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이론 산책하기> 전혜은

- 2장 트랜스 멍멍이를 버틀러가 논박하다


아직 다 안 읽었지만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겠음.
필독서라 주장하고 싶다.

낯선 사람을 마주할 때 사람들이 제일 먼저 파악하는 것은 상대가 여자냐 남자냐 하는 것이다. 인종, 계급, 민족, 연령 등 한 사람을 표시하는 범주들은 많지만 인간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제일 먼저 파악하려는 것은 그 사람의 성별이다. 심지어 사람들은 첫눈에 상대방의 ‘생물학적 성별’을 알아볼 수 잇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 믿음의 근거는 옷차림, 헤어스타일 등 겉으로 드러나는 젠더 표현과, 남자나 여자의 해부학적 구조를 드러낸다고 여겨지는 얼굴 윤곽, 가슴 윤곽, 속눈썹 길이, 목울대 모양, 목소리 등이다. 이런 특징들은 사람에 따라 매우 다양한 데다 숨기거나 바꿀 수 있다. ‘생물학적 성별’이 성기로 구분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지만 게일 살라몬이 지적한 대로, 우리가 지나가다 마주친 사람을 보고 즉각 이 사람은 남자다 혹은 여자다 판단할 때 그 찰나에 상대방의 성기를 정말로 까보고 판단하는 건 아니다. 남자 군인이 폭탄 파편을 맞거나 해서 음경을 잃는 사고를 당했다 하더라도 "아무도 그의 성멸(sex)을 의문시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누구도 그의 젠더를 의문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이 한눈에 상대의 그 ‘생물학적 성별’이란 걸 읽어낸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읽고 있는 것은 ‘젠더’인 것이고, 젠더가 섹스를 고스란히 반영한다는 믿음인 것이다. 뒤집어 말하자면 소위 ‘생물학적 성별’인 ‘섹스’와 같거나 그 섹스의 반영이라고 믿어지는 ‘젠더’ 범주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상대의 몸은 읽히지 않는다. 더욱이 ‘생물학적 성별’이란 것 자체를 정확히 규정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준이 과연 있는가? - P150

"… 당신이 근본적으로 인식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은(정말로 문화와 언어의 법이 당신을 어떤 불가능성으로 본다는 것은) 당신이 인간에 접근할 권리를 얻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뜻이고, 당신이 그저 항상 인간인양 말은 하고 있으나 실상은 인간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당신의 언어가 텅 비었다는 것을, 또 인정이 일어나게끔 하는 규범들이 당신 편이 아니라서 앞으로도 인정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주디스 버틀러 <불확실한 삶>(=<위태로운 삶>) 인용문) - P166

… 그러므로 섹스가 남/여 단 두 개로 이뤄져 있다는 믿음은 언제나 비체화된 존재의 생산과 맞물려 있고, 비체로 생산된 존재들을 향한 실질적인 폭력으로 구현된다. 역설적으로 이 폭력은 이 사회가 그토록 굳건하게 믿고 있는 남/여로서의 ‘생물학적 성별’이 폭력을 쓰면서까지 끊임없이 단속해야만 겨우 유지되는 불안정한 체계라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이는 결국 그토록 절박하게 사수하려고 하는 ‘생물학적 성별’에 기초한 주체는 쉴 새 없는 부인과 혐오의 형태로 늘 비체로서의 젠더퀴어에 의존하고 있음을, 그리하여 그 주체의 안정성이란 결국 불가능한 허상임을 드러낸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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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6-06-04 0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난티나무님 이 책 읽으시는군요! 좋죠!

난티나무 2026-06-04 05:55   좋아요 1 | URL
독서괭님 안녕하세요!!!
책 느무 좋네요! 사놓기만 하고 꺼내질 않았어서 ㅎㅎㅎ 이번에 꺼내기를 잘 했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절반도 못 읽었지만 ㅋㅋㅋ
 

1장

간단히 말해, 우리 몸의 성별은 굉장히 복잡하다. 이분법적 구분은 불가능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차이는 미묘하다. … 내가 이 책에서 기술한 주요 주장 가운데 하나는 누군가를 남성 혹은 여성으로 분류하는 것은 사회적 결정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리는 데 과학적 지식이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우리의 성별을 정의하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젠더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다. 게다가 젠더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애초에 과학자들이 성별에 대해 어떤 종류의 지식을 생산하는지에도 영향을 미친다. - P24

