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돌이님께서 쓰신 페이퍼에서 사유원을 만났다. 꼭 가고 싶어졌고 그래서 지난 9월 29일, 경상북도 군위 사유원에 다녀왔다. 평일이라 입장료는 5만원. 날씨도 좋고 생각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지만 문 닫기 전에 둘러볼 수 있을 시간이라 안심하고 출발했다.
1. 치허문(致虛門)
낮 12시 50분
사유원의 시작이다. 이 대문을 지나 차를 주차하고 안내소에서 물과 지도, 목걸이를 받았다. 신이 나서 막 뛰는 모습을 남편이 찍었다. 하... 무슨 방정인가.
치허문은 노자의 도덕경(道德經) 제 16장에 나오는 치허극 수정독(致虛極 守靜篤)에서 따왔다고 한다. 사유원 측에서 알려주는 뜻은 '극도의 비움에서 이르러 지극한 평온을 두터이 지키다'이며, 왕필의 주석에 따르면 '비어 있음을 이루는 것이 궁극이고 고요함을 지키는 것이 독실함이다. 비어 있음을 이루는 것이 사물의 궁극과 독실함이고, 고요함을 지키는 것이 사물의 참과 바름이라는 말이다.' 라고 한다.(노자 도덕경과 왕필의 주, 김학목 옮김, 홍익출판사, p.109) 비움으로 평온에 이른다는 곳에서 난 흥에 겨워 날뛰었으니 어쩌면 체면이고 무엇이고 다 던지고 감정에 충실했으니 비움에 다달았다고 할 수 있을까? 사실 올라갈 때는 여기가 치허문인지 몰라서 내려와서 찍었는데 내려왔다는 즐거움을 마구마구 나타낸 것이다.
지도를 받으니 지도의 코스와는 다르게 알려줘서 나와 남편은 안내해주시는 분이 알려주신대로 좀 험할 수도 있다는 길을 걸었다.
안내해주시는 분이 너무 친절하셔서 좋았다. 날씨도 좋고 모든 것이 좋은 그런 기분이라고나 할까.
2. 소대(巢臺)
비나리길을 걷다 가파른 길로 꺾어 조금 걷다 보니 소대가 나왔다. '소요헌'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를 지어달라는 알바로 시자의 요청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전망대답게 높고, 좁지만 멀리까지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꼭대기에서 본 풍경은 아름다웠다. 이 아름다운 자연을 오래도록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여기까지 개발 광풍이 불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3. 소요헌(逍遙軒)
소대를 지나 걷다 보면 소요헌이 나온다. 난 여기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에서 이름을 가져왔다는 이 곳은 여유롭고 고요했다. '우주와 하나가 되어 편안하게 거닐다, 노닐다' 등의 의미를 가진 곳이라 그런가. 내가 장자의 소요의 의미를 얼마나 이해할까만은, 그저 여기서 그 뜻을 새겨보고 싶어졌다. 나는 과연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저 붕새조차 바람에 의지해서 날았는데 무명(無名), 무공(無功), 무기(無己)의 경지는 너무 높고 멀기만 하다. 장자는 무명(세상 사람들의 찬양이나 비난에 개의치 않고 자기 방식으로 살고), 무공(좋은 일을 많이 하고서도 공이 없다 하고), 무기(자기 중심주의에서 벗어나고) 하는 사람을 지인(至人)이라 하였는데 이러한 지인이야말로 소요유할 수 있다 하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냥 어린아이같은 감정에 충실한 나....
4. 풍설기천년(風雪幾千年)
초하루길을 지나 쭈욱 걷다 보면 모과나무 정원이 나온다. 사유원을 만들게 된 계기가 된 모과나무. 햇살이 좋아서 나무들이 반짝거린다. 설립자가 평생 수집한 수령 3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모과나무 108그루를 전시하고 있다. 정원 가운데 세 곳의 연못이 있는데 이름은 연당, 채당, 회당. 설명에 따르면 바람과 눈비를 맞으며 세월을 이겨낸 모과나무의 강인함을 표현하고 천 년을 가는 모과 정원이 되라는 의미로 풍설기천년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정말 천 년 넘게 자리를 지켜주었으면...
5. 별유동천(別有洞天)
풍설기천년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배롱나무 정원이 나온다. 설립자가 수집한 수령 200년 이상인 배롱나무가 19 그루 있다고 한다. 7, 8월에 꽃이 피면 별천지가 펼쳐진다고. 여기 그늘이 별로 없어서 엄청 덥겠지만 꼭 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6. 현암(玄庵)
현암은 오묘하고 아름다운 집이라는 뜻이란다. 건축가 승효상이 지었는데 사유원을 조성하면서 첫 번째로 지어진 의미있는 공간이라고. 옥상만 개방되어 있고 암자 내부는 들어갈 수 없었다. 뭔가 기묘한 느낌이 있는 곳이었다. 여기서 3면이 트인 창을 통해 낮과 밤, 계절의 변화를 느끼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7. 팔공청향대, 조사, 정향대
팔공청향대를 지나 보름달길, 느티나무길을 걷다 보면 조사가 보이는데, 조사는 새들의 사원이라 근처에 가지 말라고 해서 멀리서 사진만 찍었다. 조사 잠깐 보고 정향대로 향했다.
