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계속되다가 끝이 난다
앤 드 마르켄 지음, 송예슬 옮김 / 허블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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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는 굶주린 존재다. 오로지 먹는 본능만이 남아 인간의 더운 피와 내장을 탐한다. 그들의 굶주림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 이야기 속 주인공은 좀비가 된 지 오래된데다 왼팔을 잃었다. 그럼에도 좀비 동료들을 기억하고 어떻게든 '살아'간다. 과연 산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으나, 무언가를 애타게 갈망하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었다. 미래의 어느 날일까, 세상은 좀비들로 가득하고 누군가는 왼팔을 잃고 누군가는 머리를 잃고 누군가는 손가락을 잃었다. 그런데 뇌는 살아남았을까? 그들은 사색하고 잃어가는 것들을 기억한다. 


배고파서 먹었는데도 계속 배가 고프다면 굶주림은 분노가 된다고. 그래서 화자는 먹기를 멈췄다. 먹지 않은 상태여야 굶주림이 납득이 된다고 하면서. 화자는 이 비어있음의 상태 즉 굶주림이 살아있는 무언가를 잡아먹는 폭력으로 채워지는 것을 거부한다. 이 공허함이 폭력으로 채워질 수 없음을 알기에. 세상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고, 이 슬픔은 상실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거듭되는 상실을 경험한다. 그리하여 자신을 잃은 좀비의 허기는 채워지지 않는다.


외피는 좀비,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존재인데 어째서 지금 그저 살아있는 사람들 같은 건 왜일까. 어쩌면 지독한 상실은 슬픔과 분노를 부르고 굶주림으로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화자는 먹는 것을 멈췄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은 좀비를 믿지 못했다. 화자는 몸이 분리가 되어도 '너'를 불렀고, 생각했고, 갈망했다. 


이 이야기는 어쩌면 나라는 존재에 대한 각성, 어쩌면 소중한 존재에 대한 애도, 어쩌면 인간성을 간직한 인간이고자 한 존재의 바람일지도.


그렇게 이야기는 영원히 계속되다가 끝이 난다, 다행히도.



*폐가 없는데도, 목이 잘렸는데도 말을 하는 장면은 상상하기 어려우나 뭐 그럴수도 있겠지. 좀비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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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6-10-16 1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처럼 끝이 나기는 하는군요 다행이다면 다행이겠습니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건 안 좋을 것 같네요 그게 좀비만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 있어도 죽은 것처럼 살기도 하니... 좀비는 본능만 남는군요 좀비여도 사람이었던 걸 기억한다면 나을지... 좀비가 가득할 때는 사람으로 죽고 싶을 듯합니다


희선

꼬마요정 2026-10-16 22:34   좋아요 1 | URL
생각보다 책이 재미있었습니다. 정말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는 저주일까요, 아니면 다른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생각해보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이야기 같기도 합니다. 좀비는 먹는 본능만 남는다고 하는데 그건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요? 살아생전 잃어버렸던 것들을 기억하는 방식일까요? 어떻게든 끝이 난다면 다행입니다.
 
수살귀 - 끝나지 않은 이야기
쌈무이 지음 / 책과삶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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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을 좋아하는 내가 즐겨보는 채널에서 책이 나왔다!! 22가지 으스스하고 괴기스러운 이야기들을 담았는데, 이야기를 듣다가 책으로 읽으니 또다른 느낌이 들었다. 


괴담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이면을 보여주는 구멍 같은 것이다. 범죄나 제도의 희생양이 된 사람들이 귀신이 되어 우리에게 들려주는 또 다른 삶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솔직히 죽은 뒤의 세상이 이렇다면 정말 끔찍하겠지. 아직 가 보지 못한 곳이라 사람들은 이승의 삶을 저승에 투영한다. 개개인의 성격이 죽는다고 달라지지 않을 거라면 저쪽 세상 역시 이 세상과 다르지 않겠지.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있는 거대한 벽에 나 있는 작은 틈으로 서로를 엿보고 있는 듯한 이야기들을 보자면 결국 지독한 악의가 아니라면 사람은 어느 순간 자신이 행한 일을 돌아보게끔 된다. 그리고 누군가의 선의 또는 자신의 선의가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금기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은 모두가 어우러져 사는 곳이니, 해를 끼치지 않는 생명들을 해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집안에 복을 준다고까지 하면서 말이다. 


