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앞에 앉기가 이렇게나 힘들다니... 딸이 독립하니 얼떨결에 친정 엄마가 되었고, 대장내시경으로 용종을 제거하면서 체면을 구겼던 비상사태를 벗어났고, 6도 6촌 생활(도시에서 6개월, 시골에서 6개월) 중 다시 도시로 돌아왔고, 도시로 돌아왔으니 잠시 중단했던 한겨레신문을 재구독하게 되었고. 벼르고 별러 남편 친구들 모임으로 남반구를 다녀왔고. 그리고 오늘은 난생 처음 골다공증 주사를 맞았다. 늙으면 늙은대로 새로운 세상이 다가온다는 걸 깨달은 사건. 다사다난한 와중에도 2월에 무지개 다리를 건넌 아진군이 무시로 떠올라 조용히 한숨을 삼키곤 한다.


도무지 책이 읽히지 않는데 어제는 서재 이웃님의 글을 읽고는 다급하게 영화 <국보>를 보았다. 주문한 책도 조금전에 도착해서 개봉을 기다리는데 이 책은 또 언제 읽을라나. 그간 여러 권을 들었다 놨다 했는데, 그중 끝까지 기억에 남는 것은,
















글쓰기에 관한 책은 일부러 피하는데 이 책의 저자인 김진해 교수의 글을 좋아하는지라, 분야 불문하고 눈으로 가슴으로 읽었다. 


p. 261~263

'1111법칙'이란 게 있습니다(이 글을 쓰면서 만들었습니다, 하하). 우리는 살면서 1000권의 책을 사거나 빌리거나 구경합니다. 그중에 100권을 읽습니다. 그중에서 10권이 마음에 남는 책입니다. 그중에서 1권이 자신의 세계관, 철학, 삶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인생 책'입니다. 그 1권도 시시때때로 변합니다. 중요한 건 1000권의 책이 내 앞을 지나가게 하는 겁니다. 나머지는 자동으로 됩니다.

  글쓰기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살면서 우리는 1000편의 글을 끄적거립니다. 그중에서 10분의 1 정도가 글로 완성됩니다. 그중에서 열 편은 그럴듯한 글입니다. 그중에서 하나의 글만 자신의 생각을 온전히 담은 '인생 글'이 됩니다. 그 글도 시시때때로 변합니다. 때론 아직 쓰지 않은 글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욕심부리지 말고 1000편의 조각 글을 무심히 만들어내는 겁니다.

   (중략)

  모든 책은 '자신'에게로 수렴됩니다. 책을 지나치게 세심하게 읽는 것은 읽는 사람을 자기 자신에게서 멀어지게 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책 읽기는 잠자고 있는 자기 고유의 시각을 발견하는 실마리 정도의 역할이면 족합니다. 책은 신줏단지가 아니라 '나'의 실마리입니다. 글도 그렇습니다.



이 책은

내 앞을 무심하게 지나가게 하기에는 아까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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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2-02 0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11법칙, 나름 생각을 많이 하도록 만듭니다.

nama 2025-12-03 06:21   좋아요 0 | URL
누군가는 이 법칙을 콩나물에 물주기로 표현합니다. 물이 밑으로 다 빠져나가는 듯하지만 그래도 콩나물은 그 물 덕분에 성장하니까요. 그러고보니 이 알라딘 서재는 콩나물 농장 같습니다. ㅎ
 
대항해 시대의 마지막 승자는 누구인가? - 근세 초 민음 지식의 정원 서양사편 4
김원중 지음 / 민음인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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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이지만 야무지고 알차다. 목차를 잠시 살펴보면, 


- 머리말ㅣ대항해 시대의 마지막 승자는 누구인가?

1 유럽 인들은 왜 먼바다로 나가려고 했는가?
2 어떤 지식과 기술의 발전이 대항해를 가능하게 했는가?
3 포르투갈은 아시아를 정복하고 지배했는가?
4 에스파냐 정복은 포르투갈 정복과 어떻게 달랐는가?
5 아메리카의 정복자들은 누구이고 그들은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는가?
6 대항해 시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이런 식으로 질문을 던지는 글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거꾸로 책을 읽은 후에 이렇게 질문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읽기가 바빠서 실천하기 쉽지 않겠지만. 글자 빽빽한 책만 읽다가 이렇게 요약이 잘 된 책을 읽으니 달콤하다.


기억할 만한 두 가지를 적어본다.


