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에 앞서 고토에 대한 설명부터 해야겠다. 
















p.342

고토는 기도의 섬이라 불린다. 가톨릭의 역사가 깊은 고토 열도에 자리 잡은 교회만 55개. 일본의 기독교 인구가 채 1%도 되지 않음을 감안하면 경이로운 숫자다. 모진 종교 탄압 속에서 250년간 신앙의 끈을 놓지 않았던 신앙의 역사는 프란치스코 교황도 역사의 모범이라 치켜세웠던 바, 육지에서 100km나 떨어진 이 섬으로 순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때 묻지 않은 순수 자연을 간직한 고토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에 비견되기도 한다. (중략) 이국적인 성당과 천혜의 절경이 쪽빛 바다에 젖어 있는 이곳은 말 그대로 파라다이스!



  작년 9월까지 나가사키 앞바다에 고토(五島)라는 섬이 있는 줄도 몰랐다. 막부 시대의 쇄국정책 일환으로 포르투갈, 네덜란드의 상관을 유일하게 허락한 곳인 데지마. 오천여 평의 자그마한 인공섬인 데지마에서 할일없이 두리번거리다 홍보 문구가 쓰인 띠를 가슴에 두른 한무리의 일본 중학생들이 눈에 들어왔다. 관광지에서 얘네들은 뭐하나 싶어 살펴보았다. 3인 1조가 되어 관광객들에게 설문지를 돌리면서 설문지가 완성되면 답례품으로 포장된 국수(아마도 우동)를 건네주고 있었다. 우리(남편과 나)에게 다가와서 요청하기를 은근히 기다렸는데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않는다. 하얗게 센 머리 때문이리라고 짐작. 좁은 데지마에서 이들과 절대로 멀어질 수 없었던 우리는 기다리다못해 한 무리의 남학생들에게 말을 걸었다. 알고보니 이들은 고토에서 온 학생들로 고토라는 관광지를 홍보하고 있었다. 건네받은 전단지에는 고토의 관광지, 식당, 호텔, 먹거리 등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 중학생들의 활동은 우리로 치면 체험학습쯤 되는 것 같은데 학생들에게 이런 걸 시켜도 되나? 라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여기에서도 지역 살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구나 정도로 이해했다.


2월 초 두번 째 나가사키 여행을 친구들과 함께 하면서 궁금했던 고토를 일정에 넣었다. 배편은 두 가지가 있다. 1시간 30분이 걸리면서 왕복 요금이 3인분에 53,400엔(약 50만 원)인 것과 4시간이 걸리면서 요금이 24,000엔(약 25만 원)인 것. 빠른 것으로 가자던 친구들의 호기는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조용히 안도의 숨을 쉬면서 4시간이 걸려도 좋아, 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고토 후쿠에 항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에어비엔비 숙소를 예약했다. 말끔하게 리모델링해서 내부는 깨끗하고 쾌적했으나 아귀가 잘 맞지 않는 문틈으로 사정없이 웃풍이 들어왔다. 문짝이 몇개였냐고 묻지 마시길. 전면과 후면이 모두 목재로 짠 전통 미닫이 문으로 미관에 역점을 두었을 뿐, 오랜 살림살이 냄새가 배어있는 살림집의 아늑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사진을 올린 이유. 대문 역할을 하는 저 무너진 성벽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는 것.



동네 한 구역을 차지한 부케야시키도리, 무사들이 살았던 곳으로 담장 위에 층층이 쌓아올린 달걀 모양의 돌들이 독특하다. 적이 침입했을 때 땅으로 떨어져 비상 상황을 알리는 경계병 역할을 했다고 한다. 손에 쥔 게 많았다는 흔적일 터. 무사의 집을 흉내낸 것만으로도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는 의미가 있었다.


