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2010 ): 20세기 프랑스 조각가로 주요 작품으로는 <마망>.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태피스트리를 제조하는 부모를 도우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결혼 후 미국에서 초현실주의의 경향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판화를 전시했다. 이후 시험 삼아 시작한 조각으로 추상적인 경향이 좀 더 강하게 나타난 자전적 제품을 만들었다. 라텍스, 대리석, 석고 등 재료를 불문한 조각을 만들었으며 나이가 들어서도 활력과 창의력을 잃지 않았다. (출처: 다음백과 )

 

 

 

 

 

 

 

 

 

 

 

 

 

 

루이즈 부르주아가 궁금해서 구입한 책. 한 예술가의 생애가 오롯하게 드러나 있는 아름다운 그림책이다. 여기저기 자료를 읽다보면 루이즈 부르주아를 흔히 '고백 예술의 창시자'라고 하는데, 작가나 예술가들은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럼에도 굳이 '고백 예술의 창시자'라고 부르는 건 군더더기 같은 설명같아 보인다. 어쨌든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생애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으니 그렇다고 치자. 다음은 그의 작품 가운데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마망>이란 작품이다.

 

 

 

'마망'은 엄마라는 뜻이란다.

 

SHE DREW,

SHE PAINTED,

SHE WOVE.

SHE MISSED HER MOTHER

SO MUCH, SHE SCULPTED

GIANT SPIDERS

MADE OF BRONZE, STEEL, AND MARBLE

SHE NAMED MAMAN.

 

 

옷감을 짜고 옷감의 헤진 부분을 수선하는 일을 했던 어머니를 커다란 거미로 형상화하면서 위로와 위안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왜 거미지?하던 마음이 그런 설명을 읽고니니 조금은 이해갈 듯도 하다. 그러나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한 작품을 책으로만 접하니 답답한 마음은 여전했다. 그러다가 또 한 권의 책을 읽게 되었다.

 

 

 

 

 

 

 

 

 

 

 

 

 

 

 

이지유의 과학 에세이. 여행과 과학이 버무려진 책이다.

 

거미는 새끼를 잘 보살피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잘 알려진 것은 늑대거미로, 이들은 알을 거미줄로 만든 주머니에 넣어 배에 매달고 다니다가, 새끼가 알을 까고 나오면 등에 태우고 다닌다. 이때 어미 늑대거미를 보면 덩치가 두 배 이상 커 보이고 등에는 반짝이는 보석을 붙인 것처럼 보인다. 등에 타고 있는 새끼들의 눈이 반짝이기 때문이다.

부르주아는 바로 이 거미에게 꽂혔다. 새끼들이 스스로 먹고살 수 있을 때까지 책임감 있게 돌보는 어미 늑대거미에게서 모성을 읽은 부르주아는, 어머니를 투사해 거대한 거미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게다가 우연히도 부르주아의 어머니는 베 짜는 사람으로, 언제나 부르주아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그리하여 부르주아는 어머니에 대한 신뢰와 거미의 생태적인 삶 사이에서 공통점을 찾아 <마망>을 제작한 것이다.    -124쪽

 

그래서 이지유 작가님은 전 세계에 있는 '<마망>을 다 보리라 결심하고, 이후 캐나다 오타와, 일본 도쿄, 영국 런던 그리고 서울에 있는 <마망>을 다 보았다'고 한다. 뭔가를 결심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세계 여러 곳을 누빌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매력적인 삶인가.

 

과학 분야는 워낙 문외한이라 이런 책을 읽긴 읽되 머잖아 하얀 백지가 되겠지만 적어도 이것 만은 기억할 것 같다. <마망>의 거미는 늑대거미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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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0-07-08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이즈 브르주아라는 이름은 생소해도 저 거대거미는 어딘가 낯이 익다 했더니 리움미술관에서 보았군요.
이지유님의 저 에세이도 목차를 보니 범상치 않아보이네요. 무슨 얘기를 어떻게 썼을까 궁금해지고요.

nama 2020-07-09 12:56   좋아요 0 | URL
저 에세이는 제게 과학보다는 여행서에 가깝게 느껴져요. 다 읽고나면 기억에 별로 남지 않는데, 아는만큼 보이나봐요.
 

