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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크레딧 - 성매매, 금융의 얼굴을 하다
김주희 지음 / 현실문화 / 202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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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으로 대체하는 리뷰) 



책을 읽는 내내 분노했다. 분노했으나 분노에 그쳤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마음은 짜증으로 이어졌다. 온 세상에 회색 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티브이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들, 그 중 남자들의 얼굴을 짚으며 저 사람들은 포르노를 보지 않을까, 생각했다. 길을 가는 사람들, 그 중 남자들의 얼굴을 보며 저 사람들은 '성매매'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집 안에 서식하는 남자들, 그 중 아이들의 잠든 얼굴을 보며 얘네들은... 하... 


이 분노와 더불어 치솟아오르는 감정들은 매우 복잡하다. 분노의 이면에는 어쩔 수 없고 바뀌지도 않으리라는 일종의 체념 비슷한 감정도 자리한다. 체념이라는 단어는 지나치게 체념적이다. 차라리 슬픔,이라고 해두자. 분노한다고 해서, 열폭한다고 해서, 슬퍼한다고 해서, 내게서 바뀌는 것은 없다. 그런 감정들은 오히려 호사스러운 것이 된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며 접하는 수많은 다양한 군상들 중 힘들고 불행하고 쥐어짜듯 착취당하고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 그 이야기를 읽고 분통을 터뜨리는 나는, 우리는, 이미 그 분통 만큼의 거리를 두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불행이 내게 올 리가 없어, 그건 다른 세계의 이야기야, 나는 그런... 계층의 사람이 아니야, 정말 불쌍하다, 짠하다, 그 사람들의 삶이 슬프다... 아차 하는 순간에 나 또한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으려 하는 대책 없는 안일함. 스스로 만들어낸 안온함의 가면들. 


돈이 없어 힘들었던 대학 시절을 생각한다.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은 아니지만 갈 곳이 없어 입주 과외라는 것도 하고 선생님의 타이핑 작업을 돕기도 했다. 서빙 아르바이트 같은 걸 하지 않았던 이유로 내 용기없음을 꼽아왔는데 이제 보니 아닐 수도 있겠다. 나는 현실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고 그래서 현실감 없이 돈을 벌었으며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정서적으로 상당히 의존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연애라는 환상적 감상 안에서 내가 처한 위치를 가늠하지 못했다. 등록금이 모자라 학과장 선생님께 돈을 빌릴지언정 다른 방법은 생각해내지 못했다. 내가 더 돈이 없는 상태였다면, 굶어죽을 지경이었다면, 빌린 돈을 갚을 수 없는 처지였다면, 아예 돈을 빌릴 사람이 아무도 아무 곳에도 없었다면, 나도 내 몸을 자원으로 삼아 돈을 벌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룸살롱을 찾아가는 대학생들. 나는 절대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거야, 내게는 절대 그런 상황이 생기지 않았을 거야,라고 말하는 것은 뻔뻔하다. 건방지다. 나락은 한순간에 펼쳐진다. 


책을 읽었다고 쓰고, 다른 사람에게 읽히려고 애쓰고, 틈만 나면 이야기를 들춰내 떠벌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다. 최소한을 뛰어넘는 또다른 일은 이렇게 지내다 보면 생길 것이다. 작은 단위의 경험은 큰 단위의 경험을 불러온다고 믿는다. 경험을 단위로 말하는 게 좀 웃기지만. 


남자들이여, 지금 있는 그 자리, 안온하신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포르노도 보지 않고 '성매매'도 안 한다고? 그래서 떳떳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 우리 중 누구도 그 거대한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성매매'와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각종 기관들이 어떻게 그 '산업'에 가담하고 공조하는 모양새로 기능하는지, <레이디 크레딧>을 읽으면 알게 된다아무 생각 없이 내뱉었던 평소의 '성매매' 혐오발언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알게 된다. 두루뭉술하게 후려쳐서 생각하던 '성매매 산업'의 구조를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성매매'로 뒤덮여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책에 나오지 않은 뒷배경이 더 있을 듯하다.) 다시 한번 되새긴다. 그 누구도 '성매매 산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남자도, 여자도. 


회색 비가 내리는 마음 속에 아침의 환한 햇살이 내리쬔다. 창을 여니 발랄한 새들이 노래한다. 세상은 아름다울 수 있다. 




