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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비헴 폴리스 2049 ㅣ 순정만화 X SF 소설 시리즈 1
박애진 지음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4년 5월
평점 :
내가 가지고 있는 강경옥 님의 작품은 제법 많다. 없는 책을 찾는 게 빠를 것이다. <노말시티>와 <설희> 정도 외엔 다 가지고 있다. 심지어 <퍼플하트>도 있다. 완결 나지 않은 그 작품을 나는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많은 이야기들 중 <라비헴 폴리스>는 정말 멋진 작품이다. 하이아와 라인이 만들어 가는 미래 SF 이야기인데, 가벼운 듯 하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순정만화는 로맨스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그 시대 독보적이었던 많은 만화가들이 보여줬는데, <라비헴 폴리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라비헴 폴리스> 속 주인공인 하이아와 라인의 사랑 이야기만이 아니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생각, 가치관, 삶의 방향,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등을 시대가 반영된 시선으로 알아갔다. 미래 그 시대는 과학이 발전했더라도 여전히 부조리와 불합리가 겹쳐 있지만, 과학이 발전하여 생긴 또다른 따뜻함과 다정함이 인간과 함께 공존했다. 우리는 '로맨스'를 좋아한다. 당연히 살면서 사랑이란 감정이 얼마나 쉽게 가슴 뛰게 하고 좋은지 아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사랑이란 감정이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위치한 사회적 맥락이 중요한 지도 모르겠다.
미래의 라비헴 시티(만화책으로는 2025년, 웹툰으로는 2045년이라고 한다.)에서 하이아는 20세기 여성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한 여성 경찰이고, 라인은 어느 정도 20세기에 있을 법한 냉미남 스타일의 남성 경찰이다. 시대가 흘러도 남성은 잘 변하지 않는 것인가 싶다가도 라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 여자에게만 다정한 모습은 확실히 순정만화의 주인공이었으나 상대에게 무관심한 듯 하면서도 알아야 할 것들이나 '배려'할 것들을 세심하게 잡아내는 모습은 좀 더 미래지향적인 면이 있었다.
그리고 이 만화의 뒷 이야기가 소설로 태어났다. 웹툰 기준으로 2045년 이후의 이야기로 2049년을 다루고 있다. 여전히 하이아와 라인은 라비헴 시티의 경찰이다. 그리고 미래 도시이자 독립된 도시 국가이자 번영하는 곳인 메가시티 라비헴의 이면에는 메가슬럼 라마스 지구가 있었다. 어디에나 화려함 뒤 그림자가 있는 법이다. 라비헴이 품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들이 라마스 지구로 모이면서 라비헴 시티 입장에서는 라마스 지구 문제가 골칫거리로 급부상했다.
애초에 많은 것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실패했을 때 엄청나게 차이 난다. 부자는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지만, 가난한 자는 실패 한 번으로 남은 생 전부를 빚 갚기에 쏟아부어야 할 수도 있다. 이는 중산층 역시 마찬가지이다. 세상은 모두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과학 기술의 발달은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로봇들은 사람이 하던 일을 대신했고, 일자리를 잃은 이들은 라마스 지구로 내몰렸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 등을 만들다 멈춰진 상태로 폐허가 된 라마스 지구는 마치 홍콩의 구룡성채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인간이 집단을 이루고 살기 위해 필수적인 상하수도라든지 전기 공급이라든지 치안 문제는 라마스 지구에서도 극소수에게 할당되었다. 밑바닥으로 내몰렸다 생각했는데, 그 밑바닥에도 계층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아동성매매나 마약 같은 범죄에 이용되었다.
라비헴 시장이 이곳을 쓸어버리고 대규모 공연장을 짓자고 사람들을 선동하던 중 라마스 지구에 대규모 화재가 일어난다. 화재는 방화로 규정되었고, 라마스 전담반은 라마스 지구 사람들을 범인으로 몰아가려 하는데... 경찰마저 진압로봇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할지도 모를 상황에서 사람들은 모두 각각의 선택을 해야 했다. 누군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그 결과는 어느 쪽이나 감당하기 어려웠다.
어느 시대에나 정치와 기업, 부와 권력은 사이가 무척이나 좋았다. 하지만 그 유착을 부수고 싶어하는 이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니 이 라마스 지구를 품고 있는 라비헴은 디스토피아이지만 유토피아로 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과연 디스토피아는 필연적인 것일까. 국가가 약자들을 외면할 때, 그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그 행동은 사회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여전히 하이아의 아버지인 리안 박사는 하이아의 머리카락을 자르지 못하게 했고, 결혼식은 언제 할 거냐는 고리타분한 말을 한다. 어쩐지 라비헴 폴리스 만화를 계속 보고 있는 듯한 느낌에 웃음이 났다. 몬스타 국장이 라마스 전담국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하이아와 라인에게 어쩌다 긴 대사를 칠 때면 머리에서는 김이 나지만 추워지는 것 같아서 괜히 팔을 쓰다듬었더랬다. 이렇게 라비헴 폴리스 뒷 이야기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뿐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이란 것에 대한 환상 또는 뼈를 깎을만큼 노력해야 받아들일 수 있는 어설픈 관대함에 대한 것을 드러내 주었다.
<1993년생>과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 뒷 이야기도 무척 궁금해졌다. 이 기획이 계속 되어 김혜린 님의 <아라크노아>도 뒷 이야기가 있으면 좋겠다.
나 말고도 <라비헴 폴리스>를 원할 작가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선점해야 했다. <라비헴 폴리스>로 하고 싶었다. <라비헴 폴리스>여야 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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