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없다


                         정호승


마음이 다 떠났다

마음에도 길이 있어 

마음이 구두를 신고

돌아오지 않을 길을 떠나버렸다

비가 오는데 비를 맞고

눈이 오는데 눈을 맞고

마음이 먼 길을 떠난 뒤

길마저 마음을 다 떠나버렸다

나는 마음이 떠나간 길을

따라갈 마음이 없다

종로에서 만나 밥 먹을 마음도

인사동에서 만나 술 마실 마음도

기차를 타고 멀리

바다를 보러 가고 싶은 마음도 없다

마음이 다 떠나면 

꽃이 진다더니

내 마음이 살았던 당신의 집에 

꽃이 지고

겨울비만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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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배송 받는데 배송비는커녕 되려 적립금 500원을 주는 편의점 택배를 이용하고 있다. 문앞 배송에 젖은 게으른 습관을 바꾸고 몸도 조금 움직이니 커피 한 잔 마시는 듯한 각성효과와 기분전환의 작은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타박타박 걸으니 진짜 동네사람이 된 것 같다. 


며칠 전, 주문한 책이 도착했다는 카톡을 확인하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머리가 희끗한, 필시 내 또래쯤 되는 사장님이 반긴다. 며칠이 지나도 택배를 찾아가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한숨을 쉬면서 매번 곧바로 찾아가는 나를 향해 고마운 감정이 배인 인사를 건넨다. "역시 책을 많이 읽는 분이라 다르십니다." 엉? 속으로, 저는요, 알라딘세계에서는 책을 많이 읽는 축에도 못끼는데요...므흣. 하나만 사야지 했던 비스킷을 두 개 고르길 잘했다.


집으로 돌아와 딸에게 이 얘기를 하니, 그건 책을 많이 읽어서가 아니라, 우리 가족이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나서 그렇다는 해석을 한다. 늘 약속 시간보다 먼저 가서 기다리시던 나의 부모님의 유전자는 나를 거쳐 딸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으니.


그래서 구입한 책이 무엇이냐면,


1.















한겨레신문에 실린 이 분의 칼럼을 읽는 맛이 좋았다. 다소 엉뚱 기발하지만 '~척'하지 않는 진솔함이 마음에 와닿았다. 주기적으로 이 분이 쓴 책을 검색하기도 했다. 여러 권 있지만 내가 읽은 책은 거의 없었는데...어느날 시골 오두막에 방치(?)한 책이 눈에 들어왔다.





2015년 학교 도서관 업무를 할 때 낡고 오래된 책 수백 권을 폐기처분했는데 왠지 이 책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챙겨놨었다. 만화에는 별 애정이 없어서 읽고 싶은 책은 아니었으나 뭔가 독특한 아우라를 품고 있었다. 저자가 훗날 내가 좋아하게 될 분인지는 물론 몰랐다.


그리고 얼마전 도서관에서 빌린 책.
















이 책에 소개된 도시 중 1/2 를 가봤다. 내 발로 직접 가봤지만 이 책을 통해 시각교정을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 이런 관점도 있구나 하는. 그러나 꼼꼼히 읽지는 않았다. 화장실에서 잠깐씩 읽기에 딱 좋은 책? 안타깝게도 나는 속전속결형이라 화장실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저자는 좋아해도 그 분이 쓴 책은 읽지 않는 이 불일치의 텁텁함이라니......


그러다가 저 위의 책이 발간된 걸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드디어 새 책을 내셨군요! 잔머리를 잠시 굴렸다.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하면 내가 맨 먼저 볼 수 있잖아~ 얼른 신청했는데 며칠 후 도서관 홈피에 들어가 확인해보니 이미 누군가가 신청해서 내가 신청한 게 취소가 되었다. 그러면 언제 내 손에 들어올 지 기약할 수는 있으나 기다리다 지칠까봐 그냥 구매하기로 마음 먹었다. 팬이라며....


이미 신문에서 읽은 글이 있었으나 그래도 좋았다. 정희진, 이라명...훅하고 치고 들어오는 짜릿한 글과 번갈아 읽고 있으면 충격이 가라앉으면서 나와 코드가 맞는 친구의 얘기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2. 














