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이스트



 




나는 문화 예술계 쪽 사람들과 친한 편이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사람은 H인데 직업은 타투이스트'다. 내가 그를 안 지도 횟수로 어언 10년이 넘는다. 그는 전공이 " 개념미술 " 이었는데, 대한민국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은 배고픈 일이어서, 부업으로 타투를 시작했다가 그것이 밥벌이가 된 경우'였다. 그는 야망이 큰 편이어서 남의 피부에 바늘이나 찌르는 일을 매우 부끄러워했다. 그는 스스로를 약쟁이라며 자조 섞인 말을 내뱉곤 했으나 타투 실력이 워낙 뛰어나서 래퍼 도끼의 문신도 그가 뽐낸 솜씨였다. 그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계기는 돼지에게 문신을 새기면서였다. 아래는 그의 인스타그램에서 발췌한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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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돼지 몸에다가 루이비통 로고, 기독교 성화, 박근혜와 이명박 초상화, 트럼프 얼굴 따위를 새겨 넣었는데 이 행위가 개념미술로 평가를 받으면서 유명세를 치렀다. 하지만 명성도 잠시였다. 이 행위는 명백하게 동물법 위반이었다. 그래서 그는 중국으로 건너가 < 아트 팜 > 이라는 돼지 농장을 지어 돼지 피부에 문신을 새기는 작업을 계속했다. 이 작품 시리즈는 명성을 얻어서 문신이 새겨진 돼지가 죽으면 가족을 벗겨서 판매를 했는데 8000만 원에 거래가 되기도 했다. 그가 명성을 쌓고 있는 동안 나는 몰락을 거듭했다. 하던 일을 접었을 때 내 손에 남겨진 재산은 빚만 수 억이었다. 설상가상 공황장애가 생겨서 일상생활을 하는데 많은 불편이 발생했다.  현실을 비관하여 죽으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그때 내 손을 잡아준 이가 H였다. 그는 악마의 속삭임을 제안했다. 돼지에게 새겼던 문신 작업을 내 몸에 하는 조건으로 자신이 빚을 청산해주겠다는 제안이었다. 단, 조건이 있었다. 일 년에 세 달 정도는 세계를 순회하며 미술관에서 내 몸을 전시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에 따른 비용도 지불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 가지 조건이 더 있어. 네가 죽으면 네 피부는 도려내서 액자에 걸려 판매를 할 거야. 잔인한 거래처럼 보이지만 어차피 죽으면 썩어 문드러질 몸이잖아. 살아생전에 사후의 일을 미리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  결정을 내리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았다. 빚쟁이에게 쫓겨 장기매매꾼들에게 장기를 적출당하느니 차라리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쪽을 선택했다.  내 몸에 새겨진 전신 문신은 한 여자의 초상이었다. 그림 속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녀는 누군가를 원망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거울에 비친 그림은 보면 볼수록 기시감이 들었다. 저 여자를 어디서 봤더라 ?  내가 타투이스트에게 작품 제목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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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나는 프랑스로 떠났다. 행선지는 소더비 경매장이었다. 경매 거래소 안으로 들어서자 경매인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 앞에서 옷을 벗었다. 와와. 탄성의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내 몸에 새겨진 작품 때문인지 아니면 거대한 내 남근 때문인지 아리송했다.  작품을 사겠다는 경매꾼들은 경쟁적으로 손을 들어 흥정을 하기 시작했다.  최종 낙찰가는 600억이었다.  몸에 새겨진 내 거죽을 낙찰받은 사람은 놀랍게도 한국인이었다(경매 진행에 참여했던 사람은 그의 직원이었다). 그녀는 제 2의 장영자라 불리우는 인물로 명동에서 사채 놀이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자라고 했다. 내 몸에 새겨진 작품 소유주를 직접 만난 것은 며칠 후였다. 그녀의 사무실에 입장했을 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내가 오래전에 알던 사람이었다. 못난이 춘자, 그래 ! 못난이 춘자였다. 그 옛날에 내가 못난이라며 무시했던 춘자가 올림머리를 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타투이스트가 방긋 웃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춘자가 말했다. " 페루애 오빠, 오랜만이야.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구나 ? 젊었을 땐 알랑드롱 뺨 때린 외모였는데.....  이제는 뒷방 늙은이 꼴을 하고 내 앞에 나타났네 ? "  크아아아아. 타투이스트가 크게 웃었다. 춘자가 타투이스트에게 눈을 흘기자 H는 무안한 듯 소리를 죽였다. 춘자가 말했다. " 내 파트너야, 사업 파트너. 종종 섹스 파트너이기도 해 ! " 나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 페루애 ! 당신은 내가 못생겼다는 이유로 내게 온갖 모욕을 했지. 때리기도 하고 월급날이면 찾아와서 월급봉투째 빼앗곤 했잖아. 하지만 이제는 그때의 내가 아니야. 그때의 이춘자가 아니라곳 !!!! " 그녀는 자신의 왼쪽 귀밑머리를 귀 뒤로 넘기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오빠,  죽으면 가죽을 벗겨서 내 거실에 걸어둘 거야. 지금은 후회하지 않아.  당신은 언제나 쓰레기였지만 지금은 그래도 600억짜리 몸뚱이를 가진 남자가 되었잖아. " 춘자는 그 말을 끝으로 방에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타투이스트가 말했다. " 중국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춘자가 나에게 접근했지. 그리고는 차근차근 자신의 복수극에 대해서 설명하는 거야.  근사한 계획이었지. 오, 정말 근사한 계획이었지. 그녀에게는 자신을 버린 남자에 대한 완벽한 복수를 완성할 수 있는 음모였고, 나는 내 명성의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왜 옛말이 그런 말이 있잖아.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말이야. "




