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에 틈틈이 포스팅하는 건 힘든 일이다. 일정 따라 움직이다보면 새벽 4시에 출발하기도 하고 밤 늦게 체크인을 하기도 한다. 밥 챙겨 먹는 것도 큰 일이다. 쌓이는 여독에 머리만 닿으면 잠이 드는데, 전기포트에 달걀을 삶다가 그냥 잠들어버리는바람에 삶은 달걀이 구운 달걀이 되기도 했다. 새로 장만한 건데 다시 새것을 사야할 판이다. 일정 중간에 주어진 짧은 휴식 시간에 사진 한두 장과 문장 몇 개를 완성하여 포스팅하곤 했는데 이게 읽는 사람에게는 꽤나 싱거웠던 모양이다. 예전의 여행기에 비하여 글이 짧아졌다며 혹시 어디 아픈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는 내 친구들. 하기야 메모 수준의 짧은 글에 덜렁 사진 한두 장이 전부였으니.. 게다가 데스크탑이나 노트북으로 쓰는 것도 아니고 핸드폰에 있는 앱에 쓰는 글이니 생각이나 표현력이 조그마할 수밖에. 세상이라는 넓은 화폭에 조그만 손가락으로 점을 찍는 행위라고나 할까. 그런 보잘것없는 메모 수준의 글을 왜 쓰려고 했을까.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여행의 순간을 붙잡아두기 위해서? 불만족스러운 단체여행에 대한 화풀이? 현장감의 기록이라 여겼는데 지나고보니 자랑질?

  이래저래 피곤한 여행이 끝난지 열흘이 넘어간다. 여독의 결과는 감기, 감기의 결과는 축농증이 되었다. 달갑잖은 축농증으로 냄새를 못맡고 집중력도 흐려지는 가운데 겨우 정신차리고 몇자 써보고 있다. 평생 앓은 감기를 셀 수 있을 정도로, 코로나도 피해가는, 여간해서는 감기에 걸리지 않았는데 이번엔 된통으로 걸렸다. 아무래도 평소 복용하는 면역억제제가 확실하게 제 역할을 했나보다. 여행도 예상보다 힘들었다. 특히 뉴욕이 그랬다. 30일간의 남미여행 끝에 별책부록 같은 3박 4일의 뉴욕여행. 춥고 음산하고 눈과 비가 오는 겨울의 뉴욕을 감당하기에 내 몸은 늙었는가.


1. 내가 서있는 곳이 맨해튼일까, 브루클린일까?

 

브루클린브리지를 보고 걷기 위해서 맨해튼 5번가쯤에서 지하철F선을 타고 York Street역까지 갔다. 역사를 나오면 눈 앞으로 짠하고 나타주면 좋으련만 브루클린브리지는 그렇게 쉬운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여러 행인에게 물어보니 하나같이 친절한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그 중 더 적극적인 행인은 더 구체적으로 되물었다. 사진 찍는 장소에 가려고 하느냐, 다리를 걷기 위해서 가느냐고 물었다. 걷기 위해서라고 대답하는데...? 사진이 잘 잡히는 곳은 브루클린쪽인데 맨해튼에도 사진 찍는 곳이 그새 개발되었나?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왜 브루클린브리지가 왼쪽에, 맨해튼브리지가 오른쪽에 있지?          

맨해튼 동쪽에서 강 너머의 브루클린을 바라보면 왼쪽에는 맨해튼브리지가 그 옆 오른쪽으로는 브루클린브리지가 나란히 보인다. 반대로 브루클린에서 맨해튼을 바라보면 왼쪽에 브루클린브리지가 그 옆으로는 맨해튼브리지가 나란히 보인다. ? 여기는 브루클린인데 이건 뭐지?

 같은 장소를 두어 바퀴 헤맨 끝에 드디어 브루클린브리지에 올라섰다. 궂은 날씨면 어떠랴. 이렇게라도 오지 않으면 안될것 같아서 오긴 왔는데...어라, 눈 앞에 펼쳐진 빌딩 숲을 바라보자니 브루클린이 그새 맨해튼으로 변했네. 근데 왜 맨해튼은 우중충하고 낡은 동네가 되어버렸나....

