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 뷰 - 제1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우신영 지음 / 다산책방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다를 메운 땅, 수많은 유물을 덮어버리고 높은 건물들을 지은 강남처럼 수많은 생명들을 덮어버리고 만든 도시. 그 곳은 화려하고 잘 짜여진 고급 태피스트리 혹은 휘황찬란한 샹들리제 같은 곳이다. 밤에도 꺼지지 않는 불빛으로 달빛을 가리고 공포를 이겨내는 탐욕을 쌓아가다 마침내는 가슴 내밀한 곳에 숨겨진 욕망 그 자체가 되어 버린 곳이라고나 할까.


처음부터 그런 곳에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 있다. 로펌 대표 변호사이자 IMF 때 망한 부동산을 사들여 돈을 번 아버지와 무용을 전공하고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우아한 어머니를 둔 수미 같은 사람. 그녀는 발레를 전공했고, 유학을 다녀왔으며, 지금은 의사 사모님으로 자신의 필라테스 학원을 운영한다. 돈 걱정은 해 본 적도 없고, 할 일도 없을 사람. 오로지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이 중요한 사람. 자신의 지위, 자신의 재력, 자신의 외모가 자신감의 전부인 사람. 


수미의 남편은 섬에서 나고 자란 가난한 의대생이었다가 어엿한 의사가 된 석진이다. 그는 남자 신데렐라였다. 대형병원에서 솜씨 좋게 내시경을 하다가 처가의 재산 수억을 들여 자신의 병원을 개원한 남자. 등산을 즐겼고 탈모를 걱정하며 적당히 자신의 일 외의 일에는 무관심한 사람. 적당히 책임감 또는 죄책감이나 죄의식과는 거리를 두는 그런 사람. 하지만 가진 것이 부담스러워 적당히 자신을 낮추기도 하는 사람.


그에 반해 유화나 주니는 애초에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유화는 연변에서 온 조선족이었고, 주니는 헬스장에서 회원들의 퍼스널 트레이닝(P.T)을 해주는 헬스 트레이너였다. 그런 그들이 모두 함께 살며 욕망을 불태우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유화나 주니가 자신들의 처지를 달가워하지 않고 더 나은 삶을 꿈꾸는 것처럼 수미는 '산다는 것의 맨얼굴'을 견디지 못했다.(p.216) 누군가의 삶이 수미에게는 견디기 힘든 맨얼굴인 것이다. 하지만 온갖 시술과 성형과 마사지와 운동으로 만든 몸은 '늙음'을 유예했을 뿐 없애지 못했다. 심지어 과도한 다이어트 및 운동 강박으로 인한 체지방 부족으로 폐경이 빨리 오고 갱년기가 빨리 찾아왔다. 수미는 자신의 늙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젊은 남자의 생기를 빨아들인다고 젊음이 찾아질까. 


그에 반해 석진은 자신의 욕망을 유화에게서 보았다. 어딘지 자신과 닮은 듯한, 아니 자신이 내려다 볼 수 있는 처지의 여자. 가짜 산을 타는 그와는 다르게 진짜 빌딩을 타다 추락한 남자를 연인으로 둔 여자.


이들은 모두 '몸'으로 먹고 살면서 너무 달랐다. 수미와 석진은 몸으로 부와 명예를 얻었으니 몸을 잃으면 시선에 의해 살해당할 것이다. 유화와 주니는 몸을 잃으면 말 그대로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다. 


모든 것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곳에서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자체가 어색할지도 모르겠다. 강박과 취향이 한끗 차이라지만,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치열한지 무서웠다. 출산을 위해 병원을 갈 때에도 힐을 신고, 가슴 성형을 하러 갈 때에도 완벽하게 화장을 하고 레깅스를 입고, 가슴 마사지를 할 때에도 비명 하나 지르지 않는 그 강박. 남에게 남보다 잘나보여야 하는 그 강박. 도대체 그 밑바닥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수미는 보여지는 몸을 위해 단 것을 멀리했지만 석진의 어머니는 먹지 못해 먹을 수 없었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마침내 마음껏 단 것을 먹게 된 그녀는 마치 이 도시의 또 다른 면인 것만 같았다. 유화가 면도날을 삼키게 된 이유처럼, 공장 견학 때 철저하게 소독된 공간만을 보여주고 진짜 노동자들이 일하는 곳은 비위생과 냉방 때문에 철저하게 숨기는 것같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위화감을 느꼈다. 문득 책을 읽으며 행복해하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에. 한가한 일요일 오후, 날은 춥지만 방은 따뜻하고, 고양이들이 옆에서, 발치에서, 머리맡에서 골골거리며 잠들어 있고, 좋아하는 원두로 내린 커피와 달콤한 롤케익 한 조각을 두고 책을 읽고 있었으니까.  

석진은 자신이 꿈꾸었던 궁전에 대해 생각했다. 최고급 대리석이 깔린 미진 내과, 먼지 한 톨 없이 반짝이는 우아미 필라테스. - P228

나를 가장 기쁘게 하는 건 뭘까. 수미를 가장 기쁘게 하는 건 뭘까.
.......
칼을 먹는 유화가 섭식장애일까, 남의 시선을 먹는 수미가 섭식장애일까. - P229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24-10-21 1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샀어요, 꼬마요정 님. 책 읽기 전에 일단 꼬마요정 님 리뷰를 읽었습니다.훗.

꼬마요정 2024-10-22 01:10   좋아요 0 | URL
사셨군요. 다락방 님이 풀어주실 이야기가 기대됩니다. 여기… 순대국밥 나와요. 연변 순대가 그렇게 맛있다는데 먹어보고 싶습니다!!^^

희선 2024-10-22 02: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작가가 2024년에 상을 두 가지나 받았군요 어린이문학상인 황금도깨비상과 혼불문학상... 작가는 2024년 잊지 못하겠네요 꼬마요정 님은 책을 보는 그 시간이 좋으셨군요 커피와 롤케이크 그리고 고양이가 있어서...


희선

꼬마요정 2024-10-23 23:39   좋아요 1 | URL
작가가 상을 두 개나 받았군요. 정말 2024년을 잊지 못할 듯 합니다. 저 책 읽다가 갑자기 문득 저들은 행복할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는 저런 궁전 같은 집은 아니어도 책과 커피와 고양이가 있는 제 집이 무척이나 좋고 거기 있는 자체가 행복하더라구요. 참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