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 보급판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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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40여 년 만에 이 책을 완독했다. 물론 끝까지 글자 하나 놓치지 않고 읽었다는 것이지 그 내용을 전부 이해했다고는 말할 수 없는 차원의 완독이다. 대학 시절 수업시간에 김남조 시인이 읽어주신 한 문장이 가슴에 와닿아 인상 깊었는데 바로 이 문장이다. 책을 펼치면 바로 나오는 헌사.

 

 

앤 드루얀을 위하여

 

공간의 광막함과 시간의 영겁에서

행성 하나와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하나의 기쁨이었다.

 

감성에 젖어 읽어주신 이 한 문장 때문에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손에 집어들었으나....두어 쪽 읽고는 어느 후배에게 줘버리고 말았다. 고등학교 때 지독히도 싫어했던 물리와 지구과학. 문이과를 가리지 않고 모든 과학과목과 사회과목의 시험을 치러야 했던 시절. 본고사 국영수에 집중하다보니 자신없는 과목은 과감히 손을 놓고 찍기로 작정했는데 그 과목이 물리였다.12~13문제 가량 출제되는 물리는 붙잡고 있어야 시간낭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으로는 그때 치른 예비고사에서 내가 찍은 답은 정답을 교묘히 피해갔고 문제에 문제가 있어서 모두 정답 처리했던 한 문제만 맞은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배짱 한번 제대로 부려본 사건이라면 사건이었다. 책 한 권 제대로 읽지도 못한 알맹이 없는 시절이었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상상의 날개를 펼 기운조차 없던 삭막한 시절이었다.

 

이런 나에 비해 딸아이는 고등학교 때 이 책을 아주 재밌게 읽었다고 한다. 놀라웠다. 대학때도 못 읽었던 책을 고등학생이 읽다니... 그러니 더 이상 미뤄놓아선 안 되겠다 싶었다. 마침 친구가 이 책을 선물로 주었다. 오랫동안 미뤄둔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보니 끝까지 왔다. 별 하나를 발견한 심정이 되었다고나 할까.

 

목성, 화성, 금성...이런 걸 내 입으로 말하는 행위는 주제넘는 짓이겠다. 읽기에도 벅찼으니까. 그나마 좀 이해가능하고 관심이 갔던 부분은 뇌의 구조에 관한 것이다. '현재 뇌의 구조에서 우리는 진화의 단계들을 미루어 알아볼 수 있다.'(549쪽) 이 책에서 인용한 폴 맥린에 의하면 뇌의 고차원적인 기능들이 크게 세 단계에 걸쳐 진화했다고 한다.(550쪽)

 

1. R - 영역: 인간이 아직 파충류였던 시기에 발달, 인간의 공격적 행위, 정형화된 의식 행위, 자기 세력권의 방어, 계층적 위계 질서의 유지 등을 관장.

2. 변연계: 포유류 시기에 생긴 뇌. 인간의 기분, 감정, 걱정 등의 정서적 반응과 행동 그리고 자녀 보호의 본능을 지시하고 제어.

3. 대뇌 피질: 수백만 년 전 인간이 영장류였던 시기에 형성. 아이디어의 창출과 영감의 발현. 읽기와 쓰기, 수학적 추론과 작곡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의식적 삶을 가능케 하는 부위. 문명은 대뇌 피질의 산물.

 

재밌는 것은, 우리 각자의 두개골 내부 깊숙한 곳에는 아직도 악어의 두뇌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강대국들은 살상용 핵무기를 자체 조달하고 비축하는 데에 대한 자기 나름의 정당화 논리를 구축해 놓고 있으며, 그 논리의 당위성을 만방에 열심히 홍보하고 있다. 항시 가상 적국의 문화적 하자를 지적하고 그들이 저지를지 모르는 비이성적 행태를 상정하여 사람이 아직 갖고 있는 파충류의 뇌를 자극하는 데 유효적절하게 활용함으로써, 자국민을 파충류적 행동 기제로 몰고 가고는 한다.    -650쪽

 

오로지 점수에만 매달리던 고등학교 시절은 말하자면 '파충류적 행동 기제'인 R - 영역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얘기가 되는 건가?