  섭섭한대로 하루에 몇차례밖에 운행하지 않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국제면허증을 준비하지 못한 친구는 몹시 아쉬워했지만, 운전면허증조차 없는 나는 아쉬운 마음조차 없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텅텅 빈 시골버스를 타고 우여곡절 끝에 도자키 성당까지는 갔다. 그래도 성당 하나는 보고 가야지 싶었다.


 ** 도자키 성당(堂崎天主堂): 1873년 금교령 해제 후 고토에 최초로 세워진 교회. 이 지역 기독교 신앙의 요람이 되어 왔으며, 현재는 고토의 기독교 역사와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자료관 역할을 하고 있다. 붉은 벽돌로 지은 고딕 양식의 교회와 앞마당까지 들어온 바다가 어우러져 서정시 같은 풍경을 자아낸다.(위의 책 p.348)


버스에서 내려 눈보라치는 길을 1km 가량 힘들게 걸어왔건만 성당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러나 실망스러운 기분은 들지 않았다. 바다를 오른편에 끼고 걸어온 길과 바다의 풍광이 가슴저리게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옥색과 푸른색의 맑은 바다와 그 바다 위로 몰아치는 바람이 멋진 장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친구가 물었다. 저 바다 위의 눈보라는 이름이 뭐냐고. 포말은 아닌 건 확실한데 그냥 포말이라고 답했다. 모르니까. 나중에 AI한테 물어보니 비산 또는 포운이라고 한단다.


  **비산(Sea Spray): 강한 바람이 해수면의 꼭대기를 직접 쓸고 지나가면서 물방울을 공중으로 비산시키는 현상을 전문적으로 비산(Sea Spray)또는 포운(Spindrift)이라고 부릅니다. 


비전문적으로는 그냥 '눈보라'. 바다에 홀린다면 아마도 뿌옇게 뿌려대는 저 비산 또는 포운에 포위되어 눈을 멀게 될 것 같았다. 하여튼 영화 속 한 장면같은 풍광을 옆에 끼고 결정을 내려야 했다. 두어 시간 후에 오는 버스를 기다리느냐 아니면 그냥 눈보라를 헤치고 걸어가느냐. 고민이 길지 않았다. 걷기로 했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 옷깃을 여며도 추웠고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눈을 뜨기도 힘들었지만 언제 이런 길 걸어보겠는가. 총길이 9km로 이미 1km는 왔으니 천천히 걷다보면 도착하지 싶었다. 지나가는 차량도 사람도 없는 적막강산의 길, 강한 눈보라 때문에 감상에 젖을 틈도 없었다. 그런데 얼마 걷지 않아서 우리 옆으로 낡은 소형승용차가 한대 섰다. 선택의 여지 없이 차량에 올랐다. 선량한 얼굴의 50대 아저씨는 연신 웃으며 말을 붙였으나 서로 말이 통할 리 없었다. 이내 조용해진 분위기. 15분 정도 달려서 숙소가 있는 동네에 하차했다. 허전했다. 아저씨가 너무 일찍 나타났다. 좀더 고생스럽게 걸었어야 했는데, 눈보라에 눈썹이 하얗게 얼어붙었어야 했는데, 저 스프레이 뿌리는 푸른 바다를 옆에 끼고 허위적허위적 걸었어야 했는데....정말 아쉬웠다. 친구들에게는 말을 아꼈다. 두 친구 중에 한 친구도 약간 아쉬워한 눈치였다. 




이것은 도자키 성당의 반대편 노선 버스와 정리권. 1번 정거장에서 종점까지 요금은 1490엔. 1490엔 * 3명 * 2회(왕복)=8940엔(약 83500원). 왕복 4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전세내다시피한 버스로 종점까지 찍고 왔다. 렌터카는 하루에 5만 원이라는데...친구의 말을 흘려 듣는다. 날은 잔뜩 흐려서 비바람 불고, 버스에는 고작 현지인 두세 분. 온통 동백나무가 촘촘히 자리잡은 울창한 숲과 숨바꼭질하듯 나타나는 바다를 내내 바라보는데 전혀 질리지 않았다. 자고로 여행과 예술은 심심해야 하는 법. 심심해야 그것도 매우 심심해야 기억에 남고 작품이 싹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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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둘을 데리고 다시 나가사키에 왔다. 누구는 묻는다. 일본을 좋아하느냐고. 만사에 시큰둥할 나이에 새삼 일본을 좋아할까. 모르는 게 많아서 알고 싶을 뿐.