 더 이상 길을 헤매면 날이 어두워질까 두려워서 다리 끝에서 처음 시작점으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눈보라는 계속 몰아치지만 언제 또 여기를 오겠는가. 지치고 배고팠지만 그래도 왕복하는 기분도 좋았다. 인생은 다시 살 수 없지만 다리쯤이야 다시 걸을 수 있는 거 아닌가 뭐. 다리 끝에서 동네로 접어들며 거리의 환경미화원분들께 지하철역을 물었다. High Street역에서 A선을 타면 된단다. 찾아갔다. 구글맵으로 확인해보았다. ? High Street역은 브루클린에 있었다. 이 사실을 남편에게 전하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여긴 분명 맨해튼인데 왜 브루클린이 나오냐며 의심의 눈빛을 보낸다. 이젠 구글맵도 이상하군....그러다가 순간 처음에 내렸던 York Street역이 눈에 들어왔다. 맨해튼 어느 구석이라고 생각했던 York Street역이 브루클린에 떡하니 점을 찍고 있었다. , 이 깨달음! 여기는 맨해튼이 아니라 브루클린이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이걸 확증편향이라고 하는 건가. 맨해튼에 있다고 믿는 순간 모든 정황을 거기에 맞추고 다른 사실들을 왜곡하고 회피했다. 부끄러움과 참담함. 이게 늙어가는 모습일까.


2. 갑부의 서재

J.P. 모건의 서재에 갔다. 글보다 사진 한 장으로 설명이 끝날것 같다.





마침 전시회도 있었다. 모건의 서재와 미술품 등을 관리했던 사서, 벨 다 코스타 그린(Belle Da Costa Greene)에 대한 전시와 유명 인사들의 자필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카프카, Keats 의 필적을 살필 수 있었고 심지어 영국의 헨리8세의 왕비였던 앤 볼린이 사인한 편지도 있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면 다른 관람객처럼 코트도 맡기고 하나하나 천천히 살려보련만... 짧은 감동과 여운만 안고 발길을 돌렸다.















모건 박물관에 관한 정보는 이 책에서 얻었다. 뉴욕에서 살아본 사람의 글이다.


3.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역쯤 되겠다. 우선 사진 먼저.



승강장 숫자만으로도 세계에서 가장 큰 기차역이라고 한다. 개업일이 1913년 2월 2일이라고 하니 백 년이 넘은 대단한 건축물이다. 지하세계로 통할 것 같은 승강장 입구만 일별해도 호흡이 멈추는 곳이다. 그러나.... 지친 몸을 잠시 기댈 곳은 아니다. 도대체 의자 하나 찾을 수 없다. 물론 식당이야 있지만 그곳은 철저히 자본주의화된 장소일 뿐이다. 돈이 좀 있는 사람은 식당 의자에 앉아서 편히 밥을 먹고,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은 의자 없는 탁자에 기대 서서 밥을 먹고, 돈이 없는 홈리스는 밖에서 추위에 벌벌 떨며 행인의 동정에 기대거나 쓰레기통을 뒤져서 끼니를 해결한다. 그 모든 것을 한 컷에 담을 수 있는 곳이 뉴욕 맨해튼이다.



세계 여기저기를 다녀보지만 뉴욕은 가장 기가 빨리는 곳인 것 같다. 2019년에도 뉴욕 여행 후 병이 났던 기억이 생생하건만 이번 2025년 3박 4일 여행도 만만치 않은 후유증을 선사하고 있다. 미국 입국 시, 현금은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고 묻질 않나, 호텔 예약증까지 꼼꼼하게 살피지 않나, 미지의 불법체류자를 감별하기 위한 그네들의 불친절하고 도도한 태도에도 기가 질린다. 이런 땅을 돈 싸들고 굳이 찾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뉴욕~~ 안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십 여 일 동안 코카서스 3국을 휘젓고 다니다가 돌아온 지도 보름 가량 되어간다. 머릿속으로는 날마다 여행기를 작성했다. 쓸 말이 없지 않으나 기존 여행기나 가이드북에 있는 말을 피해가자니 딱히 꼭 해야 할 말도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써야 할 이유보다 쓰지 말아야 할 이유가 앞서는 건 뭔가. 겸손을 떨다니...이제야 철이 드는 지도 모르겠다. 이유가 있다면, 내 스스로 기획한 여행이 아니기 때문일지도. 시간은 넉넉하니까 한 달 정도 계획을 세워 다녀올 수도 있는데 이젠 조금씩 자신감이 떨어진다. 한 나라 정도라면 그럭저럭 해보겠지만, 그 강건함을 자랑했던 다리도 삐그덕거리고, 남편 후배 부부와도 동행해야 하고... 열정은 사라지고 핑계는 늘어나니 결국 세미패키지라는 여행 상품을 택했다. 그래도 이십 여 년 간 인연을 이어온 여행사가 있다는 건 믿음직하면서 흐뭇한 일이다. 사업가라기 보다는 여행가에 가까운 사장님, 사업체라기 보다는 동호회 같은 여행사. 이 보다 더 좋은 여행사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부족함을 기꺼이 맡기기로 했다.


