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로 받은 세 권 빼고, 세 곳의 도서관을 드나들면서 열심히 날랐던 책들이다. 물론 모두 완독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어차피 빌린 책이라 미련없이 가차없이 읽지 않은 책도 부지기수다. 이들 중 세 권은 소장하기 위해서 구입했다. 그 세 권 중 단연 한 권을 뽑으라면........맨 밑에 있어요~~~





































































































































































               

   









2021.12.09. 이후 빌린 책
























바로 이 책.

장대한 인도 종교사를 한 호흡으로 꿰뚫는 역저라는 생각이 든다. 시야가 확 트이고 눈이 밝아진 기분이 드는 책이다. 

















힌두교의 역사는 저렇게 깊고 높은 세계관으로 사람들을 어떻게 착취하고 지배하고 소외시켰는지를 보여 준다. 사실, 역사 속에서, 구체적인 물질 상황의 변화 속에서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규정하는 맥락은 종교에 따라 다르지 않다. 힌두교에서 그 기준이 상대적으로 해석 가능하고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기독교의 그것과 달리 보이고 더 자연적이거나 인간적인 것으로 보일 뿐, 결국은 항상 가진 자, 정의를 규정하는 자, 권력을 쥔 자를 위하는 방향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것이 곧 힌두교의 도덕과 법이 만들어 낸 역사의 해석이다.......모든 종교는 권력이고, 그 권력은 인민을 종복으로 다루는 것이다. 진리 추구와 공동체 질서를 둘러싼 힌두교의 역사는 이를 여실히 보여 준다. 진리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다. 진리 자체가 없다. 그런 것은 그 어떤 종교에도 없다. 당연히 힌두교에도 없다. 그런 게 있었다면 그것은 이미 종교가 아니다.....힌두교사를 익힌다는 것은 '스승들'이 추구한 지혜를 찾는 것이 아니다. 지혜라고 하는 외피가 둘러진 역사의 변화 속에서 서로 죽고 죽이고 뺏고 뺏기고 속고 속이는 그 저잣거리의 길을 되새겨 보는 것이다.

                                                           -406~407쪽


어디 힌두교 뿐이랴. 





올해의 교훈


책은 빌려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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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12-07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와 16권이 겹쳐요. 그 중 읽은 것은 한 4권 되는 것 같고요. 빌려 읽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사서,,,, 제대로 읽지도 못하는 일인 반성; 그런데 저 중에 좋으셨던 세 권 중 나머지 두 권도 궁금해요. 😅

nama 2021-12-07 17:07   좋아요 0 | URL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아플 때 먹는 카스테라(우리집 전통^^) 같고, 정희진의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는 각성제 같아서 구입했어요. 달거나 쓴 맛이지요. <시녀이야기>와 <증언들>도 좋은데 글쎄요... 두 번 읽을 것 같지는 않아요. 김도훈의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는 패션에 관심이 많은 남자분의 글이 인상적이었어요. 자기 색깔이 분명해서 좋았어요.
 

 

 

 

 

 

 

 

 

 

 

 

 

 

 

 

 

나이 들어서 괴로운 점도 있지만 나이 들어서 좋은 점도 적지 않다. 그중 가장 큰 것은, 더 이상 눈치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 뭐 그렇다고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비교적 자유롭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몸사릴 일이 줄어들었으니 좀 더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 다만 우리가 사는 사회를 위한 공적인 면을 우선으로 한다면.

 

 

뭐 이런 책은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이지만....그런 기분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다음 부분에서 속이 뻥 뚤렸다. 읽어보시라.

 

 

  나는 1987년부터 '해외일본인선교사 활동원조후원회(통칭 JOMAS)라는 NGO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외국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신부님과 수녀님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인데, 인간은 모두가 도둑이다, 라는 가치관을 신조로 출발했습니다.

