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슬람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에도 이슬람의 아잔 기도소리에는 마음이 끌린다. 아잔은 '기도 시간을 알리고 알라의 위대함과 유일성을 선포하고 무슬림들을 예배로 초대하는 신성한 외침'이지만 내게는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처럼 들린다. 이슬람 지역을 여행할 때마다 아잔 기도소리에 매료된다. 페낭에서도 그랬다. 아잔의 의미와는 전혀 관계없는 감상이고 왜곡일 수도 있지만, 할 수 없다. 경건한 순간을 갖고 싶을 때가 있다.


새벽마다 모스크에서 흘러나오는 아잔은 얕은 잠을 슬그머니 깨워 아련한 감상에 젖어들게 한다. 기도소리에는 신에게 갈구하는 간절함과 신이 가까이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보호해주고 보살펴주고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때로는 갈구하고 때로는 하소연하는 기도소리는 노래 같기도 하고 어머니의 자장가 같기도 하다. 얘야 걱정말아라. 오늘도 무사할거야. 이런 속삭임처럼 들린다.새벽 5시, 낮고 느린 음조로 읊조리는 아잔은 어느날엔 한 시간 넘게 간헐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기도의 내용은 모르지만 한 시간 내내 '어서 예배에 참여하라'라고 다그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어둠 속 침대에서 잠결에 가만히 듣다보면 돌아가신 부모형제가 떠오르기도 하고, 묵묵히 견디며 주어진 일을 해야 하는 자식들의 안쓰러움에 마음이 가라앉기도 하고, 몸이 아픈 사람들의 고통이 떠오르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차분해지며 조용히 명상에 잠기는 것이다. 순한 마음이 되기도 한다. 아잔에는 이슬람 신자가 아니어도 신앙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신을 향해 조용히 기도를 드리고 싶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아잔에 자극 받은 마음들은 아침이 밝아오면 자신들의 신을 찾아 불상 앞에서 향불을 올리거나 길모퉁이 작은 힌두 사원을 찾아 푸자를 올리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기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간절한 기도를 알아본다. 기도 대상이 다를지언정 그 마음은 다르지 않다. 자신이 믿는 신에게 경외감을 갖듯 다른 신을 믿는 사람들의 경외감을 존중할 줄 안다. 그러니 한 거리에 모스크, 불교 사원, 기독교 성당, 힌두 사원이 공존하며 이백 년을 이어올 수 있었을 것이다. 새벽의 아잔은 내가 페낭을 오래 기억하게 하고 그리워하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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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7-09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안개 자욱한 마을 골목 위로 스며들던 아잔의 그윽한 소리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늑함을 전해주던 여행길의 어느 밤이 떠오릅니다.

nama 2026-07-09 19:59   좋아요 0 | URL
어떤 분위기였을지 감이 옵니다. 쓸쓸한 듯 나지막하게 흐느끼는 듯한 소리에 위로와 위안을 받는 느낌이 있지요. 낯선 도시에서 듣는 아잔은 더 마음에 와닿기도 하고요.
 

즉흥적인 결정으로 페낭을 다녀왔다. 6월의 어느 날, 페낭을 가야겠다고 마음 먹고는 오전에 항공권을 오후에 호텔을 예약했다. 페낭은 2012년 말레이시아 말라카를 여행할 때 이미 마음 속에 있었다. 페낭과 말라카를 저울질하다가 말라카를 선택했었다. 그후 대부분의 여행이 그렇듯 오랜 시간 꿈의 씨앗을 뿌리고 지속적으로 관심이라는 물을 주었다. 그러니 즉흥적인 결정이라기 보다는 결정적인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해야겠다.