이동 경로는 아제르바이젠(IN) - 조지아 - 아르메니아 - 조지아(OUT). 이런 순서가 된 건 아제르바이잔 입국이 까다롭기 때문인데 항공으로만 입국이 가능하고 육로로는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대신 육로를 이용한 출국은 가능한데 실제로 경험해보니 불편하고 불친절하기가 신장 위구르 다음이라고나 할까. 가슴팍에 여권을 펴들고 서서 죄인처럼 사진을 찍혀야만 했던 신장 위구르를 앞서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터. 이렇게 된 원인은 서로 적대시하는 아제르바이잔과 조지아 때문인데 영토 분쟁이라는 심대한 문제가 걸쳐있다. 가벼운 여행자에게는 심적으로 부담되는 주제가 되겠다.


1. 여행 가기 전에 접했던 책 중에서 몇 권을 꼽는다면,















얼마 전까지 달랏에서 한달살이를 하고 계속 여행 중이신 현경채 님의 책. 코카서스를 갈 때 딱 한 권을 읽어야 한다면 바로 이 책이라고 할까.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견해가 되겠다.
















진지한 모드의 유재현 님 책. 복습용으로 읽으면 지적 만족감으로 흐뭇해진다.















현장 투입용 가이드북. 소소한 쇼핑 목록이나 와인 소개도 여행자에겐 알찬 정보.

















여행자의 허영심에 약간 부합하는 책. 조지아어 알파벳을 끝내 마스터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몇 글자 눈에 들어와서 읽을 수 있었다. 찰진 기분? 찰진 경험? 감히 말하건데 글씨 모양 다듬는 켈리그라피보다 낯선 외국어 알파벳 써보는 게 더 짜릿하지 않을까.


2. 국내에서 못 구한 책을 트빌리시에서 구했다, 조지아어 펜맨십. 





3. 아르메니아 '귬리'


메리라는 아르메니아 현지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아르메니아의 예술가, 작가, 음악가 들은 모두 귬리 출신이라고 한다. 어떤 설명도 곁들이지 않은, 설명이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이 사실이 내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왜 그럴까? 작은 도시에서 하룻밤 묵는다고 이해되지는 않을 터.


메리에게 물었다. 아르메니아계 미국 작가인 William Saroyan 의 < My Name Is Aram>에서 'Aram'의 뜻이 뭐냐고.

















Aram은 아르메니아를 뜻하며 ar- 는 creation(창조)을 의미한다고 한다. 아르메니아, 아람, 그들의 성산 아라랏...모두 ar-로 시작한다고.


1980년대 읽었던 이 책이 요렇게 대화의 주제가 될 수도 있구나.


*아르메니아는 인구가 280만 명쯤 되는데 해외에서 디아스포라로 사는 인구가 일천 만 명가량 된다고 한다.(현지 가이드의 말) 보통 책에서는 800만 명으로 적혀 있다. 어쨌건 해외에서 사는 사람이 많다는 건 여러가지로 생각해볼 일이다.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타인과 협동을 요구하는 스포츠 같은 것엔 관심이 적고 잘 못한다고 한다. 각자의 개성을 중시하는 사회라고 하는데... 좀 관심이 간다. 

*ATM, 아이스크림, 칼라 TV, MRI...이런 것들을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발명했다고 한다. 더욱 궁금해지는 아르메니아.



