인이 자리를 잡아주기 전까지는 언제까지나 저기서 '하얀 탑'을 쌓아올리고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설명글을 달고 나니 문득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슬쩍 비튼 느낌도 든다. 어느새 '슬픔'이 밀려온다.)

 

'전망 좋은' 곳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꼿꼿이 서 있거나 혹은 (서 있는 책들 위에) 떠받들려 편히 누워 있는 다른 책들에 비해 저 책들의 신세는 얼마나 가련한가.


 

 

어쨌든 저렇게 책탑을 쌓고 누워 있는 책들 가운데서도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수두룩한데, 또 책을 사야 하다니 기가 막혔다! 마일리지가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어서 억지로 책을 사야 하는 '이상한 처지'에 갑자기 내몰린 것이다.

 

나는 여태 한 번도 책을 억지로 강요당하면서 사 본 기억이 없다. 책을 고르고 사는 일은 늘 즐거웠던 기억밖에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책을 골라 사는 일이 고역으로 뒤바뀌었다. 어쨌든 나는 책을 골라야 했다! 푼푼이 모은 돈을 한 푼이라도 잃지 않으려면 너무 늦지 않게 필사적으로 책을 골라야 했다. 그렇게 해서 고르고 고른 책들은 '언젠가는 내가 꼭 읽을 책들'이라고 기필코 확신하는 책들이 아니면 안 되었다. 그렇게 해서 어렵사리 다섯 권을 골랐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연극으로도 봤던 작품인데, 여태 읽어보지 못했다.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들을 읽을 때 사무엘 베케트가 마침 더블린 태생이자 제임스 조이스의 조수로도 일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깜짝 놀랬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를 쓴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는 니체의 책을 읽다가 알게 된 인물이다. 그 두 사람은 한때 스위스 바젤 대학에서 교수로 함께 활동했었다. 니체는 그의 강의에 매료되어 교수 신분이지만 학생들과 함께 그의 강의를 찾아 들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다. 부르크하르트의 책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정략론』을 살펴보다가 뜻밖에 다시 마주친 책이다. 부르크하르트는 마키아벨리에 대해 심도깊게 분석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의 『위인이란 무엇인가』는 예전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책인데, 이번에『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읽으면서 에머슨이 바로 그 책에 완전히 매료됐던 사람이란 걸 발견하고 결국 구입하게 되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언젠가는' 읽을 책이라서 아직은 틈나는 대로 계속 모으고 있는 중이다. '먼 훗날 읽을 책들'을 느릿느릿 장만해 가는 즐거움도 맛볼 겸.)


이렇게 심사숙고한 끝에 다섯 권을 골랐고 오래도록 쌓아놓기만 했던 적립금 잔액(83,930원)도 한 순간에 5,420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겨우 책 한 권 살 형편도 못 되는 적립금 잔액은 나를 다시 슬프게 한다! 'TTB 광고 간판'까지 만들어 몇 달 내내 내걸어 봐도 고작 10원밖에 벌어들이지 못하는 형편이니까 말이다.


내가 책을 주문할 때 'Thanks to' 버튼을 일일이 눌렀다는 점도 마저 밝히는 게 좋겠다. 비록 책을 구매하는 입장에 있는 나로서는 별다른 혜택이 없지만, 글 작성자에겐 '뜻밖의 소득'인 '땡스투 적립금'이 분명 쌓일 테고, 그 분들이 쓴 글 덕분에 내가 책을 구입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았다면, 책을 구매할 때 '땡스투 버튼'을 눌러주는 정도의 서비스는 마땅히 해드려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땡스투 적립금'이 나도 모르게 불어나 있을 때 맛보는 기쁨을 잘 알고 있으니까. 비록 1년 내내 쌓이는 적립금이라고 해봐야 『고도를 기다리며』한 권 사 볼 액수에 겨우 미칠까 말까 하지만.

 

2017-02-14[마이리뷰] 금융투기의 역사를 통해 인간의 미망을 살펴볼 수 있는 ...170원
2017-02-14[마이리뷰] 최근 500년 동안 지배적인 국가들의 경제적 상승과 쇠...180원
2017-02-10[마이리뷰] 단순한 발단에서 지극히 아름답고 경탄스러운 장관들이 생...110원
2017-02-04[마이페이퍼] 한 권의 책과 새로운 기원140원
2016-12-31 [100자평] 플루타르코스 영웅전300원
2016-12-31 [100자평] 몽테뉴 수상록170원
2016-12-20[마이페이퍼] 책을 읽는 순서에 대하여...90원
2016-12-18[마이페이퍼] 베버에 대한 몇 가지 오해_카를 마르크스의 '망령'과 ...100원
2016-12-15[마이페이퍼] 책을 읽는 순서에 대하여...90원
2016-12-14[마이페이퍼] 책을 읽는 순서에 대하여...80원
2016-11-11[마이리뷰] 워렌 버핏이 '투자에 관한 책 가운데 가장 훌륭하다'고...210원
2016-10-26 [100자평] 몽테뉴 수상록170원
2016-10-24[마이리뷰] 인류 최초의 동서간 대전쟁을 다룬 역사의 원전140원
2016-10-15[마이페이퍼]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읽기300원
2016-10-01[마이리뷰] '주식투자에서 성공하는 비결'은 생각보다 훨씬 쉽다는 ...210원
2016-09-09[마이페이퍼] 소포클레스의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300원
2016-09-03 [100자평] 시간의 화살, 시간의 순환190원
2016-08-29[마이페이퍼] '읽은 책' 한 권과 '읽고 있는 책' 한 권120원
2016-08-24[마이리뷰] 데모크리토스에 대하여...300원
2016-08-23[마이페이퍼] 밑줄긋기와 필사(筆寫)에 대하여...270원
2016-07-31[마이페이퍼] '나의 독서 통계'의 虛와 實210원
2016-07-20[마이페이퍼] 사진에 담아본 두꺼운 책들300원
2016-07-12[마이페이퍼] 볼테르와 키케로450원
2016-07-07[마이페이퍼] 해탈에 대하여...150원
2016-07-06[마이페이퍼] 해탈에 대하여...150원
2016-07-05[마이페이퍼] 제1부 : 호메로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210원
2016-06-04[마이페이퍼] 2016년 연주회 일정_예술의 전당180원
2016-04-29[마이페이퍼] 삶 자체가 소설이 된 남자의 이야기120원
2016-04-29 [100자평] 돈키호테 1150원
2016-04-13[마이리뷰] '역사적 순간들'의 드라마틱한 소설적 전개를 보여주는 ...120원
2016-03-29 [100자평] 시민의 불복종90원
2016-03-23[마이페이퍼] 어떤 공동체230원
2016-03-11[마이페이퍼] 2016년 연주회 일정_예술의 전당170원
2016-03-11[마이페이퍼] 영화 『동주』를 보고 나서...90원
2016-03-07[마이페이퍼] 소포클레스의 『트라키스 여인들』300원
2016-02-05[마이리뷰] 항상, 가끔, 대체로90원
2016-02-02[마이리뷰] '수많은 도시를 보고, 사람들의 마음을 알게 된 영웅'...260원
2016-01-15[마이리뷰] '수많은 도시를 보고, 사람들의 마음을 알게 된 영웅'...260원
2016-01-15[마이리뷰] 내 안에 잠자던 '불타는 의지'에 불을 붙이고, 제대로...470원
(오래 전에 쓴 글에 대해서까지 '땡스투' 버튼을 눌러준 분들께는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고마움'을 느낀다. 알라딘에 글을 써 올린 보람을 새삼 음미하는 순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내 방 한 켠에 쌓인 책들이 '다섯 권' 늘었다. 저 책들이 서로 누르고 눌리며 낑낑거리는 듯한 모습을 볼 때면 나도 가끔씩 저 책들이 내게 전해주는 알 수 없는 '무게' 때문에 '슬픔'을 느낀다. 내 방안에 머물고 있는 책들 가운데 저 책들보다 더 나를 슬프게 하는 책들은 별로 없다.

(가장 무거운 책들을 맨 아래에 쌓아 두는 게 맞겠다 싶지만 그게 뜻대로 지켜질 리는 없다. 아직은 책탑이 안정적인 자세를 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짓눌리는 책들한테 미안해서라도 이제 더 이상 쌓아올리기엔 무리다 싶다.)


