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이다.

 

박완서:  (중략) 며칠 전에 피천득 선생하고 점심을 했는데, 그분도 가톨릭 영세를 받으셨다고 해서 " 어떻게 하셨어요?" 하니까 아름다워서 했다고 하셨는데 그게 되레 좋더라구요. 아름다워서 사랑하는 게 당연하다는 거죠. 어떤 여자를 사랑하는데 그 여자가 아름다워서 사랑했다는 게 맞지 그 여자가 진리이기 때문에 사랑한 건 아니잖아요. 내가 어떻게 편안한지 모르겠어요. 너무 억압하는 건 진리가 아닌 것 같애요. 사실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나니' 그러면서도 진리의 이름으로 억압하는 게 너무 많거든요.   -116~117쪽

 

 

박완서: (중략) 한번은 동화 쓰시는 정채봉 씨에게 말했어요. 나는 고해성사 때문에 언젠가 카톨릭에 대해 냉담해지고 말 것이라구요. 그게 왜 의무가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억지로 만들어갖고 "죄를 지었습니다" 하고 말해야 하나요? 정채봉 씨에게 그런 말을 막 했더니, 웃으면서 피천득 선생님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선생님께서는 성당에서 나눠준 성사표를 그냥 통 속에 집어넣어버린다면서요? 한번은 그러시다가 신부님께 들키기까지 하셨다면서요?

 

피천득: 뭐, 들켰다기보다......난 말할 게 없으니까. 물론 따져보면 나도 죄가 있겠죠. 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다 아실 텐데 한 다리 걸쳐서 그럴 필요가 있어요? 하느님이 다 아실 것 아녜요?

 

(중략)

 

피천득: 나는 한 번도 고해성사를 해본 적이 없어요. 고해성사하는 방도 참 답답해요. 어휴, 그 좁고 답답한 방에 어떻게 들어가나 하는 생각부터 불쑥 들어요. 그리고 나는 솔직히 말해서 성체인지 하는 거 받아먹는 것도 이상해요. 맛도 없고 배부르지도 않은 그걸 형식적으로 먹고 할 까닭이 뭐예요.       -180~181쪽

 

 

아름다운 두 분이시다. 저런 마음으로 카톨릭에 입문한다면 적어도 냉담자는 되지 않으리라. 힘을 뺀 카톨릭을 상상할 수 없지만. 힘을 뺀 신앙인이 되는 건 가능하겠구나 싶었다.

 

 

*가톨릭과 카톨릭. 책에 쓰여진 그대로 옮겼다.

 

-------------------------------------------------------------------------------

 

오숙희: 그 소설에서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박완서: 말로써 쉽게 남녀평등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젊은 여자들, 만만한 남자를 만나서 쉽게 평등을 이루려는 약은 여자들이 빠질 수 있는 함정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135쪽

 

 

그래서 읽어볼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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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02-10 13: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톨릭 신자로서 너무 공강되는 글이예요.
박완서작가의 이 책 읽어보고 싶어요^^

nama 2021-02-13 14:48   좋아요 2 | URL
대담집이라서 마치 대화를 나누는 듯한 기분이 드는 책입니다.
 

 

○○년 전 오늘 남긴 독서기록을 확인하시고, 추억을 돌아보세요.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제공되는 북플 서비스의 이런 문구를 처음엔 반가워했으나 지금은 좀 괴로운 심정으로 들여다본다. 흠, 내가 고작 요정도 밖에 안 되었었구나, 하는 자괴감이 드는 날도 드물지 않다. 어제의 나 보다 오늘의 더 나은 나를 기대하자는 다짐이라도 해야 하나. 몇 권의 책을 읽고 끄적거리는데 제일 방해가 되는 건 시간도 공간도 다른 사람도 아닌 내 자신이다. 그냥 쓰면 될 것을.....

 

1.

 

 

 

 

 

 

 

 

 

 

 

 

 

 

 

 

 

나는 『동물해방』을 읽고 삶의 좌표를 얻었다. 일종의 종교적 안정감을 느꼈다. 무의미한 세상에서 나름의 의미를 설정하고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가장 근본적이고 정치적인 원동력을 갖게 되었다.         -69쪽

 

'삶의 좌표'를 얻은 책이라니. 나는 이렇게 말해 본 적이 없어서 매우 부러웠다. 꼭 읽어봐야겠다, 이 책.

