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배우자를 고를 때 한가지라도 마음에 들면 되고

책 한 권에서 한 페이지만 기억에 새겨도 남는 거고

여행지에서 하나만 인상 깊어도 떠나온 보람이 있는데

과연 내 인생에서는 무엇이 하나일까.
















이 책에서 한쪽만이라도 옮겨야겠다고 마음 먹은 지도 며칠 째. 어줍잖은 생각만 오락가락.


P.302

여전히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인류애를 실현하는 자비로운 부자로 빌 게이츠를 바라본다. 자선이 쌓일수록 높아져만 가는 자산고의 비밀을 파헤치는 목소리도, 평화로운 얼굴 뒤에서 벌어지는 난감한 현실을 취재한 글도 찾을 수 없다. 기부금을 전하는 그의 재단이 트로이의 목마가 되어 미국의 제약회사, 농화학 회사들의 제품을 실어나르며 아프리카에서 벌인 일들을 우린 알지 못한다. 부지불식간에 대한민국이 그의 꿈을 이뤄가고 있는 중이라면, 그가 어떤 인물이지 그의 꿈을 우리가 이렇게 착착 실현해도 되는 건지, 한 번쯤 살펴야 할 것이다. 앞에서뿐 아니라, 뒤, 옆에서 그를 조명한 글들을 통해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는 이 인물을 고찰하는 것은 다음 세대에게 이 사회를 물려줄 기성세대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일 것이다.


'빌 게이츠의 꿈이 이뤄지는 나라'(p.292~p.302) 부분을 면밀히 읽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보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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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1월 하순쯤 뉴욕에서 남편 후배 부부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내겐 평생에 한번쯤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다.) 30여 년 전 미국 이민 생활을 시작한 그분들은 국내 상황을 적잖이 우려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도 여의도에서 야광봉 흔들고 왔다면서 "우리 국민들이 훌륭하니까 이겨낼거예요."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약간 놀란 듯해서 "박근혜 때도 갔었어요."라고 덧붙였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사는 게 피곤하구나. 역시 이민을 잘 왔어. 라고 생각했을까? 


모처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쓴다. 대통령 하나가 세상을 쥐락펴락하고 일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상황이라니... 내 삶에는 대통령도 많았어라. 이승만부터.


2. 청산도, 로케이션 헌팅

영화 <서편제>가 나왔을 때 혼자서 영화관에 갔었다. 동네마다 있는 <중앙극장>이었다. 극장 중간쯤 되는 자리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데 웬 남자가 다가오더니 내 옆자리에 앉았다. 뭐야?하는 심정으로 자리를 더 앞자리로 옮겼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설마 더 따라오지는 않겠지 했는데 웬걸 또 따라와서 옆자리에 앉는 것이 아닌가. 지금 같았으면 소리라도 꽥 지르는 건데...할 수 없이 이번엔 나가는 척하며 맨 뒷자리 컴컴한 곳으로 이동했다. 그제서야 마음 편히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때 뒤엉킨 기분으로 본 영화가 <서편제>였는데 그래도 평생 잊지못할 장면 하나는 건졌다. 그리고 그 촬영지가 내내 궁금했었다. 특히 꽃 피는 봄이 되면 더욱 더. 드디어 기회를 만들었다.



영화 내용상(자세히 떠오르지는 않지만) 너른 들판을 상상했었다.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어느 순간 흥에 겨워 진도아리랑 한판 걸판지게 부르며 놀았던 곳은 너른 들판 한가운데쯤으로 상상했었다. 그래서 가기도 쉽지 않은 섬, 청산도에 가면 그 너른 들판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사진에 보이는 저곳이 전부였다.


그게 영화의 힘이라는 생각을 하니 새삼 영화라는 게 재밌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참...당연한 건데. 로케이션 헌팅을 전문으로 하는 직업이 있다는 말도 어디선가 들은 것 같고. 그런 일 하는 것도 재밌겠다..혼자 궁시렁궁시렁..



그러나 청산도는 넓지는 않지만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좀 작아서 그렇지. 섬이니까.



3. 쌍산재, 어렵겠지만.

오늘은 뭘 볼까 검색하다가 얼떨결에 가게 된 곳이다. 티비에서 본 적이 있지만 그리 궁금하지는 않았던 곳이나....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라서 일일이 다 소개하는 것은 무리. 딱 하나를 골라봤다. 하얀 천에 덧댄 달항아리까지 기막히게 잘 어울린다. 내 집도 아닌데 왜 이렇게 뿌듯하지?




주인장의 향기를 읽었다. '어렵겠지만 .....' 


이 아름다운 곳에 눕고 싶은데 눕지 않으려니 참 어렵겠지요.

손님이 누워버리면 저는 참 어렵답니다.

서로 어려우니까 제발 눕는 일은 삼가세요.


이런 간절함이 깃들어 있는 한 단어. 어렵겠지만...


4. 들녘의 마음, 독립서점



곡성의 들판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잡은 폐교와 폐교에 차린 서점, 들녘의마음.

