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무서울 게 뭐야, 문득 소리 내어 그녀는 스스로를 향해 중얼거렸다.

 늑골이 무너지고 옆구리가 부스러지면 어때, 뒤이어 생각했다. 이렇게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좀 전보다 또렷하게 목소리를 내어 그녀는 중얼거렸다.

 고통이 없다면 두려움도 없지. (p.43) - <작별>


얼마 전 하늘이 열린 날, 꼬미가 별이 되었다. 나랑 11년을 함께 한 꼬미는 잘 자다가 잠깐의 경련을 일으켰고, 심장이 멈췄다. 그 짧은 시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그저 꼬미를 끌어안고 어떡해 어떡해만 외쳤다. 여전히 믿을 수가 없어서 꼬미만 끌어안고 있었는데, 항문이 열렸다. 죽음은 그렇게 내 작은 고양이의 넋을 데려갔다.



너무 말랑해진 몸을 상자에 뉘이고 가만히 두었다. 혹시나 다시 일어날까봐, 다시 숨을 들이쉬고 내쉴까봐. 평생을 꼬미와 함께 한 샤미가 꼬미 옆에 누웠다. 잘 가라고 배웅하는 것일까, 마지막 남은 온기를 기억하려는 것일까. 


시간이 지나면서 머리는 차가워지고 사지가 굳어가는 것을 보며 꼬미가 정말로 떠났음을 느꼈다. 


함께 했던 모든 날들이 사랑이었고 행복이었다. 너도 그랬기를.

부디 고통도 번뇌도 없는 세상에서 행복하기를.


한동안 믿을 수 없었다. 꼬미가 차지하고 있던 공간에 꼬미가 없다니... 청소도 하지 못했다. 곳곳에 꼬미털이 있을테니까.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다. 너무 울어 눈이 상했는지 초점이 잘 맞지 않았다. 일부러 더 열심히 움직였는데, 영화를 보면서도 울고, 운동을 하다가도 울고, 책을 읽다가도 울고, 일을 하다가도 울었다. 웃다가 울고, 울다가 울고, 밥 먹다가 울고... 그냥 눈물이 났다. 그렇게 나는 꼬미가 없는 하루하루를 꼬미를 그리워하며 보냈다. 


그리고 떠올렸다. 예전에 읽었던 소설 한 편. 단편이지만 강렬했던 이야기. 카프카의 <변신>을 떠올리게 했던 그 작품, <작별>
















이 책에 실린 단편 중 한강의 <작별>만 읽었더랬다. 다시 펼쳤다. 눈사람이 되어버린 그녀는 담담하게 이 생(生)을 정리한다. 꼬미야, 너도 그랬을까, 고통이 없으면 두려움도 없으니까.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녀'에게 이입했더랬다. 만약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면,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가장 소중한 이들을 만나고 쓸데없는 것들을 정리하고 가고 싶거나 먹고 싶거나 읽고 싶거나 보고 싶은 것들을 적어보겠지. 그리고 두려울 것 같다. 살아온 삶이 힘들고 지쳤더래도 죽음은 두렵지 않을까. 하지만 그녀는 두려움보단 삶을 잘 마무리하길 원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삶 앞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그렇게 처연한 그녀 때문에 눈물이 났었다. 죽음을 앞두고도 '현수' 씨와 '윤'이를 걱정하는 그녀가, 아둥바둥 살면서 그나마 남긴 것을 아이에게 온전히 전하고 싶어하는 그녀가 가슴 아팠다. 손이 녹고 늑골이 녹아가도 살아있는 순간을 살아가는 그녀가 아름다웠다. 모든 것은 언젠가는 사라지기 마련이라는 사실이, 그 언젠가를 알 수 없어도 그 순간만큼은 온다는 사실이 무섭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읽었을 때 나는 '현수' 씨였고, '윤'이였다. 사랑하는 연인이 눈 앞에서 녹아간다면, 사랑하는 가족이 곧 사라지게 될 것이라면 나는...? 글 속의 현수 씨에게 말하고 싶었다. 지금이 지나면 더 이상 그녀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아무리 추워도 조금이라도 더 그녀를 보고, 그녀를 느끼라고. 윤이에게도 말하고 싶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네가 엄마라는 존재가 계속 옆에 있음이 힘들 거라는 건 알지만, 지금 뿐이라고. 한 공간에 함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빈 자리가 얼마나 커다란 슬픔인지.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나는 어리석었다. 새벽에 잠시 깼을 때, 꼬미가 손을 뻗어 나를 툭툭 치며 옆에 누웠을 때 좀 더 쓰다듬어 줄 걸. 그냥 끌어안고 잠든 내가 얼마나 원망스러웠던가.  