4. 조지아의 홈리스 견




조지아엔 집 없는, 주인 없는 개들이 거리에 널려 있다. 나름 관리가 되어 있어서 귀에 뭔가 부착되어 있는데 중성화를 했다는 표식이라고도 한다.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 공항 바닥에 대자로 누워 있어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는다. 저 멍멍이는 심지어 삶은 달걀을 줘도 입에 대지 않는다. 아무것도 부러워하지 저 당당함이라니. 개도 좋은 나라에서 태어나야 한다.



조지아 기념품으로 구입한 코렐 접시.



5.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동유럽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성 조지, 용을 무찌르고 있답니다


세 번째 사진의 기둥은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의 중심가에 있는 동상인데 저 노란색은 진짜 금으로 도금한 것이라고 한다. 위에서 열거한 유재현의 책에 그렇게 쓰여 있으니 확실할 터. 저 뒤에 있는 조지아 국기의 붉은 십자가. 이른바 성 조지 깃발은 영국을 비롯한 여러 곳을 상징하는 깃발로 지금도 쓰이고 있다고. 


성 조지, 검색하면 주루룩 나오네요. 다양성을 잡아 먹는 그놈의 인기.


6. '조지아' 하면 카즈베기



저 먼 산 꼭대기의 만년설. 몇 년 전만 해도 8월에도 만년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고 하는데 6월 현재 아주 쬐금 남아 있다. 이런 기후 위기 시대에 이렇게 비행기 타고 세상 구경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뜨는 비행기, 내가 아니 탄다고 안 뜰 것도 아니라며 내 말을 비웃는 나의 이종사촌 동생들. 그래도 고민은 해야 하지 않겠니?



해 넘어가는 저녁, 아랫 동네에서 바라본 산꼭대기 교회. 호텔 창문으로 밤새 바라봤다는...


7. 포도나무

조지아는 와인 산지 답게 진정 포도나무를 사랑한다. 

우리 나라에는 소나무, 조지아엔 포도나무.

포도 사랑이 깊어 조지아어 알파벳도 포도나무 모양인가?










8. 깍두기



카타르 도하는 경유지, 비행기 창밖에 펼쳐진 세계. 푸른 바다와 황량한 사막 사이에 있는 저 비현실적인 빌딩들. 내 눈으로 본 게 확실한가?


9. 조지아 산골짜기 작은 영화관 "Dede"

우리나라의 평창쯤에 해당될까. 메스티아의 스바네티라는 산골 마을에는 작디 작은 영화관이 하나 있다. 쌍둥이 자매 중 언니는 영화 감독으로 영화 <Dede>를 만들었고, 동생은 그 영화를 7년째 같은 자리에서 상영하고 있다. 오로지 한 편을 위한 영화관이다. 그러니까 영화관 이름도 <Dede>, 영화 이름도 <Dede>. Dede의 뜻은 엄마.



감독 Mariam Khatchvani. 싸인도 받았다.




이 동네에서 더 골짜기로 들어가면 우쉬굴리라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자매들이 태어난 곳으로 영화의 배경이기도 한 곳이다. 전통과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특히 여자들을 숨 막히게 하는 곳, 한 여성의 인생 분투기가 전개되는데 '팔자'가 참 모질기도 하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우쉬굴리 출신의 감독이, 우쉬굴리를 배경으로, 우쉬굴리의 삶을 그렸는데, 우쉬굴리에 다녀온 이방인들이 보고 있자니 영화가 가슴 속으로 쏙쏙 들어오더라는 얘기다. 한여름 더위에 한겨울의 눈 쌓인 장면도 볼 만했다. 겨울에 머물러보고 싶은 동네다.






10. 

여행 경비는 인생 수업료. 수업료 바닥나기 전에 부지런히 다녀야겠는데 글쎄 다리가 아파오네요.


