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요리책은 결혼한 여성을 가정의 수호자이자 요리를 포함한 집안을 담당하는 주체로 호명했고,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을 음식과 함께 사진 안에 담음으로써 가정 요리와 여성을 한데 묶는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발휘했다(Horner, 2000; Neuhas, 2001)." - 전자책 59% 지점 



<디지털 미디어와 페미니즘>에서 가져온 구절. 

오늘 아침 무심코 클릭한 아래 이미지들을 보면서 이 구절의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아주 '정치적'으로 느끼고 말았다. 





알라딘굿즈 코너에서 '물리치료사가 만든 일상·스포츠·재활 보호대'라는 설명으로 판매되고 있는 브랜드 제품들이다. 뭐, 별 생각없이 보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이미지들. 내 눈은 하나의 사진에 오래 머물렀는데 그건 젖병을 들고 있는 여자의 손 사진이다. 젖!병! 하고많은 물건 중에 젖병! 그래, 수유하는 엄마들 손목 아작나는 거야 어제오늘 일 아니고 진심 그 부서지는 손목의 고통에 절절히 공감하는 바이다. 그러나 모든 여성이 수유하는 여성은 아니잖아? 여성 = 어머니 = 아기 = 모성, 이런 거 이제 좀 그만 합시다???? 저 젖병을 울퉁불퉁 힘줄 뽱 누가 봐도 남자가 분명한 손이 들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가?????

다른 이미지도 마찬가지다. 젖병 옆 화분에 분무기 칙칙. 그래 수분공급 중요하지. 그런데 분무기 칙칙과 발목은 무슨 상관? 발목만 잘 보이면 되지 왜 옷은 저렇게 짧아? 화분에 물 주는 거 남자도 하잖아? 이건 뭐 여자만 사서 쓰라는 건가. 굿즈 구입하는 성별이 여성에 치우친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너무하다. 그리고 여자들 다 실내에 있어! 발목 무릎 이런 데 운동하다 다칠 확률 높은 거 아닌가요? 그럼 운동복 입히고 밖에서 찍으란 말이야. 왜 다 집안에서 저러고 있어!!! 명색이 인터넷서점인 알라딘에서 손목보호대 선전하려고 찻잔 들고 있는 사진이라니, 이건 책 말고 굿즈로 잔을 더 사라는 말인가방구인가. 물론 이 브랜드 알라딘 거 아님을 잘 안다. 싸잡아서 욕하는 거다. 

그 아래 사진은 더 열받아. 



무릎보호대 야외사진 나왔네! 남!자!로! 그 옆 여자는 실내에서 스트래칭 중이다. 하. 이거 좀 바꾸라고. 산에 올라가는 거 여자 사진, 집에서 요가하는 거 남자 사진! 얼마나 좋아?!!!! (왼쪽 사진이 여자라고 우기면 뭐 할말없다. 아예 다 성별을 알 수 없게 바꾸던가.) 


이렇게 우리는 광고 이미지 하나의 '이데올로기 효과'를 아주 쎄리맞고 있다지요. 


+ 손목보호대 진심 사고팠는데 이미지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불매! 상품에 아무런 불만 없다. 어디서 누가 만든 건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광고이미지에 발끈해야 한다는 생각에. 회사에 메일 쓸 생각 안 하고 페이퍼에다 주절주절. 다른 굿즈들 사진도 둘러보고 싶었으나 시간 너무 많이 걸림.@@ 


+ 안다. 네*버 쇼핑만 가도 이렇게 욕할 게 널렸지. ㅠㅠ 하나씩 다 욕할까???????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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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2-09-22 0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플러스 저는 참 거슬리는 게 동화책에서 엄마가 등장할 때 앞치마 입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최근 창작동화들은 별로 안 그런 것 같은데 예전에 나온 전집류에는 흔하더라구요.. 아니 전 엄마지만 앞치마 안 하는데?? 아빠가 앞치마 할 수도 있는 건데 말이죠. 엄마는 집에서 앞치마 두르고 나를 챙겨주는 사람.. 이라는 인식이 박혀 있는 것 같아 싫더라고요.

