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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뒷면을 걷다 ㅣ 순정만화 X SF 소설 시리즈 3
전혜진 지음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4년 10월
평점 :
'순정만화xSF소설' 컬래버레이션의 마지막 작품이다. 권교정 작가의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와 전혜진 작가의 만남으로 <달의 뒷면을 걷다>가 탄생했다.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에서 2092년 거대 함선 우주정거장 '디오티마'가 완공된다. 이 이름은 천재 과학자이자 이 우주정거장을 만든 csc(우주철도공사)의 회장인 스카 지니어스와 그의 쌍둥이 형제 루이스 지니어스가 붙인 이름이다. 26년 전 최악의 우주선 사고 때 자신들을 구해 준 존 H. 서얼 선장의 별명 '디오티마'에서 온 것이다. '디오티마'는 달의 뒷면을 보고 싶어했던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지혜로운 인물 또는 휠덜린의 소설에서 휘페리온의 연인이자 조화의 상징이다.
이 거대 함선 우주정거장 '디오티마'의 역장을 취임한 사람은 스물여섯 살의 나머 준이다. 진화하는 영혼 디오티마의 새로운 육체인 그는 앞선 생에서 존 H. 서얼 선장으로 살았고 2천 년의 세월을 지나온 인물이다.
나는 이 만화를 단행본 1권까지만 봤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장면은 부역장인 지온이 헐렁해보이는 나머 준이 매일 이 거대한 함선을 둘러본다는 것을 깨닫는 부분이다. 나머 준이 때때로 헐렁하게 보이고 어딘가 모자라 보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정확한 지시를 내리고 이 넓은 정거장을 매일 다 둘러봤다. 그녀가 가진 비밀은 무엇이고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는 걸까.
전혜진 작가가 되살려 낸 나머 준과 지온은 아주 자그마한 이야기로만 나오지만 반가웠다. 존 H. 서얼의 영혼을 알아봤던 '영혼감별사' 아서 우코의 손자인 라테라사를 자신들이 데리고 있을 수 있었던 이유를 말하는데, 그것은 아주 뒷 이야기. 이 책의 주인공은 바로 아서 우코의 손녀인 디오티마 우코이며 그녀가 달에서 '월인'인 자신의 '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지구의 폐기물 쓰레기장이 되어버린 달의 뒷면은 쓸쓸하다. 지구에서 보이는 쪽이 지구인의 환상을 깨트리지 않도록 각종 공장이나 쓰레기장은 달의 뒷면에 만든 것이다. 애초에 달에서 태어난 디오티마는 몇 안 되는 월인이며, 자신이 태어난 곳이 지구의 부속품처럼 여겨지는 것에 분노했다.
끝없이 아득하게 펼쳐진 미래를 홀로 걸어야 했던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의 디오티마와 <달의 뒷면을 걷다>에서 디오티마의 이름을 가진 디오티마는 알 수 없는 미래를 응시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2천 년 전 달의 뒷면을 보고 싶었던 디오티마는 지금 달에서 태어나 달의 뒷면을 보는 디오티마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어떤 존재라도 다른 존재의 도구로만 여겨지는 것은 잘못된 것일테니.
이런 연속 기획물이 계속 나오면 좋겠다. 그리고 권교정 작가님이 건강하시면 좋겠다.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는 완결을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