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트벨트의 밤과 낮 - 여성 철강 노동자가 경험한 두 개의 미국
엘리스 콜레트 골드바흐 지음, 오현아 옮김 / 마음산책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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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슥슥 읽히는 이 책이 마냥 잘 읽힌다고만은 할 수 없다. 노동의 세계가 어떤지, 지금 이 거대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위치와 역할이 어떠한지, 애초에 이 사회에서 노동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해본 적이 있다면, 내가 하고 있는 노동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고민해본 적이 있다면, 아니 그렇지 않다고 해도, 아 제철소의 노동이란 이렇구나, 하고 넘겨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노동,이라는 두 글자에 얽히고설킨 문제들, 자본과 불평등과 젠더와 정체성과 폭력, 어느 것 하나 따로 떨어져 존재하지 않고 그럴 수도 없는 문제들이 이리저리 흩어져있다가 모이기도 하다가 겹치고 떨어지고를 반복하며 일상을 채우고 있기 때문이고, 책의 이야기에 내 그런 일상이 겹쳐져 보이기 때문이다. 


읽는 사람은 그냥 읽지 않는다. 나는 나를 생각하고 대입도 해보고 감정이입도 하고 문제를 끌어다 내 경우에 맞춰보기도 하고 전혀 다른 맥락에서 다른 생각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그냥 에세이야, 하고 말 책일 수도 있는 걸, 나는 내 '임금노동' 혹은 '돈이 되는' 노동에 대해 생각하느라 책을 읽은 직후에 리뷰를 쓸 수가 없었다. 아 물론 오래 묵혔다고 해서 그 생각들이 쨘 하고 글자들로 정리되는 건 또 별개의 문제다. 그저, 그랬다는 말이다. 동시에 그 '돈이 되는' 노동에 대해 고심하느라 글로 정리할 (마음의) 여유 또한 없었다는 말도 된다. 


'경제적 독립'이 중요하다고,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게는 더욱더 그러하다고, 많은 사람들이(책에서도) 말한다. 맞는 말이다. 독립이라는 글자가 의미하는 것만큼 독야청청 독립하는 일이 인간 생에서 가능하기나 할까 하는 물음은 차치하고. 문제는 사회의 '이렇게 생겨먹음'이다.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어떤 모양의 어떤 식의 독립이 진정한 경제적 독립인가. 쳇바퀴에 올라서서 열심히 페달을 꼬박꼬박 밟거나 쳇바퀴에서 내려와 다른 모양의 페달을 열심히 꼬박꼬박 밟거나, 그게 선택이라고 한다면 뭐 그렇다고 치자. 올라서거나 내려서거나,가 여성(나)에게 열려있는가? 오랜 경력단절이 경력인 여성(나)에게 어떤 '임금노동'이 주어지는가? 주어진다,는 표현이 거슬린다면, 그렇다면 그것은 쟁취,해야 하는 것인가. 역시 '노오력'밖에 없는 것인가. 


어쩌면 나는 환상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그렇게 말을 했다. 돈이 없으면 밖에 나가 뭐라도 해야지. '몸을 쓰는' 노동이라도 해야지. 실제로는 그 '몸을 쓰는' 노동이 세상을 돌아가게 한다는 걸, 가장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는 일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세상 가치 없다고 후려쳐지는 '비임금노동', 주로 여성이 집에서 하는 모든 일들도 그렇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들을 가장 덜 중요한 자리에 놓고 살아간다. (자리조차 없을 때가 많다.) 세상이 '이렇게 생겨먹음'에는 내 이런 태도와 생각도 한몫 하고 있다. 몸을 쓰는 임금노동은 하고 싶지 않은 일, 꺼려하는 일, 저평가되고 스스로 저평가하는 일, 할 일이 없을(?) 때 하게 되는 일, 모두가 기피하는 일... 이라고 생각하는 그 생각이 바로 다시 '이렇게 생겨먹음'을 재생산한다. 그러니 몸을 쓰는 노동(이라는 말도 웃기지만. 몸을 쓰지 않고 하는 노동이 어디 있단 말이야.)은 하찮지 않다, 위대하다, 가치있다, 고 외치면서 자기 최면을 거는 내가 환상 속에 살고 있는 거지. 최면을 걸어야 할 정도로 익숙한 세상의 관습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거지. 


