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바로 내가 말하려는 것입니다, 라이넨. 그것은 시대정신입니다. 나는 법을 믿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사회를 믿습니다. 결국 누가 옳은지 우리는 알게 될 겁니다." 늙은 변호사는 미소를 지었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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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레레 - 가엾게 여기소서 토마토문학팩토리
최난영 지음 / 토마토출판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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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목구멍이 막혀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입을 크게 벌려 아무리 살펴도 목구멍을 막고 있는 이물질 따위는 없다. 그렇다면 왜 삼킬 수 없는걸까. 목구멍 속에 호두알 같은 것이 박힌 느낌이라 씹고 삼킬 수 없다는데, 도대체 왜?


이야기는 계속해서 목구멍이 꽉 막혀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된 영음이 어떻게 살아있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말한다. 성인 여자 키가 167cm인데 몸무게가 35.7kg이라면 믿겠는가. 아이돌도 그보다는 몸무게가 더 나갈 것이다. 


영음은 고 2때 갑자기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유명한 무당은 집에 들여서는 안 될 것을 들였다고 했다. 일주일짜리 굿을 하던 중 마지막 날, 영음은 도망쳤다. 온갖 병원을 다니고 무속에도 기대어 보던 그들은 결국 사이비 종교에 빠졌고, 영음은 자신 때문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기에 부모와 연을 끊고 서울에서 홀로 살았다.


그러던 중 자신이 먹을 수 있게 되는 때가 누군가의 죽음을 본 때라는 걸 알게 된 영음은 어느 순간 시체 옆에서 주체할 수 없는 식욕을 거부하지 않고 먹었다. 그 시체가 누구라도 상관없이. 누군가의 죽음이 '그'의 죽음이어야 이 저주가 풀릴까, '나'의 죽음이어야 풀릴까. 죽음으로 해소될 수 있는 저주일까.


영음이 먹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 무의식 속에 갇힌 일화와 죄책감 때문일까.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알지 못한 채 방관자와 동조자가 되어버린 영음.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책임을 질만큼 어른스럽지 못했고, 자신이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미녀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아이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 몰랐다고 한들 자라서 그 죄의 무게를 알게 되었을 때, 영음은 어떻게 했어야 할까.


결국 가장 잘못한 자는 그 죄가 자신의 것이 아닌 양 살았을테고,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그녀는 죽지 못할 삶을 살았다. 협박을 한 것도, 강제로 추행을 한 것도, 의심으로 폭행을 한 것도 다 그들인데 어째서 피해자들이 손가락질 받는 걸까.


이언 매큐언의 소설 <속죄>에서 가해자인 브리오니가 잘못된 말을 하여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다면 여기서는 해야할 말을 하지 않아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다. 가엾게 여겨질 이들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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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4-09-18 23: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정님 추석 잘 보내셨나요? 오랫만에 인사드려요.
마음이 무거워지는 책일거 같네요. 왜 항상 더 고통받는건 피해자이고, 잘못을 아는 사람일까요? 그거 참 이상하죠.이상하면 바뀌어야 되는데 세상은 그렇지 않네요.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소설일거 같아요.

꼬마요정 2024-09-18 23:55   좋아요 2 | URL
바람돌이 님!! 잘 지내셨나요? 오랜만입니다.
마음이 무겁긴 하지만 재미있게 읽었어요. 점점 오컬트 쪽으로도 좋은 이야기들이 많아져요!! 너무 좋습니다.

물론 내용은 말씀처럼 슬프지만요ㅠㅠ 잘못을 아니까 고통 받고 용서 받고 싶고 잘못을 뉘우치고 그러는데, 가해자들은 양심이 없는 건지 뇌가 없는 건지 정말 화가 납니다. 나쁜 놈들!!