ㅡ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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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2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23 1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9-01-22 1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신은 오래전부터 예술의 표현 방식의 하나로 알려졌지만, 우리나라에 여전히 문신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는 문신을 하는 사람들이 문제가 아니라, 문신의 의미를 잘못 이해한 채 그걸 하는 사람들이 더 문제 있다고 봐요. 이를테면 군 입대를 피하려고 문신을 하는 사람들이요. 이런 사람들이 화젯거리가 되니까 ‘문신하는 사람은 불량하다’는 편견이 생기는 것 같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01-23 15:25   좋아요 0 | URL
ㅎㅎ 문신이 사실은 의사만 할 수 있어요. 그렇기에 지금 하고 있는 문신은 모두 다 불법입니다... ㅎㅎㅎㅎ
꽤 웃긴 거죠. 아니, 문신을 의사만 할 수 있다니...

임모르텔 2019-01-23 2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신... 마산에 문신이라는 조각가가 있는데 문신미술관이라고 있습니다.ㅎ (관계없는 이야기지만..ㅋ)
저도 왼팔에 인디언 드림캐쳐(꿈을 걸르는 망) 문신이 있는데, 세상속으로 다이빙하기 겁날때 마법의 주문처럼 저를 구원해주었죠! 아직도 보수적인 경상도에서는 나의 문신을 보고 눈쌀찌푸리는 분들이 있더군요! 더구나 여자가 무슨? ..하는 따가운 눈초리.
오히려 여자들이 더 싫은 내색을 해서 놀라웠습니다. 경상도에서 사귀게 된 여자친구가 남들있을땐 내 옷을 슬그머니 내려주더군요. 자기남편이 보면 나와 노는걸 싫어한다고! 그래서 저는 그 여자친구를 안만납니다. 그 친구가 나를 찾았지만 제가 거절했죠. ㅎㅎ 문신때문에 에피소드가 종종 있네요^^ 쫄깃한 글 , 감사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1-23 15:25   좋아요 0 | URL
보수 성향이 짙은 지방일수록 더욱 그렇죠... ㅎㅎㅎㅎㅎ
임 님도 문신을 새기셨군요. ㅎㅎㅎ
 

 

 


 