그리고 생각한다. 존재가 소멸함은 어떤 것인가. 어디까지가 존재이고 어디서부터 소멸인가. 존재의 끝이 소멸인가. 꼬미의 육체는 사라졌지만, 꼬미는 여전히 내 가슴 속에 살아있다. '그녀'가 사람이었다가 눈사람이 되면 소멸인가, 다 녹아버리면 소멸인가. 존재와 소멸의 경계는 어디일까. 어쩌면 사바 세계의 육체란 그저 허상일지도 모른다. 어제까지 있다가 오늘 없다고 그 존재가 존재하지 않음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또한 오늘 없기에 어제 있었다고 할 수 있을까, 어제는 지나가고 없는데. 


월명사의 <제망매가(祭亡妹歌)>를 떠올려본다.


삶과 죽음의 길은

여기 있으니 두려워지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 다 이르고 어찌 가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한 가지에 나서 

가는 곳을 모르는구나!

아아! 미타찰(彌陀刹)에서 만날 나

도를 닦으며 기다리련다.(일연, (2020). <삼국유사>. 민음사 (p.535))



하지만 무서울 게 뭐야, 문득 소리 내어 그녀는 스스로를 향해 중얼거렸다.

늑골이 무너지고 옆구리가 부스러지면 어때, 뒤이어 생각했다. 이렇게 아무런 통증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좀 전보다 또렷하게 목소리를 내어 그녀는 중얼거렸다.

고통이 없다면 두려움도 없지.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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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10-15 02: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 님 꼬미가 떠났군요 그것도 갑자기... 많이 놀라시고 많이 슬프시겠습니다 꼬마요정 님 마음 덜 아프게 꼬미가 갑자기 떠난 건지... 오래 아픈 모습 봐도 마음 아프잖아요 아플 때 뭔가라도 했다면 마음이 좀 나았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든 무지개 다리를 건너면 슬프겠습니다

아직 슬픔이 가시지 않았겠습니다 앞으로도 생각나겠습니다 이 글 보니 저도 슬픕니다 저세상에서 꼬미가 기다릴 거예요 정말 기다리면 좋겠네요


희선

꼬마요정 2024-10-16 10:27   좋아요 1 | URL
꼬미의 언니 오빠인 쭈주와 누롱이가 아파서 가긴 했거든요. 그 땐 아팠으니까 이제 안 아프겠지란 위안이 있었어요. 하지만 오래도록 아팠던 쭈쭈는 정말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구요. 아픈 냥이들은 보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긴 한데 아프니까 마음이 아프고, 꼬미는 아프지 않고 갔으니 그거대로 위안이 되긴 하지만 갑작스러워서 제가 너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아플 때 뭔가라도 하는 게 마음이 낫기도 하지만, 안 아픈 게 제일 좋으니까요. 갑자기 가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때 좋아하는 밥이나 더 줄 걸, 좀 더 놀아줄 걸... 이런 후회를 많이 하게 되네요. 있을 때 잘하는 게 맞나봐요.

그래도 안 아프게 갔으니 그건 다행이라 생각해요. 위로 너무 고맙습니다. 희선 님.

coolcat329 2024-10-15 0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꼬미는 요정님 마음 속에서 계속 살아있을 거에요.
꼬미 얼굴에 자기 얼굴 대고 있는 샤미 모습이 짠합니다.

꼬마요정 2024-10-16 10:29   좋아요 2 | URL
여전히 꼬미만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긴 합니다만 이젠 많이 나아졌어요. 샤미가 꼬미를 정말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샤미를 보면 참 마음이 안 좋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약이라고 샤미도, 저도 많이 나아졌어요.

위로 정말 고맙습니다. 쿨캣 님.

다락방 2024-10-15 09: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휴 저도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꼬미도 꼬마요정 님과 살았던 시간을 사랑이 충만한 날들로 기억할거라 생각합니다. 마음 잘 추스르시길 바랄게요.

꼬마요정 2024-10-16 10:33   좋아요 1 | URL
그쵸? 저는 무척 행복했는데, 꼬미도 그랬기를 바랍니다. 꼬미가 막내던 시절도 있었는데 어느새 첫째가 되더니 언니 오빠들 따라 갔네요. 성격이 급하더니 가는 것도 급하게 갔네요. 아프지 않고 가서 그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위로 너무 고맙습니다. 다락방 님.

