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이야말로 바로 철학의 대명사이다. 그 이름은 인류의 영광임과 동시에 어느 의미에서는 불명예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뒤에 나타난 로마인들도 앵글로색슨인들도 기본적으로는 플라톤이 개척한 사상의 틀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쓰는 문장의 박력은 마치 한꺼번에 떨어지는 별똥별의 엄청남을 생각하게 한다. 그 사고의 확고함은 마치 별들이 그 안정된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유연하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 에머슨, 『위인이란 무엇인가』, <철학자 플라톤>

 

 * * *

 

플라톤의 <대화편>은 얼핏 보면『논어』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둘 다 대화체로 쓰인 데다가, 사람 이름이 붙은 <대화편>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두 작품 모두 주된 화자가 '스승'인 공자와 소크라테스인데 반해 그들이 책을 직접 저술하지 않았다는 점도 닮았다.

 

플라톤의 대화편은 『논어』보다는 훨씬 방대해서 모두 56편에 이르는데, 그 가운데 특히 『법률』이 12편이고 『국가』도 10편을 차지한다. 그런데 『국가』와 『법률』을 각각 1권의 책으로 보고, 플라톤의 대화편을 총 <36편>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또 이걸 각각 주제별로 4부작으로 묶어서 총 9부작으로 재분류하는 사람도 있다.

 

그 많은 플라톤의 <대화편>을 대표하는 작품이 『국가』라는 작품이다. 이 책을 요약하는 설명은 거의 똑같다. '철인이 다스리는 이상 국가에 대해 논한 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대한 대화'를 주도한 소크라테스가 '이상 국가'에 이르는 수많은 곁가지 설명들을 아낌없이 펼쳐놓은 덕분에 이 책은 온갖 서양 사상의 원형들을 두루 폭넓게 담은 거대한 호수와 같은 책으로 변했다. 그러니 플라톤 이후에 등장한 거의 모든 '철학'이나 '정치사상'을 다룬 책들은 도무지 이 책을 벗어날 길이 없었고, 아무리 새로운 사상을 전개하려 애를 쓴 사상가라 하더라도 결국 이 책의 영향 아래로 끌려들어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단적으로 말해서 모든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원조가 바로 이 책이었으니까.

 

그런데 이 책이 다루는 주제가 워낙 방대한 데다가, 특히 초반부터 다소 빡세게(?) 전개되는 '정의와 불의'에 대한 까다로운 논의는 이 책에 대한 일종의 '진입장벽'이 된 듯한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이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이데아'를 설명하기 위한 그 유명한 '동굴의 비유'나 '태양의 비유' 등에 이르는 과정이 매우 험난하다는 느낌도 든다. 그러니 이 책의 중반부에서 전개되는 '까다로운 남녀 평등 문제'나 '아내와 자식들의 공유 문제'를 조심스레 다루는 부분은 아예 맛도 보지 못하는 독자들도 드물지는 않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이 까다롭고도 무거운 철학적 주제들을 숱하게 진지하게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일반 독자들에게까지 사랑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아무래도 플라톤의 뛰어난 산문 실력 때문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플라톤의 문답식 대화 속에는 알게 모르게 은근한 유머와 재치도 적잖이 숨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언어 유희까지도 구사되어 있을 정도로 문학적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문장을 읽으면 '소크라테스'는 갑자기 친숙한 이웃집 동네 아저씨처럼 돌변하고, 그가 들려주는 진지한 철학 이야기는 어느새 평범한 소시민들의 인생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기분마저 든다.

 

 

그래서 내가 말했네. "그의 생성과정은 다음과 같네. 그는 잘못 다스려지고 있는 나라에 살기에 명예나 관직이나 소송이나 그 밖에 그와 비슷한 일을 기피하며 성가신 일을 당하기보다는 차라리 손해 보기를 원하는 선량한 아버지의 젊은 아들일 경우가 종종 있네."

 

"그런 그가 어떻게 명예 지상 정체적인 인간이 된다는 거지요?" 하고 그가 물었네.

 

그래서 내가 대답했네. "첫째, 그는 어머니의 불평을 들음으로써 그런 인간이 되네. 어머니는 남편이 아무런 관직도 맡지 않아 다른 여자들 사이에서 자기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하네. 그다음, 어머니는 남편이 재물에도 별로 관심이 없고 사적인 송사에서나 공적인 집회에서 모욕을 당해도 대항하는 일 없이 그 모든 것을 태연히 참고 견디는 모습을 보고 있네. 어머니는 또한 남편의 생각이 언제나 그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있고, 아내인 자기를 무시하지도 않지만 존경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네. 이 모든 것에 화가 난 어머니가 아들에게 아버지는 남자답지 못하다는 둥 너무 안이하다는 둥, 그런 경우에 여자들이 흔히 늘어놓는 불평들을 쏟아내는 거지."

 

그러자 아데이만토스가 말했네. "여자들은 그런 불평을 많이 늘어놓는데, 그야말로 여자다운 불평들이지요."