  어떤 나라를 막론하고 대통령도, 장관도, 시장도, 군수도, 이장도, 의사도, 가톨릭 주교도, 복지 위원도, 교사도, 군인도, 경찰도, 가난한 사람들끼리도 도둑질을 합니다. 돈을 모금해 일본인 선교사에게 지원하는 것만으로는 안심할 수가 없었습니다. 즉 우리는 수녀님들마저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원금이 목적대로 사용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남미, 인도, 아프리카의 오지까지 날아갔습니다.

  그동안 JOMAS의 모금액과 사용액이 얼마나 되는지를 조사해보았습니다. 2007년 말을 기준으로 35년 간 무려 14억 7431만 8000엔을 모금했습니다. 다행히도 모금액의 99.9퍼센트가 정확히 사용되었습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사람을 믿지 않았기에 가능한 성과입니다. 일본인 선교사는 물론이고 극소수 외국인 신부와 수녀를 대상으로도 돈의 사용처를 엄격하게 감독한 결과였습니다.         -31쪽

 

 

'인간은 모두가 도둑이다.'

요즘 내가 읽은 문장 중 가장 솔직하고 직설적인 표현이어서 자꾸 읊조리게 된다는 말씀.

 

그렇다면 나도 '도둑'인가? 대학 신입생 때 써클활동(탈춤반)을 잠시 했었다. 5월 축제 때 우리 써클도 부스를 만들어서 빈대떡 등을 팔았는데 금전 담당으로 선배들이 나를 지목하는 바람에 때 아닌 돈주머니를 차는 영광(?)을 누렸다. 아마도 정직하고 고지식하게 보이는 내 얼굴 덕이 아니었을까 생각되는데 내가 심정적으로도 도둑일 수 없었던 때는 딱 그때까지가 아니었을까싶다.

그때였다면 저 위의 문장을 읽고 이렇게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지는 못했을테니까.

 

해외아동을 돕는 단체에 가입, 다년간 월 3만 원을 후원금으로 내서 연말정산 혜택을 받기도 했는데, 가장 궁금했던 점은 도대체 내가 내는 돈에서 얼마가 내가 후원하는 아동에게 투입이 되는지 였다. 이따금 후원 받는 아동이 보내주는 카드를 받거나,크리스마스 선물비 명목으로 추가 납부를 원한다는 우편물을 받아보는 것이 전부였다. 돈에 관한 건 감정적으로 처리할 일이 아니잖은가.

 

 

그래도 '인간은 모두가 도둑이다'라는 문장은 너무 속되고 아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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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을 재미있고 유익하게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예를 들면, 시아파와 수니파의 설명 부분은 내가 지금까지 접했던 다른 책들보다 훨씬 깔끔하고 이해하기 쉽다.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반납 기일을 어기는 초유의 경험을 했다. 소장하고픈 책이다.

 

 

 

 

 

 

 

 

 

 

 

 

 

 

<난생 처음~> 시리즈 보다는 압축된 느낌이 든다. 주제별로 책을 내셔도 될 듯합니다.

 

 

 

 

 

 

 

 

 

 

 

 

 

 

 

저자의 내공에 감탄하며 읽는 중이다. 번역물이 아닌 국내 학자의 책이라서 가독성이 좋고 그간의 불분명한 사실들에 대한 명쾌한 지적과 설명이 읽을 만하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다가 밑줄 긋고 싶어서 그냥 사버렸다.

 

 

 

 

 

 

 

 

 

 

 

 

 

 

 

 

서재 이웃분의 글을 읽자마자 구입해서 단숨에 읽었다. 지은이는 물론 신내림을 받은 분이지만 오랫동안 마음 고생을 하시고 자신의 길을 개척하신 분 같았다. 생각의 갈피갈피에서 인간과 세상에 대한 연민과 포용력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마음의 내공이 느껴지는 책이다. 특히 영혼의 나이 부분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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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1-10-03 05: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nama님의 다양한 관심분야가 보이는 듯 하네요.
양정무 교수의 책은 저도 일단 사고 봅니다.

nama 2021-10-03 09:17   좋아요 1 | URL
인도를 다녀오고나서 세상이 다채롭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양정무 교수의 책은 그냥 사야지 빌려 읽으면 나중에 후회해요. 지금 후회하고 있어요.
 