페넬로페 2024-10-16 12: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별이 된 꼬미.
꼬마요정님의 사랑 듬뿍 받아 행복하게 떠났을 것 같아요.
마음 잘 추스리시길요^^

꼬마요정 2024-10-16 10:56   좋아요 2 | URL
꼬미도 저랑 있어서 행복했겠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꼬미랑 있어서 무척이나 행복했거든요. 함께 한 시간이 너무 짧아요. 여전히 옆에 있는 것만 같은데 없어서 허전합니다. 그래도 꼬미는 홀가분하게 편하게 갔으면 좋겠네요.

위로 정말 고맙습니다. 페넬로페 님.

새파랑 2024-10-15 13: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슬픈 고별이네요. 함께 했던 생명이 떠나는건 남아있는 사람에게 너무 가혹한 슬픔인거 같아요 ㅜㅜ

꼬마요정 2024-10-16 11:07   좋아요 2 | URL
정말 몇 번을 경험해도 절대 면역이 생기지 않네요ㅠㅠ 수명이 짧다는 건 알지만 너무 빨리 가서 너무 당황하고 슬프고 아팠습니다. 그래도 꼬미가 아프지 않고 가서 다행이에요. 너무 보고 싶네요ㅠㅠ

위로 너무 고맙습니다. 새파랑 님.

카스피 2024-10-15 15: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아쿠 마음이 넘 아프시겠네요.저도 어릴적에 집에서 동물을 많이 키웠는데 오랜 키운 강아지가 어느날부터 안보여서 어머니께 여쭈어보니 바람나서 도망갔다고 하시더군요.나중에 보니 늙어서 죽었는데 제가 슬퍼할까봐 몰래 묻어주시고 거짓ㅁㄹ을 하셨던 거죠.
참 기르던 동물들이 죽는 것 만큼 슬픈일도 없네요.ㅜ,ㅜ

꼬마요정 2024-10-16 11:12   좋아요 1 | URL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ㅠㅠ 지금도 아프고 보고 싶고 그렇습니다. 어머님께서 정말 자상하십니다. 마지막까지 강아지를 잘 보살펴 주신 거 좋네요. 반려동물 장례식장 갔더니 거기 적힌 문구가 참 맘이 아리더라구요. 별이 될 때까지 책임져줘서 고맙다는 거였는데, 당연한 일인데 아닌 경우가 워낙 많으니까요. 우리 꼬미 태어난 날은 몰라도 간 날은 아네요. 아프지 않고 가서 그거 하나는 정말 다행입니다.

위로 정말 고맙습니다. 카스피 님.

서곡 2024-10-20 1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휴 그러셨군요...저도 ‘작별‘만 읽었나 그랬을 거에요 저 작품집에서요 인상적이었죠 무지개다리 무사히 건너 고양이천국에서 잘 지내기를 기원합니다

꼬마요정 2024-10-21 23:53   좋아요 1 | URL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작별>. 사랑하기 때문에 녹는 거니까 카프카의 <변신>과는 완전히 다르긴 하더라구요. 그래도 헤어짐은 슬픕니다ㅜㅜ 꼬미가 무사히 잘 가서 평온하면 좋겠습니다.

위로 너무 고맙습니다. 서곡 님.

감은빛 2024-10-21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정말 슬프고 아픈 순간이네요.
제 친구도 지금 나이가 많은 고양이와 살고 있는데,
그날이 그렇게 멀지 않았다고 얘기하더라구요.
그 친구 집에 가끔 놀러갈 때마다 함께 놀던 고양이라서
저도 그 순간이 오면 정말 슬프고 아플 것 같아요.

꼬마요정 2024-10-22 01:13   좋아요 0 | URL
정말 아프고 슬펐답니다. 지금도 여전히 잔잔한 슬픔이 머리에 가슴에 눈에 머물곤 합니다만 이렇게 위로해 주시는 분들 덕에 힘을 냅니다. 친구분도 감은빛 님도 마음의 준비를 하셔도 그 순간이 오면 많이 힘드실 거예요. 이별은 늘 슬프고 아픈 듯 합니다.ㅜㅜ

위로 정말 고맙습니다.
 