 * * *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실 2017-02-16 15: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탑이 굉장합니다.
저두 한달에 한번은 구입해요. 언젠가 읽겠죠?

oren 2017-02-16 16:00   좋아요 2 | URL
언젠가는 읽히겠죠? 전부일 수는 없겠지만요.
언제 한번 날 잡아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책들을 왕창 내다버릴 궁리도 하고 있답니다^^

qualia 2017-02-17 14:05   좋아요 0 | URL
oren 님, 책 내다버리지 마세요. 헌책방에 갖다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도서관에 기증하는 것도 괜찮긴 하지만, 헌책방에 갖다주시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왜냐면 도서관에 기증하면 웬만한 책들은 거의 다 폐기처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한 대학도서관에 가서 어마어마한 양의 책을 고물폐지로 처분해 커다란 트럭으로 실어내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도서관이 좁아 소장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울나라 도서관 대부분이 자료 보관/기록 보존 ‘마인드’가 부족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심지어 수많은 책들을 땅 속에 묻어 폐기처분한 도서관도 있었다고 하죠. 그러나 헌책방에 갖다주시면 언젠가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사다가 읽게 될 것이란 얘기죠. 헌책방에선 폐기처분되는 불상사는 거의 없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헌)책들이 폐기처분되는 비극을 면하고 새 주인을 만나 삶을 이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oren 2017-02-17 15:43   좋아요 0 | URL
‘책의 보고‘여야 할 도서관에서 책을 그토록 야만스런 방식으로 매장한다는 얘기를 들으니 끔찍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내다버릴 책들은 ‘사 두고도 오래도록 읽지 않은 책들‘인데, 한때 화제를 모으면서 반짝 인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거의 잊혀진 책들이 많습니다. 헌책방에 갖다주면 흔쾌히 받아줄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qualia 님 말씀대로 해봐야겠습니다.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cyrus 2017-02-16 17: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땡스투 적립금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되니까 마음이 편했어요. 땡스투 적립금이 많이 받는 책은 독자들이 많이 보는 편입니다. 그래서 베스트셀러가 될 가능성이 높은 신간도서의 리뷰나 신간도서가 포함된 페이퍼가 땡스투 적립금을 받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간도서에 대한 소개가 한 줄 없는 페이퍼나 알라딘 책 소개를 똑같이 복사해서 붙여쓰는 페이퍼가 땡스투 적립금을 받는 상황이 솔직히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제가 이런 생각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면 올해도 미운 털 많이 박힐 겁니다. ㅎㅎㅎ

oren 2017-02-16 18:16   좋아요 1 | URL
구매자에게도 똑같이 지급했던 땡스투 적립금이 어느날 갑자기 글 작성자에게만 혜택을 주는 쪽으로 바뀐 건 지금도 여전히 아쉽더군요. 그렇게 제도가 절름발이 식으로 바뀌고 나서 ‘땡스투 적립금‘을 주목적으로 하는 불순한(?) 글쓰기가 많이 줄어든 점은 환영할 만했지만요^^

카스피 2017-02-16 1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정말 책탑 대단하시네요.개인적으로 사진속으 마하바라타가 제일 탐나네요^^

oren 2017-02-16 18:18   좋아요 1 | URL
『마하바라타』는 큰 맘 먹어야 읽을 수 있는 작품일 듯해서 아직은 저도 구경만 하고 있답니다^^

[그장소] 2017-02-16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남의책장은 보는 맛이 쏠쏠합니다~ 내려앉은 책들도 와~ 부럽고 좋네요. ( 응?) 내 책장도 아니건만..

oren 2017-02-16 18:20   좋아요 1 | URL
남의 책장 속에 담긴 책들은 슥~ 그냥 지나치기 쉽지 않더군요.
은근히 호기심을 자극하니까 말이지요^^

양철나무꾼 2017-02-16 18: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책들도 그렇지만 책탑을 저렇게 이쁘게 쌓을 수 있다니...
님을 존경하게 되는거 반, 제 자신을 반성하게 되는거 반...그렇습니다.
전에 서재 공개하는 페이퍼 때도 눈이 호강했는데, 요번에도 호사를 누리네요. 고맙습니다, 꾸벅~(__)

oren 2017-02-17 12:24   좋아요 1 | URL
책탑이 평상시에도 저런 모습일 리는 없겠지요.
사진에 담기 위해 이번에 자세를 조금 가다듬었다고 보셔도 됩니다^^

책읽는나무 2017-02-16 20: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늘 현학적인 리뷰를 읽을때마다 느껴지는 내공들이 서재와 책탑을 구경하다보니 역시!! 란 생각이 절로 듭니다^^
저도 양철나무꾼님처럼 깔끔하고 예쁘게 쌓아놓은 책탑에 감탄했습니다.
부러운 책들이 많습니다.
덕분에 구경하기 힘든 남의 귀한 책들 구경 잘하고 갑니다^^

oren 2017-02-17 13:28   좋아요 1 | URL
책읽는나무 님 반갑습니다^^ 글을 쓸 때마다 나도 모르게 베어드는 ‘현학적인 냄새‘를 어떻게든 줄여보려고 애를 쓰고는 있는데, 그게 여간해선 고치기 힘든 악습으로 어느새 굳어진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도 많답니다.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드려요^^
 
한 권의 책과 새로운 기원



내가 한창 '청춘'을 보낼 때의 일이 문득 떠오른다. 그때 나는 '책이라도 읽지 않으면' 뭔가 모를 불안을 느끼곤 했다.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갑작스레 병역을 마치기 위해 군에 입대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지금 한창 공부를 하고 있을 텐데, 나만 혼자 전방부대에서 낙오자처럼 뒤로 처져 허송세월을 보내는 게 아닌가 하는 막연한 걱정을 했더랬다. 그래서 그때 갑자기 책을 붙잡고 읽기 시작했다. 반쯤은 '공부삼아서' 그랬다고 쳐도 좋았다.


PX에서 구입한 대학노트를 낙서장 겸 '독서노트'로 삼았다. 언제 어디서 주워들은 문구인지는 몰라도 '칸트의 묘비명'까지 떡하니 내걸어 놓았다. 1984년 가을이었으니 상병 계급장은 달았을 듯하고, 전역을 1년 가량 앞둔 때였다.



(독서노트 앞표지를 넘기면 컬러 내지가 한 장 더 있었다. 거기에 내 소속/이름과 함께 저런 걸 적어 놓았었다.)


그 당시에 내가 주로 읽었던 책은 '삼성출판사'에서 나온《세계사상전집(전32권)》이었다. 그 책은 내가 입대하기 전에도 가끔씩 들춰본 적이 있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 앞에서 나와 함께 자취를 하던 형이 큰 맘 먹고 '전집'을 한꺼번에 마련해 놓은 덕분이었다. 나는 읽고 싶은 책들을 두어 권씩 골라서 형한테 편지를 보냈고, 형은 그때마다 그 책들을 어김없이 소포로 내게 보내줬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은 그 책들을 단 한 권도 간수하지 못했지만, 그 책들의 목록은 아직도 '독서노트'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독서노트'에 기록해 놓은 삼성출판사에서 나온《세계사상전집(전32권)》목록. 그 당시 책들은 대개 세로로 쓰여진 데다가 국한문 혼용이 기본이었다.)


이 때 읽었던 책들 가운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 책들은 아놀드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Ⅰ,Ⅱ』, 플라톤의 『국가』,『소크라테스의 변명』, 홉즈의 『리바이어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입분』, 막스 베버의『사회경제사』, 슘페터의 『자본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등이다. 그런데, 독서노트를 살펴 보면 내가 꼭 《세계사상전집》만 읽은 건 아니었다. 아무래도 '사상전집'보다는 '문학'이 훨씬 더 읽기 쉽고 재미있었으니 당연했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나서도 '독서 취향'은 그리 쉽게 변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이제는 어느덧 '책이라도 읽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은 괜한 불안감도 다 사라지고 없는데, 나는 아직도 여전히 《세계사상전집》류의 책들에 대해 좀처럼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 증거 가운데 하나가 2010.12.31 '독서노트'에 적어 놓은 메모이다.





오래 전에 내가 독파하리라 마음먹었던《세계사상전집(전32권)》은 어느새 홀연히 내 곁을 모두 떠나고 말았지만 나는 그 책들을 되찾지 못해 그렇게 안달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지금 내게는 다행히 그와 비슷한 역할을 떠맡아 주는 책들을 적잖이 갖고 있다. 그건 바로《동서문화사 월드북》이다.


여러 해 전에 나는 이 책들을 한꺼번에 몽땅 구입해서 동네 도서관에 기증한 적도 있었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전집의 권수가 179권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살펴보니 그 목록이 무려 259권으로 불어나 있다. 대략 5년 만에 80권이나 불어난 셈이다. 웃어야 좋을지 울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읽을 책들의 목록'이 풍성해지는 걸 못마땅하게 여길 이유는 별로 없을 듯하다. 죽기 전에 다 읽으라는 명령이라도 받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오늘 문득 심심풀이삼아 그 목록에서 내가 읽은 책들을 다시 꼽아 보니 대략 60권쯤 되는 듯하다. 까마득한 옛날 군복무 시절에 삼성출판사에서 나온《세계사상전집(전32권)》을 바라볼 때만 하더라도 저 많은 책들을 도대체 언제 다 읽을까 싶었는데 격세지감이 절로 든다. 그렇지만 저 목록에서 내가 숱하게 눈독을 들이고도 여태까지 읽지 못한 책들도 무려 200권 가량 남아있다고 생각하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과연 어느 세월에 나는 저 책들을 '제법' 읽을 만큼 읽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를 두고 간 님은 용서 하겠지만
날 버리고 가는 세월이야
정둘 곳 없어라 허전한 마음은
정답던 옛동산 찾는가


그래도 나는 희망마저 버리지는 않겠다. 그리고 나는 이미 스스로 위안을 얻는 방법까지도 일고 있다. 내가 이번에 기댈 사람은 예전에도 여러 차례 불러냈던 클리프턴 패디먼이다.


우리가 친구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면 서두르는 법이 없듯이, 이 책들도 서둘러 읽어서는 안 된다. 이 리스트는 '단번에 슥 훑어보는" 그런 리스트가 아니다. 엄청나게 풍요로운 의미가 담겨 있기에 평생에 걸쳐서 캐내야 하는 광산 같은 것이다.