벼르고 별러서 군함도에 가봤다. 예약을 제대로 했다. 가보니, 헐, 이 사람들(일본인들) 군함도를 과거의 낙원 쯤으로 부른다. 5000명이 넘는 일본인 거주민들이 한가족처럼 지냈으며, 보수가 넉넉해서 온갖 가전제품을 구비하고 넉넉하게 잘 살았단다. 심지어 TV보급률이 100%에 달했단다. 방파제 위로 파도가 넘실대는 날에는 아낙들이 몰려나와 그 광경을 구경했다는 사진도 보여주었다. 징병공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이 목숨 걸고 도망치던 그 바다. 일본 근대화를 이끌었던 석탄 산업의 주역이었던 군함도를 일본인들은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옛 시대의 영광을 돌이켜보는 그네들 표정은 자못 만족스러웠다. 지랄맞을.

저녁에 숙소로 돌아와서 친구들과 하루를 마무리했다.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된 것은 그래도 일본이 우리 땅에서 근대화를 꾀한 덕분이 아니냐는 친구의 발언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너네 집안에 징병 나가서 죽은 사람이 있어도 그런 말 나오겠느냐고 한마디 해주었더니 조용해진다.

When given the choice between being right or being kind, choose kind.

친절하기 위해선 뼈를 깎는 인내와 겸손이 필요하다. 자기만족에 빠진 나라를 상대하는 것도 그렇다. 화만 분출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60년 지기의 친구에겐 애정이라도 있지.

원수지간의 이웃을 좋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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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6-02-08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인임에도 식민지 근대화론을 신봉하는 이들이 있는데 일본인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아픔의 역사를 치욕으로만 기억하고 있을테니 그 시절이 그냥 화양연화로 보일테지요.

nama 2026-02-08 19:13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확실하게 확인했답니다.
 

10월 중순경 인스타그램에서 '너무나 아름다워서 실제일 것 같지 않은 도시 15'라는 게시물을 보았다.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프랑스 꼴마르, 체코 체스키 크롬로프, 스위스 루체른...대부분 유럽 지역에 몰려있는데 동양쪽으로는 유일하게 일본의 시라카와고가 들어있었다. 대단히 주관적인 목록이지만 그것보다도 시라코와고를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급호기심이 당겼다. 찾아보니 우리나라 안동 하회마을 같은, 전통 가옥으로 이루어진 일본의 시골 마을로 숙박도 할 수 있단다. 대충 마음에 담아두었는데 마침 올해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될 항공 마일리지가 있음을 갑작스럽게 발견했다. 보너스 항공권이라고 공짜는 아니어서 '세금 및 유류할증료' 라는 명목으로 102,800원을 지불했다. 도착지는 나고야.


막상 현지에 가보면 호텔 숙박이나 버스표 끊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닌데 여행 전 국내에서 예약이나 예매를 앞두고는 머리가 지끈거린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여행자수표를 발행하고, 필름 카메라 목에 걸고, 손에는 지도를 펼치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어설프게 물어가며 길을 찾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절이 문득문득 그리워진다. 스마트폰 없이는 비행기 탑승도 어려운 시대. 그러나 AI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 그러면 여행이 너무 쉬워지잖아. 나고야 출발 시라카와고행 직행 고속버스 예매와 시라카와고 민박 예약을 해냈다. 어떤 일이든 해놓고보면, 알고보면 별 것 아닌 법. 두 번째는 쉽게 하련만 ...여행 준비에 머리카락이 하얗게 셌음에 틀림없다.