(제목에 불행,과 안온,을 써놓고 보니 적절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불행은 누가 판단하는 것인가? 어떤 것이 안온한 것인가. 그러나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해 그냥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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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04-27 19: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리뷰 쓰시는 분들의 마음이 왜 죄다 절절하게 읽히는지...ㅜㅜ
저도 비슷한 생각들을 많이 했던 한 달이었습니다.
난티나무님도 읽으신다고 고생하셨어요.
잘 읽고 갑니다^^

난티나무 2022-04-27 21:06   좋아요 3 | URL
그러게 말이에요 책읽는나무님…^^;;; 힘든 책이었습니다. 중간중간 열폭하면서요. 진짜 ‘성매매공화국’이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네요. (룸살롱공화국,이라는 책이 있어요.)

vita 2022-04-28 10:40   좋아요 1 | URL
물론 대한민국도 그러하지만 여성의 몸을 돈을 주고 사려는 이들은 전세계 어디나 마찬가지 같아요. 여성의 몸에 안전한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겨요.

난티나무 2022-04-28 13:23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비타님. 안전한 곳이 없어요. ㅠㅠ 그리고 생각보다 엄청나게 전세계에 퍼져 있다고… 한국 세계 1등… ㅠㅠ

vita 2022-04-28 13:36   좋아요 1 | URL
아 우리나라가 1등인가요? 🙄 ㅠㅠ

책읽는나무 2022-04-28 14:30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는 가만 보면 좋은 쪽 1등은 안하고 나쁜 쪽 1등은 좀 많이 하는 듯요!!!

다락방 2022-04-27 19: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휴 고생하셨습니다, 난티나무 님. 리뷰에 담긴 난티나무 님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지네요. 저도 모르는 많은 것들이 성매매를 둘러싸고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말씀하신 것처럼 이보다 더한 일들이 또 여기 있겠지요.

여러가지 의미로, 힘냅시다!

난티나무 2022-04-27 21:08   좋아요 3 | URL
그쵸 다락방님. 책에서 말하지 않은(못한) 것들이 또 얼마나 많을까요…@@
힘들었지만 좋은 독서였습니다. 페이드 포 읽다 말았는데 그새 4월 말이라고 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04-27 20: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글 보면서 경제 문제에 얽힌 20대 시절의 제가 떠올라서 저도 모르게 분노가ㅠㅠ 여러 모로 힘든 책 읽어내느라 고생하셨어요!

난티나무 2022-04-27 21:08   좋아요 3 | URL
분노는 표출해야 합니다!^^
감사해요, 거리의화가님~~~~

라로 2022-04-27 20: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으려고 장바구니에 담았어요!! 그런데 매일 달라가 오르는 거에요,,ㅠㅠ 내일 더 오르면 내일 살까? 뭐 이러고 있;;; 나 왜 이래요? ㅠㅠ

난티나무 2022-04-27 21:09   좋아요 3 | URL
기다리면 더 오른대요? 그럼 기다려요~~~~ㅋㅋㅋ

미미 2022-04-27 22: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완독 수고하셨어요!*^^*
저도 읽으면서 만일 대학 다닐때
등록금을 내기 힘든 상황이었다면, 그러다 친구중 누군가가 큰 돈이 된다며 나를 유혹했다면 어찌됐을까를 생각했어요. 학자금 대출을 갚으려고 휴학하고 일했거든요.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수업으로 전환되어도 등록금 할인해줄 생각 1도 안하는 대학들...이번 정부 들어서 인상규제도 풀려 더 오를거라는데 그럼 그 돈을 갚기위해 학생들이 정작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그건 또 어떤 희생으로 이어질지 걱정입니다.

난티나무 2022-04-28 00:35   좋아요 3 | URL
미미님도 등록금 때문에 힘드셨었군요..
정말 등록금 너무합니다. 학생이 돈으로 보이는 건가요. 또 오르면 학교 어떻게 다니라고???@@ 서울로 몰리는 것도 그렇고 교육의 변질도 그렇고 총체적 난국이네요…ㅠㅠ
 
프로이트를 만든 여자들
잉에 슈테판 지음, 이영희 옮김 / 새로운사람들 / 1996년 4월
평점 :
절판


마르타 베르나이스, 베르타 파펜하임, 이르마, 엠마 엑크슈타인, 도라, 자비나 슈필라인, 헤르미네 후크 헬무트,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 마리 보나파르트, 힐다 두리틀, 헬레네 도이취, 카렌 호르나이, 멜라니 클라인, 안나 프로이트.