자기만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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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욕구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 안전 욕구 > 이고, 다른 하나는 < 만족 욕구 > 이다. 그런데 만족 욕구가 충족되기 위해서는 먼저 안전 욕구가 충족되어야 한다. 만약에 당신이 마이클 마이어스 영화 << 할로윈 >> 에 등장하는 하키 가면 괴물   에게 쫓기고 있다면, 쫓기는 도중에 식욕이나 성욕따위가 생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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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의식주에서 안전에 해당되는 요소는 무엇일까 ?  당연히 住(거 공간)이다.  집은 그 사람의 안전을 책임지는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한국의 무식한 보수들은 인구 감소 문제를 여성 탓으로 돌리지만 핵심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집값 탓이다. 서울시 집값은 세계에서 3위에 해당될 만큼 고가의 재화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서울에 사는 직장인이 월급 절반을 저축해서 집을 살 수 있는 기간은 25평 아파트인 경우 23.2년이란 계산이 나온다. 아파트 평수가 올라갈수록, 강남으로 한정할수록 기간은 연장된다. 강남구에서 33평 43.3년, 25평 37.3년이 걸리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만큼 안정 욕구 충족은 유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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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머리에서도 언급했듯이 안전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만족 욕구도 충족될 수 없기에 신생아 수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 진영은 인구 감소의 원인을 여성의 이기주의로 돌린다. 보수의 스토리텔링은 기승전여(자 탓)이다. 한국 여성은 주택 문제에 있어서도 남성보다 불평등한 조건에 놓여 있다. 여성 1인 가구는 안전 문제로 남성보다 많은 돈을 안전 비용으로 지불해야 한다. 최근에 혼자 사는 여성이 늘어나면서 보안 시스템과 방범시스템이 갖춰진 원룸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이런 곳은 대체적으로 비싼 편이어서, 안전을 고려한 여성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주거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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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여성은 주거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월세가 저렴한 곳에 들어가려고 해도 안전 문제 때문에 입구 현관에 도어락이 있고 관리실에서 CCTV를 감시할 수 있는 곳을 선호하다 보니 남성의 주거 비용보다 평균 20만 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이런 댓글을 남길 수도 있다. 혼자 사는 여성을 노리는 성범죄는 주로 몇몇 예쁜 여자에 한정되는 것이니 일반화하지 마라 !  그런데 과연 이 주장은 사실일까 ?  박형민 범죄조사연구실장은 << 성폭력 범죄자의 피해자 선택 >> 이라는 흥미로운 주제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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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가해자가 피해자를 고를 때 선택하게 되는 조건은 외모와 옷차림 같은 성적 기호 때문이 아니라 단순하게 피해 여성이 혼자 있는 상황, 침입하기 용이한 상황, 피해자를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상황에 따라 대상을 선택한다고 한다. 어둠 속에서 강간을 하고 나서 나중에 피해 여성의 얼굴을 확인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범죄자는 혼자 있는 상황 때문에 범죄를 실행하지 여자의 야한 옷차림, 성적 매력, 외모 따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즉, 피해자의 매력이 성폭력 범죄를 유발하는 요인이 아니라 오히려 여자라는 성의 획득이 성폭력을 유발하는 요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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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여성은 남성에 비해 더 많은 주거 비용을 지불하고 있지만  공교롭게도 여성은 남성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는다. 이 불평등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대한민국은 모든 것을 여자 탓으로 돌린다. 인구가 감소되는 것도 여자 탓이요, 성범죄는 여성의 행실 탓이다. 애를 낳는 순간 맘충이 되고, 집 밖으로 나오면 김치녀가 되고 차를 끌고 나오면 김여사가 되는 세상. 그리고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면 길빵을 당한다. 이토록 선명한 차별을 두고 남성은 오히려 여성 상위를 외치고 있다. 좆같은 세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저잣거리 입말로 좆으로 흥한 놈은 좆으로 망한다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한국 사회는 좆으로 흥했다가 언젠가는 좆으로 망할 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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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chap and a bitch  :  연놈의 지정학적 관계   


 

 

 

 


 