이 책에 대한 포스팅을 9년 전에 올렸다고 친절한 북플이 알려주었다. 아, 이 책이 아니라 이전에 나온 책.

















때로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는 후회하곤 하는데 이 책이 그랬다. 소식 끊긴 친구는 못 만나지만 한때 마음에 들었던 책을 다시 만나는 건 작은 기쁨이다. 다시 보니 예전엔 눈에 들어오지 않던 인물들이 하나둘씩 안겨온다. 내가 세상을 헛되이 산 건 아니구나. ㅎㅎ



3.















이 책 역시 도서관에서 빌렸었는데 완독은 못했다. 도저히 보름 안에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빨리 읽는다고 머리에 남아있을 내용도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나는 만화를 읽는데 애를 먹는다. 그림과 글이 따로따로 놀아서 집중을 못한다. 게다가 그 많은 뮤지션들과 그들의 대표곡을 들으려면 이 책을 옆에 끼고 있어야 한다. 재즈에 대한 책을 언젠가 읽어보리..벼르던 게 언제였던가.




동네 편의점 사장님한테 인정 받기 위해 계속 플래티넘 등급을 유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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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ard Cory

                           E.A.Robinson

 

Whenever Richard Cory went down town,

We people on the pavement looked at him:

He was a gentleman from sole to crown,

Clean favored, and imperially slim.

 

And he was always quietly arrayed,

And he was always human when he talked:

But still he fluttered pulses when he said,

"Good-morning," and he glittered when he walked.

 

And he was rich - - - yes, richer than a king - - -

And admirably schooled in every grace:

In fine, we thought that he was everything

To make us wish that we were in his place.

 

So on we worked, and waited for the light,

And went without the meat, and cursed the bread:

And Richard Cory, one calm summer night,

Went home and put a bullet through his head.

 

리처드 코리가 시내에 나올 때마다

길가를 지나던 우리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신사였고

단정한 외모에 의젓하고 늘씬했다

 

항상 단정한 옷차림에

말할 때 그는 항상 인간미가 넘쳤다

"안녕하세요"하고 인사할 때 맥박은 강하게 고동쳤으며

그가 걸을 때 눈이 부셨다

 

그리고 그는 부자였다. 왕보다도 더 부유했다

또 모든 면에서 훌륭한 교양을 쌓았다

요컨대 그는 우리가 그였으면 하고 바라게 만드는

그 모든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했다

 

우리는 그렇게 일하면서 희망의 날을 기다렸다

고기 없이 살며 맨 빵을 저주했다

그리고 어느 고요한 여름밤에 리처드 코리는

집으로 돌아가 자기 머리에 총을 쏴버렸다

 

 

 

 

 

 

 

 

 

 

 

 

 

 

 

 

 

p.186 에 실린 시인데 계속 이어진 글을 옮겨본다.

 

어머니는 학생들에게 이 시의 주제를 이해시키려 애쓰는 중이라고 했다. 남들에겐 완벽하게 보이는 표면과 그 아래 숨겨진 비밀, 아무도 모르는 절망감 간의 괴리를. 사실 이 시야말로 샐리와 내가 어머니에게서 들은 것 중에 우리 가족의 상황을 둘러싼 진실과 가장 가까웠다고 하겠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문제를 우리에게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던 맹세를 충실히 지켰으니까. 우리가 단서라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문학 토론을 통해서 뿐이었다.

 

이 책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가 되겠다.

 

 

'내가 읽은 올해의 책'에 올리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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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터스위트 - 불안한 세상을 관통하는 가장 위대한 힘
수전 케인 지음, 정미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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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노 아야코의 책「중년이후」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 경험상 체험이 아니라 지식으로만 터득한 것은 나의 피와 살이 될 정도의 정열로 발전된 것은 거의 없었다. 축적된 지식이 나의 체험에 힘입어 하나의 사상이 된 적은 있었지만 다른 사람에게 들은 것, 교육받은 것 중에는 순수하게 그 자체가 나의 신조가 된 것은 하나도 없었던 것 같다.......사람이란 자신이 체험한 것밖에는 알 수 없다는 사고에서 나는 지금까지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p. 111


거의 매일 북플이 알려주는 나의 흔적들을 읽다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내가 이런 책을 읽었어? 이런 글도 썼었어?'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릴 걸 읽어서 뭐하나... 콩나물에 물주듯 생의 어느 한 시기에 접한 책들도 나에게 피와 살이 되었을까....과연....