 - 클리프턴 패디먼, 『평생독서계획』中에서

 


<2017년 2월 현재까지 내가 읽은 고전 가운데 '동서문화사 월드북 시리즈'와 겹치는 책들>
(다른 출판사의 판본을 통해 읽은 책들도 많지만 일부러 '월드북 시리즈'의 이미지와 상품으로 표시해 본 것임)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5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겨울호랑이 2017-02-11 0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ren님의 깊은 독서 성찰은 시간의 깊이와 여러 분야의 폭에서 나오게 되었음을 알게 되네요^^: 귀한 자료 통해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oren 2017-02-11 11:34   좋아요 1 | URL
차가운 겨울 바람을 맞으니 문득 ‘가고 없는 날들‘과 ‘떠나고 없는 책들‘ 생각이 간절했답니다. 그래서 옛날 추억을 더듬거리다가 이런 글까지 남겨보게 되는군요. ㅎㅎ

cyrus 2017-02-11 1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서문화사 월드북 시리즈 정도면 oren님 같은 애서가들이 한 번쯤 도전해볼만한 책입니다. 그런데 일부 어떤 책은 번역에 문제가 있고, 오자가 발견되기도 합니다. 특히 제가 읽은 동서문화서의 막심 고리키 선집은 최악이었습니다.

oren 2017-02-11 11:58   좋아요 3 | URL
저도 무작정 동서문화사 월드북을 추천하는 입장은 결코 아니랍니다. 다른 훌륭한 번역본을 도저히 찾기 어려울 때 <동서문화사 월드북>이 훌륭한 선택지가 되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답니다.(제가 지금 다시 살펴봐도 이 목록 가운데 <동서문화사 월드북>으로 읽은 책들은 몇 권 되지 않네요. 몽테뉴의 <수상록>, 쇼펜하우어의 책,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앙리 베르그송의 <웃음>, 다윈의 <종의기원>, 아우렐리우스와 키케로의 책,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정도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이상하게도 ‘번역‘때문에 책을 읽는 데 곤란함을 느껴본 적이 별로 없는데, cyrus 님께서는 밝은 눈으로 번역의 여러 문제점들을 찾아 주셔서 다른 독자분들이 책을 고르는 데 많은 도움을 드리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플라톤에게서조차도 흠을 찾아내는 사람에 대한 플루타르코스의 얘기는 이럴 때 한번쯤 들어볼 만하다 싶기도 합니다.^^
* * *
하지만 티마이오스가 그런 말을 《역사》에 쓴 까닭은 필리스투스 글에서 잘못된 점을 찾아내 고치게 하고,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에게서조차 흠을 찾아내는 그 사람의 글쟁이 기질 때문이리라.

나는 이처럼 문장 한 구절까지 따져가며 다른 사람 책과 경쟁을 일삼는 일은 어떤 경우에든 학식이나 자랑하려는 천박한 짓이라 여긴다. 더구나 그 대상이 우리로서는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뛰어난 작품일 때에는 더 의미 없는 일이 되리라.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니키아스 편> 중에서

qualia 2017-02-11 21:49   좋아요 2 | URL
oren 님의 플루타르코스 경구 인용은 저한테도 뜨끔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철학자와 편집자들의 주된 관심사와 업무 중 하나가 《문장 한 구절까지 따져가며》 《흠을 찾아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분석과 비판, 교정과 완벽 추구의 정신입니다. 따라서 플루타르코스의 경구는 맥락과 문맥을 살펴 다중적 의미로 이해하고, 부분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봅니다. 심지어 플루타르코스의 저러한 견해는 비판받을 여지도 있습니다.

철학자나 편집자가 아니더라도 일반 독자들 가운데는 아주 섬세하고 민감한 독서감각을 지닌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책을 《문장 한 구절까지 따져가며》 읽게 됩니다. 단지 따지기 위해, 흠을 찾아내기 위해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섬세하고 민감한 독서감각이 책이나 글을 그냥 읽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죠. 해서 그런 심성이 분석과 비판으로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겠죠.

oren 2017-02-12 00:49   좋아요 1 | URL
좋은 말씀입니다. 제가 부분적으로만 인용했던 플루타르코스의 문장은 전후 맥락을 모두 생략한 채 인용하기에는 조금 무리다 싶어서, 저도 인용하기 전에 여러 번 망설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역시나 제가 염려했던 대로 qualia 님께서는 바로 그런 부분들을 날카롭게 지적해 주셨구요. 어쨌든 플루타르코스가 저 문장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바를 제가 여기서 다시 정확하게 설명해 드리기는 힘들겠습니다만, 플루타르코스가 ‘티마이오스의 역사 서술 방식‘에 대해서 작심하고 신랄한 비판을 가했던 점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두드러진 부분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에게서조차 흠을 찾아내는 그 사람의 글쟁이 기질‘이 아니었나 싶구요. 그런데, 전혀 다른 측면에서 제 인용의 문제점을 생각해 보자면, 플루타르코스의 티마이오스에 대한 비판은 사실 ‘번역 비판‘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로 볼 수도 있겠지요. 어쨌든 제가 인용했던 부분의 앞뒤 여러 문장들을 다시 찬찬히 살펴 보니, 맥락으로 보아 앞서 인용했던 저 문장들과 두루 함께 살펴봐야 할 부분들이 참 많네요.. 그 가운데 앞부분만이라도 조금 더 덧붙여 ‘넓은 이해‘를 구해 보고 싶습니다.^^
* * *
그런데 투키디데스는 그 사건을 기록하면서 매우 처절하고도 생생한, 아름답고 세련된 묘사를 알맞게 사용해 읽는 이 마음을 움직였지만, 나는 그런 글재주와 다툴 생각은 없다. 또 나는 티마이오스가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하고 싶지도 않다. 그는《역사》를 기술해 투키디데스보다 뛰어난 문장력을 선보였고, 필리스투스를 군말이나 늘어놓는 초보자로 만들었다. 그는 두 역사가들이 이미 성공적으로 썼던 육지와 바다에서의 싸움에 대한 기록과 그들의 공개 연설들 안에 자기 묘사를 집어넣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시인 핀다로스 시구에 나오는 사람처럼 되었을 뿐이다.

맨발로 뛰며 리디아 전차와 경쟁하는 사람

그리고 나중에는 자신이 얼마나 치졸하고 어설픈 작가인가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마치 시인 디필루스 시구와 같다.

시킬리아산 비곗덩어리로 가득찬 둔한 머리

캐모마일 2017-02-11 1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저도 독서 노트를 만들어 보고 싶네요.
위 사진처럼 멋있는 서채에 수준 있는 고전은 아닐지라도
조금씩 실천해 가야겠네요.
귀감이 되는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oren 2017-02-12 00:44   좋아요 0 | URL
제 경험에 비춰봐서는, 독서 노트에 이런저런 흔적을 남겨보는 것도 꽤나 유익하더군요.

pb 2020-03-30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이버 블로그는 안하시나요?

- 2024-03-09 2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존경합니다 기록사진과 목록에 담긴 정성과 진심이 느껴지네요.. 은은하게요..
저도 고전부터 파려고 합니다. 두려움에 쫓겨사는 제 자신을 발견하고, 명상과 함께 스토아철학책들을 푹 익혀먹으려고 합니다. 오랜시간, 저보다 더 오래 살아남은 고전들은 그 이유가 있겠다고 생각하고요. 세네카의 이 인생론과 몽테뉴의 수상록으로 시작하려고요. 타타르인의 사막도요. 나심탈레브의 추천도서대로 읽고 있습니다. 말이 너무 많았네요 언젠가 한번 만나뵈었으면 좋겠습니다.

oren 2024-03-12 18:24   좋아요 0 | URL
정성이 가득한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고전의 향기‘ 따라 즐거운 독서 산책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영웅들의 ‘운명‘에 대하여



그들이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는 것은, 장래에 대해 확고한 생각을 갖지 않은 채 뭔가 다른 방법으로 장래의 지침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며, 또 그들이 사리사욕을 노리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불명예스런 일을 설득하려 하며, 좋지 않은 일에 관해 교묘하게 잘 둘러댈 수 없다고 생각해서 자신들의 반대자나 청중을 놀라게 하거나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중에서


 * * *


자신과 조국을 함께 동시에 저울에 올려 놓고 그 무게를 서로 비교하는 경우란 흔치 않다. 우선 자신이 그런 중차대한 판단을 내릴 만큼 높은 위치에 있어야 한다. 실제로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과 조국을 저울의 서로 다른 접시에 올려 놓고 나서, 자기 자신을 조국보다 더 중시하여 끝내 조국을 버리는 경우는 더욱 흔치 않다. 왜냐하면 대개 조국을 버리는 것이 결국 자신을 버리는 결과를 빚기 쉽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조국을 팔아넘기거나 심지어 조국에 엄청난 폭력을 가한 인물들이 예로부터 드물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결국 자기 자신을 파멸시킬 뿐이었다. 그래서 자신과 조국을 서로 다른 접시에 올려놓고 '저울질'을 했던 많은 사람들이 결국 그 둘을 다른 접시에 따로 올려놓는 일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먼저 깨닫고 나서, 조국을 위해 자기 자신부터 먼저 내려놓을 줄 알았다. 그런데, 기어코 조국을 짓밟아야만 자신이 살아날 수 있다고 한다면 그는 과연 어떻게 처신해야 옳을까?