 

 

칼 세이건의 사유는 깊고도 넓다. 그중 한 부분.

 

사람은 대지의 자녀인 동시에 하늘의 자녀이기도 하다. 지구에서 살아오는 동안 인류는 못된 진화적 습성을 많이 길러 왔다. 호전성, 그릇된 관습, 지도자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 이방인에 대한 이유없는 적개심같이 오랫동안 유전돼 온 못된 요소들은 인류의 생존 자체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남을 측은히 여길 줄 아는 좋은 천성도 갖고 있다. 우리는 자식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자식의 자식도 아낀다. 역사에서 무언가를 배우려 노력하고 지적인 것을 향한 물같은 열정을 가지고 있다. 이것들은 인류에게 영원한 생존과 번성을 확실히 약속할 도구요 방편이 될 것이다. 못된 습성과 좋은 천성 중에서 어느 쪽이 우리 마음을 지배할 지는 확실하지 않다. 특히 미래를 보는 우리의 눈이 지구에 고착돼 있다거나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마음이 지구의 어느 한 지역에만 묶여 있다면 결국 저 못된 습성이 사랑의 마음과 이성의 예지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광막한 코스모스의 바다 속에 감춰진 새로운 세상과 가능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외계 문명의 존재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우리는 아직 갖고 있지 않다. 우리와 같은 문명의 운명은 결국 화해할 줄 모르는 증오심 때문에 자기 파괴의 몰락으로 치닫게 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된다. 하지만 우주에서 내려다본 지구에는 국경선이 없다. 우주에서 본 지구는 쥐면 부서질 것만 같은 창백한 푸른 점일 뿐이다. 지구는 극단적 형태의 민족 우월주의, 우스꽝스러운 종교적 광신, 맹목적이고 유치한 국가주의 등이 발붙일 곳이 결코 아니다. 별들의 요새와 보루에서 내려다본 지구는 눈에 띄지도 않을 정도로 작디 작은 푸른 반점일 뿐이다. 이렇게 여행은 시야를 활짝 열어 준다.      -632쪽

 

'창백한 푸른 점'인 지구 위에서 복닥거리며 사는 모습을 우주적인 시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지구상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과학에 무지한 내가 이 책에 대해 뭔가를 쓴다는 건, 결국 인용으로 시작해서 인용으로 끝날 수 밖에 없다. 급하게 읽은 거 하나라도 기억에 남기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고. 그중 또 하나.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은 코스모스가 설명될 수 있는 실체이고 자연에는 수학적인 근본 얼개가 있다고 가르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속에 과학을 하려는 동기를 크게 불어넣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입지를 불안하게 할 소지의 사실들이 유포되는 것을 억압하고, 과학을 소수 엘리트만의 전유물로 제한하고, 실험에 대한 혐오감을 심어 주고, 신비주의를 용인하고, 노예 사회가 안고 있던 문제들을 애써 외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인간의 위대한 모험심에 큰 좌절감을 안겨 주고, 과학의 발전에도 어쩔 수 없는 퇴보를 불러왔다.    -374쪽

 

여기서 피타고라스와 플라톤 대신에 현대의 학자와 과학자나 정치가들로 바꾸고 과학을 학문이나 정치 따위로 바꾸면 어떨까. 노예 사회는 비정규직 사회 같은 어휘로 바꾸고. 그들을 포함한 우리들 대부분은 비겁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다.

 

 

죽기 바로 전에 썼다는 뉴턴의 글이다.