 

그래서 내가 말했네. "또한 자네도 알다시피, 이런 집에서는 하인들도 가끔 호의를 가장하여 아버지가 듣지 않는 곳에서 아들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는다네. 하인들은 아버지가 채무자나 가해자에게 가혹하게 대하지 않는 것을 보고는 나중에 성인이 되면 이들을 응징하라고, 아버지보다 더 남자다운 남자가 되라고 아들을 부추기네. 마찬가지로 아들은 밖에 나가서도 시내에서 제 할 일만 하는 사람들은 바보라고 불리며 아무런 존경을 받지 못하는데, 그러지 않는 자들은 존경과 칭찬을 받는 것을 보고 듣네. 이와 같이 젊은이가 이 모든 것을 보고 듣는 한편, 아버지의 주장을 듣고 아버지의 생활태도를 가까이에서 보며 그것을 다른 사람들의 생활태도와 비교하게 되면, 그는 양쪽 모두에게 끌리게 되네. 말하자면 아버지는 그의 혼의 이성적인 부분을, 다른 사람들은 욕구적인 부분과 기개적인 부분을 키우는 거지. 그래서 그는 본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나쁜 사람들과 교제한 탓에 결국 양쪽으로 끌려서 그 중간에 자리 잡게 되네. 그리하여 그는 자신에 대한 지배권을 양쪽의 중간인 승리를 좋아하는 기개적인 부분에 맡기게 되어 교만하고 명예를 사랑하는 인간이 된다네."

 

"선생님께서는 그의 생성과정을 아주 정확하게 서술하신 것 같아요" 하고 그가 말했네.(449∼450쪽)

 

 - 플라톤, 『국가』, <제8권>

 

 

그런데 위와 같은 재미있는 대화를 읽다 보면 새삼 '소크라테스가 과연 저런 말을 저토록 천연덕스럽게 했을까' 싶은 의구심도 살짝 든다. 소크라테스야말로 인류가 배출한 최고로 지혜로운 사람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가정생활만큼은 '악처에게 내내 시달린' 사람으로 널리 인식되고 있으니까 하는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소크라테스는 '가정생활'에서 그리 높은 점수를 받을 위인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나아가서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이고 위엄을 갖춘 인물이었다. … 언젠가 알키비아데스가 그에게 집을 지으라며 넓은 땅을 제공해 주었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가령 내가 신발을 필요로 한다고 해서 자네가 나에게 직접 신발을 지어 신으라면서 무두질한 가죽을 제공해 준다 한들, 내가 그것을 받는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이 되겠는가."

 

또 그는 가게에서 팔리는 많은 물건들을 보면서 자주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다. "나에겐 얼마나 많은 것들이 필요치 않은 것일까?" 라고. 그리고 그 이암보스조의 시를 끊임없이 읊었던 것이다.

 

은 접시도, 자줏빛 옷도,

비극작가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살아가는 데는 쓸모없는 것들.

 

(100∼101쪽)

 

 -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 철학자 열전』

 

 

 

한편 아리스토텔레스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두 명의 여자를 아내로 두었다고도 한다. 즉, 최초의 아내는 크산티페로 그녀에게서는 람프로클레스를 얻었다. 두 번째 아내는 미르토로서 그녀는 '의인(義人)' 아리스테이데스의 딸이다. 그녀를 지참금 없이 얻었는데 이 아내에게서는 소프로니스코스와 메네크세노스가 태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최초로 결혼한 것은 미르토라고 하고, 또 두 사람을 동시에 아내로 두었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 아테네 사람은 인구가 부족했기 때문에 그 숫자를 늘리려고 결혼은 한 명의 아테네 시민 여성과 하지만, 자식은 다른 여성에게서 낳아도 괜찮다는 의결을 했으며, 그래서 소크라테스도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101쪽)

 

 -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 철학자 열전』 

 

 

 

나아가 그는, 사람은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이미 고령인데도 리라를 배우기 시작했다. 또한 크세노폰도 <향연>에서 쓰고 있는 것처럼 그는 춤을 계속했는데, 그것은 몸을 좋은 상태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만 빼고, 그것 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했다.

 

또한 아직 제철이 되지 않은 과일을 비싼 값에 산 사람들은 막상 그 계절이 오면 실망하기 마련이라고도 했다.

 

또 언젠가 청년의 덕은 무엇이냐는 물음에 "'도를 지나치지 말라'는 것이다"라고 그는 대답했다.

 

또한 에우리피데스가 그의 극 속에서 덕에 관해,

 

이런 것은 떠나가는 대로 놔두는 것이 제일이다.

 

라고 한 것을 읽고, 소크라테스는 달아난 노예를 찾지 못할 때는 찾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덕은 그런 식으로 잃어버린 채로 놔두는 것은 우스꽝스런 일이라고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극장에서 나가바렸다.

 

결혼하는 것인 나은 일일까, 아니면 하지 않는 편이 나을까 그에게 물었을 때, "어떻게 하든 자네는 후회할 것이다"라고 그는 대답했다.

 

그가 부자를 식사에 초대했을 때, 크산티페가 대접할 음식이 없음을 부끄러워하고 있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걱정할 것 없어. 소양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것으로 봐줄 것이고, 하찮은 사람들이라면 그런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마음을 쓸 필요는 없으니까" 라고.