눈치가 조금 빠른 사람이라면 그런 인물을 너무 멀리서 찾는 수고를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바로 지금 이 시간까지도 탄핵 심판을 받고 있는 현직 대한민국 대통령이 바로 그와 비슷한 처지에 내몰려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 살기 위해 검찰과 특검의 수사마저 갖은 핑계를 대며 회피한 채, 탄핵 심판마저 온갖 파렴치한 지연전술을 총동원하여 버티며 '기각 판정' 재판관들의 정족수 줄이기 게임에만 매달리는 모습만 보더라도 그를 달리 더 좋게 평가할 이유를 찾기 힘들다.(기각 정족수는 이미 네 명(4/9)에서 세 명(3/8)으로 줄어들었고, 3월 13일 이후에는 두 명(2/7)까지 줄어들게 된다. 재판관 두 명만 반대하면 대통령은 '탄핵'에서 벗어나 다시 권좌에 복귀한다!)

우리들의 코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직 대통령의 온갖 만행에 가까운 어리석은 행동들은 아마도 두고두고 역사에 길이 남을 듯하지만, 정작 피소추인과 그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은 그런 '먼 훗날의 평가'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할 겨를이 없는 듯하다. 우선 당장 자신의 안위부터 챙기기 바쁜 궁색한 처지에 내몰렸으니 일견 그럴 수밖에 없다손 치더라도, 대다수의 국민들 입장에서는 대통령의 '지극한 자기애(自己愛)'가 너무나 어이없게 느껴질 뿐이고, 대통령이 이미 저질러 놓은 추악한 범죄보다 그 이후에 조국과 국민을 대하는 반성없는 오만한 태도에 더욱 분노하게 되는 듯하다.

오로지 자신만 살기 위해 조국을 향해 아예 대놓고 폭력을 행사한 인물은 없었을까? 고대 로마의 코리올라누스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도 비극적이면서도 인간 심리의 미묘한 부분까지 다시금 헤아리게 만드는 아주 희귀한 본보기라는 점에서 특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던 듯하다.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그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 희곡 『코리올라누스』로 자신의 '최후의 비극'을 장식했고, 베토벤은 <코리올란 서곡>을 작곡했으며, T.S.엘리엇은 그 유명한『황무지』에 이 인물의 이야기를 기꺼이 담았을 정도였다.


코리올란 서곡(독일어: Ouvertüre Coriolan)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1807년에 하인리히 요제프 폰 콜린의 1804년 비극에 붙인 서곡이다. 코리올란 서곡의 주제와 구조는 보통 극의 진행을 따른다. C단조 주제는 코리올라누스의 결심과 호전성을 나타내며, E♭장조는 단념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소원을 나타낸다. 코리올라누스는 결국 이를 받아들이지만 로마의 문으로 옛 적들을 이끌고 돌아올 수 없었기에 자살하고 만다. 이 곡은 1807년 3월에 프란츠 요제프 폰 롭코비츠 공의 저택에서 열린 사설 연주회에서 초연되었다. 여기서 교향곡 4번피아노 협주곡 4번도 같이 초연되었다.(출처 : 위키백과)


나는 이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통해 처음 들었는데, 몇 번이나 그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써볼까 하다가 여태까지 미루고만 있었다. 『영웅전』을 마저 읽는 일이 훨씬 더 다급하고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그에 얽힌 이야기를 매우 상세하게 다뤄볼까 한다. 왜냐하면 코리올라누스의 이야기를 너무 간략하게만 풀어 놓으면 자칫 '코리올라누스와 로마 사이의 갈등의 원인'에 대해 여러모로 미묘한 오해를 갖기 쉽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배경 설명과 몇몇 묘한 상황들에 대한 설명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 인물은 순식간에 '악인'으로 낙인찍히기에 딱 알맞다. 그 자신에게도 그 나름대로는 아주 딱한 여러 사정들이 있었던 셈인데 말이다. 그런 면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도 비판적인 독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겠다 싶어 이야기를 짧게 줄이지 못했으니 그 점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한다.


코리올라누스에게 간청하는 어머니(Coriolan supplié par sa mère)
지오반니 프란체스코 바르비에리(1591∼1666년), 1643년, 캉 미술관 소장


그의 원래 이름은 카이우스 마르키우스였는데 '코리올리'에서 맹활약한 덕분에 코리올라누스라는 이름을 덧붙이게 되었다. 로마의 귀족이었던 마르키우스 가문에서는 이미 뛰어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해 오고 있었다. 코리올라누스는 홀어머니 아래서 자랐지만 그 점이 출세를 가로막거나 덕을 갖추는 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그즈음 로마에서는 무공을 가장 존중했는데, 마르키우스는 어릴 때부터 몸이 재빠르고 누구와 맞붙어 싸우더라도 지치는 일이 없었다. 그와 싸워서 패배한 사람들은 모두 마르키우스의 지칠 줄 모르는 강인한 체력 때문이라고 변명을 했다고 한다. 마르키우스는 아직 소년이었을 때부터 전쟁에 참가했는데, 그 무렵 크고 작은 전투 가운데 마르키우스가 월계관과 상을 받지 않은 싸움이 없을 정도로 용맹을 떨쳤다고 한다.


홀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다른 이들은 자기 이름을 떨치려고 싸웠지만, 마르키우스는 홀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싸웠다. 영광의 관을 머리에 쓴 그의 모습을 보고 어머니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안아주는 것이야말로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명예이자 행복이었다.

 


에파메이논다스도 자신이 레우크트라 전투에서 승리한 소식을 부모님이 살아 계신 동안 전할 수 있었던 게 생애 가장 큰 행복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 어머니 모두 살아 있었으므로,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더욱 행운이었다. 그러나 마르키우스는 홀어머니밖에 안 계셨으므로, 아버지께 드릴 애정까지 모두 어머니에게 쏟았다. 그는 어머니 뜻에 따라 아내를 맞이했으며, 자식이 생긴 뒤에도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416쪽)


 - 플루타르코스, 『플르타르코스 영웅전 Ⅰ』, <코리올라누스 편>

 

마르키우스가 아주 큰 세력과 권위를 얻었을 때 로마에서는 귀족과 평민 사이에 갈등이 컸다. 평민들은 빚 때문에 귀족들로부터 학대를 받았고, 원로원은 부유한 귀족들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웃 나라와 전쟁을 할 때 부유한 채권자들은 빚을 진 평민들에게 전쟁에 나가면 너그럽게 봐주겠다는 약속을 했고, 집정관도 원로원 명령에 따라 이를 보증했다. 그러나 평민들이 적을 무찌르고 돌아왔는데도 대우는 그대로였고, 원로원도 예전 약속을 잊은 듯 시치미를 뗐기 때문에, 도시 곳곳에선 싸움과 폭동이 일어났고, 이 혼란한 틈을 타 적들이 다시 쳐들어와 약탈을 일삼았다.


마침내 정부는 적령기의 남자를 모두 소집하는 공고를 냈으나 누구 한 사람 그에 응하지 않았다. 귀족들은 당황했고, 정부 요인들은 법률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서로 격렬하게 토론했다. 그러나 마르키우스는 이에 반대하는 입장에 섰다. 경제적 어려움은 논쟁의 요점이 될 수 없으며, 법에 맞서 들고일어나려는 평민들 시위는 하루빨리 진압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도저히 구제될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평민들은 한꺼번에 로마 시를 떠나 작은 산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들이 행진하면서 외친 구호는 이랬다.


"우리는 끊임없는 귀족들의 참혹한 횡포에 못 이겨 로마 시를 떠났다. 이탈리아는 물과 공기과 뼈를 묻을 땅쯤은 줄 것이다. 하지만 로마는 우리에게 귀족들을 위해 싸우다가 다치고 죽을 일밖에는 해준 게 없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원로원은 대중의 호감을 받고 있던 의원들을 보내 그들과 협상을 벌였다. 양쪽에서 의견 대립이 이어지다가 시민들은 마침내 원로원과 화해하기로 결정했다. 평민들 요구대로 해마다 평민 다섯 사람을 뽑아 호민관을 구성함으로써 평민들 권익을 지키게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최초의 호민관이 다섯 명 뽑혔고 그 가운데는 먼 훗날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살해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의 조상인 유니우스 브루투스도 있었다. 이때 마르키우스는 귀족들이 민중의 뜻에 따라 한발 물러선 일을 불쾌하게 여겼다.