수전 케인의 이 책에서 마주친 한 문장에 한동안 생각이 꽂혔다.





나오미 시합 나이(Naomi Shihab Nye). 1952년생. 미국 시인.


위의 구절은 그의 시 <친절>에 나오는 문장이라서 일삼아 찾아보았다. 원문과 번역한 문장도 옮겨본다. 오늘은 시간이 널널하고 모처럼 마음도 밝다.



Kindness


Before you know what kindness really is

you must lose things,

feel the future dissolve in a moment

like salt in a weakened broth.

What you held in your hand,

what you counted and carefully saved,

all this must go so you know

how desolate the landscape can be

between the regions of kindness.

How you ride and ride

thinking the bus will never stop,

the passengers eating maize and chicken

will stare out the window forever.


Before you learn the tender gravity of kindness

you must travel where the Indian in a white poncho

lies dead by the side of the road.

You must see how this could be you,

how he too was someone

who journeyed through the night with plans

and the simple breath that kept him alive.


Before you know kindness as the deepest thing inside,

you must know sorrow as the other deepest thing.

You must wake up with sorrow.

You must speak to it till your voice

catches the thread of all sorrows

and you see the size of the cloth,

Then it is only kindness that makes sense anymore,

only kindness that ties your shoes

and sends you out into the day to gaze at bread,

only kindness that raises its head

from the crowd of the world to say

It is I you have been looking for,

and then goes with you everywhere

like a shadow or a friend.


친절(류시화 번역)


친절함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알려면

네가 가진 것을 잃어 봐야 한다

싱거운 국에 소금이 녹아 사라지듯이

미래가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껴 봐야 한다.

손 안에 갖고 있던 것

숫자를 세며 소중히 간직해 온 것

그 모든 것이 떠나가야만 한다

그래야 알게 된다

친절함이 없는 곳의 풍경이 얼마나 삭막한지

결코 멈추지 않을 것 같은 버스에 타고 있는데

승객들은 옥수수와 닭고기를 먹으며 

영원토록 창밖을 응시한다


친절함의 부드러운 중력을 배우려면

흰 판초를 입은 인디언이

길가에 죽어 있는 곳을 지나가 봐야 한다

그가 너일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도 나름의 계획을 갖고 밤을 여행한 사람이었다

그를 살아 있게 했던 것도 단순하 호흡이었다


친절함이 내면의 가장 깊은 것임을 알려면

또 다른 가장 깊은 것인 슬픔을 알아야 한다

슬픔에 감겨 잠에서 깨어나 봐야 한다

너의 목소리가 모든 슬픔의 실들을 알아차려

그 천의 크기를 알 때까지

슬픔과 이야기해 봐야 한다

그때 친절함 외에는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없어지고

친절함만이 너의 신발끈을 묶어 주고

밖으로 나가 편지를 부치고 빵을 사게 할 수 있다

오직 친절함만이 세상의 많은 것들 속에서

머리를 들어 말한다

네가 찾고 있던 것은 바로 나라고

그리고 너의 그림자처럼 또는 친구처럼

너와 함께 어디든 갈 것이다



(*'밖으로 나가 편지를 부치고'......요부분은 원문에서 안 보이는데...)




지난번 포스팅했던 <내가 만난 장애아 엄마1>를 쓰면서 떠올린 감정이 슬픔이었는데 그 슬픔이 이렇게 친절로 연결되는 거였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픔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어야 보이는구나, 라는 생각도. 나도 슬픈 거였구나, 라는 자각. 슬퍼야 보이는구나. 다시 소노 아야코로 돌아가서, '사람이란 자신이 체험한 것밖에는 알 수 없다'에 수긍 또 수긍. '친절'이 무엇인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은 느낌.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는 내가 아는 것이 참 없다의 다른 표현. 나이 먹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이제는 솔직할 수 있다.'라는 생각.


