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중고매장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중고서적은 어디로 가야하나? 폐휴지로 버리는 건 책에 대한 예의,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고...


빨강색 코스트코 장바구니에 꽉 채워서 숙고 끝에 인천 아벨서점으로 향했다. (참고로 32년 동안 살았던 인천을 떠나온 지 만 2년이 지났다.) 팔지 말고 그냥 기증하자는 남편의 제안에 따르기로 했다. 서점을 운영하는 두 자매분은 여전히 단아했다. 곱게 나이들어 가는 모습에 경외감마저 들었다. 기증하고 싶다는 의사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저희는 기증을 받지 않습니다."


기증을 받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말씀에 우리는 뭔가 잘못을 저지른 기분이 들었다. 동생분이 한권 한권 찬찬히 점검을 하는 동안, 새로 말끔하게 단장한 1층 매장과 2층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어쩌다가 마음 먹고 가보는 정도지만, 서점은 아련한 추억과 감상에 젖게 한다. 켜켜이 쌓인 세월이란 이런 것이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마음 한편이 죄송스러웠다. 알라딘에서 받아주는 책은 다 팔아버리고 남은 책을 들고 온 게 송구스러웠다. 감히 '기증'이라니.


민망해서 자세히 살피지는 않았지만 대강 2/3는 서가에 꽂히고 나머지 1/3은 폐지로 처리될 듯했다. 책 값으로 2만 원을 받았다. 얼굴은 계속 화끈거렸다. 그사이 눈여겨 본 괴테의 여행기를 서가에서 꺼내 가격을 물었다. 2만 5천 원. 5천 원짜리 지폐를 가방에서 꺼내 보탰다. 잠시 망설이던 동생분이 "더 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남편이 거든다. "우리에게도 철학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괴테의 여행기를 손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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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6-02-26 0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처리, 정말 고민인 분들 많을 겁니다. 알라딘은 재판매가 어려운 도서는 중고로 매입하지 않는 긋해요.
 
이끼와 함께 - 작지만 우아한 식물, 이끼가 전하는 지혜
로빈 월 키머러 지음, 하인해 옮김 / 눌와 / 2020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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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뉴질랜드의 마운트 쿡에서 찍은 사진이다.



언뜻 추상화 같은 이 사진 속의 물체를 얼마전까지도 이끼라고 단정하고 있었다.




바위 위에 이렇게 자리잡고 있었으니 내 얄팍한 지식으로는 떠오르는 단어가 '이끼'밖에 없었다.


또 다른 사진. 얼마전 나가사키의 '료마의 길' 계단에서 찍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생물체지만 확대해서 들여다보면 예술 작품처럼 묘하고 신비롭게 보이기도 한다. 이 역시 '이끼'라고 굳건하게 믿었다. 그러다가 <향모를 땋으며>를 쓴 로빈 춸 키머러의 책 <이끼와 함께>를 보고 '이끼'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뭔가를 새롭게 알게 된다는 건 내 삶이 추상에서 구상으로 안착되는 느낌이랄까. 죽을 때까지 배울 게 많다는 건 아직까지는 축복으로 다가온다.


p. 31

사람들은 종종 '이끼'라는 단어를 이끼가 아닌 식물에도 쓴다. 순록이끼reindeer moss는 지의류고, 스페인이끼Spanish moss(수염틸란드시아)는 꽃식물이여, 아일랜드이끼(Irish moss는 조류고, 곤봉이끼club moss는 석송류lycophyte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끼일까? 진짜 이끼나 선태식물은 가장 원시적인 육생 식물이다.(중략) 이끼는 가장 단순한 식물이여 그 단순함에 우아함이 깃들어 있다. 몇 안 되는 기초적인 줄기와 잎으로만 된 구조이지만, 전세계 곳곳에서 진화한 이끼 종은 약 2만 2천 개에 달한다.


이 부분을 읽고 내멋대로 단정한 이끼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이끼가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이 들어서 이내 AI한테 사진을 들이밀었더니 이끼가 아니고 '지의류'라고 한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이끼는 뭐고 지의류는 또 뭐냐고.


* 이끼: 1)스스로 광합성을 하는 엄연한 선태식물입니다. 비록 뿌리, 줄기, 잎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은 하등 식물이지만, 엄격히 '식물계'에 속합니다.

        2) 주로 습기가 많은 곳을 좋아합니다. 물이 없으면 금방 말라버리거나 활동을 멈추죠.