그 무렵 로마는 볼스키와 싸우고 있었다. 로마 군대가 볼스키의 수도 코리올리를 포위했을 때, 마르키우스는 소규모 병력을 이끌고 볼스키에 대해 맹공을 퍼부었다. 그는 '카토가 전사의 모범이라고 칭송할 만큼' 힘과 용기와 체력이 뛰어났고, 목소리도 우렁찼다. 마르키우스의 활약 덕분에 로마군은 마침내 성을 함락했고, 많은 병사들은 약탈을 일삼기 바빴지만, 마르키우스는 집정관 부대가 진격한 길을 따라 볼스키군을 추격했다. 몹시 호전적인 적군의 주력부대와 맞선 마르키우스는 '너무 많은 피를 흘려 몸을 움직이기조차 힘들 정도로' 적군을 무수히 베어넘겼다. 병사들이 뒤로 물러나 휴식을 취하라고 권했지만 그는 "승리는 지치는 법이 없다"고 말하며 달아나는 적을 뒤쫓았다.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후 집정관 코미니우스는 전리품의 10분의 1을 그에게 상으로 내렸지만 마르키우스는 '명예는 돈으로 값어치를 따질 수 없다'며 이 모든 재물을 사양했다. 그리고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꼭 받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볼스키 사람 가운데 저와 가까운 친구가 하나 있는데, 지금은 포로가 되어 노예 처지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 친구가 노예로 팔려가는 불행을 제 힘으로 막을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의 사심없는 고결한 생각이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그들은 마르키우스가 세운 어떤 공보다도 그의 덕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 이 대목에서 플루타르코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재물을 옳게 쓰는 일은 무기를 잘 쓰는 일보다 어렵다. 하지만 재물을 바라지 않는 것은 재물을 옳게 쓰는 일보다 더욱더 어려우며 고귀하다.'


마르키우스를 향한 칭찬과 갈채의 소리가 가라앉자 로마 집정관이 조용히 꺼낸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전우들이여, 받기를 원하지 않는 이에게 억지로 선물을 주는 것은 예의가 아니오. 그러니 우리는 그가 차마 거절할 수 없는 것을 하나 선물하기로 합시다. 다름이 아니라, 코리올리에서 그의 활약을 잊지 않겠다는 뜻으로 코리올라누스라는 이름을 선물하자는 것이오."


이렇게 해서 마르키우스는 세 번째 이름을 갖게 되었다.


볼스키와 전쟁이 끝나자마자 평민들 사이에서는 또다시 다툼이 시작되었다. 전쟁 때문에 외국으로부터 식량을 들여올 길도 막혔고, 농토 대부분은 경작하지 않아 황무지가 된 상태였다. 먹을 만한 곡식이 없었으며, 곡식이 있더하더라도 그것을 살 돈이 없는 형편이었다. 선동가들은 귀족들이 일부러 민중에 대한 원한을 갚으려고 굶겨 죽이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다녔다.


이럴 때 마침 벨리트라이 시에서 사절단이 찾아와 자신들 도시를 로마 사람들에게 개방하겠으니 그곳에서 살 이주민을 보내달라는 말을 전했다. 최근에 전염병이 퍼져 시민이 전체 인구 가운데 10분의 1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때마침 식량 부족에 시달리는 로마 인구를 줄여야 했고, 또한 과격하게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람들을 내보냄으로써 나라 안의 걱정과 소란을 줄일 필요도 있었던 로마 정부는 불순분자들을 가려내 이민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이때 평민을 대표하는 호민관들은 이 계획에 격렬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정계 주요인물이 된 마르키우스는 민중을 선동한 사람들과 맞서면서 귀족들 편을 들었다. 그러면서 제비뽑기로 이민을 결정하고, 그 결과에 따르지 않으면 무거운 벌금을 내릴 것이라고 선포했다. 이렇게 해서 이민 계쇡은 예정대로 실시되었다. 하지만 민중들은 볼스키와의 전투에 출전하는 일만은 한사코 거부했다.


마르키우스는 자기 부하가 된 평민들과 몇몇 귀족들로 군대를 이루어 전투에 참가했고, 그곳에서 상당한 양의 곡식과 많은 전리품을 모았다. 값비싼 전리품들을 챙기고 돌아오는 병사들을 본 시민들은 전쟁터에 불참한 자기들 고집을 후회하면서도 부자가 된 사람들에게 질투를 느꼈다. 그와 더불어 마르키우스에게 반감을 가졌다. 그가 평민을 희생시키면서 자신의 권력과 명성을 얻는 데만 신경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뒤 머지않아 마르키우스는 집정관 후보로 나섰다. 그가 여러모로 가장 뛰어난 사람이었고, 민중들도 그가 나라를 위해 애썼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로마인들은 관직에 입후보하면 속옷을 입지 않은 토가 차림으로 포룸에 나와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표를 부탁하는 게 그 당시의 관례였다. 마르키우스도 다른 입후보자들이 했던 대로, 17년간 치른 수많은 전쟁에서 얻은 상처들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 보였다. 민중은 그 공적의 증거를 보고 모두 놀라며, 그를 집정관으로 뽑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정작 선거일이 되어 마르키우스가 원로원 의원들의 화려한 행렬을 이끌고 공회당에 나타났을 때, 모든 귀족이 그에게 관심을 드러내며 호응하는 것을 본 민중은 갑자기 그에게 질투와 분노를 느꼈다. 귀족들 세력을 등에 없은 자가 집정관이 되면, 그나마 자신들에게 남아 있는 조금의 자유까지 송두리째 빼앗길까봐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민중들은 끝내 마르키우스를 집정관으로 뽑지 않았고, 원로원 의원들은 마르키우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 집정관에 당선되자 마치 자기들이 모욕을 당한 것처럼 괴로워했다. 마르키우스 자신도 배신을 당했다는 생각에 격분했다.


고집을 부리지 않아야 고독해지지 않는다는 사실

그는 본디 강한 기질과 과격한 투쟁이 용기 있는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정치가에게 차분함과 성실함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플라톤 말처럼, 정치가는 사람들 속에서 고집을 부리지 않아야 고독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했다.

하지만 마르키우스는 자신의 행동 때문에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한다는 사실을 도무지 몰랐다. 그는 천성이 단순해 자기에게 반대하는 자를 쳐부수는 것이 용기라고 생각했다. 시민들의 원한을 폭발시킨 원인이 자신의 약한 의지에 있음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로마 귀족 청년들은 그의 권력에 마음이 뻇겨 언제나 마르키우스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해주었다. 마르키우스가 집정관에 오르지 못했을 떄에도, 귀족 젊은이들은 그의 뒤를 따라다니며 동정과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하지만 이처럼 맹목적인 충성은 마루키우스의 노여움을 더욱 부채질해 결과적으로 그에게 더 큰 해를 끼쳤을 뿐이다.(425쪽)


이렇게 한창 어수선한 상황에서 많은 곡식이 로마에 들어왔다. 시라쿠사를 지배하던 겔로가 선물로 보내온 것이었다. 사람들이 이 식량으로 최악의 궁핍한 생활을 벗어날 수 있으리라 믿고 기뻐했다. 이제는 물가도 내려갈 테고, 선물로 받은 곡식은 무료로 분배되리라는 희망을 품고서 시민들은 원로원 주위로 떼지어 기다렸다. 몇몇 원로원 의원들이 시민들 희망대로 선물받은 곡식을 무료로 나눠주자고 제안했을 때 마르키우스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대중을 편든 의원들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그들은 평민들 꽁무니나 따라다니며 아첨하는 자들이고, 귀족에 대한 반역자라고 주장했다.


마르키우스의 말에 따르면 원로원이 민중에게 그런 은혜를 베푸는 것은 그들의 오만과 횡포를 더욱 부채질하는 짓일 뿐이었다. 평민들에게 호민관처럼 높은 지위를 허락하는 바람에 그들이 이처럼 두려움없이 마음대로 날뛰게 되었고, 원로원이 자꾸만 요구를 들어주면서 마침내 시민들을 국가에 해를 끼치는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억제책은 시행되지 않아, 그들은 국가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으며 이제는 법을 무시하고 집정관 말도 듣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저 여기 모여 또다시 민중에게 곡식을 무료로 나눠줄 법령이나 결정하면서 마치 헬라스의 가장 민주적인 정권인 양 대처한다면, 민중의 오만은 더욱 자라나다 못해 끝내 나라를 파별로 이끌어 갈 거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마르키우스는 귀족 젊은이들과 많은 부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여들였다. 그들은 마르키우스가 어떠한 권력과 아첨에도 굴하지 않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나이 든 사람들은 그의 주장이 초래할 결과를 내다보고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 곧 민회가 열리고 심상치 않은 공기가 온 도시를 가득 채웠다. 마르키우스가 연설한 내용이 알려지자 시민들이 몹시 흥분해 들고 일어났던 것이다. 호민관들은 마르키우스에게 대표를 보내 민중 앞에 나와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마르키우스는 소환장을 갖고 온 대표들을 무시하고 상대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호민관들이 그를 강제로 끌어내려고 했다. 공회당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렇게 싸우는 동안 날이 저물어 싸움은 잠시 멈췄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부터 흥분한 민중들이 곳곳에서 몰려드는 것을 보고 집정관들은 다시 원로원 회의를 소집했다. 그들은 시가지 전체에서 폭동이 일어날까봐 겁이 났다. 집정관들은 합리적인 제안과 적절한 결의로 성난 민중을 누그러뜨릴 방법을 찾아 평민들을 열심히 설득했다. 평민들의 분노가 가라앉고 차츰 조용해지자 호민관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원로원이 생각을 바꾸었으니 민중도 원로원의 정당하고 공평한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그 대신 마르키우스에게 다음과 같은 혐의에 답변하라고 했다. 첫째는 호민관 제도를 없애라고 원로원을 부추겨 민중의 권리를 빼앗으려 한 사실, 둘째는 이에 대한 답변을 요구할 때 소환에 응하지 않은 사실, 셋째는 보안대원을 구타하고 모욕해 반란을 일으킨 사실이었다. 이러한 질문은 마르키우스를 굴복하게 하거나, 아니면 그와 민중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속셈에서 나온 것이었다.