11. 여행하는 여자들이 많은 이유

여행지에서 보면 여행자 10명 중에 여자가 7~8명이라면 남자는 고작 2~3명. 















p.341~342

방랑하며 사는 야성적인 "인디언들"만이 천성이 나태하다고 판명된 것은 아니었다. (루즈벨트) 프랭클린이 알기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사로잡혀 그들과 함께 살았던 다수의 정착민들도 집으로 돌아가기를 꺼려했다. 몸값을 주고 풀려난 사람들도 이내 정착지를 빠져나와 방랑자들을 다시 찾아 나선다. 이런 특이한 사람도 있었다. "포로 상태"에서 풀려나 집으로 온 그는 가족의 환영을 받고, 자리를 잡는 데에 필요한 큼지막한 땅도 받았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을 정도로만 땅을 경작하고, 그 땅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동생에게 법적으로 양도하고는 총과 겉옷만 챙겨 야생으로 돌아갔다. 프랭클린은 여자들은 더더욱 방랑하는 삶으로 돌아가려고 한다는 것도 알았다. 원주민들에게는 남편과 이혼할 자유를 포함해 정착지에는 없는 자유가 있음을 알아냈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집에 돌아가면 밥 해먹을 걱정이 앞서는 게 여자들 아닌가. 남이 해주는 밥이 가장 맛있다는 슬픈 사실.



12. 다시 코카서스에 가게 된다면?

아르메니아에서 두둑 연주를 질리도록 실컷 보고 오겠어요. 매끄럽게 춤도 추고 싶구요.



13. 스마트폰 없는 여행은 가능할까?

스마트폰을 자발적으로 반납하는 카페가 인기라는데, 스마트폰을 지참하지 않는 여행도 가능할까? 요란하게 찍어대는 여행객들을 보면 마치 사진 못 찍은 게 한이 되어 여행 온 건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사진은 여러 가지로 여행에 방해요소로 작용한다. 시야를 가려서 집중력을 분산시키고 배려 아닌 불필요한 눈치를 보게 한다. 물론 시간도 잡아 먹고. 내가 민폐가 되기도 하고 일행 중 누군가가 민폐의 주체가 되기도 한다. 또한 일행과 대화를 나눌 시간을 잡아먹기도 한다. 타인에 대한 관심과 친절을 거두어들이는 데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이 일조하기도 한다. 나는 사진 찍기에 매몰된 일행들을 보면 칼로 베인 듯 가슴에 통증을 느낀다. 내가 못 생겨서 그렇다고? 그래, 그렇다고 해두자.


14. 아제르바이잔에 대해선 할 말이 없나?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한 아제르바이잔, 처음부터 다시 여행을 시작...하실래요?


15. 인스타그램은 나의 앨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abolike 2024-07-10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후기를 읽으니 다시 한번 여행하는 느낌이었네요. 왜 사진 찍는 것을 거부 하셨는지 이해도 했구요. 좋은 생각이신거 같아 저도 한번 실행해볼까 생각중이예요

nama 2024-07-10 14:16   좋아요 0 | URL
무라카미 하루키는 카메라 없이 여행한다고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어요. 눈빛이 더 예리해지지 않을까 싶네요.
 


어쩌다 다녀온 라벤더 꽃축제. 평일, 그것도 월요일, 밭에 심은 꽃만큼이나 사람들이 많다. 강원도에서도 한참이나 외진 고성. 가본 사람보다 못(안) 가본 사람들이 많을 터. 짧은 기록을 남긴다.




라벤더 색깔의 도로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이 저절로 너그러워지지 않을까.




온통 라벤더 세상


어디 라벤더 뿐이랴









베일같은 꽃. 그대 이름은? 로열 퍼플 스모크트리(royal purple smoke tree) 

자엽안개나무라네요.




호밀(rye)밭



횃불을 잡은 듯, 마음을 밝혀주는 라벤더 아이스크림.

꽃보다 아이스크림!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서니데이 2023-06-13 06: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로도 라벤더색이고 아이스크림도 연보라색이네요. 축제 사진 올려주셔서 잘 봤습니다. nama님 날씨가 많이 더워졌어요. 건강 조심하시고 시원한 하루 보내세요.^^

nama 2023-06-13 08:32   좋아요 2 | URL
라벤더에 눈이 호강했습니다. 사진을 좀 더 많이 올리지 못해 유감입니다.
서니데이님은 어느 계절을 좋아하시는지요. 저는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 전 이맘때가 참 좋습니다. 즐거운 날 되시길 바랍니다.^^

얄라알라 2023-06-13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제 새벽에 ˝6월 축제˝검색을 했더니 라벤더 축제가 있더라고요

제가 본 건 ˝고창˝축제 같은데, ˝고성˝을 잘못 보았나도 싶네요.