아는 이름이 있는가? 몇 명이나 되는가? (프로이트도 정신분석학도 뭐하나 아는 게 없기는 하지만, 처음 듣는 이름이 많아서 충격이었다.)


책을 읽을 때 기본으로 갖게 되는 감정은 분노이다. 책 전체에서 간간이 나오는 프로이트의 '발언'들은 무엇보다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다. 세상은 자기를 중심으로 돌고 사람들은 자기를 숭배해야만 한다는,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생각하고 그 위대함에 흠집을 내는 어떤 요인도 용납하지 못하는, 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두려움은 감추고 허세는 부풀리는,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지금도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그런 남자의 전형. 그가 자신의 연구에서 '정상'의 자리에 위치할 수 있었던 것은 책의 제목처럼 '프로이트를 만든 여자들' 덕분이었다. 이 여자들은 각각의 입장과 사고를 가진 인물들이었으므로 한꺼번에 뭉퉁그려 우러르거나 반대로 깎아내릴 수는 없다. 그들은, 프로이트를 열렬히 사랑하고 숭배했고, 평생 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프로이트로부터 시작해 저항의 길을 걸었다. 정신분석이라는 학문이 독이 되기도 약이 되기도 했다. 프로이트의 시대에 여성 정신분석학자가 많았다는 사실도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된다. 그들이 궁금해진다. 카렌 호르나이나 멜라니 클라인 같은 사람의 저서를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찾아보게 된다. 똑똑하고 재능 있었던 여자들.


그러나 무엇보다도, 누구보다도, 가장 덜 알려진 존재이면서 가장 많이 힘들었을 사람은 마르타 베르나이스가 아닐까.(개개인의 삶의 고통을 절대적 기준으로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남아있는 자료가 거의 없어서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생각으로 53년의 결혼 생활을 했는지 우리는 알 방법이 없다. 평생을 프로이트와 프로이트의 연구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다고는 하지만,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일기도 편지도 무엇도 없다.('프로이트문서보관실'에 편지가 보관되어 있는지조차도 알 수 없다고 한다.) 남자의 전형인 사람 곁을 오랜 시간 지킨다는 것은 너무나 어렵고 지치는 일이다. 우리는 그저 그렇게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책의 한 부분에 마르타는 아이들을 아버지 프로이트가 '분석'하는 것을 반대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잘 했다,고 생각한다. 어떤 식으로든 '유명한'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으며 자랐겠지만 정신분석의 대상까지 되었다면 그들은 더 힘든 삶을 살았으리라고 혼자 추측해본다. 그래서인지 아버지 프로이트를 이어갔다고 평가받는 안나 프로이트의 삶도 안타깝다.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프로이트를 만나서 대상으로 분석되었을까. 프로이트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활동하던 남성학자들, 정신분석학에 종사하던 그들이 만난 여자들까지 생각한다면, 우리가 모르는 것들은 얼마나 더 많을까. 세상 훌륭하고 위대해서 존경받는 역사 위의 남성들을 떠받치고 있는 건 그 주변의 여성들이라는 사실, 이젠 새삼스럽지도 않은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자로만 깔려있는 그 여성들은 지금도 세계 어디에나 있다. 아직도, 여전히. 남자를 떠받치고 있는 여자, 이 그림을 각자의 집안으로 가져가도 별 무리없이 들어맞지 않나? 이런 구조는 깨어져야 한다. 변하지 않을 사람들보다는 변화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구조를 떠받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자각으로부터. 내가 왜 엎드려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는 것에서부터. 네가 엎드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비판하고 책임을 묻는 것에서부터. 그렇게 생긴 균열은 반드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할 것이다.


(제목 '역사가 망각한 여성의 업적'은 역자 후기에 나오는 구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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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3-31 23: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서재 더 자주 들리지 못해 민망스럽다 하려던 차에, 첫 문장 나열된 이름 중 딱 하나 알아보는 저.

이 방향에서는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역사가 망각한 여성의 업적] 명확한 제목만큼이나 메시지도 명확하겠네요
이름을 기억 못한다는 자체가 소극적 가해일까? 자기반성해봅니다. 저역시 이름 기억은 커녕 남지조차 않을 존재이면서....