이 책의 저자는 병력을 갖고 있다. 제철소 이야기만 주구장창 나오는 게 아니라 (사람은 한가지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므로) 저자의 양극성 장애 이야기도 생활을 따라 이어진다. 곁의 사람 이야기도. 뭐랄까, 함께 읽고 있던 책의 제목이 자연스레 떠오른달까. <일할 자격>. 의사의 진단을 받지 않아도 여러 가지 장애나 병의 증상들을 가진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진단을 받은 사람은 '일할 자격'이 없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일할 자격'을 박탈당하지는 않는다. 무슨 차이일까. 여성이라 제철소에서 일하기 힘들 거야, 하고 말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겠지. 차별. 쟨 좀 이상한 애야, 와 쟨 양극성 장애 환자래, 사이의 간극. 사회적 시선과 혐오와 구분. 부분의 일반화. 그리고, 내가 온전히 내 모습으로만 임할 수 없는 환경, 가면을 쓰거나 그 집단에 걸맞는 언행을 보여주어야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형태, 같은 것이 좀 역겨웠다. 그래야 버틸 수 있고 계속 일할 수 있는 거야, 세상은 '이렇게 생겨먹'었으니까. (아무래도 난 거기가 어디든 취직은 못하겠군.) "일할 자격"은 사회가 부여한다. 이걸 바꾸어야 하기는 하겠으나, 바꾸어서 쳇바퀴에 올라가는 일이 바람직하다고는 말 못하겠다. 적어도 지금 이 사회의 구조 속에서는. 더군다나 그 쳇바퀴라는 것도 해체되고 있는 와중에 '노동'은 점점 더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겨진다. 계약직, 임시직을 넘어 초미세(마이크로)노동이 등장한 지 오래다. 첨단기술의 그림자에 가려진 사람의 노동. 이 세상은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을 한번 짓게 되는 또하나의 사실이 있다. 책날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저자 엘리스 콜레트 골드바흐는 백인 여성이다. 과정이 힘들긴 했지만 석사 학위도 땄고 제철소 경험은 3년 남짓이라고 한다. 개인이 얼마나 힘들었는가와 상관없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좀 후려치기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가 흑인 여성이었다면? 아시아 여성이었다면? 이라고 묻지 않을 수가 없네. 그럼과 동시에, 그래서 너는 이 책을 흑인 여성이 썼다면, 아시아 여성이 썼다면, 20년 노동한 사람이 썼다면, 그러면 만족할 텐가, 싶기도 하다. 독자의 오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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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이너모를 보면 클리블랜드가 생각난다고 샘과 찰리에게 말했을 때 그의 이야기에서 복수심과 관련된 부분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마음속 깊이 다이너모가 그 이상이란 걸 알았다. 그는 끔찍한 실패로 자신이 무너져 내리는 걸 지켜볼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계속 만들었다. 또 계속 베풀었다. 또 계속 모형 차를 만들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더 중요하게 그는 공갈꾼 몇이 열정을 앗아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그를 클리블랜드로 만들었다. 그것이 바로 러스트벨트에서의 삶과 노동이 의미하는 바였고 트럼프가 우리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바였다. 트럼프는 우리의 회복력을 보는 대신 우리를 찌부러뜨려 최악의 면을 도드라지게 했다. 그는 산업노동자를 몰락한 자로 여겼고 몰락이 우리의 유일한 정체성이라고 우리 스스로 믿게 했다. 그는 우리의 불안을 감출 수 있는 희생양과 분노의 대상을 제공했고, 그로써 그가 더 큰 권력을 탐하는 또 한명의 부유한 권력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가 못 보게 했다. 그는 우리에게 복수심을 불어넣었고 우리의 분노를 부추겼다. 그는 우리 마음속의 선을 훼손했다. 그것은 곧 우리가 지키기 위해 싸우는 그 모든 것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그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 P190



⎾ 자기 몸에 대한 여성의 생각은 불신되기 일쑤였다. 여성은 신체적 증상에 항불안제를 더 많이 처방받았고 심근경색 증상이 나타나는데도 스트레스 검사를 더 적게 받았다. 극심한 복통으로 응급실을 찾았을 때도 진통제를 받으려면-만일 진통제를 받는다면- 남성환자보다 더 오래 기다려야 했다. 상당수의 여성은 증상을 입증하기 위해 남자 친구나 남편, 아들을 동반한 채 의사를 보러 갔고 심장병이나 뇌졸중같이 심각한 질병이 있는데도 오진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평등은 아빠가 입에 올리고 싶은 토론 주제가 아니었다. 평등은 남근과 질이 같은지를 따지는 논쟁이 아니었다. 그것은 모든 육체가 생물학적 성과 젠더에 상관없이 동등하게 중요하다는 것을 명확히 하는 것이었다. ⏌- P215



⎾ 이제껏 살면서 본래의 나의 모습과 내가 원하는 모습, 남자들이내게 원하는 모습, 그리고 남자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원하는 모습 사이에 끼여 수없이 갈등을 해왔던 것 같다. 이 혼돈의 와중에 정작 나 자신이 원하는 모습은 쉽게 간과했다. 때로 성차별의 영향은 괴롭힘이나 학대만큼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때로 그것은 충족할 수 없이 상충되는 기대의 문제이기도 하다.⏌ - P234



⎾ 병실 앞에서 그가 부르던 장송곡을 떠올리고는 노래 부를 때는  말을 더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음악이 있을 때는 늘 말이 술술 나왔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를 때도 말을 더듬지 않았고 레드핫칠리페퍼스의 노래를 부를 때도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았다.

