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철학적 품성들

 

"철학적 품성들은 철학에 가장 어울리는 배필인데도, 철학은 그들에게 이렇게 버림받고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채 홀로 남게 되네. 그 결과 그들은 그들대로 자신들에게 맞지도 않고 건실하지도 않은 생활을 하는가 하면, 친척 없는 고아나 다름없어진 철학은 철학대로 어울리지도 않는 엉뚱한 자들을 만나 욕을 보게 되고, 자네 말처럼 철학 비방자들이 철학에 퍼붓는다는 그런 비난을 받게 된다네. 철학과 함께하는 자들은 더러는 무용지물이고, 대부분은 갖은 고생을 겪어 마땅한 자들이라는 비난 말일세."

 

"아닌 게 아니라 철학 비방자들은 대개 그렇게 말하지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세. 그도 그럴 것이, 보잘것없는 인간들은 아름다운 이름들과 장식으로 가득한 이곳이 비어 있는 것을 보면 마치 감옥에서 신전으로 도주하는 죄수들처럼, 자기들의 전문 기술을 버리고는 얼씨구나 잘됐다 하고 철학으로 뛰어들기 때문이네. 그런데 이들은 자기들의 전문 기술에서는 가장 유능한 자들이네. 그들이 그러는 이유는 철학이 비록 이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해도 다른 전문 기술에 견주면 아직도 높은 명망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네. 그래서 품성이 불완전할뿐더러 마치 몸이 기술과 직업으로 망가친 것처럼 그런 기술이 지니게 마련인 천한 성격 때문에 혼까지 불구가 된 수많은 사람들을 이 명망이 유인하는 것이라네. 그게 당연하지 않은가?"

 

"물론 당연하지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이들은 방금 감옥에서 풀려나와 목욕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신랑처럼 차려입고는, 주인 딸이 고아가 된 것을 기화로 그녀와 결혼하려고 하는 돈 많은 작은 몸집의 대머리 땜장이와 비슷해 보이는데, 자네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무 차이도 없어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런 부모한테서는 어떤 자식들이 태어날 것 같은가? 서자나 볼품없는 자식들이 태어나지 않을까?"

 

"당연하지요."

 

"어떤가? 교육에 어울리지도 않는 자들이 교육에 접근하여 어울리지 않게 결합한다면, 어떤 사상과 의견을 낳을까? 그들은 진실로 궤변이라 불리어 마땅한 것을 낳고, 순수한 것이나 참다운 지혜를 내포하는 것은 아무것도 낳지 못하겠지?"

 

"전적으로 동의해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아데이만토스, 그렇다면 철학과 결합하기에 적합한 사람들 가운데 극소수만이 남았네. 그것은 마음이 고상한 데다 훌륭한 교육을 받은 성격이 국외로 추방당한 결과 그를 타락시키려는 자들이 없었기에 타고난 품성 그대로 철학에 머무른 경우이거나, 또는 위대한 혼의 소유자가 작은 나라에서 태어나 그 나라의 국사를 무시하고 깔보는 경우일 것이네. …… 나처럼 신의 암시를 받은 경우는 거론할 필요가 없을 걸세. 나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는 신의 암시를 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이들 소수의 일원이 된 사람은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재산이 얼마나 감미롭고 축복받은 것인지도 맛보았겠지만, 대중의 광기도 충분히 보아왔을 것이네. 그는 또한 건전한 그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 정치가나, 자기와 함께 싸우며 자기를 지켜줄 수 있는 투사는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네. 오히려 그는 야수들의 무리 사이에 떨어져 함께 불의를 행하려고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모두가 광포한 가운데 혼자서 이에 항거할 수도 없는 사람처럼, 친구들에게 뭔가 도움을 주기도 전에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쓸모없는 인간으로 최후를 맞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네. 이 모든 점을 심사숙고한 끝에 그는 조용히 자기 일에만 전념하게 될 것이네. 그리고 폭풍이 몰아치는 겨울날 먼지나 폭우를 피해 담벼락 밑에 서 있는 사람처럼 남들이 도리에 어긋나는 생활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면서도, 자기만 부정과 불경행위에 오염되지 않고 이 세상을 살다가 아름다운 희망을 품고 편안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할 것이네."