마르키우스는 이러한 사항을 해명하기 위해 연단에 올라갔다. 민중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지며 마르키우스 말에 귀 기울였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한 것과는 달리 마르키우스는 사과의 말은커녕 호되게 민중을 꾸짖었으며, 얼굴 표정이나 말투에서 무시와 경멸의 태도가 고스란히 나타났다. 시민들은 분노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마르키우스를 사형에 처하기로

이때 호민관 가운데 가장 과격한 인물이었던 시킨니우스가 잠시 다른 호민관들과 모여 이 일을 의논하더니 갑자기 군중 앞에 나와 엄숙하게 마르키우스를 사형에 처하기로 결정했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보안대원들에게 그를 당장 타르페이아 바위로 끌고 가 절벽에서 던져버리라고 명령했다. 보안대원들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마르키우스 몸에 손을 대자 많은 사람들, 심지어는 평민들까지도 겁을 먹고 움츠러들었다.(427쪽)


이렇게 해서 귀족들과 호민관과 시민들 사이에 무질서와 혼란이 일어났고, 마르키우스는 귀족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위기에서 벗어나 재판받을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런데 귀족들 가운데에 민중의 요구에 적대적이었던 강경파들과 민중들에게 우호적이었던 온건파들 사이에서도 크나큰 의견 차이가 생겨 서로 다투게 되자 마르키우스는 스스로 호민관을 찾아갔다. 그는 호민관들에게 자기 죄목이 무었이며, 민중 앞에서 무엇을 변명하라고 강요하는지 그들 속내를 알고 싶다고 말했다. 호민관들은 그가 국가 찬탈을 기도했으니 탄핵받아 마땅하며, 독재정권을 세우려고 한 죄과를 고백하라고 말했다.


이윽고 재판이 열렸다. 호민관들은 마르키우스를 반역죄로 기소하려 했지만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자 죄목을 바꾸어 원로원에서 곡식의 시장가격을 낮추는 일에 그가 반대했던 것과 호민관 제도를 없애자고 주장했던 일을 끄집어내어 그를 몰아세웠다. 그리고 그가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국고로 들여오지 않고 부하들에게 나눠줬던 일을 들먹이며 새로운 죄목으로 덧붙였다.


웃음을 띤 사람은 평민이요, 슬픔에 젖어 있는 사람은 귀족

마침내 사람들 대부분은 그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마르키우스는 나라에서 영원히 추방되는 형벌을 받았다. 민중은 마치 큰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것처럼 기뻐했고, 원로원 의원들은 슬픔과 실망의 빛을 감추지 못했다. 평민에게 이토록 큰 권력을 줌으로써 무모한 힘을 행사하게 만든 것을 보고 그들은 후회에 빠져들었다. 그 무렵에는 귀족과 평민의 옷에 구별이 없었지만 이날만큼은 얼굴에 웃음을 띤 사람은 평민이요, 슬픔에 젖어 있는 사람은 귀족이라는 사실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430쪽)

하지만 정작 마르키우스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었다. 그 어디에도 굴욕을 당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이 친구들 모두가 걱정하며 안타까워했지만, 정작 마르키우스 자신은 본인의 불행에 대해 조금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고통에 불이 붙어 노여움으로 변할 때

하지만 그것은 마음이 평온해서도 아니고, 자기 행동을 반성하여 달게 받아들였기 때문도 아니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마르키우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엄청난 분노의 불길이 타올랐다. 냉정한 그의 태도가 큰 울분의 증후임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말하지만 고통에 불이 붙어 노여움으로 변할 때는 이미 좌절감이나 나약함이 사라지고 마는 것과도 같다. 열병에 걸린 사람의 정신이 갑자기 긴장되었다가 팽창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마르키우스가 이때 마음에 품고 있던 생각은 곧이어 행동으로 나타났다.(430쪽)

그는 집에 돌아가 슬픔으로 통곡하고 있는 아내와 어머니를 붙잡고 이 불행을 부디 잘 이겨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고는 곧장 귀족들 호위를 받으며 성문으로 갔다. 그는 아무것도 몸에 지니지 않고 요구하지도 않은 채, 부하 서너 명만 데리고 길을 떠났다.

며칠 동안 그는 어느 시골 마을에 머무르면서 분노에 사로잡힌 채 온갖 계획에 골몰해 있었다. 그는 오로지 로마에 어떻게 복수할까 궁리했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로 하여금 로마를 상대로 맹렬한 전쟁을 일으키도록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가 찾았던 나라는 다름아닌 볼스키였다. 그 나라는 지난번 전쟁에서 큰 패배를 당했으므로 로마에 원한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군대와 재물에 있어서도 막강하다는 사실을 마르키우스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찾아간 인물은 툴루스 아우피디우스라는 사람이었는데, 훌륭한 가문에 재산도 많았고 볼스키인들 사이에서 국왕이나 다름없는 존경과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분노와 싸우는 것은 너무나 힘겹다

마르키우스는 툴루스가 그 어떤 로마 사람보다 자기를 미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여태까지의 전투에서 몇 번이나 두 사람이 맞붙어 싸웠기에, 나라끼리 원수일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적개심이 짙게 깔려 있었던 것이다.

마르키우스는 툴루스가 너그러운 성격을 지녔지만, 로마에 복수할 기회만 주어진다면 그 어느 볼스키인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리라는 것을 잘 알았다. 아래 시에는 그 무렵 마르키우스 행동이 잘 표현되어 있다.

분노와 싸우는 것은 너무나 힘겹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 일을 하기 때문이다.(431쪽)

마르키우스는 해질 무렵에 툴루스 집으로 숨어들어가 부엌 아궁이 앞에 얼굴을 감싸고 앉아 있었다. 집안 사람들은 그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으나 그의 풍채에서 나오는 위엄에 눌려 감히 누구냐고 묻지도 못하고 툴루스에게 가서 이 일을 알렸다. 툴루스와 마주친 마르키우스는 그제야 얼굴을 드러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그 이름을 제외한 모든 것을 모조리 빼앗겼소

"툴루스 장군, 나를 알아보지 못하오? 아니면 알면서도 당신의 눈을 의심하고 있소? 그렇다면 스스로 정체를 밝히겠소. 나는 카이우스 마르키우스, 즉 볼스키 사람들에게 커다란 폐를 끼쳤던 장본인이오. 아마 코리올라누스라는 이름을 들으면 내가 볼스키의 원수임을 잘 알 수 있을 것이오. 이 이름은 이제 내 몸에 착 들러붙어 좀처럼 떼어낼 수가 없소. 그러나 나는 그 이름을 제외한 모든 것을 민중의 질투와 귀족들 배신으로 모조리 빼앗겼소. 나는 내 나라에서 추방되어 이곳까지 오게 되었소. 하지만 내가 장군을 찾아온 것은 나를 보호해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오. 죽음이 두려웠다면 내가 왜 하필 이곳에 찾아왔겠소? 나는 복수하기 위해 온 것이오. 당신에게 내 목숨을 밑기고, 나를 추방한 자들에게 복수를 하려고 하오. 그러니 툴루스 장군, 당신 적을 치려 한다면 여기 있는 나를 이용하시오. 그렇게 해서 나 한 사람의 불행을 볼스키 사람들 전체의 행복으로 바꾸시오. 나는 장군의 적으로서 싸웠던 것보다 장군을 위해 더 큰 승리를 거둘 것이오. 적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보다 더 유리한 법이니까 말이오. 그러나 만약 장군이 이제 전쟁을 더 할 생각이 없다면 차라리 나를 죽여주기 바라오. 과거에 장군의 적수였던 내가 이제 와서 충성을 보인다 해도, 그다지 이용 가치도 없는 사람을 오래 살려두는 것은 장군에게 쓸데없는 일일 것이오."(431∼432쪽)

이렇게 해서 마르키우스는 툴루스와 함께 볼스키 군대를 지휘하는 총지휘관이 되었다. 마르키우스는 볼스키가 전쟁 준비에 너무 많은 시일을 들여 공격 시기를 놓칠까봐 걱정스러웠다. 그는 다른 준비를 행정관과 시장에게 모두 맡기고, 자신은 가장 용감한 지원병들로만 군대를 조직해서 로마에 쳐들어갔다. 그 결과 너무나 많은 전리품을 얻어서, 진영에서 모두 써버릴 수도, 안티음으로 모두 가져갈 수도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마르키우스가 얻은 산더미 같은 전리품도, 그가 마음 내키는 대로 짓밟은 로마 영토도 그의 계획에 비하면 아주 작은 성과에 지나지 않았다.