 

 

 

 

 

 

 

 

 

 

 

 

 

 

 

 

존 버거(1926년- 2017년)의 책은 묘한 거부감과 매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거부감이란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알 듯하면서 모를 듯한 모호감 같은 것이고, 매력이란 그런 거부감 속에서도 드러나는 어떤 울림 혹은 찔림 같은 것에 눈을 뜬다는 것이다. 아마 엇비슷한 시공간을 함께 나눈 사이라면 그의 글이 잘 맞는 친구처럼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부분적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는 이 책. 그럼에도 이 책의 어느 한 부분 때문에 지난 며칠을 바쁘게 보냈다. 다음은 톰 웨이츠의 노래라고 한다.

 

모두들 동시에 말을 하지

누구에게는 힘든 시절이

누군가에게 달콤한 시절이라고

거리에 피가 뿌려지는 때에도 누군가는 돈을 벌고 있겠지

모두들 동시에 말을 하지.

 

 

톰 웨이츠는 또 누군가.

 

출생  1949년 12월 7일, 미국

데뷔  1973년 1집 앨범 <Colsing Time>

수상  2011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

        2001년 ASAP 팝 뮤직상 공로상

 
(출처: 네이버)

 

 

유튜브에서 그의 노래를 들어봤다. 독특했다. 만취한 사람의 절규같기도 한 걸죽하고도 깊은 목소리의 흐느낌. 궁금해서 책을 찾아보니 다행히(?) 얇은 책이 한 권 있었다.

 

 

 

 

 

 

 

 

 

 

 

 

 

 

 

이 작은 책의 내용은 목차에 잘 나타나 있으니,

 

-뮤지션들의 뮤지션

-톰 웨이츠, 출생과 오해

-비트 세대가 남긴 선물

-별들의 고향 트루버도어 클럽

-이야기꾼의 밤 노래

-노래만 불렀다, 돈은 못 벌었다

-결혼은 이들처럼

-소리에 대한 편력, 칼리오페 에피소드

-뮤지컬 이어스

-'나'에서 세계로

 

톰 웨이츠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고 간편하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을 쓰신 저자에게 저절로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

 

톰 웨이츠의 진짜 아버지, 잭 케루악

 

무엇이 톰 웨이츠를 길 위에 서게 하는 것일까. 젊은 시절의 '방랑'과 끊임없이 변주되며 톰 웨이츠의 음악을 관통하는 '길'의 이미지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어쩌면 이 사람 이야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기도를 올릴 정도로 전설처럼 떠받드는 잭 케루악의 영향은 아니었을까. (중략)

<길 위에서>의 책장에 '역마'라는 마법약이라도 묻혀 놓을 것일까. 잭 케루악은 이 소설 하나로 당시 미국의 젊은이들을 모두 길 밖으로 내몰았다. '비트'라는 단어를 처음 만든 그는 비트는 음악의 박자가 아니라 단지 '세상의 모든 관습에 대한 지겨움의 표현일 뿐'이라고 말했고, 젊은이들은 일제히 쌍수를 들고 뛰쳐나가 그 길로 비트닉(비트족)이 되었다. 밥 딜런이 훗날 "그의 작품이 모든 걸 바꿔 놨듯이 내 삶도 바꿔 놓았다."라고 할 정도로 케루악의 영향은 막강했다.       -18~20쪽 

 

 

그래서 또 읽어야 할 책.

 

 

 

 

 

 

 

 

 

 

 

 

 

 

 

 

 

 

예전에 읽다 만 책이다. 그때 그시절에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을지 몰라도 시공간을 달리하는 이 시점에서 읽기에는 너무나도 지루하게 느껴져서 집중하기 힘들었다. 빌린 책이라 더 그랬다.

 

 

 

'톰 웨이츠가 좋아하는 또 한 명의 비트 작가 찰스 부코스키의 시 Nirvana(너바나)를 낭독한 영상이다. 얼마 전 읽어봤던 찰스 부코스키(1920년 ~1994년)의 시집이 떠올랐다.

 

 

 

 

 

 

 

 

 

 

 

 

 

 

 

 

https://blog.aladin.co.kr/nama/11703314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더니 이번엔 영화감독 짐 자무쉬 얘기로 이어진다. 톰 웨이츠는 짐 자무쉬와 영화 작업을 함께 했다고 한다. 그러면 짐 자무쉬는 누군가.

 

출생  1953년 1월 22일 미국

데뷔  1980년 영화 '영원한 휴가' 연출

수상  2006년 제 58회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1993년 제 46회 칸영화제 단편영화상

 

(출처: 네이버)

 

 

그래서 그의 영화를 보기 시작.

 

* 커피와 담배

지루할 것 같지만 은근히 재미있는 영화다. 담배를 피우고 커피잔을 부딪치며 나누는 소소한 대화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시니컬하면서 짭쪼름하다고 할까. 톰 웨이츠도 등장. 짐 자무쉬와 친분이 있는 유명 배우들 다수 출연.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는 영화다. 몇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라는 사실.