항공권이나 호텔 예약증은 종이로 출력할 필요가 없는데도 여유분까지 2부씩 프린트했다. 이번엔 WhatsApp까지 깔았다. 호텔 체크인 문제로 호텔주인과 연락을 주고받아야 했다. WhatsApp은 또 하나의 신세계. 국내에선 카톡이라면 해외에선 WhatsApp이 유용하다. 자동번역 기능도 있어서 사용법도 쉽다. 영작문으로 메일을 보내던 게 옛날 일이 되었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뭔가를 깔아야 하고 배워야 한다. 지난번엔 스마트패스앱 설치하느라 애를 먹었다. 실제 사용해보니 스마트하긴 했다.


Grab 택시도 이용했다. 딱 두 번. 늦은 시각 비행기에서 내려 호텔 갈 때, 이른 새벽 호텔에서 공항터미널 갈 때. 그 외에는 일반버스와 무료셔틀버스를 거의 날마다 이용했다. CAT(Central Area Transit) 버스는 조지타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구역을 순환하는 무료셔틀버스인데 어떻게 알게 되었냐 하면...제미나이 덕이다. 버스 타는 방법을 물었더니 CAT버스도 소개해주었다. 관광객보다 현지인에게 인기가 있는 듯했다. 외국인으로서 무료버스를 타는 게 고맙기도 했고 이런 복지 시스템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하기도 했다. 


섬 전체 면적이 울릉도 정도밖에 되지 않는 페낭에서 9박을 했는데 예상보다 갈 곳이 많았다. 차이나 로드와 리틀 인디아 사이에 있는 호텔을 중심으로 골목을 샅샅이 탐색했다. 신시가지에 있는 거니 플라자와 거니 파라곤 몰도 빠뜨리지 않았다. 물론 무료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심심하게 다니는 게 우리(남편과 나)의 여행 의도였다. 여행 중 한국인은 딱 두 번 마주쳤다. 페낭 힐과 아르메니안 거리에서. 둘 다 유명한 관광지이다. 


아침 식당. 커다란 식당에는 주인이 둘이다. 도로변에서 영업하는 식당은 주인이 인도인이고, 안쪽에 위치한 식당은 주인이 화교이다. 음식 주문은 양쪽에서 받는다. 인도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나면 중국식당에서 주인이 다가와 무슨 음료수를 마시겠느냐고 묻는다. 커피? 차? 작은 체구의 인도인 노부부가 운영하는 인도식당에서는 밀가루 반죽을 수십번 치대는 주인 영감의 고된 노동이 눈에 들어온다. 주인 마나님이 쌀가루로 만든 전병도 두 장 주문한다. 공이 많이 들어간 작업에 비해 가격은 터무니없이 저렴한 음식들이다. 여기에 차 두 잔 값을 더해도 우리 돈으로 오천 원이 안된다. 인도인 주인과 중국인 주인이 가족처럼 가게를 운영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먹는 아침밥이 평화롭다.


혼종의 도시, 페낭인지라 먹거리는 다양하지만 입이 짧아진 나는 조심스러웠다. 점심을 온전하게 먹은 날은 저녁을 거의 굶다시피 했다. 별로 하는 일도 없으니 배가 고프지는 않았는데 덕분에 무탈하게 지낼 수 있었다. 동남아에서 금식이라니. 먹는 것과 별개로 기운은 남아돌아서 피곤한 줄 모르고 다녔다. 조금만 먹고도 잘 걷고 잘 다녔으니 이젠 어떤 경지에 오른 건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을 떠올린다면? 다양한 종교의 공존이다. 거리 이름 자체가 하모니 스트리트에는 여러 종교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쪽 거리에 성공회 교회, 중국 사원, 이슬람 모스크가 거의 나란히 이웃하고 있고, 길 건너편에는 힌두교 사원이 있다. 새벽 5시만 되면 어김없이 모스크에서 아잔이 흘러나오고, 중국 사원인 관음사에서는 종아리만한 굵기의 대형 향이 매캐한 향을 뿜어내고, 사원 옆 길 모퉁이 간이 힌두교 사원에선 작은 푸자를 올리고 있다. 아침마다 듣고 보는 풍경이다. 지난 이백 년 동안 이어온 풍경이리라.



모스크



힌두 사원



관음사



성공회 교회



관음사 옆 길 모퉁이 힌두교 간이 사원. 아침 풍경.



