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 - 어느 문외한의 뉴욕 현대 예술계 잠입 취재기
비앙카 보스커 지음, 오윤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발로 뛰며 쓴 책은 언제나 반갑다. 글이 좀 수다스러워서 중간에 몇번 읽기를 중단하고 싶기도 했으나 지은이의 열정적인 탐구를 끝까지 지켜보고 싶었다. 성장 소설 같은 느낌이랄까. 예술을 향한 지은이의 도전적인 행보에 빠져들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렀다. 역시 발로 뛰며 쓴 책은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싶었다. 한마디로 '좋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온몸으로 탐색한 책. 온몸으로 탐색? 갤러리의 말단 직원, 아트 페어에서 그림 판매, 전시회 큐레이터, 작업실 어시스턴트, 구겐하임 미술관 경비원으로 일하며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파고들었다.


맛보기로 몇 부분만 옮겨본다.


p.248

나는 디사나야케의 이론을 읽고 또 읽었다. 그는 예술이라는 단어는 쓸데없이 모호하므로 이 단어를 아예 쓰지 말자고 제안하고, 예술을 사물이 아닌 행동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예술은 우리가 평범한 사물을 "특별하게 만드는", 즉 비범한 경험으로 변형하는 모든 순간에 발생한다.


p.394

역사가 로런스 레빈이 <고급/저급Highbrow/Lowbrow>에 쓰기를, 행동을 단속당해 '목소리 없는 수용자'가 된 관객은 높은 곳에서 내려온 문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 지식인 계층이 즐기라고 하는 것만 즐기는 존재가 되었다. 레빈은 미술관과 더불어 연주회와 극장이 정숙에 관한 새로운 규칙을 도입하면서 예술을 '일방적인 과정'으로 바꾸고 대중에게 전문가를 추종하라고 가르친 과정을 추적했다(1800년대만 해도 오케스트라 연주회는 오늘날의 축구 경기와 비슷했다. 계급이 구분되지 않는 군중이 좋아하는 곡에는 환호하고 싫어하는 곡에는 야유했으며 어떤 곡이 마음에 들면 당장 다시 연주해 달라고 요구했다). 미술관은 순수 예술을 협소하게 정의하고 관객에게 조용히 속삭일 것을 요구함으로써 문화에는 '고급'과 '저급'이 존재한다는 생각, 특히 고급 문화는 대중의 지저분한 행태가 끼어들 수 없는 정숙한 사원에 속한다는 생각을 강화했다.


p.432

그때부터 나는 내가 가이드가 되어 투어를 진행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입장권 판매소 바로 앞에 있는 로툰다에서 모일 것이고 몇 가지 기본 규칙부터 확인할 것이다. 

  첫째, 작품을 하나하나 다 보지 않아도 된다.

  둘째, 한 작품은 최소 5분간 바라보아야 한다.

  셋째, 벽 글(중간중가네 작품 옆 벽에 붙어 있는 긴 작품 설명)은 읽지 않는다.

특히 마지막 규칙에는 많은 경비원과 작가들도 찬성했다. 줄리는 그림을 보면서 벽 글을 읽는 건 "작품과 대화를 나누려고 하는데 누가 자꾸 끼어드는 꼴"과도 같다고 표현했다.



예술에 대한 개념, 미술관에서 작품 감상할 때의 자세, 뉴욕의 예술 세계...몇 가지만 이해해도 이 책은 읽은 보람이 있다. 게다가 '나도 그림 좀 그려볼까?"하고 바람을 불어넣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화 <Zone of Interest>를 인덕원에 있는 롯데시네마에서 감상했다. 상영관이 드물다보니 난생 처음 인덕원까지 가게 되었다. 50석 중 관객이 7명 쯤이었나. 영화의 포인트는 사운드(배경음악)라는 걸 미리 찾아서 알고 갔기에 망정이지 멋모르고 갔더라면 영화 후반부에서나 겨우 알아차렸을 지도 모른다. 음울하고 불유쾌하면서 뭔가 불안하게 하는 사운드는 역시 영화의 압권이었다.