우리의 신체는 너무나 복잡해서 성차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는 건 불가능하다. ‘성별’의 단순한 신체적 토대를 찾으려 하면 할수록 ‘성별’이 순수한 신체적 범주가 아니라는 사실은 점점 명확해진다. 우리가 여성 혹은 남성으로 규정하는 신체적 신호나 기능은 이미 젠더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뒤얽혀 있다. - P26

우리는 "담론적으로"(즉, 언어적이고 문화적인 실천을 통해) 우리의 신체를 구축할 뿐만 아니라, 말 그대로 [육체적으로] 성장하고 발달하며, 우리의 경험을 우리의 그 살[육체] 속으로 통합한다. 이 주장을 이해하려면, 물리적인 몸과 사회적인 몸 사이의 구분을 허물어야만 한다. - P49

나는 "섹슈얼리티는 육체적 사실fact이 아니다. 그것은 문화의 효과effect다"라는 핼퍼린의 기지 넘치는 발언을 수정해, ‘섹슈얼리티는 문화의 효과에 의해 만들어진 육체적 사실이다’라고 주장하고자 한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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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성은 종종 인간주의humanism라는 용어로 정의되곤 한다. 인간의 탄생을 찬양하거나 인간의 죽음을 선언하는 두 가지방식 중 하나로. 그러나 이러한 습관 자체가 근대적인데,
근대적 습관은 비대칭적인 채로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근대성의 탄생은 ‘비인간성’nonhumanity - 사물, 대상, 혹은 야수-의 탄생과 동시에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방관자의 자리로 밀려나면서 소거된 신crossed-out God이라는 마찬가지의 불가해 - P49

한 기원에서 출발함에도 불구하고 근대성 자신은 양자 모두를 모른 체한다. 근대성의 발생은 우선 이러한 세 가지 존재들[인간, 바인간, 소거된 신]을 연속해서 창조함으로써,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이 일련의 존재들의 탄생을 은폐함으로써, 그리고 세 공동체에 대한 각각 다른 처방 - 그러나 그 아래에서는 계속해서 이 서로 다른 처방의 결과로 하이브리드들이 증식하게 되는ㅡ을 내림으로써 이루어진다. 다음과 같은 이중의 분리작용이 바로 우리가 재구성해야 할 대상인데, 한편으로 인간적인 것과 비인간적인 것 사이의 분리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위에서‘ 일어나는 것과 ‘아래에서’ 일어나는 것 사이의 분리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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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 버틀러 <안티고네의 주장 - 삶과 죽음, 그 사이에 있는 친족 관계>

오늘 밑줄.

나에게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이에 다소 격분하면서 "하지만 그게 법이다!"라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같은 발언이 갖는 위상은 무엇인가? "그것이 법이다!"라는 말은 법이란 것 자체가, 실행되어야 한다는 법에 그 실행을 강제할 수 있는 힘을 수행적으로 부여해 주는 발화가 된다.
따라서 "그것이 법이다"는 법에 충성한다는 기호이고, 그 법이 의문의 여지가 없는 법이 되기를 바라는 욕망의 기호이며, 상징적 아버지, 즉 정신분석학의 법 자체에 대한 모든 비판을 무대에서 끌어내리려 하는 정신분석학 이론 속에 내재된 일종의 신학적인 충동이다. 따라서 법에 주어진 위상은 바로 남근에 주어진 위상이자 아버지의 상징적 위치, 반박할 수 없는 것, 저항할 수 없는 것에 주어진 위상이다. 이러한 이론은 자신의 동어 반복적인 방어를 드러낸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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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라 하딩
<누구의 과학이며 누구의 지식인가 - 여성들의 삶에서 생각하기>

