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제레레 - 가엾게 여기소서 ㅣ 토마토문학팩토리
최난영 지음 / 토마토출판사 / 2024년 8월
평점 :
어느 날 갑자기 목구멍이 막혀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입을 크게 벌려 아무리 살펴도 목구멍을 막고 있는 이물질 따위는 없다. 그렇다면 왜 삼킬 수 없는걸까. 목구멍 속에 호두알 같은 것이 박힌 느낌이라 씹고 삼킬 수 없다는데, 도대체 왜?
이야기는 계속해서 목구멍이 꽉 막혀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된 영음이 어떻게 살아있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말한다. 성인 여자 키가 167cm인데 몸무게가 35.7kg이라면 믿겠는가. 아이돌도 그보다는 몸무게가 더 나갈 것이다.
영음은 고 2때 갑자기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유명한 무당은 집에 들여서는 안 될 것을 들였다고 했다. 일주일짜리 굿을 하던 중 마지막 날, 영음은 도망쳤다. 온갖 병원을 다니고 무속에도 기대어 보던 그들은 결국 사이비 종교에 빠졌고, 영음은 자신 때문에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기에 부모와 연을 끊고 서울에서 홀로 살았다.
그러던 중 자신이 먹을 수 있게 되는 때가 누군가의 죽음을 본 때라는 걸 알게 된 영음은 어느 순간 시체 옆에서 주체할 수 없는 식욕을 거부하지 않고 먹었다. 그 시체가 누구라도 상관없이. 누군가의 죽음이 '그'의 죽음이어야 이 저주가 풀릴까, '나'의 죽음이어야 풀릴까. 죽음으로 해소될 수 있는 저주일까.
영음이 먹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 무의식 속에 갇힌 일화와 죄책감 때문일까.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알지 못한 채 방관자와 동조자가 되어버린 영음.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책임을 질만큼 어른스럽지 못했고, 자신이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미녀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아이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 몰랐다고 한들 자라서 그 죄의 무게를 알게 되었을 때, 영음은 어떻게 했어야 할까.
결국 가장 잘못한 자는 그 죄가 자신의 것이 아닌 양 살았을테고,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그녀는 죽지 못할 삶을 살았다. 협박을 한 것도, 강제로 추행을 한 것도, 의심으로 폭행을 한 것도 다 그들인데 어째서 피해자들이 손가락질 받는 걸까.
이언 매큐언의 소설 <속죄>에서 가해자인 브리오니가 잘못된 말을 하여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다면 여기서는 해야할 말을 하지 않아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다. 가엾게 여겨질 이들은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