이곳엔 소설가 김탁환이 있다. 한겨레신문에 실린 그의 칼럼에 익숙한 나는 그를 아는 사람이 된다. 그는 나를 모르지만. 그래서 들렀던 곳.




로케이션 헌팅하는 심정으로 고른 두 권의 책. 내가 영화를 찍을 일이야 없겠지만. 누구나 자기만의 영화는 존재하니까. 한때 세상을 주름 잡던, 주름 잡을 것 같았던, 그 누군가처럼. 개떡보다 못했지만. 개떡이란 이름도 아깝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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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직까지 들어보지 못한 말이다. 웃음소리에도 국적이 있다는 사실을.

달랏에서 길을 걷다가 익숙한 웃음소리를 듣고 단박에 알아봤다. 저 사람은 한국인이라고. 호찌민 벤탄 시장에서
귓전에 들려오는 저 익숙한 웃음소리, 역시 한국인이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줄 알았는데 옆에 있던 남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웃음소리로 한국인을 구별할 수 있다는 사실. 이건 의미있는 언어학적 발견이 되지 않을까. 신기한 생각이 들어서 써본다.

잘 아는 외국인 친구가 없다보니 다른 나라 사람을 웃음소리로 구별할 수는 없지만...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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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5-03-12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궁금해서 생각해보았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도 우리처럼 크게 소리 내어 웃던가 싶기도 하고요.

nama 2025-03-12 20:34   좋아요 0 | URL
소리의 크기보다 음색같은 특징이 있어요. 무리에 섞여 있어도 가족이나 친구의 목소리를 알아채는 것과 비슷해요. 이름하여 한국인의 웃음소리. Laughing color.
 

베트남 여행 일주일째, 달랏에서는 나흘째. 오늘은 별다른 일정없이 달랏 시장에서 맴돌고 있다. 밤11시 59분에 출발하는 호찌민 행 야간버스에 오르면 기나긴 하루가 끝난다. 길고 지루한 날이지만 보람이 있다면 지루해야 보이는 것들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루해야 글이 써질 때도 있다는 것도.

아래 사진을 보시라, 달랏의 중심지인 달랏시장의 아침 풍경이다. 막 문을 연 꽃집. 지붕에는 보라색 꽃이 소박하게 떨어져 있고 사진에 담을 수 없었지만 꽃비도 내리고 있다. 싱그러움으로 설레는 아침 풍광이다.

다른 사진을 보시라. 알아채셨는가? 꽃집 자리에 옷집이 들어서 있다. 낮엔 꽃을 밤에는 옷을 판다. 이 곳 뿐이 아니다. 이 일대의 다른 곳에선 낮엔 채소와 과일, 생선을 팔고 야간엔 옷을 팔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꽃집 자리에선 예쁜 여성복과 장신구를, 채소전에선 저렴한 점퍼나 티셔츠를 팔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 목욕탕 의자라고 부르는 납작한 플라스틱 간이 의자를 베트남 사람들처럼 애용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땅바닥에 의자 몇개 깔면 식당이 되기도 찻집이 되기도 한다. 남녀노소, 덩치 불구, 신분고하 불구, 조금은 코믹스럽지만 이 작은 의자에 앉으면 사람은 누구나 고만고만해진다.

그래서 감히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 플라스틱 납작한 의자 덕분에 실용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하지 않을까 하는. 꽃집이 옷집이 되는 것도 의자 몇개 꺼내고 옷걸이 걸고.. 뭐 어려워. 하면 되는거지.

심지어 초등학교 아침 운동장 조회 때 아이들은 이 목욕탕 의자에 질서정연하게 앉아 있다. 빨간 의자에 앉은 주황색 유니폼의 아이들이 꽃처럼 보인다. 그러니 목용탕 의자라고 얕보아선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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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5-03-11 0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장 한다발 사고 싶은 꽃다발이네요.
꽃를 파는 주인과 옷을 파는 주인은 같은 사람일까요? 아니면 두 사람이 시간별로 나눠 쓰는 걸까요.
맨아래 어린이들 사진도 좋아요.

nama 2025-03-11 17:18   좋아요 0 | URL
아마도 서로 다른 사람일 거예요. 꽃이나 옷은 진열하고 철수하는 게 고되 보여요.
그런 이익 산출 공간을 한 사람이 독점해서도 안될 것같아요
 

2018년 11월, 추정 나이 7살의 유기견을 입양했었는데 우리 가족과 만 6년을 함께 살다가 일주일 전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이름은 아진군. 


아진군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

단 한번도 짖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짖지 않는 개였다.

식구가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꼬리 같은 거 흔들지 않는다. 꼬리치지 않는 개였다.

귀여워서 안아보면 금새 발버둥쳤다. 사람에게 안기지 않는 개였다.

부드러운 이불이나 폭신한 방석, 바닥에 깔린 옷감 등에 앉기를 좋아했다. 제 누울자리를 귀신같이 알아보는 재주가 있는 개였다.