난티나무 2022-09-22 18:18   좋아요 2 | URL
저 안 그래도 저기 저 사진에 앞치마인 듯한 옷에 태클 걸려다가 참았는데요.ㅠㅠ 동화책 뿐이겠습니까...ㅠㅠ 앞치마도 ‘중산층 주부‘의 상징인 거 같아요. 예전에 그런 말 많이 들었잖아요, 걔네 집 가면 걔네 엄마는 원핏 입고 앞치마 하고 창문에 커튼이 계절따라 바뀐다고, 그거 부럽다고, 아 물론 제 주변엔 그런 집이 없어놔서 실제로 보지는 못했지만, 그게 엄마라는 존재의 허상이자 환상이었죠.

거리의화가 2022-09-22 0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성의 직업에 대한 한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요즘이에요. 이 책 읽으면서도 생각했지만 여성의 직업 범위가 늘었는데도 불구하고 미디어 등에서는 여전히 여성을 서비스나 돌봄이, 지키미 이런 류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려고 하는데 이젠 그럴 때가 지난 거 아닌가요. 하물며 결혼한 여성은 집에서만 있지 않은 경우도 많은데 너무 근시안적으로 보입니다.

난티나무 2022-09-22 18:22   좋아요 2 | URL
그러니 그 근시안적 생각이 얼마나 뼛속깊이 세뇌되어있는 건가요.@@ 아무 생각 없는 재현 이제 좀 그만 봤으면 좋겠어요. 변하긴 하겠지만 너무 느리다는 생각이....ㅠㅠ

책읽는나무 2022-09-22 1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집에서 앞치마를 잘 안해서 면티셔츠들이 죄다 얼룩지고 헤져 옷이 엉망이거든요. 어차피 옷이 험해질테니 집에서 전용?으로 입는 옷들은 어둡고 낡은 옷들로 입어요. 저는 예전부터 텔레비젼 같은 가전 광고를 볼 때 주부들이 하나같이 외출복 같은 밝은 심지어 화이트나 예쁜 파스텔톤 옷들을 우아하게 입고 모두가 군살 없는 예쁜 몸매에, 미용실 다녀온 듯한 예쁜 머리에, 고운 화장에, 관리된 외모와 온화한 자태의 주부 모습을 보면 한 번씩 현실감이 없어 칙칙한 내 모습과 괴리감 들어 혼자서 궁시렁 궁시렁 거릴 때 있었어요.
저런 모습을 보고 모두가 환상을 품게 되어 집에 퍼져 있는 주부는 무척 게을러 보이잖아요?ㅋㅋㅋ
난티님이 올려 주신 사진도 여성이 실내에서 손목 발목이 나가도록 집안일을 죽어라고 한 듯한 이미지를 주네요~ 그리고 몸매는 관리된 듯하게 다들 매끈하구요.

난티나무 2022-09-22 18:29   좋아요 2 | URL
플러스 젊은 여성!!! 왜 나이 있는 여성 모델 남성 모델은 없는가! 손목발목 나이 들면서 더 안 좋은데! ^^;;;; 아이고 허리야....ㅠㅠ
집에서 ‘꾸미고‘ 있는 것도 강요이자 강박이죠.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때로 스스로를 존중하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한다고들 하는데 과연 그럴까 싶기도 해요. 1인 가족일 경우는 그게 가능하지만... 흠.
기죽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환상이야!!!

mini74 2022-09-22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뭘 이런걸 하나 하나 다 신경쓰냐 피곤하게!! 혹은 까탈스럽게! 라고 말하는 이들이 범인이다 라고 생각해요. 난티나무님 파이팅 ! *^^*

난티나무 2022-09-22 18:30   좋아요 1 | URL
아 진짜 그런 말 너무 싫죠.ㅠㅠ 세상은 좀 까탈스럽게 살아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ㅋㅋ

라로 2022-09-22 16: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꾸라고에 저도 찬성!!! 바꿔!!!! ㅎㅎㅎ

난티나무 2022-09-22 18:33   좋아요 1 | URL
바꿔! 바꿔! 모든 걸 다 바꿔! 🎶
 
엄마됨을 후회함 - 모든 여성이 엄마가 될 필요는 없다
오나 도나스 지음, 송소민 옮김 / 반니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너무나 당연한 말, ‘엄마로서의 삶을 다양한 인간관계의 하나로 이해해야 한다.‘ 아이의 존재, 아이에 대한 사랑과는 별개로 엄마됨은 지속적인 트라우마를 남긴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는 사회의 압박에 입밖으로 내지 못했던 말들을 꺼내야 한다. 이 책도 그래서 매우 의미있다. 왜 절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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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0 0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20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청아 2022-09-20 1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행히 도서관에 있네요^^ 지난번 읽은<임신중지>와도 연결지점이
있을듯해요. 들어가보니 평도 나쁘지않은데 왜 절판인지!

