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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 터프한 인간이 되고 싶습니다 ㅣ 난생처음 시리즈 1
황보름 지음 / 티라미수 더북 / 2020년 4월
평점 :
2018년 6월, 이 달 말이면 2년 계약으로 하던 일이 끝나게 되어 바쁘던 일이 많이 줄어들게 될 터였다. 그래서 난 하고 싶던 운동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건 바로 주짓수! 드라마였나 어디서 주짓수로 상대를 제압하는데 그게 얼마나 멋있던지. 난 그동안 격투기에는 전혀! 관심도 없었는데, 어째서인지 주짓수만큼은 잊혀지지가 않는 거였다. 그래서 그냥 사무실 근처에 주짓수 도장이 있는지 검색했는데 딱 한 군데 있었다. 아니, 내가 여길 그렇게 다녔는데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하긴 5층이니까. 엘레베이터 없는 5층에 있는 도장인데, 내가 어떻게 알았겠어 라며 찾아가보기로 했다. 한 번 마음 먹으면 별로 알아보지도 않는 나였기에, 위치만 검색하고 무작정 찾아갔다. 옆에서 남편은 계속 니가 할 수 있겠냐, 어떤 곳인지는 알아봤냐 걱정하는데, 그냥 하면 되겠지 뭘 또 알아봐 라며 오후 4시 호기롭게 도장을 방문했다.
나를 반긴 건, 닫힌 철문. 6시 반부터 수업이라 나는 허무하게 그냥 내려와야 했다. 5층까지 걸어올라갔는데... 나는 그 날 7시에 다시 도장을 방문했다.
도장 문을 열자 넓은 공간이 보였다. 회색 매트가 깔려 있고, 미색 벽에 액자도 걸려 있고, 벽화처럼 그림도 그려져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막 엉겨 있었다. 그리고 도복을 입은 남자가 나를 쳐다봤다. "저, 등록하고 싶은데요."
그랬다. 참관도 아니고 등록하고 싶다고. 곧 알게 됐지만, 도복 입은 남자는 관장님이었고, 남편이랑 같이 온 나를 보고 처음엔 남자 쪽이 등록하러 온 줄 알았다고 했다. "아니요, 제가 할 거에요." 3개월 등록하면 도복을 준다기에 3개월 끊었다. 옆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던 남편은 "저도 할게요!"
등록한다고 정보를 써 내려가는데, 주짓수를 하고 싶은 이유를 적는 칸이 보였다. 강해지고 싶어서! 정말이었다. 난 강해지고 싶었고 그렇게 적었더니 관장님이 오~ 놀라는거였다.(남편은 와이프 따라왔다가라고 적었다.ㅋㅋ) 그러고 생년월일 적는 칸이 있어서 적다가 문득 "나이 제한 있는 건 아니죠?" 여러모로 특이한 단원이 되었다. 나랑 남편이랑.
등록한 날이 금요일이라 우리는 월요일부터 운동하기로 했다. 부푼 맘을 안고 월요일 도장 갔다가 죽는 줄 알았다. 일단 준비운동부터 힘든데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 앞 사람이 하는 거 보고 그 동작대로 쭉쭉 가야했다. 내가 처음인데, 힙스케이프나 새우드릴을 어케 아냐고!! 열심히 눈으로 보고 어설프게 따라했는데, 10분 정도 후 난 그냥 집에 가도 될 것 같았다. 이미 지쳤으니까. 하지만 수업은 아직 한참 남았고, 아마 첫 날 클로즈드가드를 배운 것 같다. 코치님의 설명을 듣고 따라하는데, 난 내가 얼마나 아무 생각이 없었는지 깨달았다. 내가 간 도장에는 여자 단원들이 제법 있어서 같이 드릴 연습을 하는데, 보통 주짓수 도장에는 여자가 거의 없다고 한다. 관장님이 세계를 돌아다녀봐도 우리 도장만큼 여자 단원이 많은 곳은 별로 없다고. 그러니 난 이렇게 몸을 부대끼는 운동을 할 건데 -심지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아무 생각없이 온 거다. 하지만 여자 단원들이 많아서 같이 할 사람 많으니 신났다. 열심히 연습하고 씻고 집에 갔다. 뭔가 아주 기분이 좋았다. 몸을 안 쓴 데가 없는 것 같았고 숨이 찼지만 즐거웠다. 그리고 다음날... 난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곡소리를 내며 겨우 일어나 주먹이 쥐어진 손가락을 하나 하나 폈다. 어찌나 깃을 세게 잡았던지 손가락이 안 펴져... 와... 난 죽을 것 같아서 몸을 풀어주기 위해 도장을 매일 갔다.