난티나무 2022-04-01 00:52   좋아요 2 | URL
저도 대부분 모르는 이름들이었어요.^^;; 책을 통해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프로이트 🐕 나쁜 놈인 거도 알아서 다행이고요.^^;;;;
재미있으면서 슬프고 분노가 불타오르는 책이었습니다. 절판되어 아쉬워요…
말씀하신 소극적 가해… 저도 생각해 봐야 겠습니다.

mini74 2022-04-01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몀 유명남성들의 그늘에 가려진 이들이 많은거 같아요. 수학잘했던 아인슈타인의 첫번째 부인, 볼테르의 조력자였던 에밀리 뒤 샤틀레. 그리고 난티나무님이 알려주신 프로이트를 만든 여자들 ㅠㅠㅠ이런 글들 읽으며 많이 배우는 거 같습니다 ~
 

‘여자하기’ 김혜순

여자하기는 ‘여자이고자 함‘이다. 타자와 감응하여 작고 낮은 것을 몸에 분포해야 한다. 여자이고자 함은 대립항인 남자라는 포지션이 본질적이지 않기 때문에 폐기되어야 함을 전제로 하기 이전에, 인간 각자가 스스로 여자라는 복수성, 내 안에서 흘러넘치는 여성적 실재를 향해 여행해 가야 함을 이른다. 또한, 나는 생물학적으로 여자이나 나의 에너지로 다른 사물들과의 연결과 접속 속에서 여자를 구현해가야 한다. 나는 날마다 다른 정체성의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 나는 텍스트 속에서 오늘은 소녀였으나 내일은 할머니로, 다시 할머니소녀로 태어나고 싶다. 오늘은 연어였으나 내일은 사냥하는 곰으로 태어나고 싶다. 나는 색으로, 무늬로, 이미지로, 어떤 작은 기미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나는 한 여자가 아니라 여러 여자, 여기 있는 여자가 아니라 여기, 저기 있는 여자, 나 때문에 여기가 여기 없는 저기가 되는 여자가 되고 싶다. 여자이고자 함은 순수한 에너지 차원에서의 감응으로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내 여행의 앞에는 나를 제외한 어떤 중심이 있다. 제도들이 파생하고, 규칙들이 남발되며, 나의 여권이 불온해지는 견고한 체제가 있다. 여자와 짐승을 변두리에 두거나, 권외에 두는 언어 체제가 있다. 이 체계를 거슬러 가노라면 ‘여자이고자 하는 자‘를 죽음, 부재, 텅 빔으로 변질시키는 ‘죽임‘이 있다. 그러면 나는 부재의 운동성이 된다.
결핍의 수용이 아니라, 결핍이라고 규정되는 범주를 거치지 않는 방식의, 내 운동성의 리듬이며 속도가 된다. 나는 부재와 맞물려 움직인다. 바르도 퇴돌Bardo Thos grol의 안에서 처럼. 바르도 퇴돌은 ‘둘do 사이bar를 듣다thos그리고 깨우치다grol‘라는 의미다. 둘 사이란 낮과 밤 사이, 죽음과 삶 사이, 선과 악 사이, 남자와 여자 사이 같은 모든 사이 중음의 세계다. 그 사이를 ‘들을 수 있으면’ 영원히 자유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무릇 여자이고자 하는 자, 바리공주처럼 자신의 부재를 여행하리라. 부재 없이는 리듬도 없다. 여행도 없다. 시에서도 마찬가지다. 나의 부재 없이 시적 언술은 불가능하다.
여자하기는 일종의 여행이다. 이 여행은 여자의 몸으로 겪는 복수적이고, 관계적인 경험이다. 몸의 경험을 사유하기이다. 사유하기는 공동체하기이다. 여자하기의 여행은 그 나름의 궤적이 있다. 이 여행은 길 아닌 길로 가는, 다방면으로 준동하는, 이분법의 고착을 넘이서는 가기이다. 수직적인 것들과 중앙제동장치와는 상관도 없는, 여행하는 나라의 정부로부터도, 떠나온 나라의 정부로부터도 이방인인 사람. 바리공주처럼 이쪽에서 저쪽을 여행하는 자, 지금 있는 여기에서 지금 떠나갈 거기로 접속해나가는 길이 있을 뿐, 그 길의 증식이 있을 뿐, 사이를 건네주는 뱃사공인 여행자, 일종의 무정부 상태, 계보도 조상도 없는, 모국어가 낯설어지는 상태.
(전자책 9/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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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1-26 0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활활발발 - 담대하고 총명한 여자들이 협동과 경쟁과 연대의 시간을 쌓는 곳, 어딘글방
어딘(김현아) 지음 / 위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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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행복한 감정에 눈물이 나는 건 그 행복 나도 느끼고 싶다는, 질투를 깔고 앉은, 공감? 갈망?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갖고 있으나 표현되지 못한 것들, 지금은 부족하지만 가질 수 있는 것들(물건 아님 주의) 을 갈망하는 기분이라고 정리해 말할 수도 있겠다.