몬스터 2 스토리콜렉터 115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북로드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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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제재로 피해자 가족이 가해자를 처단하거나, 제 3자가 대신 가해자를 처단한다고 해서 피해자 가족들이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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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1 스토리콜렉터 114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북로드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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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보덴슈타인과 피아 콤비. 그리고 강력 11반의 유능한 형사들.
크리스마스를 보름 정도 앞둔 어느 날. 파묻힌 눈 속에서 여고생의 시체가 발견된 사건으로 시작되는 1권.
흥미진진 해서 빨리 2권 읽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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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식 없이 술술 양자물리
쥘리앙 보브로프 지음, 김희라 옮김, 이재일 감수 / 북스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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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 책을 샀을까? 양자물리에 대해 알아서 뭐에 쓰려고? 사실은 정말로 이 책을 읽으면 수식 없이 술술 양자물리를 이해할 수 있을까 궁금해서 샀다. 그렇다. 나는 제목에 낚였다. 순진한 사람 같으니... 양자물리를 술술 이해할 수 있다면 세상에 양자물리를 모르는 사람이 없겠구만. 내가 '술술' 이란 단어의 뜻을 잘못 알고 있나 싶어 사전도 찾아봤다. 내가 알던 뜻이 맞았다. 막힘없이 잘 나오든, 풀리든 그렇다는 뜻이다.


하지만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었다. 이해는 못하겠는데 재미있는 그런 요상한 책이었다. 처음에 영화를 이야기 하다가 전자를 말한다. 전자는 희뿌연 구름 모양으로 보이지만 카메라로 찍으면 선명한 점을 볼 수 있다. 측정하기 전에는 희뿌연 구름 모양이지만 측정하는 순간 점 모양의 전자를 볼 수 있다. 계속 셔터를 누르면 위치는 바뀌어 있지만 점을 볼 수 있다. 이 사진들을 모두 겹치면 구름 모양을 볼 수 있다. 그러니 전자는 양자다.


여기까진 괜찮았다. '파동함수' 개념도 알고 있으니까. 슈뢰딩거의 고양이도 아니까. 그래서 웃으면서 이 정도면 나도 제법 잘 이해할 수 있겠는데 싶었다. 그런데 이게 겨우 1장의 내용이다. 그리고 2장에는 수식이 잠깐 나온다. 나는 알지 못하는 이 이상한 암호가 바로 슈뢰딩거 방정식이었다. 복잡한 수식을 통해 파동함수(ψ,프시)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고. 아인슈타인은 보른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쨌든 나는 신이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고 확신하네."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파동함수는 '모든 '것'을 예측할 수는 없고, 최종 단계인 측정에서 우연을 개입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자의 에너지 값을 정하고 입자가 어디 있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면 계산을 통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값을 얻을 수 있으며, 이 값은 이후 실험을 통해 완벽히 확인된다(p.43)고 한다. 얻고자 하는 것을 잘 선택한다면 정확한 값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전자나 원자 같은 양자적 개체는 측정되지 않는다면 파동처럼 움직인다. 이 입자 중 하나를 작은 상자에 몰아넣는다. 2022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윌슨 호 교수 연구팀은 이것을 실험했다. 금 원자를 검출해서 20개의 금 원자를 정렬해 서로 밀착시켰다. 물론 모든 과정은 극저온, 초고진공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이들이 만든 원자들의 나란한 줄은 완벽한 양자 상자다. 이 양자 상자 안에서 전자들의 속도를 측정했더니 측정치가 한정되어 있었다. 전자들은 파동처럼 생각해야 하고, 그것들은 특정한 형태만 취할 수 있으므로 특정한 속도만 가질 수 있다. 이것이 양자화(quantification)이다. 상자 안에 갇힌 양자 입자는 '양자화'되고, 정확하고 구별된 값의 에너지만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즉 불연속적인 세계인 것이다. 이들 사이에 중간은 없다. 음악으로 치면 반음계가 없는 것이다. 


4장은 원자를 그려보고자 한다. 처음엔 잘 따라갈 수 있었다. 수소 원자도 흐릿한 구름 형태로 그려지는 것을 이해했다. 하지만 그 뒤에 나오는 그림들은 입체파 그림들 같다. 피카소가 떠올랐다. 


5장은 불확정성의 원리를 설명한다. 원자 차원의 크기를 가진 물질을 측정할 때 위치를 알면 속도를 알 수 없고 속도를 알면 위치를 알 수 없는 원리다. 이 원리에 따르면 측정 순서가 중요한데, 측정은 사건들의 시간 순서에 영향을 받는 듯 하다고 한다. 이 원리가 현실 세계에 작동하는 것들이 있는데, 천체물리학에서 태양에 적용될 수 있다고 한다. 태양은 생의 마지막에 온도가 낮아지고 중력이 우세해지면 스스로 붕괴할 것이고, 블랙홀이나 중성자별로 생을 끝낼 수도 있지만, 이 원리에 따르면 우리 태양의 경우 내부 압력이 충분해서(공간이 줄어들면 각 전자의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져 전자를 짓누르는 보이지 않는 벽을 밀어낼 정도는 된다고) 백색 왜성으로 진화할 것이다. 그리고 이 원리에 따르면 진공은 비어있지 않은 상태라고.