'끔찍한 장면 없이 끔찍한 영화'. 그 끔찍함은 영화도 영화지만 내 안의 끔찍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요양원에서 말년을 보내셨던 엄마는 어느날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집에서 불쌍하지 않은 사람은 너밖에 없다." 누군가는 평생 병에 걸려서 눈물겹고, 누군가는 외로워서 애달프고, 누군가는 식솔을 책임지느라 어깨가 무거워서 안타깝고, 생각해보면 모두 제각각 '불쌍'한데 나만 유일하게 그런 걱정없이 살고 있다는 말씀이었다. 엄마는 참...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불쌍하다고 생각한다는 걸 모르시나...씁쓰름한 기분이 들었지만 한편으로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내내 생각에 잠기게 했다. 내가 그렇게나 이기적이었나. 내 몫을 살아내느라 내 삶도 만만치 않았는데 엄마가 보기에는 그래도 다른 자식들에 비해서 수월하게 사는 것으로 보였던 것 같다."너만 안 불쌍하다."라는 말씀이 이 영화를 보고나서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 안의 무관심과 이기심을 질타하는 듯했다. 중심을 잡으려고 얼마나 애쓰며 살았는데..하는 서글픔과 함께.


영화 제목인 Zone of Interest를 나는 이렇게 번역해본다. '혼자만 잘 사는 놈(이 있는 곳)'이라고. 혼자만 잘 살겠다고 마음 먹은 놈에겐 보이는 게 없다. 그저 저 살 궁리만 하면 되니까. 나라꼴이야 어떻든 제 맘대로 하고야 마는 저 못난 인간들이 죽치고 있는 곳...이런 지긋지긋한 상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뿌리처럼 이런저런 생각을 뻗어가게 하는 이 영화. 책 한 권보다, 며칠 간의 여행보다 더 진하고 매력있다. 쉽사리 뽑히지 않는 뿌리를 심어놓는다.





지속적으로 내리는 비에 폰툰다리가 끊어졌다. 완전 고립은 아니지만 어쨌건 외부세계와 격리되었다. Zone of Isolation이라고나 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난처한 미술 이야기 : 내셔널 갤러리 특별판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도 읽었는데, 10월 9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 갈 수 있으려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Great Women Artists (Hardcover)
Phaidon Editors / Phaidon Inc Ltd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수자 Kimsooja 를 알게 된 것으로 흡족.
작품 <떠도는 도시들-보따리 트럭 2727킬로미터> 가 실렸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서관 서가를 기웃거리지 않았다면 결코 이 책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별 꾸밈 없이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는 가수, 최백호. 그의 글도 최백호스럽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사람이나 노래나 글이 한결같다. 그래서 좋다. 


가수는 음색이 중요하다.


요즘 젊은 가수들은 가창력은 물론이고, 정말 노래를 잘한다.

과거에 비해 체계적인 훈련을 받아서 레벨 업이 됐다.

그런데 너무 잘해서 매력이 없다.

정미조, 나훈아, 조용필, 송창식 등의 목소리는

들으면 누군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노래하는 젊은이들한테

가창은 학교에서 배우지 말라고 한다.

그러면 그 교수가 가르친 것밖에 하지 못한다.

호흡도 똑같아진다.                        

 -p.124


트로트의 홍수 속에서 그간 내가 느낀 것도 저것이었다. '너무 잘해서 매력이 없다'는 것. 언젠가 세종시에 갔었는데 우연히 야외무대에서 노래하는 연구생(?)들을 본 적이 있다. 그 옆에는 지도교수쯤되는 사람도 있었다. 희한한 구경을 다하는구나, 생각하면서 요즘엔 이렇게들 어려서부터 훈련을 받는구나 싶었다. 이들 중에 몇이나 살아남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 


글도 그렇다. 너무나 매끄러운 글은 매력이 없다. 제 목소리를 제 양식에 담아내지 않으면 일껏 모방에 머물다가 스러지고만다.



잃어버린 것.... 스스로 터득하는 힘.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시우행 2023-07-07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모방에서 창조가 탄생하는 법 아닐가요?

nama 2023-07-08 10:22   좋아요 0 | URL
모방으로 시작해서 자기만의 색깔로 가야하지 않을까요?

물감 2023-07-07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수는 음색이 중요하다.
매끄러운 글은 매력이 없다.
공감하고 갑니다!

nama 2023-07-08 10:24   좋아요 1 | URL
voice color 니까 결국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야 하지 싶어요.

hnine 2023-07-08 1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분 심야 라디오 방송 진행도 하시는거 아시죠?
저 한때 거의 매일 들으며 잠들곤 했었답니다.
자기만의 음색이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 저도 공감해요.

nama 2023-07-08 19:12   좋아요 0 | URL
네. 한두 번 방송을 들은 적이 있어요.
제가 라디오나 티비를 가까이 하는 편이 아니라서 자주 듣지는 않아요.
어느 도시를 가도 비슷하면 재미없듯 똑같은 건 생명력이 없어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