 

* 패터슨

시를 쓰는 버스 드라이버 얘기인데, 톰 웨이츠처럼 짐 자무쉬도 시인이라면 시인이랄 수 있겠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특히 눈길을 사로잡은 건 패터슨의 아내가 꾸미는 실내 장식과 그녀의 옷과 같은 소품. 흑백으로 그린 커튼 무늬의 시적인 감각, 패터슨이 시를 쓰듯 그의 아내 역시 옷과 커튼과 음식으로 흑과 백으로 이루어진 시를 쓴다. 어떤 rhyme(운)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영상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천국보다 낯선

천국은 못가봤으니 당연히 낯선 것일 텐데 그 천국보다 더 낯선 것은 대체 뭘까? 시시껄렁한 두 청년과 그중 한 청년의 여자사촌 얘기. 썰렁한 분위기와 썰렁한 줄거리와 그에 걸맞는 썰렁한 대화들. 그런데도 끝까지 보고나면 어딘가 쓸쓸해지면서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지는 영화.

 

 

 

존 버거로 시작해서 톰 웨이츠의 노래와 짐 자무쉬의 영화로 이어지는 며칠 간의 고행(?) 이 끝나려나..... 이젠 다른 책을 읽어야겠다.

 

 

 

 

 

 

 

 

 

 

 

 

 

 

 

 

 

 

 

살려줘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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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 키린 - 그녀가 남긴 120가지 말 키키 키린의 말과 편지
키키 키린 지음, 현선 옮김 / 항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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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나 영화에 깊이 빠져본 적이 거의 없던 내가 요즈음 키키 키린(1943년 1월 15일  ~ 2018년 9월 15일) 이라는 일본 배우에 빠져 수 편의 영화를 감상했다. 나에게는 이변이다. 영화 <모리의 정원>이 아무래도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무슨 영화를 보았냐면,

 

<모리의 정원> 2017년 제작.

<앙: 단팥 인생이야기> 2015년

<걸어도 걸어도> 2008년

<태풍이 지나가고> 2016년

<어느 가족> 2018년

<진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2011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2013년

<바닷마을 다이어리> 2015년

<도쿄타워> 2007년

 

그러니까 한 배우의 10여 년에 걸친 연기 활동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비교적 젊은 시절 모습부터 틀니를 뺀 쭈글 할머니의 모습까지 한 사람이 늙어가는 과정을 대략이나마 살펴볼 수 있었다. 보통 주변 사람들을 보면 늙어갈수록 얼굴 표정이 무뚝뚝해지고 가만히 있어도 화난 것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이미 내 얼굴에서도 나타나는 걸 숨길 수 없다. 몸은 여기저기 아파오기 시작하고 나날이 꽃 길 같은 인생도 아니니 자연 표정이 어두워지고 그늘이 깊어진다. 늙을수록 아름답고 상냥한 얼굴을 유지하려면 어마어마한 내공과 끊임없는 수양이 필요하다는 걸 이제는 알겠다. 그런데 키키 키린이 바로 그랬다. 늙어갈수록 얼굴 근육이 유연해지고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심지어 귀엽기까지 했다. <앙: 단팥 인생이야기>에서 벚꽃 나무 아래에서 나무와 대화를 나누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걸어도 걸어도>라는 제목은 노래 <요코하마>에서 따온 것인데, 남편이 바람 피는 현장에서 들었던 그 노래를 몰래 혼자 즐겨 들었다는 대목에서도 여지없는 귀여운 모습이었다. 이해되지 않는 장면이지만 키키 키린의 사랑스러운 모습만은 기억할 만하다.

 

키키 키린의 생각을 읽어볼 수 있는 책 얘기를 하려다가 서론이 길었다. '그녀가 남긴 120가지 말'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에서 몇 구절 인용하는 것만으로도 리뷰를 쓸 가치가 있다고 생각.^^

 

 

3

나는 만사에 '꼭 이래햐만 한다'는 법은 없다고 봐요. 예를 들어 내 얼굴을 보세요. 이건 실수에 의한 작품이라고요. 그래도 나는 실수를 만회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왔어요. 

 

9

나쁜 상황과 마주쳐도 늘 웃는 얼굴을 하려고 해요. 우물의 펌프만 과도 그렇잖아요. 계속 움직이면 어느 사이에 물이 차오르잖아요? 마찬가지로, 재미가 없어도 계속 웃고 있으면 점점 즐거운 감정이 올라옵니다. 나는 무뚝뚝한 편이라 "왜요" 한마디만 해도 남편이 "지금 화내는 거야?"하고 따지니까. 그렇게 안 되려면 웃어야죠.