읽기에 대한 갈증과 쓰기에 대한 조급함은 무지와 편협이라는 벽 앞에서 자주 무뎌진다. '제대로' 읽고 쓴 적이 있던가. 헛된 망상같은 꿈을 꾸는 일은 누구나 한다. 내 희망이 망상이 아니라고 하기엔 목표가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노력도 적다. 나는 어쩌면 '쓰고' 싶은 것이 아니라 '무엇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말들이 끓어올라 더이상 견디기 어려울 때, 기쁨과 슬픔과 분노와 희망과 좌절 등이 차고 또 차서 밖으로 터져나올 수밖에 없을 때 글이 '씌여지'는 것이라면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은 어디까지 차올랐나. 나는 지나치게 소심하지 않나. 어디까지 솔직하게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나는 솔직하게 생각하나 돌아보지 못하는 건 아닌가. 생각만을 치우쳐 하면서, 그저 생각의 옳고 그름에 이리저리 잣대를 들이밀면서, 생각하기조차 중도포기해 온 건 아닌가. 오랫동안 골똘히 생각하던 문제를 글로 풀어내는 일을 막연히 미루고 또 미루었던 건 아닌가. 

밤이 무서웠던 열한 살 열두 살의 내가 왜 밤이 무서웠는지에 대해 썼다면, 내 눈에 이상했던 엄마 아빠에 대해 썼다면, 중학교 한 반 친구들 안에서의 소외와 고립감을 썼다면, 막다른 길이라 생각했던 그 끝에 서 있을 때마다 쓰면서 생각하고 찾아보고 또 생각하고 썼다면, 그 때의 나는 좀더 대범해질 수 있었을까. 지금의 나는 세상을 보는 눈이 더 넓어졌을까. 하나마나한 생각을 그래도 해본다. 나이상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고 어떻게든 의지와 다른 무엇이 되어가는 동안 놓아버렸던 읽기와 쓰기가 이토록 아쉬울 줄을 나는 조금도 몰랐다. 혼자 읽고 쓰는 것보다 누군가들과 함께 읽고 쓰는 것이 엄청난 경험이라는 사실 역시 조금도 몰랐다. 새삼 이 책이 이렇게 나를 마구 흔든다. 흔들림을 따라 글방에 찾아가고 싶다. 그곳이 꼭 어딘글방이 아니어도 좋으리라. 어딘글방에서 많은 다른 글방이 파생되듯이, 지금도 수많은 글방들이 조용히 그러나 강력하게 존재하듯이, 또 그리고 또 따뜻하고 날카로운 공동체 글방들이 줄줄 나타나기를. 그 중 어딘가의 글방이 내게도 나타나기를, 오래오래 인연을 이어가며 서로 쓰고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관계가 되기를, 어쩌면 나는 벌써 그런 친구들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렇다면 이젠 더 많은 친구들이 생겼으면, 읽고 쓰는 친구들과 어떤 일이든 신나게 도모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오기를, 만들어낼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첫 부분부터 좋아서 밑줄을 긋다가 어느 순간부터 연필도 플래그도 내버려둔 채 읽기만 한다. 한번 읽고 던져둘 책이 아니라는 걸 읽으면서 느낀다. 갈망이 사그라지려 할 때 언제고 나는 다시 이 책을 손에 들 것이다. 행복을 다시 질투하며 갈망할 것이다. 책 속 이야기들에서 질문을 건져올려 고민할 테고, 무심하게 툭툭 던져놓듯이 쓰여진 문장들을 글감으로 생각하고 써볼 테고, 쓰고 나서 책 속의 사람들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고쳐도 볼 테다. 