재미도 없는, 자랑거리 같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뭘까...를 내내 생각해본다. 나에겐 추억이고 기록이지만 이런 게 세상살이에 무슨 보탬이 될까도 생각해본다.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나 혼자 알고있기에는 좀 아까워서가 아닐까. 내 인생에서 며칠을 뚝 떼어낸 사건인데...그리고 시라카와고가 꿈결에 본 동화같은 세계 같아서. 야스나리의 <설국>에 열광하듯이 어떤 한 마을에도 열광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나고야에서 시라카와고까지는 고속버스로 2시간 40여 분이 걸린다. 그 길지 않은 거리를 주파하는데 크고 작은 터널 50여 개를 통과한다. 무엇보다도 시라카와고에 가까와질수록 쌓인 눈의 두께가 달라진다. 터널을 하나씩 통과할 때마다 탄성도 조금씩 커진다. 드디어 마지막 터널을 지나면 <설국>의 첫 문장을 자연스럽게 읊조리게 된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설국>의 배경이 되는 도시는 따로 있지만 뭐 어떠랴. 눈의 고장은 마찬가지.



갓쇼즈쿠리 집락촌. 두 손을 모으며 기도하는 모습을 닮았다고 하여 일명 합장촌.

에 불을 밝히는 라이트업 행사가 연중 행사로 있는데 거의 로또 수준의 행운이 있어야 참가할 수 있다고 한다.




옛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집




하룻밤 머문 민박집. 여러가지를 느끼게 하는 하룻밤이었다.




저녁밥과 아침밥을 주는데 이건 저녁밥. 전통 방식으로 꼬치에 끼워 화로에 구운 생선이 인상적인데 짭쪼름한 게 맛있어서 꼬리까지 먹어치웠다.




시라카와고 버스 터미널 게시판에 있는 사진을 찍은 사진. 무언가를 지켜내는 장중한 아름다움. 80년 만에 지붕을 교체할 때는 텔레비전 방송까지 했다고 한다. 소복하게 쌓인 눈을 봤으니 저 장면까지 보고 싶다면 욕심 되시겠다.




내가 찍고 내가 감탄한 사진. 우리 나라의 산과는 다른 일본 맛이 나는 풍경.


















<설국> 표지에 쓰인 사진이 바로 시라카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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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12-14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아름다워서 실제일 것 같지 않은 도시 15‘ 에 선정될 만합니다. 초가 지붕 위에 앉은 새떼인 줄 알았더니 사람이군요.

nama 2025-12-14 19:26   좋아요 0 | URL
옛 것을 지키며 사는 게 쉬워 보이진 않지만, 구경꾼 입장에서는 참으로 볼 만합니다. 하룻밤 머물며 보니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모습이 감동으로 다가오더군요.
관광객이 몰려드는 것도 장관이고요.
 

친구에게 오이지를 담가달라고 해서 몇 개 얻어 먹고 있다. 늘 부글거리는 속도 편해진 듯 싶다. 내년부터는 좀 정신차리고 오이지를 담가 먹어야겠다고 다짐은 해본다. 마음이 늘 바깥에 있으니 집안 살림은 마지막 차례가 된다. 식구들에게 밥을 해먹이는 일이 평생 과제 중의 과제이다.


도쿄에 다녀온 지 닷새가 되었다. 8박 9일 동안 아사쿠사의 좁아터진 호텔을 베이스캠프 삼아 도쿄 시내를 우왕좌왕하다가 왔다. 가깝고도 먼 이웃 일본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누가 가라고 한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아니 아무도 내가 어디를 가는지 관심도 없는데 참으로 열심히 다녔다. 집안 살림은 어설퍼도 여행만큼은 야무지게라고나 할까. 다만 야무지지 못한 위장 때문에 내내 고생을 했는데 이제는 여행의 신도 내 꼴을 봐주지 않으려나 보다.