정향대에서 바라 본 정경은 그냥 감탄사만 겨우 내뱉을 수 있을 정도였다. 내 어휘력이 얼마나 미천한지 절실히 깨달았다. 와, 멋지다, 예쁘다, 아름답다, 탁 트인 게 시원하다.... 이게 뭐냐고...
8. 명정(瞑庭)
명정 가는 길에 본 나무들은 잡지 촬영지이기도 했다고.
명정은 영생을 생각하는 곳이라 한다. 긴 통로를 지나서 내려가면 정말 하늘만 보인다. 내려가는 길에 찍은 사진은 마치 귀신이 찍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두워서 그런가... 내려오면 물이 보인다. 내려오는 길에 이미 물소리를 들었는데 갑자기 물이 나타난 느낌이다. 이 곳의 표현에 따르면 눈앞에는 망각의 바다가, 건너편에는 붉은 피안의 세계가 있다고. 가만히 앉아 나를, 주변을, 세상을 생각하며 고독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결국 나는 우주 안의 티끌 같은 존재인 것을. 한순간이지만 끝없는 물의 깊이를 상상할 수 있었다.
9. 가가빈빈, 행구단
가가빈빈은 까페다. 땡볕에 열심히 걸었더니 시원한 음료수라도 마시면서 쉬고 싶어졌다. 하지만 가가빈빈 들어가기 전에 꼭 들러야 할 곳이 있었으니!! 바로 행구단! 족욕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 잠깐의 깨달음을 얻었다. 여기가 소요하는 곳이고 여기가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곳이라고나 할까. 다행히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한가롭게 발을 담갔는데, 많은 분들이 여기 그냥 앉았다가 가서 좀 안타까웠다. 물이 얼마나 시원한지.
몸을 식힌 뒤 들어 간 가가빈빈에서 이 곳에 있는 모과로 만든 모과차와 당근쥬스를 마셨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까페에서 보이는 경치도 정말 빛났다.
10. 첨단(瞻壇)
첨단은 사유원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전망대이자 물탱크라고 한다. 여기서 자연의 파노라마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정말로.
11. 내심낙원
내심낙원은 사원이다. 안에 들어가볼 수 있는데, 들어가면 작은 공간에 십자가와 그림, 궤짝 등을 볼 수 있다. 가톨릭 신자들은 매우 좋아할 것 같다. 경건하면서 신을 찾을 수 있는 곳이다.
12. 유원, 사야정
유원은 전통 한국 정원이라고 한다. 사야정은 유원 내에 있는 전통 한국 정자이고. 난 여기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여기 살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곳의 나무 냄새, 흙냄새가 저 먼 기억을 불러오는 느낌이었다. 햇살이 따가워 날은 더웠지만 정자에 앉으니 시원했다. 여기서 책 읽으면 정말 잘 읽힐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한동안 이 곳을 떠나지 못했다.
13. 사담
사담은 사색하는 연못이라는 뜻이란다. 몽몽미방이란 레스토랑도 있는데, 식사를 예약하는 패키지가 있다고. 너무 아름다운 곳이었다.
14. 오당과 와사
오당은 깨달음을 얻는 연못이라는 뜻이다. 사유원에는 유독 깨달음을 얻는 곳이 많은데, 주로 물이 있는 곳이다. 산에서 물을 보며 존재의 이유를 깨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코르텐강을 소재로 지어진 와사를 걸으면 이제껏 돌로 지어진 건물들이 얼마나 시원했는지 깨달을 수 있다. 소재가 주는 온도차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돌은 돌대로, 금속은 금속대로 각자가 존재하는 방식이 있다. 나는 더운 날씨에 갔기에 와사에서 열기를 느꼈지만, 만약 겨울에 갔다면 와사에서 온기를 느꼈겠지.
딱따구리길을 따라 걷다가 치허문으로 빠지면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거의 3시간 걸렸는데, 생각보다 빨랐던지 안내하시던 분이 놀라신다. 우리 부부가 사실 참 잘 걸어서... 마지막은 다시 처음이다. 치허문을 안 찍어서 남편이 찍길래 신나서 폴짝거렸다.
사유원(思惟園)의 사유는 사유하다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국보 83호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고. 불교에서 사유는 대상을 구별하고 살피고 헤아리고 등등 대상을 깊이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고통의 원인이 되는 번뇌를 떠나 대상에게 집착하거나 애착하는 마음이 없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고, 다른 이를 해치거나 괴롭히지 않는 마음 상태로 가는 것이다. 도덕경의 '치허'나 장자의 '소요'와도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다음에 가면 좀 더 사유할 수 있을까... 이렇게 커다란 자연 속에서 나는 너무나 작은 존재였고, 또 함께 하고 느낄 수 있기에 커다란 존재였다. 다음에 가면 어떤 마음을 배우고 비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