 

 

 

 

 

 

 

 

 

 

 

 

 

 

 

누군가 꿈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고 했다. 그렇다면 꿈을 수식하는 것은 형용사가 아닌 부사여야 한다. 나는 '휘뚜루마뚜루' 꿈꾸고 있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벌린의 자유는 명사였고 프롬의 자유는 동사였다. 나의 자유는 부사다. 나에게 자유란 얻고 싶은 어떠한 대상도 아니고, 하고 싶은 특정 행동도 아니다. 그런 목적들은 순간순간의 욕망에 따라 바뀌기 십상이다. 나는 그저 '자유롭고' 싶다. 아니, 더 정확히는 '자유로이'살고 싶다. 내가 자유로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루하루 내 삶의 퍼포먼스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뿐이다. 휘뚜루마뚜루 자연발생적인 행위를 이어갈 때 나는 내 본연의 모습에 다가감을 느낀다.     -93쪽

 

 '휘뚜루마뚜루'라는 단어는 나의 어머니가 자주 썼던 단어이다. 주로 옷을 몸에 걸칠 때 이 표현을 썼다. 휘뚜루마뚜루 아무렇게나 걸쳐도 좋은, 아주 편한 옷을 가리킬 때 사용하던 부사였다. 옷에 묶여 있었던 부사 하나가 해방된 느낌을 받아서 아주 신선했다.

 

카투사가 존재하는 한 대한민국은 온전한 주권국가가 아니다. 카투사는 전쟁 중 존 무초 대사의 요청에 따라 이승만이 구두 합의한 임시 제도였다. 지금도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 카투사의 업무는 한·미 양국 어학병이 충분히 대신할 수 있다. 미군이 주둔하는 일본, 독일, 영국 등 다른 어느 나라에도 카투사 같은 제도는 없다. 그럼에도 존속되는 것은 징집제가 있는 한 카투사로 가는 것이 명백한 이득이기 때문이다. 못 간 사람은 부럽고, 갔다 온 사람은 부끄럽다. 나만 해도 이미 혜택을 본 처지에서 카투사 제도를 비판하기 조심스럽다. -128쪽

 

카투사를 먼저 다녀오신 많은 분들! 누군가는 이런 말을 진즉에 했어야 했다. (내가 못 들었나?)

'못 간 사람은 부럽고, 갔다 온 사람은 부끄럽다.' 부끄러워 말 못 했나?

 

 

2.

 

 

 

 

 

 

 

 

 

 

 

 

 

 

1984년 직전에 대학을 졸업한 나는 대학 시절에 이 책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는데도 읽지는 않았다. 곧 다가올 1984년이 기대보다는 걱정으로 가득차던 시절에 딴 나라 같은 소설 따위에 마음이 가지 않았다. (소설 따위라니...이 말버릇 좀 보게나. 명색이 문학 전공이면서.)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젏음의 뒤안길에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서보니 이제야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읽다가 만 부분에 책갈피가 끼워져 있었는데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해서 그 부분을 겨우 넘고나서야 읽기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어? 로맨스였네. 미래의 디스토피아 어쩌구 보다 로맨스라는 걸 강조했다면 진즉에 읽었을 것을....

 

어떤 점에서 당의 세계관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성공적으로 주입되었다. 그들은 잔인무도한 현실 파괴도 감행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자기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파악하지 못할뿐더러, 발생하는 공적 사건에 대해서는 충분한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지 덕분으로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다. 그들은 아무것이나 꿀꺽꿀꺽 삼키지만 아무 탈도 없었다. 마치 한 알의 곡식이 소화되지 않은 채, 아무 찌꺼기도 남기지 않고 새의 창자를 통과하듯이 말이다.    -194~195쪽

 

대학 때 이 책을 읽었다면 이해할 수 있었을까? No! 허나, 지금이라도 읽어서 다행이다.

 

 

3.