관음사 앞 대형 향.



이 모두가 하모니 스트리트에 면해 있다. 그것도 서로서로 아주 가까이에 있다. 페낭의 하모니 스트리트에 평화가 있는 한 세계 평화가 유지 되지 않을까. 반대로 이 평화가 깨지는 날 세계의 평화도 깨지지 않을까...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페낭에 관한 책.















여행 전에는 도통 눈에 들어오지 않더니 이젠 머리에 쏙쏙 박힌다.















흠...이 책은 페낭에 다섯 번쯤 다녀오면 눈에 들어올라나...너무나 전문적임.
















페낭 출신 유명 작가의 소설. 일단 구입 완료!



값비싼 인디고 블루를 안팎으로 칠한 갑부의 집, 블루맨션. 인원 제한 입장이 있어서 처음 기회를 놓치고 두번째에야 들어간 곳.




블루맨션을 다녀간 유명인들 사이에 소설가 탄 트완 엥이 있는 걸 발견. 책은 한 구절도 안 읽어봤지만 이름만 알고도 알아보다니...내 눈썰미에 감탄.



페낭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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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을 앞둔 2005년 12월.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어떤 네이버 여행 카페에 접속한 순간 짠~하고 창이 떴다. "100번째 가입을 축하합니다."  예상하지 못한 당첨 멘트에 순간 심장이 마구 떨렸다. 게다가 당첨 내역에 말문을 잊을 정도였다. 며칠 후 이런 공지가 떴다.


이번에 따리사랑에서 실시한 이벤트에 당첨되신 분은 이렇게 모십니다 ....

100번째 가입히트에 당첨되신 멍멍소녀님 *^^*

1000번째 방문히트에 당첨되신 jinkijoo

1, 꽃다발과 함께하는 환영 세레모니

2, 따리에 머무시는 동안 코리아나의 최고객실 무료제공.

3, 따리에 머무시는동안 고려정에서 식사 무료제공.

4, 따리 특산품중 기념품 증정.

5, 따리에 머무시는동안 필요시 편안하고 안전한 4x4 짚차제공.

6, 창산 케이블카 왕복티켓 무료제공.

이상과 같이 즐거운 여행이 되시도록 모든 편의를 제공합니다 ...

코리아나와 NO3는 따리의 유일한 한국인 지킴이입니다 ... 여러분들의 여행 도우미로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

두분 모두 축하 드립니다 .....

(네이버 카페 '따리사랑'을 뒤져서 퍼옴.)


멍멍소녀. 초등생이었던 딸아이가 내 계정을 만들면서 사용한 아이디였다. 마침 보너스 항공권으로 세 식구가 쿤밍, 따리, 리장 여행을 계획하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저 멋진 기회를 누렸다는 것.

당첨 내역에 없는 남조풍정도 1박 2일 일정도 있었는데 귀한 대접에 몸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물론 여행 후 돌아와서, 아끼고 아끼는 여행 서적 등 100여 권을 두번에 걸쳐 국제소포로 답례를 하긴 했지만 조족지혈 수준에 불과했다. 그후 코리아나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제주도에서 펜션을 한다기에 일부러 찾아간 적도 있으나 거제도에서 펜션을 하고 있다는 추측성 정보만 접했다. 오늘 이 글을 쓰려고 네이버 카페를 검색하는데...이런! 기억이 가물가물. 엉뚱한 카페에 들어가서 흔적이 사라져버렸다고 아쉬워했는데 이내 하나씩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사장님의 근황도 발견, 잘 계셨다. 고마운 마음, 아직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 떨림과 설레임은 인생에서 여러번 경험하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베품은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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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4-27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풍화설월의 도시 따리를 다녀오셨군요. 하관의 바람과 상관의 꽃, 창산의 눈과 얼하이의 달....
전 따리 하면 사과반쪽 게스트하우스과 계수나무 식당이 생각나네요. 다들 잘 지내고 계신지....

nama 2026-04-27 21:31   좋아요 1 | URL
기회가 되면 한시절 유유자적 보내고 싶은 곳이지요. 얼하이의 푸른 물결을 잊을 수가 없고요. 그리운 곳.
 


