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인간의 욕구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 안전 욕구 > 이고, 다른 하나는 < 만족 욕구 > 이다. 그런데 만족 욕구가 충족되기 위해서는 먼저 안전 욕구가 충족되어야 한다. 만약에 당신이 마이클 마이어스 영화 << 할로윈 >> 에 등장하는 하키 가면 괴물 에게 쫓기고 있다면, 쫓기는 도중에 식욕이나 성욕따위가 생길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의식주에서 안전에 해당되는 요소는 무엇일까 ? 당연히 住(거 공간)이다. 집은 그 사람의 안전을 책임지는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한국의 무식한 보수들은 인구 감소 문제를 여성 탓으로 돌리지만 핵심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집값 탓이다. 서울시 집값은 세계에서 3위에 해당될 만큼 고가의 재화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서울에 사는 직장인이 월급 절반을 저축해서 집을 살 수 있는 기간은 25평 아파트인 경우 23.2년이란 계산이 나온다. 아파트 평수가 올라갈수록, 강남으로 한정할수록 기간은 연장된다. 강남구에서 33평 43.3년, 25평 37.3년이 걸리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만큼 안정 욕구 충족은 유예된다.
말머리에서도 언급했듯이 안전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만족 욕구도 충족될 수 없기에 신생아 수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 진영은 인구 감소의 원인을 여성의 이기주의로 돌린다. 보수의 스토리텔링은 기승전여(자 탓)이다. 한국 여성은 주택 문제에 있어서도 남성보다 불평등한 조건에 놓여 있다. 여성 1인 가구는 안전 문제로 남성보다 많은 돈을 안전 비용으로 지불해야 한다. 최근에 혼자 사는 여성이 늘어나면서 보안 시스템과 방범시스템이 갖춰진 원룸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이런 곳은 대체적으로 비싼 편이어서, 안전을 고려한 여성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주거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예를 들면 여성은 주거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월세가 저렴한 곳에 들어가려고 해도 안전 문제 때문에 입구 현관에 도어락이 있고 관리실에서 CCTV를 감시할 수 있는 곳을 선호하다 보니 남성의 주거 비용보다 평균 20만 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이런 댓글을 남길 수도 있다. 혼자 사는 여성을 노리는 성범죄는 주로 몇몇 예쁜 여자에 한정되는 것이니 일반화하지 마라 ! 그런데 과연 이 주장은 사실일까 ? 박형민 범죄조사연구실장은 << 성폭력 범죄자의 피해자 선택 >> 이라는 흥미로운 주제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성범죄 가해자가 피해자를 고를 때 선택하게 되는 조건은 외모와 옷차림 같은 성적 기호 때문이 아니라 단순하게 피해 여성이 혼자 있는 상황, 침입하기 용이한 상황, 피해자를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상황에 따라 대상을 선택한다고 한다. 어둠 속에서 강간을 하고 나서 나중에 피해 여성의 얼굴을 확인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범죄자는 혼자 있는 상황 때문에 범죄를 실행하지 여자의 야한 옷차림, 성적 매력, 외모 따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즉, 피해자의 매력이 성폭력 범죄를 유발하는 요인이 아니라 오히려 여자라는 성의 획득이 성폭력을 유발하는 요인인 것이다.
1인 여성은 남성에 비해 더 많은 주거 비용을 지불하고 있지만 공교롭게도 여성은 남성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는다. 이 불평등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대한민국은 모든 것을 여자 탓으로 돌린다. 인구가 감소되는 것도 여자 탓이요, 성범죄는 여성의 행실 탓이다. 애를 낳는 순간 맘충이 되고, 집 밖으로 나오면 김치녀가 되고 차를 끌고 나오면 김여사가 되는 세상. 그리고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면 길빵을 당한다. 이토록 선명한 차별을 두고 남성은 오히려 여성 상위를 외치고 있다. 좆같은 세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저잣거리 입말로 좆으로 흥한 놈은 좆으로 망한다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한국 사회는 좆으로 흥했다가 언젠가는 좆으로 망할 운이다.