시 한 편 건진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만하다. 솔직히 이런 류의 책은 잔상이 오래가지 않는다. 읽는동안 마음의 위로를 받는 건 분명하지만 책을 덮고나면 곧 잊어버리고만다. 비터스위트라는 달콤씁쓸한 감정을 찾아 나선 작가의 열망과 부지런함이 되려 불편해지는 순간이 결국엔 들이닥치고. 차고 넘치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구먼, 하는 교만한 태도에 흠칫 놀라기도 하고. 독자로서의 예의를 끝까지 잘 지킬 것.


허준이 교수의 졸업식 축사를 동영상으로 보고 축사 원문도 찾아 읽었다. 그중 한 부분.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일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친절하시길, 그리고 그 친절을 먼 미래의 우리에게 잘 전달해 주길 바랍니다.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 '먼 미래의 우리'. 중학생 아이들을 가르칠 때 종종 이런 말을 했다. "너희들이 보기에 선생님(나)이 늙어보이지?" 아이들 대답, 이구동성으로 "네." 그러면 이렇게 말한다. "얘들아, 잠깐이다." 아이들이 고개를 젓는다. "쌤,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무서워요."


썩 살갑게 다가오지는 않지만 그래도 마지막 축사의 말에 '친절'이 들어가서 좋다. '절 중에서 최고의 절은 친절'이라던 어느 스님의 말씀도 떠오른다. 부디 친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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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글을 읽고 심보선의 <형>이라는 시를 읽기 위해 책을 샀다.

 

 

 

 

 

 

 

 

 

 

 

 

 

 

 

 

누군가가 그랬듯이 나도 이 긴 시를 옮겨본다. 

 

 

                 

 

형은 어쩌면 신부님이 됐을 거야.

오늘 어느 신부님을 만났는데 형 생각이 났어.

나이가 나보다 두 살 많았는데

나한테 자율성이랑 타율성 외에도

신율성이라는 게 있다고 가르쳐줬어.

 

신의 계율에 따라 사는 거래.

 

나는 시율성이라는 것도 있다고 말해줬어.

시의 운율에 따라 사는 거라고.

신부님이 내 말에 웃었어.

웃는 모습이 꼭 형 같았어.

 

형은 분명 선량한 사람이 됐을 거야.

나만큼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았을 테고

나보다 어머니를 잘 위로해줬을 거야.

당연히 식구들 중에 맨 마지막으로 잠들었겠지.

문들을 다 닫고.

불들을 다 끄고.

 

형한테는 뭐든 다 고백했을 거야.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사는 게 너무나 무섭다고.

죽고 싶다고.

사실 형이 우리 중에 제일 슬펐을 텐데.

 

그래도 형은 시인은 안 됐을 거야.

두번째로 슬픈 사람이

첫번째로 슬픈 사람을 생각하며 쓰는 게 시니까 말야.

 

이것 봐. 지금 나는 형을 떠올리며 시를 쓰고 있잖아.

그런데 형이 이 시를 봤다면 뭐라고 할까?

너무 감상적이라고 할까?

질문이 지나치게 많다고 할까?

아마도 그냥 말없이 웃었겠지.

아까 그 신부님처럼.

 

시가 아니더라도 난 자주 형을 생각해.

형이 읽지 않았던 책들을 읽고

형이 가지 않았던 곳들을 가고

형이 만나지 않았던 사람들을 만나고

형이 하지 않았던 사랑을 해.

 

형 몫까지 산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가끔

내가 나보다 두 살 더 늙은 것처럼 느껴져.

 

그럼 죽을 때 두 해 빨리 죽는 거라고 느낄까?

아니면 두 해 늦게 죽는 거라고 느낄까?

그건 그때가 돼봐야 알겠지.

 

그런데 형은 정말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사실 모르는 일이지.

