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무심히 눈길만 주던 뱀딸기. 이름이 주는 어감 때문에 혹여 뱀이라도 만날까봐 거리를 두고 살피기만 했었다. 산딸기처럼 맛볼 생각도 못했다. 재미삼아 친구들 단톡방에 위의 사진을 올렸더니 놀랍게도 뱀딸기를 어렸을 때 먹어봤다는 친구가 있었다. 먹는 거라고? 그때부터 탐구에 들어갔다. 검색 결과, 독이 없어서 식용이 가능하며, 이파리, 줄기, 뿌리 모두 마시는 차나 한약재로 쓰인다고 한다. 잼도 만들 수 있단다. 



무심히 지나쳤던 야생뽕나무에 작고 까만 오디가 달렸다. 손톱보다 작지만 맛은 향긋하고 달콤하다. 가냘퍼서 살짝만 건드려도 툭 떨어진다. 머리와 몸을 써서 한줌 모아보는데 하다보니 은근 재미있다.



뱀딸기와 오디에 분량만큼의 설탕을 넣고 끓이면 완성되는 잼. 주의할 점이라면, 오디는 다른 과일에 비해 오래 끓이면 안된다는 것. 끓일 때 수분이 많다고 계속 가열하면 부드러운 잼이 아니라 단단한 잼 고체가 될 수 있다.



완성된 잼. 향긋한 향이 일품, 맛도 일품. 약간의 점성이 있는 게 특이하다.



내 손으로 만드는 기쁨을 잠시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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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6-06-04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는 걸 좋아해서인지 저는 어릴때 뱀딸기 보면 서슴없이 따먹었는데요? ^^
오디잼 저도 만들어 본적 있는데 열매에 붙은 초록색 열매꼭지 따는게 귀찮더라고요. 딸기잼에 비해 좀 시큼했고요. 이제 빵만 있으면 되겠네요.

nama 2026-06-05 10:05   좋아요 0 | URL
뱀딸기를 따먹은 용감한 어린이였군요.^^
오디의 초록색 꼭지는 굳이 딸 필요가 없어요. 그냥 넣고 끓이면 다 잼으로 돼요.
저는 딸기보다 오디가 귀하다싶어 더 맛있게 느껴져요.

jeje 2026-06-05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는 산딸기가 뱀딸기 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줄 알았어요! 아아 다른거였다니 ㅎㅎ뱀딸기 맛과 식감이 궁금합니다 ㅎㅎ

nama 2026-06-05 20:28   좋아요 0 | URL
잘 익은 산딸기는 새콤달콤한 맛이고요, 뱀딸기는 아무 맛도 아닌 맛입니다. 묘한 맛이지요.
 
우리가 사랑한 책 - 함께 읽고 말할 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
김혜리 지음, 신형철 외 인터뷰이 / 부기우기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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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책.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에 좀 더 귀 기울이고 밀착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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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표지디자인에는 문제가 있지만, 위염으로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고 있는 와중에 그래도 정신줄 놓지 않게끔 흥미를 유발하는 이 책은 마음에 든다. 동물 특히 새에 대해서 손톱만한 관심만 있어도 이런 책이 눈에 들어오다니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전반부까지 읽었는데 위염의 통증을 잠시 잊고 싶어서 흥미롭게 읽은 부분을 적어 놓을까 한다.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p.105

도둑갈매기라는 이름에서 '도둑'은 이들이 다른 동물의 먹이를 종종 훔쳐 먹는 습성에서 따왔다. 주로 갈매가Gull나 제비갈매기Tem 같은 새들을 쫓아서 부리에 물고 있는 물고기를 빼앗거나 토하게 만들어 먹이를 훔쳐 먹는다. 이런 행동을 절취기생Kleptoparasitism이라고 부르는데, 거미의 먹이를 훔쳐 먹는 파리나, 치타의 사냥감을 빼앗는 하이에나도 절취기생을 하는 대표적 동물이다. 특히 갈색도둑갈매기는 코끼리해표의 어린 새끼에게 다가가 이들을 공격해 모유를 토하게 한 뒤, 그 토사물을 먹기도 한다. 이런 절취기생은 인지 능력이 높은 동물들에게서 많이 관찰된다. 스스로 먹이를 찾는 것이 아니라 다른 동물의 먹이를 빼앗기 위해선 상황을 파악하고 인지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 대목에서 보이스피싱같은 사기행각범들이 떠오른다. '인지 능력이 높은' 인간들???


p.137

누군가 죽어야 누군가 산다. 이게 북극에서만 유효한 명제는 아닐 것이다. 하나의 개체 입장에서 죽음과 삶은 뚜렷한 경계로 나뉘어 있지만, 생태계의 물질 순환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리 대단한 차이가 아니다. 긴꼬리도둑갈매기 새끼의 몸에 잠시 머물러 있던 물질이 북극여우에게 옮겨간 것뿐이니까.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흙으로 내려와 북극버들의 잎에 머물렀다가 사향소의 몸으로 흡수되고 다시 회색늑대에게 건네질 것이다.