글은 곧 사람이다. 오늘은 쓰는 사람 읽는 사람 무진장 (오프라인으로) 만나고 싶은데 한국책을 파는 동네책방은 너무도 멀고 만나서 책수다를 떨 친구도 멀리 있으니 프랑스책만 가득한 서점일지라도 가야 하겠다. 친구들에게 이 책을 알려야 하겠다. 단톡방에 책도 추천한다. 무수한 '싶다'가 차오른다고 백자평도 썼다. 리뷰도 이렇게 쓴다. (부욱 하고 올라오는 감정들을 마구 쓰느라... 담에 차분하게 다시 쓸 지도.^^;;) 


나는 책표지의 문구처럼 '담대하고 총명한 여자'가 되고 싶다. 함께 되고 싶다. 그럴 수 있으리라는 마음에, <활활발발>의 어느 페이지 작은 한 글자에 나를 슬며시 연결해 둔다. 


"그리고 연결된다, 당신과 나, 이토록 우연히 이토록 찬란히."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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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1 2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1-21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2-01-21 23: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정말 좋은 가보군요. 특히 난티님께.... 저도 굉장히 읽고 싶었는 데, 사실 부러워질까봐 빌려읽으려고만 찜해뒀거든요. 읽고 쓰기에 푹 빠지면, 가끔 엄청 조급해질 때 있어요. 그냥 내 욕망에 고꾸라지듯 지칠 때? 그럴 때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건 평생 할 거니까!하고 마음 다잡아요. 좋아하는 걸 평생 몰랐으면 어쩔뻔했어? 이제라도 알기를 얼마나 다행이야? 하면서. 그래도 더 빨리 알았더라면... 하는 마음이 올라오긴 하지요 ㅜㅜ
하지만... 평생 알라딘을 몰랐을 다른 평행 우주의 저는 여기, 지금의 저를 부러워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지금의 여기 있는 저는 또 부러움을 동력 삼아 욕심 내려놓고 일단 앞의 책을 읽기!
제 마음먹기가 용기가 되면 좋겠네요. 우리 평생 읽고 쓸거니까. ^^

난티나무 2022-01-22 06:03   좋아요 0 | URL
솔직히… 이 책 감상을 딱 두 글자로만 써야 한다면… “와! 씨!” 가 되겠습니다. 거기에 다섯 글자를 덧붙인다면 “와! 씨! ㅈ나 부럽다!” ㅋㅋㅋ
알라딘의 많은 분들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이 부러워해야 한다고도 생각해요. 거기서 그치지 않아야 한다고도요.
공쟝쟝님은 용기 있는 분!!!! 공쟝쟝님은 이미 나의 부러움!!!!!^^
 