여행 전에 읽은 책 중 단연 압권은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책.















2007년에 나온 책을 그때 구입하고 앞부분만 조금 읽고 밀쳐놨었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너무나 재밌다. 맛집이나 핫플레이스와는 관계가 멀지만 일본을 제대로 봐야겠다는 열망을 불러일으킨다. 


다녀오고나서 눈에 들어온 책은
















궁금해서 일단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첫장부터 끌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새로 책을 사는 게 좋을 것 같다. 


반쯤 읽고 여행 중에 읽으려고 했으나 단 한 페이지도 넘기지 못하고 그대로 들고온 책으로는
















p.124

'후수로 일린다'는 무도 용어인데, 시간적인 지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난제에 재빠르게 대응한다 해도 '선수를 잡았다'라고는 하지 않는다. 어려운 문제에 맞닥뜨릴 때 그에 대해 어떤 답을 가지고 대응하는 행위는 모두 '후수로 밀린다'가 된다.

  이 사실을 자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후수로 밀리는' 훈련을 받아 왔기 때문이다. 질문을 받고, 거기에 어떤 대답을 해서 정답을 맞히면 칭찬받고 틀리면 벌을 받는다는 학교 교육의 형식이 애당초 '후수로 밀리는' 연습이다. 취직을 해도 '후수로 밀리는' 훈련은 계속된다. 이번에는 '주어진 과제를 적절히 해낸다'와 같은 식이다. 과제가 우선적으로 주어지고, 거기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생각하는 틀에 익숙한 사람은 모두 '후수로 밀리는' 사람이다.

  왜 우리는 '후수로 밀리는 ' 훈련을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강요당하는 것일까. 별로 어려운 얘기는 아니다. 질문을 하거나 과제를 내는 쪽은 '보스'이고 대답하거나 평가받는 쪽은 '부하'이기 때문이다. '무비판적으로 상급자를 따르는 마인드'를 형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후수로 밀리는' 기술만을 선택적으로 체득한다. 

                                         '선수를 잡거나 후수로 밀리거나' 중에서


무엇이 '선수'이고 무엇이 '후수'인가. 누가 '선수'이고 누가 '후수'인가. 나는 '선수'인가 '후수'인가. 이어지는 이런 물음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만하다.


p.145

<사기> 등에 나오는 공자의 세상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허구다. 공자는 아마도 이름 없는 무당의 아들로서 일찍 고아가 되어 미천하게 성장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을 처음으로 깊이 응시한 이 위대한 철인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사상은 부귀한 신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여기까지 읽은 부분으로 나머지도 빨리 읽고 싶다.)



이제 본론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고양이 빌딩이다. 구글 지도로 못가는 데가 어디 있나, 싶었는데 이 곳이 그러했다. 지나가는 행인, 서점에서 일하는 사람 등 8명에게 물어 겨우겨우 찾아갔다. 길 찾기에 일가견이 있는 남편도 힘들어 한 곳이다. 


고인이 된 분의 서재를 찾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저 까만 빌딩에 손을 댄 순간 뭔가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수만 권의 책을 읽고, 수백 권의 책을 써도 결국은 누구나 죽는구나, 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에 가슴이 저려왔다. 주인을 잃은 저 검은 빌딩은 고인의 무덤이자 비석 같은 것. 그는 '선수'일까 '후수'일까. 뭐 그런 생각도 무심히 하게 되는 곳.



현관문 앞에서 하릴없이 서성이다가 돌아왔다.
















이 책을 쓴 사람, 다치바나 다카시. 참 행복하고 뿌듯하게 읽었던 책이다. 
















몇년 전 친구가 읽고나서 나에게 넘긴 책. 이제는 눈에 들어올 것 같다.