6장은 터널 효과를 설명한다. 입자가 에너지를 충분히 가지면 어려움 없이 장애물을 통과한다. 그런데 파동함수 일부는 장벽을 통과하고 일부는 튕겨 나온다. 파동함수가 둘로 나뉠 때 일부는 벽을 통과하고 일부는 튕겨 나오는데, 이는 입자가 둘로 나뉘는 게 아니라 입자는 측정되면 때로는 왼쪽에 때로는 오른쪽에 물질화되어 나타난다는 뜻이다. 그런데 양자 입자가 가볍고 바르면 뛰어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장애물을 통과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을 '터널 효과'라고 하는데, 이는 해리포터가 호그와트 마법 세계로 가기 위해 킹스크로스역 9번 플랫폼 벽을 향해 돌진하면 벽이 열리고 다른 세계로 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지만 양자 세계에서라면 해리가 한 번은 통과하지만 한 번은 벽에 부딪혀 내동댕이쳐질 수도 있다. 이 터널 효과를 적용한 사례 중 하나가 터널 효과 현미경이다. 원자를 직접 관찰할 수 있도록 만든 최초의 도구이다.


이 터널 효과를 이용한 도구의 쾌거를 알리기 위해 2017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가 세계 최초 나노 자동차 경주 대회를 조직했다. 이 대회에는 전세계에서 6개의 팀이 참가했다. 그들의 목표는 100나노키터 길이의 트랙을 가장 빨리 달리는 것이다. 이런 대회에 참가한 나라는 미국, 독일, 프랑스, 스위스, 일본, 오스트리아라고. 이 대회의 우승자는 스위스 바젤 대학교 팀이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우리나라도 이런 대회에 참가할 수 있으면 좋겠다. 기초 과학이 발전하고 과학자들이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 결국 모든 것은 기초에서 시작하니까.


그 뒤로 측정과 결잃음, 상태의 중첩, 얽힘을 설명하고 구별 불가능성을 설명한다. 그리고 페르미온 기체와 보손 기체를 설명하고 초전도성과 양자 컴퓨터를 설명한다. 


양자 측정은 여전히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 모양이다. 가장 유명한 이론이 코펜하겐 해석과 파일럿파 해석, 다세계 해석이라고. 과학의 목표는 무엇보다 사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는 것이지 반드시 '왜'를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p.134)


파동은 두 구멍을 동시에 통과하며 중첩 상태를 유지하는데 측정하려고 하면 간섭무늬가 보이고 정확히 어디를 통과했는지 확률로만 알 수 있다. 중첩 상태를 보호하려면 측정하지 않아야 한다. 여기서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나온다. 내 생각에 이 고양이 너무 불쌍하다. 나는 이 실험 반대요!!(물론 직접 실험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말이다.)


전자 두 개를 준비하자. 두 전자의 스핀이 반대가 되도록(하나는 위로 하나는 아래로) 하면 두 스핀의 합은 0이고 두 전자가 연결되어 있는 한은 이 상태가 지속될 것이다. 이 둘의 운명은 얽혔다. 미래에 한 스핀이 위를 항하면 다른 스핀은 반드시 아래를 향한다. 이 두 전자가 분리되어 있어도 얽혀있다. 이 전자를 다른 두 지점으로 보낸 뒤 한 전자의 스핀이 아래를 향한 것을 보면 반드시 다른 스핀은 위를 향하게 된다. 이 양자 얽힘을 이해하기 위해 과학자들이 많은 시도를 했고, 나는 길을 잃었다. 양자 얽힘은 진짜였고, 나는 차라리 둘이 텔레파시가 통한다고 말하는 게 더 이해하기 쉽다고 느꼈다. 