말끝이 당신이다 - 주변을 보듬고 세상과 연대하는 말하기의 힘
김진해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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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많이 읽으면 생기는 부작용. 무엇을 하려면 책 부터 찾아보고(책에서 지식을 구하고), 어떤 일에 근거가 필요할 때 읽은 책을 더듬어보고(책에서 방증을 구하고), 어떤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독서량과 독서의 질을 문득 떠올리고(책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책은 위안 뿐만아니라 보호막(사람 대신 책이 우위를 점하고)이 되는 현상이 벌어진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것 역시 한 권의 책이니 도무지 책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바로 이 책이다.

 

월요일마다 한겨레신문을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김진해교수의 칼럼을 모은 책이다. 손바닥만한 글이 구석에 낑겨있어 거들떠보지 않다가 어느날부터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이 칼럼 때문에 월요일이 기다려진다.

 

<국가 사전 폐기론>.... '사전 뒤에는 사전을 만든 사람이 몰래 숨어있다. 중립적 사전은 없다. 사전 편찬자의 권한은 막강하다. 어떤 단어를 선택하고 배제할지, 그 단어를 어떻게 정의할지를 결정한다. 그 권한을 국가가 독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위험하다. 국가 사전을 없애자고 하면, 사전 출판 현실을 모른다고 타박하거나 말글살이에 대혼란이 올 거라고 겁을 낸다.....시민의 힘으로 권력을 교체할 만큼 사회적 역량을 갖춘 한국 사회는 유독 사전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 국가란 본질적으로 명령의 집합체이자 일방적 힘을 행사하는 장치다. 국가 사전은 그 자체로 명령과 통제의 언어이다. '다른 해석'을 허락하지 않는다. 다양성은 사라졌고 사람들은 이제 '표준사전'만 검색한다.'(145쪽) 

 

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벌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구입한 게 벽돌만한 국어사전이었고, 미군부대 앞 헌책방에서 두말없이 구입한 것도 벽돌만한 영영사전이었고, 30~40년 동안 내 손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 역시 영어사전이었다. 사전은 내 일상에서 절대적인 존재였다. 감히 사전을 의심하는 건 불경죄에 해당한다고나 할까. 저 위의 글을 읽고 나는 어떤 아픔 같은 걸 느꼈다. 세상에 절대적인 건 없다, 라고 늘 말을 하면서도 사전 '따위'를 절대적인 존재로 생각해왔다는 게 통렬하게 지적당한 기분이 들었다.

 

지적질. 어린 학생들에게 지적질하는 게 나의 생업이었지만 때로 이 지적질은 마음에 들지 않는 윗사람을 향하기도 했다. 어떤 교장이 있었다. 자칭 시인이어서 종종 교내 전산망에 자작시를 올리기도 하고 황금찬 시인을 초청하여 문학의 밤도 개최하는 조금은 낭만적인 분이었는데 문제는 자작시를 읽는 우리들의 태도였다. 평소 교사들과 마찰이 있고, 폼 잡는 걸 좋아하는 분을 절대로 곱게 봐줄 수 없는 우리들은 이 분을 허황기 다분한 분으로 치부하며 자작시 올리는 것을 치기로 생각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바쁜 시간에 인기 없는 교장이 보내는 시따위가 눈에 들어오겠는가. 시마저 치기투성이라고 놀림을 받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교장이 보낸 전체메시지에서 딱 하나가 눈에 걸려들었다. '~읍니다'였다. 매번 눈에 띄는 '~읍니다'를 보다 못한 나는 짧고 단호하게 메시지를 보냈다. '~읍니다'가 '~습니다'로 바뀐 지 꽤 되었으며 맞춤법에 맞지 않는다고. 그것도 전교사가 볼 수 있도록 전체메시지로 보냈다. 단어 하나에 승리감을 맛본 나는 한참동안이나 학교생활이 즐거웠다. 교장의 권위 따위도 '~읍니다' 한 마디에 움츠러들었다고 생각하며 희희낙낙했다. 그런데 이 무슨 졸렬하고 옹졸한 태도였는가, 를 위의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맞춤법을 없애자 1, 2, 3> 제목의 글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나도 별 볼 일 없구나, 라고. 그간 내가 모시고 산 게 일개 맞춤법이었구나, 라고.