* 지의류: 1)식물이 아닙니다. 균류(버섯, 곰팡이)와 조류(광합성하는 미생물)가 서로 돕고 사는               공생 생물입니다. 곰팡이가 집을 제공하고, 조류가 광합성으로 밥(영양분)을 차리는               구조죠.

           2) 이끼보다 훨씬 강인합니다. 극지방, 사막, 심지어 우주 공간에서 살아남을 정도로               생존력이 강하며, 대기 오염에 민감해서 '대기오염 지표생물'로 쓰이기도 합니다.


나이가 드니 이런 책도 잘 읽히는구나 싶어 계속 읽어나갔다. 이끼에 대해서 이렇게 파고들며 공부하는 사람이 있구나, 내심 감탄이 절로 흘러나오는데 글솜씨에 또한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p.75

이끼와 물의 상호관계. 이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방식이고, 사랑을 통해 스스로 나래를 펴는 방식이 아닐까? 우리는 사랑하는 이를 향한 애정으로 형상화되고, 사랑의 존재로 확장되며, 사랑의 부재로 움츠러든다.


내멋대로 풀어쓰면, 이끼는 물을 향한 애정으로 형상화되고, 물의 존재로 확장되며, 물의 부재로 움츠러든다....쯤. 사람에게는 사랑이 필수이듯, 이끼에게는 물이 필수라는 얘기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물곰water bear에 대해서 들어보셨는지...처음 들어보는 물곰 얘기가 흥미진진하다.


p.104

이끼의 삶과 가장 긴밀한 동물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완보동물, 즉 물곰water bear을 선택할 것이다. 대나무 숲에만 의지해서 사는 판다처럼 물곰의 삶은 물곰이 서식하는 이끼와 떼려야 뗄 수 없다. 뭉툭한 여덟 개의 다리를 구르면서 잎사귀 사이를 킁킁거리는 물곰은 영락없이 작은 북극곰을 닮았다.


p.105 

이끼, 물곰, 담륜충 모두 부활과 생명의 본질에 대한 19세기 담론에서 자주 거론되었다. 이 세 가지 생명체의 행동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흐린다. 물이 없는 곳에서는 삶의 징표인 운동, 기체 교환, 신진대사 모두 소멸한다. 셋 모두 생명력이 없는 가사동결 상태가 된다. 하지만 수분이 다시 생기면 곧바로 되살아난다....물곰은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극단적인 실험의 대상이었다. 세상에 알려진 어떠한 생물체도 살아남지 못할 건조한 환경, 팔팔 끓는 액체, 절대영도에 가까운 영하 273.142도의 진공상태에 놓였다. 하지만 이같은 고문을 모두 이겨내고 물 한 방울로 다시 살아났다. 물과 만나면 생며의 화학작용이 재개되는 메커니즘은 이끼와 물곰에게 일상이지만 그 실체는 여전히 대부분 밝혀지지 않았다.


물곰은 크기가 보통 0.1mm ~ 1mm 정도여서 현미경으로 봐야 보인다는데...내 관심은 딱 여기까지. 부지런한 사람들이 올린 물곰 이미지를 검색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끼가 내 삶 속으로 들어온 건 잔디 때문이었다. 앞마당에 깔린 손바닥만한 잔디밭이 언젠가부터 폭신폭신해지면서 카펫을 밟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잔디 밑에 이끼가 시루떡모양 깔려 있었다. 왕성한 이끼의 번식력 앞에서 번식력의 대왕인 잔디의 체면은 말이 아니었다. 탈모로 엉성해진 머리털 같다고나 할까. 괴씸한 마음에 잔디를 쥐고 있는 이끼를 호미로 걷어내기 시작했다. 이끼를 걷어낸 자리는 한동안 잔디가 기를 펴는 듯했으나 다시 봄이 오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이끼의 아성은 이내 회복되고 만다. 그러면 또 호미를 들고 이끼와의 전쟁이 시작되고 비가 오면 다시 이끼가 득세하고, 또 호미를 들고....무한 반복이다.


p. 161

한번은 도시에 거주하는 어떤 사람이 내게 전화를 걸어 잔디에 난 이끼를 어떻게 죽일 수 있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그는 정성스럽게 가꾼 잔디를 이끼가 죽인다고 확신했고 이끼에게 복수하고 싶어 했다. 그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해보니 단풍나무 그늘이 짙게 드리운 집에서 잔디를 심은 곳은 북쪽 방향이었다. 그가 보기에 잔디는 언제나 시들했고 잔디가 있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던 이끼가 잔디의 빈 공간을 차지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끼는 풀을 죽이지 못한다. 전혀 적수가 될 수 없다. 이끼가 잔디밭에 등장하는 까닭은 주변 환경이 잔디보다는 이끼가 자라기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이끼를 죽인다고 해서 시들한 잔디가 살아나진 않는다. 햇빛을 더 잘 받도록 하거나, 아니면 더 바람직하게는, 남아 있는 잔디를 뽑아 자연이 선사하는 훌륭한 이끼 정원을 가꾸면 된다.