아인슈타인은 두 입자가 멀리서 즉시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양자 얽힘은 실재했고, 아인슈타인이 틀렸다. 얽힘에 관한 실험은 양자물리학이 '국소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입자는 충분히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다른 입자의 영향을 즉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구별 불가능성은 입자들을 구별할 수 없도록 한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불확정성의 원리 때문이다.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알 수 없으니 이 입자가 이 입자인지 저 입자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보손은 정수이고 대칭적이며 페르미온은 반정수이고 반대칭적이다. 보손은 모여 있기 좋아하고 페르미온은 혼자 있기를(배타 원리) 좋아한다. 수소 원자는 전자 1개와, 쿼크 3개로 이뤄진 양성자 1개를 포함한다. 1/2스핀인 입자가 총 4개인데, 스핀의 총합은 반드시 정수이다. 그러므로 수소는 보손이다. 질소 원자는 1/2스핀인 기본 입자가 49개이며, 스핀의 총합은 반정수이다. 그러므로 질소는 페르미온이다. 모든 자료를 주고 더하기만 하는 거라면 나도 보손인지 페르미온인지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놀랍다.


이제 거의 다왔다. 보손 기체와 페르미온 기체를 지나 초전도성까지 왔다. 그리고 이는 양자컴퓨터로 연결된다. 나는 이미 길을 잃었으므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초전도체가 어째서 나오기 힘든지 그게 상용화 된다면 얼마나 강력할 지는 알 수 있었다. 극저온이 아닌 상온에서 만들 수 있다면 말이다.


양자컴퓨터는 많은 정보를 처리할 수 있지만 그만큼 많은 복제가 필요해서 여전히 사용하기 힘들다는 것은 알았다. 


나는 길을 잃었다. 차분히 계단을 밟아 올라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계단이 끊기고 공간을 날아야 했다. 나는 고체라 기체로 승화할 에너지가 없었다. 그렇다고 밑으로 떨어질 수도 없고 도로 내려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가상의 벽을 만들어 뚫기로 했다. 어떻게? 그냥 벽이 있다고 상상하기로 했다. 양자 세계라면 두 번에 한 번은 벽이 생기고, 두 번에 한 번은 벽을 뚫을 수 있겠지 싶어서.


양자물리학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력은 엄청나다. 다만 우리가 몰라서 모를 뿐이다. 이 마법 같은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면 내가 사는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텐데. 어렵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이제 나도 조금은 양자물리학을 알지 않을까. 



  



사실 내가 양자물리학에 반한 이유는 이 학문이 가장 소중한 것을 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여행으로의 초대‘다. 이 학문은 우리에게 특이한 산책을 제안한다. 마치 해리포터가 호그와트의 벽을 통과할 때 발견하는 마법 세계의 방식처럼 양자물리학은 모든 게 우리의 이해를 벗어나는 마력의 세계, 준엄하고 일관적이지만 완전히 엉뚱한 새로운 법칙의 지배를 받는 세계를 제시한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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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훈

사실 그런 것들이 가르칠 수 있는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애니메이션 <라따뚜이>라는 큰 성과를 낸 픽사 스튜디오를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픽사 스튜디오의 사장 에드 캐트멀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인터뷰한 기사가 기억납니다. "픽사 스튜디오에서 재미난 것을 많이 만드는 비법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외로운 천재성으로 회사를 운영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공동체 중심으로 회사를 운영한다."라고 답했습니다. 공동체 중심이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궁극적으로는 동일한 목적 혹은 산출물을 위해 차이를 극복하고 협업을 이루어 내게 하는 시스템의운용을 의미하고, 바로 이것이 경영자의 역할이라고 본 것입니다.
사람들은 픽사를 굉장히 혁신적인 기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이 혁신적인 기업이 실제로 운영되는 방식은 핵심인재 경영 혹은탁월한 몇몇 인재의 채용과 활용에 있다기보다는, 집단 구성원 간의 상이한 의견을 조정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있습니다. 즉,
개인 수준의 창의성 제고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인 것입니다. 오히려 차이를 유지하고 협업하는 능력, 다른 사람과 의견을 달리하면 - P306

서도 함께 어우러져 일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엘리트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한국의 기업문화와는 크게 대조된다고 봅니다.

김지현

여러 교수님 의견을 들어 보니 창의성을 함양하는 데 타인과의 상호작용과 공동체가 굉장히 중요할 것 같습니다. 실험실 랩의 경우처럼요. 그렇다면 창의성을 함양하기 위해 서로 협력해서 창의적 성과를 만들어 내는 원리도 파악하고 그것을 학생들이 배워나가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홍성욱

학생들이 졸업한 뒤 혼자서 일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조직에 속해서 일하게 됩니다. 그런데 교육은 대개 혼자서일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룹 창의성을 경험하게 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일 것 같습니다.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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