 

 

 

 

 

 

 

 

 

 

 

 

 

 

엔도 슈사쿠의 소설. 영국 작가 그레이엄 그린은 이 소설을 가리켜 '우리 시대 가장 훌륭한 소설'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레이엄 그린 역시 '하나님은 고통의 순간에 어디 계시는가?'를 끈질기게 물었던 작가였으니 그가 엔도 슈사쿠를 같은 과로 여겼을 터이다. 인간에 대한 연민조차 드러내지 않는 하느님을 향한 나약한 인간들의 간절한 외침. 하느님에게 따지고 싶을 때 읽으면 위안이 좀 되려나....그것보다 일본에서 왜 카톨릭 선교가 실패했는지를 드러내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P233~234 인용 생략. 너무 길어서요.) 어차피 하느님에게 따져봐야 뾰족한 대답을 들을 수는 없으니.

 

 

4.

 

 

 

 

 

 

 

 

 

 

 

 

 

"이케아의 모든 디자인은 칼 라르손에서 시작된다!" 스웨덴 국민 화가의 일상 속 작은 행복. 

 

칼 라르손과 그의 아내 카린 이야기, 그들의 자녀들을 그린 그림들을 일목요연하게 접할 수 있어서 좋았던 책. 칼 라르손이 국민 화가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역시 화가였던 아내 카린의 내조의 힘이 상당했을 터이다. '북유럽을 대표하는 스웨덴 디자인 운동의 뿌리에는 확실히 카린이 있었다.(328쪽)' 부록으로 몇 페이지 할당된 분량만으로는 매우 아쉬웠지만 부지런한 누군가가 책을 내지 않을까....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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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1-02-02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엔도 슈사쿠의 <침묵>. 저도 감명깊게 읽은 책 중 하나인데. 이제 다시 읽으면 어떨까 싶네요.

nama 2021-02-03 09:15   좋아요 0 | URL
일본 소설로서는 주제와 소재 모두 독특하고도 독보적인 것 같아요. 한번쯤 읽을 만해요.
 

 

몇 권의 책을 읽다보면 건방지게도(?) 책의 우열을 가리게 된다. 자신은 노래를 부르지 못해도 남이 부르는 것은 잘 부르고 못 부르는 것을 판단하듯, 글을 쓰지도 않으면서 남이 애써 써놓은 책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곤 한다. 순간 조심스러운 마음이 되는데 그래도 독자에게서 잊혀지는 것보다 한번이라도 더 누군가의 입에 오르내리는 게 좋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악의가 아니라면.

 

요즈음 읽은 책 중 마음을 크게 울렸던 순으로 적어본다.

 

 

 

 

 

 

 

 

 

 

 

 

 

 

 

220쪽의 얇은 책으로 키마저 작고 디자인도 별로여서 외모는 실망스러운데 내용은 보석이다. 이따금씩 툭툭 던지는 한두마디에 눈길이 길게 머문다. 이 책의 주제는 중국 서점 기행이지만 그것보다 작가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공감과 더불어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

 

나는 내 인생의 그런 막장드라마 같은 현실에서 도피하는 방법으로 종종 떠나는 행위를 한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된 현실의 비극은 피할 수 없지만, 슬픔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 나에게 그것은 여행이거나 정처 없이 걷는 것이다. 대책 없이 날벼락 같은 일을 당했다고 생각했던 날, 나는 쿤밍으로 떠났다.              -106쪽

 

정처 없이 걷는 것. 아, 이건 내 얘긴데....

 

오래전 어느 가을 저녁, 혼자 벤치에 앉아서 멍한 두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던 그 여자에게도 갈 곳이 있었더라면 삶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산다는 것 자체가 피곤하고 목구멍까지 슬픔이 차오르는 날, 우리에게는 언제라도 찾아갈 수 있는 다정하고 따뜻한 인생의 주유소가 필요한 법이다. 그곳에서 저마다 소쩍새 우는 사연을 풀어 놓고 맘껏 목 놓아 울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173쪽

 

목구멍까지 슬픔이 차올랐던 사람만이 쓸 수 있는 표현이지 싶다. 이런 글은 몸으로 쓴 글이다. 머리가 아닌 발로 쓴 글이다. 발로 쓴 글, 경험에서 우러나온 글이라는 의미이다. 분명 서점 얘기인데 삶의 속살을 훑고 지나가는 절절함 같은 걸 읽을 수 있었다. 책이 얇다는 게 흠이라면 흠.