 

"하지만 그가 가장 작은 일을 해놓고 세상을 떠난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내가 말했네. "하지만 그는 자기에게 맞는 정체를 만나지 못했으니 가장 큰일을 해놓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네. 그는 자기에게 맞는 정체에서는 스스로도 더 성장하여 자신도 구하고 공동체도 구하게 될 테니 말일세. 이상으로 우리는 어째서 철학이 그런 비방을 듣게 되었으며, 어째서 그것이 부당한지 충분히 논의한 것 같네."(350∼354쪽)

 

 - 플라톤, 『국가』, <제5권>

 

 

 

 * * *


 

선생님께서는 참 멀리도 내다보시는군요

 

"그게 어떤 부분인가요?"

 

"나라가 망하지 않으려면 어떤 방법으로 철학을 다루어야 하느냐는 문제일세. 무슨 일이든 큰일에는 위험이 따르게 마련이고, 사람들 말마따나, 아름다운 것은 진실로 어렵기 때문일세."

 

"그렇지만 증명이 완결되려면 그 문제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텐데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나를 방해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의지의 결여가 아니라 능력의 부족일세. 자네는 내 열성을 직접 보게 될 것이네. 자, 자네는 내가 얼마나 대담하게 거리낌 없이 말하는지 눈여겨보게. 나는 국가가 오늘날과는 정반대되는 방법으로 철학을 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네."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래서 내가 말했네. "오늘날 철학에 관여하는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에 불과하네. 이들은 소년시절과 가사를 볼보고 돈벌이를 시작하는 시기 사이에 철학의 가장 어려운 부분에 다가가다가 철학에서 떨어져 나가는데, 바로 이들이 철학의 대가(大家)로 간주되고 있네. 그런데 내가 말하는 철학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란 논리적 논의를 뜻하네. 이들은 훗날 철학에 관여하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토론을 들어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에 응하면 그것을 무슨 대단한 일로 여긴다네. 이들이 생각하기에 철학이란 여가가 날 때 틈틈이 하는 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일세. 그리고 이들은 노년에 이르면 소수를 제외하고는 불꽃이 꺼져버리는데, 다시 점화할 수 없다는 점에서 헤라클레이토스의 태양보다 더 심하게 꺼져버린다네."

 

"그럼 어떻게 대해야 하나요?" 하고 그가 물었네.

 

"그와 정반대로 대해야지. 소년시절이나 청년시절에는 그 나이에 걸맞은 교양이나 지혜에 관여해야겠지. 아직도 성인으로 성장하고 있는 이 시기에는 철학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몸을 세심하게 돌보지 않으면 안 되네. 그러다가 나이 들어 혼이 성숙해지기 시작하면 혼의 단련을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되네. 그러나 기력이 쇠하여 정치적 봉사와 병역 의무를 면제받게 되면 그때는 철학의 풀밭에서 마음껏 풀을 뜯으며, 여가 시간을 제외하고는 철학 이외의 다른 일에 몰두해서는 안 되네. 그래야만 행복한 삶을 살고, 죽은 뒤에는 저승에 가서 자기가 살아온 삶에 합당한 운명을 부여받게 될 걸세."

 

그러자 아데이만토스가 말했네. "소크라테스 선생님, 내가 보기에 선생님께서는 과연 열성적으로 말씀하시는군요. 하지만 트라쉬마코스를 비롯하여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선생님보다 더 열성적으로 선생님 말씀을 반박하며 믿으려 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내가 말했네. "여보게, 자네는 나와 트라쉬마코스 사이를 이간하지 말게나. 우리는 방금 친구가 되지 않았는가. 전에도 서로 적이었던 적은 없지만 말일세. 나는 트라쉬마코스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아니면 그들이 내세(來世)에 이런 토론을 하게 될 때 그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무엇인가를 해주기 전에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네."

 

"선생님께서는 참 멀리도 내다보시는군요" 하고 그가 말했네.

 

그래서 내가 말했네. "영원(永遠)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지. 그러나 사람들이 대부분 내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닐세. 그 이유는 지금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 실현된 것을 그들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네."(355∼357쪽)

 

 - 플라톤, 『국가』, <제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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