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권의 책을 읽다보면 건방지게도(?) 책의 우열을 가리게 된다. 자신은 노래를 부르지 못해도 남이 부르는 것은 잘 부르고 못 부르는 것을 판단하듯, 글을 쓰지도 않으면서 남이 애써 써놓은 책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곤 한다. 순간 조심스러운 마음이 되는데 그래도 독자에게서 잊혀지는 것보다 한번이라도 더 누군가의 입에 오르내리는 게 좋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악의가 아니라면.
요즈음 읽은 책 중 마음을 크게 울렸던 순으로 적어본다.
220쪽의 얇은 책으로 키마저 작고 디자인도 별로여서 외모는 실망스러운데 내용은 보석이다. 이따금씩 툭툭 던지는 한두마디에 눈길이 길게 머문다. 이 책의 주제는 중국 서점 기행이지만 그것보다 작가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공감과 더불어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
나는 내 인생의 그런 막장드라마 같은 현실에서 도피하는 방법으로 종종 떠나는 행위를 한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된 현실의 비극은 피할 수 없지만, 슬픔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 나에게 그것은 여행이거나 정처 없이 걷는 것이다. 대책 없이 날벼락 같은 일을 당했다고 생각했던 날, 나는 쿤밍으로 떠났다. -106쪽
정처 없이 걷는 것. 아, 이건 내 얘긴데....
오래전 어느 가을 저녁, 혼자 벤치에 앉아서 멍한 두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던 그 여자에게도 갈 곳이 있었더라면 삶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산다는 것 자체가 피곤하고 목구멍까지 슬픔이 차오르는 날, 우리에게는 언제라도 찾아갈 수 있는 다정하고 따뜻한 인생의 주유소가 필요한 법이다. 그곳에서 저마다 소쩍새 우는 사연을 풀어 놓고 맘껏 목 놓아 울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173쪽
목구멍까지 슬픔이 차올랐던 사람만이 쓸 수 있는 표현이지 싶다. 이런 글은 몸으로 쓴 글이다. 머리가 아닌 발로 쓴 글이다. 발로 쓴 글, 경험에서 우러나온 글이라는 의미이다. 분명 서점 얘기인데 삶의 속살을 훑고 지나가는 절절함 같은 걸 읽을 수 있었다. 책이 얇다는 게 흠이라면 흠.
완독은 아니고 아직 반 밖에 읽지 않았지만, 이 책 역시 발로 쓴 글이다. 저자가 1991년 생으로 내가 살아온 날들의 반 밖에 안되지만, 배울 점이 참 많은 사람이다. 한겨레 신문에 종종 실리는 이 양반의 칼럼은 고단한 날들의 단비처럼 신선하고 풋풋해서 좋다.
발과 머리로 쓴 글이지만 약간 머리를 더 사용한 듯한 책. 여행준비에 관한 책이니까. 그런데 이 작가는 등산을 싫어한다나. 세상 사람들을 히말라야를 가본 사람과 가보지 않은 사람, 아니 히말라야를 가볼 사람과 가보지 않을 사람으로 나눈다면 이 작가분은 분명 가보지 않을 사람이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조금 실망했다기 보다는 뭐 그럴 수도 있지.....사람은 다 다르니까. 그러나 유명한 맛집 탐방은 도저히 내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인데....
읽긴 읽었는데 딱히 기억에 남지 않는 책. 발 보다 머리로 쓴 느낌이 나서 조금은 시큰둥하게 읽었던 책. 서재이웃님이 등장하는 부분만은 선명하게 남는다.
머리로 썼건 발로 썼건 그게 무슨 대수랴.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