 

13.

심각해질 때도 있지만 '놀기 위해 태어났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해요.

 

18

내 안에는 '불평'이라는 말이 없어요.

이래야 했다느니 저래야 했다느니 같은 말도 일절. 그저 지금 내 상황이 어떤지에만 집중하니까, 불평할 겨를이 없습니다. 가령 생활고에 시달린다고 하면 '이 상황에서 내가 살길이 뭘까'만 생각하는 거죠.

 

25

평범한 일상을 보내지 않으면 삶 속에서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27

좀 주제넘은 말이지만, 사물에는 겉과 속이 있어서 아무리 불행한 일을 당했다고 해도 어디선가는 빛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물론 행복이 늘 계속되지는 않죠. 그러나 마음이 답답할 때, 그 답답함만 보지 말고 약간 뒤로 물러서서 자기를 보는 정도의 여유만 있으면 인생도 살 만하지 않을까요? 그걸 이 나이가 되어서 깨달았네요.

부디 세상만사를 재미있게 받아들이고, 유쾌하게 사시길. 너무 노력하지도 너무 움츠러들지도 말고요.

 

55

나는 사람도, 한 번 망가져본 사람이 좋더군요.

 

103

세상을 망치는 것은 노인이 판칠 때다. 때가 되면, 긍지를 가지고 뒤로 빠져라.

 

옮기다보니 끝이 없다. 필사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115

삶이 끝날 때까지 아름답게 살고 싶다는 이상은 있습니다. 집착을 완전히 버리고 어깨에 힘을 빼고 홀로 우뚝 서는 것이죠. 존재의 무게가 느껴지는 사람이 되고 싶네요. 밖으로 드러나는 것 말고, 마음의 기량 면에서.

 

120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네요. 지금까지, 만족스러운 인생이었습니다. 이제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이 책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도중에 영화부터 쭈욱 훑고 다시 이 책을 보니 꼭지 꼭지마다 더 마음에 와 닿았다. 내 삶도 조금은 변하지 않을까.....

 

 

 

 

 

키키 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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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 지음, 최민 옮김 / 열화당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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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의 매력을 조금씩 알아가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기존 방식을 따르지 않기, 혹은 제대로 따져보기로 요약할 수 있겠다. 제호 <다른 방식으로 보기>는 원제보다 훨씬 잘 어울린다. 의심하고, 질문하고, 따져보고, 생각해보고.... 그림을 볼 때 명심해야 할 것. 이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그중 두어 개를 인용해본다.

 

 

한스 멜링 <허영> (출처: 네이버)

 

 

-60쪽

화가가 벌거벗은 여성을 그린 이유는 벌거벗은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의 손에 거울을 쥐어 주고 그림 제목을 허영이라고 붙임으로써, 사실상 자신의 즐거움 때문에 벌거벗은 여자를 그려놓고는 이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위선과 적반하장의 뻔뻔함을 본다. 점잖은 해석은 이제 그만.

 

 

-76

오늘날 이 누드가 포함하고 있는 태도나 가치들은 광고, 저널리즘, 텔레비전과 같은 좀 더 다양한 미디어 속에 표현되고 있다.

하지만 여자를 보는 방식, 즉 여자의 이미지를 사용하는 방식은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여자들은 남자들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여성성이 남성성과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이상적인' 관객이 항상 남자로 가정되고 여자의 이미지는 그 남자를 기분 좋게 해주기 위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말에 의심이 든다면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해 보면 된다. 이 책에서 전통적인 누드화를 아무 작품이나 하나 고른 다음, 그림 속 여자를 남자로 바꾸어 보자. 머릿속에서 생각만 해도 좋고 그려 봐도 좋다. 그리고 그런 전환이 얼마나 폭력적인 것인지를 살펴보기 바란다. 이미지 자체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 관객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 관념에 대한 폭력 말이다.

 

'머릿 속에서 생각'만 해도 신선하고 유쾌하다. 여성 화가들이 남성 누드화를 그릴 수 없었던 건 시대적인 한계 상황으로 여성들에게 누드화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만약 허용했다면 어떠했을까. 적어도 위의 그림과 같은 위선적인 그림은 덜 허용되지 않았을까? 성불평등을 말할 때, 남자를 여자로 바꾸어보면 문제가 무엇인지 확연히 보인다. 남자들은 끊임없이 저항하겠지만. 마치 특권이나 되는 것처럼. 원래부터 그런 것이었노라고 항변하겠지.