잔디를 뽑는 게 빠를까, 이끼를 뽑는 게 빠를까? 새로운 숙제가 생겼다. 둘 다 만만찮은 생명력 대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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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에 앞서 고토에 대한 설명부터 해야겠다. 
















p.342

고토는 기도의 섬이라 불린다. 가톨릭의 역사가 깊은 고토 열도에 자리 잡은 교회만 55개. 일본의 기독교 인구가 채 1%도 되지 않음을 감안하면 경이로운 숫자다. 모진 종교 탄압 속에서 250년간 신앙의 끈을 놓지 않았던 신앙의 역사는 프란치스코 교황도 역사의 모범이라 치켜세웠던 바, 육지에서 100km나 떨어진 이 섬으로 순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때 묻지 않은 순수 자연을 간직한 고토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에 비견되기도 한다. (중략) 이국적인 성당과 천혜의 절경이 쪽빛 바다에 젖어 있는 이곳은 말 그대로 파라다이스!



  작년 9월까지 나가사키 앞바다에 고토(五島)라는 섬이 있는 줄도 몰랐다. 막부 시대의 쇄국정책 일환으로 포르투갈, 네덜란드의 상관을 유일하게 허락한 곳인 데지마. 오천여 평의 자그마한 인공섬인 데지마에서 할일없이 두리번거리다 홍보 문구가 쓰인 띠를 가슴에 두른 한무리의 일본 중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관광지에서 얘네들은 뭐하나 싶어 살펴보았다. 3인 1조가 되어 관광객들에게 설문지를 돌리면서 설문지가 완성되면 답례품으로 포장된 국수(아마도 우동)를 건네주고 있었다. 우리(남편과 나)에게 다가와서 요청하기를 은근히 기다렸는데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않는다. 하얗게 센 머리 때문이리라고 짐작. 좁은 데지마에서 이들과 절대로 멀어질 수 없었던 우리는 기다리다못해 한 무리의 남학생들에게 말을 걸었다. 알고보니 이들은 고토에서 온 학생들로 고토라는 관광지를 홍보하고 있었다. 건네받은 전단지에는 고토의 관광지, 식당, 호텔, 먹거리 등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 중학생들의 활동은 우리로 치면 체험학습쯤 되는 것 같은데 학생들에게 이런 걸 시켜도 되나? 라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여기에서도 지역 살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구나 정도로 이해했다.


2월 초 두번 째 나가사키 여행을 친구들과 함께 하면서 궁금했던 고토를 일정에 넣었다. 배편은 두 가지가 있다. 1시간 30분이 걸리면서 왕복 요금이 3인분에 53,400엔(약 50만 원)인 것과 4시간이 걸리면서 요금이 24,000엔(약 25만 원)인 것. 빠른 것으로 가자던 친구들의 호기는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조용히 안도의 숨을 쉬면서 4시간이 걸려도 좋아, 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고토 후쿠에 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에어비엔비 숙소를 예약했다. 말끔하게 리모델링해서 내부는 깨끗하고 쾌적했으나 아귀가 잘 맞지 않는 문틈으로 사정없이 웃풍이 들어왔다. 문짝이 몇개였냐고 묻지 마시길. 전면과 후면이 모두 목재로 짠 전통 미닫이 문으로 미관에 역점을 두었을 뿐, 오랜 살림살이 냄새가 배어있는 살림집의 아늑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사진을 올린 이유. 대문 역할을 하는 저 무너진 성벽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는 것.



동네 한 구역을 차지한 부케야시키도리, 무사들이 살았던 곳으로 담장 위에 층층이 쌓아올린 달걀 모양의 돌들이 독특하다. 적이 침입했을 때 땅으로 떨어져 비상 상황을 알리는 경계병 역할을 했다고 한다. 손에 쥔 게 많았다는 흔적일 터. 무사의 집을 흉내낸 것만으로도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는 의미가 있었다.