너라고 부르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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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기가 부른 노래 << 내 여자라니까 >> 에서 1인칭 화자는 연상의 여자를 사랑한다. 누나는 화자인 < 나 > 에게 " 니가 뭘 알겠냐고 크면 알게 된다고.... " 타이르는 것으로 보아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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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차이 가지고 사랑의 조건을 논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기는 하나, 이 노래에서 나이 차이는 중요하다. 하여튼, 나는 누나를 사랑한다. 나는 말한다. " 누난 내 여자니까 ! " 이 용기 있는 사랑 고백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내 관심은 < 나 > 가 이 고백 후에 내뱉는 말투'다. 그는 " 누나는 내 여자 " 라고 고백한 후 " 너는 내 여자니까 ! " 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누나에서 한순간에 < 너 > 라는 반말이 진행되는 것이다. 내가 말머리에서 나이 차이를 언급한 이유이다. 만약에 이 노래를 연하남이 아니라 나이 어린 여자가 나이 차이가 많은 남자에게 사랑 고백한다면 다음과 같은 가사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사랑 고백 후에 붉은 글씨로 쓰여진 태도 변화에 유의하도록 하자) ? 역지사지, 똑같은 잣대로 개사를 해보자.



내 남자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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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사 페루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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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여동생으로만 / 그냥 그 정도로만 / 귀엽다고 하시지만요 / 아저씨는 내게 남자이시지요 / 가시네가 뭘 알겠냐고 크면 알게 된다고 / 까분다고 하시지만요 / 아저씨는 내게 남정네이시어요 / ...... / 아저씨는 내 남자라니까욧 / 너는 내 남자니까 ???????? / 이젠 너라고 부를게 / 뭐라고 하든 상관 없어, 시바 ??????? / 놀라지 말아라잉 / 이 쨔샤, 넌 내 남자라니까 ! / 나는 그런 여자여, 알긋냐 / 얼릉 내 품에 안겨보아라잉 / 아따, 사내새끼가 나이 처먹고 뭐시 그리 부끄럽다냐 / 후딱 내 가슴이 뽀개지도록 안겨라잉

 

​​ 

 


 

연하남과 연상녀의 사랑을 다룬 드라마는 대부분 남성이 사랑을 고백하고 여성이 사랑을 받아들이는 순간 대등한 관계가 진행된다. 일종의 계급 장벽이 무너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관계에서는 사랑의 결실이 수평적 계급을 만들지는 않는다. 만약에, 나이 어린 여자가 나이 많은 남자에게 너는 내 남자요, 이젠 너라고 부를게, 짜샤 ! 라고 말한다면 남자는 사랑의 힘으로 6월의 개똥벌레처럼 방긋 웃을 수 있을까 ? 이 노래는 그런 의미에서 시대착오적이다. 이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언어 속에는 여성차별이 많다. 가장 선명한 예가 < 연놈 > 이라는 단어'다. 그 어느 나라보다도 서열을 중시하는 가부장 유교 사회에서 순서는 매우 중요하다.

​

자리 배치에 있어서 힘을 가진 자가 항상 앞에 나열된다. 영어 " ladies and gentlemen ! " 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 신사 숙녀 여러분 ! " 이 되는 것도 바로 앞자리의 중요성 때문이다. 불온하도다, 남녀 칠세 부동산이거늘 미천한 계집이 사내 앞에서 설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외다. < 남녀 > 라는 단어도 남자가 앞자리를 차지하고, < 부부 夫婦 > 라는 단어도 夫 : 사내 부' 가 핫플레이스를 차지한다. 한국어 단어의 모든 단어가 " 불타는 남정네의 자리 욕심 욕망 법칙 " 를 따른다. 그런데 딱 하나, 이 법도를 벗어나는 단어가 있다. 바로 < 연놈 > 이라는 단어다. " 년 " 이 " 놈 " 보다 앞선다. 그렇다면 이 불온한 불경은 전복적 투쟁의 결과일까 ? 

​

​" 연놈 " 이라는 단어는 오로지 욕으로 사용될 때에만 호출되는 단어'다. 남녀가 잘못을 저지르면 연놈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도 불타는 남정네의 자리 욕식 욕망 법칙이 작동한다. 욕을 먹되 남자가 먼저 먹는 것은 위신이 서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욕을 먹을 때에는 여자가 먼저 먹어야 한다. " 이 년아, 욕은 너 먼저 처먹어 ! " 이 얼마나 꼼꼼하신 전략인가 ! 나는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는 불알후드의 욕망 앞에서 무릎 탁, 치고 아, 했다.  꼼꼼하시도다. 영어에도 < 연놈 > 과 비슷한 숙어가 있을까 ?   찾아보니 있다. < 연놈 > 의 영어 표현은 바로 < a chap and a bitch ! > 이다. 이 표현을 한국어로 번역한다면 남녀라고 써야 할까, 아니면 연놈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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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다 :