서니데이 2024-09-18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추석연휴 잘 보내셨나요.
주말과 연휴가 같이 있어서 길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지나간 것 같아요.
날씨가 너무 덥기도 하고요.
연휴가 끝나면 9월도 후반이 되네요.
더운 날씨 조심하시고 시원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꼬마요정 2024-09-18 23:56   좋아요 1 | URL
연휴가 정말 화살처럼 바람처럼 훅 지나갑니다ㅠㅠ 심지어 9월인데 너무 더워서 깜짝 놀랐네요. 얼른 더위가 물러가야 할텐데 말입니다.
벌써 9월도 후반이라니... 시간이 빠르긴 합니다.
서니데이 님, 더운데 건강 조심하시고 즐겁고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희선 2024-09-20 0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몸에 문제가 없지만 먹지 못하다니... 그것도 힘든 일일 듯합니다 마음의 문제군요 어릴 때는 모르기도 하죠 나이를 먹고 그걸 알게 되면 참 마음이 안 좋을 듯합니다 왜 더 일찍 몰랐을까 할 것 같습니다 세상은 피해자보다 가해자가 더 잘 사는 것 같기도 합니다


희선

꼬마요정 2024-09-21 00:12   좋아요 0 | URL
마음이 아프면 몸도 영향을 받고, 몸이 아프면 마음도 힘들어지니까요. 건강한 마음과 몸이 정말 중요한 듯 합니다. 어릴 때는 그저 혼날까봐 말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죠ㅜㅜ 안타깝습니다. 가해자가 더 잘 사는 세상은 좀 별로긴 해요ㅜㅜ
 

"기술은 사람을 배제시키는 게 아니라, 살 길을 여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 P135

하지만 평생 결코 그런 집은 문턱도 넘어보지 못하리라는 현실은 사람을 좌절시키는 구석이 있었다. - P154

"뭐든 그 일을 하기에 딱 좋은 때라는 건 없는지도 몰라. 결정하고 헤쳐 나가야하는 순간들이 있을 뿐. 나는 시청에서 혼인 신고로 대신하는 것도 좋아. 가까운 사람들 불러서 밥이나 먹고."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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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 문지 스펙트럼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김현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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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우포늪에 갔었다. 더운 때라 새벽에 출발해 아침 8시에 도착해서 늪 주변을 걸었다. 아직 사람이 많지 않았던 그곳은 조용했고 반짝였다. 늪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늪 안쪽으로 걸어갈수록 해가 떴음에도 축축했고, 음산했다. 그리고 물풀로 가득한 늪지 안으로 묘하게 빨려들 것만 같았다. 늪을 떠난 뒤에도 한동안 늪의 풍경은 내 기억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책의 첫 단편인 <두 명의 교사>를 읽고 어리둥절했던 난 두 번째 단편인 <모자>를 읽고나자 그 우포늪이 떠올랐다. 이 단편집은 늪이다. 질척이고 축축하고 음산하지만 나도 모르게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불안하고 답답하고 우울하고 힘든데, 덮을 수가 없었다. 


<두 명의 교사>는 제목 그대로 두 명의 교사가 나온다. 새로 온 교사가 자신이 겪고 있는 불면증과 그로 인해 끔찍해진 삶을 고백하는 형태이다. 무언가 우리가 알 수 없는 유년기 시절의 억압 혹은 경험이 그의 삶을 흔들고 있었다. 그것은 억압된 자아일까, 죄책감이나 두려움일까. 그는 왜 용서를 구했을까.