난티나무 2022-09-20 21:10   좋아요 2 | URL
대출 고고!!!! ㅎㅎㅎ 이런 책은 좀 많이 읽혀야 하지 않나 하는데 많이 안 팔린 걸까요…@@
 
다락방의 미친 여자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박오복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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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100자평을 아직 안 썼다니! 이런...ㅠㅠ 다락방의 ‘미친‘ 여자들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어 기쁘고 즐거웠다. 수전 구바에 대한 비판도 잊지 않으면서 단정하고 두꺼운 책으로 재독을 기다리겠다. 난 벌써 올초에 읽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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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6 0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16 0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16 0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영화를 두 번 보고 각본집 두 번 읽고 써보는 주절주절.

일차 폭력으로 인한 이차 폭력. 이 말을 떠올리게 만든 인물, 홍산오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홍산오, 그는 죽기보다 감옥가기를 싫어하는 인물이다. 한 여자 오가인을, 그에 의하면 '사랑'했다. 그는 그의 방식대로 사랑했고 그의 방식대로 죽음을 택했다. 죽는 방식도 폭력적이다. 가위, 피, 추락. 그런데 계획한 바는 아니지만 사랑하는 오가인이 보는데서 그렇게 한다. 폭력에 폭력을 더한 셈이다. 자기중심주의라고밖에... 정말 홍산오가 오가인을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나? 죽으면서까지 트라우마를 만들어주는 게 사랑인가? 홍산오를 끌어안고 해준을 올려다보는 가인의 눈동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같다. "이게 남자들이 사랑하는 방식인가요?"

이 방식은 송서래가 택한 죽음의 방식과 대비된다. 산오의 "... 너 아녔음 내 인생 공허했다"라는 말은 얼핏 감동적으로 들리지만 이건 사랑고백도 뭣도 아니다. 철저히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이다. 항상 '나'가 세계의 중심이지. "여자들은 왜 그런 쓰레기 같은 새끼들하고 자요?" 산오의 이 말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포인트는 "자요?"다. "(걔랑) 잤니?"와 같은 맥락이라고 하겠다. 사귀어요? 도 아니고 결혼해요? 도 아니고 자요? 이 말은 남자들이 '여전히' 사랑을 모른다는 말로 들린다.(사랑 = 섹스) 그래서 중요한 대사다. 해준이 산오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설득을 위해서였거나 말거나 간에. 더군다나 똑같이 비슷한 말을 나중에 해준도 하지 않나. 이 두 남자가 만들어내는 장면에서 그들이 '사랑'한다고 믿는 여자들은 철저히 타자가 된다.

<헤어질 결심>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타이밍이 맞지 않는, 사랑. 그러나 본질은 그게 아니다. 타이밍은 늘, 맞지 않게 되어 있다. 이성애에 있어 사랑에 대한 생각, 여자와 남자가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은 다르다. 달라도 한참 다르다. 이루어질 수 없어서, 어긋나서 슬픈 게 아니다. 사랑을 모르는 남자와 사랑을 아는 여자, 우리는 그 사실에 슬퍼해야 한다.