아름다운 보라빛이네요^^ 6월 초중순, 딱 좋습니다. 화사하고^^

nama 2023-06-13 10:41   좋아요 0 | URL
다른 곳에서도 라벤더 축제가 열릴지 몰라요.

축제는 일부러 찾아가야 축제가 되는 듯 다녀오니 기분전환이 되네요.
 


한 나라를 며칠 여행했다고 그 나라를 알았노라고 말할 수 있나. 그래도 내겐 값진 경험이어서 여행의 기억이 소멸하기 전에, 나중에 되새김질하기 위해 몇 자 적어두려고 한다.


1. 인도네시아는 젊은 나라

  인도네시아는 평균 연령이 29세인 청년 국가라고 한다. 우리 나라는 44.5세.

많은 곳을 다닌 건 아니지만 내가 갔던 동네는 어딜 가나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광장, 거리, 전철, 유적지...모두가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치는 분위기였다. 젊은이들이 주인공인 나라처럼 보였다.

  인도네시아인 여행사 사장님께 인니에서 가장 인기있는 직업이 뭐냐고 물었더니 교사라고 한다. 이유를 물었더니 "학교가 많아서요"라고 한다. 학교가 많다는 건 학생이 많다는 얘기가 된다. 우리나라도 한때 그랬었고 그땐 국가도 젊었다. 사람이건 반려견이건 나라건 늙어가는 건 애잔하다.


2. 치안

  인니 관련 책에 쓰여있는 것보다 안전하고 깨끗한 인상을 받았다. 소매치기 당할지도 모르니 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다니라는 (잘 사는) 현지인의 조언도 있었으나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는 거리에서 그런 불상사를 보지 못했다. 우리가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도 친절하고 상인들에게서도 집요한 상혼이 보이지 않았다. 바가지를 썼다거나 사기를 당했다는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물론 딱 한번 있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갈 때 택시 요금이 여행을 끝내고 시내로 들어올 때에 비해 7~8천 원 정도 비쌌다. 그러나 내 기억에 어느 나라건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택시를 탔을 때 속임을 당하지 않은 예가 없었다. 불문율의 수업료다. 


3. 인간 신호등(빡 오가 Pak Ogah)

  자카르타의 빡 오가들은 교차로에서 교통정리를 해주는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인간 신호등. 교통경찰은 물론 아니다. 땀으로 번들거리는 새까만 얼굴을 한 남자들. 누가 시킨 것 같지는 않고 스스로 자구책 삼아 직업 삼아 거리에 나선 사람들일 것으로 추측한다. 그 옆을 지나가며 그들이 보낸 수신호의 혜택을 입은 운전자들은 차창을 열어 동전 하나씩을 그들 손에 쥐어준다. 하루종일 동전을 받아봐야 얼마나 될까. 때론 목숨이 위태로울 텐데 그들은 진지하고 성실하기 이를 데 없다. 메마르고 거친 땅에서도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민들레같은 강인함과 함께 삶의 고단함이 진하게 다가왔다. 그들을 보는 순간 가슴이 뻐근해지면서 수중에 있는 동전이나 단위가 작은 지폐를 탈탈 털어 운전자에게 건네게 된다. 보태시라고. 동전을 한낱 여행 기념품으로 가져가는 건 미안한 일이다.


4. 과일

  농산물 시장이 가깝고 마트마다 과일이 지천으로 쌓인 동네에서 살다보니 돈이 없지 과일이 없겠나 싶었다. 인니에서는 특히 열대 과일을 마음껏 먹으리라 기대했는데...과일이 없다. 자카르타의 유명 백화점에서도 기대만큼 다양한 과일을 만날 수 없었다. 과일철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과일철이 따로 없는 우리 나라. 과일 재배 기술은 단연 우리가 낫다고 할 수밖에. 허나 철 따라 사는 게 자연스럽지 않나?