 

그는 또한 다른 사람들은 먹기 위해 살아가지만, 자신은 살기 위해 먹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아내가 "당신은 부당하게 죽음을 당하려 하고 있어요" 라고 하자, "그렇다면 당신은 내가 정당하게 죽음을 당하기를 바라고 있었던가 보군" 이라고 대답했다.(104∼105쪽)

 

 -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 철학자 열전』 

 

 

 

처음엔 잔뜩 잔소리를 퍼붓다가 나중에는 그에게 물을 끼얹기까지 했던 크산티페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 봐, 내 그동안 수없이 말하지 않았나. 크산티페가 징징 울기 시작하면 비를 내리게 한다고."

 

크산티페가 잔소리를 해대기 시작하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알키비아데스가 말한 것에 대해서는, "아니, 나는 이제 완전히 익숙해졌어. 도르래가 삐걱삐걱 계속해서 돌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

 

"그리고 자네도"라고 그는 말을 이었다. "거위가 꽥꽥 우는 것을 참고 있지 않은가." 그러자 알키비아데스가, "하지만 거위는 나에게 알과 병아리를 낳아줍니다" 라고 하자, "나에게도 크산티페는 자식을 낳아 주었다네" 라고 소크라테스는 되받았다.

 

그는 자주 기질이 억센 여자와 함께 사는 것은 마치 기수가 야생마와 지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기수들이 이들 말을 길들이고 나면 다른 말도 쉽게 탈 수 있는 것처럼 나도 그와 같아서 크산티페와 사노라면 다른 사람들과는 원만히 지낼 수 잇을 거야" 라고 말했던 것이다.

 

위의 내용 및 이와 비슷한 것이 소크라테스가 말하거나 행한 것들이다. 이는 퓨티아(무녀)가 (아폴론의 신탁을 묻는) 카이레폰에서

 

소크라테스야말로 모든 사람들 가운데 가장 현명한 사람

 

이라는 저 유명한 대답을 했을 때 증명된 사실이다.(106∼107쪽)

 

 -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 철학자 열전』 

 

 

한편, 플라톤의 『국가』는 유독 시인에 대한 가혹한 비판이 담긴 책으로도 유명한데, 특히 호메로스의 싯구들을 조목조목 끌어다 놓으면서, "우리는 호메로스와 다른 시인이 신들에 대해 무식하게 다음과 같은 실언을 하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 되네." 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한다. 오죽하면 니체가 이런 플라톤을 두고 '유럽이 낳은 예술의 가장 강력한 적'이라고까지 표현했을까.

 

어쨌든 호메로스에 대한 불타는 경쟁심 때문에 플라톤은 한동안 시를 쓰기도 했고, 나중에는 비극까지도 썼다고 전해지는데, 그가 문학의 꿈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철학으로 돌아선 결정적인 계기는 물론 소크라테스 때문이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꿈속에서 새끼백조를 무릎에 안고 있었는데, 그것이 순식간에 깃이 생기고, 날카롭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지저귀면서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런 다음날 플라톤이 그에게 제자로 들어왔으므로 이 사람이야말로 꿈에서 보았던 그 새가 틀림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한편 알렉산드로스가 <철학자들의 계보>에서 쓰고 있는 것처럼 그는 처음엔 아카데메이아에서, 이어 코로노스산 부근의 정원에서 헤라클레이토스의 주장을 받들어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뒤에 비극을 놓고 상을 다투던 때에 디오니소스의 극장 앞에서 소크라테스에게 매료되어 시 작품을 불속에 던져 넣고 이렇게 말했다.

 

헤파이스토스여, 이리로 와주십시오.

플라톤은 지금 당신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 20살이었던 그는 그 뒤로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었다.(179쪽)

 

 -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그리스 철학자 열전』 

 

 

『그리스 철학자 열전』을 쓴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손수 지은 플라톤의 비문은 다음과 같다.

 

포이보스(아폴론)가 헬라스땅에 플라톤을 태어나게 하지 않았더라면,

인간들의 영혼을 글자로서 어찌 치유할 수 있었으랴!

포이보스에 의해 태어난 아스클레피오스가 몸의 의사인 것과 같이,

플라톤, 영원히 죽지 않는 영혼의 의사일지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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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8-01-08 2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 볼 때 마다 읽고 싶음 책이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oren 2018-01-08 22:24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을 사 놓고 가끔씩 펼쳐보기만 했을 뿐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생각을 하지는 못했었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볼 때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말이 떠올라 괴로울 때도 있었고요.^^
* * *
내가 플라톤의 이름을 듣고도 끝내 그의 저서를 읽지 않을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플라톤이 바로 우리 마을 사람인데도 내가 그를 한 번도 만나본 일이 없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이며, 그가 바로 옆집 사람인데도 그의 말을 들어보지 못하고 그 말의 예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런데 실상은 어떠한가? 플라톤의 《대화편》은 그의 영원불멸한 지혜를 담은 책이며 바로 옆 선반에 놓여 있는데도 나는 그 책을 거의 들추지 않는다. - 『월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