 

 

 

 

 

 

 

 

 

 

 

 

 

 

 

 

 

 

완독은 아니고 아직 반 밖에 읽지 않았지만, 이 책 역시 발로 쓴 글이다. 저자가 1991년 생으로 내가 살아온 날들의 반 밖에 안되지만, 배울 점이 참 많은 사람이다. 한겨레 신문에 종종 실리는 이 양반의 칼럼은 고단한 날들의 단비처럼 신선하고 풋풋해서 좋다.

 

 

 

 

 

 

 

 

 

 

 

 

 

 

 

 

발과 머리로 쓴 글이지만 약간 머리를 더 사용한 듯한 책. 여행준비에 관한 책이니까.  그런데 이 작가는 등산을 싫어한다나. 세상 사람들을 히말라야를 가본 사람과 가보지 않은 사람, 아니 히말라야를 가볼 사람과 가보지 않을 사람으로 나눈다면 이 작가분은 분명 가보지 않을 사람이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조금 실망했다기 보다는 뭐 그럴 수도 있지.....사람은 다 다르니까. 그러나 유명한 맛집 탐방은 도저히 내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인데....

 

 

 

 

 

 

 

 

 

 

 

 

 

 

 

읽긴 읽었는데 딱히 기억에 남지 않는 책. 발 보다 머리로 쓴 느낌이 나서 조금은 시큰둥하게 읽었던 책. 서재이웃님이 등장하는 부분만은 선명하게 남는다.

 

 

 

머리로 썼건 발로 썼건 그게 무슨 대수랴.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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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1-01-15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과 책 사이에 여행이 있군요. 공감합니다.
당분간 먼 여행은 못갈듯 싶어요. 이러다 여행 자체에 대한 흥미마저 시들해질까 걱정이네요. 앞으로 남은 그 많은 시간을 여행도 관심이 시들해지거나 건강이 못따라가주게 된다면 어찌 보낼까 싶어요.
이거 우울증인가요? ㅠㅠ


nama 2021-01-15 19:33   좋아요 0 | URL
<여행준비의 기술> 같은 책으로 여행 욕구를 달래야 하는 게 슬프네요. 어려운 사람들도 많은데 여행 운운하는 것도 좀 그렇고요. 세상이 왜 이런지요...

2021-01-15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15 1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올해 꾸역꾸역 읽은 책. 읽다보니 '서점'이라는 주제가 되었다. 딱히 여행이라기도 뭐한 나들이 삼아 몇 군데 다녀온 곳도 대부분 서점이었다. 열정을 논하기에는 부끄럽고 게으르지만 여튼 책으로나 여행지로나 서점을 기웃기웃하던 한 해였으니 정리를 해야겠다 싶다.

 

 

 

 

 

 

 

 

 

 

 

 

 

 

그간 사놓고도 읽지 않은 채였는데 '서점'이란 주제에 구미가 당겨 읽어보니....이쪽 분야로는 선구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그렇지만 책도 인연이 되어야 만나게 되나보다.

 

 

 

 

 

 

 

 

 

 

 

 

위의 <작은 책방...>을 쓰신 분들이 쓴 책이다. 책방 개업을 염두에 두고 유럽의 책방들을 순례한 이야기로 서점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동네책방을 운영하는 소소한 얘기가 소박하면서도 풋풋하게 다가왔던 책. 오래오래 책방 문을 열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 저자가 운영하는 '생각을 담는 집'이라는 책방에 다녀오기도 했다. 멀리서 왔다고, 특히 머리 허연 양반들이 왔다고(이건 내 생각) 텃밭에서 키운 상추를 한아름 주시기도 했다. 그 상추 때문에도 잊을 수 없는 책방이다. 

 

 

 

 

 

 

 

 

 

 

 

 

 

 

 

책방을 연다면 실제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책. 약간 재미없는 책이나 운영의 노하우면에서는 필요할 듯하다. 그런데 왜 이 책을 샀지? 혹시 책방 해보려는 마음이....

 

 

 

 

 

 

 

 

 

 

 

 

 

 

 

 사회학자 노명우의 니은서점 이야기. 이야기에 홀려 인스타그램 계정까지 팔로우하게 되었다는... 알라딘에서 구매하는 관행을 깨고 니은서점에서 책을 구매해볼까.... 내 약한 마음을 갈등으로 몰아넣고 있다, 요즈음.