 

요즈음 나의 독서법. 책을 읽다가 ' 이 책은 기억에 남지 않겠는데.' 라는 생각이 들면 책을 내려놓는다. 읽을 책은 많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적절하게 선별해야 한다. 덕분에 책을 많이 집어들고 별 미련없이 내려놓는 일이 많아졌다. 책을 많이 읽었으나 읽은 책은 많지 않다는....

 

 

짬짬이 읽는 이 책은 기분전환용으로도 그만이다. 책으로 지적질 당하는 즐거움을 제대로 만끽한다. 여기서 '지적질'은 '사고의 전환'을 일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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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ny 2021-09-21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의 부작용이라니.. 새롭습니다.

nama 2021-09-21 13:44   좋아요 0 | URL
제아무리 명약이라도 부작용이 있듯, 신앙심이 지나치면 맹신이 되듯, 책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드네요. 사랑도 지나치면 병이 되듯....

서니데이 2021-10-08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nama 2021-10-08 19:0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ㅎ 이런 일도 있군요~~
 

 
















상상속에서든 현실에서든 역경을 만나면 자기 연민이나 절망에 빠지지 말고 그저 다시 시작하라.(마르쿠스)               -99쪽


  쇼펜하우어는 다른 동물인 고슴도치의 도움을 받아 인간관계를 설명한다. 추운 겨울날 한 무리의 고슴도치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고슴도치들은 얼어 죽지 않으려고 서로 가까이 붙어 서서 옆 친구의 체온으로 몸을 덥힌다. 하지만 너무 가까이 붙으면 가시에 찔리고 만다. 쇼펜하우어는 고슴도치들이 "두 악마 사이를 오가며" 붙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서로를 견딜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거리"를 발견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고슴도치의 딜레마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딜레마는 우리 인간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하지만 타인은 우리를 해칠 수 있다. 관계는 끊임없이 궤도 수정을 요하며, 매우 노련한 조종사조차 가끔씩 가시에 찔린다.    -162


  쇼펜하우어가 살던 시대에는 백과사전이 곧 인터넷이었고, 인터넷 못지않게 유혹적이었다. 책만 열면 바로 해답이 있는데 골머리를 썩일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쇼펜하우어는 대답한다. 왜냐하면 "스스로 생각해서 해답을 내놓는 것이 100배는 더 가치 있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사람들이 자기 생각과 함게 머무르지 않고 너무 자주 책 앞으로 달려간다고 말했다. "책은 자기 생각이 고갈되었을 때만 읽어야 한다."                 -179


  우리가 가장 귀중한 선물을 얻는 것은 그것을 찾아나설 때가 아니라 그것을 기다릴 때다. (시몬 베유)                                         -255


  얼룩 없이 깨끗한 것에만 쇼나곤이 기쁨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쇼나곤이 찬미하는 많은 물건은 오래되고 낡았으며, 심지어 더럽다. 쇼나곤은 정성 들여 관리한 연못보다 "버려져서 수초가 잔뜩 떠 있는 연못"을 더 좋아한다. "그런 연못에서는 표면에 반사된 달빛 그림자가 초록색 사이사이로 하얗게 빛난다.."