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지 않았으리란 법도 없지.

불행이라는 건 사람을 가리지 않으니까 말야.

 

만약 그랬다면 내가 형보다 더 슬픈 사람이 되고

형은 감옥에서 시를 썼을까?

그것도 그때가 돼봐야 알겠지.

 

형한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수두룩했는데

결국 하나도 물어보지 못했네.

 

형 때문에 나는 혼자 너무 많은 생각에 빠지는 사람이 됐어.

이것 봐. 지금 나는 새벽까지 잠도 안 자고 시를 쓰고 있잖아.

문들도 다 열어두고.

불들도 다 켜놓고.

 

형, 정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왜 형은 애초부터 없었던 거야?

왜 형은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았던 거야?

왜 나는 슬플 때마다 둘째가 되는 거야?

 

형.

응?

 

 

------------

 

 

먹먹해져서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리다가 뚝 멈추고 말았다.

 

왜 형은 애초부터 없었던 거야?

왜 형은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았던 거야?

왜 나는 슬플 때마다 둘째가 되는 거야?

 

이 부분에서다. 애초에 없는 형 얘기를 이렇게 쓰다니....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랄까. 한동안 속이 부글거리는 와중에 이런 책도 손에 들고 읽기 시작했다.

 

 

 

 

 

 

 

 

 

 

 

 

 

 

 

 

태초에 지구는 존재하지 않았고 언젠가는 지구라는 행성도 우주에서 사라지리라는 사실을 찬찬히 읽고 있자니 부글대던 속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무서운 얘기인데 이상하게 기분이 차분해지면서 위로가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언니가 지난 5월 28일에 세상을 떴다. 68세. 50여 년 간 병원과 요양원에서 생을 보내다 마감했다. 언니와 놀았던 기억도,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적도, 다툰 적도 없다. 병원에서 쓸쓸한 생을 보낸 언니도 억울하지만 나 역시, 우리 오빠들 역시 억울한 세월을 보냈다. 누구도, 그 누구도(하느님 포함)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상황이라니....

 

 

평소에 tv를 보지 않기에 <우리들의 블루스> 시리즈를 넷플릭스로 몰아서 보았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눈이 시뻘개졌다. 은희, 선아, 영옥이 얘기를 합치면 내 얘기가 되는구나, 생각이 드니 더욱 서러워졌다. 그래도 극중 영옥이만큼 경제적인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월남한 부모님은 나머지 자식들을 미더워하지 못해 언니의 병원비를 끝까지 책임지셨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에도.

불쌍한 나의 부모님.

 

 

그간 여러 권의 책을 손에 들었다 놨다.

 

 

 

 

 

 

 

 

 

 

 

 

 

 

 

작가가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싶다. 매끈한 소설은 끝까지 읽히지 않는다.

 

 

 

 

 

 

 

 

 

 

 

 

 

 

 

 

남에게 읽히는 글은 무엇인가, 를 생각하게 하는 책.

 

 

 

 

 

 

 

 

 

 

 

 

 

 

 

 

<엔드 오브 타임>을 읽고 이 책을 읽으면 안 되는 거였다.

 

 

 

 

 

 

 

 

 

 

 

 

 

 

 

 

여행 고수들도 많은데......

 

 

 

 

 

 

 

 

 

 

 

 

 

 

 

읽다보니 읽었던 책이었다.

 

 

 

 

 

 

 

 

 

 

 

 

 

 

 

 

목소리 큰 왕언니의 일침 같은 책

 

 

 

 

 

 

 

 

 

 

 

 

 

 

 

 

내가 욕심낼 책이 아니었다. 관심도 거의 없고.

 

 

 

 

 

 

 

 

 

 

 

 

 

 

 

 

힘을 좀 빼면 더 좋지 않을까 싶은.

 

 

 

 

 

 

 

 

 

 

 

 

 

 

 

숨통이 트였다. 벌써 내용은 가물거리지만, 작가의 유쾌한 글에서 기운을 얻었다.

 

 

몇 권 더 집어들었었는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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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9 14: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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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9 19: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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