그를 보고 재빨리 웃어보였지만 목울대가 울컥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울지 않으려고 커피를 들고 수선을 떨었다. 크림을 더 섞고 설탕도 더 섞었다. 블랙커피 색이 점차 밝아지는 걸 지켜보면서 며칠 전에 간호사가 한 말을 생각했다. 적어도 저 남자 같지는 않잖아요. 어쩌면 간호사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이 아저씨 같지는 않을 것이다. 몇 달 동안 하는 일마다 엉망으로 꼬이는 바람에 나는 상황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의지마저 잃었다. 이 나라가 끔찍하다고-갇힌 기분이라고- 정신과 의사에게 말했을 때 나는 몇년 동안 마음속에서 조금씩 자란 생각을 말로 표현한 것이었다. 길을 잃은 기분이었고 무기력함을 느꼈다. 변화를 향한 나의 꿈은 헛되고 무익해 보였다. 미국은 약한 것들을 무자비하게 뭉개버리는 기어였지만, 나를 꾸짖은 정신과 의사는 옳았다. 그는 자신의 위치에서 미국을 전연 다른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에게 미국은 이민자가 의사 자리까지 오를 수 있는 나라였다. 이곳은 망명과 기회의 나라였다. 거대한 실험, 세계제일의 나라. 그곳에는 자체의 결점이 있고 그것도 치명적인 결점이 대부분이지만, 절망은 그 어떤 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말을 더듬는 아저씨가 그 증거였다. 그는 자신의 외로움을 키울 수 있었지만 지독한 패배감에 젖거나 자기감정에 몰입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는 치유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을 안고 있지만 노래를 불렀다. 자신이 기댈 수 없었던 아버지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의 말을 앗아간 폭력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의 고통은 냉소를 키우는 변명이 되지 않았다. 그는 분노를 방패처럼 들지 않았고 그 압력 아래에서 무너지지도 않았다. 삶은 그에게 주목받지 못하는 목소리를 주었으므로, 그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해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은 것이다. ⏌ - P356~7



⎾ 리아는 고개를 저으면서 웃었다. 리아와 함께 파란 쓰레기통을 맞잡고 바깥으로 나가자 겨울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용광로의 푸른 불꽃이 저 멀리서 타오르고 제철소가 우리 앞에 아득히 펼쳐졌다. 힘에는 양면성이 있다는 사실을 이곳은 늘 상기하게 했다. 힘은 모든 것을 찢어발길 수 있는 한편, 강하고 탄탄한 것도 부드럽게 누그러뜨릴 수 있다. 그러나 만사가 잘되길 기대하면서 수동적으로 서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발을 땅에 단단히 내딛고 통제하지 않으면 작은 흔들림에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 ⏌- P367



⎾ 어린 시절에 들은 온갖 상투적인 말이 일시에 떠올랐다. 꿈꾸면 이룰 수 있어! 너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특별한 꽃이야! 맞는 말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어쩌면 하나의 문화로서 우리는 이 빌어먹을 특별하다는 감정에 매료된 나머지, 나라를 온통 집어삼킨 개인주의의 유독성에 눈을 감았는지 모른다. 우리는 독선과 거만, 개인적 쾌락, 개인적 이야기, 개인적 믿음, 개인적 자만에 꼼짝없이 예속되어 눈가리개를 한 채 이데올로기에 매달리기를 원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되는 공간을 선호했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복잡다단한 면을 존중하지 않아도 되고,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룰 필요도 없으며, 우리의 현실을 복잡하게 만들거나 부정하는 것들이라면 제거하고 무시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선호했다. 공동체 대신에 열차 사고와 재앙과 스캔들을 추구했다.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촉진한다면 그 어떤 것도 갈망했다.