인간도 그렇지 않나? 큰 시선으로 보면 인간도 비슷하다.

 

p.164

지의류는 분류상으로는 진균 곰팡이Fungi인데, 곰팡이 안에 조류Algae가 같이 살고 있다. 균사층 아래 조류를 품고 있는 형태다. 그 둘의 관계는 꽤 독특하다. 조류가 광합성을 해서 태양에너지를 고정시키면 곰팡이가 마치 식물처럼 그 결과물을 가져다 쓴다. 곰팡이 입장에서는 조류를 가둬두고 경작 내지는 재배하는 것. 곰팡이는 조류를 이용해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조류 입장에서는 곰팡이를 집처럼 이용하고 골격을 가져다 쓰는 셈이다. 조류가 곰팡이를 안식처럴 이용하는 것이다. 분리해서 배양을 하면 따로 살 수도 있지만, 함께 있을 때 서로에게 이득을 주는 관계. 곰팡이와 조류는 그렇게 공생한다.


참고로 '우리나라에도 대략 300종에 이르는 많은 지의류'가 있다고 한다. 처음 안 사실이다. 지난 겨울 나가사키에 갔을 때 우연히 눈에 들어온 이끼가 알고보니 지의류였고, 지의류를 알고나니 이제는 이런 글도 눈에 쏙쏙 들어온다. 체험학습의 중요성. 


p.210

수컷이 부르는 노래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다. 노래를 자주 많이 부른다는 것은 먹이를 잘 찾는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며 다른 개체보다 먹이 찾는 효율이 높아서 그만큼 노래를 부를 일도 더 많다는 뜻이다. 흰멧새 연구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노래를 많이 하는 수컷들은 실제로 새끼들에게 먹이를 많이 주었고 결과적으로 새끼들을 더 잘 길렀다. 그래서 수컷의 노래는 그 자체로 육아를 얼마나 잘하는 수컷인지를 나타낸다. 암컷은 수컷의 울음소리를 듣고서 '노래 부르는 실력이 꽤 좋은 걸! 먹이도 잘 잡고 새끼들도 잘 키우겠어'하며, 짝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새들은 왜 울어댈까, 혹은 노래할까...늘 궁금했는데 이런 해석도 있다니...이런 사실들, 쓸 데는 없지만 알고나면 재밌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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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로 오며가며 읽으며 혼자서 키득거리는 맛이란... 나도 충청도에서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텐데..한탄하며 읽었다. 스무살에 고향을 떠난 엄마는 평생 황해도 말을 잊지 않았다. 나는 그나마 몇마디 줏어들은 표현도 다 잊어버리고 오늘도 표준어에 어긋날까 자기검증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놈의 띄어쓰기는 또 어떻고. 어렸을 땐 동네에 함경도에서 월남한 분이 있었는데 함경도 특유의 억양과 표현이 지금도 귀에 선하다. '말이란 무엇인가?' 이런 의문을 어린 마음에 심어주지 않았나 싶다. 저 책처럼 '함경의 말들'이란 책이 나올 가능성이 있을까?

















대학 때부터 귀가 아프도록 들었던 로렌스의 저 책을 드디어 읽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1권은 도저히 책을 바르게 펼쳐 읽을 수가 없었다. 두 쪽으로 떨어져나간 책을 스태플러로 고정시켜 놓았는데 책을 읽으라고 둔 건지 구색 맞추려고 둔 건지...혼자 씩씩대다가 아예 책을 구입했다. 다 읽으면 도서관에 기증할까 궁리도 해봤는데 친구에게 주기로 했다. 나이가 드니 소설도 잘 읽힌다. 한 인물의 인생 종점까지 전개되는 통 큰 스케일이 읽을 만하다. 괜히 로렌스가 아니었구나, 하는 깨달음.

















도시 도서관과 시골 도서관의 차이. 도시 나름이지만, 인구가 조밀한 지역의 도서관은 사람들이 책을 어찌나 읽어대는지 낡은 책도 많고(대부분이 낡았다.) 마음먹은 대로 대출하기도 쉽지 않다. 반면 인구소멸 지역의 시골 도서관은 출간된 지 몇년 된 책을 새책으로 만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아무도 읽지 않은 새책 느낌의 헌 책을 접하면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책을 읽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읽지 않는 삶은 어떤 것일까, 종종 자문자답에 빠진다.