먹는 걸 좋아해서 모르는 사람이 주는 간식도 잘 받아먹고, 밥상 옆에 와서 맛있는 거 하나 달라고 발로 툭툭 건드리곤 했다. 먹는 거 외에는 사람에게 다가오는 법이 거의 없는 냉철한 개였다.

실외배변을 좋아해서 하루 두 번 산책 시간이 되면 빨리 나가자고 신호를 보내곤 했다. 이럴 때만 유일하게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개였다.

유기견 보호소에 있을 때 다른 개들한테 세 군데나 물려서 상처를 꿰맨 채 우리집으로 왔었다. 산책 중 다른 개를 만나면 슬슬 피하느라 바빴다. 다른 개에게 관심도 없을 뿐더러 사람에게도 관심이 없는, 겁 많고 소심한 개였다. 그러나 동네의 '예쁜이'라는 하얀 강아지만은 예외였다. 보호소에 있을 때 늘 함께 붙어있던 방울이라는 이름의 암컷이 있었는데 각각 입양되는 바람에 이산가족이 되었다. 둘 다 입양하지 못해서 아진군에게 매우 미안했다.

사람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해서 그 흔한 '앉아!' 나 '손!' 이런 거 해본 적이 없다. 사람에게 아양을 떨지 않는 개다운 개였다.

그러나 저를 향한 인간의 애정의 정도쯤은 알고 있었다. 아진군을 입양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딸아이가 손을 내밀면 부드럽게 혓바닥으로 핥아주고, 밥을 주고 산책을 시켜주는 내가 손을 내밀면 킁킁 냄새만 맡고 가만히 있는데, 남편이 손을 내밀면 고개를 돌렸다. 산책을 나만 시켰나? 남편도 거의 늘 함께 똥을 치웠는데도 그랬다. 아진군에게도 나름 안목과 척도가 있었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줄 몰라서 온갖 장난감이 소용 없었는데 그래도 개는 개라서 이따금 수건 따위를 물어 뜯었다. 이런 개다운 행동을 할 때 우리는 신기해서 환호성을 질렀다. 개답지 않는 개의 개다운 용기가 그렇게 보기 좋았다.

이러했던 아진군이 갔다.




아진군 수첩이다. 예방접종을 하느라 세 군데의 동물병원을 다녔었다. 

첫 번째 동물병원은 과잉진료가 심한 곳이었다. 처음이라 조심스럽던 우리는 의사의 말에 순순히 따랐지만 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이게 맞나? 하는 심정이었다.

두 번째 동물병원은 산책하다가 만난 견주들에게서 들어서 알게 된 곳. 아침 일찍 줄을 서서 번호표를 타고 제 시간에 맞춰 다시 가서 진료를 받는 게 힘들었지만 과잉진료 없고 친절한 곳이었다.

세 번째는 새로 이사와서 알게 된 곳으로 구도심에 있는 병원이다. 병원도 낡고 의사도 늙었으나  정말 개를 개답게 대하는 곳이었다. 환자 챠트 같은 거, 컴퓨터로 하는 고객 관리 같은 거 전혀 하지 않는 곳으로 개의 이름 따위 묻지도 않았다. 개에게 이상한 짓, 말하자면 과잉보호를 한심하게 보는 의사선생님이 있는 곳이었다. 진료 때마다 기본적으로 받는 진료비(오천원 정도)도 없고 (대신 발톱 손질이나 귀청소, 초음파 따위도 없음) 딱 필요한 처치에 합당한 비용만 받았다. 한마디로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곳이었다. 접종 날짜도 기억하기 쉽게 '광복절에 오시면 됩니다'라고 하며 저 수첩에 스티커 따위 붙이지 않고 기록을 해주었다. '허참... 이런 수첩도 있나?'하는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수첩도 더이상 기록할 칸이 없고 더이상 기록을 남길 만한 개도 이제는 없다. 내 인생의 어떤 시기에 와서 한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었던 우리 아진군.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늘 집에 개가 있었다. 늘 똥개였으나 또한 집안의 재산이기도해서 어느 정도 성견이 되면 여름 복날을 지날 때쯤 어머니의 살림 밑천이 되어주곤 했다. 심지어 사위의 몸보신용으로 희생되기도 했다. 그래서 단한번도 개가 늙어서 죽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게 늘 마음에 걸렸는데 나는 드디어 해냈다. 소위 품종 따위 없는 똥개를 끝까지 길렀다. 잘가라, 아진군. 고맙다, 아진군. 개다운 개였던 아진군, 안녕~~



입양 후에 이런 영상이 있음을 알았다.

더달: 아진군의 스트리트 시절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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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10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2-10 15: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자 2025-02-10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다운 개!!
나마님 댁에서 사랑을 많은 받은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나중에 아진군이 마중을 나오겠네요...힘내세요.

nama 2025-02-10 15:50   좋아요 0 | URL
빈 자리의 허전함과 슬픔이 남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