이어서 찾아간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 와세다대학교에 있다.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시작으로 참 꾸준히도 책을 쓰고 있다. 사진 속의 칸칸이 모두 그가 써내려간 책이다. 읽는 속도가 쓰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게 하는 작가. 쓰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도 못 읽겠다고 징징대는 이 누구.



이제 결론이다.


츠바야 서점에도 갔었다. 



엄청 커다란 책에 가격도 엄청 나다. 




감히 만져보지도 못하고 나왔다.


한바탕의 꿈 같은 여행이었다. 다치바나 다카시도, 무라카미 하루키도, 데이비드 베일리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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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에 다녀왔다. 몇년 전 혼자 양구에 다녀왔던 남편이 나한테 꼭 보여주고 싶었단다. 여행은 주로 내가 옆구리 찔러서 다녀오는데 이번만은 남편이 친절하게도 내 옆구리를 찔러주었다.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이 있는 법. 그간 열심히 찌른 보람이 있었다. 

  양구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었다. 남편이 주로 보는 텔레비전 당구 경기가 양구에서 많이 열린다는 정도쯤. 친구 남편의 고향이 양구라고도 했다. 내가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동네가 양구였다. 인터넷 검색이 있지만 미리 알고 가는 것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알고 가는 것보다 모르고 가야 더 생동감과 현장감이 있다. 동네가 크면 얼마나 크랴.


펀치볼. 

남편 말에 따르면 거인이 땅바닥에 주먹으로 펀치를 해서 움푹 파인 모양으로 둥그런 분지형태를 띠고 있는 마을이라고 한다. 과연 그랬다.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넓다. 한 바퀴 걸어볼 수 있는 크기가 아니어서 놀랐다고나 할까. 




을지전망대 가는 방법은 약간 복잡하다. 네비게이션을 따라가면 전망대는 없고 매표소 건물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절차를 밟아야 한다. 전방 지역이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음..자세한 설명은 안 하고 싶다. 모르고 가야 재밌으니까. 다만, 인터넷 신청을 할 수도 있고 현장 접수도 할 수 있는데 성수기 때는 미리 알아봐야 할 듯하다. 

  두어 시간 기다림 끝에 선두 차량을 따라 출발했다. 탑승 인원 확인, 휴대폰 촬영 금지 스티커 부착, 경광등 부착, 네비게이션 가리개 장착, 출발 차량 번호 부착 등 삼엄한 준비 과정이 낯설지만 신선하다. 분단의 지난한 슬픔 앞에서 한낱 관광으로 전락한 이 상황을 신선하다고 느끼는 모순. 안보관광. 

  유일하게 사진 촬영이 허락된 곳에서 펀치볼을 피라미드 모드로 찍고 있는데 새하얀 얼굴의 앳된 병사가 다가와서 사진을 보여 달란다. 자, 봐요. 절대 함부로 찍지 않아요. 피라미드로 찍는 폼이 눈에 띄었나보다.

  펀치볼. 알고보니 펀치볼은 화채그릇을 의미한단다. 인도 치토르가르를 치약가루, 바라나시를 비아그라로 명명해버리는 남편의 상상력과 엉뚱함이 참 사랑스럽다. 어쨌거나 주먹질도 펀치니까. 사전에서는 '산간 또는 산허리의 우묵한 곳'이라고도 나와 있다. 이곳에서 재배되는 사과는 특히 일품이라고 한다. 


박수근.

동네가 온통 박수근이다. 영국의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이 셰익스피어로 먹고 살듯 이곳 양구도 그런 분위기를 풍긴다. 다만, 먹고 사는 것보다 그에 대한 존경심이 남다르다고 할까. 박수근 미술관 가는 길에 박수근 동상과 아파트 벽화를 한 컷으로 담을 수 있는 교차로가 있는데 사진에 담지 못해 내내 아쉽다.




박수근 미술관.