우리의 실제 모습―때론 혼란스럽고 따분한-을 직시하는 것보다 오락거리가 더 쉬웠기 때문이다. ⏌- P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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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5-26 2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님 글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다음 달부터는 저도 리뷰를 쓰고 싶네요.^^*

난티나무 2023-05-26 23:44   좋아요 2 | URL
미미님^^ 다음달부터 합류하시는 거죠!??? 😍😍😍

책읽는나무 2023-05-27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인 여성이어서 혜택?받은 부분들이 있었을 것이란 생각은 저도 깨림칙하게 남아 있어요.^^

난티나무 2023-05-28 23:37   좋아요 1 | URL
이게 참 안 할 수도 없는 생각이죠?^^;;;;
 

잠결이다. 무언가 따닥거리는 소리. 아주 느리게 나무를 쪼는 딱따구리 같다. 천천히, 조용하게. 잠이 서서히 깬다. 깨면서 오른쪽 허벅지와 골반이 묵직하게, 아픈 것도 아니고 안 아픈 것도 아닌 그 상태, 곧 아픔이 몰려올 것처럼 묵직하게, 불안한 것을 느낀다. 새벽 네 시 반. 모두 잠든 시간에 이 딱딱 소리는 어디서 나는 걸까. 희미한 어둠 속에서 천장을 쳐다본다. 분명 소리는 내 머리맡에서 난다. 천장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십 년이 넘게 먼지와 시간이 쌓였을 그 곳, 사다리를 놓아야 올라갈 수 있는 그 곳, 그러나 한번도 들여다본 적조차 없는 그 곳, 지붕 아래, 천장 너머 다락. 다락이라고 하기엔 집 크기만큼이나 넓게 펼쳐져있을 그 곳. 거기에 무엇이 있는 걸까. 뭐길래 새벽에 잠도 안 자는 걸까. 나는 왜 새부리를 떠올리는가. 생물이라고 상상하는가. 그러다 문득 큰넘이 전에 한 말이 떠오른다. 침대가 삐걱거려, 움직이면 소리가 나. 그 소리일 수도 있을까, 생각해본다. 조용하다 갑자기 조용하게 들려오는 그 소리가, 몇 번을 딱딱거리는 그 소리가, 그 소리일 수 있는지에 대해. 몸을 저렇게 오래 뒤척인다고? 아무래도 새부리 쪽인 것같다. 만약 그렇다면 지붕과 천장 사이 그 곳에 그 새부리는 어떻게 들어갔을까? 그러다 또 떠오른다. 이전에도 이 소리, 들은 적 있는 듯하다. 만약 그렇다면 그건 새부리일 리가… 없을까. 누운 채로 다리를 이렇게 저렇게 움직인다. 지금 아프면 안 된다. 무엇보다 고통은 안 된다. 지금은 아니다. 요가매트를 떠올리고 스트레칭을 떠올리고 반성을 떠올리고 그러는 사이 이렇게 저렇게. 방에 불을 밝히고 사라진 소리를 들으며 이제 여름이 미친 듯이 온다고 생각한다. 그건 딱딱거리는 소리, 마치 살아있는 무언가가 내는 소리로, 창틈에 집을 지으려고 웅웅거리는 벌들의 소리로, 창밖 난간까지 기어오르는 개미들의 소리로, 온다. 온갖 살아있는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의 소리로 온다. 그건 때로는 아수라장 같다. 다시 자고 싶다고 생각한다. 필름을 거꾸로 돌려 잠이 깨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턱도 없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딱딱 소리가 다시 들린다. 이번에는 정확하게, 내 머리 위가 아니라 벽 너머 저쪽, 내 머리맡의 벽 너머 저쪽, 거기에서 들린다. 확실하다. 큰넘이 돌아누웠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건 결국 침대가 내는 소리인가. 만약 그렇다면 소리는 잠결일 때와 아닐 때를 구분하는 건가. 인간의 상태를 구분할 수 있는 건가. 아니면 새벽 세 시와 새벽 다섯 시의 차이인가. 시간이 소리를 지휘하는 건가. 이제는 커서의 깜박임에서 소리가 나는 것만 같다. 사방은 고요하다. 고요한 소리들이다. 소리들로 가득하다. 잠에서 깬지 한 시간이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 뭐가 확실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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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05-04 2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포소설 같아요!!

난티나무 2023-05-05 05:31   좋아요 1 | URL
최고의 칭찬!!!! 😻
 
행복의 약속 - 불행한 자들을 위한 문화비평 딕테 시리즈 2
사라 아메드 지음, 성정혜.이경란 옮김 / 후마니타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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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독서 모임 멤버들로부터 성실하다는 칭찬을 받았다. 모임에 빠지지 않고 읽어와야 할 분량을 읽어오고 정리하자고 하면 꼭 몇 글자라도 끄적여서 오고, 그래서 멤버들은 나를 모범생, 우등생, 이라고 불렀다. 나도 안다, 그게 칭찬인 것을. 그러나 나는 모범생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부터 거부감을 가졌다. 칭찬하는 말에 적절한 대응법을 (아직도) 모르겠어서 흥흥 웃고 말았지만, 그 후로 왤까, 계속 생각했다. 뭐가 싫은 걸까. 

