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 때 220만 원이 생겼다. 귀하고 귀한 돈, 함부로 쓸 수는 없어서 고심 끝에 책을 사기로 마음 먹었다. 때마침 낯선 동네로 이사했더니 도서관 이용이 심히 불편해져서 책을 구매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을 때였다. 이름하여 '프로젝트 220'. 시작일은 2024년 4월 30일. 


책 구입 방법으로는,

1. 서점에서 직접 구입: 서점에서 서너 시간씩 책을 봤던 게 언제냐싶게 이젠 서점에 가면 불편하다. 매장 가득한 책을 보면 멀미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한다. 그래도 여행지에서는 되도록 서점을 탐색해보려고하나 동행자 눈치보느라 여의치 않다. 다음은 한두 권 팔아준 서점들. 성적이 초라하다.

양양 대아서점, 속초 동아서점, 보령 미옥서원, 조지아 트빌리시의 백화점 내 서점, 뉴욕 모건 라이브러리, 곡성 들녘의 마음. 이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서점은 보령의 미옥서원. 원주의 뮤지엄 산을 연상시키는 원형 건물은 고상하면서도 도도하다. 다만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터덜거리는 버스 타고 다녀오기에는 많이 벅찬 곳에 자리잡고 있다.

2. 온라인으로 구입: 신간, 중고서적

3. 중고서점 이용: 직접 방문해서 신간 서적 되팔기와 중고서적 구매. 직장 생활을 할 땐 시간상 거리상 중고서점 이용이 어려워 책을 사기만했더니 이젠 처치곤란한 상태에 이르렀다. 이제는 읽고 싶은 책을 사서 빨리 읽고는 다시 보지 않을 책은 중고서점에 팔아치운다. 다행히 가까운 곳에 중고서점이 두 곳이나 있다. 이렇게 하니 적립금이나 예치금이 생겨 책을 살 때 도움이 된다. 


정산을 해보니, 140권의 신간/중고책을 구입. 여기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주는 책도 포함돼 있는데 미미한 수준.


내겐 책을 읽는 건 사진 찍기와 비슷하다. 그럴듯해 보여 이것저것 카메라에 담지만 건지는 건 몇 장 안되는 것처럼 책도 비슷하다. 그 몇장은, 어떤 장면에 일순간 마음에 파문이 일면서 살짝 설레임이 생길 때, 그럴 때 찍는 사진은 건질 확률이 높다. 그리고 그럴 때는 사진을 여러 장 찍지 않는다. 딱 한 장이나 두 장. 필름 카메라를 찍던 버릇이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어디에 내놓을 사진도 아니지만 뭐 그렇다는 얘기. 책도 마찬가지. 여러 권의 책을 접하지만 내 마음을 움직이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어떨 때는 책 한 권에서 새길만 한 문장 하나로 만족하기도 한다. 모두 책 쓰느냐고 심혈을 기울였을 텐데, 다만 좋은 독자이고자 노력하고 싶다. 도서관에서 수준고하 막론하고 맘 편하게 읽을 서적을 일일이 구매하다보니 원치 않는 낭비벽이 생기는 듯하다. 책 살 돈도 넉넉하겠다....어떤 돈인데...


거의 평생에 걸쳐 병원 신세를 져야했던 언니. 2022년에 별세한 언니가 남긴 건 병원비 환급금 670여 만 원. 동생 셋이 220만 원씩 나눠 가졌다. 아픈 돈이다.


140권의 책을 구매하고도 아직 57만 원이 남았다. 꼭 사고 싶은 책을 엄선하고 엄선해서 사야겠다고 다짐해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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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배우자를 고를 때 한가지라도 마음에 들면 되고

책 한 권에서 한 페이지만 기억에 새겨도 남는 거고

여행지에서 하나만 인상 깊어도 떠나온 보람이 있는데

과연 내 인생에서는 무엇이 하나일까.
















이 책에서 한쪽만이라도 옮겨야겠다고 마음 먹은 지도 며칠 째. 어줍잖은 생각만 오락가락.