 

 

 

                                     도어락, 2018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숨이 막히는 듯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언가 끔찍한 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하지만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의 집안 어디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혼자 살고 있었으며 그것은 그 순간 그 끔찍한 일을 함께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침대 밑을 보여 줄 사람이, 몸을 숨겨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 침대 밑 악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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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텔 원룸에서 독신으로 살아가는 주인공 경민(공효진 분)은 여성 1인 가구라는 사실이 알려져 범죄의 타깃이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독신이다. 그는 일부러 빨래 건조대에 남자 속옷과 남자 양말을 진열하고, 현관에 남자 구두를 배치한다1).  만약에 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 설정이 과도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남성 관객일 확률이 100%다.  현실 반응은 영화보다 더 히스테릭하다.  여성이 혼자 있을 때를 대비해 배달이 오면 앱(Application)에서 남자 목소리로 변조되어 대답하는 기능도 인기를 얻고 있다.  영화보다 현실 속 설정이 더 기괴한 경우이다.  이처럼 영화 속 설정은 여성이라면,  더구나 혼자 사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불안이다.  영화는 그 불안의 지점을 파고든다.  강력범죄 피해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86.2%이고,  성폭력은 하루 평균 88회 이상 발생하며,  

 

성폭력 가해자의 94.4%가 불구속 처리되고,  강도, 강간, 살인과 같은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 중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96.3%다.  그리고 주거침입 성범죄 사건에서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99.8%다.  그렇다면 여성이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반응에 대하여 남성은 무시로 일관하거나 반대로 격하게 분노를 표출한다.  영화 << 도어락, 2018 >> 에서 남성 - 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원룸에 누군가 있다는 경민의 진술을 초지일관 히스테리한 반응으로 치부한다. 여성의 언어는 권위와 존경을 얻지 못한다. 가족극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 사건에 개입하고 해결하는 것은 남편이다. " 당신은 조용히 있어 ! "           

 

​

이 흔해빠진 패밀리 플롯은  여성의 언어가 사건을 해결하는데 아무 도움도 될 수 없다는 편견을 심어준다.  반면, 가부장 남성은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단숨에 다툼을 정리한다. 가족 서사극'은 남성의 언어에 권위를 부여하고 우리는 그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영화 << 도어락, 2018 >> 은 침대 밑에 악어가 산다는 환자의 재담을 닮았다. 즉, << 도어락 >> 은 익히 알려진 재담의 장르적 변주'이다.

 

 

    침대 밑에 악어가 산다고 불평하는 여성 환자가 있다.  여자는 악어가 자신을 잡아먹기 위해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고 말한다.  정신과 의사는 환자에게 그것은 단지 환상에 불과하며 침대 밑에는 악어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와, 악어 있다니까요 ~    왜, 내 말을 안 믿냐고요 ~    나, 이대 나온 여자라고요 ~   하지만 의사는 도시에서 악어 출현은 " 실현 불가능한 환각 " 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무시한다.  두 번째 상담에서도 그 환자는 여전히 똑같은 불평을 하지만 남자는 지난번 진단과 같은 처방을 내린다. 와, 악어 없다니까요 ~    왜, 내 말을 안 믿냐고요 ~     나, 정신과 의사라고요 ~             세 번째 상담이 있던 날,  약속했던 환자가 나타나지 않자 의사는 환자의 망상이 사라졌다며 기뻐한다.  만약에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 난다면 이 이야기는 매우 지루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며칠 뒤, 의사는 환자 친구인 k를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환자의 안부를 묻는다. k가 말한다.  그 악어한테 잡아먹힌 친구 말하는 겁니까 ?  이웃집에 사는 사람 말로는 그 집 침대 밑에서 악어가 살았다고 하더군요.                   

