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괴담실록 - 유튜브 채널 괴담실록의 기묘한 조선환담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시리즈
괴담실록 지음 / 북스고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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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때부터 <삼국유사>나 <요재지이> 등 기이한 이야기를 좋아했다. 전래동화 중에서도 귀신이 나오거나 도깨비가 나오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공포영화를 즐겨 봤고, 요즘도 <심야괴담회>를 열심히 보고 있다. 그런 이야기들을 보면서 늘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것을 느낀다. 언제나 사람이 욕심을 부리면 누군가가 다친다. 그 누군가가 자신이든, 자연이든 말이다. 그리고 자연 앞에서 겸손해져야 하는 우리를 발견한다. 인간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때론 거대한 자연의 힘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다치고 죽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며 내가 알지 못한다고 거짓이라는 생각은 오만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공자가 귀신이나 괴이함 등을 말하지 말라고 한 것은 그런 것들이 요사스럽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런 소재를 이상하게 함부로 다룰까 걱정했을 거라는 신돈복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을 듯하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누군가의 원한이 귀신이 되어 사람을 괴롭힌다거나, 가뭄 귀신(한발 같은)이나 독각귀 같은 것이 나타나 농작물에 피해를 주고 역병을 옮긴다거나, '남굴'을 통해 별세계로 이동한다거나 하는 그런 이상야릇한 별난 이야기들 말이다. 그런 이야기들은 공자의 영향으로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다행히도 기록을 좋아하는 우리 조상님들이 남겨줬다. <학산한언>, <천예록>, <금계필담>, <어우야담>, <청구야담>, <용재총화> 등이 그러한 기록물인데, 이 책은 그런 문헌들에서 발췌한 이야기를 읽기 좋게 편집했다. 생각보다 깔끔하고 읽기 좋게 되어 있어 놀랐다. 아는 이야기들도 많았지만 사뭇 궁금해하며 읽었다. 역시 이런 이야기들은 재미가 있다. 신기하고 놀랍다.


이 책은 네 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꾸려나간다. 첫번째는 기이한 역사 속에 나타난 비범한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다들 알만한 인물도 있지만, 이름 없는 이들도 있다. 난세에 대비해 소금만 먹으며 자신의 육체를 죽여 영웅들을 만드는 '우'라는 거인의 이야기와 그를 알아봐준 정몽주의 이야기는 몰락해가는 나라와 짜맞춰진다. 난세에 나오는 이야기일수록 고달픈 이들의 바람이 많이 녹아있는 것이겠지. 숙종 때 벼슬을 하던 신여철과 무변의 이야기는 대가 없는 나눔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임진왜란 때 배수의 진으로 전사한 신립 장군의 이야기나 조카의 왕위를 찬탈한 세조와 한명회의 이야기, 신기한 이야기 속에 자주 등장하는 박엽의 이야기들은 아마 익숙할 수도 있을 듯하다. 


두번째는 믿기 힘든 기묘한 이야기들을 다룬다. 귀신을 점호하는 선비의 이야기는 언제봐도 신기하다. 저승도 아니고 염라대왕도 아닌데 이승에 있는 귀신을 다루다니... 꿈에 나타난 흑산도 주인의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이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에서 디오니소스가 아리아드네를 두고 가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신이든 신선이든 잘해주고 뒤늦게 원하는 것을 달라하니 미리 말이라도 했으면 그 호의를 안 받을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뒷간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 다르다고 요구를 알았어도 욕심을 부렸을지도 모르겠다. 목 잘린 과부의 이야기는 가슴 아프다. 억울하게 죽은 과부도 불쌍하고 누명을 쓴 아버지도 불쌍하다. 범인이 잡혀서 정말 다행이다. 나쁜 놈들. 가장 가슴 아팠던 이야기는 용을 아내로 둔 아전이었다. 인간 세상에서 아전이라는 위치는 양반에게 꼼짝도 못하는 자리라 어쩌면 아전이 아내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걸지도 모른다. 결국 남편의 청을 거절하지 못한 아내는 남편의 무지함 때문에 하늘의 벌을 받는데, 어쩜 그리 되고도 이리 될 줄 알았다며 남편을 원망하지 않다니... 인간이 제일 모자란 존재인 것 같다. 그 외에도 인어 이야기, 차원 이동에 대한 이야기, 한라산에 핏빛 비가 내린 이야기 등 기이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세번째는 괴이하고 요사한데 신기한 조선의 귀신 이야기이다. 외다리 귀신인 독각귀나 낮에 나타나는 그슨새, 새타니 등의 귀신이 나온다. 독각귀는 병을 옮기고, 그슨새는 홀로 있는 사람을 홀려 죽게 만든다. 원통함을 지닌 아이 귀신 새타니나 목신 역시 사람을 홀려 죽게 만드는데 제주도에 그 이야기들이 전해내려 온다. 머리를 깨서 죽이는 두억시니나 악취를 풍기는 귀신인 취생, 가뭄귀신, 칠성신 등 역시 신기한 조선의 귀신들이다. 칠성신의 경우는 확실히 도가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 한데, 이성계가 치성을 잘 드려 삼한의 주인이 되었으나 그가 세운 나라는 도교와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만을 숭상하는 나라가 되었으니 세상사 라는 게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네번째 이야기는 인간의 욕심 때문에 벌어진 무서운 이야기들이다. 이 이야기야말로 요즘에도 있을 법한 괴담이라고 할 수 있다. 무인도에 갇혀 독초를 먹고 털복숭이가 된 선비의 혀를 잘라 그가 가진 보물을 빼앗고 재주를 부리게 한 인간들이나, 자신의 자손이 천자가 되지만 2대에서 끝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야사를 태워 묫자리를 쓴 흥선대원군의 이야기 같은 것들 말이다. 흥선대원군의 이야기는 영화 <명당>에서도 다루고 있는데, 결국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커다란 화를 초래하는지 보여준다고 하겠다. 홀로 살아 돌아온 심마니의 비밀은 욕심을 부린 자는 화를 입고, 그 사실을 보고 욕심을 버린 자는 복을 받는다는 전형적인 이야기지만 실천이 어렵다. 하지도 않은 일로 비난 받지만 그 억울함마저 갈무리하고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는 삶은 배울만하다. 무덤가의 여인을 살해한 친구를 벌한 평안감사의 이야기는 비정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며, 얼굴에 못박혀 죽은 여종이 저주를 퍼붓는 건 이해가 가는 일이다. 하지만 저주를 퍼붓는다고 여종이 살아날 수도 없고 오히려 또 다른 죄를 짓는 일이니, 여종의 영혼은 구제받지 못할 것 같아 안타깝다. 제일 신기한 이야기는 마십의 이야기이다. 마십이 원님의 아들을 구해줬는데, 이 아들이 은혜를 원수로 갚아 마십의 아내를 훔쳐간다. 아내를 구하려고 마십은 원님이 시킨 굴을 뚫는 일을 하는데, 하늘의 도움으로 뚫은 굴이 아내가 갇힌 광과 연결되어 있어 아내를 구해 굴을 통해 도망가려 한다. 마십굴이라 불리는 그 곳은 아직도 있다고 하는데, 마십과 아내는 어디로 간 것일까.