P.302

여전히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인류애를 실현하는 자비로운 부자로 빌 게이츠를 바라본다. 자선이 쌓일수록 높아져만 가는 자산고의 비밀을 파헤치는 목소리도, 평화로운 얼굴 뒤에서 벌어지는 난감한 현실을 취재한 글도 찾을 수 없다. 기부금을 전하는 그의 재단이 트로이의 목마가 되어 미국의 제약회사, 농화학 회사들의 제품을 실어나르며 아프리카에서 벌인 일들을 우린 알지 못한다. 부지불식간에 대한민국이 그의 꿈을 이뤄가고 있는 중이라면, 그가 어떤 인물이지 그의 꿈을 우리가 이렇게 착착 실현해도 되는 건지, 한 번쯤 살펴야 할 것이다. 앞에서뿐 아니라, 뒤, 옆에서 그를 조명한 글들을 통해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는 이 인물을 고찰하는 것은 다음 세대에게 이 사회를 물려줄 기성세대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일 것이다.


'빌 게이츠의 꿈이 이뤄지는 나라'(p.292~p.302) 부분을 면밀히 읽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보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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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1월 하순쯤 뉴욕에서 남편 후배 부부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내겐 평생에 한번쯤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다.) 30여 년 전 미국 이민 생활을 시작한 그분들은 국내 상황을 적잖이 우려하고 있었다. 우리 부부도 여의도에서 야광봉 흔들고 왔다면서 "우리 국민들이 훌륭하니까 이겨낼거예요."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약간 놀란 듯해서 "박근혜 때도 갔었어요."라고 덧붙였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사는 게 피곤하구나. 역시 이민을 잘 왔어. 라고 생각했을까? 


모처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쓴다. 대통령 하나가 세상을 쥐락펴락하고 일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상황이라니... 내 삶에는 대통령도 많았어라. 이승만부터.


2. 청산도, 로케이션 헌팅

영화 <서편제>가 나왔을 때 혼자서 영화관에 갔었다. 동네마다 있는 <중앙극장>이었다. 극장 중간쯤 되는 자리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데 웬 남자가 다가오더니 내 옆자리에 앉았다. 뭐야?하는 심정으로 자리를 더 앞자리로 옮겼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설마 더 따라오지는 않겠지 했는데 웬걸 또 따라와서 옆자리에 앉는 것이 아닌가. 지금 같았으면 소리라도 꽥 지르는 건데...할 수 없이 이번엔 나가는 척하며 맨 뒷자리 컴컴한 곳으로 이동했다. 그제서야 마음 편히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때 뒤엉킨 기분으로 본 영화가 <서편제>였는데 그래도 평생 잊지못할 장면 하나는 건졌다. 그리고 그 촬영지가 내내 궁금했었다. 특히 꽃 피는 봄이 되면 더욱 더. 드디어 기회를 만들었다.



영화 내용상(자세히 떠오르지는 않지만) 너른 들판을 상상했었다.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어느 순간 흥에 겨워 진도아리랑 한판 걸판지게 부르며 놀았던 곳은 너른 들판 한가운데쯤으로 상상했었다. 그래서 가기도 쉽지 않은 섬, 청산도에 가면 그 너른 들판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사진에 보이는 저곳이 전부였다.


그게 영화의 힘이라는 생각을 하니 새삼 영화라는 게 재밌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참...당연한 건데. 로케이션 헌팅을 전문으로 하는 직업이 있다는 말도 어디선가 들은 것 같고. 그런 일 하는 것도 재밌겠다..혼자 궁시렁궁시렁..



그러나 청산도는 넓지는 않지만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좀 작아서 그렇지. 섬이니까.



3. 쌍산재, 어렵겠지만.

오늘은 뭘 볼까 검색하다가 얼떨결에 가게 된 곳이다. 티비에서 본 적이 있지만 그리 궁금하지는 않았던 곳이나....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라서 일일이 다 소개하는 것은 무리. 딱 하나를 골라봤다. 하얀 천에 덧댄 달항아리까지 기막히게 잘 어울린다. 내 집도 아닌데 왜 이렇게 뿌듯하지?




주인장의 향기를 읽었다. '어렵겠지만 .....' 


이 아름다운 곳에 눕고 싶은데 눕지 않으려니 참 어렵겠지요.

손님이 누워버리면 저는 참 어렵답니다.

서로 어려우니까 제발 눕는 일은 삼가세요.


이런 간절함이 깃들어 있는 한 단어. 어렵겠지만...


4. 들녘의 마음, 독립서점



곡성의 들판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잡은 폐교와 폐교에 차린 서점, 들녘의마음.