5. 커피

  인도네시아의 커피 브랜드인 excelso 매장에서 선물용 커피를 샀다. 나중에 찾아보고나서야 excelso 가 나름 지명도가 있는 상품임을 알게 되었다. 200g 커피빈을 우리 돈 6,000원 정도에 구매했는데 쿠팡에서 찾아보니 자그만치 38,340원이다. 이거 이렇게 남겨도 되나 싶다. 자고로 커피 농사꾼만 억울할 일이다. 20봉지 넘게 샀으니 이것만해도 60만 원 넘게 남겼네, 했더니 딸이 그런다. 돈을 쓰고도 돈을 남겼느냐고. ㅋ


6. 팝송

  영어의 위력은 팝송에서도 드러난다. 영어권 나라가 아닌데도 팝송이라는 기호가 서로를 소통시키는 역할을 한다. 영어를 못해도 팝송 한두 곡쯤 부를 수 있다면 친구 맺기가 쉬워질 듯.




디엥 고원에 다녀올 때 여행사 사장의 차량에서 흘러나오는 어떤 노래에 숨이 멎는 듯했다. 정확한 가사는 몰라도 곡조가 가슴을 파고 들어왔다. 들어본 노래같기도 하고 아닌 듯도 하고. 몽롱하고 감미롭고 센티멘탈한 이 노래는 뭐꼬? 첫인상이 강렬한 이 노래를 다시 듣게 된 곳은 자카르타로 향하는 미니버스에서였다. 열악한 버스였지만 천장에는 tv 모니터가 달려 있었고 마침 모니터에서는 노래방이 시작되고 있었다. 옆자리에 앉은 인니 여성이 마이크를 잡고 운전기사에게 무언가를 요청하니 바로 이 노래가 화면에 떴다. 그래, 바로 이 노래였다! 옆자리 인니 여성은 노래를 잘 불렀다. 음색도 좋고 영어 발음도 매끄러웠다. 그러나 바로 파악하게 되었지만 이 인니 여성은 영어를 잘 못한다. 아니 거의 못한다. 영어를 못하는데 영어 가사 발음이 왜 이렇게 좋지? 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 남편과 이 노래를 다시 들었다. 부부애창곡으로 부르자며 연거푸 따라 불렀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부를 때마다, 인니 여행과 인니 여성이 떠오를 터. 노래의 힘이다. 팝송의 힘이다. 


7. nama

  nama 는 인도네시아어로 '이름'을 뜻한다. 이름이란 단어를 이름으로 쓰고 있는 나, 이렇게 싱거울 수가 있나....원.


8. 그많은 한국인은 어디에

  세계 어디를 가던 꼭 마주쳤던 한국인을 이번 여행에선 거의 본 적이 없다. 자카르타 유명 백화점에서나 언뜻 본 것 같은데 그마저도 확실하지 않다. 자카르타엔 한인 교민도 많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 설마 인니 관련 여행안내서가 드물어서는 아니겠지...


9.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점

은 무엇일까? 인니에서의 마지막 날. 무릎이 아파서 가만히 누워있자니 서글퍼지기 시작했다. 우울감을 떨치기 위해서는 밖으로 나가야 한다.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 발로 걸을 수 없다면 베짝(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만든 2인승 인력거)이라도 타고 한바퀴 돌아보고 싶었다. 호텔앞에 늘어선 한 베짝 기사에게 100,000루피아(9,000원 정도) 지폐를 보이며 한바퀴 돌자고 이런저런 제스처로 남편이 제시하자 베짝 기사는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고일 것 같은 감상에 젖어들었다. 며칠 동안 걸어다녔던 거리와 끄라톤 왕궁, 타만사리 등을 다시 훑고 지나갔다. 거리상 미처 가보지 못한 동네도 스쳐 지나갔다. 좋았다. 그냥 좋았다. 뜨거운 날씨도 좋고 일요일의 흥겨운 분위기도 좋았다. 여행을 복습하는 기분이 들었다. 여행은 이렇게 복습이 가능해서 좋구나. 

  지루한 시간들이 좋았다. 더 이상 갈 데가 없고, 할 일이 없어서 물끄러미 앞을 응시하는 순간들이 좋았다. 여행에 끝이 있듯 인생에도 끝이 있겠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nine 2023-06-13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namaste 첫 글자로 닉네임 쓰시는 줄 알고 있었는데.

여행 후기, 특히 마지막 문장이 여행의 묘미를 말해주는 듯 하네요. 여행의 진수...

nama 2023-06-13 13:22   좋아요 0 | URL
namaste 첫 글자가 맞아요. 인니어의 nama를 알고 허망했어요. 알았더라면 다른 이름을 사용했을텐데요.

무릎이 아프다보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더군요. 예전과는 좀 다른 여행이었어요.
 


