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단위는 단순한 약속일 뿐이야. 시간에는 눈금이 없지. 세기가 바뀔 때 총을 쏜다거나 종을 울린다든지 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뿐이야.

 - 토마스 만, 『마의 산』중에서

 

 * * *

 

연말이다. 다시는 못 볼 2017년의 끄트머리에 바싹 다가섰지만 이 순간들을 음미하는 사람들의 감흥만큼은 조금의 공통점도 없을 듯하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시간이 주어지지만 그걸 쓰는 사람들은 저마다 다 다르게 쓰니까 말이다.

 

사실 '시간'이란 '공간'처럼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시간은 흐른다고 생각하지만 '흐르는 시간'을 직접 눈으로 봤던 사람은 이제까지 아무도 없었다. 단지 시간이 흐른다고 느낄 뿐이다. 그래서 토마스 만도 소설 속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이다.

 

우리는 시간을, 순전히 시간 그 자체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정말이지, 아니다, 그것은 말도 안 되는 바보 같은 짓이다. '시간이 지나갔고, 시간이 경과했으며, 시간이 흘러갔다.' 건전한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를 결코 이야기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똑같은 음이나 화음을 한 시간 동안 미친 듯이 계속 울려 대고는 이를 음악이라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 토마스 만, 『마의 산』 중에서

 

그런데 아주 많은 사람들이 '시간'을 위대하다고 말했다. 아담 스미스는 '저 위대한 판관'이라고까지 극찬할 정도였다. 시간이 결국 모든 걸 밝혀주니까. 그 누구도 해결하지 못하는 수많은 어려운 일들을 아주 능숙하게 처리하는 일꾼 또한 시간이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모든 게 잊혀지니까.

 

그렇지만 인간은 잊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쓰기도 한다. 오늘날과 같은 극히 복잡다단한 삶을 사는 현대인에게만 '기록'이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절해고도에서 홀로 십수 년을 살았던 로빈슨 크루소도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애썼다. 무인도에서는 조금만 방심하더라도 날짜나 연도조차 잊기 쉬웠으니까. 자신의 나이는 말할 것도 없었다.

 

섬에 온 지 열흘 내지 열이틀이 지났을 때 책과 펜, 잉크가 없으니 날짜 계산을 못하고 심지어 평일과 안식일도 구분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일을 방지하려고 나이프로 커다란 나무 기둥에 대문자로 도착한 날짜를 새겨 넣었다. 그리고 그 기둥을 십자가 모양으로 만들어서 내가 처음 착륙했던 해변에 세워 놓았다. 나는 거기에 <1659년 9월 30일 처음 섬에 도착하다>라고 새겼다. 그리고 이 네모난 기둥 양 옆면에 매일 칼로 금을 새겨 날짜를 기록했다. 일주일때 되는 날은 다른 날보다 좀 더 길게 금을 새겼고, 매달 초하루도 그날만큼 길게 새겼다.

 

 -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중에서

 

 

월든 호숫가에서 몇 년 동안 홀로 살았던 헨리 데이빗 소로우도 다니엘 디포를 열심히 읽었다. 로빈슨 크로소야말로 '외딴 생활'을 막 시작하려는 그에게는 온갖 훌륭한 지침을 제공해줄 '인생 선배'였기 때문이었다.

 

 

어떤 날씨에나, 낮이나 밤 어떤 시간에나 나는 시간의 홈을 활용하고 그 순간을 내 지팡이86에도 표시해두고 싶었다. 달리 말하면, 과거와 미래라는 두 영원이 만나는 점,87 요컨대 현재의 순간에 서고 싶었고, 현재라는 출발선에 발끝을 대고 서고 싶었다. (52쪽)


주석

86. 소로는 측량하기 위해 눈금이 새겨진 막대를 갖고 다녔지만, 여기에서는 대니얼 디포(Daniel Defoe, 1660-1731)의 로빈슨 크루소를 빗댄 표현이다. 크루소는 나무 기둥에 눈금을 새겨 시간을 기록했다. 소로는 일기에서도 "로빈슨 크루소가 막대기에 매일 표식을 했듯이, 우리는 매일 우리의 품성에 눈금을 매겨야 한다"(일기 1:220)라고 썼다. 소로는 자급자족하며 독립된 삶을 살았던 크루소에게 매력을 느꼈던지 「커타딘 산」과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일주일」에서 거듭 크루소에 대해 언급했다.

87. 토머스 모어(Thomas Moore, 1779-1852)가 동양의 화려한 분위기를 배경으로 삼아 쓴 이야기체 시 「랄라 루크」에서 "과거와 미래-두 영원! / 두 끝없는 바다 사이의 이 좁은 지협"을 빗댄 표현으로 여겨진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주석 달린 월든』 중에서

 

 

이처럼 '시간의 눈금'은 모두에게 중요하고 또 모든 걸 '구분'한다. 그러므로 해가 바뀌면 그저 '아라비아 숫자' 하나만 딸랑 바뀌지 않는다. 달력이나 다이어리만 새걸로 바뀌는 게 아니다. 모든 사람의 나이가 순식간에 다 바뀌고 심지어 책마저도 나이를 먹는다. 어느 한 순간에 말이다.

 

유독 이맘때 알라딘이 고맙게 느껴지는 점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독서생활에 필요한 눈금들'을 비교적 정확하게 알려준다는 점이다. 해가 바뀌면 바뀌는 대로 딱딱 '통계'까지 내어 준다. 심지어는 내가 해마다 작성한 글자의 숫자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준다. 그 글자를 소설책으로 환산하면 몇 권의 책이 되는지까지도.

 

오래도록 알라딘을 꾸준히 이용해 온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자신들의 과거를 되돌아볼 만하지 싶다. 이토록 친절한 알라딘이 아니라면 과연 어디서 이런 정직한 통계를 구할 생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연말모임도 다 끝나고 모처럼 한가하니 이런  그래프도 그려보게 된다. 모든 통계들이 들쭉날쭉이지만 마지막 통계 하나만큼은 '우상향 추세'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어서 큰 위안이다. 미우나 고우나 제 글에 대해 기꺼이 '좋아요'를 눌러주신 모든 분들께 크나큰 행운이 함께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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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라딘 통계 2018
    from Value Investing 2018-12-20 01:00 
    시간 단위는 단순한 약속일 뿐이야. 시간에는 눈금이 없지. 세기가 바뀔 때 총을 쏜다거나 종을 울린다든지 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뿐이야. - 토마스 만, 『마의 산』중에서 * * * 올해 연말은 기분이 영 꿀꿀하다. 그렇다고 올해 빼고는 매년 연말마다 기분이 뿌듯했던 것도 아니다. 올핸 경제도 연말로 올수록 점점 더 내려앉는 듯한 느낌인 데다가, 기분 좋은 뉴스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구경조차 하기 어렵다. 오늘은 괜히(?) 알라딘에 들어 왔다가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