그러면 서래와 해준은 어떠한가.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서래는 상황을 적확하게 본다. 해준의 머리꼭대기에 있다고 말해도 좋다. 사람이 어리석어지는 지점이 있기 마련이고 우리는 자주 그 지점에 도달해버려 그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순간들을 갖는다. 서래는 남자들의 사랑이 어떤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해준이 말한 적 없다던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으며 그의 사랑이 언제 끝났는지 안다. 그의 사랑이 사랑이 아닌 것도, 비겁한 것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 초반 서래가 해준에게 보이는 관심과 행동들은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호기심, 지금껏 보지 못했던 남자의 유형에 대한 호기심일 확률이 높다. ("말씀. ... 아니 사진." 해준은 이걸 '같은 부류'로 생각하는 근거로 삼지만 틀렸다. 서래는 '말씀' 부류다. 해준은 계속 틀린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남자의 유형,이라는 말은 관객에게도 유효하다. 여전히 찌질하고 여전히 자신의 감정을 모르고 여전히 폭력적이고 여전히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을 가진 전형적인 남자이지만, 그래도 지금껏 보지 못한 유형은 맞다. 과연 그런가 생각은 좀 해야 한다. 그저 요리 좀 하고 눈썰미 좀 있다고 해서 과대평가를 하는 건 아닌가 의심해봐야 할 지점이다. 잠깐의 호의나 친절이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일 수 있다. 예를 들면 담배. 사랑하니까 이해해준다,는 발상은 위험하다. 해준은 동료들에게 폭언, 폭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데 막상 자신은 피의자를 두드려팬다. 욕설은 하지 않지만 상처가 되는 말들을 서래에게 한다. 폰을 바다에 버리라고 말만 하고 증거를 없애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스스로 '품위' 있는 남자니까.

어쨌거나 서래는 해준 때문에, 혹은 해준을 위해서, 혹은 해준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죽은 게 아니다. 서래는 다 알아버려서 죽었다. 사람도, 세상도. 탕웨이의 아우라에 가려져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 이방인의 고달픈 삶. 밀입국 중국인. 영화에서는 외국인으로 나오지만 같은 한국여성이라 해도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서래의 삶이 훨씬 고달플 뿐. 안 그래도 잘 보이지 않는 그 처절함마저도 아우라에 가려졌다. 반면에 서래가 보여준 당당함은 가려질 수 없는 것이었다. 가려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여성에게 자주 부족한 '당당함'. 서래 캐릭터가 갖는 양가성. 혹은 장단점. 어쨌거나 해준이 서래의 죽음에 미친 영향은 미미하다. 기폭제가 될 수는 있었겠다. 세상은 서래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를 이용하고 유린했다. 사람에 대한 약간의 희망을 해준에게서 보았으나 그것 역시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 끝의 끝에서 마지막 불이 꺼졌다. 죽음은 서래가 행한 다른 방식의 사라짐이다.

해준은 서래를 보는 순간 첫눈에 반했다. '작고 귀여운' 아내 정안에게는 없는 매력의 소유자. 그가 중국인인지 아닌지는 상관없다. 국적을 알기 전에 이미 해준은 서래에게 반했으니까. 그가 서래에게 한 말, "서래씨는요, 꼿꼿해요."는 스스로에게 바라는 이미지이다. 남편, 경찰, 아버지로서 꼿꼿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그것이 자부심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스스로 품위있기를 바라지만 자신은 없어보인다. 사랑은 투사이다.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투사해 그 환상을 좋아하는. 서래가 꼿꼿한 것은, 우스갯소리지만 등을 잘 굽힐 수 없는 몸을 가져서 그럴 수도 있다.(풋. 실제로 그런 사람을 본 적 있다. 그는 항상 자세가 '꼿꼿'했다.) '자부심'이라는 단어는 해준에게 매우 중요하다. 마치 그것만이 그의 삶에서 의미가 있어보인다. 이 지점도 매우 중요한데, 남자들은 흔히 자부심을 자존심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해준이 '붕괴'되었다고 한 말은 자존심의 붕괴일 가능성이 높다. 스스로의 감정을 알아채지 못한 채 서래를 범인이라 생각하고(배신 혹은 기만당했다는 자책) 어떻게든 서래가 범인임을 입증해 자존심을 되찾으려는 노력. 어리석고 어리석다... 그렇다면 해준이 서래를 찾아 바닷가를 헤매게 된 이유는? 서래가 범인이 아님을 드디어 알게 되었다. 따라서 그는 그동안 오해했던 것을 서래에게 사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는 스스로 '품위'있는 형사니까. 설령 그가 다시 서래를 만났다 하더라도 뻘소리를 할 확률 100%. 그는 사랑이 무언지 계속 모를 것이다. 정안이 그를 떠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죽을 때까지 서래에 대한 감정을 인정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해준이 깨달았다고 치고 하는 말이다. 아닐 확률이 높지만.) 해준이 지키고 싶었던 것은 사랑(서래)이 아니라 그의 자존심이었고, 서래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사랑(해준)이 아니라 서래 자신이었다.