"세상이 나를 어떤 눈으로 볼지 모른다. 그러나 내 눈에 비친 나는 어린아이와 같다. 나는 바닷가 모래밭에서 더 매끈하게 닦인 조약돌이나 더 예쁜 조개껍데기를 찾아 주우며 놀지만 거대한 진리의 바다는 온전한 미지로 내 앞에 그대로 펼쳐져 있다."  -161쪽

 

너무나 천재적이어서 어려워했던 과학자들의 이런 글을 읽으며 과학을 접했더라면 과학이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지는 않았을 터인데...하는 아쉬움.

 

 

완독했으니 책장에 떡하니 꽂아도 되겠다, 이제.

 

* 내가 읽은 책은 2020년 3월 15일에 출간된 특별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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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20-05-30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완독 축하드려요~~

nama 2020-06-01 20:2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책 읽고 축하받는 것도 즐겁네요.^^

sabina 2020-08-08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최근에서야 코스모스를 읽었답니다.
고등학교 때 나마님 이상 물리를 싫어 했지만, 천문학에 대한 관심은 높아
지능이 따라준다면 천문학자도 좋겠단 생각을 한 적도 있었네요.
물론 따라주지 못하는 건 일찌감치 알았지만 말입니다.
과학시간 차라리 이런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면 어땠을까요?ㅎㅎ

nama 2020-08-13 09:36   좋아요 0 | URL
고등학교 때는 입시 때문에 생각하는 행위도 옆으로 밀어두었던 것 같아요.
교과 수업시간에 책을 읽으라고 하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대들었을지도 몰라요.
돌이켜보면 참으로 어리석고 안타까운 시기였어요.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못했으니......지금이나마 열심히 읽는 수밖에요.^^
 
위대한 작가가 되는 법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16
찰스 부코스키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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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들었던 찰스 부코스키의 글을 보니, 왜 미국의 서점에서 그의 책이 가장 많이 도난당하는지 알 듯하다. 그는 고상한 척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숨어 있는 야성의 목마름을 만천하에 당당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나의 저속함과 비열함에 침은커녕 노래를 불러주는 사람, 찰스 부코스키.

트럼프 시대에 딱 어울리는 시 한 수 옮겨보면,

 

 

부패

 

요즘 들어

부쩍 드는 생각,

이놈의 나라가

사오십 년은

퇴보했구나

사회적 진보도

사람이

사람에게 갖는

호감도

모두 멀리멀리

쓸려 갔구나

그리고 진부하고

케케묵은

편협함이

자리 잡았구나.

 

우리는

어느 때보다

이기적인 권력욕에,

약하고

늙고

가난하고

무기력한

사람들을 향한

멸시에 젖어 있다.

 

우리는

결핍을 전쟁으로

구원을 노예제로

대체하고 있다.

 

우리는

성취한 것을

낭비하고

빠르게

쪼그라들었다.

 

우리는 폭탄을 안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두려움

우리의 지옥살이

그리고 우리의

수치.

 

이제

우리는

크나큰 슬픔의

손아귀 안에서

숨통이

막혀

울음조차

터뜨릴 수 없다.

 

 

 

 

트럼프도 고상한 척하지 않기로는 한 인물하는 인간인데 왜 그의 목소리엔 울림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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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속살 1 - 경제학 편 경제의 속살 1
이완배 지음 / 민중의소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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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선물로 준 책인데 아무래도 4권까지 독파할 것 같다. 연대와 협동을 강조하는 인간적인 경제학은 아무리 들어도 지당한 말씀이고! 가장 인상적인 문장을 기록하는 것으로, 우선.