32년 전 사진을 올려본다. 35인승 버스, 왼쪽은 조수, 오른쪽은 버스 운전 기사 구루 바바. (양쪽에 나를 포함한 일행이 3명 있었지만 딸에게 부탁해서 ai로 깔끔하게 지웠다.) 바바는 아저씨, 할아버지 정도의 뜻. 구루는 스승이라는 뜻으로 운전의 고수라서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이분이 한달 내내 혼자서 운전을 도맡았다. 인도에서 네팔로, 다시 네팔에서 인도로, 시속은 40~60 km. 한번에 30시간 씩 이동할 때도 몇번 있었다. 30시간 안에는 길에서 하염 없이 멈춰선 시간도 포함된다. 혼자 운전하다 보니 중간에 휴식 겸 취침도 필요해서 였으리라. 곳곳에서 통행세를 받는 사람들은 늘 자리를 비워서 통행세를 내고 싶어도 낼 수 없는 상황이 툭하면 벌어지곤 했다. 이래저래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장거리 이동 중에는 숙소가 따로 없었고 물론 화장실도 없으니 들판에서 해결해야 했다. 번듯한 식당에 대한 기대는 금물. 길가에서 파는 토마토, 바나나, 귤, 석류 등으로 때우고 운이 좋으면 짜파티 몇 장을 구하는 게 전부였다. 칠흑 같은 밤이 오면 의자에서 새우잠을 자는데 대담한 친구들은 버스 바닥에 침낭을 깔고 잤다. 

 

한번은 시크 사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일정에는 없었지만 바바가 시크교도여서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것. 사원에 들어서자마자 우리 일행을 사원 바닥에 일렬로 쭉 앉게 하더니 우리 앞에 스테인레스 물컵과 식판을 거의 던지다시피 놓았다. 그러더니 컵에 물을 따라주고 식판에는 두세 장의 짜파티를 배급했다. 배는 몹시 고팠지만 그때만해도 인도 음식에 잘 적응하지 못해 물도 못마시고 짜파티도 거의 먹지 못했다. 여행 내내 배앓이를 했다. 준비해간 지사제는 만병통치약에 가까워서 몸살난 친구에게도 약효가 있었다.


이 버스의 독특한 점은 후진할 때 아기울음소리를 내는데 주위에 있던 인도인들도 신기했는지 버스 뒤편으로 가서 바퀴를 자세히 살펴보곤 했다. 에어컨 대신 작은 선풍기가 창가 좌석마다 붙어 있었고 창문 잠금장치가 시원찮아서 닫으면 틈이 벌어져서 열리고 또 닫으면 열리곤하여 창문과 싸우다보면 새벽이 희뿌옇게 밝아오곤 했다.



이른 아침. 잠시 버스에서 내리면 어쩌다가 길가 찻집에서 짜이를 사 마셨다. 달콤하고 뜨거운 짜이 한 잔. 그때 맛을 알았을까? 글쎄...세상과 처음 만난 기분? 세상에 처음 눈 뜬 경이로움? 세상의 다양성에 짜릿했던 놀라움? 순간순간이 살아 있었고 깨어 있었지만 당시엔 잘 몰랐다. 