군립으로 운영하는 박수근 미술관은 내 상상보다 훨씬 훌륭하다. 미술관 부지와 건물에 생동감이 넘친다. 아무래도 소도시에 있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이 내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



박수근 화백상.

박수근의 특징을 한 단어로 말한다면, '소박'. 생김새도 참 소박하게 생기셨다. 미술관에 있는 그의 말을 옮긴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하고 다채롭지 않다.

나는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물론 어린아이의 이미지를 가장 즐겨 그린다."


전시물을 보다가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 했다. 다음 사진을 먼저 보시라.



밀레의 그림을 보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박수근. 그가 감명깊게 보았던 밀레의 화집이 이런 것이었을까? 흑백사진으로 만든 스크랩북조차 소박하기 그지없다. 그를 둘러싼 세상이 온통 소박했구나, 하는 생각에 잠시 먹먹해짐.




그의 이력서. 양구공립보통학교 졸업 후 미술공부(독학). '독학'이란 한자에 유독 눈이 간다. 15세 때의 일이다. '소박함'으로 한 세계를 일군 분. 책으로는 봤으나 건성건성 읽었음이 틀림없는, 그의 진면목을 미술관에 와서야 확실하게 깨닫는다. 


양구 9경

1경 양구수목원

2경 한반도섬

3경 두타연

4경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

5경 양구백자박물관

6경 펀치볼

7경 양구봉화산

8경 상무룡출렁다리

9경 광치계곡


3경 두타연에도 갔는데.

을지전망대보다는 덜 까다롭지만 역시 안보관광지로 자차 없이는 접근하기가 어려울 듯하다. 앳된 군인들의 차량 점검, 인원 파악 등도 비슷하다. 문화해설사의 너스레가 유쾌하고 명확한 설명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다만 주의할 점은...




곳곳이 지뢰밭이란다. (근데 사진 올리기가 참으로 난해하다. 시간과 노력을 많이 잡아먹는구나.)



양구백자박물관.



예술은 때로 장난...


15~16세기 양구지역은 도자기 생산의 요지였다고 한다. 새로 알게 된 사실.


양구 9경에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지만 내게는 새로운 구경거리였던 것은?


순환자원 회수로봇으로 캔이나 페트를 넣으면 한 개에 10포인트(10원)를 받는다고 한다. 디지털 폐지수집으로 불리는 앱테크보다 실용적이고 건강한 시스템이란 생각이 들었다.


'동네가 크면 얼마나 크랴' 했던 내 어리석음. 1박 2일 동안 다섯 군데를 보았으니 네 곳은 다음으로 남겨둔다. 양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인제에 자리한 서점 <책방나무야>를 들렀다. 인제 버스터미널에서 아주 가깝다. 이 동네에 자주 왔었지만 서점은 처음이다. 인터넷 검색이 필요한 순간.



주인분하고 몇마디 나누었는데 동네에 이런 책방 하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망하면 안되니까 책 두 권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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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5-05-26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양구라는 곳을 들어만 봤지 가보진 못했어요. 양구 펀치볼 시레기, 사촌동생 군복무지, 그 정도가 전부네요. 강원도가 제일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이라서 그런지 가본 곳이 별로 없는데, 이번 여름엔 강릉엘 다녀오려고 계획하고 있는데 양구에도 관심이 가는데요.
방문하는 지역의 작은 책방 들르시는 걸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잘 팔리면 좋겠는데.

nama 2025-05-26 08:38   좋아요 0 | URL
양구는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매우 활기차고 재밌는 곳이에요. 쇠락의 분위기를 풍기는 남도지방과는 달라요. 한달살이도 해보고 싶은 곳이지요.
지역의 독립서점 방문은 제 나름의 프로젝트 같은 것으로, 관찰하고 비교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어요. 그리고 한 사람이라도 더 관심을 기울여야 생존이 가능한 세계이구요. 무엇보다 주제가 있는 여행을 만들어주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