도장 문을 열고 들어간 지가 벌써 4년 전이라니... 파란띠를 매게 된지도 벌써 2년이 되어간다. 지금은 파란띠 4그랄... 다음 승급이면 보라띠다. 보라띠... 하아... 할 줄 아는 것도 없는데 띠만 올라가니 마음이 불편하기 그지없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읽고 너무 좋아서 작가의 책을 찾아봤는데 이 분이 킥복싱을 한다는 거다. 우와, 킥복싱이라니. 격투기 하는 작가 너무 멋있다. 그래서 당장 샀다. 그리고 작가가 말하는 그 성취감, 하면 언젠가는 된다는 그 마음에 누구보다 공감했다. 처음에는 아령조차 들기 힘들다가 어느 순간 8kg짜리 케틀벨을 들고 운동하고, 푸쉬업을 스무 개까지 하고, 스쿼트도 쉬지 않고 하고, 근육이 생긴 몸을 보고 기뻐하는 일들 말이다. 갸날팠던 나의 체구는 지금도 작지만 어쨌든 어깨가 넓어졌고, 팔뚝에 근육이 있고, 배에 복근이 있고, 무거운 것도 오래는 못 들어도 번쩍 번쩍 든다. 얼마 전에는 정수기 물통도 갈아봤다. 어설펐지만 됐다!!!! 이런 나 자신이 너무 좋아!!!
작년 가을에 감 따러 시외가집에 갔을 때, 내가 감박스를 번쩍 들고 나르니까 외삼촌이 깜짝 놀라면서 주짓수를 하더니 힘이 많이 세졌다고 놀라셨고, 같은 사무실에 있는 선배는 거래처에서 자료 빨리 안 주면 격투기 한다고 말 안했냐며 부러워한다. 작가가 말하는 느슨한 노력, (은근한) 꾸준함이란 게 이런 거였다. 하다보니 어느 날 이런 몸과 마음을 얻었습니다. 하하하
게다가 운동을 하다보면 운동이 1순위가 된다. 운동 가야 하니 술도 안 먹고, 저녁 외식도 안 한다. 도복 말리려고 건조기를 샀고(물론 도복은 건조기에 넣으면 안 된다. 그 사실을 사고나서 알았다.), 필라테스까지 다니게 되었다. 주짓수를 하다보면 유연성도 필요한데다 몸을 마는 동작이 많아 펴 줘야 덜 다치고 오래 할 수 있다. 덕분에 1주일에 많으면 5번, 적어도 3번 정도는 운동을 하고 있는데, 행복하다. 하지만 체력이 한계가 있는데 이럴 땐 20대가 부럽다. 5분 스파링을 5번을 하고도 더 할 수 있고, 다음 날 아무렇지도 않은 그들이 말이다. 하긴, 초등학교 6학년이던 귀여운 한 단원은 "결리는 게 뭐에요?"란 질문을 했었지. 나는 잘 한다기보다 꾸준히 오래 하고 싶다. 관장님이 계속 도장을 하는 한 나도 다치지 않고 계속 다니고 싶다.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찾는 것도 커다란 복인 듯 하다. 나의 운동 역사 역시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지만(크으..) 어쨌든 지금도 좋아하는 운동은 수영, 걷기, 주짓수. 주짓수가 젤 좋다! 황보름 작가님은 킥복싱이, 지인분은 요가가, 내 둘째 동생은 뛰기가, 내 남동생은 스쿠버다이빙이, 나랑 남편은 주짓수가 그러하다.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선택을 꼽으라면 몇 개가 있지만 그 중에 주짓수 도장 문을 열고 들어간 것이 포함된다.
지금, 운동이 너무 좋아 하면서 끝을 맺지 못하고 있다. 우리 알라디너님들도 모두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 찾으시고 하시면 좋겠다. 키도 작고 몸무게도 얼마 안 되고 나이도 결코 어리지 않는 저도 합니다!!
살아가면서 ‘뭔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이미 그 ‘뭔가‘를 잘해낼 재능이 내 안에 있는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 안에 재능이 없다면 그 ‘뭔가‘를 하고 싶은 마음도 안 들뿐더러 그 ‘뭔가‘를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는 거였다. 이런 말은 가슴을 뛰게 한다. - P66
가장 중요한 건 내가 내 몸의 변화를 느끼는 실감이다. 내 몸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면, 그 느낌이 진짜라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 느낌을 믿고 하다 보면 안 되던 게 된다. 하다 보면 된다. 진짜, 하다 보면 되더라.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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