저 35인승 버스는 첫 인도여행의 잊지 못할 친구였다. 지금도 가끔씩 몹시 그립다. 버스가 그립다니... 작년에 죽은 우리 댕댕이 아진군만큼이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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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4-09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스 정면만 봐서는 너무 깔끔해 보입니다. 전 인도 버스 하면 울퉁불퉁한 길을 마구 달릴때 외국인에게 배정된 맨 뒷자석에서 옆에 탄 여행자들과 같이 부웅 하고 수직으로 공중부양하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저도 갑자기 버스가 그립네요. ㅎㅎ

nama 2026-04-10 07:33   좋아요 0 | URL
당시에도 저 버스는 고급이었어요. 외관도 깔끔하고 바닥에는 카펫이 깔려 있었어요. 다만 한달 내내 주행하는 동안 서서히 붕괴하더라구요. 창틀도 안 맞고, 점점 더러워지고, 비좁은 좌석에서 잠을 청해야 하고, 배는 고프고... 한번은 시동이 걸리지 않자 커다란 횃불을 운전석 옆 엔진으로 향하는 바람에 기겁을 하고 모두 대피한 적도 있어요.
 

나를 포함하여 내 주변의 지인이나 친구들은 주민등록상의 생년월일이 실제와 다른 경우가 많다. 주민등록상 한 살 어린 덕분에 지금까지 일 년 젊게 살아왔는데 드디어 나도 공적으로 우대 받는 노인이 되었다. 전철 무임 승차! 


비둘기호를 아시는가. 정확한 사실을 알기 위해 제미나이한테 물었다. 다음은 답변.


'비둘기호라는 이름이 처음부터 사용된 것은 아닙니다. 1960년대까지는 특별한 명칭 없이 '보통열차'로 불렸습니다.

*명칭의 도입(1984년): 철도청이 열차 등급 체계를 정비하면서 가장 낮은 등급의 완행열차에 "비둘기"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당시 위 등급으로는 통일호, 무궁화호, 새마을호가 있었죠.)


이건 사실과 달라서 구글에서 검색해보았다. 다음은 위키백과의 답변.


<역사>

*1967년 9월 1일: 운행 개시

*1974년 8월 15일: 통일호로 통합되며 폐지


나는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비둘기호와 함께 했다. 읍사무소가 있는 동네에서 수원 소재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바람에 내 인생이 꼬였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고생은 착실하게 했다. 고등학교는 열차로 30분을 타고 내린 후 25분을 걸어야 했다. 왕복 2시간을 길에서 소비했다. 대학은 더 했다. 열차로 1시간 30분, 다시 30분을 걸었다. 왕복 4시간이 걸렸다. 열차 통학이 힘들어서 잠깐씩 자취, 하숙, 친척집 신세도 졌지만 마음이 안정이 되지 않아서 몇번 시도하고 말았다. 마음보다 몸이 힘든 쪽을 택하다보니 7년 가량을 비둘기호를 벗삼게 되었다.


내가 태어나고 성장한 동네는 중학교 4개, 고등학교 3개가 있었다.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인 중고등학교를 두고 중학교는 가장 먼 곳에 위치한 학교로 배정 받았고, 고등학교는 도내에서 가장 입학이 치열했던 곳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물론 내가 원한 것은 집 근처의 남녀공학이었는데 그게 또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대학은 수원 소재 대학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지나고보면 다 부질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비둘기호는 내가 통학하던 내내 비둘기호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70년대 중반에도 비둘기호였고 80년대에도 비둘기호였다는 말씀이다. 인터넷에 있는 정보도 의심해야 한다. 그러나 누가 비둘기호 정보를 뒤질까. 나 같은 사람이나 뒤져보며 모처럼 목에 힘을 주는 거지.


장구한 7년 간의 비둘기호 열차는 내 심신에 여행 세포를 확실하게 심었다. 열차의 리드미컬한 질주가 몸에 새겨졌다. 떠나라, 떠나라, 하고 늘 부추기는 듯했다. 학교는 책상에 앉아 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몸으로 만들어 주었고, 열차 통학은 평생 여행을 꿈꾸는 몸으로 만들어 주었다.


결론. 무임 승차를 기념하기 위해 여주에 가서 돌솥밥을 먹고 왔다. 식당 공기밥에 예민하던 차, 모처럼 밥다운 밥을 먹고 잠시 행복했는데 그만 집에 와서 뻗었다. 왕복 2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한 일이라고는 밥 먹고 온 것 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이게 다 젊을 때 열차에서 오랫동안 시달린 탓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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