이곳엔 소설가 김탁환이 있다. 한겨레신문에 실린 그의 칼럼에 익숙한 나는 그를 아는 사람이 된다. 그는 나를 모르지만. 그래서 들렀던 곳.




로케이션 헌팅하는 심정으로 고른 두 권의 책. 내가 영화를 찍을 일이야 없겠지만. 누구나 자기만의 영화는 존재하니까. 한때 세상을 주름 잡던, 주름 잡을 것 같았던, 그 누군가처럼. 개떡보다 못했지만. 개떡이란 이름도 아깝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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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아직까지 들어보지 못한 말이다. 웃음소리에도 국적이 있다는 사실을.

달랏에서 길을 걷다가 익숙한 웃음소리를 듣고 단박에 알아봤다. 저 사람은 한국인이라고. 호찌민 벤탄 시장에서
귓전에 들려오는 저 익숙한 웃음소리, 역시 한국인이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줄 알았는데 옆에 있던 남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웃음소리로 한국인을 구별할 수 있다는 사실. 이건 의미있는 언어학적 발견이 되지 않을까. 신기한 생각이 들어서 써본다.

잘 아는 외국인 친구가 없다보니 다른 나라 사람을 웃음소리로 구별할 수는 없지만...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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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5-03-12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궁금해서 생각해보았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도 우리처럼 크게 소리 내어 웃던가 싶기도 하고요.

nama 2025-03-12 20:34   좋아요 0 | URL
소리의 크기보다 음색같은 특징이 있어요. 무리에 섞여 있어도 가족이나 친구의 목소리를 알아채는 것과 비슷해요. 이름하여 한국인의 웃음소리. Laughing color.
 

베트남 여행 일주일째, 달랏에서는 나흘째. 오늘은 별다른 일정없이 달랏 시장에서 맴돌고 있다. 밤11시 59분에 출발하는 호찌민 행 야간버스에 오르면 기나긴 하루가 끝난다. 길고 지루한 날이지만 보람이 있다면 지루해야 보이는 것들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루해야 글이 써질 때도 있다는 것도.

아래 사진을 보시라, 달랏의 중심지인 달랏시장의 아침 풍경이다. 막 문을 연 꽃집. 지붕에는 보라색 꽃이 소박하게 떨어져 있고 사진에 담을 수 없었지만 꽃비도 내리고 있다. 싱그러움으로 설레는 아침 풍광이다.

다른 사진을 보시라. 알아채셨는가? 꽃집 자리에 옷집이 들어서 있다. 낮엔 꽃을 밤에는 옷을 판다. 이 곳 뿐이 아니다. 이 일대의 다른 곳에선 낮엔 채소와 과일, 생선을 팔고 야간엔 옷을 팔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꽃집 자리에선 예쁜 여성복과 장신구를, 채소전에선 저렴한 점퍼나 티셔츠를 팔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 목욕탕 의자라고 부르는 납작한 플라스틱 간이 의자를 베트남 사람들처럼 애용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땅바닥에 의자 몇개 깔면 식당이 되기도 찻집이 되기도 한다. 남녀노소, 덩치 불구, 신분고하 불구, 조금은 코믹스럽지만 이 작은 의자에 앉으면 사람은 누구나 고만고만해진다.

그래서 감히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 플라스틱 납작한 의자 덕분에 실용적이고 유연한 사고를 하지 않을까 하는. 꽃집이 옷집이 되는 것도 의자 몇개 꺼내고 옷걸이 걸고.. 뭐 어려워. 하면 되는거지.

심지어 초등학교 아침 운동장 조회 때 아이들은 이 목욕탕 의자에 질서정연하게 앉아 있다. 빨간 의자에 앉은 주황색 유니폼의 아이들이 꽃처럼 보인다. 그러니 목용탕 의자라고 얕보아선 안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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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5-03-11 0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장 한다발 사고 싶은 꽃다발이네요.
꽃를 파는 주인과 옷을 파는 주인은 같은 사람일까요? 아니면 두 사람이 시간별로 나눠 쓰는 걸까요.
맨아래 어린이들 사진도 좋아요.

nama 2025-03-11 17:18   좋아요 0 | URL
아마도 서로 다른 사람일 거예요. 꽃이나 옷은 진열하고 철수하는 게 고되 보여요.
그런 이익 산출 공간을 한 사람이 독점해서도 안될 것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