[eBook] 호러북클럽이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방식
그래디 헨드릭스 지음, 강아름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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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차마 밤에 읽을 수가 없다. 오랜만에 읽는 무서운 이야기라. 중반쯤 읽고 이후의 이야기(조금은 짐작되지만)가 궁금해 아침에 눈뜨자마자 펼쳤다. 그리고 방금 끝. 뱀파이어. 한 개인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존재. 문득 뱀파이어의 기원이 더 궁금해졌고 어째서 세상에는 이렇게 뱀파이어 이야기가 넘쳐나는가,를 생각한다. 자주 보게 되면 으레 그것이 존재하리라 믿게 된다. 사실 뱀파이어와 같은 존재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게 이 세상 아닌가. 그래서인가보다. 끊임없이 뱀파이어 이야기가 쏟아져나오는 것은. 소설의 결말이 뜨뜻미지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대략의 줄거리조차 소개하지 않겠다. 자고로 이런 소설은 내용을 이야기해버리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는 짚어야 하는데, 스포일러 역할을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중반의 빈 시간이 이해되지 않는다. 퍼트리샤는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또 안일하다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이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 제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신경을 끄는 게 가능한 일인지.(방도 안전한 공간이 아닌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하긴,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나면 대처할 방법을 모르고 헤매는 게 사람이지.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있어도 믿을 만한 상황과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친구도 외면한다는 또다른 진실 앞에서, 주장하는 자가 증거까지 갖다바쳐야 하는 뭣같은 상황이 뻔히 일어나는 현실, 증거가 있어도 피해를 입은 자의 취약한 위치 때문에 믿어주지 않는 현실이 겹쳐진다. 멀쩡한 아내를 정신병자 취급하는 남편(뭘 알지도 못하면서 다 아는 것처럼 구는), 집에서 밥하고 빨래나 하는 존재(존재라고 인식하는지조차 모르겠지만)로 취급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남편. 이 외에도 많은 부분이 현실을 반영한다. 인종 차별, 계급 차별, 젠더 차별, 차별, 차별, 차별들과 보이지 않는 노동들. 만약 주인공이 '그린 부인'이었다면, 소설은 어떻게 될까? 흑인여성한부모인 그린 부인은(이름도 벌써 그린 부인이야) 그의 자리에서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을까. 일어난 사건조차 무마시키는 경찰의 힘을 믿을 수도, 연대를 형성해 단체행동을 할 수도 없을 텐데. '미스 메리'를 돌보고 보호하려 했던 사람도 그린 부인이고 아이들을 지키고자 자료를 모은 것도 그린 부인이고 최소한 자신의 아이들을 지키려고 피신시킨 것도 그린 부인이고 결정적 사건들을 일어나게 하는 실마리를 쥔 인물도 그린 부인인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백인중산층여성들의 북클럽' 이야기지만, 알고 보면 그린 부인의 이야기? 그렇다고 말하기엔 부족한 면이 많으나 그래도 나는 그렇게 생각할란다. 독자의 권리.^^ (흑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을지 궁금하다. 아마 안 읽을 거 같다.ㅠㅠ 이야기 속 죽는 아이들을 보면 거의 다 흑인아이들이고 '주요' 백인아이들은 어쨌거나 살아남는다... 성인 중 죽는 사람의 다수가 여성이다... 어찌 보면 '백인여성의 모성애 쩌는 생존서사'로도 읽힐 듯...) 


책의 말미에 재미있는 부분들이 있다. 책들의 목록은 물론이고 부록처럼 실린 편지도 있다. 무엇보다 역사적으로 알려진 살인사건 뒷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페미니즘 관점'에서. 그리고 독서토론을 위한 질문들도 있다. 맨 마지막, 뱀파이어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치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고 보는가? 라는 질문에 나는 아니오,라고 대답한다. 결말이 상쾌통쾌유쾌하기는커녕 찝찝하고 괴로웠다. 소설 곳곳에서 불편했다. 작가가 이것을 노렸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 너무 좋아요 기대 이상이에요 팔을 치켜들고 환호를 보낼 수는 없다. 그럼 뭘 어쩌라고? 그건 뱀파이어 소설을 쓸 작가들에게 달렸지롱.


이 책이 주는 표면적 교훈이라면? 북클럽을 만들어라. 어느 한 분야를 파라.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된다면 언젠가 유용하게 써먹을 날이 있으리니. 북클럽 멤버는 신중하게 결정하라. 남자는... 안 된다.(남자들은 '말이 너무 많고' '쉽게 돈의 권력에 넘어가며' '가정에서도 이중가면을 쓰고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쓰면 또 일반화한다고 뭇매를 맞을라나. 소설이 말하는 바가 그렇습니다... 


이 지점에서 묻는다. 과연 이것은 뱀파이어 소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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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1-06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속 뱀파이어란 존재가 너무 기분나쁘고 불쾌했어요. 정체를 밝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좀 더 비중있게 그린부인의 시각과 활약편이 나오면 좋겠어요. ~

난티나무 2022-01-07 01:04   좋아요 1 | URL
제가 글에 덧붙이려던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만 안 쓰고 올려버렸네요. 책 속 뱀파이어와 같은 존재가 지금 전세계에 너무 많습니다. 피만 안 빨지 사람을 족족 빨아먹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ㅠㅠ 하아….
저도 그린 부인 주인공 원츄합니다.^^

라로 2022-01-06 2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읽으려고 샀는데 무섭군요! 절대 밤에 안 읽는 것으로,,ㅠㅠ

난티나무 2022-01-07 01:05   좋아요 1 | URL
아 뭐 그렇게 무섭…지 않다고 하기엔 좀 무섭고… ㅎㅎㅎ 암튼 저는 밤에 보면 악몽 꿀까 봐 되도록 안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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