걷는것만큼은 내가 자랑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는데 이제 내 자랑거리에도 끝이 보인다. 문패 '걷듯이 읽고, 읽듯이 걷고'를 '기어다니듯이 읽고, 읽듯이 기어다니고'로 바꿔야할지도 모르겠다. 여행도 독서도 언젠가는 끝이나겠지. 그 끝을 조금이나마 경험하게 된 사건이 있었다. 디엥 고원에서였다.


여행사 당일 투어로 왕복 7시간이 걸리는 디엥 고원. 손님이라곤 달랑 우리 내외뿐. 시속 40~70 km로 느긋하게 달릴 수밖에 없는 도로에 집중(내가 운전하는 것도 아닌데 집중하게 됨)하면서 마침내 도착한 곳은 일단 기온이 선선하고 상쾌했다. 약간 쌀쌀한 기운에 긴 소매옷을 걸쳤다. 내내 더위에 헐떡이다가 긴 소매옷을 꺼내는 기분이란...처음 도착한 곳은 아르주나 사원. 뭔가 비장한 의미가 있는 사원이지만 사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힌두교 사원이라면 인도에서 볼만큼 봤다는 오만한 마음도 있었고 굳이 알아서 뭐하나 하는 심드렁함도 있었다. 거기까지 힘들게 가서 하는 생각이 고작 이랬다. 간절한 마음 없는 관람은 눈빛마저 흐려질 수밖에. 그래서 단체로 소풍나온 학생들 손에는 A 4 학습지가 한장씩 손에 들려 있었다. 애들은 더 하니까. 나도 선생이었을 때 곧잘 써먹던 방법이어서 키득키득 웃음이 나왔다.







오래 머물 수도 없는 단출한 곳을 뒤로 하고 당도한 곳은 무슨 분화구. 펄펄 끓고 있는 유황 온천을 잠시 살펴보고 이내 높은 언덕을 오른다. 물론 자동차로. 이제는 등산이네, 하면서 차에서 내려 발랄한 기분으로 계단을 하나씩 올랐다. 채 스무 계단이나 올랐을까. 보폭이 넓은 계단을 단숨에 건너뛰는데 순간 무릎에 전해지는 강한 통증. 난생 처음 인대가 늘어난 맛을 봤다. 하기야 이 나이까지 인대 한번 고장나지 않았으니 그리 애통해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아픈 건 아픈 것. 좀전의 오만과 심드렁의 댓가를 치르는가 싶었다. 신성한 곳에서는 함부로 마음을 풀어놓지말 것.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시인의 시집. 이번 여행에는 이 책 한 권만을 챙겼다. 여행지에서는 책이 잘 안 읽힌다. 분주하게 돌아다니다보면 책을 읽을 기운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디엥 고원에서 돌아온 저녁. 아픈 무릎에 급한대로 셀카봉을 부목으로 묶어놓은 후 심란한 마음으로 누워있는데 잠시 시집을 들여다본 남편이 그런다. 


" 디엥 고원엔 무릎이 없는 영혼들이 많대."

"......?"


여행 내내 품고 다닌 시집에 첫번째로 실린 시의 제목이 <디엥 고원>. 여행의 피로와 시름 사이에서 맑은 샘물 같았던 시를 옮겨보는 것도 의미있을 터.



디엥 고원


                                        채인숙


열대에 찬 바람이 분다.


가장 단순한 기도를 바치기 위해

맨발의 여자들이 회색의 화산재를 밟으며

사라진 사원을 오른다


한 여자가 산꼭대기에 닿을 때마다

새로운 태양이 한 개씩 태어난다


무릎이 없는 영혼들이

사라진 사원 옆에서 에델바이스로 핀다

몇 생을 거쳐 기적도 없이 피어난다


땅의 뜨거움과

하늘의 차가움을 견디며

천 년을 끓어오르는 화산 속으로

여자들이 꽃을 던진다


어둠의 고원을 거니는 만삭의 바람이

여자들의 맨발을 어루만진다


똑같은 계절이 오고 또 가고

안개의 진흙이

제 몸을 돋우어 사원을 짓는다


모두가 신은 없다는데

나는 오늘도 기도가 남았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3-06-13 0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6-13 0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6-13 0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