모범생, 우등생, 학교에서 말 잘 듣고 허튼 짓 안하고 곁가지로 빠지지 않고 시키는 것(만) 잘하는 사람. 내 머릿속에는 하라는 대로 잘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만 둥둥 떠다녔다. 이건가, 내 거부감은. 사실을 말하자면 학창 시절 나는 모범생으로 보이기는 했지만 우등생은... (아주 잠깐 그렇기도 했지만 대체로 절반쯤은) 아니었다. 시키는 걸 잘하고 싶었으나 애를 쓰지는 않았다. 애를 써도 할 수가 없었다. 학창 시절도 지나고 사회 생활도 지나오고 기혼 생활도 웬만큼(?) 해본 나를 돌아보자니, 떠오르는 에피소드 속의 내 모습이 아주 적확하게 '정서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늘 그렇지는 않았어도 자주 그랬다. 하. 나는 뼛속까지 이방인이었어. 그걸 알아서 항상 나를 탓하며 살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안 돼, 이상한 짓 하지 마, 벗어나면 안 되지... 

다시 모범생이라는 말로 돌아오면, 정서 이방인으로서 나는 모범생이었던 적이 없다고 해야 맞을 듯하다. (역사를 다시 쓰자.ㅋ) 좋아하는 것을 했고 약속을 했으므로 그 약속을 지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과 모범생이라는 단어는 합치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그래서 그 단어로 칭찬받는 것이 싫었다. 무언가를, 누군가를, 칭찬하는 말도 새로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칭찬이 싫음, 기분 나쁨을 가져오기도 한다는 걸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올바른' 생각인지를 생각했다. 


나를 수동적 인간이라고 여겼다. 사람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안 되는 거지만 대체로 그렇다고 여겼다. 그러나 알다시피 우리는 한 가지 면만 갖고 행동하지 않는다. 같은 행동이라도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내가 '정서 이방인'으로 행동한 순간들을 떠올리면 그건 단순히 수동적,이라는 단어에 집어넣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내가 불행하다고 느꼈던 것, 수동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그 모든 게 부정적이라서 내 입꼬리는 항상 아래를 향하고 있다고, 아주 불만이라고, 여겼던 것 들이 실은 자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렇게나 뒤늦게 알아차리는 거, 이거야말로 '행복'이겠지.ㅋㅋ 그런데 '어쩌면' 나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몰라. 우등생이 되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라서 못했던 때처럼 자원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몰랐을 뿐일지도. 


남들과 비교해 내 삶이 보잘것 없고 '실패'했다고 생각하다가, 아니다, 그런 게 어딨어, 정해진 기준은 없고 세상에 '성공'한 사람만 잘사는 건 아니다, 따라서 나는 실패한 게 아니야, 그냥 내 삶을 살고 있는 거지, 하고 생각의 전환을 이루었으나, 곧 이건 '합리화'가 아닌가 싶어 나를 의심하기를 반복했는데, 이젠 정말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책을 덮으며 또 생각했다. 세상의 모든 기존 관념의 연장선에 내 생각을 놓는다. 기존 관념을 의심하는 시각으로 내 생각을 본다. 그거 또다른 기존 관념 아니야? '합리화'라는 말로 너를 다시 옭아매려는 술책?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 자책은 금물이다. 자책할 시간에 책을 한 글자 더 읽자. 


도입부가 어려워서 어렵다고 끙끙거렸다. 다시 읽으면 덜 어려울 것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좋아서, 물론 아메드의 말을 따라 나를 생각하면서는 슬펐지만, 그 슬픔은 좋은 슬픔이었다. 나는 이제 이 느낌을 기분 좋은 슬픔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슴이 아프지만 좋은 느낌이라고, 좀 고통스럽지만 기분이 좋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사라 아메드 덕분이다. 


잘난척하는 사람을 보면 묻고 싶었다. "그래서 넌 행복하냐?" 내 눈에는 하나도 행복해보이지 않는 그 사람은 분명 행복하다고 대답했겠지. 이런 게 행복 아니겠냐고 말했겠지. 나도 내 기준에서의 행복이라는 관념을 설정해두었을 것이다. 내 기준에서의 행복. 그걸 아직 '행복'이라는 단어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 아쉽다. 그땐 좀 헛발질하는 느낌으로 행복이라는 걸 상상했다면 지금은 발 끝에 단단하게 무언가가 와닿는 느낌으로 '좋음'을 상상한다. 그게 별것 아니라는 사실, 스쳐지나가는 것이라는 사실, 이미 수없이 스쳐보냈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사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언어를 개발해야 한다는 아메드의 말을 되새긴다. '행복'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자주 쓰던 단어 '어쩌면'이 심하게 더 좋아질 것같은 느낌이다. '어쩌면, (행복)'! 






(밑줄들은 '결론'에서 가져왔다.) 