 

 

-112쪽

일생을 단순한 직업에 바치고 작업 결과도 똑같은 사람들은 이해력과 창의력을 발휘하는 습관을 잃는다. 그런 사람들은 정신적 활력을 잃어 자연스럽게 어리석고 무지해진다. 정부가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가 그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개량되고 문명화한 사회에서 노동빈민, 즉 국민의 대부분이 필연적으로 이런 상황에 빠지게 된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 적었던 말이라고 한다. '일생을 단순한 직업에 바치고 작업 결과도 똑같은 사람들은 이해력과 창의력을 발휘하는 습관을 잃는다. 그런 사람들은 정신적 활력을 잃어 자연스럽게 어리석고 무지해진다.' 이 부분을 읽고 인간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 것 같다.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의 인물들을 봐도 그렇다. 열심히 주어진 일에 몰두하고 거기에서 어떤 만족감을 얻지만 만족감을 얻는 대신 단순해진다. 단순함은 어리석음과 무지함으로 연결된다. 꼭 그 일이 몸을 쓰는 단순노동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노동빈민에게만 해당되는 것도 아니다. 머리를 쓰지 않는 일, 상상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일, 다양한 대인 관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일, 남을 배려할 필요가 없는 일..... 정부의 할 일이 많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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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는, 교만해져서 설치고 다니는 인간에게 내리는 벌'이라는 친구 엄마의 말씀을 듣고 찔끔했다.  나 역시 '설치고 다니는 인간'이라서 내심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터였다. 날뛰는 마음을 어쩔 수 없이 책으로나 달래는 수밖에.

 

 

 

 

 

 

 

 

 

 

 

 

 

 

 

 

말랑말랑한 감상적인 문장이 눈 앞에서 스윽스윽 지나간다. 요즈음은 매끄러운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얘전같으면 한숨을 섞어가며 숨 죽이며 읽었을 문장들이다. 세월과 더불어 두텁게 겹을 두른 나의 한숨이 아무래도 방어벽을 쌓는 것 같다. 여행 대신 책이라고, 어쨌거나 떠나지 못하는 아쉬움을 책으로 달래며 읽는다.

 

 

-200쪽

시간을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과 여행을 떠나는 일이라는 것.

 

200쪽까지 읽어서야 마음에 드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마음으로 읽는 좋은 문장들을 수없이 지나쳐왔을 텐데 이제서야 서서히 마음이 열리는 건 뭐람. 책보다는 내게 문제가 있다고 본다.

 

-217

그래, 먹어 보자. 그래야 뭐라도 쓸거리가 생기니까. 애벌레 하나를 집어 입 속에 넣었다. 혀 위에 놓인 애벌레가 꿈틀거렸다. 차마 씹지는 못하고 꿀꺽 삼켰다. 근데 목구멍 안쪽에 깊숙이 걸린 애벌레는 한번에 넘어가지 않았다. 여전히 살아서 꿈틀대고 있었다. 여러분 여행작가는 이런 직업입니다. 한 줄 문장을 쓰기 위해 애벌레도 먹어야 한답니다.

 

tv 여행관련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낯선 이상한 음식 앞에서 움찔 망설이는 장면을 보면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저런 여행 시켜주면 못 먹을 것도 없겠다.' 라고. 애벌레 먹고 여행작가된다면 그것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 장담 못하지만.

 

-253

여행은 생을 잊는 그리고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

 

솔비투르 암불란도 Solvitur ambulando. 걸으면 해결된다. 이 말을 선언한 디오게네스 역시 여행자의 삶을 살았음에 틀림없고 끊임없이 걸어다녔을 것이다. 여행은 걷고 또 걷고 지치도록 걷는 것, 생을 잊고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저 걷는 것이다.

 

-265

운명은 언제나 우리를 괴롭히는 것 같습니다. 괴롭히는 것, 그게 운명의 운명 같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어두운 곳으로 자진해서 걸어 들어갑니다. 무릎을 웅크리고 혼자 있습니다. 어둠을 겪어 보지 않고서는 빛을 알 수 없는 법입니다. 마음속에 어둠이 없는 자는 세상을 건널 수 없습니다. 여행은 내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입니다. 사랑은 내가 가진 어둠을 당신과 나누는 일이구요. 이만큼 살아 보니 알겠습니다. 친구 따윈 필요 없더군요. 책과 음악, 그리고 어둠 한 줌이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인생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자가격리는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 나의 어둠을 오롯이 지켜내야겠다. 지금 당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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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공서에 가서 머뭇거리면 누군가 달려와서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간이 카페의 키오스크 앞에서 잠시 카드를 만지작거리면 누군가 냉큼 달려와서 대신 해주려고 하고, 매표소에선 어르신 우대에 해당되지 않냐고 물어보질 않나... 어르신 되려면 아직 멀었는데..... 그런 친절을 바라지 않는데 세상은 자꾸 내게 친절을 베푼다. 아무래도 머리 염색을 해야 하나. 누군가에게 친절을 바란다면 빨리 늙어서 하얀머리 휘날리면 됩니다.^^