* 에스파냐 정복은 포르투갈 정복과 어떻게 달랐는가?

p. 103  이처럼 정복 이래로 꾸준히 모습을 갖추어 간 에스파냐의 아메리카 제국은 포르투갈의 아시아 제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된다. 유럽 인들의 진출의 영향이 가장 크고, 가장 지속적으로 나타난 곳이 이곳 아메리카였다. 이곳에서 에스파냐 인들은 원주민들과 무역을 하거나, 해상 무역권을 장악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건너가 정착했고, 아메리카의 거대한 영토와 수많은 현지인들을 지배하는 실질적인 제국을 건설했다. 1600년 경 포르투갈 인들이 서아프리카에서 마카오에 이르기까지 몇몇 요새와 섬들에만 머물러 있을 때 에스파냐 인들은 이미 아메리카에 에스파냐 본국보다 몇 배나 더 큰 영토를 지배하고 있었다.


p.97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발견'한 포르투갈 인들은 그 소유권을 현실화할 힘을 갖고 있지 않았고, 그에 비해 에스파냐 인들은 아메리카에 대한 지배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p. 99  에스파냐의 해외 사업이 정복과 정주와 식민화 쪽으로 나아가도록 추동한 원인은 모국에서 유래한 것도 있고 아메리카의 지역적 상황에서 유래한 것도 있었다. 재정복운동은 카스티야에서 영토 정복과 정주의 전통을 확고하게 확립해 놓고 있었다. 그러므로 1492년 재정복운동이 완성된 시점에서 볼 때 에스파냐가 아메리카에서 계속해서 영토를 획득하고 재정복을 확대 연장하는 것에 관하여 고려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콜럼버스에게는 실망스럽게도 카리브 해는 인도양에서 포르투갈 인들이 발견했던 수지맞는 교역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본토 내륙에 사는 훨씬 개화된 원주민들도 백인들과 지속적으로 교역할 만한 물품을 갖고 있지 않았다. 에스파냐 인들이 볼 때 아메리카에서 돈이 될 만한 것은 오로지 금광과 은광, 진주 어장, 비옥한 토양 뿐이었다. 이것들을 수탈하기 위해서는 몇몇 해군 기지를 발판으로 하는 해상 제국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정복과 식민지화, 필요한 노동력을 공급받기 위한 원주민의 노예화였던 것이다.


** 원주민의 노예화에 대해

p.125 (각주)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사람은 선천적으로 열등하고, 그들의 삶의 목적은 더 우월한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것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그는 그리스 인들에 비해 선천적으로 열등한 종족은 노예로 써도 된다고 주장했다. 또 선천적으로 열등한 종족의 저항으로 야기된 전쟁에서 포로가 된 사람들은 노예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이 이론은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아무도 노예 제도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이론은 16세기 이후에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의 논리는 서구에서 노예 제도의 정당성이 도전을 받을 때마다 그 윤리적 기반을 제공한 것이다. 이것은 또한 인종주의를 자극했고, 특정 '인종'의 노예화를 가능하게 해 주었다. 노예 제도를 유지하려면 열등한 인간으로 분류되는 집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인종주의의 뿌리가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구나....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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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에 둥지 튼 (아마도)박새 가족을 들여다보는 기쁨과 그 기쁨 못지않은 걱정의 나날이었다. 과연 어린 새끼들은 먹이를 잘 얻어먹는지, 제대로 자라고 있는지, 어미새는 어디에서 해코지를 당하지는 않는지...별의별 걱정이 들곤 했다. 그래도 어미새는 사람을 피해서, 우리가 보지 않는 사이에 부지런히 제 둥지를 오고갔는지 드디어 새들이 둥지를 떠났다.



텅 빈 둥지를 살피다가 창고 구석의 바닥에 놓여있는 싱크대 설거지통에서 한 마리를 발견했다. 탁구공 만할까. 눈망울은 초롱초롱. 쪼르르 달아나는데 다른 두 마리도 기어나와 쏜살같이 숨어버린다. 두 마리가 더 있는데 어디에 있나? 전부 5마리.


괜한 걱정이지 싶다. 새들이 어련히 알아서 살아갈까.



딸 친구가 만들어준 말풍선. 인간의 자식들도 어련히 알아서 성장하니 부모의 걱정일랑 지나치지 않는 게 좋다. 새삼 깨닫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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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로 지구 정복
다카노 히데유키 지음, 신견식 옮김 / 다산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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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를 잘하려면 ‘누구라도 좋으니 원어민에게 배우기‘를 모토로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며 세계를 누비는 베테랑 작가의 언어 학습기 혹은 세계 탐험기. 특히 아시아 변방 취재기와 언어마다의 말맛에
대한 분석이 인상적임. 생생한 현장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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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 (아직 뉴욕 3박 4일이 남아 있다.) 씻고 밥 먹으러 가기 전에 쓴다.

강렬함의 연속이었던 남미 여행. 늘 5분쯤 행동이 늦어서 일행을 기다리게 하는, 진심으로 의절을 고민하게 하는 내 친구. 행동이 민첩하여 좋은 것을 차지하는 데는 능숙하지만 타인을 배려하는 데는 미흡한, 일행의 어느 부부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뒤돌아 보게 했다. 내 모습도 저럴까. 저랬을까. 굼떠도 잽싸도 욕을 먹으니 남과 더불어 사는 건 늘 어렵다.

사진 1. 리우데자네이루 대성당 앞의 조각상 <홈리스 예수> 현실에선 노숙자를 위한 벤치, 없다. 아이러니.
사진2. 코파카바나 해변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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