​​

 

 

자신이 살고 있는 오피스텔 원룸 안에 누군가 있다고 말하는 경민(공효진 분)은 침대 밑에 악어가 산다고 말하는 정신과 상담 환자와 동일인이다. 그리고 경민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이 형사(김성오 분)는 정신과 의사'이다. 또한 혼자 사는 여성만을 노리는 범인은 사람 탈을 쓴 초록색 악어'이다(실제로 영화 속에서 범인은 경민의 침대 밑에 숨어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남성 - 들'은 예외 없이 모두 경민의 침대 밑에 사는 악어에 대하여 " 실현되지 않는 환영 NON·REAL(IZE)  " 이라고 진단한다. 하지만 남성들에 의해 실현되지 않은 환영'으로 치부되었던 악어는 관객 앞에 " 실현된 환각 NON·ILLUSION(ED) " 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초록색 악어는 남성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여성에게는 존재하는 공포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왜 초록색 악어는 남성들에 의해 리얼/real 이 아니다/non 라는 존재 부정을 당하는 것일까 ?   그것은 바로 초록색 악어가 일반 남성의 비밀스러운 환유이기 때문이다.  남성이 악어의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그 행위는 곧 자기 자신을 향한 비판'이 된다.  라캉의 사유를 빌리자면 침대 밑에 사는 악어는 실재 the Real 에 가깝다. the Real 실재(계)는  the reality  현실과는 다른 개념으로 실제(實際)도 아니고 실재(實在)도 아니요, 그렇다고 실체(實體)도 아니다. " 리얼리티 없는 리얼 " 이 바로 침대 밑에 사는 악어이다. 남성에 의하면 악어는 어디에도 없다.

​

하지만 이 존재 부정이야말로 악어를 어디에나 있도록 만든다. 악어는 침대 밑에서 출몰하기도 하고, 거리에서 바바리를 입고 여고 앞 골목길에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선생님이나 목사님의 탈을 쓰고 나타나기도 한다. 악어는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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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원룸 ONE-ROOM  > 은 1인 주거 공간의 마지노선'이다. 은행 직원 경민은 1인 가구를 2인 가구로 포장하기 위해 위장을 선택하지만 원룸 자체가 독거 주거 형태'라는 점을 감안하면 효과는 미지수'다. 이보다 후퇴한 주거 형태가 < 쪽방 > 이다.  쪽방은 ROOM 를 1/2, 1/3, 1/4, 1/5, 1/6......1/13으로 쪼갠 형태로 고시원, 쪽방촌, 달방, 고시텔이 이에 속한다.  영화 << 도어락 >> 은 원룸에 혼자 사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만한, 일상의 공포를 설득력 있게 제공한다. 독거의 최소 주거 공간 형태가 ONE - ROOM 이라는 점은 주인공 조경민(공효진 분)이 계약직 직원이라는 설정과 맞물리면서 주거 빈곤에 따른 현대 여성의 사회적 불안을 다루는데 성공한다. 한 칸짜리 방에 사는 여자는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이곳에서 물러나면 갈 곳은 방을 쪼갠 쪽방이다. 이 영화가 리얼리티를 가지는 부분이다. 하지만 살인마가 사는 공간으로 설정된 공가(空家)가 영화 중후반부터 주요 무대로 등장하면서 이 영화는 톤 앤 매너가 갑자기 와르르 무너진다. 무대가 원룸 ONE-ROOM 에서 공가(空家) EMPTY HOUSE 로 후퇴하면서 일상생활의 공포는 난도질 스플래터 장르의 판타지로 추락한다. 특히, 공가 장면들은 영화 << 목격자 >> 와 << 샤이닝 >> 냄새가 너무 나서 신선함마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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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프로젝트 - 남자들만 모르는 성폭력과 새로운 페미니즘 ㅣ 푸른지식 그래픽로직 5
토마 마티외 지음, 맹슬기 옮김, 권김현영 외 / 푸른지식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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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현 가능한 환각의 출현 :

 

 

 

 

 

 

 

 

 