작가님들의 말처럼, 정식 기록이 아님에도 이런 이야기들이 여전히 살아있는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들이 많다. 이 세상은 인간만이 사는 곳이 아니라는 것,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 지나친 욕심은 결국 화를 부른다는 것, 자연 앞에서 겸허해져야 한다는 것 등 말이다. 우리가 이런 마음들을 지닌다면 이 세상은 좀 더 살만해질까. 이렇게 더운 여름이 계속될 거라는 두려움 앞에 황룡이라도 나타나 구름으로 해를 가려주고 시원한 바람을 보내주고 가문 곳에 비를 뿌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만히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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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8-10 16: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정님 이달의 당선 추카 합니다!^^
계신 곳 비 피해 없으셨길 바랍니다

꼬마요정 2022-08-11 09:0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저는 부산에 있어서 비 피해는 없었는데 윗 지방 분들 다들 무사하시면 좋겠어요ㅠㅠ

그레이스 2022-08-10 16: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려요!

꼬마요정 2022-08-11 09:02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새파랑 2022-08-10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정님 당선 축하합니다~!!

꼬마요정 2022-08-11 09:02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서니데이 2022-08-10 2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꼬마요정 2022-08-11 09:02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세요~

이하라 2022-08-10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정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꼬마요정 2022-08-11 09:08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8-11 0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왕조현, 장국영 주연의 <천녀유혼>을 정말 좋아합니다. 이 영화가 <요재지이>의 <섭소천>편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고 뒤늦게 <요재지이>를 접했네요... 많은 전설과 괴담에서는 귀신과 요괴들이 등장하고 이들이 인간을 괴롭히는 것으로 나오지만, 대부분 이들에게 사연이 있었고 이들이 선량한 마음을 가진 피해자였다는 내용을 돌이켜보면 진정 괴물이 누구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게 됩니다... 꼬마요정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꼬마요정 2022-08-11 09:52   좋아요 1 | URL
아, 저도 그 영화 좋아합니다. 왕조현, 장국영 진짜 이쁘죠 ㅎㅎ 양조위가 나온 <천녀유혼3>도 좋아해요. 그건 양조위가 좋아서죠. ㅎㅎㅎ <요재지이> 속 섭소천은 뭔가 불쌍하지 않나요? 오히려 귀신이 더 의리가 있고 정도가 있어서 겨울호랑이님 말씀처럼 누가 괴물인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축하 고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8-11 12:49   좋아요 1 | URL
<요재지이> 속 섭소천의 불행은 <천녀유혼>의 왕조현의 아름다움으로 많이 씻겨졌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꼬마요정 2022-08-11 15:01   좋아요 1 | URL
정말 그럴거라 믿어요^^ 진짜 왕조현의 섭소천은 정말... 아름답죠.^^

페넬로페 2022-08-11 14: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요재지이‘는 딸아이 어릴 때 읽으라고 사 주었는데, 저도 같이 읽은 기억이 납니다**

꼬마요정 2022-08-11 15:04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요재지이>는 그냥 옛날 이야기나 전래동화 같은 느낌이라 따님이랑 재미나게 읽으셨겠어요. ㅎㅎ 옛날 이야기라 고리타분한 소리도 있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들도 있고 사람 사는 이야기들이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아요^^

bookholic 2022-08-11 2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 님, 이달의 당선작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금요일 되시고요... 주말도요... 광복절도요...^^

꼬마요정 2022-08-12 00:3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북홀릭 님두 즐거운 금요일 보내시구요. 주말도 광복절도 행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