귀족들을 시기하고 의심하게 만들어

그의 목적은 로마 민중으로 하여금 귀족들을 시기하고 의심하게 만들어, 그들의 관계를 완전히 벌려놓는 데 있었다. 그래서 그는 군인들을 보내 로마 시민들의 모든 농토와 재산을 약탈하고 파괴하는 한편, 귀족의 농장과 토지는 손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이렇게 해서 귀족과 민중 사이에 더욱 심한 비난과 다툼이 일어났다. 원로원은 마르키우스에 대한 억울한 판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생겼다며 평민들을 비난했고, 평민들은 귀족들이 원한과 복수심 때문에 일부러 마르키우스를 시켜 전쟁을 일으켰다고 의심했다. 또한 시민들이 전쟁터에서 싸우는 동안, 귀족들은 마르키우스에게 자신들의 재산을 지켜달라고 부탁하고서 편히 앉아 구경만 했다며 욕설을 퍼부었다. 게다가 귀족들은 전쟁 중임에도 토지와 재산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고 흥분했다.(435쪽)

볼스키 사람들은 차츰 두려움이 없어져 많은 로마군을 물리쳤다. 볼스키에서는 시민들이 앞다투어 전쟁에 참가하겠다고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마르키우스는 더욱 강력해진 군대를 이끌고 로마 식민지인 키르케이를 함락했고, 그곳을 지나 라티움 지방으로 들어가 마음대로 약탈을 일삼았다. 그리고 마침내 로마에서 12마일도 채 떨어져 있지 않은 도시 볼라이를 점령했다. 이때 마르키우스의 명성은 온 이탈리아를 떠들썩하게 할 정도였다.


라비니움은 아이네아스가 세운 최초의 도시

한편 로마는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휘청거렸다. 시민은 전쟁할 의욕을 잃었고, 서로에 대한 비난과 공격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 무렵 라비니움 시가 포위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라비니움은 아이네아스가 세운 최초의 도시로, 로마 수호신들의 초상과 보물이 보존되어 있어서 로마의 요람이며 성지처럼 여겨지는 곳이었다. 이러한 라비니움 시가 포위되었다는 소식은 로마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고, 이제껏 지니고 있던 생각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436쪽)

민중은 마르키우스에게 내린 추방 명령을 취소하고, 그를 로마로 돌아오게 하자고 요청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원로원 의원들이 도리어 이를 반대하고 민중이 올린 제안을 거부했다. 마르키우스가 민중의 환영 속에 귀국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르고, 민중에게서만 배척을 맏았으면서도 로마 전체를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한 마르키우스가 못마땅했을 수도 있었다.

이 소문을 들은 마르키우스는 더욱 분노했다. 그는 곧 라비니움 포위를 풀고 로마로 달려가, 바로 5마일 앞까지 진출해서 그곳에 진을 쳤다. 그가 이렇게 빨리 눈앞에까지 쳐들어온 것을 보고 로마 시민들은 공포와 혼란에 빠졌다. 원로원 의원들은 마르키우스를 불러 화해하라고 했던 평민들의 제안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원로원과 평민, 그리고 집정관이 만장일치로 마르키우스에게 사람을 보내 귀국을 종용했다. 원로원은 마르키우스에게 가는 사절을 모두 그의 친척이나 친구들 가운데에서 뽑았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는 크게 빗나가고 말았다.

30일의 여유

사절단이 적의 진지에 안내되어 들어갔을 때, 그들은 볼스키 사람들 가운데 앉아 있는 오만한 표정의 마르키우스를 발견했다. 그들은 공손한 태도로 자신들이 파견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자 마르키우스는 거만한 태도로 자기가 로마인들에게서 받은 학대를 신랄하게 늘어놓고 사절단들의 말마다 토를 달며 비꼬았다. 그러면서 지난번 전쟁에서 로마가 빼앗아 간 볼스키의 도시와 영토를 도로 내놓고, 로마에 있는 볼스키인을 라티움인과 똑같이 대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두 나라가 공평하고 정당한 조건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영원한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고 말헀다. 마르키우스는 그들에게 30일의 여유를 주고 그동안 결정을 내려 회답을 보내라고 했다.(437∼438쪽)

마르키우스가 군사를 거두어 로마 영토에서 물러나자 볼스키 사람들 가운데 내분이 일어났다. 그들은 마르키우스가 어떤 도시나 무기를 적에게 넘긴 것은 아니지만, 로마에서 철수한 일 자체가 실질적인 반역 행위라고 비난했다. 또한 30일의 시간을 로마에 주었는데, 그동안 적들이 방어 준비를 갖춰서 전세가 뒤바뀔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마르키우스는 그 30일 동안 단 한 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그는 로마 여러 동맹국을 공격하고 짓밟았으며, 가장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은 일곱 도시를 빼앗았다. 그리고 30일이 지나자 마르키우스는 또다시 전군을 이끌고 로마 가까이 갔다.

로마에서는 서둘러 사절을 마르키우스에게 보내, 노여움을 풀고 볼스키군을 철수시키면 양쪽 모두 이로울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마르키우스는 '3일 안에' 예전에 제시한 조건을 수락할 것을 요구했다. 사절 일행이 돌아와 원로원에 이를 보고하자, 로마는 폭풍우처럼 몰아닥치는 위기를 느꼈다. 마침내 성직자와 사제들이 행사 때 입는 제복을 입고 마르키우스에게 찾아가서 전쟁을 멈추고 휴전 조건을 협의했지만 아무런 소득 없이 되돌아갔다. 로마는 오직 혼란과 공포만이 떠돌았다.

이때 로마에서는 부녀자들이 날마다 신전에 나가 기도를 올렸는데, 그들 가운데는 로마를 위해 큰 일을 한 포플리콜라의 누이 발레리아도 있었다. 그녀는 다른 부인들과 함께 한달음에 마르키우스 어머니 볼룸니아의 집을 찾아갔다. 집안으로 들어간 여인들은 어린 손자를 무릎에 앉히고 며느리와 이야기를 나누던 볼룸니아를 발견하자, 자신들과 함께 마르키우스 장군을 찾아가지고 간청했다. 이에 볼룸니아 또한 그 간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녀는 아들을 찾아가서도 별 도리가 없다면 아들 발밑에 엎드려 로마를 위해 탄원하다가 죽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볼룸니아는 며느리 베르길리아와 손자들 손을 잡고 여인들과 함께 볼스키군 진영으로 걸어갔다. 볼스키군은 연민과 감동으로 아무 말도 못한 채 그들의 가련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지휘관들과 함께 단상에 앉아 있던 마르키우스도 마침내 맨 앞에 선 어머니를 발견하자 가슴 가득 차오르는 벅찬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급히 단상에서 뛰어내려가 어머니에게 절을 올리고 끌어안았다. 그 다음 아내와 자식들도 껴안았다. 그는 가족들을 어루만지는 손길도, 흐르는 눈물도 참아내지 못했다. 또한 북받쳐 오르는 격정도 억누를 길이 없었다. 그때 마르키우스가 그의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얘기는 다음과 같았다.

네가 끝내 한 나라의 파괴자가 되겠다면

아들아, 우리가 입은 옷이나 야윈 몸을 보면 네가 추방된 뒤로 어떤 생활을 해왔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게다. 네 앞에 있는 우리는 누구보다도 불행한 여인들이다. 우리가 가장 기뻐해야 할 이 순간이 운명의 장난으로 가장 두렵고 비참하게 되어버렸구나. 내 아들인 네가, 베르길리아 남편인 네가 조국의 수도를 포위한 모습을 보고 있단다. 다른 사람들은 불행 속에서도 신에게 기도를 드리며 위로와 구원을 구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런 기도조차 드릴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단다. 나는 우리나라가 이기고 너도 무사하라는 기도를 드릴 수가 없다. 너를 위해 기도드리는 일은 로마를 저주하는 것과 다름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네 아내와 자식들은 나라를 잃거나 그렇지 않으면 너를 잃어야 하는 슬픈 처지에 놓여 있다.

나는 이 전쟁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며 살고 싶지 않구나. 네가 너를 설득해 갈등과 적대감을 우정과 화합으로 바꿀 수 없다면, 네가 두 나라의 은인이 되기보다 끝내 한 나라의 파괴자가 되겠다면 널 낳아준 이 어미를 짓밟지 않고서는 로마로 들어갈 수 없다. 내 나라 사람들이 내 자식을 이기고 기뻐하거나, 내가 낳은 자식이 조국을 정복하고 기뻐하는 것을 살아서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너에게 볼스키 사람들을 배반하고 조국을 구하라고 부탁한다면 네가 난처한 처지가 될 것임을 나도 잘 안다. 그러나 동포에게 빈곤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야비한 짓이고, 우리를 믿는 사람들을 배반하는 것은 옳지 못한 행위이다. 하지만 우리는 오직 재앙을 막아달라는 것이다. 볼스키나 우리 어느 한쪽만 이기거나 지지 않도록, 두 나라가 함께 살아나기를 바랄 뿐이다. 이 일은 볼스키 쪽에 더 큰 영광과 명예가 될 것이다. 지금 볼스키 군 전세가 유리한 만큼 누가 보더라도 너그러움을 베푼 것이라고 여길 테니 그보다 더 영광스럽고 명예로운 일이 어디 있겠느냐. 만일 그런 영광을 얻게 된다면 두 나라 모두 너에게 고마워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너는 두 나라 국민들 비난을 한 몸에 받게 될 것이다.