​악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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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륭한 이야기에는 항상 " 악어 " 가 등장한다. 만약에 지금 당신이 읽고 있는 책에서 악어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버려도 좋다. 그런 책은 재미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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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가 등장하는 유명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유명한 재담'이다)  :  침대 밑에 악어가 산다고 불평하는 여성 환자가 있다.  여자는 악어가 자신을 잡아먹기 위해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고 말한다.  정신과 의사는 환자에게 그것은 단지 환상에 불과하며 침대 밑에는 악어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와, 악어 있다니까요 ~    왜, 내 말을 안 믿냐고요 ~    나, 이대 나온 여자라고요 ~   하지만 의사는 도시에서 악어 출현은 " 실현 불가능한 환각 " 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무시한다.  두 번째 상담에서도 그 환자는 여전히 똑같은 불평을 하지만 남자는 지난번 진단과 같은 처방을 내린다. 와, 악어 없다니까요 ~    왜, 내 말을 안 믿냐고요 ~     나, 정신과 의사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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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상담이 있던 날,  약속했던 환자가 나타나지 않자 의사는 환자의 망상이 사라졌다며 기뻐한다.  만약에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 난다면 이 이야기는 매우 지루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며칠 뒤, 의사는 환자 친구인 k를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환자의 안부를 묻는다. k가 말한다.  그 악어한테 잡아먹힌 그 사람 말하는 겁니까 ?  침대 밑에서 악어가 살았다고 하더군요.                         이 이야기에서 < 악어 > 는 현실 공동체 질서 안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환각'에 불과했지만,  현실 속에서 " 실현된 환각 " 으로 나타나면서 서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이처럼 악어는 스토리텔링1)에서 매우 중요한 오브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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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스토리와 박근혜 스토리가 매우 흥미진진했던 까닭도 인간의 눈에서 악어의 눈물이 흐른다는 데 있다. 아, 아아아아아악어의 눈물이라니. 그것은 싱크대 수도꼭지를 틀었더니 맥주가 쏟아지는 것과 같은 꼴이다. 쇼킹하다.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며 흘린 박근혜의 눈물을 보았을 때 우리 모두는 당황했었다. 어, 어어어어어어...... 닭이 아니라 악어였어 ???!!!!  이처럼 훌륭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항상 악어 한 마리 정도는 비장의 카드로 숨겨놓아야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어느 하드보일드 작가는 글을 쓰다가 막히면 권총을 등장시키면 된다고 충고했다.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글을 쓰다가 막힌다 싶으면 악어 한 마리를 등장시키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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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악어가 한 마리가 아니라 악어가 떼로 등장하는 만화가 있다.   바로 << 악어 프로젝트 >> 라는 프랑스 만화'이다.  이 책에서 남자는 모두 초록색 악어로 등장한다.   악어 떼가 득실거리는 세상에서 사는 여성이 일상적으로 겪는 성차별과 성폭력을 그리고 있는데 양성 평등 국가로 알려진 프랑스에서도 이 문제만큼은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초록색 악어들은 호시탐탐 여자들을 잡아먹을 궁리만 한다.  " 남자는 모두 다 늑대(악어) " 라는 말은 세계 어디를 가나 만국공통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특히, 남성 입장에서 보면 모든 남성을 포식자인 초록색 악어로 묘사해서 읽는 내내 불편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다.  잠재적 가해자가 된다는 것은 언제나 불편한 느낌이 드니까.