⌈행복은, 니체가 이야기하듯, 당신이 하도록 요청받은 것을 따르는 방식일 수 있다. ...... 우리는 능동적 활동과 수동적 활동을 경험하는 방식의 질적 차이를 설명할 언어를 개발해야 한다. 그러려면 능동과 수동의 구분 자체에, 그런 구분이 존재의 계급 구분을 고정하는 방식에, 행복한 사람과 길을 건너는 닭들을 고통 받는 영혼과 움직이지 못하는 길들과 구분하는 방식에 도전해야 한다.⌋ (378) 


⌈로드는 작품 내내 우리가 상처 주는 것으로부터 보호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단지 상처를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이 상처를 야기하는지 알아차리기 위해 작업하고 투쟁해야 한다. 이 말은 알아차리지 않도록 배워 온 것을 탈-배움unlearning하라는 의미다. 힘과 피해의 관계인 폭력이 어떻게 다른 신체가 아닌 어떤 신체로 향하는지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려면 이런 작업이 필수적이다. ⌋(388) 


⌈이 책에서 내 목적은 나쁜 느낌들이 단순히 반작용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살펴보는 것이었다. 나쁜 느낌들은 끝나지 않은 역사들에 대한 창조적 반응들이다(Ahmed 2004:200~202도 참조). 우리에게 불행할 의무가 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 견딜 수 없는 것으로 경험될 수 있는 느낌에서 로맨스나 의무를 만들어 내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나는 단지 불행을 극복해야 할 느낌 이상의 것으로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390) 


⌈가능성을 받아들이려면 과거로의 회귀, 즉 우리가 상실한 것뿐만 아니라 현재 가지고 있는 것, 포기한 것뿐만 아니라 포기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가능성에 대해 배우는 것은 계보학을 하는 것, 현재의 도착에 대해 질문함으로써 현재를 궁금해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성에 대해 배우는 것에는 현재로부터의 일정한 소외가 수반된다. 익숙한 것이 물러나면 다른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정서 이방인들은 창조적일 수 있다. 우리는 그릇된 것들을 바랄 뿐만 아니라, 포기하라고들 하는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이런 바람들을 중심으로 생활 세계를 창조한다. 우리가 행복에서 멀어져야 일이 벌어진다. 우연 발생이 생겨나는 것이다. ⌋ (392)


⌈불행할 자유는 부적절한 방식으로 행복할 자유를 포함한다. 그런 자유는 행복 하중을 가볍게 할 것이다. 불행할 자유는 그러므로 행복을 제쳐 두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우연발생을 행복 안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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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04-29 2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난티나무 2023-04-30 05:42   좋아요 2 | URL
하뚜하뚜!!!

다락방 2023-04-30 0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티나무 님, 너무나 좋은 리뷰 입니다!! 멋져요!!

난티나무 2023-05-03 06:45   좋아요 0 | URL
오홍홍 칭찬은 기분 좋은 것입니다!! 충성! 아 이거 아닌가…^^;;;;;; 🥰

거리의화가 2023-04-30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난티나무 2023-05-03 06:45   좋아요 0 | URL
유후!!! 😘
 
짝 없는 여자와 도시 비비언 고닉 선집 2
비비언 고닉 지음, 박경선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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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읽기는 사람을 멀리 데려간다. 거기에 어떤 감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는 채로 불현듯 다다르게 되는 그곳은 내 경험, 내 생각에 빗대어 시작된 공간이자 시점이며 순간이다. 때로는 깨달음으로, 기쁨으로, 분노로, 우울로, 각양각색의 감정 집합소인 그곳들. 


 비비언 고닉의 책을 관통하는 몇 가지 화두 중 나를 끌어당긴 건 '우정'이다. 한 단어로 말하자면 그렇고, 두 단어로 말하자면 '좋은 대화'다. 뉴욕의 거리, 사람들, 공중을 떠도는 말들과 관계들 을 아무렇지 않게 툭툭 던지듯 이야기하고 거기에서 배어 나오는 통찰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대화, 좋은 대화, 그걸 할 수 있는 사람과의 만남,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우연'이 매 순간 겹쳐지는 관계, 나는 그것이 가장 좋았다. 그래서 슬펐다. 단순히 슬프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 뭐든 그렇지 않겠는가. 언어에서 명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그의 글 곳곳에서 나와 겹쳐지는 무언가가 보였고 지극히 사적인 감정으로 그 문장들에 나를 대입했다. 그러면서... 


 뒤늦게야 깨닫는다. '그게 무슨 말이야?'라고 되묻지 않는, 그런 말 없이도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직관적으로' 알아차리는 관계. 그런 관계를 찾고 싶어 하는 것, 그게 나이고, 인간이구나. 그게 안 돼서 매번 실망하고 자책하고 돌아서는구나. 흔하디흔한 말이지만 '열린' 마음, 그걸 갖추기가 그렇게 어렵다. 자기 비하 성향은 이미 존재하는 것마저 가려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한다. 