제 5장에서의 주장을 다시 요약하자면, 성별 위계구조화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여성들의 삶의 관점에서 생각을 시작하는 것"이, 지배집단 내 남성들의 삶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스럽거나 별 두드러진 것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가설들과 실천들을 설명이 필요한 낯선 것으로 만드는 과학적 관찰과 직관을 가져옴으로써, 연구결과의 객관성을 증대시킨다. 여성들의 삶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은 지금까지 친숙했던 것을 낯설게 만드는데, 낯설음은 모든 과학적 탐구의 시작이다. 18)
왜 이 성별의 차이가 과학적 자원이 되는가? 성별의 차이는 우리로 하여금 자연과 사회관계들에 대해 평가 절하되고 방치된 삶들의 관점에서 질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은 문화가 그 문화제도들에 편안함을 느끼고 또한 시민으로서 충분한 자격을 가진 "원주민들"을 사회화하는 방식에서 배제된, "이방인들의 삶의 관점에서 연구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것은 사회체제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지 못하며 또 별 관심이 없는, 체계적으로 억압과 착취와, 지배를 받은 자들의 삶의 관점에서 연구를 시작한다. 그것은 남성들의 삶에 대한 남성들의 해석이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는, 자연과 사회세계에 대한 "승자의 이야기들"과는 다른, 성별간의 전투의 "다른 쪽"에 있는 사람들의 삶의 관점에서 연구를 시작한다. 그것은 생활세계에서 생각을 시작하는데, 생활세계는 여성들에게 우선적으로 책임이 부여되는 곳이며 지배집단의 활동들의 결과들 - 그 활동 - P228

18) 제 5장과 제 7장에서 강조했듯이, 여성들의 삶의 관점에서 생각을 시작하는 것은 남성들과 여성들 모두 배워야 할 어떤 것이다. 여성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을 여성들의 삶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다. - P228

들의 관점에서는 보이지 않는 결과들 - 이 드러나는 곳이다. 그것은 문화의 수많은 이데올로기적 이중성들을 - 특히 자연과 문화 사이의 간극을 - 중간에서 조정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들의 삶에서 생각을 시작한다. 그것은 단순히 이방인들이나 외부인들이 아닌, 안과 밖, 중심과 주변의 관계를 좀더 쉽게 간파할 수 있는 "내부에 있는 외부인들"의 삶에서 연구를 시작한다. 그것은 타자의 삶의 관점에서 생각을 시작함으로써, 타자로 하여금 자신이 선택한 사람들은 누구라도 "익명으로" 응시할 수 있는 권리를 독점한 주체를 향해 "뻔뻔하게" 맞응시할 수 있게 해 준다. 그것은 모든 지식에의 주장들을 해석하는 데 그 핵심을 부정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사람들의 삶에서 생각을 시작한다. 그것은 역사의 현 시점에서 특히 광범위하게 노출된 사회모순들을 보여주는 삶의 관점에서 생각을 시작한다. 그리고 필시 여성들의 삶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자연과 사회관계들 내부의 규칙성들과 그 밑에 놓여있는 인과적 성향들을 특히 잘 드러내주는 것임을 보여주는, 더 많은 다른 방식들이 있다.
제 3부에서 더 분석하겠지만, 어떤 점에서 이 세상에 "여성들" 자체나 "남성들" 자체는 없으며 - "젠더"란 없다 - 단지 인종, 계급, 섹슈얼리티, 문화, 종교 집단 등이 자원과 권력에 접근하기 위해 서로 투쟁을 벌이는, 그런 구체적인 역사적 투쟁들을 통해 구성된 여성들, 남성들, 젠더가 있을 뿐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입장론적 지식론들 자체가, 그 점을 명료하게 표현했든 안했든, 성별과 계급 위계에만 관심 있는 이론가들이 아니라(계급분석에서 출발한 입장론을 생각해보라), 다른 "타자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는 이론가들에 의해 전개됐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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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6-01-06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쓰기 수업 목록에서 본 책이네요. 난티나무님 밑줄로 살짝 맛보기 :)

난티나무 2026-01-06 13:52   좋아요 1 | URL
수업 안 들으면서 책만 모조리 구비한 자 ㅋㅋㅋ 접니다. ㅎㅎㅎ

건수하 2026-01-06 14:33   좋아요 1 | URL
아니 저거 절판책 아닙니까? 👍👍

난티나무 2026-01-06 14:47   좋아요 1 | URL
ㅋㅋㅋ 제본이에요. 친구 찬스!!!!!!!

하이드 2026-01-06 14: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오늘 시작했는데, 첫페이지부터 ‘입장론‘이 뭔데? 띠용 되어서 입장론부터 대충 훑고 읽고 있습니다. ㅎㅎ

난티나무 2026-01-06 14:54   좋아요 1 | URL
저는 대충 맥락적 읽기 중 ㅋㅋㅋ 처음부터 읽어야 하는데 서문 후 일단 6장 먼저 보고 있어요. 제본이라 책 아래로 엄청나게 종이 자잘부스러기들이 쏟아지고 있어요 ㅎ 하이드님 책 부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