도서관 신간코너에 있던 저 책. 도시 도서관이었다면 구경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시골 도서관에선 찾는 이가 드물어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면 나라도 읽어주지 하는 심정.
















p.91

하지만 근대를 고대와 대응시켜 벤야민 식으로 읽으면, 우리가 이제까지 역사라고 생각해왔던 문명사는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로 되돌아가려고 한다는 것, 퇴행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벤야민에 따르면 사실 우리에겐 이제까지 한번도 역사라는 것이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정신분석학으로 보면 우리가 쫓아내려고 했던 것들이 반드시 되돌아오는 것처럼 (The Return of the Repressed) 우리는 문명사를 발전사가 아니라 억압하고 쫓아내려고 했던 것들의 귀환이라는 관점에서 읽어내야 합니다.


시골 도서관에서 빌린 아주 깨끗한 책. 느닷없이 벤야민을 읽게 된 건? 바로 다음 책 때문.
















잘 영근 고구마처럼 꼭지마다 꼬리를 물고 책이 이어진다. 행복한 발견. 일본 전문가들이 은근 많다.


p.90

"야만의 흔적이 없는 문화의 기록이란 결코 없다."  - 발터 벤야민


p.145

원래 인간은 자신의 피해자성과 타인의 가해자성에 민감하게 반응하고는 합니다. 그러한 경향은 개인이 아닌 국가나 민족과 같은 공동체의 경우는 더욱 강해지는데요. 만약 자신의 피해자성만 기억하게 되면, 우리는 폭력과 복수를 정당화할 수도 있으며 나아가 스스로를 영원한 타자로 전락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이 인간, 즉 피해자이기도 하면서 가해자일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마사오카 시키(1867~1902) 하이쿠 혁신과 단카 활성화에 큰 공을 세운 사람. 나쓰메 소세키와 동갑이자 친구. 산문에는 나쓰메 소세키, 운문에는 마사오카 시키. 


p.161

나는 지금까지 선종(禪宗)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란 것을 오해하고 있었다. 깨달음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태연히 죽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던 것은 틀린 것으로, 깨달음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태연히 살아가는 것이었다.


아픈 사람, 죽어가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깨달음의 경지일까...


**마사오카 시키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야구용어, 일테면 1루수, 우익수, 포수와 같은 말들을 만들어 낸 인물이라고 한다.
















양양 출신의 소설가 이경자의 책. 양양을 소개하는 책인데...어렵다. 양양 출신만이 쓸 수 있는 책이고 양양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책 같다. 책을 읽되 그 땅을 하나하나 밟아봐야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터. 좀 아는 척한다면, 단양면옥은 물막국수나 물냉면보다 비빔막국수나 비빔냉면이 훨씬 맛있다. 얄팍하지 않다. 김치는 순수한 국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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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6-04-26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청도 출신이지만 충청도 억양이 거의 없으셨던 아버지에 비해, 충청도 억양이 그래도 살아있던 할머니와 한집에서 자란 저는 지금도 어디서 충청도 사투리가 들리면 저도 모르게 뒤돌아보며 눈물이 핑 돌기도 합니다. 할머니도 아버지도 다 돌아가시고 목소리도 들을 수가 없으니까요.

태연히 살아가는 것...한번도 태연히 살아가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호들갑스럽게, 법석을 떨며 살아왔고 지금도 그러고 있는 듯. 생각해볼 말이네요.

nama 2026-04-26 10:24   좋아요 0 | URL
35세에 사망한 마사오카 시키는 짧은 인생의 후반기를 병상에서 보냈다고 해요. 태연히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온 말이라 단순하게 들리지 않아요.

할머니와의 추억이 있으시군요. 저는 할머니, 외할머니를 한번도 뵌 적이 없어요. 두 분 다 피난나오지 못하셨지요. 어떻게 살다가 돌아가셨는지 궁금하기도 해요.
 

*3월 19일자 <한겨레 신문>에 실뱅 테송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두 마디로 압축한 그의 가치관을 옮기면,


"모험은 꿈의 연장이고, 글쓰기는 모험의 지속입니다.'

"더는 움직일 수 없을 때 무엇으로 제 갈망을 대신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묻는다면... 그 상황이 오기 전 죽음을 택할 것 같습니다."


며칠 동안 이 문장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종종 떠오르는 질문이다.

' 나 어느 변방에/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고요히 고요히 잠는다 해도...'(모란동백) 조용남의 노래가 떠오르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빌려와 허겁지겁 읽는데 어떤 기시감이 스멀스멀, 이미 읽은 책이었다. 이미 읽은 내용을 까마득히 잊었는데 다시 읽은들 달라질까. 회갑을 넘기니 책도 회갑 치레를 한다. 읽다보면 읽은 책을 무의식적으로 다시 읽고 있다. 재독의 주기도 점점 짧아진다. 어쩔거나...


p.28 ' 다른 곳은 내일보다 더 아름다운 단어이다.' -폴 모랑(1888~1976) 프랑스 작가이자 외교관'



** 재독을 방지하기 위해 한 줄이라도 기록해야 싶은데 글쎄 제대로 지켜질라나...
















겉표지가 마음에 안들어서 읽을 생각이 없었는데 고영란의 글을 보고 ... 읽기를 잘 했다. 공들여 지은 집 같다고나 할까.
