하늘은 높고 입맛이 돌아 살이 찌기 좋은 계절, 밤은 점점 길어지고 물귀신은 집요하니 이 책 읽으면서 긴긴밤을 지내보는 것도 제법 재미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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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기스럽고 으스스한 내용의 소설들을 보다 보면 '속박' 그 자체로 무시무시한 상황을 자아내는 이야기들이 있다. 내 정신이 내 몸에 갇혀 주변인의 도움 없이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 말이다.


 낯선 병실에서 눈을 떴다. 오기는 교통사고로 몸이 마비되었고, 아내는 죽었다. 그에게 유일한 가족은 장모 뿐이다. 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타운하우스에 살던 그는 교통사고 후 인생이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아내는 죽었고 아내가 가꾸던 정원은 안과 밖을 차단하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장모는 그간 드러나지 않았던 오기와 아내의 삶 아니, 자신의 딸의 삶을 알게 된 듯 했다. 


말을 할 수 없는 오기와 속을 알 수 없는 장모의 동거는 과연 어떻게 될까. 퇴원 후 점점 고립되어 혼자가 되어가는 오기는 갇힌 '몸'과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장모는 얼마나 괴롭고 슬플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모의 입장에서 보면 기가 막히고 서글픈 이야기라고나 할까. 아무리 원수를 괴롭혀도 죽은 딸은 돌아오지 않을테니까. 뭐, 악인은 스스로 구렁텅이로 떨어진 것일지니.


오토바이로 배달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나'는 신호 대기 중 덮친 8톤 트럭에 치여 왼손만 조금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조사 중 '나'의 과실이 드러나는 바람에 '나'는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하고 엄마가 사는 반지하로 들어와야 했다.


엄마의 애인은 개차반이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이고. 엄마는 어쩌다가 개차반만 곁에 두는 건지. 이건 개인의 문제일까 시스템의 문제일까 잠시 생각하다가 이후 벌어지는 상황 때문에 속이 안 좋아졌는데...


살고자 하는 욕망이 얼마나 강한지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이야기였다. 갇힌 몸에서 삶의 의지를 잃어가던 주인공이 바깥에서 발생한 재난에서 살아남기 위해 있는 힘 없는 힘에 있는 머리 없는 머리를 다 짜내는 걸 보면서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았으면 장하다, 짜릿하다 이런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이 소설은 그렇다기보다...


예전에 매일 죽어야지 늙으면 죽어야지 하시던 할머니가 막내동생 결혼하는 건 보고 죽어야 하지 않겠냐고 하시던 게 생각났다. 참고로 막내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고 할머니는 만약 살아계셨다면 지금 연세가...110세 쯤 되셨겠다.


교통사고 후 소영은 기억을 잃었고, 엄마는 늘 소영의 곁을 지켰다. 휠체어를 탈 수 있게 되고 소영은 퇴원했다. 집에는 휠체어에 앉아 움직이지 못하는 아빠가 있었고, 소영은 어딘가 위화감을 느끼고 불안해한다.


끔찍한 모성을 다룬 소설인데 여기서는 몸에 갇힌 게 무서운 게 아니라 '엄마'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갇힌 게 너무 무서웠다. 세상에 태어나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부모를 믿는 건 어쩔 수 없는데 이 삐뚤어진 모성애는 여럿을 잡았다. 가족이라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한 개인을 속박하고 좌지우지 하는 모습이 너무 소름끼쳤다. 자신의 삶을 완벽하게 만들고자 '엄마'는 끔찍한 일을 계획했는데...