  섭섭한대로 하루에 몇차례밖에 운행하지 않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국제면허증을 준비하지 못한 친구는 몹시 아쉬워했지만, 운전면허증조차 없는 나는 아쉬운 마음조차 없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텅텅 빈 시골버스를 타고 우여곡절 끝에 도자키 성당까지는 갔다. 그래도 성당 하나는 보고 가야지 싶었다.


 ** 도자키 성당(堂崎天主堂): 1873년 금교령 해제 후 고토에 최초로 세워진 교회. 이 지역 기독교 신앙의 요람이 되어 왔으며, 현재는 고토의 기독교 역사와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자료관 역할을 하고 있다. 붉은 벽돌로 지은 고딕 양식의 교회와 앞마당까지 들어온 바다가 어우러져 서정시 같은 풍경을 자아낸다.(위의 책 p.348)


버스에서 내려 눈보라치는 길을 1km 가량 힘들게 걸어왔건만 성당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러나 실망스러운 기분은 들지 않았다. 바다를 오른편에 끼고 걸어온 길과 바다의 풍광이 가슴저리게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옥색과 푸른색의 맑은 바다와 그 바다 위로 몰아치는 바람이 멋진 장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친구가 물었다. 저 바다 위의 눈보라는 이름이 뭐냐고. 포말은 아닌 건 확실한데 그냥 포말이라고 답했다. 모르니까. 나중에 AI한테 물어보니 비산 또는 포운이라고 한단다.


  **비산(Sea Spray): 강한 바람이 해수면의 꼭대기를 직접 쓸고 지나가면서 물방울을 공중으로 비산시키는 현상을 전문적으로 비산(Sea Spray)또는 포운(Spindrift)이라고 부릅니다. 


비전문적으로는 그냥 '눈보라'. 바다에 홀린다면 아마도 뿌옇게 뿌려대는 저 비산 또는 포운에 포위되어 눈을 멀게 될 것 같았다. 하여튼 영화 속 한 장면같은 풍광을 옆에 끼고 결정을 내려야 했다. 두어 시간 후에 오는 버스를 기다리느냐 아니면 그냥 눈보라를 헤치고 걸어가느냐. 고민이 길지 않았다. 걷기로 했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 옷깃을 여며도 추웠고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눈을 뜨기도 힘들었지만 언제 이런 길 걸어보겠는가. 총길이 9km로 이미 1km는 왔으니 천천히 걷다보면 도착하지 싶었다. 지나가는 차량도 사람도 없는 적막강산의 길, 강한 눈보라 때문에 감상에 젖을 틈도 없었다. 그런데 얼마 걷지 않아서 우리 옆으로 낡은 소형승용차가 한대 섰다. 선택의 여지 없이 차량에 올랐다. 선량한 얼굴의 50대 아저씨는 연신 웃으며 말을 붙였으나 서로 말이 통할 리 없었다. 이내 조용해진 분위기. 15분 정도 달려서 숙소가 있는 동네에 하차했다. 허전했다. 아저씨가 너무 일찍 나타났다. 좀더 고생스럽게 걸었어야 했는데, 눈보라에 눈썹이 하얗게 얼어붙었어야 했는데, 저 스프레이 뿌리는 푸른 바다를 옆에 끼고 허위적허위적 걸었어야 했는데....정말 아쉬웠다. 친구들에게는 말을 아꼈다. 두 친구 중에 한 친구도 약간 아쉬워한 눈치였다. 




이것은 도자키 성당의 반대편 노선 버스와 정리권. 1번 정거장에서 종점까지 요금은 1490엔. 1490엔 * 3명 * 2회(왕복)=8940엔(약 83500원). 왕복 4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전세내다시피한 버스로 종점까지 찍고 왔다. 렌터카는 하루에 5만 원이라는데...친구의 말을 흘려 듣는다. 날은 잔뜩 흐려서 비바람 불고, 버스에는 고작 현지인 두세 분. 온통 동백나무가 촘촘히 자리잡은 울창한 숲과 숨바꼭질하듯 나타나는 바다를 내내 바라보는데 전혀 질리지 않았다. 자고로 여행과 예술은 심심해야 하는 법. 심심해야 그것도 매우 심심해야 기억에 남고 작품이 싹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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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둘을 데리고 다시 나가사키에 왔다. 누구는 묻는다. 일본을 좋아하느냐고. 만사에 시큰둥할 나이에 새삼 일본을 좋아할까. 모르는 게 많아서 알고 싶을 뿐.