서래가 중국인인 것은 여성과 남성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줄 절묘한 장치였다. 아마 이 부분에서 많은 여성들이 공감했을 것이다. 반면 대부분의 남성들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할 확률이 매우 높다. 정안과 해준이 그랬듯이, 가인과 산오가 그랬듯이, 서래와 해준이 그랬듯이. 이 영화의 주제는 여남 간 소통의 불가능성, 바로 그것이다. (뭐 원래 인간 사이에 소통이라는 게 불가능하기는 하다. 쩝)


"뭐라고요? 한국말로 해 줘요."


(한국말로 하면 과연 알아들을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




+ 서래와 비슷한 유형의 사람이 있다. 연수다. 서래와 가장 친밀한 사이가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

+ 서래가 죽음으로 사라지는 건 좀 아쉬웠다. 처음엔 그냥 아쉬웠는데 가만 생각하니 무수한 영화들에서 얻어맞고 상처입고 죽어 사라지는 여성들,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죽어 사라지는 여성의 재현, 이라서 아쉬운 것같다. 잘 만든 영화인데 군데군데 이렇게 반복재현되는 것들. 현실을 반영해 굳건한 남성의 무너지지 않는 세계와 자꾸만 흔들리고 무너지는 여성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어디까지 반영이고 재현이고 어디에서 재현의 한계를 넘어서는 건지 좀더 고민해 봐야.

+ 해석은 내 마음대로.














(알라딘에는 영화이미지를 올릴 수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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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2-09-14 18: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해석에 90%쯤 동의합니다.. 남은 10%는 잘 이해 못해서 그런 걸로.

난티나무 2022-09-14 19:30   좋아요 3 | URL
오 90%! 수하님 더 방가방가 ㅎㅎㅎ
10% 어느 지점인지도 궁금해지네요.^^

건수하 2022-09-14 23:47   좋아요 2 | URL
10%는… 사실 깊이 생각하고 쓴 수치는 아니에요.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결국 남자와 여자, 나 아닌 다른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다- 뭐 이런 측면에서..

사실 해준을 이해하기가 좀 힘들었어요. 좀 경박(?)하다고 해야하나… 유부남이고 용의자 후보인데 막 초밥 시켜주고 허벅지 보여주는데 여경 나가라고 하고 남의 집 들여다보고 자기 집 데리고 가서 요리해주고… 너무 조심성이 없지 않나요.

그게 그 사람의 사랑이라고 하면 그건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전 남자의 사랑이 어떤 건지도 잘 모르니까요.

근데 서래의 선택은 성별만이 아니라 확실히 계급? 어쨌든 상황과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는 것 같아요. 해준 때문이 아니더라도 재도 뿌렸고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었을까.. 중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이게 현실에서 남성과 여성의 상황을 은유하는 것도 같았고 언어 소통이 잘 안되는 점도. 이 부분 좋았어요.

난티나무 2022-09-15 00:58   좋아요 3 | URL
아! 맞아요! 그 이야기를 빼먹었네요. 해준의 행동들, 특히 ‘잠복‘을 빗댄 스토커질! 아 나 경찰이고 잠복할 수 있고 그러면 걔를 볼 수 있는 거구나! ㅠㅠ
경박하다는 표현, ㅎㅎㅎ 속은 그런데 겉으로는 품위 있는 척 하는 거. 웃겼고요. ㅎㅎㅎ

서래는 이미 죽으려고 작정한 사람이었을 거예요. 그 길목에 해준이 있었던 거고요. 어쩌면 임호신을 만나기 전에도 죽음을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르죠...

수하님 댓글 보니 해준을 좀더 깔 걸 싶네요.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9-14 18: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흥미롭게 읽었어요. 그리고 제게는 아주 음, 정확한(?) 아 어떤 단어가 좋으려나, 아무튼 동의할만한!!! 해석이라 보입니다. 저는 영화를 한 번 봤고 각본집은 슬쩍 들춰보기만 해서, 제대로 다시 뭔가 느끼기 위해 한 번 더 봐야하나? 생각하지만 한 번 더 보고싶진 않더라고요. 너무 좋은 글이에요, 난티나무 님. 크-