 

 

 

프란스 할스 <웃고 있는 어부 소년> (출처: 네이버)

 

-122

이 그림 속의 가난뱅이는 자신이 팔 물건들을 보여 주며 웃는다. (가난뱅이들은 이를 드러내고 웃지만, 부자들은 절대 이렇게 웃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형편이 나은 사람들 앞에서 웃어보인다.

 

하층계급의 생활장면들을 묘사한 그림을 '장르화'라고 한다는데, 목적은 '이 세상의 덕성은 사회적이고 금전적인 성공으로 보상받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있다'고 한다. 열심히 일하면 잘 살게 되지만 게으름뱅이들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는 교훈을 나타낸다. 그러나 위의 할스의 그림은 이런 장르화의 성격과는 다른 것으로 그를 '대가'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나...그런 사실보다 부자들은 절대로 저렇게 이를 드러내며 웃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그림을 생각하면서 보지 않으면 어떤 것도 얻지 못한다는 사실.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사실.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좀 더 공들여 읽어야 한다는 것만 짚고 넘어간다. 개념이 잡힐 듯 말듯 한 유화의 본질과 현대 광고와의 관계, 그리고 글래머glamour의 개념, 발터 베냐민의 이론 등. 1972년에 발간된 책인데도 과거시제로 읽히지 않는 책이다. 물론 내가 무지한 탓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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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daum )

 

 

영화 <모리의 정원>을 보았다. 인천에서는 상영관이 없어서 덕분에 안산에도 가봤다. 극장안의 관객은 단 3명. 아무리 사회적 거리두기라지만 이 정도면 거의 폐업 상황이지 않을까 싶어 안타까웠다.

 

30년 간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는 일본의 유명화가 쿠마가이 모리카즈 이야기이다. 그가 유명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영화 <타샤의 정원>을 기억하는지라 이 영화에서도 멋진 정원을 감상하리라 기대했으나 이건 정원 얘기가 아니었다. 원제는 '모리의 장소'. 여기서 장소는 영어의 place이니 '공간, 곳, 장소'로 정원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니 '모리의 정원'이라기 보다는 모리가 30년 간 머문 공간, '그 만의 공간' 쯤의 뜻이 된다. 영화 제목을 깔끔하게 뽑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줄거리는 검색만 하면 주르르 뜨니 생략. 인상 깊은 장면 두 개를 애기하련다.

 

하나.

어떤 남자가 모리카즈의 평을 기대하면서 어린 아들이 그린 그림을 보여준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라도 자녀에 대한 희망을 품기 마련. 대강 이런 대화를 나눈다.

 

남자: 보십시오. 우리 아들이 천재가 맞지요? 잘 그렸습니까?

화가: 음..... 못 그렸네.

남자: (실망한다)......네?

화가: 잘 못 그려서 좋은 거야.

남자: (당혹해한다.)......네?

화가: 잘 그린 그림은 끝이 보여.

        잘 못 그린 그림은 작품이야.

 

절망과 희망을 왔다갔다 하는 남자의 표정도 볼 만하지만 늙은 화가의 한마디 한마디가 절묘하게 마음을 울린다.

 

둘.

모리카즈와 그의 아내의 대화.

 

화가: 다시 태어나고 싶어, 당신은?

아내: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

화가: 왜? 살아있는 게 좋지 않은가?

아내: 피곤해서 싫어.

 

화가는 허구헌날 집 앞 마당에 있는 작은 정원에서 벌레를 관찰하거나 오솔길에 누워있거나 연못 속의 물고기를 바라보면서 생을 만끽한다. 밤에는 '학교'에 간다며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러면 밥은 누가 해주나? 그의 아내다. 아내는 허구헌날 빨래와 밥을 하며, 수시로 들이닥치는 손님들 뒤치다꺼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역할을 맞바꾼다면 다시 태어나고 싶다, 는 대사로 이어지면 영화가 진부해지려나.....

 

 

일본 이름을 발음하려면 혀가 매끄럽게 돌아가지 않지만 화가역의 야마자키 츠토무, 아내역의 키키 키린을 기억해야겠다. 영화라기 보다는 다큐멘터리 같다는 평이 있을만큼 연기가 탁월하다. 볼 만하다.

 

 

코로나19로 자가격리, 가택연금...의 시절에 30년 동안이나 집 안에 콕 박혀있던 화가의 생애를 엿보는 맛이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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