회빙환도 아니고 무슨 이런 일이 다 있을까, 자기애가 넘쳐서 모든 이가 자신의 삶을 '엄마'로 빛내줄 도구라고 생각하는 건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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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10-01 0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잘 안 읽어서 몰랐는데 요즘 공포소설류가 많이 간행되나 보네요

꼬마요정 2026-10-01 11:35   좋아요 0 | URL
요즘 공포소설, 오컬트물 엄청 많아요. 비슷비슷한 내용도 많지만 참신하고 재밌는 책들도 많답니다. 세상이 어수선한가 이런 장르물이 넘쳐나네요.
 
웅얼대는 시체를 ㅣ 사용 중 2
그래프턴 태너 지음, 나원영 옮김 / 워크룸프레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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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칼이 나오고, 그 식칼로 양복 입은 사람이 종이 더미를 썰고 있다. 제목은 <웅얼대는 시체를>이다. 시체가 웅얼댄다고? 좀비물인가? 아니면 <아메리칸 사이코> 같은 스릴러인가? 나는 두근대는 가슴을 부여잡고 책을 펼쳤다.


첫 장부터 범상치 않았다. 알고보니 대중문화 비평서였다.... 그래프턴 태너가 2000년대 미국 대중 문화를 비평한 글을 나원영이 옮긴 것이고, 그 글을 활용해서 나원영이 자신의 글을 덧붙였다. 태너에 따르면 21세기 미국 대중문화는 '시체'다. 문화를 구성하는 두 축이 시간과 인간인데, 시간은 멈추고 인간은 지워졌다고. 시간도 인간도 없는 '시체'가 된 문화가 기계처럼 작동한다고 비평한다.


'유령론'도 흥미로웠다. 난 또 처음에 유령이 나오고 영화 <폴터가이스트>가 나오고 언캐니가 나오고 해서 호러 영화 비평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유령론은 이 '웅얼대는 시체'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고, 베이퍼웨이브 장르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크 데리다가 고안했다는 유령론은 과거가 약속한 미래는 실패했으며 그저 과거의 반복을 할 뿐이라고 한다.  레트로 등을 말할 때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일까, 아니면 이제 역사의 진보는 없다는 말일까. 


베이퍼웨이브 장르는 더더욱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디지털 전자음악 장르이면서 주류가 아니고, 언캐니하게 쪼개고 왜곡하기를 반복한다고. 끊임없는 변주가 가능한 재즈와는 다른 성향인 걸까. 잘 모르겠다.


좀비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안드로이드 로봇이라고 말하기도 그런 이 웅얼대는 시체는 현재 우리가 맞닥뜨린 문화라는데, 내가 아무런 생각 없이 듣고 즐기는 음악이나 영화 등이 과거의 반복일 뿐이고 그 안에는 파편화된 인간마저 사라져 버린 것인지 의아하면서도 으스스하다. 정말 괴기스러운 이야기이니 내가 책을 완전히 잘못 선택한 건 아닌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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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6-09-29 1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중문화 비평서였군요 그것도 2000년대 미국... 미국이라고 해도 한국과 아주 동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꼬마요정 2026-09-30 16:43   좋아요 0 | URL
요즘은 정말 빠르더라구요. 미국에서 유행하면 곧 한국에서도 유행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아예 다른 것들도 있지만요. 책이 대중문화 비평서인 줄도 모르고 읽다가 혼났습니다. ㅎㅎㅎㅎ
 
볼수록 아름다운 우리 불화 - 망자를 위로하고 산 자를 다독인 불교 회화 이야기
김소연 지음 / 미술문화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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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 제작된 우리 불화를 소개하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삶과 죽음에 대해 옛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들이 염원하던 바는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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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9-17 15: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책이 나왔군요. 불화 중에서도 고려 불화는 정말 아름다움의 극치를 자랑하는데 말이죠. 저도 찾아 보겠습니다.

꼬마요정 2026-09-17 23:46   좋아요 0 | URL
오, 맞아요!! 고려 불화 너무 좋았어요. 설명도 자세하고 부분적으로 확대해서 보여주고 해서 좋았습니다. 얇지만 올컬러랍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