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다 :
도어락, 2018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숨이 막히는 듯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언가 끔찍한 일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하지만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의 집안 어디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혼자 살고 있었으며 그것은 그 순간 그 끔찍한 일을 함께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침대 밑을 보여 줄 사람이, 몸을 숨겨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 침대 밑 악어 중

오피스텔 원룸에서 독신으로 살아가는 주인공 경민(공효진 분)은 여성 1인 가구라는 사실이 알려져 범죄의 타깃이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독신이다. 그는 일부러 빨래 건조대에 남자 속옷과 남자 양말을 진열하고, 현관에 남자 구두를 배치한다1). 만약에 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 설정이 과도하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남성 관객일 확률이 100%다. 현실 반응은 영화보다 더 히스테릭하다. 여성이 혼자 있을 때를 대비해 배달이 오면 앱(Application)에서 남자 목소리로 변조되어 대답하는 기능도 인기를 얻고 있다. 영화보다 현실 속 설정이 더 기괴한 경우이다. 이처럼 영화 속 설정은 여성이라면, 더구나 혼자 사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불안이다. 영화는 그 불안의 지점을 파고든다. 강력범죄 피해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86.2%이고, 성폭력은 하루 평균 88회 이상 발생하며,
성폭력 가해자의 94.4%가 불구속 처리되고, 강도, 강간, 살인과 같은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 중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96.3%다. 그리고 주거침입 성범죄 사건에서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99.8%다. 그렇다면 여성이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반응에 대하여 남성은 무시로 일관하거나 반대로 격하게 분노를 표출한다. 영화 << 도어락, 2018 >> 에서 남성 - 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원룸에 누군가 있다는 경민의 진술을 초지일관 히스테리한 반응으로 치부한다. 여성의 언어는 권위와 존경을 얻지 못한다. 가족극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 사건에 개입하고 해결하는 것은 남편이다. " 당신은 조용히 있어 ! "
이 흔해빠진 패밀리 플롯은 여성의 언어가 사건을 해결하는데 아무 도움도 될 수 없다는 편견을 심어준다. 반면, 가부장 남성은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단숨에 다툼을 정리한다. 가족 서사극'은 남성의 언어에 권위를 부여하고 우리는 그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영화 << 도어락, 2018 >> 은 침대 밑에 악어가 산다는 환자의 재담을 닮았다. 즉, << 도어락 >> 은 익히 알려진 재담의 장르적 변주'이다.
침대 밑에 악어가 산다고 불평하는 여성 환자가 있다. 여자는 악어가 자신을 잡아먹기 위해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고 말한다. 정신과 의사는 환자에게 그것은 단지 환상에 불과하며 침대 밑에는 악어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와, 악어 있다니까요 ~ 왜, 내 말을 안 믿냐고요 ~ 나, 이대 나온 여자라고요 ~ 하지만 의사는 도시에서 악어 출현은 " 실현 불가능한 환각 " 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무시한다. 두 번째 상담에서도 그 환자는 여전히 똑같은 불평을 하지만 남자는 지난번 진단과 같은 처방을 내린다. 와, 악어 없다니까요 ~ 왜, 내 말을 안 믿냐고요 ~ 나, 정신과 의사라고요 ~ 세 번째 상담이 있던 날, 약속했던 환자가 나타나지 않자 의사는 환자의 망상이 사라졌다며 기뻐한다. 만약에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 난다면 이 이야기는 매우 지루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며칠 뒤, 의사는 환자 친구인 k를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환자의 안부를 묻는다. k가 말한다. 그 악어한테 잡아먹힌 친구 말하는 겁니까 ? 이웃집에 사는 사람 말로는 그 집 침대 밑에서 악어가 살았다고 하더군요.
자신이 살고 있는 오피스텔 원룸 안에 누군가 있다고 말하는 경민(공효진 분)은 침대 밑에 악어가 산다고 말하는 정신과 상담 환자와 동일인이다. 그리고 경민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이 형사(김성오 분)는 정신과 의사'이다. 또한 혼자 사는 여성만을 노리는 범인은 사람 탈을 쓴 초록색 악어'이다(실제로 영화 속에서 범인은 경민의 침대 밑에 숨어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남성 - 들'은 예외 없이 모두 경민의 침대 밑에 사는 악어에 대하여 " 실현되지 않는 환영 NON·REAL(IZE) " 이라고 진단한다. 하지만 남성들에 의해 실현되지 않은 환영'으로 치부되었던 악어는 관객 앞에 " 실현된 환각 NON·ILLUSION(ED) " 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초록색 악어는 남성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여성에게는 존재하는 공포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왜 초록색 악어는 남성들에 의해 리얼/real 이 아니다/non 라는 존재 부정을 당하는 것일까 ? 그것은 바로 초록색 악어가 일반 남성의 비밀스러운 환유이기 때문이다. 남성이 악어의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그 행위는 곧 자기 자신을 향한 비판'이 된다. 라캉의 사유를 빌리자면 침대 밑에 사는 악어는 실재 the Real 에 가깝다. the Real 실재(계)는 the reality 현실과는 다른 개념으로 실제(實際)도 아니고 실재(實在)도 아니요, 그렇다고 실체(實體)도 아니다. " 리얼리티 없는 리얼 " 이 바로 침대 밑에 사는 악어이다. 남성에 의하면 악어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이 존재 부정이야말로 악어를 어디에나 있도록 만든다. 악어는 침대 밑에서 출몰하기도 하고, 거리에서 바바리를 입고 여고 앞 골목길에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선생님이나 목사님의 탈을 쓰고 나타나기도 한다. 악어는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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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원룸 ONE-ROOM > 은 1인 주거 공간의 마지노선'이다. 은행 직원 경민은 1인 가구를 2인 가구로 포장하기 위해 위장을 선택하지만 원룸 자체가 독거 주거 형태'라는 점을 감안하면 효과는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