 

 

  

북플을 열면 거의 매일 이런 알림이 뜬다. 이런 알림이 뜨지 않는 날이 있었던가 싶게 거의 매일이다. 그냥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진 않았구나 생각하지만 가급적 지난 글을 다시 읽지는 않는다. 읽기가 싫다. 다만 무슨 책을 읽었나 싶어 슬쩍 열어보면 대부분 기억이 나지만 어떤 책은 매우 낯설게 다가온다. 이건 뭐지? 뭐가 되었든 그래도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견이나 독단일지라도.

 

 

 

 

 

 

 

 

 

 

 

 

 

 

 

 

글은 매끄럽지만 울림은 약한 책. 한 권의 책에서 두고두고 되새길 한 문장이라도 남으면 되지 뭐.

 

-58쪽

누군가의 슬픔을 알면, 정말 알면, 무엇도 쉬이 질투하게 되지 않는 법이니까. 어려운 형편은 모르고, '좋아 보이는' 면만 어설프게 알 때 질투가 생긴다.

 

-62

오늘 아침 소파에서 남편의 신간 시집을 읽다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세월이 가면 우정은 사소해진다." 별일 없이 마음을 다치게 하네. 시는 이게 문제다.

 

 -280

멀어진 친구를 생각하면 한밤중에 갑자기 가난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마음을 탈탈 털린 기분. 

 

 

 

 

 

 

 

 

 

 

 

 

 

 

 

 

 

 

 

단순 여행자의 단편적인 경험 이상을 누리는 사람의 책. 질투하며 읽은 책.

 

-118

작은 언어가 모어인 사람은 시인이 될 확률이 높다. 시의 독자도 마찬가지다. 독일 시인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가 언젠가 신문에 썼다. 지금 시대에 시집은 크로아티아어로 출판되든 미국에서 영어로 출판되든 2천 부도 안 팔리는 것은 변함이 없다고. 미국 인구는 크로아티아 인구의 60배쯤 된다. 그렇다면 비율로 따져 크로아티아에서 시집이 엄청 잘 팔린다는 말이다. 

 

-120

유럽은 프라하나 빈처럼 아름답고 오래된 수도가 많다. 하지만 현대식 생활을 해치지 않고 관광객을 만족시키려는 나머지, 너무 정리된 완성작 같다. 그에 비하면 소피아는 관광객도 거의 없고 생활도 그다지 쾌적하지 않다. 하지만 로마 유적, 비잔틴 교회, 터키 식민지 시대의 이슬람 사원, 내가 좋아하는 러시아 교회, 빈에서 공부한 건축가들이 세운 아르누보 양식의 건축, 소련식 건물 등 볼 것이 많다. 역사의 흔적이 거인의 발자국처럼 성큼성큼 남아 있는 곳에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아, 피곤하긴 하지만 흥분을 느낀다. 조그마한 과거를 만지작거려 기념품처럼 만든 소규모 '관광지'가 아니다. 역사라는 거대한 공사 현장에 던져진 듯한 감동이 밀려왔다.