" 원하는 일을 하면 기대에 못 미칠 게 분명했고, 알고 지내고 싶은 사람들을 따라가봤자 거절당할 게 뻔했으며, 암만 매력적으로 보이게 꾸며봤자 그저 평범해 보일 것이었다. 계속 움츠러들던 영혼은 그렇게 손상된 자아를 둘러싼 모습으로 굳어져 버렸다. 나는 일에 몰두했지만 마지못해 그럴 뿐이었고, 가끔 좋아하는 사람들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서는 일은 있어도 두 걸음을 옮긴 적은 없었으며, 화장은 했지만 옷은 되는대로 입었다. 그 모든 일 중 무엇 하나라도 잘 해낸다는 건 별생각 없이 삶과 관계 맺는 일, 다시 말해 내 두려움을 사랑했던 것 이상으로 삶을 사랑하는 일이었을 텐데, 그것이야말로 내가 할 줄 모르는 일이었다." (142/195)


 손상된 자아, 두 걸음 옮기지 못하는 것, 두려움을 사랑하는 일... 저기, 혹시 내 얘긴가요? 좋고 많은 이야기들 다 놔두고 이런 구절이 눈에 훅 들어온다. 그리고 이젠 나도 좀 달라져야지 생각한다. 이 생각은 뻔한 전개로 이어진다. 나는 비비언 고닉이 아니고, 깨닫는다고 변화하는 건 아니니까. 



" 좋은 대화란 공통된 이해관계나 계급의식이나 공유된 이상 따위보다는 기질에 달린 문제다. "그게 대체 뭔 소린데?"라고 따지기보다는 "뭔 말인지 딱 알지" 하며 자기도 모르게 반색하게 되는 기질. 그런 공통의 기질이 있으면 대화는 자유로우면서도 거침없는 흐름을 어지간해선 잃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없으면 언제나 살얼음판을 걷기 마련이다. " (110/195)


 저자의 다른 책에도 언급되는 이 구절을 좋아한다. 맞는 말이고 당연해 보이는데, 일상에서도 그렇다고 느끼는데, 유독 이 구절이 뇌리에 오래 남아있다. 친구들이 떠올랐고 '공통의 기질'을 가졌을, 그래서 대화가 좋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래, 내게도 있다, 그런 '우연의 순간'들이. 그러나 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인 동거인과 나에게는 대화에서 필요한 '공통의 기질'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걸 깨닫고 표현할 수 있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를 자주 내뱉었다.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고 싶었고, 나중에는 알고 싶은 마음을 버렸는데, 귀를 열어도, 되물어서 답을 들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게 무슨 말이야?'는 아직 서로 자주 쓰는 말이다. 몸으로 막연히 느끼던 것을 책의 언어로 마주하는 일이 기쁨이면서 슬픔이기도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세상 가장 무서운 것이 인간과의 관계이고 세상 가장 따스한 것이 또 인간과의 관계이다. 우리에겐 친구가 필요하다. 아주 절실하게. 인생에서 말이 통하는 친구만큼 필요한 게 또 있을까? 우정은 곧 사랑이 아닐까? 중요한 것은 적절한 심리적 거리다. 고닉도 '절친' 레너드와 한번 만나면 일주일 동안 연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정도 시간이 지나야 그와의 대화가 그리워진다고. 너무 찰싹 붙어있지 않기. 


 다른 의미에서 또 슬펐던 부분이 있다. 노작가 앨리스의 요양원. 그가 요양원에서 보낸 7년이라는 시간. '좋은 대화'를 할 수 없어 시름시름 시들어가는 생활. 어떤 모양일지는 알 수 없지만 내 노년에는, 앨리스에게 어떤 식으로든 가닿은 여러 명처럼 그렇게 나와 연결된 친구들이 얼마나 있을까? 


 그러니 나는 좋은 대화를 계속 갈망할 수밖에 없겠다. 노년을 생각하기 전에 지금, 여기에서. 읽고 쓰고 말하면서. "뭔 말인지 딱 알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를 위해서. 지금 그런 관계인 친구들을 잃어버리지 않으면서, 새 친구와, 거리를 걷다 마주치는 낯선 이와도 우연의 순간을 나눌 수 있기를, 매일 보는 이와도 그런 순간을 맞을 수 있기를, 책을 읽으면서도 자주 그럴 수 있기를. <짝 없는 여자와 도시>가 내게 그런 순간들을 주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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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6 08: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6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23-03-17 08: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럴 수 있을 거예요☺️