벼르고 별러서 군함도에 가봤다. 예약을 제대로 했다. 가보니, 헐, 이 사람들(일본인들) 군함도를 과거의 낙원 쯤으로 부른다. 5000명이 넘는 일본인 거주민들이 한가족처럼 지냈으며, 보수가 넉넉해서 온갖 가전제품을 구비하고 넉넉하게 잘 살았단다. 심지어 TV보급률이 100%에 달했단다. 방파제 위로 파도가 넘실대는 날에는 아낙들이 몰려나와 그 광경을 구경했다는 사진도 보여주었다. 징병공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이 목숨 걸고 도망치던 그 바다. 일본 근대화를 이끌었던 석탄 산업의 주역이었던 군함도를 일본인들은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옛 시대의 영광을 돌이켜보는 그네들 표정은 자못 만족스러웠다. 지랄맞을.

저녁에 숙소로 돌아와서 친구들과 하루를 마무리했다.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된 것은 그래도 일본이 우리 땅에서 근대화를 꾀한 덕분이 아니냐는 친구의 발언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너네 집안에 징병 나가서 죽은 사람이 있어도 그런 말 나오겠느냐고 한마디 해주었더니 조용해진다.

When given the choice between being right or being kind, choose kind.

친절하기 위해선 뼈를 깎는 인내와 겸손이 필요하다. 자기만족에 빠진 나라를 상대하는 것도 그렇다. 화만 분출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60년 지기의 친구에겐 애정이라도 있지.

원수지간의 이웃을 좋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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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2-08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인임에도 식민지 근대화론을 신봉하는 이들이 있는데 일본인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아픔의 역사를 치욕으로만 기억하고 있을테니 그 시절이 그냥 화양연화로 보일테지요.

nama 2026-02-08 19:13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확실하게 확인했답니다.
 

책을 한번 구입하면 버릴 줄을 몰랐는데, 버리면 안되는 걸로 알고 살았는데, 이젠 생각이 바뀌었다. 새책에 대한 태도도 바뀌었다. 읽기를 얼른 해치우고 중고매장에서 팔아치운다. 그래야 좀 더 좋은 가격으로 팔 수 있어서다. 그러러면 책을 깨끗하게 읽는 건 기본. 이렇게 팔아치워 받은 돈으로는 신간을 사기도 하는데 대부분 중고서적을 구입한다. 다 읽은 중고서적은 되팔기도 하는데 팔리지 않는 책이 더 많다. 낡았기 때문만은 아닌데 그 기준에 갸우뚱할 때가 많다. 신간이라고 무조건 다 받아주는 것도 아니다. 따지는 일에는 서툴러서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인다.


산책삼아 두어 군데의 알라딘중고매장을 들락거리는 재미가 있다. 진즉에 왜 책을 떠나보낼 생각을 못했을까....하다가 이게 가능하려면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생각에 멈춘다. 집안 여기저기에 쌓이는 책이 넘쳐나고, 시간이 있어야 하고, 가까운 곳에 중고매장이 있거나 개인간 거래를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나이. 쌓아두기보다 버려야할 나이가 되다보니 버리는 일도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새록새록 나오는 책도 많은데 이미 읽은 거 언제 또 읽겠나 싶어 하나하나 점검하다보니 떠나보내야 할 책이 한짐. 말 그대로 짐이 되었다. 팔리지 않는 책을 어떻게 떠나보내야 하나. 예의를 갖춰 인천 아벨서점에 들고 갈까, 폐휴지 분리수거장에 버려야 할까.


이렇게 저렇게 떠나보내고 남는 책은? 사놓고 읽지 않은 책과 세계 각지의 여행 가이드북, 현재 좋아하는 소수의 작가들 책. 다시 볼 일 없지만 힘들게 읽었던 원서 몇권. 한번 갔다온 여행지를 언제 또 간다고 여행 가이드북을 껴안고 있는 걸까? 식욕이 의욕이라면 버리지 못하는 책은 생에 대한 욕망 내지는 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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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6-01-18 16: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막상 팔 땐 매입가에 비해 너무 형편없는 가격이라 종종 주저하게 되기도 합니다.ㅠㅠ

nama 2026-01-19 20:51   좋아요 0 | URL
형편없는 가격이어도 받아주면 고맙지요. 넘쳐나는 매입불가 책은 어찌 할까요.

호시우행 2026-01-20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입불가,가장 심각하지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