 

 

 

 

 

 

 

 

 

 

 

 

 

 

 

니은서점에 소개된 책.  일본소설이 주는 잔잔함과 소박함을 즐긴다면 읽을 만하겠다. 내 성질엔 좀 안 맞지만.

 

 

 

 

 

 

 

 

 

 

 

 

 

 

역시 니은서점에 소개된 소설.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 같은 꾸민 이야기에 구미가 당기지 않을 때, 그런 기분이 드는 책.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스토리보다도 요양원 생활을 담은 부분인데 머지않은 내 모습이 연상되어서일까?

 

 

 

 

 

 

 

 

 

 

 

 

 

 

 

가장 최근에 읽어선지 가장 가슴에 남는 책.  책과 서점에 대한 열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식당보다 서점 운영이 더 힘들다는 말에 '책방 한번 해볼까?'하는 생각을 접게 될지도...경주에 가게 되면 일부러라도 들러봐야할 서점, 어서어서 서점.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분들이 쓰신 책을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일이 작은 도움이라도 될까 싶어서 기꺼이 구매하게 된 책들. 이런 책을 읽으면서 '만약 내가 책방을 연다면?' 하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르곤 했으니 고맙기 그지없는 책들이다.

 

 

 

한 권을 빠트렸다. 일본 작가로 독립서점의 원조쯤 되는 분이다. 가장 인상 깊게 읽었는데 하마터면 기록이 빠질 뻔 했다.

 

 

 

 

 

 

 

 

 

 

 

 

 

 

소개하자면,

마쓰우라 야타로:' 1965년 도쿄 출생. 카우 북스 대표. 문필가. 열여덟 살 때 홀로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의 서점 문화, 그리고 사진집과 아트북, 고서적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1996년에 귀국한 뒤, 서점 '앰앤드코 북셀러스'를 열었으며, 트럭을 이용한 이동 서점을 시작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책 날개 인용)

 

일찌감치 주류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개척한 사람이다. 요시모토 바나나가 이 분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다. (p.290)

 

'그리고 해외를, 그 자유를, 그 시대를, 피부로 아는 사람으로, 어렸을 때나 젊었을 때 책에서 구원을 찾고, 책과 한 몸이 되어 산 적이 있었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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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2-30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세요, 서점!!! 너무 잘 하실 것 같아요. 저 혼자 벌써 어떤 책방의 주인이 되실까 막 상상하게 되네요. ^^;;

nama 2020-12-30 18:20   좋아요 0 | URL
백수로 지내다보니 노는 게 제일 좋으니 어쩌지요? ㅎ
 

 

 

 

 

 

 

 

 

 

 

 

 

 

 

80~90년대 김현의 글이 그리워 구입한 책.  지나간 것은 지나가게 해야 하나보다. 그렇게나 좋았던 것도 세월이 흐르니 퇴색하고, 돌이켜보는 짓도 허망하게 느껴진다. 사람도 글도....고전으로 남는 것의 위대함에 새삼 경의를 표하게 된다. 추억에서 부질없음을 빼도 남는 것이 자그마한 뼈다귀라면 그 뼈다귀라도 곱게 모셔놔야지 싶다. 그마저 남기지 않는다면 더 깔끔하겠지만. 아직은.

 

 

인상적인 부분. 내 말이....

 

쓰임새 있는 것만이 아파트에서는 존중을 받는다. (중략) 아파트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그대로 드러내고 산다. 그러나 감출 것이 없을 때에 드러낸다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은 감출 수도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사람은 자기가 드러내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숨겨야 살 수 있다. 그 숨김이 불가능해질 때에 사람은 사회가 요구하는 것만을 살 수밖에 없게 된다. 무의식은 숨김이라는 생생한 역동성을 잊고 표면과 동일시되어 메말라버린다. 표면의 인공적인 삶만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중략) 나는 아파트에 살면서 내 아이들에게 가장 부끄러움을 느낀다.    -42~43쪽

 

 

그래도 김현 선생은 지금보다는 훨씬 덜 미친 시대에 사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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