  이런 불완전함을 향한 사랑을 일본인들은 와비라고 부른다. 와비는 해진 기모노와 땅에 쓸쓸히 떨어진 벗꽃 이파리, 희곡 한두 개가 빠진 셰익스피어 '전집'이다. 찢어진 청바지나 낡은 가죽 가방을 구매한 적이 있다면 와비를 따른 적이 있는 것이다.    -342~343


  키케로는 궁수를 떠올려보라고 말한다. 궁수는 자기 능력을 허락하는 한 가장 훌륭하게 활시위를 당기지만 시위를 놓고 나면 화살의 궤적이 더 이상 자기 손에 달려 있지 않음을 알고 숨을 내쉰다. 스토아철학은 이렇게 말한다. "해야 할 일을 하라. 그리고 일어날 일이 일어나게 두라." 우리는 외부의 목표를 내면의 목표로 바꿈으로써 실망의 공격에 대비해 예방접종을 놓을 수 있다. 테니스 경기에서 이기려 하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경기를 펼칠 것. 자기 소설이 출간되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대신 자신이 쓸 수 있는 가장 훌륭하고 진실한 소설을 쓸 것. 그 이상도 이하도 바라지 말 것.                        -408~409


  그때 롭은 스토아철학의 "위에서 내려다보기" 개념을 설명하고 있었다. 당신이 지구 위 높은 곳을 맴돌며 당신의 작은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별것 아닌 교통체증과 더러운 그릇과 옹졸한 말다툼과 잃어버린 노트들. 전부 무관한 것들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다.                 -424


 나의 자기기만 능력은 수염 몇 가닥이 처음으로 하얗게 셌을 때 생긴 것이 아니다.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가 말했듯이 우리가 노화 탓으로 돌리는 많은 결점은 사실 인성의 문제다. 노화는 새로운 성격 특성을 만들어낸다기보다는 기존의 특성을 더욱 증폭한다. 우리는 나이 들수록 더 강렬한 형태의 자기 자신이 된다. 이러한 변화는 보통 긍정적이지 않다. 돈 쓰는 데 신중한 청년은 늘 투덜대는 늙은 수전노가 된다. 감탄할 만큼 의지가 강한 젊은 여성은 짜증날 만큼 고집 센 할머니가 된다. 이런 성격의 강화는 늘 부정적인 쪽으로만 흘러가야 하는 걸까? 나이 들면서 그 궤도의 방향을 꺾을 수는 없는 걸까? 더 나은 모습의 나이 든 애가 될 수는 없을까?                      -439


  다른 국가에서 보내는 이틀은 익숙한 환경에서 보내는 30일만큼의 가치가 있다.(유진 이오네스코)                                   -467


  보부아르는 노년에 수동성이 아닌 열정을 불러일으켜야 하며 열정은 반드시 외부로 표출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소일거리가 아닌 프로젝트를 가져라. 프로젝트는 의미를 제공해준다. 보부아르는 이렇게 말한다. "노년이 이전 삶에 대한 터무니없는 패러디가 아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목표를 추구하는 것, 즉 개인과 집단에, 대의명분과 사회적·정치적·지적·창의적 작업에 헌신하는 것이다."                      -468


  여러 다양한 철학은 각기 다른 시기에 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소로의 저항 정신은 10대의 마음을 끈다. 니체의 불꽃 같은 강렬한 아포리즘은 젊은이들을 끌어들인다. 자유를 강조하는 실존주의는 중년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스토아철학은 나이든 사람을 위한 철학이다. 몇 번의 전투를 이겨내고, 패배도 몇번 해보고, 상실도 경험해본 이들을 위한 철학이다. 크고 작은 인생 역경의 시기를 위한 철학이다. 고통과 질병, 거절, 짜증나는 상사, 건조한 피부, 교통체증, 카드빚, 공개적 망신, 지연되는 열차, 죽음 같은 것들. 스토아학파를 낳은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철학에서 무엇을 배웠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모든 행운에 준비되는 일"                                                           -397~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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