<모자>는 우연히 주운 모자 때문에 일어나는 일을 이야기한다. 모자의 주인을 찾기 위한 여정인지, 끔찍한 무기력과 쓸모 없는 존재라는 자괴감의 표출인지 알 수가 없다. 삶은 우연이 많은 것을 결정한다지만, 극심한 우울감 밑에 살고자 하는 의지도 같이 있었던 걸까.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는 조금 특이했다. 어쩌면 나보다 더 비참한 사람이 있다면 나는 어느 정도 덜 비참하다고 느끼는 걸까? 그 사람의 삶이 비극이라면 내 삶은 희극일까. 이 단편 역시 죽음이 가득했지만, 강제로 자유의지를 박탈당한 뒤 미쳐버린 삶은 더 비극적이었다. 단편들 모두 죽음을 갈망하지만 죽지 못하는 인물들이 나오는데, 그것은 삶을 향한 의지가 남아있어서가 아니라 죽을 의지마저 빼앗겼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세 편의 단편 이후 나오는 단편들은 모두 극도의 우울감을 드러냈다. <야우레크>도, <프랑스 대사관 문정관>도, <인스브루크 상인 아들의 범죄>도, <목수>도, <슈틸프스의 미들랜드>도, <비옷>도, <오르틀러에서-고마고이에서 온 소식>도 모두 말이다. 모두 죽었거나 죽을 지경인 인물들이 나왔고, 그들을 지켜보는 이들은 방관하거나 무관심했다. 삶은 살 가치가 있는지, 그저 질병과도 같은 것인지, 그저 고통의 연속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디에도 희망의 부스러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다 읽어버렸다. 너무 불편하고 우울하지만 덮지 못하고 가슴 한 구석에 늪지의 축축함을 느꼈다. 외삼촌과 어머니의 근친상간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어머니의 아들인 '나'는 외삼촌에게 멸시 당하지만 야우레크를 떠날 수 없다. 사슬에 묶인 것 마냥 그 곳에서 나올 힘을 내지 못한 채 그저 코미디언을 흉내내며 견딜 뿐이다.


프랑스 대사관 문정관이 어떤 불안감이나 우울감에 사로잡힌 지 모른 채 삼촌은 그를 추앙하지만, 결국 비극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인스브루크 상인의 아들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그를 괴롭힌 건 가족, 아버지이지만 범죄의 낙인은 피해자인 아들에게 찍힌다. 사회가 만들어 낸 범죄자인 목수는 가족인 여동생이 감당해야 했다. 그들을 끔찍한 삶으로 내몰고도 사회는 그저 그들을 외면하면서 아무 일 없는 듯 행세한다. 


휠체어를 탄 여동생을 내버려둘 수 없어서인지, 혹은 벗어날 수 없어서인지 슈틸프스를 떠나지 못하는 상속자들 이야기 역시 답답하고 우울했다. 한 번씩 찾아오는 영국인은 어떤 대안도 내놓지 못하고 그저 말만 번드르 할 뿐이다.


죽은 삼촌의 비옷은 그 비옷을 입은 다음 사람을 자신의 희생양으로 삼았다. 아들에게 버림받은 한 아버지의 사연은 그저 비옷의 출처에 밀려 사라졌다. 그 비옷을 손에 넣은 엔더러 씨는 어떻게 될까.


예술과 과학은 공존할 수 있을까. 예술이든 과학이든 증오로 가득한 곳에 굳이 파묻히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르틀러는 부모의 학대를 상기시키는 곳이며, 형의 광기를 부추기는 곳이다. 유년기의 끔찍한 상황이 발현되면, 그것으로 끝이다. 치유되지 않는 광기는 스스로를 잠식하고, 죽을 의지조차 상실한 채 비극을 이어나간다. 희망은 없다, 세상은 원래 그러한 곳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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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09-09 0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 이야기가 담긴 것 같기도 하네요 소설에 자기 이야기 쓰지 않는 작가는 별로 없겠지만... 우울해도 빠져들게 하는 이야기군요


희선

꼬마요정 2024-09-09 10:09   좋아요 1 | URL
자신이 겪은 일들로 만들어진 내면이 극도로 우울한 것 같아요. 보는 동안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저도 모르게 읽고 있더라구요. 아, 정말 힘들었어요. 작가는 어떻게 살았을까요ㅠㅠ
 
중고나라 선녀님
허태연 지음 / 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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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가슴 아픈 사연이 있고, 누구에게나 커다란 슬픔이 있다. 누구는 부잣집에서 태어나 돈 걱정 없이 살아가고, 누구는 부모도 모르거나 부모를 잃은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누군가는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큰 돈이 누군가에게는 좋은 일을 한다는 기쁨을 주는 정도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돈으로 해결하는 게 제일 쉽다지만 돈만큼 치사하고 사람의 자존심을 깎아내리는 것도 드물다. 


중고나라나 당근이 이웃의 정을 느끼고 아끼고 나눠쓰는 장이 될수도 있지만, 서민 체험 하는 곳이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선여휘 여사 같은 사람이 많으면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을 수 있겠다. 동정이든 공감이든 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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