 

*소피아: 불가리아 수도

 

-172

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 일본은 택시 운전사가 몸도 마음도 프로인데, 독일은 원래 교사였거나 생활고에 시달린 시인 또는 예술가였던 사람이 택시 운전사일 때가 많다. 이 손님들, 자신들은 잘난 듯 문학을 하면서 나는 하찮은 운전사라고 생각하나 보네, 하고 확 액셀을 밟은 것이리라. 도시는 곧 운전사의 언어고 골목길은 운전사만 알고 있는 문법이다.

 

-207~208

일본에서 독일어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독일어로 일기 쓰기를 권하고 싶다. 문법이나 철자에서 틀리는 부분이 많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우선 무시하고 쓰고 싶은 말을 즐겁게 쓰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모어로는 부끄러워서 쓰지 못했던 것을 아무렇지 않게 외국어로 쓸 때가 있다는 점이다. 매일 글쓰기를 하면 글이 이어져서 천을 짠 것처럼 또 다른 자기가 나올지도 모른다. 외국어 공부는 새로운 자기를 만드는 일, 미지의 자기를 발견하는 일이다. 나를 비롯해 일본어가 모어인 사람들은 일본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사람을 대하는 법을 배웠다. 생각해선 안 되는 일, 입에 내서는 안 되는 말이 금기로 머릿속에 일본어로 설정됐다. 다시 말해 일본어로 글을 쓰면 자동적으로 금기를 건들지 않게 된다. 대신에 외국어로 글을 쓰면 이 금기를 배척하는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평소에 생각지도 못한 것을 과감하게 쓰기도 하고 잊어버렸던 어린 시절 기억이 갑자기 되살아나기도 한다.

 

 

 

 

 

 

 

 

 

 

 

 

 

 

 

 

 

 

'초기 자본주의와 르네상스의 확산' 시장이 인간과 미술을 움직이다.

 

대하소설을 제대로 읽은 적이 거의 없는데 이 책은 나오는대로 읽고 있다. 이 시리즈를 반복해서 한번 더 읽으면 내 것으로 소화시킬 수 있을 것 같다. 흐름으로 읽는 거라서 인상적인 부분을 옮기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6편에서는 '제대화'에 대한 안목을 기를 수 있어서 좋았다는 것을 말해둔다. 유명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종교화라고 싸잡아서 도외시했던 그림들을 조금은 볼 수 있게 되었다.

 

 

 

 

 

 

 

 

 

 

 

 

 

 

 

 

 

 

 

범우문고 시리즈를 아시는가?

1. 수필(피천득)

2. 무소유(법정).....288번 까지 출간되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범우문고 출신이다. 유명했다. 삼중당문고, 서문문고, 범우문고와 친하게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부담없이 구입, 지적 허기를 채워주었던 책들이다. 옛친구를 만난 기분이다.

 

-99

 

슬갑 도둑

 

남의 시문의 글귀를 따다가 제것인 양 쓰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슬갑(膝匣)이란 겨울에 추위를 막기 위하여 바지 위로 무릎에 껴입는 옷이다. 그런데, 어느 도둑은 남의 슬갑을 훔쳐서는 이것을 어디가 쓰는지를 몰라 이마에다 붙이고 나왔다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옛날에도 표절은 욕먹을 짓이었나보다. 도둑놈이니까.

 

 

 

 

 

 

 

 

 

 

 

 

 

 

 

 

 

스페인어를 독학해보겠다고 이런저런 책을 사보았지만 모두 작심삼일. 기초가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터. 이 책만큼은 끝까지 읽고, 기초 단어 정도는 착실하게 노트정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왕초보가 읽기에 딱 어울리는 책이다.

 

 

 

 

 

 

 

 

 

 

 

 

 

 

 

 

 

 

멍멍이 머리맡에서 발견한 책.(우리집 개 소파는 책장 앞에 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사준 책이다. 오우, 나도 제법 훌륭한 엄마였음을 입증하는 책.^^

중세에도 앞선 여성들이 많았다. 단지 우리가 모를 뿐. 그런 걸 가르치지 않을 뿐.

한 꼭지씩 읽어가며 연신 감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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