역시 겉표지로 판단해선 안 되는 책이다. 일본 문학에 한 발 가까이 들어가게 해주는 고마운 책.


<꿈꾸는 도서관>에서 꼭 하나만을 건진다면, 바로 이 문장.


'이때껏 갖가지 일을 해봤지만

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네.'  

- 아와시마 진가쿠(1823~1889) 일본의 유명한 풍류객


죽기 전에 쓰는 시, 절명시라고 한다나...


*** 홍콩에서 운이 좋으면 슈퍼마켓 같은 곳에서 영화배우 양조위와 마주칠 수도 있단다. 그래서 가끔씩 홍콩에 가보고 싶다고 노래부르는 사람이 있다. 누구? 



 












p.101

허우샤오시엔과 왕가위 모두가 존경해 마지않는 오스 야스지로 감독의 묘비명에 새겨진 단 하나의 글자, '무(無)'. 세상의 시간을 정지시키고 우주의 운동을 잠시나마 멈추게 하는 그 경지를, 우리는 양조위의 얼굴에서 보았다.


양조위에 대한 책은 무조건 소장.


****대학 때 읽다가 포기한 책을 읽어보니... 그땐 참 어리고 모자라고 어리석었구나 싶다. 
















p. 336

세계는 이제 안정된 세계야. 인간들은 행복해.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고 있단 말일세. 얻을 수 없는 것은 원하지도 않아. 그들은 잘 살고 있어. 생활이 안정되고 질병도 없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행복하게도 격정이나 노령이란 것을 모르고 살지. 모친이나 부친 때문에 괴로워하지도 않아. 아내라든가 자식이라든가 연인과 같은 격렬한 감정의 대상도 없어.


p.368

"하지만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그래."

"그렇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야만인은 반항적으로 말했다.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

"그렇다면 말할 것도 없이 나이를 먹어 추해지는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끊임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도 요구하겠지?"

긴 침묵이 흘렀다.

"저는 그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야만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소설에서 만나는 셰익스피어의 문장들도 반갑다. 셰익스피어에게서 영감과 힌트를 얻어 작품의 세밀한 부분을 구현했는지, 아니면 자신의 글을 보증하거나 보충하는 자료로써 셰익스피어를 인용한 것인지, 읽다보면 그런 궁금증이 생긴다. 셰익스피어는 영원한 아날로그의 세계이자 작가들의 보물 창고.


***** 가까이 보아야 예쁘고, 이름을 알아야 가까워진다.

제미나이가 신세계를 열어주고 있다. 까치, 까마귀, 비둘기, 참새 정도만 구별하던 새 이름을 제미나이를 통해 새록새록 배우고 있다. 사진을 찍어서 "뭐야?" 하고 무례하게 물어도 친절하게 가르쳐주니 신통방통하다. 앞으로는 예의를 차려서 물어봐야 할 것 같다. 배우는 입장이므로.

그래서 알아낸 새는, 쇄백로, 중대백로, 왜가리, 흰뺨검둥오리 등. 청둥오리와 어울리는 흰뺨검둥오리를 처음에는 청둥오리 암컷으로 오인하여 청둥오리를 바람둥이로 생각하기도 하고, 흰뺨검둥오리 한 쌍을 보고 동성애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청둥오리는 암수의 외양이 판이하게 다르나 흰뺨검둥오리는 암수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왜가리. 이름을 알고나서 급관심이 생겼다. 일거수 일투족을 살피는 중이다. 보기만해도 뿌듯해지는 우아한 새. 특정한 장소와 특정한 시간대에 나타나 먹이사냥에 나서니, 매일 왜가리의 출근을 기다린다. 근무지 이탈도 없고, 외부인 출입도 철저히 단속하고, 한눈 팔지 않고 먹이 사냥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존의 엄중함을 상기한다. 



까만 부리와 까만 다리, 까만 발톱. 머리 뒤에 있는 두 가닥 깃털. 흰색 몸통. 쇄백로라고 한다. 볼수록 아름답지 아니한가요?

















새를 기다리는 사람, 내 마음이 그 마음. 제목에 끌려서 대출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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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6-03-29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관심사가 이렇게 다방면이었다는 것은 일반적인 경우일까요, 특수한 경우일까요?

nama 2026-03-29 10:56   좋아요 0 | URL
글쎄요. 세상에는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볼 게 많고, 갈 데 많고, 할 일도 많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