난티나무 2022-09-14 19:45   좋아요 4 | URL
사람들이(여성들이 ㅎ) 자꾸 보고 또 보고 한다니까 은근히 나도 더 봐야 하나 그런 생각이 더 드는 듯해요. 저도 그랬고요. 처음 봤을 때 흥~! 이랬기 때문에 ㅋㅋㅋㅋ 다시 본다고? 그랬거든요. 풋. (저는 아마 더 잘 ‘비판‘하려고 다시 본 거...ㅋㅋㅋ 좋아서 다시 본 것은 확실히 아님...ㅎ)
이 영화가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갔을지 알겠어서 조금은 슬프기도 했어요. 그리고 페미니스트들(숫자)이 극소수라 느끼는 것처럼 영화를 곱씹는 여성들도 아마 극소수일 거라는 생각도요.^^;;;

다락방 2022-09-14 19: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만, 저는 여기에 사랑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자기파괴적이긴 했지만, 바닥까지 내려가는, 미해결 사건으로 남아 상대의 마음과 기억에 각인되는 그런 사랑이요. 그 사랑은 결코 제가 할만한 사랑은 아니지만, 서래가 선택한 건 저는 극진한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자기파괴적인 그러나 극진한, 영원히 기억될만한 그런 사랑이요. 그런데 이건 난티나무 님 말씀처럼 서래가 서래를 지키는 방법이기도 한 것 같아요. 아니, 궁극적으로는 그것 같아요.

난티나무 2022-09-14 21:26   좋아요 3 | URL
맞아요. 어떤 형태이든 사랑이 있죠. 다만... 서래는 사랑을 했지만 해준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했어요. 아니면 적어도 그것이(어떤 것이) 사랑인 줄 모르는 사람으로요. 그리고 아주 조금 서래의 사랑도 의심(?)이 가는데, 왜냐하면 처지가 너무 안 좋고 도와줄 사람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인간적인 면이 엿보이는 해준에게 끌린 건 아닌가, 방어기제로써? 무의식적으로? 하하 그런 생각도 해보았더랬습니다. 아무튼지간에 서래는 해준의 마음을 알아채고 사랑을 시작하는데 해준이 멍청하게 말을 해서 현실을 깨닫게 되잖아요. 다르지 않구나... 그래서 미결사건으로 벽에 사진 붙여놓고 잠 이루지 못해라, 하는 말이 저는 좋았어요. 딱 그만큼이 해준의 사랑(?)이고 서래는 그걸 아는 사람. 거기서 더 나갈 수 없는 사람이 해준이라는 걸 아는 사람. 이 지점은 계급과도 어느 정도 연결된다고 생각하는데요. 과연 우리는 사랑에서 계급을 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싶어서요. 탕웨이 아우라가 가려버린 부분이 이 계급이기도 하고요.
잘 만든 영화임에는 틀림없는 듯해요.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니까요.^^

- 2022-09-15 1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신 같은 남자는 나같은 여자와 결혼해주지 않으니까요…
저도 많이 동의하는데.. 그래서 사랑 안하고 싶었는데 그런데 영화 보면서 사랑하고 싶었어요!!! 난티님 평 너무 좋으네요! 정확하기도 하고 그래서 뼈아프기도 하고요.

난티나무 2022-09-15 16:52   좋아요 1 | URL
사랑에 대한 환상을 깨부수세요!!!!! ㅋㅋㅋㅋㅋㅋ
우리와 사랑을 나눌 사람 음 여성 제외하고, 과연 있을까요....???? 그것이 알고 싶따아...

- 2022-09-15 17:45   좋아요 1 | URL
없다고 말하자 그것이 현실!

얄라알라 2022-09-17 2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번째 보니까....˝없다. 없다˝의 영화처럼 느껴졌는데

난티나무님께서 이렇게 적어 주셨네요..

˝사랑을 모르는 남자와 사랑을 아는 여자, 우리는 그 사실에 슬퍼해야 한다.˝_난티나무님

난티나무 2022-09-19 19:55   좋아요 0 | URL
없다, 그쵸. 없다... 흑흑흑
몸은 좀 괜찮으세요?^^
 
가족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우리시대 리커버
권명아 지음 / 책세상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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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초판, 2021년 개정판. 오래된 책이지만 근대 한국의 가족이데올로기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변화했는지 알 수 있다. 근대 남성작가의 소설, 신경숙과 배수아 소설 분석도 흥미로웠다. 다만 문장이 잘 읽히지 않고 마치 어려운 번역체를 보는 것같은 느낌이 들어 별을 하나 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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