전쟁의 결과란 늘 알 수 없는 법이지만 이번 전쟁에서 확실한 게 하나 있다. 로마를 이기면 너는 조국을 멸망시킨 원수가 되고, 볼스키가 지면 너를 아끼고 도와주신 이들의 은혜를 배반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이것들은 모두 너 한 사람의 원한과 분노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442∼443쪽)

마르키우스는 어머니가 말하는 동안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마르키우스가 입을 열지 않자 어머니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왜 아무 말도 없느냐

"아들아, 왜 아무 말도 없느냐? 분노에 모든 것을 양보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고, 이런 중대한 일로 애원하는 어미 말에 따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냐? 지난날 받았던 학대를 기억하는 것은 위대한 사람에게 어울리고, 부모에게서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명예와 존경으로 보답하는 것은 선하고 위대한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느냐?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을 그토록 무자비하게 벌했던 너라면, 그 누구보다 은혜를 소중히 여겨야 옳다. 너는 이미 네 나라에 벌을 주었다. 그러나 이 어미의 은혜에는 감사할 줄 모르는구나. 너에게 아직 신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부디 내 청을 들어주리라 믿는다. 그리고 말로는 안 된다면 이렇게라도 하는 수밖에 없구나."(443쪽)

이 말과 함께 그녀는 아들 발밑에 엎드렸다. 마르키우스 아내와 자식들도 이를 보고 똑같이 따라했다.

"오, 어머니, 이게 웬일이십니까?"

마르키우스는 소리치며 어머니를 부축해 일으키고는 그녀의 손을 힘주어 잡으며 말했다.

"어머니께서 이기셨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승리는 로마를 위해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저에게는 파멸입니다. 그 무엇에도 지지 않던 어머니의 아들을 마침내 보기 좋게 꺾어놓으셨습니다. 저는 이제 물러가겠습니다."

어머니와 그의 아내에 의해 무릎을 꿇은 코리올라누스 (Coriolan vaincu par sa femme et sa mère)

니콜라 푸생(1594∼1665), 니콜라 푸생 미술관 소장


이렇게 해서 사태는 모두 해결되었다. 어머니와 아내는 다시 로마로 돌아갔고, 볼스키 병사들은 로마에서 철수했다. 마르키우스의 행동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누구라도 그런 일을 겪는다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며 너그럽게 봐주었던 것이다. 그의 명령에 거역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까닭은 그의 권력에 억눌려서가 아니라, 모두 그의 덕망을 존경했기 때문이다.

한편 마르키우스가 군대를 되돌려 안티움으로 돌아오자, 오래전부터 그를 미워하고 시기하던 툴루스는 그를 없앨 음모를 꾸몄다. 이때를 놓치면 다시는 기회를 잡을 수 없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집회가 열리고 선동가들이 어리석은 군중 사이를 돌아다니며 마르키우스에게 좋지 않은 말들을 퍼뜨렸다. 그러자 마르키우스가 일어나 뛰어난 연설로 해명을 하자, 음모에 가담한 자들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몰라 마르키우스에게 달려들어 그 자리에서 그를 죽여버리고 말았다. 그의 죽음을 전해 들은 로마는 어떤 슬픔이나 존경도 나타내지 않았다고 한다.

플루타르코스가 <대비 열전>(<영웅전>의 원래 제목)에서 코리올라누스와 비교한 인물은 알키비아데스였다. 두 사람 모두 조국을 배반했고, 또 국외로 추방되었을 때 조국을 철저히 파괴했다는 사실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플루타르코스는 <알키비아데스와 코리올라누스의 비교>를 통해 '코리올라누스의 잘못'이 알키비아데스보다 훨씬 더 나빴다는 점을 매우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이 대목들을 살펴보면 플루타르코스가 얼마나 예리한 안목을 지닌 사람인가를 거듭 확인할 수 있다.

수치스러울 뿐만 아니라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

아테나이 현명한 사람들이 알키비아데스를 멸시하고 싫어했던 까닭은 그가 정치 생활을 할 때, 민중의 환심을 사기 위해 비열한 아첨과 저속한 유혹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르키우스는 그의 자부심과 귀족적인 태도와 더불어 정치 생활에서 보여준 교만 때문에 로마 시민의 미움을 받았다.

이러한 둘의 태도는 모두 옳지 못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민중 환심을 사기 위해 아첨하는 사람이 무례하게 구는 이보다는 낫다. 민중 앞에 머리를 숙임으로써 권력을 얻는 것도 수치스럽지만, 공포와 힘과 억압으로 권력을 지키는 일은 수치스러울 뿐만 아니라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이다.(447쪽)


'고독의 친구'인 자존심과 고집을 내세웠으므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죽음을 전해 들은 안티파트로스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분은 여러 장점을 갖추고 있었으며, 특히 남을 끌어들이는 힘이 뛰어났다'고 말했다. 그런데 마르키우스에게는 바로 이런 힘이 모자랐다. 그래서 그의 은혜를 받고 있던 사람들조차 그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플라톤이 말한, '고독의 친구'인 자존심과 고집을 내세웠으므로 좋은 목적으로 일을 하면서도 뭇사람들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449쪽)


어머니 말을 듣고 나라를 구할 게 아니라

알키비아데스는 자기 나라에 있을 때 정적을 눌렀기에, 비방하는 자들은 그가 없을 때에만 그를 공격할 수 있었다. 마르키우스는 로마에서 추방되고 볼스키에서 살해되었다. 부당한 죽음이긴 했지만 마르키우스 자신의 행동이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

만일 그가 전쟁을 시작함도, 그만둔 것도 자기 분노 때문이었다면 어머니 말을 듣고 나라를 구할 게 아니라, 조국을 구함으로써 어머니를 살리는 편이 훨씬 더 고귀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나 아내도 그가 포위했던 로마의 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사절단의 공식 제안과 사제들 기도는 거들떠보지 않다가 어머니 말만 듣고 군대를 철수시킨 것은, 어머니에 대한 존경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로마에 대한 모욕이었다. 이는 로마를 한 국가로 생각해서 구한 게 아니라 한 여자의 눈물을 보고 구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가 로마에 베푼 은혜는 어느 쪽에서 보아도 이치에 맞지 않고 무례한 일로 비칠 뿐이다.(449∼450쪽)

플루타르코스가 마지막으로 강조한 부분은 '코리올라누스의 성격상의 결함'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대목을 옮기는 나 자신도 여기서 다시 한번 흠칫 놀라게 된다. 그의 지적은 탄핵 심판을 코앞에 둔 우리의 현직 대통령을 두고 판단해 보더라도 그다지 틀려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사교적이지 못하고 교만하고 고집스러운 성격

이 모든 일의 원인은 마르키우스의 사교적이지 못하고 교만하고 고집스러운 성격에 있었다. 이런 성격의 사람들 눈에는 많은 사람들이 못마땅해 보인다. 또한 그 성격이 명예욕과 결합하면 화를 잘 내는 무자비한 사람이 된다.(450쪽)

플루타르코스가 <알키비아데스와 코리올라누스의 비교>에서 결론 삼아 지적하는 다음 대목은 한 나라의 지도자뿐만 아니라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일반인들에게도 얼마든지 적용이 가능한 얘기로 들린다.

사람들은 평판에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하면서도

사람들은 평판에 그리 신경 쓰지 않는다 하면서도 다른 이들 말에 무척 신경 쓴다. 그리고 좋은 평을 듣지 못하면 화를 낸다. 메텔루스, 아리스티데스, 에파메이논다스도 모두 평판에 무관심했는데 그것은 세상이 자신에게 무엇을 주든 빼앗든 전혀 개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그들은 몇 차례나 추방되거나 선거에서 떨어졌어도,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아도 조국에 대해 앙심을 품지는 않았다. 그리고 민중이 자신들에게 내린 처벌을 후회하고 다시 불렀을 때에는 곧바로 돌아와 민중과 화해했다. 대중의 평가에 크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들이 나쁜 평가를 해도 쉽사리 복수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영예로운 자리에 앉혀주지 않는다고 앙심을 품는 것은, 오직 영예를 얻으려고 하는 탐욕에서 나오는 행동이기 때문이다.(449쪽)

T. S. 엘리엇은 <황무지>에 담은 코리올라누스에 대해 '스스로의 감방에 갇힌 인간'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참으로 명쾌한 진단이 아닐 수 없다. 코리올라누스는 한때 로마에서 가장 뛰어난 장군으로 활약했지만 자신이 '집정관'에 뽑히지 못한 때부터 '민중들'을 미워하기 시작하더니 결국엔 '자신'을 위해 조국까지 배반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조국인 로마를 사랑했으나, 그보다는 자신의 명예를 훨씬 더 중시했음에 틀림없다.(코리올라누스에 비한다면 브루투스는 그와 얼마나 달랐던가. "왜 브루투스가 카이사르에 대항하여 그를 죽였는지 이유를 요구한다면, 이것이 저의 대답입니다. 카이사르에 대한 나의 사랑이 결코 모자라서가 아니라, 내가 로마를 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자신의 입장만을 가장 중시하고 앞세우는 인간이야말로 '오만의 극치'가 아니고 무엇일까. 코리올라누스는 바로 자기 자신만을 위해 행동하다가 스스로 몰락했고, 세월이 그토록 오래 지났어도 두고두고 '자기애의 화신'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 * *

































댓글(0) 먼댓글(1)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싸움과 구경꾼과 공명심에 대하여...
    from Value Investing 2017-12-26 12:13 
    백 배나 나쁜 것은 '관조하는 자들'이다. - 니체 * * * 싸움이 커질수록 구경꾼들은 많아진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그 '싸움'이 점점 더 커질수록 구경꾼만 많아지는 게 아니라 그 싸움에 함께 뛰어드는 사람들도 자연스레 많아지게 된다. 그렇게 해서 대개의 싸움은 '편싸움'으로 발전한다. 구경꾼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치 비양심적인 인물인냥 비춰지기 쉽고, 그걸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니체는 오래 전에 '관조하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