작가 토마 마티외는 " 악어라는 이미지를 통해 남성 우월주의,  성차별주의,  성적 고정관념,  남성의 성적 욕망,  그리고 실제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는데도 거리에서 마주친 남성에게 느끼는 두려움 같은 것을 드러내고 싶었다 " 고 한다.  남성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초록색 악어는 " 실현되지 않은 NON·REAL(IZE) " 환영에 불과하지만,  여성에게 있어서 초록색 악어는 " 실현된 환각 NON·ILLUSION(ED)" 으로써 라캉의 실재 the Real  2)에 가깝다. < 초록색 악어 > 는 남자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여자에게는 존재하는 공포의 대상이다. 리얼리티 없는 리얼이다.  이처럼 the Real(실재계)은  the reality와는 다른 개념으로 실제(實際)도 아니고 실재(實在)도 아니요, 실체(實體)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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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the Nothing에 접근한 공허(空虛, the void)에 가깝고, 슬라보예 지젝이 언급한 히치코크의 얼룩이자 오점에 해당된다.  이 책을 읽고 난 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을 가졌다면, 남성인 당신은 지난날에 대하여 반성할 기회가 아직 남아 있는 사람이고,  읽는 내내 불쾌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면 당신은 a son of a bitch crocodile'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말머리에서 소개한 침대 밑에 악어가 산다는 여자 이야기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이 익살스러운 재담에서 환자를 여성으로, 그리고 의사를 남성으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  그리고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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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는 침대 밑에 악어가 산다는 여자의 말을 왜 일고의 가치도 없는 무의미한 진술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   세상의 절반이 악어인데 말이다.  혹시...... 그도 또 다른 악어 한 마리는 아니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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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에 개봉한 영화 << 도어락 >> 은 침대 밑에 악어가 산다고 말하는 히스테릭한 여자 이야기의 변주'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오피스텔 원룸 안에 누군가 있다고 말하는 경민(공효진 분)은 침대 밑에 악어가 산다고 말하는 여자와 동일인이다. 그리고 경민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이 형사(김성오 분)는 정신과 의사'이다. 또한,  혼자 사는 여성만을 노리는 범인은 악어'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남성 - 들'은 예외 없이 모두 경민의 히스테릭한 반응에 대하여 " 실현 불가능한 환각 " 이라고 말하지만 < 실현 불가능한 환각 > 은 < 실현 가능한 환각 > 이 되어 관객 앞에 출현한다.


2)   " 라캉의 실재(the Real)는 현실(the reality)이 아니다. 라캉의 실재는 상징계의 밖에 있다. 다시 말해 우리의 현실 밖에 있는, 현실이 아닌, 현실 너머의 어떤 것이다. 라캉의 실재는 경험적 실재와 구별되고, 초감각적 세계의 추상적 실재와도 구별되는 개념이다. 경험적 실재란 우리 주변의 모든 구체적 물건들을 뜻하고, 추상적 실재란 ‘자유’, ‘정의’ 같은 추상 명사들을 뜻한다. 그러나 라캉의 실재는 이것들 중 그 어떤 것과도 상관이 없다.상징계가 언어적 세계라면 실재계는 언어를 초월하는 언어 밖의 세계이다. 우리의 현실은 언어로 된 세계인데, 실재는 언어로 매개되지 않는 세계이다. 그것은 언어에 포함되지 않고, 언어 외부에, 또는 주체 외부에 있는 성(性)과 죽음의 차원이다. 결국 실재계는 불안의 대상이다. 그 세계 앞에 서면 모든 단어들이 얼어붙고 모든 범주들이 추락하는, 그런 불안의 대상이다.  상징화를 거부하므로 즉 도저히 언어로 표현할 수 없으므로 실재계는 표상이 불가능하다. 상상할 수 없고, 상징계 안에 통합시킬 수도 없어서, 우리는 도저히 그 곳에 도달할 수가 없다. 현실 속에서는 결코 제시될 수 없지만 우리가 현실과 밀착해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는 어떤 것이다. 현실 끝에 한계가 있고, 그 한계 너머로 속이 텅 비어 있는 심연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실재다. 실재는 우리가 결코 접근할 수 없는 끔찍한 한계, 즉 그것을 건드리는 것이 곧 죽음을 의미하는 한계이며, 동시에 그 너머의 공간이다.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를 생각해 보자. 연인 유리디체를 지하세계에서 구출해 나오는 오르페우스에게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가 내려졌다. 돌아서서 뒤에 따라오는 연인을 바라보는 순간 연인이 죽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한 중간에 오르페우스는 참지 못하고 뒤돌아보았고, 연인 유리디체는 죽었다. 실재의 은유로 이것만큼 적당한 것이 없다. 실재에 가까이 가는 것은 치명적인 죽음을 의미한다. 현실과 실재를 가르는 한계는 근본적 불가능성의 표지이다. 우리는 그것을 결코 넘을 수 없고, 거기에 가까이 가기만 해도 죽는다. 그리고 그 너머는 금지되어 있다. 실재는 그러니까 실체도 없고, 물질성도 없다. 일체의 상징화를 거부하므로 그 어떤 말로도 표상할 수 없다. 그러나 굳이 표현하자면 그것은 공허(空虛, the void)이다. 실재는 텅 비어 있는 빈 공간이다 "

ㅡ 박정자 칼럼에서 부분 인용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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