2023-03-17 2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7 2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에나 2023-03-17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에서 제가 별표 막 해둔 문장이랑 똑같아요. 저도 동거인과는 대화가 아예 안 되는데 (좋은 대화만이 아니라) 생각해보니 처음부터 남성에겐 그런 기대도 안 했고 그런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할 생각도 안했다는 걸 깨닫고...아악.ㅋㅋㅋㅋ
내가 한 마디 하면 그 뒤에 숨어있는 열 마디를 캐치해주는 대화가 있죠. 쾌락 폭발!그리고 좋은 대화를 나누려면 (고닉과 레너드처럼) 적절한 거리감과 은은한 그리움이 있어야 하는 거 같아요. (고로 동거하면서는 힘들닼ㅋ)

난티나무 2023-03-17 20:24   좋아요 1 | URL
오홍 처음부터 기대를 안 하셨다니 역시! 저는 기대를 했더랍니다...ㅠㅠ 배우자 선택 기준도 그거였는데... 하... 안 되더라고요. ㅎㅎㅎ
동거하면서 그게 되려면 진짜 거리 필요하고요, 은은한 그리움, 음 이건 어째야 하나... 주말부부 정도면 딱 좋을 거 같은뎅, 아니 한 달에 한 번 보는 사이 ㅋㅋㅋㅋㅋ

baboya333 2023-05-05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딱 난티나무가 떠오르네요.

난티나무 2023-05-05 13:18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까? ㅋㅋㅋㅋㅋ
 
특별한 소녀 - 페미니스트 고스트 스토리
베니타 코엘료 지음, 유숙열 옮김 / 이프북스(IFBOOKS)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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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이야기라고 부제가 붙었지만 이 책은 귀신이야기가 아니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페미니스트 고스트 스토리'라는 구절이 흥미를 불러일으킨 건 사실이다. 무엇보다 인도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점이 더 매력적이었다. 책을 다 읽고 몇 글자라도 써야 겠다고 생각하고 리뷰창을 연다. 별 넷? 별 다섯? 하다가 다섯 개를 꾹 누른다. 인도의 이야기라는 점이 별 하나를 더했다. 우리에겐 세계의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니까. 


읽어보면 알겠지만 각각의 짧은 귀신이야기들은 한마디로, 남성이 저지르는 여성혐오범죄들이다. 이렇게 말하는 게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는데, 어차피 맨앞에 옮긴이가 다 써놓았다. - '결혼 지참금, 가정 폭력, 매매춘, 성적 학대, 자살, 이슬람 종교, 카스트 제도 등 여성을 괴롭히는 모든 문제'(7) 성폭력, 명예살인, 동성애, 남성우월주의+남성중심주의+남성특권, ...... 


때로는 몽환적이고 가끔은 시적이기도 한 글들은 한 편이 끝날 때마다 가슴이 아리다. 중반을 넘어서 피아노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거리 두기 또 실패. 특별히 아름답거나 문학적으로 뛰어나거나 한지는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이야기들이 마음을 끌어당긴다. 귀신은 말 그대로 귀신이기도 하고 사람이기도 하고 형체가 없기도 하다. 문득 내 삶에서 이런 귀신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백인여성의 이야기에 지나치게 물들어있는 탓인지 중간중간 인도여성을 떠올려야 했다. 오 이런, 내 머릿속 기본값이 백인이라는 사실을 또 깨닫는다. 







 (Venita Coel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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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2-11 0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해외문학 읽을 때 기본값 백인인 것 같아요. 공감 ㅠㅠ

난티나무 2023-02-11 17:23   좋아요 1 | URL
재밌는데 슬퍼요, 분노도 욱!
읽다가 헐 했답니다. 기본값 백인… ㅠㅠ 흐융

단발머리 2023-02-11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기본값은 백인…. 표지가 엄청 강렬하네요. 장바구니에 담아둡니다^^

난티나무 2023-02-11 17:27   좋아요 0 | URL
표지 저는 좀 응? 했는데 아무래도 인도인데? 라는 생각 때문에 그런 거 같아요. 그러면서 읽을 때는 어느새 인물을 백인으로 상상… 아 정말 ㅠㅠ
영어판 표지는 심플(?)하더라고요.

미미 2023-02-11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담아갈래요! 어릴 때 봤던 <전설의 고향>도 지금 생각해보면 많은 소재가 여성혐오, 성차별, 계급차별... 그땐 그런 것들에 대한 인식이 없어서 마냥 무서웠는데 다시 보면 무섭기 보다 슬플 것 같아요.

난티나무 2023-02-11 17:31   좋아요 1 | URL
오 전설의 고향!!! 무서웠죠.ㅠㅠ 그러고 보니 그 이야기들을 잘 매만져서 글로 쓴 것이 이 책… ㅠㅠ 배경이 인도라는 차이만 있겠네요. 맞아요 미미님 말씀대로 지금 다시 본다면 슬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